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마우스드라이버 크로니클

존 러스크, 카일 해리슨 지음 | 럭스미디어
마우스드라이버 크로니클

존 러스크, 카일 해리슨 지음

럭스미디어 / 2012년 7월 / 376쪽 / 16,000원





새로운 시작

워튼 경영대학원의 MBA 졸업을 3개월 남긴 어느 날, 허친슨 교수님의 마케팅 수업을 들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무슨 사업을 하지?" 사업할 거리가 없으면 직장을 구해야 한다. 그 생각만 하면 머리가 아팠다. 나는 학교에 들어오기 전에 언스트 앤 영에서 4년 동안 근무한 경험이 있다. 졸업 후에는 직접 창업하여 그 고통을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다. 한편 내 룸메이트 카일 해리슨은 허친슨 교수님의 수업에서 발표를 형편없이 망치고 있었다. 나는 그가 분명히 낙제 점수를 받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카일은 마우스드라이버라는 골프채 드라이버의 헤드를 닮은 새 컴퓨터 마우스 구상에 미쳐 있었다. 나는 허친슨 교수님의 강의에서 남의 아이디어를 모방한 휴대폰 제품을 제안했고, 카일은 그가 정말 잘될 거라고 믿는 독창적인 마우스드라이버를 제안했다. 그 결과 나는 영광스럽게도 발표 과제를 통과했지만, 카일은 처음부터 다시 과제를 진행해야 했다.

이후 몇 주 동안 나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몇몇 벤처 캐피털과 닷컴 기업에서 면접을 보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창업을 원했다. 내가 이러는 동안 카일은 마우스드라이버 샘플 버전의 생산 방법에 대해 고민하다가 홍콩에 있는 카마인이라는 사람을 소개받았다. 카마인은 EAAE라는 회사의 사장으로 생산중개인을 했다. 물건을 만들고 싶어하는 창업자와 아시아의 제조회사를 중개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카일이 천 달러의 비용을 들여 만든 마우스드라이버 시제품이 도착했을 때 모든 사람이 감동했다. 이상하게 생긴 회색 플라스틱 마우스 모형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본 것은 머릿속에서 구상한 것이 어쨌든 실제 제품으로 나왔다는 사실이었다. 로디시 교수라는 분이 이 제품에 관심을 보이시고 카일에게 선뜻 2만 달러를 투자했다. 월요일에 집에 돌아왔을 때 아파트 계단에서 우연히 카일과 마주쳤다. 샌프란스시코에 다녀온 이야기, 그리고 내 회사를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순간 우리 둘의 머릿속에 전광석화처럼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우리 함께 마우스드라이버로 창업해보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바로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세계 정복을 위한 우리의 계획

졸업 후에 학교에 남아 사업에 필요한 준비를 하면서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점을 발견했다. 첫째, 우리에게는 마우스드라이버라는 제품이 있었다. 골프채의 헤드 부분을 닮은 세상에서 유일한 컴퓨터 마우스이며 특허권도 있다. 둘째, 우리는 플래티넘 콘셉트라는 신뢰를 주는 회사 이름을 갖고 있었다. 셋째, 우리는 사업계획을 갖고 있었고, 실행은 매우 견고하고 믿을 만한 숫자로 기록했다. 넷째, 우리는 제조 쪽을 잘 알고 있었다. 카일은 EAAE와 마우스드라이버 시제품 배송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을 흡족하게 생각했다. 우리는 첫 주문 수량을 500개로 합의했고, EAAE는 대만에 있는 제조공장을 연결해 주었다. 우리는 2000년과 2001년 총 판매량 50만 개 이상, 매출 총이익 45~70% 수준을 예상했다. 계획대로만 진행되면 사업 시작 2년 만에 우리는 백만장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는 마우스드라이버를 구매할 대상으로 두 종류의 고객을 예상했다. 첫째, 기업고객이다. 큰 회사의 홍보부서는 마우스드라이버에 그들 회사 로고를 인쇄해 고객과 직원에게 뿌리고 싶어 할 것이다. 둘째, 소매고객이다. 여기에는 남녀 구별 없이 컴퓨터를 사용하는 골프 애호가들이 포함된다. 우리는 기업 및 소매 시장 두 군데서 동시에 사업을 전개하려 했고, 시장의 상위 영역에 집중하려고 했다. 우리는 높은 수준의 고객서비스를 제공하면 우리만의 브랜드를 확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고, 직접 판매를 통해 이를 실현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우리는 4천 장의 브로슈어와 5백 개의 홍보용 샘플과 회사 소개를 담은 키트를 제작하기로 했다. 당시 우리 손에는 12만 달러의 초기자금이 있었다. 로디시 교수님이 준 2만 달러, 우리가 투자한 돈 2만 5천 달러, 여기에 아버지, 삼촌, 할아버지에게 받은 7만 5천 달러가 있었다. 이 돈으로 우리는 1999년 10월 초까지 버틸 수 있다.

젊은이여, 서쪽으로 가라

카일과 나는 7월 학교를 떠나 샌프란시스코로 이사를 했다. 샌프란시스코로 가기 전에 우리는 텍사스의 부모님 집에 한 달 머물렀다. 이곳에서 우리는 홍콩 측과 연락하면서 마우스드라이버의 모양과 색을 수정하는 작업을 했다. 또한 PGA(미국 남자프로골프 협회) 로고를 제품에 새겨 넣기 위해 컴퓨터 주변 장치에 PGA 로고를 인쇄해서 파는 팀 마우스라는 회사를 접촉했다. 이 회사의 스티브 리틀 사장은 우리 제품을 마음에 들어 했고, 로고 사용을 허락했다. 하지만 그는 연휴 기간에 맞춰 소매점에 물량을 풀기에는 시기적으로 늦었다고 난색을 표했다. 그의 말 한 마디에 우리의 1999년 판매 전략의 절반이 통째로 사라졌다. 이제 소매 판매는 우리의 예상보다 6개월 늦은 2000년 6월 아버지의 날까지 기다려야 했다.

우리는 판매 계획의 나머지 절반인 기업 판촉 시장을 공략하기로 하였다. 우리는 기업에 직접 전화를 걸어 판촉을 시도했지만 여러 번 똑같은 말을 들었다. "죄송합니다. 저희는 모든 기업 선물을 지정된 도매업자를 통해 구매합니다." 이 과정에서 나는 ASI(판촉물협회)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ASI는 기업을 위해 머그컵, 티셔츠, 펜, 골프공에 이르기까지 제품 종류에 상관없이 모든 것에 로고를 찍어 제공하는 일만을 수행하는 총 160억 달러 규모의 관리 기관이었다. 하지만 나는 최고급 제품인 마우스드라이버가 ASI에 속한 저질 공짜 경품과 같이 배포되는 일을 용납할 수 없었다. 우리는 ASI를 통하지 않고 판촉 회사를 공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텍사스에서 한 달 동안 우리는 많은 일을 했고, 많은 것을 배웠다. 우리는 장소를 샌프란시스코로 옮겨 아파트(사무실을 겸함)를 구하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였다.

마우스 만들기 참 어렵다

마우스드라이버 제작은 예상보다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우선 제품을 넣을 상자부터 문제였다. 누가 상자를 만들어 인쇄하고, 누가 어디에서 제품을 상자 안에 넣을 것이며, 물류 과정에 얼마나 비용이 들 것인지 같은 문제가 있었다. 특수 인쇄에 관한 문제도 있었고, 상자의 종류, 색상, 로고와 품질보증 등 아무도 생각해보지 않은 많은 세부사항들이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3단계 시스템을 구축했다. 1단계로 어떤 답을 선택하기 전에 우리와 EAAE 사이의 연락책인 케니에게 조언을 구했다. 하지만 이런 해결책은 현실성이 별로 없었다. 2단계는 '길거리에서의 창의적 해결책 모색'이다. 예를 들어 마우스드라이버에 맞는 포장상자를 결정할 때 우리는 상점가에 가서 모든 포장을 관찰했다. 이 방법은 이상적인 상자의 규격, 감촉, 그리고 전반적인 모습을 결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3단계 계획은 전화번호부 뒤지기였다. 전화번호부를 뒤져 전문 업체를 찾아내서 해결책을 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패드 인쇄 문제를 해결할 때 전화번호부를 뒤져 발견한 그래패틱이라는 상호의 패드 인쇄 전문 업체를 이용하였다. 발품을 팔고 탐정처럼 전화번호부를 뒤지면서 우리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워튼 인맥보다 전화번호부가 더 많은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는 사실이다.

첫 샘플 100개가 7월 중에 도착했다. 우리는 샘플을 받고 실망을 하고 말았다. 로고가 조금씩 구부러져 보이고 제품 샘플이 약간의 충격에도 너무 쉽게 부서지는 것이었다. 우리는 마우스드라이버를, 제품 전도사 역할을 할 친구와 가족들에게 보내 주기에는 너무 많은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을 포함하여 샘플의 품질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머리를 맞댔다. 하지만 몇 번의 재평가와 독촉 전화 끝에 우리는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확실히 샘플에는 심각한 문제점이 있었다. 하지만 완벽한 제품을 만드는 것에 매달려 있는 동안 우리는 시장 진입에 필요한 더 중요한 일을 잊고 있었다. 우리 상품을 세상에 소개하는 것 말이다. 우리는 우선 당장 몇 개의 샘플을 고객, 소매상, 도매상, 친구, 그리고 가족들에 보내 피드백을 얻기로 하였다. 때로는 만족스러운 것이 완벽한 것보다 낫다.

우리의 첫 번째, 두 번째 생각들

1999년 닷컴 붐 속에서 MBA 학위를 활용하여 집 부엌에서 새로운 컴퓨터용 마우스를 만드는 것은 주 광맥의 가장자리에서 곡괭이와 사금을 내버려 두고 광산 노동자들에게 큼직한 글자가 박힌 벨트 버클을 팔려고 하는 것과 비슷했다. 실용적이지만 확실히 주 무대에서 비켜나 있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고 또한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또한 우리가 조금 다른 것을 추구하지만 우리 스스로 신경제 활동의 중심이라 여기기로 했다. 마우스드라이버와 관련한 일을 시작하고 진행해 나가면서 친구들을 만나는 것은 사치였다. 카일과 나는 일을 하기 위해 하루에 12시간 정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우리의 단 한 명 새로운 친구는 홍콩에 있는 만나 본 적도 없는 케니 뿐이었다. 우리는 지루한 일상을 깨기 위해 아늑한 사무실에 보다 형식적인 회의실을 추가했다. 그것은 동네 스타벅스 한 구석의 탁자였다.

어둠, 어둠, 어둠, 어둠

홍콩에서 케니가 보고서를 보내왔다. 우리가 처음 받은 100개의 제품 샘플에서 발견된 모든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이다. 다음에 도착할 400개의 마우스는 더 튼튼하고, 더 세련된 색상을 지녔고 로고도 비뚤어지지 않을 거라고 한다. 홍콩에서 온 좋은 소식으로 사기가 오른 우리는 케니에게 2천 5백 개를 추가 주문하면서 50%를 선금으로 지급했다. 9월에는 훨씬 많은 2만 5천개를 주문했다. 우리는 제품이 개선되었다는 물증도 없이 케니의 상황 설명만 믿고 생산 계획을 이행해 나갔다. 우리는 고급 소매점의 상인들을 끈질기게 따라다녔지만 곧 교착상태에 빠졌다. 우리는 법인 판촉물 구매자에게 전화를 돌렸고, 몇몇 유통업체와 연락했다. 그리고 ASI가 우리의 모든 판매 경로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ASI의 네트워크에 들어가야 했다. 하지만 우리는 기업가였다. 우리는 모든 것을 경험하고 싶었기 때문에 ASI에 판매 영역을 넘겨주는 것에 전혀 흥미가 없었다. 결국 우리는 1999년 그해 사업을 완전히 놓치고 말았다. 우리는 100만 개의 마우스를 12개월 안에 팔 수도 없었고 18~24개월 내에 백만장자가 될 수도 없었다. 사업을 하면서 유통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했던 것이 패인이었다.

샘플을 사용해본 친구와 가족들이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주었다. 그들은 마우스가 너무 가볍다는 점을 지적했다. 사람들은 실제 골프채 느낌이 나는 마우스를 원했다. 그들은 또한 조금 더 긴 마우스선과 스크롤 휠을 원했다. 우리는 케니에게 이러한 요구 사항을 반영하여 제품을 수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비용 때문에 무게를 늘리는 것과 스크롤 휠은 반영이 어렵다고 답변을 해 왔지만 어쨌든 긴 선과 멋진 단일 색상, 그리고 완벽한 로고를 가진 최고의 마우스드라이버를 보내주기로 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큰 착각이었다. 홍콩에서 배송되어 온 샘플 40개는 정말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페인트는 얼룩져 있었고 마우스를 들면 마우스볼이 굴러 나왔다. 설상가상으로 마우스드라이버의 통합 회로를 생산하는 공장이 소재한 대만에서 큰 지진이 발생했다.

오, 주님 감사합니다. 드디어 매출을 올렸습니다

자연재해는 우리를 쥐어 팼고, 제조 과정은 험난했다. 판매와 유통은 납득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상황은 이제 호전되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 드디어 우리가 매출을 올린 것이다. 우리는 마우스드라이버를 가족, 친지, 학교 동기들에게 주는 대가로 그들의 회사 동료들에게 마우스드라이버를 소개해 달라고 했다. 이러한 전도사 전략은 적중했다. 로고가 박힌 마우스드라이버 75개를 주문하겠다고 가장 흥미를 보인 곳은 텍사스주립자문위원회였다. 우리의 첫 고객에 대한 매출은 재무상담가로 일하는 캐리 러스크라는 우리 최고의 전도사를 통해 일어난 매출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우리 엄마라는 사실 때문에 100%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진짜 매출은 또 다른 전도사인 워튼 동기 덕분에 금방 일어났다. 뱅크오브아메리카에서 200개의 주문이 들어온 것이다. 우리는 다음 목표 시장을 골프 액세서리 시장으로 잡았고, 골프 용품을 판매하는 칩샷닷컴에 100개를 판매했다.

1999년 판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우리는 큰 회사와 닷컴 회사를 대상으로 한 거래에서 괜찮은 출발을 보였다. 전도사들과 골프 관련 웹사이트를 통한 공식적인 마케팅 노력도 꽤 효과적이었다. 우리는 제품 탄생 과정에 대한 스토리를 사람들에게 퍼뜨리기 위해 '마우스드라이버닷컴'이라는 웹사이트를 구축했다. 그리고 《마우스드라이버 인사이드》라는 소식지를 만들었다. 우리는 성공, 실패, 에피소드, 창업에 대한 느낌을 주기적으로 공유하기 위해 100명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우리는 거래처를 찾는 노력을 계속하다가 골프용품 판매 대리인인 브라이언 팬턴이라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마우스드라이버를 소매점에 유통시키고 싶어 했다. 그는 연말 판매를 앞두고 우리가 10월 말에 받을 물량 2만 5천 개를 앞당겨 받기를 원했다. 우리는 케니에게 연락하여 추가 운송비를 부담할 테니 물량을 배가 아니라 비행기로 배송해 줄 것을 요청했다.

브라이언이 마케팅에서 좋은 성과를 보였지만 우리에게 가장 도움이 필요한 분야는 따로 있었다. 바로 유통이었다. 우리는 유통업무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해줄 공급업체가 필요했다. ASI 소속 공급업체와 함께한다는 것은 우리가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모두 아웃소싱하고, 마케팅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공급업체를 찾는 문제도 브라이언이 도와 주었다. 브라이언은 플래티넘 콘셉트가 에드윈 와츠의 공식 납품업체로 승인받는 계약을 성사시켰다. 즉 에드윈 와츠 본부에서 전국에 있는 48개 에드윈 와츠 매장 매니저에게 원하는 만큼의 마우스드라이버를 구매하도록 OK 사인을 해 준 것이었다. 이것은 아주 큰 거래였다.

왜키 월 워커 씨를 찾아서

사업을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우리는 문서화 및 제품화 단계를 거쳐 멘토가 필요한 시점에 도달했다. 로디시 교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소매 창업 경험이 있는 기업가를 소개해 주셨다. 켄 하쿠다라는 사람이었는데 하버드 MBA 출신으로 성공적인 창업을 한 사람이었다. 그의 사업 중 가장 주목을 받은 것이 '왜키 월 워커(wacky wall walker, 벽을 걷는 괴상한 놈)라는 장남감이다. 그는 이 장난감으로 2천만 달러를 벌었다고 한다. 카일이 워싱턴으로 가서 그를 만났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그는 우리에게 투자하는 것보다 우리 회사의 이사가 되는 것에만 관심을 보였다. 우리는 그의 자문을 얻기 위해 몇 차례 이메일을 보냈으나, 그는 답변을 보내오지 않았다.

우리가 그의 관심을 끌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할 즈음에 깜짝 놀랄 제안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페이마이빌닷컴의 CFO인 덕 바론과 그의 친구들이 우리 사업에 50만 달러를 투자하기를 원한 것이다. 그들은 그 돈으로 마우스드라이버에 관한 인포머셜(소비자의 이해를 도울 수 있도록 제공하는 광고)을 만들기를 원했다. 우리는 이 거래를 받아들일지 여부에 대해 논쟁하면서 하쿠타 씨에게 자문을 구했지만 답변은 없었다. 결국 우리는 존 바론의 제안을 거절하기로 하였다. 제안은 매력적이었지만 우리가 애초에 세운 사업계획과 많은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하쿠타 씨와의 무(無) 관계도 청산하기로 하였다. 아무런 도움 없이 우리는 처음에 세웠던 비즈니스 원칙을 고수했고, 이 모든 일을 무사히 해결했다.

전부 우리가 해야 하나?

브라이언은 우리가 연휴 시즌을 노릴 만하다고 말하고, 마우스드라이버 2만 5천 개를 항공운송하도록 하였다. 그는 10월 말까지 물량만 확보하면 크리스마스 시즌에 모든 물량을 팔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우리에게 말했던 것에 터무니없이 못 미치는 500개 정도의 판매를 끝으로 그 해를 마감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 것이 아닌 브라이언의 판매와 마케팅 계획에 자금을 지원해 준 꼴이 되었다. 12월이 되자 브라이언은 또 다른 문제를 일으켰다. 그는 우리 웹사이트에 온라인 주문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제안을 했다. 우리가 거절하자 그는 혼자서 판매 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하겠다고 했고, 우리는 그러라고 해버렸다. 브라이언은 수신자 부담 전화를 개통하고, 우리 회사 홈페이지와 비슷하게 생긴 온라인 주문 페이지를 만든 뒤에 그 둘을 링크했다. 하지만 그는 또 실패했다. 온라인으로 겨우 마우스 20개를 팔았을 뿐이다. 브라이언의 판매 실적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 꽝이었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