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드러커의 경영의 원점
이재규 지음 | 사과나무
피터 드러커의 경영의 원점
이재규 지음
사과나무 / 2015년 6월 / 312쪽 / 13,000원
자유주의자의 지적(知的) 투쟁
현대판 노예제도, 황금족쇄(golden fetter)
18세기 중엽 유럽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사회는 경제적으로 향상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종종 자신들이 누리게 된 경제적 발전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다. 1811년 영국에서 일어난 노동자들의 기계파괴운동, 1846년 영국의 곡물법 폐지에 반대한 지주들의 데모, 1848년 독일 실레지엔 지역의 린넨 공장 직공들의 데모에서 보듯이 경제적 발전에 대한 반대는 경제적 발전으로 가장 덕을 보았을 바로 그 계층 사람들로부터 나왔다. 그들을 조종하고 개인적인 권력을 도모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아크라이트가 발명한 방적기계에, 제임스 와트가 발명한 증기기관을 동력으로 사용하는 공장을 소유한 소위 ‘기계를 가진 자’가 등장하자 영국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방적공장의 소유주는 여자들이나 아이들 대여섯 명만 데리고 기계로 일하면 그 전에 건강한 남자 직조공들 100명이 일하는 것보다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었다. 또한 기계는 밤낮 없이 일할 수 있었고, 일이 없을 때는 비용을 들이지 않고 세워둘 수 있었다. 섬유기계 한 대를 설치하자 100명이나 되는 도시의 수공업 직조공들이 졸지에 일자리를 잃었다.
기계를 가진 자가 100명의 굶주린 수공업 숙련공들에게 말한다. “기계와 공장을 돌볼 사람 다섯 명이 필요하다. 얼마를 주면 일을 하겠는가?”한 사람이 얼른 대답했다. “그 전에 받았던 만큼 원합니다.”
다른 사람이 말했다. “저는 매일 빵 한 덩어리와 1킬로그램의 감자를 살 수 있으면 족합니다.”세 번째 사람이 말했다. “빵 반 덩어리에 감자 500그램이면 일을 하겠습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일제히 말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기계를 가진 자는 하루 빵 반 덩어리와 감자 500그램으로 일을 하겠다는 사람들만 남고 다른 사람들은 돌아가라고 했다. 몇 명이 남았고 또 몇 명은 떠났다. 남은 사람들에게 공장주는 말했다. “여러분, 좋습니다. 그런데 하루에 몇 시간이나 일하겠소?”한 사람이 말했다. “하루 열 시간요.”
다음 사람이 말했다. “열두 시간요.”
기계를 가진 자가 말했다. “좋소. 열두 시간 일할 사람만 남으시오.”
다시 몇 명은 남고 몇 명은 떠났다. 기계를 가진 자는 남은 사람들에게 또다시 말했다. “그런데 당신이 잠자는 동안 기계는 뭘 하지? 기계는 잠잘 필요가 없는데!”남은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말했다. “여덟 살 난 내 아들을 보내겠소.”
기계를 가진 자가 물었다. “애한테는 얼마를 주면 되지?”
그 사람은 절망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버터와 빵 값만 주세요.”
기계를 가진 자가 말했다. “버터 값은 빼겠네.”
다섯 명의 기계공 모집은 그렇게 끝났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이제는 직조공 500명의 일을 할 수 있는 새로운 기계들이 더 싼 값으로 등장했다. 게다가 노동자들에게 가장 적은 임금을 주는 악덕 공장주들이 생산한 제품의 가격이 가장 쌌기 때문에 도시의 소비자들은 악덕 공장주가 생산한 제품을 가장 많이 구입했다.
산업사회 초기의 이런 광경을 오늘날 와서 상상하면 기계를 가진 자들, 즉 자본가들의 횡포에 공분을 느낀다. 그러나 침착하게 생각해보자. 이제 방적공장은 컴퓨터 앞에 앉은 사무원 몇 명을 제외하면 육체근로자는 한 명도 고용하지 않고 완벽한 무인자동화 시스템으로 가동되고 있다. 지금 그 방적공장 노동자들의 후예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가? 초기 산업사회보다 더 못사는가? 요즘 전 세계적으로 아웃소싱이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과거 선진국에서는 아이들이 음식을 먹다가 남기면 어머니들은 버릇없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꾸중했다.“너희들은 음식을 남기면 안 돼. 지금 인도와 중국 같은 후진국에는 굶는 아이들도 있어. 하루 1달러로 사는 사람들도 많아.”그러나 요즘은 사정이 전혀 다르다. 선진국의 어머니들은 걱정한다.
“너희들이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하지 않으면 인도나 중국의 젊은이들이 보다 싼 임금으로 너희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갈 거야.”내 일자리는 내가 지키지 못하면 기계가 빼앗아가든지 아니면 개발도상국의 다른 젊은이가 빼앗아간다. 일자리는 정부가 지켜주지 못한다.
완전한 평등은 달성될 수 없는가?
한 젊은 여성이 동네 슈퍼마켓에서 라면 한 봉지, 우유 한 팩, 참치 캔 하나, 양말 한 켤레, 그리고 비누, 치약, 칫솔을 각각 1개씩 구입했다. 계산대의 청년이 계산을 하면서 물었다. “아가씨, 혼자 사시지요?”그 여성은 잘생긴 총각이 자신에게 관심이 있다고 지레짐작하고는 되물었다. “어머, 어떻게 아셨어요? 제가 물건 사는 것을 보고 그러시는 거죠?”청년이 대답했다. “아뇨, 못생겨서요.”
한 일간지의 유머 코너에 난 기사이다. 다음은 정반대의 이야기이다.
세상 어느 곳에 절대 평등을 지향하는 새로운 국가가 생겼다. 평등을 위배하거나 질투심을 일으키는 것은 무엇이든 고발을 하면 당국은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사실 어느 나라든 아주 잘생긴 소수와, 평범한 다수와 좀 못생긴 소수가 있게 마련이다. 어느 날 돈도 없고 못생긴 몇몇 여인들이, 잘생긴 여인들 때문에 질투심을 느낀다고 당국에 진정을 했다. 많은 평범한 사람들도 덩달아 합세했다. 그러자 다수의 의견을 중시하는 정부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얼굴의 평등을 담당하는 정부부처, 즉 얼굴정의국을 신설했다. 얼굴정의국은 즉각 모든 여인들의 얼굴이 똑같아야 한다는 법령을 선포한다. 그러자 못생긴 여인들이 잘생긴 여인들과 똑같아지기 위해 돈을 들여 성형수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잘생긴 여인들은 법을 어기지 않기 위해 돈을 들여 못난이 성형수술을 받았다. 그런 식으로 그 나라에서는 잘생긴 여인들은 사라졌고, 시기의 대상이 사라져버리자 모든 여인들은 못생겼지만 행복한 평등사회가 되었다. 그런데 한 남자가 가난하지만 얼굴이 예쁜 한 여인을 사랑했다. 정부는 못난이 성형수술을 할 돈이 없는 그 여인에게 강압적으로 못난이 수술을 강행했다. 여인의 바뀐 얼굴을 본 남자는 여인을 떠나버렸다.
이상은 영국 작가 하틀리(1895~1972)가 쓴 『얼굴의 정의』(1960)의 줄거리이다. 시기심을 일으킬 잘난 사람도 없고, 질투를 할 못난 사람도 없는 사회의 모습을 그린 소설이다. 미국 여류작가 에인 랜드도 소설 『아틀라스』(1957)에서 기회균등을 지나치게 강조한 사회의 모습이 어떠할지를 묘사했다. 평범한 작가의 소설이 잘 안 팔리는 이유는 독자층은 한정되어 있는데 베스트셀러 작가의 책이 너무나 많이 팔리기 때문이라고 판단한 정부 당국은 기회균등법을 문학에 적용시켜서 어떤 책이든 판매 부수를 1만 권으로 제한하는 법을 마련한다. 그렇게 되면 독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라도 평범한 다른 작가의 소설이라도 보게 된다는 논리이다. 그 결과 서점에서는 베스트셀러 1만 권만 팔렸을 뿐, 다른 책들은 재고로 쌓여 결국 서점주인은 장사가 안 되어 폐업한다.
서구사회가 추구한 두 가지 정의는 ‘자유’와 ‘평등’이다. 평생 외부로 나오지 못하는 봉쇄 수도원이나 사막의 움막 스케테에 제 스스로 은거하는 수도사들 외에는, 거주이전의 자유를 금지하는 것만큼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도 없다. 출국금지나 인신구속은 개인에게 최대의 치욕을 안겨주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평민과 노예가 군주와 귀족과 양반에게서 자유를 획득하는 과정을 기록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인간이 행복하게 살려면 자유만 가지고는 안 된다. 내부적으로 평등해야 하고 또 기회균등도 보장되어야 한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하틀리와 에인 랜드의 소설이 주는 교훈은, 이 세상에 절대적 자유가 없듯이 절대적 평등은 달성될 수 없다는 것이다. 못생긴 책임이 잘생긴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듯, 지방이 못사는 이유를 수도권으로의 집중과 발전으로 보고, 공기업의 지방이전과 수도권 규제로 지방을 살리자는 이론은 현실성이 없다. ‘지방 균형 발전을 위한 수도권 규제’ 논리는 오히려 지방 사람들의 신분상승 욕구와 거주이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다. 그것도 글로벌 시대에 말이다. 분권시대의 지방은 수도권 규제 논리가 아니라 수도권과의 협력 및 자력으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지식근로자가 되기 위한 노하우
지식근로자는 어떻게 성공할 수 있을까?
지식근로자는 소위 신 유목민처럼 살아가게 된다. 지식근로자는 공공부문이든, 기업이든, 교육계든, 정치계든 적성이 맞는 분야를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이제 성공은 더 이상 과거처럼 타고난 신분에 구애받지 않는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우리 모두가 기업가다”라고 말했다. 개개인 모두가 진정 CEO인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말하자면 지식사회에서 지식근로자는 자신의 인생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하고,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즉 결정과 성과에 스스로 책임을 진다는 의미이다.
“지식근로자는 어떻게 성공할 수 있을까?” 드러커는 이런 질문에 대해 자기관리, 관계책임, 방법론 등에 몇 가지 가이드를 제시한다. 지식사회의 특성 중 과거 사회와 다른 것 하나는, 길어지는 근로생활과 짧아지는 조직 수명이다. 따라서 자기관리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자기관리를 효과적으로 하려면 다음의 질문에 스스로 대답해야 한다.첫째, 나의 강점은 무엇인가?
둘째, 나는 어떻게 성과를 올리는가?
셋째, 나는 읽는 자인가 듣는 자인가?
넷째, 나는 어떻게 배우는가?
다섯째, 나의 가치는 무엇인가?
여섯째, 나는 어디에 속하는가?
일곱째, 인생의 후반부(제2의 인생)를 일찍 생각하고 또 시작한다.
또한 지식근로자는 대부분 집단을 이루어 작업을 하기 때문에 집단 내에서 관계를 설정하고 관계책임을 져야 한다. 따라서 먼
저 자신의 일하는 방법을 파악하고 주변 사람에게 알려야 한다.첫째, 나는 일을 어울려서 하는 편인가, 혼자 일하는 스타일인가?
둘째, 자신의 일하는 스타일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협력을 구해야 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셋째, 일을 할 때는 상사가 성공하도록 협조하고, 나의 성공을 위해 상사의 협력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지식근로자가 지식작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지식이 결과를 산출하기 위해서는 높은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둘째, 지식을 생산성 있게 하기 위해서는 지식을 집중시켜야 한다.
셋째, 지식들 간의 연결이 지식생산성 향상의 비결이다.
넷째, 과업을 규정하고, 불필요한 과업을 제거하고, 한 가지 과업에 집중한다.
다섯째, 지속적 학습과 지속적 교육은 지식근로자의 책임이다.
여섯째, 지식을 생산성 있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시간관리가 필요하다.
지식근로자는 ‘보다 현명하게 일하기’로서만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이것은 더 열심히 또는 더 오래 일하지 않고서도 더 높은 생산성을 내는 작업을 의미한다.
피터 드러커의 지식경영
지식 르네상스를 예고한 ‘경영의 구루’
르네상스는 14~16세기 도시의 발달과 상업 자본의 형성을 배경으로 일어난 인간의 개성과 합리성, 그리고 세속적 욕구를 추구하는 반중세적 정신운동이다. 이때 문학ㆍ미술ㆍ건축ㆍ자연과학 같은 서유럽 근대화의 사상적 원류가 형성되었다. 르네상스는 사회와 인간을 보는 눈을 바꾸었다.
그런데 학문 분야에서 르네상스와 같은 공헌을 한 사람이 바로 피터 드러커이다. 그가 주목받은 이유는 단 하나다. 경영 현상과 지식을 보는 관점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경영학ㆍ경제학ㆍ정치학ㆍ경영컨설팅ㆍ저널리즘 등 여러 학문분야에 걸쳐 활동한 피터 드러커를 어떤 영역에서 평가하는가에 따라 그리고 누가 평가하느냐에 따라 그에 대한 평가도 달라진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드러커가 지식사회의 도래와 함께, 지식근로자가 가장 중요한 생산요소가 된다는 것을 예측하고, 21세기 사회에서 기업의 모습과 행동은 과거와는 달라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모든 이들은 그를 ‘경영 구루들 중의 구루’라고 칭하는 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드러커는 1909년 11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1931년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국제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이 대학의 강사를 거쳐, 1933년 나치가 득세하기 직전 영국으로 건너갔다. 영국에서 은행ㆍ보험회사ㆍ증권회사 등에 근무하면서 케인스의 세미나에도 참석했다. 1937년 미국으로 이주한 뒤 사라 로렌스 대학ㆍ베닝턴 대학ㆍ뉴욕 대학에서 후학들을 가르쳤다. 한편 GM과 GE를 비롯한 기업들에 대한 컨설팅뿐만 아니라, 마셜플랜에도 참가했고, 아이젠하워를 비롯한 미국의 여러 대통령들에게 자문을 해주기도 했다. 《타임》, 《포춘》, 《포린 어페어즈》, 《월스트리트 저널》 등에 기고했으며,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의 최다 기고자이기도 하다. 1971년 이후부터 2005년 타계할 때까지 캘리포니아 주 클레어몬트 대학교의 피터 드러커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및 사회과학을 강의했다. 저서로는 경제사회부문 14권, 『21세기 지식경영』 등 경영부문 17권 등을 합해 39권에 이른다.
19세기 중반, 기업은 당시 가장 효율적이었던 조직인 군대의 모습, 즉 수직적 구조와 명령ㆍ통제 시스템을 모방하여 발전했다. 하지만 앞으로의 조직은, 특히 기업조직은 수평적 구조에다 자율과 책임이 중심이 될 것이라고 드러커는 『경영의 실체』(1954)에서 최초로 지적했다. 그는 또한 『내일의 이정표』(1959)에서 지식수준이 낮은 육체노동자를 주요 생산요소로 사용한 과거의 경영시스템은 스스로 그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생산수단인 지식을 가진 지식근로자에게 길을 내주고 있다고 처음으로 분석했다. 이어 『단절의 시대』(1969)에서는 지식이 주요 생산요소를 넘어 유일한 생산요소가 되고 있음을 주장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이지 않는 혁명』(1976)과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1993)에서는, 노동과 자본 대신 지식근로자와 지식이 생산요소가 된 사회를 더 이상 자본주의 또는 공산주의라 부를 수 없기 때문에 앞으로 전개되는 사회를 지식사회로 명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경영의 본질이 바뀌게 된 것은 역사적으로 지식이 그 의미를 바꾸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드러커는 증명하고 있다. 역사와 사회에 관한 해박한 르네상스적 지식과 분석력 그리고 자신의 개인적 경험이 이 같은 주장의 바탕이 되었다. 드러커는 오늘날 지식은 더 이상 개인의 인격 도야에 필요한 장식물이 아니라고 갈파했다. 아울러 다른 지식들과 결합하여 또 다른 지식을 창조하는 지식혁명 또는 경영혁명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21세기 지식경영』(1999)에서 밝히고 있다.
기업을 경영한다는 것
“기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전형적인 기업인, 그리고 대부분의 경영학자는 “이익을 추구하는 조직”이라고 대답한다. 이 대답은 틀린 대답일 뿐 아니라 기업조직을 설명하는 말로도 적합하지 않다. 기업조직 그리고 기업행동에 관한 지배적 경제이론, 즉 이익 극대화는 과거 리처드 시어가 초기의 시어즈 백화점 운영 방법을 설명하는 데는 적합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오늘날의 시어즈 또는 다른 어떤 회사가 어떻게 경영하고 있는지는 설명할 수 없다. 그리고 기업이 앞으로 어떻게 경영해야만 하는가에 대해서는 더더욱 설명하지 못한다. 사실 ‘이익 극대화’ 개념은 적합하지 않은 정도를 넘어 오히려 해악을 끼치고 있다. 그 개념은 산업 사회에서 가장 위험한 질병, 즉 이익과 자본에 대한 뿌리 깊은 증오심을 불러일으킨 ‘주범’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회사는 실제로 높은 이익을 올릴 때에만 사회적 공헌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