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경영정신
김병완 지음 | 머니플러스
이건희 경영정신
김병완 지음
머니플러스 / 2013년 3월 / 272쪽 / 14,000원
제1부 이건희와의 점심식사를 통해 경영을 배우다
제1장 자신을 어떻게 최고로 만들 것인가
자신을 넘기 위해서 / 국내 기업인 최초로 《타임》지에 선정: “만나는 친구가 거의 없습니다. 성격이 내성적이고 남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아요. 외국에서 자란 탓인지 화제도 남들과 잘 맞지 않아요.” - ‘신동아’, 1993년 9월, 458쪽, 이인길, ‘나는 그동안 속아 살았다’ 1993년에 이건희가 어떤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는 원래부터 말이 없고, 내성적이고, 남 앞에 나서기를 싫어하며, 조용히 앉아서 영화를 보거나, 기계를 분해하거나, 사색하는 것 등을 좋아한다.
자, 이제 이건희에게 질문을 던져보겠다. 그와 함께 점심식사를 하게 된다면, 아마도 이런 질문을 가장 먼저 했을 것이다. “회장님께서는 매우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시며, 말씀하시는 것을 싫어하고, 아주 말씀이 없으신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신경영 선언’ 당시에는 모든 임직원 앞에서 수천 시간이 넘는 토론을 직접 이끄셨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는 그런 경영자의 삶을 성공적으로 살아가실 수 있었는지가 매우 궁금합니다. 심지어 20대 중반까지는 경영에 거의 관심이나 소질이 없어서, 이병철 회장님께서도 삼성의 후계자로 전혀 고려하지 않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자신을 넘어서실 수가 있으셨는지요? 저는 그 점이 가장 궁금합니다.”
이건희는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며,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는 외톨이었고, 내성적인 아이였으며, 남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그러한 성격이 완전하게 바뀐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 자신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저만의 방법으로 지독하게 노력을 해 왔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회장님만의 방법이라고요?” “예, 저는 두 가지 사실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첫 번째는 위기의식입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20대 때와 30대 때, 저는 이러한 의식을 누구보다 더 강렬하게 했습니다. 잠시라도 안주할 수 없었고, 잠시라도 멈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보다 더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공부는 기본이었고,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어제와 다른 제 자신이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회장이 되자마자, 아니 회장이 되기 십 년 전부터 제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은 삼성도 이대로는 안 된다는 강한 의식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마니아가 되라.’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을 해도 대충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마니아가 될 정도로 그 분야에 완전히 미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마니아가 될 정도로 하니까 사람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느꼈습니다. 일본 유학 시절에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영화를 본 것도 그렇습니다. 그저 심심하니까, 소일거리로 영화를 본 것이 아니라 수십 번을 볼 정도로 영화 마니아가 되었습니다. 저는 무엇을 해도 대충, 적당히 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살아가는 방식이며, 저를 뛰어넘는 원동력이 되어준 두 번째 요소였습니다.”
결국 ‘위기의식’과 이건희 특유의 ‘마니아적 행동 양식’이 결합되어 위대한 ‘신경영 선언’이 실행되었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신을 뛰어넘은 사람들이고, 그들은 모두 무엇인가에 미칠 정도로 몰입하는 경향이 강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항상 안주하거나 나태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쓸데없는 말을 함부로 하지 않고, 눈빛이 살아 있는 완전한 오타쿠들이다. 마치 이건희처럼 말이다. 평범하게 태어난 자기 자신을 비범한 존재로 만들기 위해서는, 가장 먼
저 자신을 뛰어넘기 위해 자신을 완전하게 불태울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필요한 법이다. 무엇인가에 미치고, 그것에 완전하게 몰두할 수 있는 자만이 그렇게 될 수 있다.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 이건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좋은 환경에서 자라지 못했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에 6ㆍ25전쟁으로 인해 피난을 다녀야 했고, 초등학교만 무려 다섯 번이나 옮겨 다녀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의 품을 떠나 일본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그에게 닥친 현실이란 외로움, 고독, 조센징이라는 놀림, 외톨이 등과 같은 것이 전부였다. 그는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러한 현실을 활용했을까? 이에 대해 우리는 이건희 회장에게 질문을 하기로 했다.
“회장님께서는 원래 삼남이셨기 때문에, 그리고 해외에서의 잦은 체류 등으로 인해 제대로 된 경영 수업이나, 심지어 제대로 된 가정교육 등을 받으신 적이 거의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회장님께서는 스스로 훌륭한 경영자로 주어진 불리한 현실을 잘 활용하고, 심지어 극복해 내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실 수 있으셨던 비결은 무엇이었습니까?”
이건희 회장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해주었다. “저는 거의 혼자 자라다시피 해서 가정교육을 1퍼센트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경영 수업이라고 따로 받은 것도 없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논어’를 보라고 해서 본 것 외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메기 이야기, 목계 이야기, 경청을 듣고 본 것이 경영 수업에 포함시켜도 된다면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결국 저는 제게 주어진 현실 속에서 그것과 싸우면서, 그것을 활용하고 극복하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운이 좋게도 현실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대표적인 방법으로 영화 감상과 전자제품 분해 등을 통해 입체적인 사고를 하는 훈련, 사물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훈련 등을 할 수 있었고, 그 결과 남과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의 말처럼 그는 남들과 다르게 생활하고 남들과 다르게 자랐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남들과 다른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을 훈련시킨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본능과 직관에 따라 처음에는 작게, 사소하게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게 사소한 차이, 작은 차이가 결국에는 엄청난 차이의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자! 그렇다면 현실에서 그는 어떻게 살았을까? 그가 인터뷰에서 밝힌 그 당시에 대한 그의 말은 의외였다. “외국에서 친구 없이 혼자서 무척이나 심심했겠다 싶겠지만, 내 나름대로는 꽤 바빴다.” 그는 왜 바빴던 것일까? 영화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같은 인물의 비디오나 영화는 수십 번이나 반복해서 볼 정도였다.
하지만 그저 흥미 위주나 시간을 죽이기 위해 영화를 본 것이 아니었다. 그의 영화 보는 방식은 보통 사람의 방식과는 달라도 전혀 달랐다. 그는 영화를 감상할 때 등장인물들을 돌아가면서 모두 만난다. 그래서 그들의 입장이 되어보고, 그들의 처지에 흠뻑 빠져보고, 그들의 머릿속에 들어가 그 상황들을 관찰하고 느껴본다. 심지어 카메라맨이나 촬영감독, 그리고 감독의 입장에서는 저 상황을 촬영할 때 어땠을까? 하는 의문을 계속해서 던지면서 영화를 감상한다. 그래서 그는 영화 한 편을 봐도 다각적으로 사고하고, 입체적으로 감상한다. 그가 지금 3D 안경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이유도, 3D 영화나 안경이 개발되기 전에 이미 ‘사고의 3D 영화 감상’을 했던 사람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는 입체적 사고의 틀을 서서히 완성시켜 가면서 자신만의 사고력을 향상시켰던 것이다. 그에게 입체적 사고와 본질에 대한 통찰력을 더해준 또 다른 현실 활용법은 전자제품의 분해였다. 그가 물건을 분해하는 취미를 가지게 된 것은 모든 것을 외면의 모양으로만 판단하지 않고, 내면의 모습까지도 꿰뚫어 보고 들여다보는 습관을 길러, 훗날 훌륭한 경영자가 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통찰력은 결국 그로 하여금 이류 기업에 불과했던 삼성을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하도록 이끌어내는 힘이 되어주었다.
그의 통찰력이 빛을 발한 것은 반도체와 휴대폰이었다. 그는 자신의 통찰력을 통해 반도체가 미래의 주종사업이 되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하지만 이병철 회장마저도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그 당시 삼성이라는 작은 구멍가게와 같은 국내 회사가 반도체를 하겠다고 하는 것은 무모해 보였다. 하지만 이건희는 반도체를 과감하게 시작했고, 그 결과 삼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한편 이건희는 1990년대 초, 아무도 휴대폰이 이렇게 대중화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휴대폰 사업의 강화를 지시했다. “반드시 1명당 1대의 무선 단말기를 가지는 시대가 온다. 전화기를 중시하라.” 그의 말은 현실이 되었고, 삼성은 그의 선견지명 덕분에 휴대폰 업계에서 세계 1~2위를 다투는 세계 최고의 휴대폰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게 되었다.
오직 인내 하나로: 황제가 되든, 대기업의 경영자가 되든, 하다못해 연예인이 되어 방송을 하든, 중요한 것은 자신의 능력이나 실력 못지않게 때를 기다리고 때를 얻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이건희를 살펴보면, 그 역시 때를 얻었기 때문에 번창하고 위대한 경영자가 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그가 그러한 때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은 결국 그가 인내할 줄 아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어떻게 인내할 수 있었을까?
그에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기로 했다. “회장님은 사실 따지고 보면 삼성의 후계자로 처음부터 지목받았던 인물도 아니었고, 서열상으로도 삼남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20대와 30대 때 제대로 된 후계자로서의 삶을 보장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밖으로 자꾸 내몰리는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회장님은 그런 시기를 어떻게 인내하며 견디어내실 수가 있었습니까?”
이건희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저는 누구보다 인내의 중요성을 잘 아는 사람입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훌륭한 선배가 있었습니다. 그분은 바로 일본의 전국 시대를 겪었던 영웅 도쿠가와 이에야스입니다. 저는 그분의 비디오테이프와 책을 읽고 또 읽었고, 보고 또 보았습니다. 그분을 통해 저는 인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배웠을 뿐만 아니라 인내하는 방법까지도 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그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1980년대 초, 그가 그룹 부회장으로서 처음 맡은 대규모 사업인 대한석유공사(유공)의 인수가 엄청난 손해와 함께 실패로 돌아갔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삼남의 경영권 승계에 대한 수많은 견제와 루머들은 그를 힘들게 했고, 그가 제대로 삼성을 이끌어 가지 못하도록 하는 온갖 장애물로 작용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차체가 박살 나고 몸이 자동차 밖으로 튕겨나갈 정도의 큰 자동차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연이어 온갖 나쁜 추문들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바로 그때 그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바짝 엎드려서 때를 기다렸다. 마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그렇게 했던 것처럼 말이다. 한편 이건희가 인내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이병철의 가르침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거실에 걸려 있는 ‘목계(나무로 깎아 만든 닭)’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말을 많이 하지 마라. 말을 많이 하면 허점이 저절로 드러난다. 표정을 바깥으로 드러내 보이지 마라. 표정을 드러내면 무게가 없어진다.” 이건희는 선친의 이러한 조언을 마음속에 새겼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는 이러한 삶, 즉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바짝 엎드려서 사는 법을 체득했다.
제2장 기업을 어떻게 최고로 만들 것인가
변화와 혁신의 근간: “변화는 근본적으로 지금보다 더 나아지고자 하는 향상심에서 출발합니다. 변화 속에는 기회와 위기가 항상 같은 크기로 존재하는 만큼, 변화의 흐름을 먼저 읽고 한발 앞서 준비해나가면 오히려 도약의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건희가 1997년 자신이 쓴 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책의 서문에 실린 내용이다. 그의 말대로 변화 속에는 위기도 있고, 그만큼의 기회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의 흐름을 먼저 읽고 한발 앞서 준비하는 사람은 오히려 그 위기 속에서 도약의 계기를 만들 수 있다. 미래는 예측하고 기다리는 자의 것이 아니라 창조하고 혁신하는 자의 것이다. 이건희는 바로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앞날을 내다보고 선점하는 미래 지향적인 경영만이 미래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해왔다.
변화와 혁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경영자가 그저 말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확실한 뭔가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서 이건희는 임직원들에게 변화와 혁신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강력한 조치를 취했다. 그것이 바로 ‘신경영 선언’이다. 1990년대 초반까지 삼성은 정체되어 있었고, 따라서 브랜드 가치 역시 매우 낮았다. 삼성은 특히 국내용 우물 안 기업에 불과했다. 이건희는 변화와 혁신이 삼성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깨달았고, 오랫동안 심사숙고하면서 어떻게 변화와 혁신의 바람을 삼성의 전 조직과 모든 임직원들에게 불어넣을 것인지에 대해 골몰했을 것이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 그가 생각해낸 것이 바로 ‘신경영 선언’이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그가 한 말을 들어보자. 7.4제는 이건희 개혁의 상징적인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7시 내지 7시 30분에 시작해서 그날 모든 일과를 4~5시까지 끝내보라. 말로만 할 게 아니라 실제로 실행에 옮겨라. 그래서 퇴근하기 전 어느 곳에 들러서 운동을 하든지, 친구를 만나든지, 어학 공부를 더 하든지 하고, 6시 30분 전에 집에 들어가라는 것이다.” - 『누가 이건희를 짝사랑하는가』, 33쪽
7.4제의 가장 큰 본질이자 목적은 변화와 혁신을 통해 세계 초일류 기업의 임직원이 되고, 세계 최고의 인재로 자신을 만들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학을 공부해야 하고, 자신의 전공 분야를 공부해야 하고, 다른 많은 책들을 읽어야 한다. 이건희는 임직원들이 자기계발을 더욱더 열심히 할 수 있도록 자기계발 비용을 대주었고, 사내에 ‘21세기 리더 과정’, ‘21세기 CEO 과정’ 등과 같은 다양한 강의를 개설했다. 이때를 기점으로 삼성맨들의 어학 실력은 한 단계 상승하게 되었다.
그가 그렇게 하게 되었던 것은 선대 회장에게서 들은 메기 이야기의 교훈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병철 회장은 이건희에게 자신이 20대 때 농사를 지으며 경험한 것을 말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 논에는 으레 미꾸라지를 키웠는데, 한쪽에는 미꾸라지만 키우고, 다른 한쪽에는 미꾸라지와 함께 메기 한 마리를 넣어서 키우면, 메기가 없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미꾸라지들은 비실비실하게 오그라져 있지만, 메기와 함께 키운 미꾸라지들은 모두 튼튼해져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편안하게 안주하는 삶은 도태될 수밖에 없지만, 끊임없이 이동하고, 움직이는 그런 삶은 체질을 더욱더 강화시키고, 도약하고 성장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이건희는 삼성 임직원들의 변화와 혁신을 위해 자기 자신이 스스로 메기가 되어주었던 것이다. 이건희는 다음과 같은 더 파격적인 말도 했다. “실패는 많이 할수록 좋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아 실패하지 않는 사람보다 무언가 해보려다 실패한 사람이 훨씬 유능하다. 이들이 기업과 나라에 자산이 된다.” -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 21쪽
이건희는 ‘뭐든지 도전하라’고 외쳤고, 임직원들은 큰 메기가 자신 주위를 돌아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움직이고 또 움직여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도전하다가 실패하면 오히려 상을 주겠다는 파격적이고 놀라운 선언에 일을 하는 것이 신이 났을 것이다. 생각해보라. 자신이 목숨 걸고 어떤 일을 여한 없이 해볼 수 있다는 것! 이것만큼 멋진 일이 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초일류 기업의 토대: 우리는 이건희와 점심식사를 하게 되면 반드시 그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어떻게 삼성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키고 도약시킬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이런 질문을 했다면 그는 어떤 대답을 했을까? 그의 말을 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