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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의 돈 버는 아이디어

이종호 지음 | 사과나무
과학자들의 돈 버는 아이디어

이종호 지음

사과나무 / 2012년 7월 / 424쪽 / 13,800원



전문가의 협력을 구하라: 조지 비셀 - 아이디어맨이 제안한 만능에너지, 석유

미국 석유산업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지 비셀은 뉴욕 월가에서 주식 전문 변호사로 일하다가 1850년 석유와 인연을 맺었다. 과로로 건강이 나빠져 휴양을 위해 고향에 들른 그는 그곳에서 채취한 등유(석유)가 두통이나 치통, 류머티즘에 대한 만병통치약으로 통용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또한 일부 사람들은 석유를 불을 밝히는 데 사용하고 있었다. 순간 그의 머릿속에 전광석화 같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석유로 불을 켤 수 있다면 조명용 연료로도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당시 조명용 연료로는 고래 기름으로 만든 등유가 고급이었고 최첨단 조명 방식으로 일부 지역에서 가스등을 사용하고 있었다.

뉴욕으로 돌아온 비셀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할 방법을 생각해 내었다. 그가 내린 결론은 단순했다. 석유를 조명용 연료로 사용하려면 대량의 석유를 확보해야 하는데, 석유는 유전에서 캘 수 있다. 유전을 확보하려면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투자자들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설명하고 투자를 유치해야 한다는 말이다. 당시 사람들은 석유란 기름방울이 지표면이나 바위 면을 타고 흘러나오는 것이라고 믿었다. 비셀의 아이디어는 이런 통념을 깨고 땅속에 매장된 석유를 수직으로 파서 뽑아내겠다는 계획이었다. 문제는 사람들이 땅속에 엄청난 석유가 매장되어 있다는 말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비셀은 이런 상황에서 모든 사람들을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자신의 아이디어가 “현실성이 있다.”는 전문가의 정확한 자료와 지지를 얻어낸다면 투자자를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당대 최고의 화학자로 알려진 예일대학교의 실리먼 2세를 찾아갔다. 비셀은 실리먼 2세에게 원유 샘플의 성분 분석을 의뢰하면서, 회사의 주식을 나눠주겠다고 동업을 제안했다. 비셀로부터 동업 조건과 연구비를 확보한 실리먼은 비셀이 원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았다. 석유가 다양한 물질로 분류될 수 있으며 램프에 사용될 수 있는 양질의 기름을 매우 값싼 공정으로 얻을 수 있다는 실리먼의 예언은 추후 진실로 증명되었다.

땅속에 엄청나게 많은 석유가 매장되어 있으며 이것이 조명연료로 적합하다는 실리먼의 평가가 내려지자 비셀의 아이디어는 순풍에 돛 단 듯 진행되었다. 그가 제안한 아이디어에 많은 투자자들이 모여든 것이다. 비셀은 석유 탐사 작업 책임자로 에드윈 드레이크를 임명하고 펜실베니아 주 타이터스빌에서 시추 작업을 시작했다. 그들은 1년 반 동안 온갖 고생을 하면서 시추 작업을 한 끝에 마침내 1859년 8월 29일 유전을 발견하는 데 성공했다. 이 사건은 석유 역사에서 매우 중요하게 기록된다. 사상 최초로 수직 굴착식 시추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석유가 나오자 1년 사이에 타이터스빌에서만 300개의 유정이 뚫렸고 미국 전역에서 개발 붐이 일어났다. 이와 함께 석유는 당시 주요 에너지원이었던 석탄을 대체하게 되었다. 1886년 카를 벤츠가 휘발유 엔진을 장착한 자동차를 선보임으로써 그 가치가 더욱 높아진 석유는 이후 거대한 산업으로 발전했다.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라: 토머스 뉴커먼 - 물을 끓여 에너지를 얻는 뉴커먼 기관

산업혁명이 추진력을 얻는 데 가장 큰 과제는 지속적이면서 큰 에너지를 공급할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제임스 와트보다 70년 전에 태어나 당대에 누구보다 효율적인 증기기관을 만들어 낸 영국의 토머스 뉴커먼이 그러한 도전에 성공한 사람이다. 증기기관의 원리는 1세기경 그리스 과학자 헤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증기의 힘으로 신전의 문을 열 수 있는 장치를 고안했다. 1679년에는 프랑스의 물리학자 드니 파팽이 증기로 작동하는 압력솥을 만들었고, 1698년에는 영국의 토머스 세이버리가 파팽의 원리를 발전시켜 증기를 이용한 양수펌프를 발명했다. 하지만 이 펌프는 물을 끌어올릴 수 있는 한도가 고작 6미터에 지나지 않아 광산 등에서 대단위로 실용화되기에는 부족했다.

뉴커먼은 세이버리의 증기기관을 보고 자신이 문제점을 해결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배관공 존 켈리의 도움을 받아 1712년 최초로 산업체에 공급할 수 있는 증기기관 제작에 성공했다. 이 기계는 9~18마리의 말을 대신할 수 있는 당시로는 획기적인 기계였다. 뉴커먼의 증기기관 발명에도 에피소드가 있다. 어느 순간 갑자기 엔진이 빠른 속도로 작동하더니 지금보다 몇 배 빠르게 왕복 운전되는 것이었다. 조사해 보았더니 피스톤에 구멍이 뚫려 그 구멍을 통해 찬물이 실린더의 밑바닥으로 흘러내려 그 때문에 증기가 급속하게 응축된 것이다. 그것을 본 뉴커먼은 갑자기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즉 찬물을 실린더 외부에 붓는 대신 실린더 안에 직접 넣어 증기를 응축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실용적인 증기기관이 탄생했다. 뉴커먼이 과학의 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것은 특허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다. 뉴커먼은 세이버리의 특허권을 인정하고 동업을 제의했다. 세이버리도 그의 제의를 받아들이면서 통 큰 양보를 했다. 새 기계의 이름을 ‘뉴커먼 증기기관’으로 명명한 것이다. 이후 뉴커먼의 기계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뉴커먼의 아이디어는 선배가 만든 증기기관의 이론을 자신의 아이디어에 맞춰 변형한 것이다. 그것도 ‘피스톤에 구멍이 뚫린 것을 예의 관찰한 눈썰미’에 의한 것이다. “그것이 뭐 그리 대단한가?”라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200년 전의 눈썰미와 현대의 눈썰미를 같은 시각으로 볼 수는 없다. 산업혁명 초기에는 과학이라는 단어 자체도 없었고, 어떤 기계를 개량할 때 기초 이론이 정립되어 있지도 않았다. 그가 피스톤에 뚫린 구멍의 의미를 알아채고 기계를 개량했다는 것은 탁월한 재능이 아닐 수 없다. 특허권 같은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한 것도 대단한 능력이다. 당시에도 특허는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는 괴물과 같았다. 세이버리가 기초 특허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뉴커먼의 아이디어를 듣고 그대로 도용해도 큰 문제가 될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18세기 초에 새로운 증기기관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특허라는 괴물을 슬기롭게 해결했다는 것은 그가 기술적인 재능뿐만 아니라 사업에 대한 유연성까지 겸비했음을 알 수 있다. 더불어 그를 기쁘게 한 것은 엄청난 부를 쌓았다는 것이다. 그는 부모가 물려준 재산이 아닌, 자신이 개발한 기계로 당당히 부호의 대열에 합류했고 이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은 아이디어만 가지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아이디어의 비밀을 지켜라: 에이브러햄 다비 - 산업혁명을 이끈 코크스 제철법

증기기관에 이어 산업혁명을 빠르게 확산시킨 요인은 철의 공급이었다. 생산력을 높일 수 있는 대형 산업기계를 대량 제작하자면 질 좋은 철이 저렴하게 공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철강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에이브러햄 다비이다. 철광석을 녹이려면 고열이 필요한데 당시에는 제련 과정에서 목탄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목탄은 너무 쉽게 타버리기 때문에 한 번에 생산할 수 있는 철의 양이 제한적이었다. 삼림자원이 고갈되어 목탄을 제대로 생산할 수 없었던 영국은 철 수요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수입해야 했다. 이런 절박할 때 학자들은 철 생산에 필요한 에너지원으로 목재 대신 영국에 풍부하게 매장된 석탄을 사용하도록 조언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일반 석탄에는 불순물인 황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 철의 질이 형편없이 떨어졌다.

이때 구원투수로 나타난 사람이 다비이다. 그는 목탄 대신 코크스(석탄을 가열해 휘발 성분을 없앤, 구멍이 많은 고체 연료)를 사용하여 철을 만들었다. 사실 제철 공정에 코크스를 사용한다는 아이디어는 17세기 초부터 있었다. 원리도 단순하다. 음식물을 익힐 때 고기나 야채를 직접 불에 굽지 않고 그릇에 담아 익히는 것처럼 철광석을 연료와 분리하는 것이다. 원리 자체는 알려졌지만 실제로 어떻게 적용하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다비는 남다른 통찰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영국 브리스톨 지역에서 생산되는 석탄에는 황 성분이 적다는 것을 알았다. 그곳에서 생산되는 석탄으로 코크스를 만들어 연료로 쓰면 질 좋은 철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한 가지 아이디어로 그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제철 그룹을 이루었다. 영국은 지리적, 자원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다비의 제철법에 힘입어 연철과 강철 등 질 좋은 철을 생산하면서 산업혁명을 주도하게 되었다.

다비의 제철법이 제철 부분에만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진가는 현대 과학의 진수인 지적재산권 보호가 궁극적으로 산업화의 첨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데 있다. 다비는 1707년 제철에 관한 기초 특허를 받으면서 코크스 제련법의 핵심인 제조공정은 특허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고안한 제철법의 핵심 노하우가 알려지는 순간 다른 사람, 다른 지역에서 곧바로 생산할 것으로 생각했다. 다비는 그런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법은 일단 특허를 확보했더라도 끝까지 기술의 핵심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라고 믿었다.

사람이 하는 일을 기계가 대신하게 하라: 일라이어스 하우 - 바느질하는 기계, 재봉틀

산업혁명으로 방직 및 방적 공정이 산업화되었지만 의복의 바느질은 모두 손으로 해결해야 했다. 만일 바느질을 기계로 대신할 수 있다면 누구든 그야말로 떼돈을 벌 수 있을 터였다. 제일 먼저 바느질 기계에 도전한 사람은 영국의 토머스 세인트였다. 그는 1790년 손뜨개질용 코바늘로 구두를 꿰매는 기계를 발명했으나 별로 인기를 끌지 못하고 금세 잊혔다. 1830년 프랑스 사람 시모니에가 처음으로 제대로 된 재봉틀을 만들었는데, 한 가닥의 실로 바느질이 되는 기계였다. 하지만 그의 발명은 때를 잘못 만났다. 산업혁명으로 기계가 사람의 노동을 대신하면서 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어 생존을 위협받았기 때문에 기계에 반대하는 러다이트 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결국 그는 사업에 실패하고 가난과 절망 속에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시모니에가 사망하자 그의 특허에 주목한 미국의 사업가들이 곧바로 그의 아이디어를 차용하여 재봉틀을 만들어 시판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시모니에의 재봉틀을 이용하기 시작할 무렵 미국의 일라이어스 하우가 재봉틀 혁신에 도전했다. 1819년 매사추세츠 주에서 태어난 그는 원래 제분 기계 기술자였다. 그는 종일 바느질을 하던 아내를 위해 재봉틀에 대한 아이디어를 궁리했다고 한다. 그는 단순한 데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비밀은 바늘의 구멍 위치였다. 그는 앞쪽 바늘구멍에 실을 꿰어 윗실과 밑실로 겹바느질을 할 수 있는 2중 재봉법의 묘안을 찾아 드디어 획기적인 재봉틀을 발명했다. 두 가닥의 실로 바느질이 되는 오늘날의 재봉틀은 그가 개발한 방식이다.

1844년 하우는 자금을 빌려 샘플을 만들고, 1845년에는 완전한 시제품을 만들어 특허를 취득했다. 하지만 하우 역시 재봉사들의 거친 항의에 사업을 진행할 수 없었다. 재봉사들의 저항이 차츰 잦아들 무렵 하우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특허를 도용하여 떼돈을 벌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소송을 벌였다. 그 소송 상대 중 하나가 아이작 메리트 싱거이다. 싱거의 이름은 당대에 가정용 재봉틀의 이름과 동의어가 될 정도로 재봉틀 시장을 완전히 석권하고 있었다. 1854년 하우는 특허권 침해 소송에서 승리했고, 싱거는 하우에게 거액의 배상금과 로열티를 지급했다.

재봉틀이 현대 문명에 끼친 영향은 그 어느 산업 제품보다 크다. 각 가정에 도입된 재봉틀은 여성들의 가사노동을 획기적으로 감소시켜 여성이 가정에서 해방되는 데 큰 공헌을 했을 뿐 아니라 재봉틀은 현대 산업사회를 새로운 사회구조로 재편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특히 미국에서는 의류 산업이 노동개혁의 초점이 되면서 낮은 임금과 열악한 근로 조건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조가 결성되면서 자본주와 노동자라는 새로운 구도가 만들어졌다. 이런 계기를 제공한 것이 바로 재봉틀이다. 실내에 있는 작은 기계 정도로 여겨졌던 재봉틀이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물건이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인간의 노동력을 절약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플러스 알파를 찾아라: 존 보이드 던롭 - 두 바퀴로 가는 던롭 자전거 타이어

최초의 자전거는 1790년 프랑스의 시브락 백작이 발명했다. 이후 독일의 드라이스 남작이 자신의 넓은 영지를 관리하기 위하여 자전거를 만들어 1818년 특허를 신청했다. 이 자전거는 1819년 영국으로 건너가 크게 유행했다. 하지만 그가 만든 자전거는 페달이 없어 지면을 발로 차고 나아가야 했고, 바퀴가 철로 되어 있어 무거운 단점이 있었다. 1839년 영국의 맥밀런에 의해 페달을 사용한 자전거가 발명되었다. 하지만 금속으로 타이어를 만들었기 때문에 자갈밭이나 거친 길의 충격이 고스란히 엉덩이에 전달되었다. 이후 자전거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계속 업그레이드되었다. 1868년 철사로 만든 자전거 바퀴살이 발명되었고, 1869년 프랑스의 테브농에 의해 자전거의 핵심인 바퀴가 철에서 고무로 바뀌었다.

자전거가 많은 장점을 갖고 있음에도 대중에게 큰 호응을 얻지 못한 것은 불편한 바퀴 때문이었다. 이때 혜성과 같이 등장한 사람이 존 보이드 던롭이다. 학자들은 던롭이 없었다면 현대 문명이 급속도로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로 말미암아 대중교통 수단인 자전거가 완성되었고, 이후 동력으로 움직이는 교통수단인 자동차가 개발되었다. 수의사였던 던롭이 자전거 바퀴를 개발한 것은 아들에게 자전거를 사준 것이 계기가 되었다. 아들이 자전거를 타기만 하면 엉덩이가 아프다고 불평을 늘어놓았고, 이에 던롭은 자신이 직접 문제를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그는 수의사로서 얻은 직업적 경험과 과학적 지식에 힘입어 타이어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곧바로 찾아냈다. 해결방법은 공기를 넣은 내부 튜브를 고무타이어 안에 넣는 것이었다. 던롭은 공기를 채운 타이어가 특허로 등록되었는지 조사했는데 이미 1845년에 그 아이디어가 특허로 등록된 상태였다. 하지만 실용화에는 성공하지 못한 상태였고, 특허 기간도 만료된 상태였다. 던롭은 선임 발명자가 고안한 고무타이어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더해 1887년 특허를 출원했다. 그리고 1890년 자신이 개발한 ‘공기 주입식 타이어’를 공개했다. 그의 발명은 그동안 자전거가 갖고 있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개선한 것이어서 곧바로 자전거 열풍을 몰고 왔다. 엄밀한 의미에서 던롭의 아이디어는 고무타이어에 ‘공기를 채운 내부 튜브 하나를 넣은’ 단순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사소한 아이디어가 그동안 자전거가 갖고 있던 문제점을 단숨에 해결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발명의 기본은 간단하다. 큰 틀에서 뭔가 불편한 것이 있다면 이를 개선하는 아이디어를 찾아내는 것이다. 발명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원천적으로 새로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통찰력으로 우연을 포착하라: 콘스탄틴 팔베르크 - 눈썰미로 개발된 달콤한 사카린

1846년 미국의 아이러 렘슨은 독일에서 화학을 공부하고 미국으로 돌아와 존스홉킨스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1879년 렘슨은 독일 출생의 팔베르크에게 식료품에 쓰일 새로운 방부제를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맡겼다. 어느 날 연구실에서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던 팔베르크는 빵 맛이 유난히 달다고 느꼈다. 그 단맛의 원인이 연구실에서 실험할 때 자신의 손에 묻은 물질 때문이라고 생각한 그는 곧바로 실험실로 돌아와서 자신이 실험하던 화합물을 찾았다. ‘벤조일 0-설포마이드’라는 화합물이었다. 남다른 통찰력을 가졌던 팔베르크는 자신이 발견한 화합물이 설탕을 대체할 수 있는 놀라운 물질임을 확신한 후 지도교수인 렘슨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그들은 곧바로 새로운 감미료의 발견을 발표하면서 이 화합물을 사카린이라 불렀다. 사카린은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단 물질로 설탕보다 무려 300~500배나 달지만 칼로리가 없어 다이어트 첨가물로 인기가 높다.

이후 독일로 돌아간 팔베르크는 특허를 신청하면서 렘슨의 이름을 적지 않았다. 렘슨은 제자에게 배반당했다고 느껴 분노했다. 팔베르크는 렘슨의 비난에 개의치 않고 회사를 설립하고 사카린이란 이름의 감미료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독일 정부가 설탕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인공 감미료 제조를 금지하면서 사업은 난관에 부딪혔다. 하지만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설탕이 부족해지면서 사카린의 판매금지가 해제되었고 팔베르크는 엄청난 수익을 벌어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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