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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계경영 스토리

김성수 지음 | 지성공간
목계경영 스토리

김성수 지음

지성공간 / 2012년 11월 / 309쪽 / 13,000원





제1부 나부터 변해야 한다 - 목계木鷄경영 스토리




삼성그룹 창업자 호암 이병철은 삼남 이건희를 1978년 삼성물산 부회장으로 승진시키고, 1987년 자신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10년 동안 최고경영자로서의 자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혹독한 경영수업과 훈련을 시켰다. 그가 받은 교육의 덕목은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실천의 경영철학으로 기업을 바로 서도록 하는 사상, 즉 목계교훈(木鷄敎訓)이다.

목계는 중국 춘추전국 시대 《장자》의 달생편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위왕시대에 싸움닭을 기르기로 유명한 기성자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왕이 기성자에게 수탉 한 마리를 주면서 제국에서 가장 싸움을 잘하는 닭으로 훈련시키라고 명했다. “이제 닭이 싸울 만한가?” 열흘이 지나자 왕이 물었다. “아직 멀었습니다. 강하긴 하나 교만하여 아직 자신이 최고인 줄 알고 있습니다.” 열흘이 지나자 왕이 또 질문을 하였다. “아직 멀었습니다. 교만함은 버렸으나 상대방의 소리와 그림자에도 너무 쉽게 반응합니다. 태산처럼 움직이지 않는 진중함이 있어야 최고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열흘이 지나 왕이 물었고 기성자가 대답했다. “아직 멀었습니다. 조급함을 버렸지만 상대방을 쳐다보는 눈초리가 너무 공격적입니다.” 열흘이 지난 후 기성자가 먼저 말했다. “이제 된 것 같습니다. 상대방 닭이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아무 반응을 하지 않습니다. 완전히 마음의 평형을 찾았습니다. 마치 나무로 깎아 만든 닭처럼 되었습니다. 덕이 완전해졌기에 어느 닭이라도 그 모습만 보면 도망갑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세파에 시달리면서도 승패에 집착하지 않고 초연한 것’이 가장 강함을 의미한다.

그럼 이병철 회장은 어떤 이유에서 아들 이건희에게 목계사상을 심어주었을까? 이병철 회장은 50년 동안 삼성을 경영하면서 많은 고난을 겪었다. 특히 5?16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대통령과는 악연이 많았다. 아무리 굴지의 재벌이라도 하나 서슬 시퍼런 군사정권하에서 권력자와의 대치는 쉽지 않았을 것이 자명하다. 박정희는 당시 재벌들을 부정축재자로 몰아붙였고, 삼성의 이병철 회장은 자신이 평생을 바쳐 이룬 재산을 국가에 헌납해야 했다. 또한 전두환의 신군부가 정권을 잡았을 때도 자신의 방송국 TBC를 국가에 빼앗겼다. 이러한 사건을 겪으면서 이 회장은 삼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목계의 마음과 정신이 필요함을 절실히 깨달았기에, 이를 후계자에게 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상대가 아무리 물어뜯으려고 으르렁거려도 나무로 깎아 만든 닭처럼 초연하게 대처하는 마음, 이것이 이병철 회장이 아버지로서 가장 사랑하는 아들 이건희에게 전하고자 한 처세법이었을 것이다. 현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선친의 유훈에 따라 이 목계의 사상을 경영과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다. 그러므로 목계의 철학은 이 시대 최고경영자의 덕목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제2부 선진국을 보고 배워라 - 학창 시절 그리고 러브스토리




이건희는 1942년 경남 의령군에서 태어났다. 부친 이병철과 모친 박두을 사이에는 모두 팔 남매가 있었는데, 이건희는 일곱째이자 셋째 아들이었다. 이건희 회장은 대구에서 입학하던 날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유치원에 입학하던 날, 어머니는 제게 김 다섯 장과 삶은 달걀 한 개를 더 주셨어요. 형이나 누나보다 더 주신 거죠.” 이건희 소년이 장년이 되기까지 그날을 기억한 것은 어머니의 깊은 사랑을 느낀 때문이다. 팔 남매 모두를 돌봐야 했던 어머니는 셋째 아들에게만 관심을 가질 수 없었기에 이건희는 늘 부모의 사랑에 굶주렸던 것이다.

이건희 회장의 어린 시절은 썩 평탄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만 해도 무려 여섯 번의 전학을 했으니 말이다. 1947년 혜화초등학교에 입학했으나, 6?25전쟁으로 인해 마산으로 내려갔다가 대구로 전학을 갔다. 그리고 아버지가 부산으로 자리를 옮겨 고철 수집업, 설탕과 비료 수입업 등의 사업을 시작했기에 다시 이사를 했고, 부산으로 옮겨 다시 두 번 전학을 했다. 당시 이건희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는 것을 즐기던 내성적인 성격의 아이였다. 이 점은 그의 부친 이병철도 비슷했다고 한다. 이건희가 부산사범부속초등학교 5학년 때인 1953년 부친은 일본 도쿄 초등학교로 유학을 권했다. “선진국을 보고 배워라!” 이병철 회장이 아들을 일본으로 보내면서 건넨 이 한 마디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일본은 말도 통하지 않고 문화도 다른 이국땅이었다. 당시 일본은 한국을 후진국이라고 업신여기고 있었고, 한국인을 조센진이라 부르면서 차별했기 때문에 친구를 사귈 수도 없었다. 이 같은 기억 때문인지 그는 일본과의 경쟁에서 무엇이든지 이기고 싶어 했다. 외로움으로 인해 다소 일찍 철이 든 그는 스스로 자신의 빈 구석을 채워줄 방안을 찾았다. 바로 골프와 영화였다. 골프는 체력 단련뿐만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는 이치를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유학 시절 1,200편이 넘는 작품을 보면서 영화에 관한 특별한 소양을 갖추게 되었다. 그가 훗날 매스컴에 관심을 갖고, 한국 기업으로서는 최초로 공익광고를 제작한 것, 스티븐 스필버그와 함께 영화 합작사업에 나선 것 등은 모두가 어렸을 때부터 영화에 관심을 갖고 체계적인 지식을 습득했기 때문이다.

이건희가 대학교를 마친 후 일본에 머물던 1966년 11월 한국의 부친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네 신붓감과 그 아이 모친이 일본에 가니 공항에 마중하도록 해라.” 신붓감이 온다니… 맞선을 보라는 말이 아닌가. 하지만 그는 그때까지 결혼을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배울 것도 할 것도 많았다. 하지만 부친의 지엄한 명령을 어길 수는 없는 일. 그는 연락을 받는 즉시 차를 가지고 하네다 공항으로 가서 당시 중앙일보 회장의 장녀 홍라희와 그의 어머니를 영접했다. 그때 홍라희는 서울대 응용미술학과에 재학 중인 미모의 재원이었다. 두 청춘 남녀는 금방 친해졌고 조금씩 사랑의 싹을 키워가기 시작했다. 데이트를 할 때 청년 이건희는 문득 영화관람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라면 자신이 전문가가 아닌가. 신문을 뒤적여 영화를 찾던 중 ‘닥터 지바고’ 광고가 눈에 띄었다. 극도의 혼란기인 러시아 혁명의 시대, 광활한 러시아 설원을 무대로 한 편의 서사시처럼 펼쳐지는 아름답고 슬픈 사랑 이야기는 두 청춘 남녀의 가슴에 깊이 새겨질 감동과 여운을 주었다. 비록 한 편의 영화였지만, 두 사람은 서로 많은 부분이 일치하였음을 알고 더 가까워졌다. 이렇게 두 사람은 아름다운 연애 시절을 거쳐, 그 이듬해 결혼을 하였다.



제3부 창업의 효孝와 21세기의 경쟁력 - 후계자 선정 스토리




1971년 1월 어느 날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은 집무실에서 고뇌에 잠겨 있었다. 삼성을 물려줄 후계자를 선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딸들도 5명이나 있고, 장남 맹희와 차남 창희가 있었다. 하지만 장남은 독단적인 일 처리로 주위와 불화가 잦았고, 차남은 어딘가 모르게 유약한 모습이었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삼남 건희인데… 그럴 경우 온갖 잡음이 있으리란 것은 명약관화했다. 자식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서도 안 되고, 누구를 후계자로 정하더라도 삼성그룹 직원들의 불만을 최소화해야 했다. 드디어 결심을 굳힌 이병철 회장은 펜을 들어 유언장을 작성했다. “삼성그룹 후계자는 이건희로 정한 만큼 그를 중심으로 삼성을 이끌어갈 것이며 홍진기 중앙일보 회장이 뒷받침해서 승계해주기 바란다.” 유언장을 작성한 이 회장은 변호사 공증을 받은 후 금고 속에 유언장을 보관했다. 그가 타계하기 16년 전의 일이다. 1976년 9월 위암 진단을 받은 이병철 회장은 수술을 앞두고 가족을 불러 모아 유언을 하였다. “앞으로 삼성은 건희가 이끌어가도록 하겠다.” 이병철 회장의 폭탄선언이었다.

이병철 회장이 삼남을 후계자로 정한 이유는 아마도 다음과 같은 이유인 것으로 추측된다. 첫째, 변화와 혁신, 보호와 유지의 균형 감각을 동시에 갖춘 섬김의 리더십을 보유했기 때문이다. 삼성은 당시에도 국내 최고의 대기업이었다. 따라서 전략적이고 전문가적인 인적자원관리형 섬김의 리더십과 카리스마를 발휘하면서도 온정적인 리더십을 가진 경영자가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건희를 가장 이상적으로 평가했던 것이다. 둘째, 덕망과 관리능력을 갖춘 기업의 구심점으로서 이병철 회장 자신의 창업이념과 경영철학을 계승하여 창업의 효를 받드는 진정한 후계자가 필요했다. 셋째, 21세기가 요구하는 경영자의 자질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이건희는 기업 내외의 환경변화에 대응하는 위험부담의 신속한 해결능력, 전략적 의사결정 수행능력과 신념 등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이병철 회장에게 후계자를 선정할 때 장남인지 삼남인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누가 삼성이라는 대그룹을 이끌어갈 변혁적 리더십이 있는지가 중요했다.

1987년 11월 19일 이병철 선대회장의 부음을 들은 삼성그룹 사장단은 긴급회의를 열어 이건희 회장을 제2대 회장으로 추대했다. 이건희의 나이 45세 때였다. 1987년 12월 1일 호암아트홀에서 거행된 취임식에서 이건희 회장은 말했다. “위대하신 창업주를 여읜 슬픔을 딛고 일어나 삼성의 새 역사 창조에 장엄한 시동을 걸어야 합니다.” 취임 3개월이 지난 1988년 3월 삼성 창립 50주년을 맞는 자리에서 이건희 회장은 제2창업을 선언하면서 자율경영, 기술중시, 인간존중을 창업정신으로 내걸었다. 이것은 삼성을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발전시키고 사회에 기여하는 바를 획기적으로 넓히고, 삼성을 국민적 여망에 부응하는 새로운 공동체로 구축해 나갈 것을 다짐하는 것이었다.



제4부 글로벌 CEO의 혁신적 전략경영 - 삼성 경영 스토리




삼성그룹은 1988년 7월 제2의 창업을 선포하였다. 이후 삼성은 1994~1996년 동안 신경영 제1기 시대를 맞게 된다. 이건희 시대의 신경영의 핵심은 질 위주의 경영이다. 신경영이 탄생하게 된 배경은 삼성이 시장에 내놓은 상품의 품질, 그 질을 만들어내는 사람과 경영의 질에 대한 깊은 반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질 위주 경영은 3가지 요소(상품의 질, 경영의 질, 사람의 질)로 구성되어 있다. 질 위주의 경영은 먼저 불량을 없애는 상품의 질 전환 품목부터 시작되었다. 한 품목이라도 좋으니 세계 제일의 제품을 만들도록 한 것이다. 경영의 질을 높이기 위해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보 인프라를 갖추고, 사업구조를 고도화시켜 나가는 길을 찾도록 했다. 사람의 질을 높이기 위해 인사관리제도를 혁신하고,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조직문화를 만들어가는 우수한 인재를 채용하고 양성하도록 했다.

1997년 이건희 회장은 그동안 추진해 온 신경영 실천 활동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보완하고 더욱 지속적인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스피드경영(time-based management) 개념을 도입하고 신경영 제2기 활동에 도입하였다. 신경영이란 모든 경영활동에서 시간을 중시하는 것인데, 그저 빨리빨리 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먼저 시작하고, 빨리 처리하며, 제때 공급하고, 자주 관리하는 것을 말한다. 첫째, ‘먼저 시작(Early start)’이란 미래 유망사업의 조기발굴이나 신제품 조기출시, 서비스 차별화 등 기회를 선점하는 것을 말한다. 둘째, ‘빨리 처리(Fast decision)’는 품질을 유지하면서 제품이나 서비스를 고객에게 신속히 제공하도록 내부 의사결정 속도를 높여나가는 것을 뜻한다. 출하시간 단축, 상품 개발 시간 단축 등을 의미하는 것이다. 셋째, ‘제때 공급(On time)’은 고객이나 거래처와의 약속을 제대로 준수하고, 필요한 시점에 필요한 만큼 공급한다는 고객납기 준수 등을 의미한다. 넷째, ‘자주 관리(Real time management)’란 유연경영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람, 돈, 물류 등 실시간 관리, 소량다품종, 고회전율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건희 회장은 신경영의 제2기 활동에 이러한 스피드경영 4대 속성을 전략적 기법으로 실천함으로써 큰 성과를 실현하였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경영을 이야기하면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으로 분권화 관리조직 원칙을 준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피력하였다. 분권화 조직은 모든 결정권이 최고경영자에게 집중된 것이 아니고, 의사결정 권한이 그 하위에 있는 여러 조직계층에 대폭 분산 및 이양되어 있어서 각 부문 관리 책임자가 계획과 지휘, 통제기능에 대해 일정한 자주성을 갖는 것이다. 이 회장은 분권화를 통해 관료적 조직의 전제적, 획일적 수단을 배격하고 각 부문 경영자에게 일종의 독립채산제를 기본으로 경영자의 기능을 십분 발휘하게 하였다. 그리고 대규모화된 삼성그룹 조직의 효율성과 경제성을 높여 의사결정의 스피드업에 의한 정보시스템의 충실을 기하고자 하였다. 이것은 경영학의 기본 철학이다.



제5부 패러다임의 대전환: ‘천동설 경영’에서 ‘지동설 경영’으로 - CSR 스토리




20세기 말까지 기업은 이익을 목적으로 천동설 경영을 해왔다. 그러나 21세기 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가지는 지동설 경영으로 변해야 산다. 그야말로 대전환의 패러다임이 필요한 것이다. 천동설 경영은 기업 중심으로 중요한 행성들(고객, 종업원, 주주, 시민사회 등 이해관계자)이 돌고 있는 것이다. 이때 기업은 오직 이익의 극대화만 추구한다. 그러나 지동설 경영은 이해관계자, 즉 고객, 지역사회, 종업원, 시민사회 등 모든 행성을 중심으로 지구(기업)가 돌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은 이제 이해관계자를 중심으로 돌아가면서 봉사하고, 사회공헌 활동을 하는 등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1987년 12월 제2창업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삼성의 경영을 맡은 이건회 회장은 자신의 경영사상인 목계의 철학을 바탕으로 기업의 가치체계를 사회적 책임에 두고, CSR 경영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1994년 삼성사회봉사단이 발족한 후, 삼성그룹의 사회공헌 실적은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 10년간 1조 9,384억 원을 사회공헌과 관련하여 지원하였다. 이 회장은 사회적 책임의지를 대외적으로 명확히 밝히기 위해 1995년 심벌마크와 슬로건을 제정했다. ‘사랑의 별 나눔의 별’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5가지 색상으로 되어 있는 별 모양의 심벌마크는 전통 민속놀이를 이미지화하여 사회복지, 환경복지, 문화?예술, 학술?교육 및 체육진흥, 자원봉사 등 5대 사회적 책임활동 분야를 지원하고 있다. 그 결과 삼성 임직원들의 자원봉사 참여율은 40%에서 70%로 올랐으며, 임직원의 봉사활동비를 시간당 3만 원으로 설정하고, 평균 급여수준의 인건비로 추산할 때 지난 10년간 임직원의 자원봉사 활동은 2천억 원 정도의 가치를 갖는다고 추산할 수 있다.



제6부 21세기 글로벌 문화를 지향한다 - 기업문화 스토리




오늘날 삼성이 세계 속의 초일류기업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삼성인의 글로벌화, 현지인의 삼성화, 그리고 본사의 글로벌화를 핵심과제로 추진해 온 결과이다.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삼성중공업 미국 판매법인은 고객만족 경영을 철저히 수행하여 미국의 캐터필라와 일본의 고마쓰 등 경쟁사와 비교하여 제품력, 기술수준, 판매망 면에서 이미지 쇄신에 성공하였다. 삼성전관 말레이시아 공장은 제조라인 관리를 현지인 체제로 바꾸면서 결근율과 퇴사율을 낮추었을 뿐 아니라 지역사회 취업선호도 제1위의 기업으로 부각되었다. 삼성전기 태국법인은 우리는 하나(we are one)라는 한마음 운동을 전개하여 결근율과 퇴사율을 2% 미만으로 낮추었으며, 노사분규 없는 조직문화를 조성하는 데 성공했다.

신경영 이후 이건희 회장은 세계 경영의 기치를 걸고 글로벌화 물결에 편승하여 세계화 전략, 정보화 전략 등 융복합화 전략을 과감하게 추진하여 성과를 이루었다. 이것은 삼성이 인간존중과 기술중시의 바탕 위에서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여 세계 시장에 도전하고, 고객 지향의 이타주의 문화를 창조함으로써 인류사회에 공헌하는 글로벌 초일류기업으로 도약하려는 의지의 표출이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의 사업장이 있는 곳이면 세계 어디서나 현지화 전략을 구사하여 지역사회의 각종 사회문제에 동참하고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지원을 적극 추진하는 등 이질적인 문화를 아우르는 기업풍토를 조성하는 데 진력하였다. 또한 1990년대부터 해외진출 지역에서 합리적 공생주의 경영을 실현하기 위해 글로벌 메세나 활동계획을 수립하였다. 이는 진출국별, 지역사회별 정서와 환경에 부합하는 봉사활동을 전개함으로써, 그 지역사회와의 유대강화에 진력하는 것이다. 특히 지역사회 현안을 타개하기 위한 재정지원에서부터 임직원의 자원봉사 활동과 현지인 간의 각종 교류는 물론, 국가 이미지 제고를 위한 한국 알리기 활동에 이르기까지 점차적으로 메세나 활동영역을 넓혀 나갔다. 이러한 글로벌 메세나 활동은 인류사회에의 공헌을 구현하기 위한 봉사활동으로, 초일류기업으로 성장하는 삼성의 위상을 정립하려고 노력하는 스토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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