자전거 타는 CEO
킹리우(류진뱌오), 여우쯔옌 지음 | 오씨이오(OCEO)
자전거 타는 CEO
킹 리우(류진뱌오), 여우쯔옌 지음
오씨이오 / 2017년 10월 / 239쪽 / 13,500원
course ① 무엇을 향해 달릴 것인가?
라이딩의 시작 -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자전거에 오르다
헛걸음도 쌓이면 노하우가 된다: 나는 열아홉 살에 학교를 졸업한 뒤 아버지 밑에서 잠시 사업을 배웠다. 아버지가 투자하던 통조림, 밀가루회사 등에서 일을 했는데, 어린 탓인지 이런저런 제약이 많았다. 이래서야 내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 독립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꽤 활동적인 성격이었던지라 다양한 업종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모두 시작한지 2~3년도 되지 않아 접어버리고 다른 업종으로 전향하기 일쑤였다. 딱히 실패해서 철수했던 건 아니다. 그저 개미투자자가 여기저기 투자하듯, 술자리에서 대박 사업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거나 돈이 될 만한 새 투자처를 발견하면 당장 새로운 사업을 벌이고 싶었다.
자이언트를 창립한 서른여덟 살까지도 나는 나 자신을 몰랐다. 자전거 사업이 내게 가장 잘 맞는 일이라는 확신이 선 것은 50~60세 무렵이었다. 먼 길을 돌고 돌아서야 나를 제대로 알게 된 셈이다. 한편 다양한 사업을 운영해본 경험은 훗날 가장 소중한 지식의 기반이 되었다. 성격이 전혀 다른 여러 가지 사업을 경영하면서 저마다의 난관을 경험해본 덕에,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는 공통된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소비자의 니즈’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른여덟 전에는 왜 그리 여러 업종을 떠돌았을까?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나 자신의 뿌리를 찾지 못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자신을 알아가는 길에서 많이 헤맸다. 하지만 그 경험들은 내 삶에 중요한 양분 역할을 했다. 예를 들어 자이언트를 창립하기 전 일본 업자와 거래를 해본 덕에, 일본 업계에서 통용되는 ‘일본공업규격(JIS)’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일본에서 배운 노하우로 국가표준(CNS) 제정에 앞장서 자전거의 품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방법을 찾고자 했다. 타이완 자전거업계에서는 유례없는 혁신적인 목표였다.
‘주의 요망’은 한 걸음 더 용기를 내라는 신호일 뿐: 나를 모르면 숱한 고비에 맞닥뜨릴 때마다 한계에 도달했다고 판단하고 자신의 가능성을 스스로 한정 지어버리기 쉽다. 나 또한 젊은 시절에는 우리 회사가 세계에서 가장 큰 자전거업체가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사람의 잠재력은 얼마든 계발할 수 있다. 물론 그러려면 의지가 있어야 한다. 나의 숨은 자질을 충분히 들여다보고,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고 나면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자신감이 솟아난다. 뿐만 아니라 나를 대하는 주변 사람들의 태도도 완전히 달라진다.
73세와 80세 때 도전했던 두 번의 자전거 일주에서 나는 그 차이를 확실히 느꼈다. 일흔셋에 처음 자전거 일주를 할 때는 솔직히 나부터 자신이 없었다. 출발 전 갑자기 디스크가 재발해 병원에 갔더니, 반드시 허리 보호대를 착용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 위암 수술의 후유증으로 혈전정맥염을 앓았던 터라 말초정맥의 혈액순환을 위해 왼쪽 다리에 탄력 붕대를 감아야 했다. 여기에 노인성 질환까지 겹쳐 건강은 계속 나빠지고 있었다. 가족과 회사들, 회사 임원들까지 내 나이에 자전거를 타는 건 위험하다며 나의 도전을 우려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심리적인 부담이 컸고 ‘만에 하나 정말 완주에 실패하기라도 하면 지금껏 쌓은 내 이미지에 흠만 가는 거 아니야?’ 하는 걱정도 은근히 들었다. 그런데 여든이 되어 다시 자전거 일주에 도전할 때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나는 첫 번째 일주 후에도 꾸준히 자전거를 탔다. 라이딩의 유산소 운동 효과 덕분에 그사이 고혈압이 많이 호전되었다. 더 신기한 것은 혈전정맥염과 수면무호흡증, 좌골신경통 같은 오랜 지병들이 약 없이 모두 완치되었다는 사실이다. 건강에 자신이 생기면서 마음도 한층 긍정적이 되었다.
만약 내가 50이 넘은 나이에 자이언트 브랜드를 개발하려는 한걸음을 내딛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또, 일흔셋에 자전거 일주라는 꿈을 이룰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지금 나는 어떤 모습일까? 아마도 나에게 이만큼의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지금껏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깊이 알아갈수록 더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된다. 나는 내 삶에서, 그리고 자전거 위에서 그 사실을 직접 경험했다.
위밍업 - 나의 한계와 잠재력을 가늠하기
능력은 부딪치는 만큼 보인다: 나는 어려서부터 부모님 말을 따르기보다는 뭐든 스스로 해결하는 걸 좋아했다. 나이가 들어서도 이런 성격은 변하지 않았다. 이면에는 무엇을 배우든 스스로 연구해서 알아내야 진정한 ‘내 것’이 된다는 신념이 있었다. 선생님에게 배운다고 해서 그게 모두 내 지식이 되지는 않는다는 생각이었다. 체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여든 살 노인인 내가 자전거를 타고 하루에 얼마나 달릴 수 있는지는 내가 가장 정확히 느낀다. 그걸 어떤 공식이나 표준화된 측정 기준으로 계산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아무튼 실전에 부딪쳐 보아야 나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어느 정도까지 향상할 수 있을지를 깨닫는다.
고장난 GPS의 교훈: 2009년 네덜란드로 원정 라이딩을 갔을 때였다. 미리 설정해둔 GPS 경로를 따라가는데 하루는 GPS가 고장 나고 말았다. 설상가상 인솔자도 길을 몰라 직접 가면서 길을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울퉁불퉁한 돌길을 한참 지나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길을 헤매느라 전혀 신경 쓰지 않던 속도계에 그제야 눈이 갔다. ‘120킬로미터’ 평소에는 많아야 80킬로미터, 최고로 달린 날이라 해도 100킬로미터 이상 자전거를 탄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내가 120킬로미터를 달릴 수가 있겠는가! 다른 대원의 속도계와 비교해본 후에야 내 최고 기록을 갱신했다는 사실이 믿겨졌다. 이 경험으로 나는 사람이 때로는 바보 같아야 자신의 한계를 깰 수 있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내 체력은, 혹은 능력은 이 정도라고 한정 짓는다면 잠재력은 거기서 끝나고 만다.
동반 라이딩 - 험난한 종주일수록 동행이 필요하다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값비싼 수업, 세상 물정: 나는 학교보다 사회에서 훨씬 많은 것을 배웠다. 왕왕 그룹 차이옌밍 회장은 “길거리에서 1년 방황하는 것이 학교에서 10년 공부하는 것보다 낫다.”고 말했다. 교단을 무시하는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바깥에 나오면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세상 물정’이 수두룩하다. 현실에 부딪치고, 자신의 능력을 가두지 않는 창업가 정신은 세상 물정을 통해 길러진다. 거리에서 방황해본 사람은 어느 정도 인생을 안다. 여러 부류의 사람들과 부대끼며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중심을 잡는 법도 배운다. 뜻이 맞는 사람들과 협력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따르는 무리도 생긴다.
자전거를 타면서 있었던 일이다. 여든 살에 두 번째 자전거 일주에 도전하던 중이었다. 셋째 날 정화 지역을 지나는데 메리다자전거 팀의 리더가 간선도로변에서 나를 응원해주는 모습이 보였다. 업계의 라이벌인데도 격의 없이 호의를 베푸는 대원들이 무척 고마웠다. 그래서 일부러 자전거를 멈추고 그들과 잠시 교제하며 성의를 표했다. 이것이 바로 세상 물정을 통해 배운 일종의 예의다.
두 라이벌 업체가 손을 잡고 뛰다: 사람은 모두 저마다의 능력과 견해가 있다. 그러나 국가든 회사 조직이든 공통된 인식이 마련되어야 운영을 할 수 있다. 만약 회사에서 월등한 동료에게 질 수 없다는 생각에 너도나도 이의 제기를 하는 데만 매달린다면 조직이 굴러갈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개개인의 능력보다는 팀워크가 훨씬 중요하다. 같은 조직뿐 아니라 다른 조직이나 업체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업계의 라이벌 사이에서도 때로는 경쟁보다 협력이 필요하다. 타이완 자전거업계에서부터 시작되어 현재는 타이완의 독특한 기업 문화로 자리 잡은 ‘에이팀’이 좋은 예다.
에이팀은 타이완의 자전거 조립업체 자이언트와 메리다, 두 회사를 필두로 선두 업체와 군소 제조업체들이 연합해 발족한 산업연맹으로, 귀뤼에 자동차와 중웨이 발전센터의 협조로 도요타 생산방식을 공동 도입했다. 에이팀이 발족할 당시, 타이완의 자전거업체들이 대거 중국 대륙으로 진출하면서 산업공동화현상이 매우 심각했다. 1,000만 대에 달하던 수출량이 400만 대 밑으로 떨어질 정도였다. 나는 타이완의 자전거산업을 복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한 해결책으로 떠올린 것이 바로 동종 업체 메리다와 연합해 ‘에이팀’이라는 산업연맹을 조직하는 것이었다. 당시 업계의 많은 이들이 우리의 계획을 듣고 비웃었다. 동종 업체끼리 협력해서 성공한 사례는 선진국에서도 전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자이언트와 메리다는 산업연맹을 체결하는 데 합의했다. 물론 한 분야에서 승부를 겨루는 두 회사의 경쟁 구도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같은 거리에 점포를 둔 자이언트와 메리다의 사장들은 여전히 서로가 치열한 경쟁 상대였다. 하지만 이와는 별도로 에이팀은 하나의 공동체로서 기능했다. 우리는 어떻게 한 단계 높은 차원에서 협력하여 ‘고급 자전거’라는 새로운 전쟁터로 들어갈지를 고민했다. 6년의 진통 끝에 타이완 자전거의 수출 판매량은 2009년 430만 대로 증가했다. 더 중요한 것은, 산업 전반의 평균수출단가가 한 대당 평균 110달러에서 6년 만에 300달러로 급상승했고, 현재까지 오름세를 이어가며 450달러(약 50만 원)라는 신기록을 달성했다.
페달링 - 페달을 멈추는 순간 자전거는 넘어진다
페달 한 바퀴의 힘: 지난 시간 동안 나는 사업이 자전거와 같아서 페달을 밟는 만큼 앞으로 나가고 발을 떼는 순간 넘어진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나아가려는 노력을 끝없이 해야 하는 것이다. 어떤 사업이든 한계는 없다. 산 정상까지 올라가 보지 못한 사람은 산 위에 펼쳐진 또 다른 기회를 알 수 없다. 나는 청년들에게 인생도 자전거와 마찬가지라고 늘 조언한다. 자전거를 탈 때 한 발 내디뎌야 앞에 펼쳐지는 풍경을 볼 수 있듯이, 인생도 두려워하지 말고 일단 뛰어넘고 보면 자연스럽게 다음 기회가 보인다. 자신감은 도전과 더불어 점점 더 커지게 마련이다. 도전을 시도해본 적 없는 사람은 단단한 자신감을 가질 수가 없다.
course ② 어떻게 최고 속도에 도달할 것인가?
코너링 - 무사히 모퉁이를 돌려면 진행 방향을 숙지해야 한다
미래를 주도하는 ‘물속 오리’ 전략: 환경이 끊임없이 변하기에 기업의 경영자는 미래를 주도하고자 하는 패기가 있어야 한다. 기회를 잡는다는 것은 적절한 때에 적절한 일을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기회는 사람마다 다른 형태로 찾아온다.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싸우라’는 말도 있듯이, 기회가 찾아왔을 때 허둥거리며 서두르지 않도록 늘 충분한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미래가 현재를 결정한다’고 내가 말하면 ‘앞으로 환경이 어떻게 변할지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봄이 와 강물이 따뜻해지면 오리가 먼저 안다’는 말이 있다. 물가에서 딴청을 하는 오리보다 물에 들어가 있는 오리가 계절의 변화를 먼저 아는 법이다. 산업의 동향을 파악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탄소섬유를 자전거 프레임에 도입한 것도 그런 경우였다. 탄소섬유는 가볍고 튼튼하며 충격 흡수력이 뛰어나다는 장점 때문에 현재 업계에서는 고급 자전거 프레임의 가장 이상적인 소재로 통용되고 있다. 이 소재가 지금처럼 확산된 것은 1985년 자이언트가 공업기술연구원의 소재연구소와 공동 연구에 뛰어든 것이 직접적인 계기였다. 자이언트와 소재연구소는 공동으로 탄소섬유 기술을 개발해 세계 최초로 탄소섬유 자전거 프레임을 대량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이러한 복합 소재는 우주항공 산업에만 제한적으로 활용되었기에 이 소재를 자전거업계에 도입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탄소섬유를 어떻게 자전거에 활용할지도 당연히 몰랐다. 업계에서는 오직 자이언트만이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유일하게 유럽에서 수공 탄소섬유 프레임을 사용하긴 했지만 가격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비쌌고 상품화도 되지 않았다. 일본 최대의 탄소섬유 생산업체 도레이조차 탄소섬유 자전거 프레임 개발에 나섰다가 실패로 끝을 맺었다. 자전거 제조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자이언트는 어떻게 탄소섬유를 개발 가치가 있는 신소재로 확신했을까? 자이언트는 연못의 가장 깊은 곳에서 헤엄치는 오리처럼 끊임없이 물속과 주변을 살폈다. 어떻게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시키고 확장할지, 어떻게 하면 자전거 애호가들에게 더 큰 즐거움을 줄 수 있을지를 늘 생각했다.
우리는 자전거 동호인들이 라이딩에서 느끼는 가장 큰 즐거움이 ‘속도’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자전거의 주행 속도를 높이는 유일한 방법은 무게를 줄이는 것이다. 자전거 프레임의 재질은 티타늄에서 알루미늄합금으로 변천해왔는데, 산업구조를 선진화하려면 여기서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는 그 대안으로 탄소섬유라는 신소재를 찾은 것이다.
완벽한 회사일수록 개혁이 필요하다: 미래가 현재를 결정하도록 판단력을 갖추려면 반드시 충분한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해야 한다. ‘과거’의 경험들을 이해하고 ‘현재’를 철저히 운영해야 ‘미래’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알 수 있다. 자이언트그룹이 다른 여러 업종에 투자하는 문어발식 경영을 하지 않고 지금껏 자전거라는 본업에만 집중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집중해야 할 대상이 분산되면 업계의 진정한 ‘물속 오리’가 될 수 없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어떤 일이든 전문성을 갖추어야 최고가 될 수 있다. 한 분야에 온전히 집중하면 앞으로의 변화에 자연스럽게 민감해진다. 위기가 닥치고 손실이 발생한 다음 이를 메우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개혁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개혁의 최적기가 언제인지 미리 인지하고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
2013년 6월, 자이언트는 자체적으로 혁신개혁위원회(약칭 ‘개혁위’)를 조직하고 창립 후 제6차 혁신개혁을 시작했다. 자이언트가 3년 안에 고객에게 사랑받고 사회에 공헌하는 ‘100년 기업’으로 거듭나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개혁위의 프로젝트는 일반적인 경영관리에 비해 규모가 훨씬 방대했다. ‘혁신과 도전’을 회사의 공식적인 핵심 이념으로 채택하고 하나씩 ‘개혁’을 진행하며 경영전략과 혁신을 긴밀히 결합했다. 그렇게 개혁을 거칠 때마다 회사는 또 다른 성장 단계로 도약했다.
회사가 개혁 없이 살아남을 수 없는 이유는, ‘경영’이란 것이 본래 변화하는 환경에서 사람과 돈을 가장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역사가 오래되고 완벽한 제도와 표준운영절차(SOP, Standing Operating Procedure)를 갖춘 회사, 가치관이 단단히 형성되어 있는 회사일수록 반드시 조정이 필요하다. 그래야 시의성이 떨어지는 낡은 방법을 버리고,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새롭게 적응할 수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기업의 리더이다.
다운힐 - 위기를 맞은 후에야 급제동을 하면 늦는다
위기의 골든타임: 자이언트가 세계 최대의 자전거업체로 성장한 지금도 나는 언제나 위기의식을 예민하게 느끼기 위해 노력한다. 비단 기업의 경영에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살면서 우리 모두는 크고 작은 위기를 만난다. 예순이 되던 해에 받은 건강검진에서 위암의 조짐이 발견되었다. 다행히 0기 악성종양이었다. 나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의사의 말에 따라 위 절반을 잘라내는 수술을 감수했다.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두렵지 않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긍정적인 마음이 몸의 회복을 빠르게 해준다고 믿었기 때문에 위암 수술 한 달 만에 미국으로 건너가 자전거 전람회에 참가했다.
수술보다 더 큰 인생의 위기는 젊은 시절 장어 양식 사업을 하던 때 찾아왔다. 태풍이 세차게 불던 날, 마침 만조 때라 바닷물이 역류해 제방 전체가 부서져 내렸다. 나는 양식장 옆으로 거대한 물결이 닥쳐오는 것을 보고 황급히 뒤돌아 자전거를 타고 내달렸다. 그렇게 양식장이 눈 깜짝할 사이 태풍에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마흔이 넘어 투자한 2,000만 위안을 날리고, 녹초가 된 몸으로 집에 돌아왔다. 누워 있자니 마음속에서 시끄러운 외침이 터져 나왔다. ‘망했다. 이번에는 하늘까지 태클이군!’ 하느님이 나에게 왜 이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빚이 걱정이었다. 그즈음 친구 몇 명이 집에만 틀어박혀 있던 나를 불러냈다. 함께 식사를 하던 중 한 친구가 자전거 사업 이야기를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