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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카운터스

밥 루츠 지음 | 비즈니스북스
빈 카운터스



밥 루츠 지음

비즈니스북스 / 2012년 6월 / 352쪽 / 15,000원



다시 GM으로 돌아가다

1998년 나는 70세 가까운 나이에 크라이슬러 부회장에서 물러난 후 『배짱: 크라이슬러를 세계 최고의 인기회사로 만든 7가지 경영법칙』이라는 책을 쓰고, 납축전지 분야 세계 1위를 달리는 엑사이드 테크놀로지의 CEO로 일하고 있었다. 2001년 나는 하버드 경영대학원 주최 만찬에서 연사로 초청받아 세계 1위 자동차 기업 GM의 CEO 릭 왜고너를 만났다. 그 자리에서 우리 두 사람은 자동차 산업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어느 날 고급 캐딜락 한 대가 우리 회사 정문 앞에 멈췄다. 운전기사가 문을 열자 키가 2미터 가까이 되는 남자가 내렸다. 릭이었다. 바로 그날이 내가 GM과 다시 인연을 맺게 된 날임과 동시에 9년에 걸친 애증 관계가 시작된 날이다.

안내를 받아 사무실로 들어온 릭이 물었다. "당신 같은 능력과 배경을 갖췄으면서 나이가 50세 정도 되는 사람을 혹시 아십니까?" "어딘가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GM을 컨설팅 해줄 수 있겠습니까?"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컨설팅만으로 의미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침묵의 시간이 이어졌다. 마침내 릭이 말문을 열었다. "지금 연세를 고려해볼 때, GM에서 몇 년간 일해주시기 어려울까요?" 이 말이 나오자마자 다음은 일사천리였다. 나는 세계 1위 자동차 기업 GM의 부회장이 된 것이다.

GM에 맞설 자가 없었다

1920년대 오늘날과 같은 자동차 회사의 모습을 갖춘 GM은 이후 1960년대까지 자동차 왕국을 건설했다. 미국에서 팔리는 차 두 대 중 한 대는 GM 차였다. 트렌드를 앞서가는 GM 차의 눈부신 디자인은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미국 소비문화의 주축이었다. GM이 처음 큰 타격을 받은 것은 소비자 운동가 랠프 네이더가 쓴 『어떤 속도에서도 안전하지 않다』라는 책 때문이었다. 네이더는 GM의 쉐보레 코베어의 엔진이 안정적이지 못하고 정면충돌하면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네이더의 책이 큰 반향을 일으키자 GM은 사설탐정을 고용하여 네이더의 뒷조사를 해서 비판을 잠재우려 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오히려 여론이 악화되면서 GM은 소비자의 신뢰를 상실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GM은 건재했다. 시장점유율은 50%에 달했고 GM의 한 해 매출액은 프랑스의 1년 예산을 넘을 정도였다. 1960년대 말 GM의 최고 경영진은 60-60-60 계획을 언급했다. "최고경영진이 60세가 될 때까지 시장점유율 60%, 주가 60달러"라는 내용을 실현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날은 결코 오지 않았다.

몰락의 시작

197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GM 조직 내부에는 권력 이동이 있었다. 잘나가던 50~60년대, GM 권력의 중심에는 미시건 주 워렌에 있는 GM 기술 센터가 있었다. 그곳에서 디자인, 엔지니어링, 연구개발이 이루어졌다. GM의 회장과 최고운영책임자는 항상 하드웨어 부문, 특히 엔지니어링 쪽에서 나왔다. 그리고 연예인 버금가는 유명세를 누리던 빌 미첼이 이끌던 디자인 부서가 있었다. 디자인 부서는 사내에서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었고 그 힘을 무소불위로 사용했기 때문에 다른 부서는 디자인 부서를 좋아하지 않았다.

1977년 미첼의 뒤를 이어 디자인 부서를 맡은 어브 리비츠키는 예산 준수와 팀워크를 중시하고 관리형 전문가를 중시하는 인물이었다. 이에 따라 디자인이 GM의 주인공이던 시절은 끝났다. 디자인 부서가 힘을 잃으면서 자동차 신모델 개발은 제품기획 부서에서 맡았다. 제품기획 부서 사람들은 시장분석 결과라는 걸 들고 나와서 차 외부와 내부 크기를 밀리미터 단위까지 정해주었다. 신상품을 창조해내던 디자인 부서는 제품기획 부서와 엔지니어링 부서의 지시를 받는 처지가 되었다. 디자인 부서를 깨부수고 나니 질서와 규율이 회복되었고, 제조비용이나 투자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대가는 혹독했다. 과거 관능적인 아름다움으로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던 디자인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물론 디자인 부서가 거만하고 흥청망청했던 부분이 있지만 이 정도면 벼룩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 격이었다.

적은 외부에도 있었다. 1973년 오일쇼크 이후 미국정부는 석유절약을 위해 새로운 자동차 연비기준을 만들었다. 이 기준은 미국 자동차 회사에 큰 타격이 되었다. 소형차만 생산하던 일본 회사들은 이미 이 기준을 충족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의 3대 자동차 회사(GM, 포드, 크라이슬러)들은 전체 차량을 소형화하고 더 가볍게 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야 했다. 이로 인해 엄청난 희생이 계속되었다. 크라이슬러는 거의 쓰러질 뻔 했다가 기사회생했고, 포드는 계속 사투를 벌여야 했다. GM은 간신히 전 차종에서 소형 모델을 출시할 수 있었다. 단기간에 많은 것을 바꾸다 보니 불량률이 높아지고 수십 년간 쌓아왔던 미국 자동차업계의 평판이 무너져 버렸다. 그리고 미국인들의 머릿속에 일본 자동차의 기술력이 뛰어나다는 생각이 심어지기 시작했다.

엉뚱한 곳에서 최고를 추구하는 기업

1950~1960년대는 GM에서 자동차 전문가가 점점 사라지고 경영 전문가가 떠오르는 시기였다. 1980~1990년대 들어 GM 경영진 중에는 엔지니어 출신이 별로 없었다. 경영진들은 차는 단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GM은 비용절감과 이윤극대화에만 신경을 썼을 뿐 고객들이 어떤 상품을 원하는지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다.

예를 들어 캐딜락은 세계적인 명차이고, 미국에서는 분명 최고의 차였다. 뛰어난 기술과 멋진 스타일 덕분에 확실한 브랜드 정체성이 있었다. 하지만 1980년대 초반 GM 경영진은 브랜드의 명성에 치명적인 위해를 가할 결정을 내렸다. 캐딜락의 매출을 크게 늘리면서 동시에 최고의 고급 브랜드로 만들자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GM의 캐딜락은 포드의 링컨에 대항하여 최고, 최대의 고급 브랜드가 되기 위한 물량 경쟁에 돌입했고, 중고차 시장에는 캐딜락과 링컨이 쌓이기 시작했다. 공급이 늘어나니 가격이 급락했고 노동자 계층에서 이들을 사기 시작했다. 그래서 과거의 명성은 사라졌고, 부유한 계층의 소비자들은 벤츠, BMW, 아우디처럼 더 비싸고, 질 좋은, 그리고 너무 흔하지 않아서 상류층의 상징이 될 수 있는 다른 브랜드를 찾기 시작했다.

1971년 나는 GM의 유럽 자회사인 오펠에서 일하다가 BMW로 회사를 옮겼다. 떠나기 몇 달 전 나는 GM 본사가 있는 디트로이트로 가서 오펠이 생산을 제안한 중형차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일을 맡았다. 디트로이트에서 나는 며칠을 기다린 끝에 이사회 의장인 로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제안서를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제안서 내용을 믿지 않네. 이 자료를 내 휘하의 특별분석팀에 갖다 주게." 특별분석팀을 찾아가자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이 내 자료에 있는 차트와 그래프와 도표를 손보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급하시지 않으면 1주일 기다린 후 보고를 올리는 게 좋습니다. 그래야 제가 충분한 시간을 두고 분석한 것처럼 보일 거니까요." 이렇게 해서 오펠의 중형차 프로그램은 승인을 받았다. 이런 것이 당시 최고를 추구한다는 GM의 기업문화였다. 이런 일을 겪었던 나에게 헤드헌터가 연봉의 5배를 받을 수 있으니 BMW 부회장을 맡아볼 생각이 없느냐고 했을 때 망설였을 리가 없지 않은가.

본격적인 개혁에 착수하다

30년 만에 GM으로 돌아온 나는 2001년 9월부터 정식근무를 시작했다. 이에 앞서 캘리포니아 몬테레이에서 열리는 유명한 자동차 전시회에서 GM을 만났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클래식 자동차들이 수백 대씩 참가하는 전시회에서 GM은 곧 출시될 캐딜락 CTS 모델을 자동차 담당 기자들에게 공개했다. 내가 보기에 이 모델은 외부 디자인은 괜찮았지만 내부 디자인이 한참 모자라서 소비자들의 눈에 딱 꽂힐 만한 매력이 없었다. 전시회 다음 날 GM 디자인 부문 부회장 웨인 체리의 초대를 받아 그가 머물고 있는 호텔로 갔다. 웨인은 현재 디자인 부서가 작업 중인 모든 프로젝트의 사진이 담긴 바인더를 보여 주었다. 그건 호러 쇼였다. 눈뜨고 봐줄 수 없을 정도로 전혀 경쟁력이 없어 보였다.

당시 GM의 개발총괄임원들은 디자인보다 향후 자신들의 연봉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목표의 달성 여부에만 관심이 있었다. 당연히 "동급 차량들 중에서 최고로 멋진 세단을 만들어보겠다."와 같은 목표의식 따위는 갖고 있지 않았다. 그 대신 오로지 수치에만 매달렸다. 그들은 비용, 투자액수, 하자보증비용, 차 한 대당 조립시간, 개발단계부터 실제 생산까지 걸린 시간 등을 중시했다. 웨인은 디자인이 엉망인 차가 출시되면 자신의 평판이 나빠질 것을 우려했지만 개발총괄임원들은 "그 사람 이야기를 들어봤자 시간낭비일 뿐이야."라는 식으로 웨인을 무시했다. 외롭게 코너에 몰린 웨인은 자신이 반대하는 신차들이 하나둘씩 출시되는 것을 무기력하게 바라보아야만 했다. 그때 나는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알 수 있었다. 나는 디자인 부서를 개발총괄임원들로부터 독립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나는 GM에 복귀한 처음 몇 주 동안 경험한 것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첫째, 최종디자인에 대한 실질적인 결정권이 없는 디자인 팀은 뭔가 명확한 지향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둘째, 마케팅 부서는 자동차 회사가 아닌 음료나 화장품 회사에나 적합할 만한 브랜드 관리를 고집하고 있다. 셋째, 기획 부서는 고객 니즈 분석에만 매달려 있다. 중요한 것은 고객 니즈 충족이 아니라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다. 넷째, 엔지니어링 부서는 과거 수십 년간 복잡한 규칙들을 만들어 놓았다. 휠과 펜더의 위치를 어떻게 할 것인지, 앞유리가 어떤 각도로 경사져야 신호등을 잘 볼 수 있는지 같은 것들을 정해놓은 의도는 좋았지만 그로 인해 디자이너들이 자유롭게 디자인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다섯째, 개발총괄임원 제도는 회사 내부 질서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비용절감, 제조시간, 부품 재활용 비율, 신차 개발 소요시간 같은 것들에 너무 집착하게 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여섯째, 깔끔하지 못한 일처리를 그냥 용인하는 문화도 문제였다. 그러니 일본이나 독일 차를 타다가 업무용으로 GM차를 렌트해본 사람들은 다시는 GM 차를 타지 않겠다고 다짐하곤 한다. 일곱째, GM 북미지역 고위경영진들은 이러한 문제를 거의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덟째, 전 세계적으로 GM의 제품개발 부문과 제조부문이 지역별로 나뉘어져 있는 것도 문제였다. 이 때문에 기본적으로 비슷한 차들을 불필요하게 중복해서 개발하고 생산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나는 GM이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가 아니라 단지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지역별 자동차 회사 네 개의 매출액만 합산해 놓은 지주회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어마어마한 문제를 다 해결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내 첫 3년 임기 정도로는 어림없었다. 나는 어느 것부터 먼저 손댈지 고민하지 않고 일단 동시에 전부를 손대기로 마음을 먹었다.

자동차 맨 vs. 숫자놀음꾼

나는 먼저 디자인 부서를 개혁하는 일에 착수했다. 나는 그저 디자인 부서가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 주기를 바랐다. 스튜디오에서 수석 디자이너들의 지휘 아래, 외부 간섭 없이 창의적인 결과물을 내놓는 그런 모습으로 말이다. 나는 새로운 사람을 찾는 대신 웨인에게 재기할 기회를 주었다. 일단 디자인에 대한 전권이 주어지자 웨인은 '캐딜락 16'이라는 놀라운 결과물을 내놓았다. 여기저기서 모던한 최고급 세단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개발총괄임원들은 디자인 결정권을 내놓은 것을 아쉬워했지만 일단 자신들이 손을 떼니 훨씬 좋은 디자인이 나오는 현실 앞에 할 말이 없었다. 이후로는 디자인 부서가 먼저 소비자들의 마음을 확 끌 수 있는 디자인을 제안하면 그때서야 비로소 엔지니어링과 제조부서에서 나서서 그것이 생산 가능한 것인지를 검토하게 되었다.

다음 개혁대상은 제품개발 부서였다. 이들은 숫자로 히트 상품을 개발해낼 수 있는 완벽한 수학적 모델을 개발하는 일에 매달려 있었다. 하지만 유행이 자주 바뀌고 유가가 들쑥날쑥한 상황에서 그런 모델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다. 고객들은 여러 차를 꼼꼼히 비교하고 분석해서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고객들은 브랜드를 고집한다. 또한 디자인이 멋진 차만 고른다. 나는 제품개발 부서를 제대로 활용하는 법을 터득해야 했다. 이들은 숫자에 강하니까 어떤 차를 개발할 때 다른 차를 개발하는 경우와 비교하면 판매량이 어떨지 등을 조사해보게 하는 방법을 이용했다. 조사결과가 맞는 것 같으면 그에 따르고 아닌 경우엔 폐기했다. 이렇게 해서 제품개발 업무는 제품개발 부서와 디자인 부서가 분담해서 하게 되었다.

또한 우리는 매주 금요일 오후에 인테리어 검토 회의를 열었다. 회의에서 현재의 모든 공정을 점검하고 틈이 벌어져 있지는 않은지, 손잡이와 스위치의 조작감이 이상하지 않은지 등과 같이 고객들이 오감으로 느끼는 부분들을 점검했다. 우리는 주요 경쟁 제품인 아우디와 폭스바겐 같은 차들을 회의실에 갖다 놓고 직원들을 상대로 4~5년 동안 거의 강의를 하다시피 했다. 처음에는 부회장인 내가 몇 년 동안 이 일을 직접 했다. 시간이 지나자 기업문화가 바뀌면서 디자인, 엔지니어링, 구매, 제조 각 부서들이 모두 인테리어를 업계 최고 수준으로 만들어보자는 목표의식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차의 실내건 실외건 완벽하게 만들어보겠다는 문화가 완전히 정착되었다. 몇 년 후 GM의 품질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글로벌 생산체제를 향한 멀고도 험한 길

GM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해외에 신차를 개발할 능력이 있는 조직이 있었다. 수십 년 동안 각 지역별로 독립적으로 돌아가는 회사들이 있는 것은 GM에 이득이었다. 사람들은 자기 지역의 브랜드를 선호했고, 이들 회사는 각자 자기 지역에 잘 맞춰 돌아갔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세계 각국의 자동차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의 선호가 비슷해지면서 지역별 운영체제로는 더 이상 규모의 경제 효과를 얻을 수 없게 되었다. 경쟁이 격화되고 정부 규제가 심해지면서 디자인 비용과 엔지니어링 비용도 증가했다. 급격한 변화를 맞아 GM의 각 지역 본부들은 적정 수준의 비용을 투입하면서 다양한 차량을 생산해 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다.

나는 각 지역본부의 틀을 넘어 전 세계 시장을 타깃으로 하여 한 장소에서 신차를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매달 열리는 자동차 전략회의에 글로벌 제품개발이라는 주제가 등장한 것이다. 이런 구상에 대한 격렬한 반발이 일어났고, 감정싸움으로 번지기도 하였다. 그러던 와중에 일이 터졌다. GM 아시아태평양 본부에서 소형 SUV가 필요하다면서 독자 개발을 요청한 것이다. 나는 우리가 이미 '새턴 뷰'나 '쉐보레 에퀴낙스' 같은 괜찮은 모델이 있으니 이를 활용해서 개발하면 시간과 돈이 절약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의 GM 대우에서 SUV를 잘 만들어 놓으면 GM의 유럽 본부가 이를 다듬어서 새로운 차를 개발할 수도 있고, 각자 자기 시장에 맞게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굳이 다르게 만들 필요가 없는 부분들은 공유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GM 아시아태평양지역본부 회장을 맡고 있던 프리츠 헨더슨은 독자 개발을 고집했다. 자동차 전략회의에서 세계주의와 지역주의가 격렬한 대립을 이어가며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결국 CEO 릭 왜고너가 결론을 내렸다. "한국에서는 기존 모델을 기반으로 개발하도록 하세요." 이렇게 해서 GM 각 지역본부들이 제품을 공유하게 되었고, 역사상 처음으로 글로벌 제품개발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한국에서 소형 SUV 개발프로그램이 성공한 것에 힘입어 우리는 차세대 중형 세단 개발에 착수했다. 이렇게 해서 출시된 모델이 바로 '오펠 인시그니아', '뷰익 라크로스', '뷰익 리갈'이다. 제품 개발에 있어 기본 구조 공유에는 원칙적인 합의를 이루어냈지만 각 지역별로 세부 사항을 조율하는 일은 너무 복잡했다. 우리는 엔지니어링 표준화 작업과 제조 부문 표준화 작업을 진행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했다. 통합제조방식을 도입하면서 디자인과 엔지니어링뿐만 아니라 용접 순서, 평가 방식, 제조 장비 같은 것들도 모두 통일해야 했다. 상당히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갔지만 결국 우리는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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