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제로 플러스

박상복 지음 | 글로세움
제로 플러스

박상복 지음

글로세움 / 2013년 12월 / 304쪽 / 13,800원





모든 것은 화장실에서 시작됐다: 세원그룹 김문기 회장



국내의 세원정공, 세원물산, 세원테크, 세원이엔아이 등과 미국의 세원아메리카, 중국의 삼화세원이 세원그룹 가족이다. 1985년 창사 이래 단 한 번도 노사분규가 없었고, 매출은 1조가 넘는다. 김문기 회장은 “화장실에서 유레카를 외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는 화장실 경영론과 스스로 일할 수 있는 책임과 권한을 부여하여 자발적인 리더십을 강조하는 한국형 리더다.

화장실이 깨끗하면 회사가 바로 선다

세원정공 본사를 방문한 건 2012년 연말이었다. 그때 건물을 리모델링하고 있었고, 아직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길을 확 잡아끄는 곳이 바로 화장실이었다. 화장실은 정말 어느 호텔보다도 멋지고 럭셔리하게 인테리어되어 있었다. 조명도 밝았고, 아주 큰 대형거울이 설치되어 있어 마치 패션몰처럼 전신을 다 볼 수 있었는데, 이것은 창업주 김문기 회장의 ‘화장실 경영학’이라 이름할 만한 경영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의 독특한 화장실론에 의하면 화장실은 그냥 볼일만 보는 곳이 아니다. 화장실은 휴식과 재충전이 이루어지는 곳이자 마음을 수양하는 장소이기도 하며,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공받는 공간이다.

화장실 경영학의 기본개념은 이렇다. 사람은 더러우면 더 더럽힌다. 그러나 주변이 깨끗하면 그것을 더 잘 유지하려고 애쓴다는 것이다. 중국 삼화세원에서의 일이다. 초기 중국 직원들은 담배를 많이 피웠다. 특히 화장실에서 담배를 많이 피워 변기에 꽁초를 집어넣거나 아무 곳에나 예사로 침을 뱉었다. 하지만 화장실을 호텔방처럼 깨끗하게 만들어놓자 침을 뱉기는커녕 담배를 피우라고 재떨이를 마련해놓아도 아예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유명한 경영이론 중에 ‘깨진 유리창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사소한 문제를 계속 방치하면 큰 문제로 이어진다는 법칙이다. 김 회장의 화장실 경영학도 바로 이 ‘깨진 유리창 법칙’과 일맥상통한다. 깨진 유리창 하나가 점점 커져 건물 전체를 흉물스럽게 만들 수 있듯이, 화장실에 방치한 작은 꽁초 하나가 회사 전체의 청결을 해칠 뿐만 아니라, 나태한 마음으로 이어져 제품의 품질이나 재고관리의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막기 위해 수많은 회사들이 많은 비용을 들여 직원들을 교육시키지만 이렇다 할 효과를 보지 못한다. 하지만 세원그룹은 항상 깨끗하고 청결한 화장실을 유지하는 것만으로 직원들의 마음을 다잡고 회사의 정신을 바로 세워가고 있다.

아무리 좋은 것도 시키면 싫어진다

1989년 성서에 세원정공 본사를 지으면서 김 회장은 현장 직원들을 위해 당시 대기업도 시도하지 않던 나무로 된 멋진 개인 사물함을 설치했다. 6개월 후 현장 사무실에 들른 그는 사물함을 살펴보곤 깜짝 놀랐다. 직원들이 사물함을 발로 차거나 물건을 던지는 등 함부로 사용하여 여기저기 부서지고 흠집이 나 있었다. 그는 순간 무척 화가 났지만 꾹 참고 다시 깨끗하게 수리해주었다. 아무리 난폭한 사람들이라도 처음처럼 말끔해진 개인 사물함을 또 엉망으로 만들지는 않을 것이란 기대에서였다. 하지만 6개월 후, 그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전과 다름없이 사물함은 발에 채여 문짝이 달아나고 여기저기가 푹푹 찌그러져 있었다.

조회 시간에 훈계도 하고 지시도 내렸지만, 직원들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직원들이 왜 이렇게 함부로 물건을 다룰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고심 끝에 전 직원에게 가족이나 애인사진을 가져오게 했고, 그 사진들을 예쁜 액자에 넣어 각자의 사물함에 붙이게 했다. 그 후 놀랍게도 사물함은 더 이상 부서지지 않았다. 그는 이 일로 사람에 대해 크게 깨우친 바가 있었다. 아무리 의도가 좋고 백번 옳은 말이라 하더라도 ‘훈계와 명령’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자동화가 이루어지고 기계가 사람의 자리를 대신한다 해도 결국 모든 일은 사람이 한다. 생산성을 10~20퍼센트 올리는 것은 기계의 성능이 아니라 일에 임하는 사람의 마음에 달렸다. 강제성을 띠고 일하게 하면 정량만큼 일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일에 보람을 느끼며 스스로 일하게 하면 품질이 좋아지고, 원래 계획한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어서 생산성도 높아진다. 그래서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공장장들을 만나 직원들의 소소한 부분 하나하나에도 신경 써줄 것을 당부한다.

모두가 원하는 일에 뛰어들지 마라

김 회장은 종종 대학교에서 특강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그때마다 빠지지 않고 하는 말이 있다. “당신이 정말 부지런하고 똑똑하다면 그리고 꿈이 있다면 10대 대기업에는 가지 마라.” 학생들은 이런 말을 들으면 당황한다. 실정을 모르는 소리라고 얼굴을 붉히기까지 한다. 그러나 조금 더 들어보면 그의 진의를 파악할 수 있다. “임원이 부하직원의 이름도 모르는데 어떻게 제대로 평가하고 제대로 보상할 수 있겠는가. 대기업은 조직의 규모가 크고, 상사는 직속부하에게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한다. 또한 아랫사람의 아이디어를 빼앗고 불이익을 주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며, 싹수 있는 직원의 꿈을 짓밟기도 한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그렇지 않다. 사장이 다 알기 때문이다. 이런 조직은 직원을 알아주고 인정한다. 이런 조직에서 일에 집중하며 회사를 성장시키면 회사와 함께 나도 성장한다. 이것이 바로 또 다른 의미의 창업이다.”

김 회장은 모두가 원하는 일에는 가급적 뛰어들지 말라고 권한다. 왜냐하면 그곳은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고 능력이 뛰어난 인재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아울러 현재 가장 선망 받는 직업이 10년 후에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많은 사람이 뛰어드는 탓에 레드 오션으로 전락할 수 있다. 바로 대기업이 그렇다. 대기업은 신입사원을 100명 뽑으면 매 단계마다 절반씩 탈락시키는 구조다. 그래서 중소기업보다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더라도 오래 다닐 수는 없다. 그러므로 정말 큰 꿈을 꾸고 있다면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해볼 수 있는 중소기업에서 그 꿈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



벼랑 끝에서 성공을 꿈꾸다: (주)월드솔루션 강성진 사장



젊은 시절, 배고픔을 면해볼까 하여 권투를 배웠고, 밴드생활을 전전하다가 대마초에 손을 대 감방 신세를 졌던 강성진 사장. 내세울 만한 스펙 하나 없는 그가 서러워서 성공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죽을 만큼 열심히 일하여 오늘의 월드솔루션을 만들었다. 지금 그는 포장박스 패드폴을 비롯해 대형 플라스틱 사출, 주유소, 레스토랑 경영을 통해 300여 명의 직원이 연 매출 800억 원을 올리는 기업의 CEO이다. 직원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한다는 그의 성공 노하우는 바로 첫째도 신뢰, 둘째도 신뢰이다.

강성진 사장의 경쟁력 - 최후의 보루는 신뢰다

강성진 사장은 사업을 하면서 가장 지키고 싶은 것을 꼽으라고 하면 단연 ‘신뢰’라고 한다. 흔히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 확인하는 것은 그간의 거래 실적과 담보뿐인데, 그것은 ‘신용’를 택한다. 하지만 세상이 오직 ‘신용’으로만 돌아간다면 지금의 그는 없었을 것이다. 신용사회라는 틀 속에서 가끔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자산이 힘을 발휘할 때도 있는데, 강 사장의 성실함과 신뢰가 바로 그것이다. 그는 감옥에서 출소하고 가까스로 취직한 첫 직장에서부터 성실히 일하며 ‘신뢰’를 쌓았고, 몇 년 후에는 사장의 오른팔이 될 정도로 신임을 얻었다. 회사를 처음 만들 때 2천만 원이란 거금을 빌릴 수 있었던 것도 그동안 끈끈하게 쌓아올린 신뢰 때문이다.

그는 지금도 단 한 명의 영업사원을 통해서만 차를 구입한다. 그 영업사원은 과거 자신의 거래처 구매담당자다. 그를 통해 많은 일을 배웠기에 그가 회사를 그만두고 영업을 시작할 때 흔쾌히 첫 손님이 되어주었다. 또 사업을 하다 부도로 감옥에 가는 주변 사람들을 일일이 챙긴다. 잘나갈 때, 성공하여 정상에 있을 때는 누구나 친구 같고 의리 있는 것 같지만, 바닥으로 떨어지면 아무도 찾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맨몸으로 시작해 신뢰를 자산으로 일어선 그는 한 사람이 바닥으로 떨어질 때, 그때가 바로 그들의 손을 잡아줘야 할 때임을 아는 것이다.

월드솔루션에는 노조가 없다. 직원과 동업자라고 선언한 이상 그들에게 신뢰를 쌓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그래서 약속한 사항에 대해서는 어김없이 지켰다. 3년 회사를 다니면 가족 동반 해외여행을 보낸다. 대기업은 10년 정도 다녀야 근속여행을 보내주지만, 월드솔루션은 3년을 같이 일하면 가족과 함께 해외 여행지에서 먹고 마시는 비용까지 회사가 댄다. 그 비용이 직원들의 사기를 높이고 불량을 줄이며 거래처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게 한다. 결국 그것은 회사의 매출 상승으로 돌아온다. 강 사장이 지닌 최후의 보루는 바로 ‘신뢰’다.



판이 불리하면 뒤집어 성공하라: (주)호원 양진석 사장



현재 매출 3천억 원을 자랑하는 광주의 대표적 향토기업 호원은 1986년 필터전문 회사로 출발하여 현재 광주와 경기도 평택 그리고 터키 코자엘리 주 이즈밋 산업공단에 공장을 둔 자동차용 차체 전문 기업이다. 양진석 사장의 현재 목표는 하나다. 대표로서 자신이 가진 경제적인 조건을 직원들 모두가 똑같이 누리게끔 만들어주고 싶다는 것이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그는 뜨거운 열정을 가슴에 품고 투사처럼 일한다.

작은 기업에서 큰 꿈을 꾸다

양 사장은 여수상고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래서 부산으로 가 삼수까지 했는데도 대학에 못 가고 군대에 가게 되었다. 그는 제대하기 전까지 평범하다 못해 자신의 삶을 포기한 듯이 시간을 보냈다. 꿈이 없었다. 그런데 군대를 제대하고 나니 상황이 절박했다. 그는 자신의 사업을 해보리라 마음먹었다. 그래서 딱 2년만 장사를 배우겠다며 부산으로 향했다. 그때 취직한 곳이 공업용 필터를 판매하는 열 명 남짓의 작은 회사 ‘호원필터’였다. 취급 품목은 자동차 도장 공조 에어클리너, 정수 필터 등이었다. 영업을 배우려 취직했지만 상고 출신이다 보니 회계나 경리 같은 업무를 맡게 되었다. 하지만 워낙 작은 회사라 부서 간의 경계나 업무 분담이 명확하지 않아 경리 일을 보면서 영업도 하게 되었다.

꿈의 땅 광주에서 꿈을 펼치다

호원필터에 입사한 지 2년 후 그는 자신과의 약속대로 창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호원필터 사장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전라도 광주와 여천 지역에 공업용 필터 대리점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창업 지역으로 광주를 택했다. 지금껏 직장생활을 하며 모은 돈과 부모님께 받은 500만 원 남짓한 돈을 들고 광주로 향했다. 가진 거라곤 옷 가방 하나, 성공하고 싶다는 열정 그리고 자신감밖에 없었다. 1987년, 광주터미널 근처에 13평의 사무실을 사글세로 얻고 옆 공간에는 침실을 만들었다. 그는 먼저 전화번호부를 들고 광주의 필터 회사를 조사했다. 겹치지 않는 이름으로 회사명을 짓고 광주권에서 최고의 회사가 되리라 다짐했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당시 그는 전화번호부에서 ‘초원정수산업’이라는 회사를 보고 기존에 다녔던 회사의 이름을 따서 ‘호원정수산업’이라고 지었다. 그런데 ‘초원정수산업’의 로고 글씨체가 흘림체로 가독성이 떨어지다 보니 기존의 초원정수 거래처들이 상호가 비슷한 ‘호원정수산업’에 잘못 전화하는 일이 생겼다. 이런 일이 잦다 보니 초원 측 직원들이 그에게 찾아와 항의하며 텃세를 부리는 등 이런저런 소동도 있었다. 한편 그의 영업철학은 딱 하나다. “내 마음에 들면, 당신 마음에도 꼭 들 것이다.” 그는 이 원칙을 바탕으로 자신이 물건을 사용하는 소비자라면 어떨지 생각하여 품질(Quality), 가격(Cost), 납기(Delivery)를 결정했다. OB맥주 공장 정수 필터, 여천공단의 공장들, 광주에 있는 전자회사들을 거래처로 둘 수 있었던 그만의 비결은 바로 고객이 오케이할 때까지 QCD를 개발하고 연구하는 것이었다.

적극적인 열정과 합리적인 생각

그는 호원필터를 통해 전라도권에선 나름 인지도가 있는 기업가로 성장하여 20대 초반에 자신의 꿈을 실현했다. 하지만 국가나 지역사회에 의미 있는 기업가가 되기에는 부족한 느낌이었다. 그는 다시 한 번 자신이 원하는 어떤 일에 미치고 싶었다. 그러던 중 1997년 IMF가 대한민국을 강타하면서 국가 전체에 경제 위기가 닥쳐왔다. 광주도 예외는 아니었다. 주요 거래처였던 기아자동차가 부도를 맞고 말았다. 엄청난 위기 속에서 우연히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IMF로 인해 기아자동차뿐만 아니라 부품사 중 대부분이 부도가 나면서 많은 물건들이 경매로 나온 것이다.

당시 그의 수중에는 10년 동안 일하며 모은 10억 원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이 사는 아파트 단지 호프집에서 은퇴한 거래 은행 지점장과 맥주를 마시다 우연히 기아자동차 구매담당 직원을 만났다. 그로부터 부품사 동향을 들을 수 있었다. 이때 양 사장은 자신에게 또 다른 기회가 다가왔음을 직감했다. 그래서 그는 그 구매담당 직원에게 부품사를 운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고, 다음 날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구매실로 찾아갔다. 구매담당자와 부도난 공장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였는데, 그는 거기서 처음으로 800톤 프레스를 보았다. 프레스의 웅장한 소리와 크기에 매료된 그의 내면에서 강한 승부욕이 꿈틀거렸다. 당시 경매 물건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던 터라 4번이나 유찰이 되었고,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5차 경매에서 자신의 꿈을 담아 프레스와 용접 공장을 인수했다.

하지만 인수의 기쁨은 짧았다. 아무래도 부도가 난 공장이다 보니 인수직원과 기존 호원직원들이 뒤섞인 채 기아 광주공장에 물건을 만들어 공급했는데, 이는 흡사 공장이 아니라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게다가 공장을 인수하고 난 3일 후에 현대자동차가 기아자동차를 인수했다. 그 때문에 양 사장은 기존 거래처가 달라질까 불안에 떨며 마음을 졸여야 했다. 13평 사무실에서 침낭만 놓고 먹고 자던 때를 기억하면서 열심히 일했건만, 한 달이 지난 후 적자만 5천만 원이었다. 인수 후 두 달이 지나자 월 적자는 8천, 그리고 다음 달에는 1억이 되었다. 지금껏 광주에서 필터 사업으로 번 돈을 아무리 용접 공장에 투자해도 적자 폭은 줄지 않았다. 하지만 물량은 넘쳐났다. 주변의 대다수 경쟁사가 부도난 상태라 제조하고 싶은 부품은 언제든지 만들어낼 수 있었다.

양 사장은 먼저 기아 광주공장에 무슨 일이 있어도 결품만은 내지 않도록 관리했다. 직원들과 밤새워 일하고 사무실 옆에서 쪼그리고 자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렇게 하다 보니 처음에는 결품만 내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한 회사가 조금씩 고객사의 믿음을 얻기 시작했고, 그 믿음을 통해 다른 부도회사의 부품도 호원에서 공급하게 되었다. 발판이 마련된 셈이었지만 다품종 소량생산 구조이다 보니 재고 비용이 높을 수밖에 없었고 회사 물류에 심각한 문제가 많았다.

그는 기존 공장을 살리기 위해 은행에서 자금을 대출하여 공장을 하나 더 인수했다. 지금의 하남공장이다. 이후 하남공장은 프레스 전문 공장으로 운영했다. 그러자 물류 흐름이나 재고관리가 적잖이 개선되었다. 이제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이익이 남지 않는 회사가 아니라, 이익을 통해 성장하는 회사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그 배경에는 ‘판이 불리하면 뒤집어라.’라는 전략이 있었다. 공장을 인수하고 계속 적자가 생겼지만, 재고 과다 및 물류비 증가, 생산 비효율성을 해결하기 위해 다시 한 번 투자를 감행하여 회사의 성장과 이익을 이끌어냈다. 다시 말하면 불리한 판을 뒤집어 자신에게 유리한 고지로 만든 것이다. 회사의 규모를 더 키워 거래처와의 구매 협상에도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직원들에게는 오너의 지속적인 투자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사기를 진작시켰다.

양 사장은 자신이 만든 부품 하나하나가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에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면, 당시의 힘겨움에 오히려 감사하게 된다고 말한다. 특히 외국에서 만나는 한국 자동차를 보면 애국자가 된 기분이라 저절로 어깨가 펴진다고 한다. 그가 처음 자동차 차체 공장 호원을 만들었을 때 매달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적자를 보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고층건물이나 좋은 차로 대변되는 경제적 이익 때문만이 아니었다. 지역사회와 더 나아가 한국 경제에 이바지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즉, 가치가 생긴 것이다. 그는 이런 자부심으로 우직하게 자신의 성장 방향을 설정했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