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론 머스크, 대담한 도전
다케우치 가즈마사 지음 | 비즈니스북스
엘론 머스크, 대담한 도전
다케우치 가즈마사 지음
비즈니스북스 / 2014년 4월 / 256쪽 / 14,000원
Chapter 1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온 남자
엘론 머스크는 1971년 남아공의 수도 프리토리아에서 태어났다. 유복한 집안의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책을 아주 좋아했다. 특히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빠져들었는데, 초등학교 시절에도 하루에 10시간 이상 책을 읽었다. 그는 새로운 사실을 알거나 지식을 흡수하기 위해 책을 읽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엔지니어인 아버지에게 수시로 질문했고 그때마다 새로운 지식을 마음껏 흡수할 수 있었다. 10살 때 머스크는 자신이 모은 용돈에 아버지가 보태준 돈으로 첫 컴퓨터를 구매했다. 그리고 프로그램 안내서가 너덜너덜해지도록 연구하면서 독학으로 마스터했다. 엘론 머스크의 신화는 그때부터 싹트고 있었다. 머스크는 12살 때 게임소프트웨어를 개발해서 500달러에 게임업체에 팔았다. 컴퓨터에 대한 열의는 이후 그가 인터넷 업계에서 큰 성공을 거두는 바탕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그는 어머니와 동생들과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17살 때 머스크는 외가가 있는 캐나다로 건너가 퀸스 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스스로 학비를 벌면서 공부했고 미국 와튼스쿨 학부 과정에 장학생으로 편입했다. 그곳에서 머스크는 자신의 전공인 경영학 이상으로 물리학에 열중했다. 이때 터득한 체계적인 물리학적 사고는 이후 그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버팀목이 되었다. 그리고 머스크의 인생 목표가 될 <인터넷과 우주 그리고 태양광 발전을 통한 청정에너지>라는 주제가 구체화되기 시작하였다. 그는 스탠퍼드 대학교 박사 과정에 입학한 지 이틀 만에 그만두고 인터넷 지도 소프트웨어 회사 Zip2를 창업했다. 그의 나이 24살에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머스크의 소프트웨어 사업은 호평을 받았고, 그는 창업 4년 만에 Zip2를 대기업 컴팩에 팔아넘겼다. 이 과정에서 22백만 불을 손에 넣은 머스크는 이어서 인터넷 전자상거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엑스닷컴(X.com)을 창업했고, 2000년 경쟁사인 컨피니티(Confinity)와의 합병을 통해 페이팔(Paypal)을 만들었다. 전자상거래 붐을 타고 페이팔은 성장을 거듭했고 이베이가 페이팔을 인수하면서 머스크는 1억 7천만 불이라는 거금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이 돈을 바탕으로 머스크는 2002년 항공우주회사 스페이스X를 설립했다. 그는 로켓 개발을 통해 인간을 화성으로 이주시키겠다는 목표를 갖고 사업을 시작했다. 스페이스X는 벤처기업이 로켓을 만든다는 부정적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첫 번째 로켓인 팰컨 1호 개발에 착수했다. 또한 머스크는 전기자동차 사업에도 눈을 돌렸다. 대학 시절부터 갈수록 늘어나는 온실가스와 지구 환경의 미래에 대해 고민해왔던 머스크는 더 이상의 환경파괴를 막기 위해서는 가솔린자동차를 전기자동차로 바꾸어야 한다고 확신했다. 그는 2004년 캘리포니아에 있는 전기자동차 회사 테슬라에 자금을 투자하고 이사회 의장이 되었다. 그는 일반 소비자층을 대상으로 하는 전기자동차 개발 대신 모두가 꿈꾸는 고급 스포츠카부터 먼저 만들기로 했다. 그는 영국의 로터스 자동차와 공동개발 계약을 체결하고 ‘로드스터’라고 이름 붙인 스포츠카 개발을 시작했다.
Chapter 2 인생 최악의 시련
2005년 11월 스페이스X는 첫 번째 로켓 팰컨 1호의 발사를 예정하고 있었다. 회사를 설립한 지 3년 만에 로켓을 발사한다고 하니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다. 로켓 전문가들은 코웃음을 치며 비웃었다. 우주 로켓에는 수십 년에 걸친 개발 기간과 천문학적 개발 비용이 든다는 것이 그들의 상식이기 때문이다. 결국 기술적인 문제로 팰컨 1호의 발사는 연기되었다. 이렇게 되자 NASA와 스페이스X 사이에 체결되었던 우주 상업 수송 계약에 대해서도 비판이 쏟아졌다. 스페이스X는 국제우주정거장에 필요한 물자를 공급하는 조건으로 약 3억 달러의 계약을 NASA와 체결하고 NASA에서 이에 필요한 기술과 자금을 지원받고 있었는데, 팰컨 1호의 발사가 계속 연기되자 우주 개발 전문가들이 기다렸다는 듯 언론에 비판을 쏟아낸 것이다. 거대한 국가 산업처럼 성장해온 미국의 우주 로켓 개발에는 엄청난 이권을 지키려는 터줏대감(산업계와 정부기관, 학계의 카르텔)들이 존재한다.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이해관계자들은 누군가가 새로 자신들의 영역에 끼어드는 것을 싫어했다. 2006년 3월 오랜 준비와 기다림 끝에 팰컨 1호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하지만 발사된 지 41초 만에 거액의 개발비를 들여 만든 로켓은 남태평양으로 추락했다. 로켓의 연료 누수가 원인이었다.
스페이스X가 실패를 거듭하는 중에도 테슬라는 계속 전기자동차 개발을 진행했다. 2006년 7월에는 태양광 발전 기업인 솔라시티가 설립되었다. 머스크가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돈을 투자하여 설립한 회사였다. 기존의 에너지 효율성을 뛰어넘는 지속 가능하고 영구적인 태양열 에너지를 사용하겠다는 꿈을 실천에 옮긴 것이다. 한편 테슬라가 당초 2년으로 세웠던 개발 기간이 순식간에 지나버렸지만 아직 로드스터는 달리지 못하고 있었다. 예약 판매를 시작하자 할리우드 스타는 물론 각계의 유명인들이 예약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화제를 모았으나 제품 개발은 제대로 진척되지 못하고 있었다. 소량 생산을 하다 보니 대량 생산의 이점을 누릴 수 없었고 제조 현장의 채산성은 악화됐다. 로드스터를 제때 출시하지 못하면 자금 흐름이 막힐 게 뻔했다. 그러면 회사는 순식간에 혼란에 빠질 것이다.
2007년 3월 팰컨 1호의 두 번째 발사가 있었다. 로켓은 약 7분 후 제2엔진이 일찍 정지하는 바람에 예정된 궤도에 도달하지 못했다. 머스크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번 결과에 결코 실망하지 않는다. 도리어 우리가 이뤄낸 성과에 행복할 따름이다.”라고 말했다. 실패의 순간에도 머스크는 팰컨 1호의 10배 이상에 이르는 궤도 투입력에다 총 이륙 추진력이 15배가 넘는 대형 로켓 팰컨 9호의 설계 개발을 병행하고 있었다. 또한 팰컨 9호에 스페이스X가 독자 개발한 우주선 드래곤을 탑재할 계획을 세웠다. 경영자로서 그가 갖춘 뛰어난 점 하나는 눈앞의 문제에 전력을 기울이는 동시에 미래를 향해 에너지를 적절히 배분할 줄 아는 능력이다.
머스크는 테슬라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조직을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하지만 로드스터는 예정일인 2007년 가을에 출시되지 못했고 2008년 2월이 되어서야 첫 차량으로 간신히 한 대만 나왔다. 사람들 사이에는 테슬라가 위험하다는 억측이 쏟아졌다. 당시 미국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발생하여 불황은 손쓸 수 없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었다. 테슬라는 로드스터를 제때 출하하지 못하면서 곤경에 빠졌고, 스페이스X의 로켓 발사는 실패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머스크는 아내와의 관계가 악화되어 이혼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도전을 계속했다. 머스크에게 행운의 여신이 감동이라도 받은 것일까. 스페이스X의 기술자들은 험난한 여정을 거치면서 산적한 난제들을 하나씩 해결해나갔다. 그리고 2008년 9월 마침내 팰컨 1호의 실험 발사에 성공하였다. 우주 사업을 하겠다고 결심한 지 6년 만에 이뤄낸 쾌거였다. 머스크는 커다란 감격과 흥분을 담아 “오늘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라고 말했다. 그때까지 쓴 개발비와 실험비, 세 번의 발사 실패를 더하면 사용한 자금만 1억 달러에 달했다. 어느덧 머스크는 자신의 인생에서 최악의 해로 기억될 2008년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었다. 다음 해 4월 오랫동안 가슴을 졸이게 한 로드스터도 마침내 320대를 출하해 테슬라도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하게 되었다. Chapter 3 그래도 미래로 나아간다
테슬라의 직원들이 악전고투 끝에 완성한 로드스터는 2인승 오픈카로 유선형 디자인과 낮은 차체 포지션이 인상적인 최고급 스포츠카다. 로드스터는 10만 9천 불이라는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명사들이 줄지어 구입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언론은 들끓었다. 로드스터는 가솔린자동차에 필적하는 고성능 스펙을 실현했고 항공기용 알루미늄 합금을 사용하였다. ‘테슬라’라는 브랜드 명칭은 세계 최초로 실용적인 교류 모터를 발명한 19세기 오스트리아의 발명가 니콜라 테슬라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로드스터는 리튬이온 셀을 6,831개나 탑재한 배터리팩과 파워트레인을 갖고 있어 차량 무게는 1,235킬로그램으로 다소 무거운 편이지만 최고 시속이 201킬로미터에 이르며 가속 성능 3.7초라는 경이적인 성능을 자랑한다. 또한 한 번 충전으로 운행 가능한 주행거리가 394킬로미터나 된다. 그러자 신형 포르쉐 911 카레라S와 로드스터 중 어느 쪽이 더 빠른지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고, 자동차 미디어 <스피드>가 두 자동차의 꿈의 대결을 성사시켜 그 상황을 인터넷으로 중계했다. 결과는 로드스터의 완승이었다.
로드스터의 배터리는 노트북 PC 등에 사용하는 리튬이온 전지를 연결한 것이다. 자동차 전용 배터리를 개발하지 않고 범용 배터리를 채택한 테슬라의 설계는 자동차 업계에서 이단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머스크는 가격이 저렴하고 품질도 안정적인 리튬이온 전지만으로도 충분하다는 확신 아래 과감하게 도전하였다. 그 결과 테슬라는 저가의 배터리팩을 대량으로 집적해 강력하고 안정된 하나의 배터리팩으로 완성시키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하였다. 로드스터를 타본 사람들은 발진이나 저속 상태에서 속도를 높이는 시간, 조용한 엔진 소리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단속 기어에서 엑셀을 밟는 순간 활처럼 가속이 붙는 스타트 대시는 마치 제트코스터를 탄 느낌을 준다. 450킬로그램에 달하는 배터리는 운전석 뒷부분 차체의 가장 낮은 부분에 설치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중심이 뒷부분에 있는 차는 고속으로 커브를 돌 때 원심력으로 인해 뒷부분이 바깥쪽으로 흔들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로드스터는 차체가 휘청거리는 일이 거의 없다. 레이싱카를 만드는 데 뛰어난 로터스의 기술 노하우를 최대한 살려 주행 안정성을 실현했기 때문이다.
로드스터의 성공을 계기로 마침내 전기자동차 사업에 순풍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2009년 테슬라는 독일 다임러 사에서 50억 불의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자금난을 겪던 테슬라 입장에서는 가뭄 속의 단비였다. 머스크는 미국 정부의 지원도 받았다. 미국 에너지국이 테슬라에 저금리 융자 4억 6,500만 불을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이후 테슬라는 도요타 자동차와 파나소닉에서 투자를 유치하면서 위기에서 본격적으로 벗어났다. 그중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미국 정부의 지원 자금이었다. 거액의 돈도 돈이지만 정부의 보증이 있었다는 사실이 강력한 배경으로 작용해 시장의 기대감을 큰 폭으로 높여주었기 때문이다.
Chapter 4 우주로 가는 길
오바마 대통령은 2010년 ‘별자리 우주 계획’의 중단을 결정했다. 앞으로는 유인 우주 비행을 NASA가 아닌 민간 기업에 맡기겠다는 계획이다. 엘론 머스크는 스페이스X를 창업하고 1억 달러에 달하는 개인 자본을 투자했다. 기존 우주 산업에 비해 저렴한 비용으로 로켓을 개발한다고 하더라도 이 산업에는 기본적으로 많은 자본이 필요하다. 따라서 오바마의 이 같은 결정은 머스크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이미 NASA는 2006년 상업용 궤도 운송 서비스 프로젝트를 발표했고 이 계획에 따라 스페이스X는 NASA와 총 2억 7,800만 불에 달하는 초대형 계약을 체결하였다. 또한 2008년에는 우주정거장으로 물자를 보급하는 사업인 ‘상업용 재보급 서비스’ 계약을 NASA와 체결했다. 12번 발사하는 조건으로 16억 불에 달하는 대형 계약이었다. 2012년에는 NASA로부터 우주정거장에 인원을 수송하는 계획을 수주하는 데 성공했다. 연이은 성공적인 계약에 힘입어 스페이스X의 기술자와 직원은 급속도로 늘었다. 2005년 160명이던 직원 수는 2013년 3,000명을 돌파하기에 이르렀다.
팰컨 1호 발사 당시 스페이스X는 발사 비용이 670만 달러라고 발표했다. 기존의 로켓 발사 비용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저렴한 금액에 세계가 깜짝 놀랐다. 특히 가격을 공개한 사실 자체가 파격적인 행보였다. 스페이스X가 불가능해 보이던 프로젝트를 가능한 일로 바꿀 수 있었던 것은 막대한 자본투입과 더불어 우수한 인재들의 참여 덕분이다. 오늘날 미국의 뛰어난 인재들 사이에는 실리콘 밸리의 인터넷 업계에 도전해야 크게 성공할 수 있다는 암묵적인 믿음이 유행하고 있다. 이에 대해 머스크는 말한다. “인터넷 업계에는 이미 우수한 사람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다. 능력 있는 인재들이 우수한 재능을 활용할 수 있는 분야는 인터넷 외에도 많이 있다.” 그는 자신이 그렇듯 젊은 세대에게 인터넷 이외의 분야로 도전 영역을 넓히라고 강력하게 권했다.
2010년 6월 4일 드디어 팰컨 9호의 시험 발사가 이루어졌다. 팰컨 9호에는 우주선 드래곤의 모형 캡슐이 실려 있었다. 시험 발사에 성공하고 6개월이 지난 뒤 상업용 궤도 운송 서비스를 위한 두 번째 시험 발사가 진행되었다. 이번에는 진짜 우주선 드래곤이 탑재되었다. 팰컨 9호는 발사에 성공했고 우주선 드래곤은 궤도에 진입했다. 이것은 민간 우주선이 처음 세운 금자탑이었다. 시험 비행에는 아무도 탑승하지 않았지만 사실 우주선 내에는 7명이 탑승할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머스크와 스페이스X의 궁극적인 목적은 유인 우주 비행이기 때문이다. 우주선 드래곤에는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사용할 실험도구 등과 500킬로그램의 화물이 실려 있었다. 드래곤은 지구 주위를 2시간 정도 돌고 나서 성공적으로 지구로 돌아왔다. 팰컨 9호 발사 성공과 우주선 드래곤의 무사귀환이라는 ‘민간 기업 사상 첫 쾌거’ 뉴스는 곧바로 전 세계에 퍼져나갔다. 머스크가 무모한 실패자에서 일약 새로운 우주 개발의 역사를 만들어낸 주인공으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머스크의 업적은 지금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로켓 개발 과정의 이면을 밝은 곳으로 드러내는 데에도 성공했다. 로켓 개발이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 프로젝트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로켓 제조사나 NASA, 국방부는 비용 감각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보잉을 비롯한 우주 로켓 업체가 미국 정부와 계약을 맺을 때는 실비정산법으로 지불 방식이 결정된다. 개발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을 정부가 확실히 지불해주기 때문에 업체 입장에서는 달콤한 비즈니스이다. 이러한 방법에는 비용을 삭감했을 때의 인센티브가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 이러한 관행에 대해 머스크는 다음과 같이 꼬집었다. “당신이 보잉의 간부회의에서 관련 로켓의 획기적인 비용삭감법을 개발하여 제안했다고 하자. 그러면 당신은 틀림없이 해고될 것이다.” 이 외에도 국방부는 장기계약을 선호해 1개 회사 독점 체제를 밀어주었고 로켓 기업은 가능한 모든 것을 하청업체에 아웃소싱하고 있었다. 제조비용이 올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머스크는 이와 같은 관료주의적 폐해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로켓 개발에서 획기적으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주었다.
Chapter 5 불가능을 꿈꾸는 기술
로드스터에 이어 테슬라는 100% 자체 개발한 모델 S를 2012년 북미 시장에 내놓았다. 모델 S의 주행 능력을 높이기 위해 테슬라 연구팀은 기본 설계 콘셉트를 차체 경량화와 공력 성능 향상에 두었다. 모델 S는 차체 디자인에도 세세한 부분까지 심혈을 기울였다. 차체는 경량 알루미늄을 사용해 무게를 최소화했고, 새롭게 개발한 파워트레인을 배치했다. 사실 머스크가 전기자동차 생산에 뛰어들기 전에도 전기자동차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놓은 사람들은 많았다. 1886년 독일에서 가솔린 엔진 자동차를 개발하기 전에 이미 전기자동차는 발명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후 자동차 시장의 왕좌에 오른 것은 가솔린자동차이고 아직 그 위치는 변하지 않고 있다. 이 현상을 두고 머스크는 이렇게 말한다.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것은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것보다 백배, 천배 어렵다.” 만약 머스크가 현실로 구현하기 어렵다고 아이디어의 사업화를 단념했다면 지금의 테슬라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