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열어가는 창조사업가들
정창권 지음 | 북코리아
미래를 열어가는 창조사업가들
정창권 지음
북코리아 / 2011년 10월 / 246쪽 / 13,000원
1장 위기라는 기회온달은 대학을 졸업하고 기업체에 취업을 하려는 취업준비생이다. 그는 최고 대학은 아니지만 나름 좋은 대학을 나왔고, 스펙도 그만하면 충분했다. 좋은 학점에 토익성적도 나쁘지 않았고, 공모전에도 몇 번 당선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그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여러 군데 기업체에 입사원서를 넣어 보았으나 면접이나 인턴 기회는 고사하고, 이력서조차 통과되지 못하였다. 인사과에 전화해서 물어보면, 학교 공부는 잘 했을지 몰라도 사회생활에 꼭 필요한 자신만의 전문성과 창의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후 그에겐 세상이 암흑과 같았고, 더 이상의 미래는 없는 듯했다. 그래서 좋아하는 공포물이나 보면서 세월을 헛되게 보내고 있었다. 이런 그에게 하루는 여자 친구인 평강이 창조사업가를 위한 아카데미에 참가하기를 권했다. "지난번에 우리 학교에서 강의하신 정 교수님 알지? 그 분이 이번에 정부 교육기업에서 실시하는 창조사업가를 위한 아카데미를 주관하신대. 내가 오빠의 지원서까지 써서 내봤어. 근데 운 좋게도 둘 다 합격했더라고." 온달은 마음이 내키지 않았으나 평강의 간절한 권유에 못 이겨 아카데미에 참석하기로 하였다.
그날 저녁 온달은 평강과 함께 창조사업가를 위한 아카데미에 참석했다. 강의실에는 40명의 수강생이 모여 있었는데,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사회자의 간단한 소개가 있은 후에 정 교수가 본격적인 강의를 시작했다. "근래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대기업이 중소기업화되고, 다시 개인기업화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습니다. 특히 날이 갈수록 자신만의 분야에서 전문성과 창의성을 토대로 경제적 이득을 추구하는, 이른바 '창조사업가'가 부각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모 대학 공예과에 다니는 여학생은 반지나 귀걸이들을 만들어 인터넷에 올려 팔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주문이 많이 들어와 방학 때도 계속 액세서리를 만들어 판다고 합니다. 어떤 직장인은 사람 목소리의 음성 파형을 이용하여 넥타이핀이나 브로치, 목걸이 등 액세서리를 만들어 '이 차장'이라는 브랜드로 팔았습니다. 평소 그는 미술에 관심이 많았는데 사람 목소리의 음성 파형이 마치 지문처럼 모양이 다르다는 점에 착안하여, 그것을 디자인하여 액세서리로 만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시대흐름에 따라 정부에서도 2009년부터 '1인 창조기업'이라는 명칭으로 이들 창조사업가들을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이것은 청년층의 실업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마련한 것입니다. 이 강좌는 창조사업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마련한 것입니다. 21세기 새로운 기업 트렌드인 창조사업가의 개념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각 분야별 성공사례 분석을 통해 그 세계를 다양하게 이해하며, 더 나아가 실제로 창조사업가가 되어보는 실습까지 해보기 위한 것입니다." 정 교수는 간략하게 강좌 소개를 마치고 나서 참석자들에게 각자 자기소개를 시키고 첫날 수업을 마쳤다.
2장 창조사업가란 무엇인가?다음 날 정 교수가 활짝 웃는 얼굴로 들어와 강의를 시작하였다. "창조사업가란 자신만의 분야에서 전문성과 창의성을 토대로 독립적이고 자유롭게 일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들은 대단히 지식집약형, 곧 전문성과 창의성을 발휘하여 경제적 부가가치를 추구한다는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창조사업가는 지식서비스 기반 경제의 핵심적 성장 동력으로 간주되기도 합니다. 이들은 주로 1인 기업이나 프리랜서 형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창조사업가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문성입니다. 창조사업가가 되려면 먼저 해당 분야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경험, 열정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와 함께 상당한 경영 능력, 즉 기업가적 성향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재능을 다양하게 활용하여 부가가치를 최대한 높이는 원소스 멀티유즈(one source multi use) 경영전략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는 문화콘텐츠 산업의 경영전략과 유사한 것으로써, 일석다조(一石多鳥)의 최고의 경영전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 교수는 계속해서 창조사업가의 특성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창조사업가의 특성은 첫째, 지식기반형 사업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이 생산하는 제품과 서비스는 각종 문화나 예술 작품, 전문지식이나 기술, 아이디어 상품, 소프트웨어, 이벤트 등 다양하고 깊이 있는 지식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둘째, 프로젝트형 사업을 한다는 것입니다. 고정된 직장에서 평생 한 가지 일만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 단위로 모여 함께 일하다가 그것이 끝나면 뿔뿔이 흩어지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신유목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셋째, 멀티플레이어라는 것입니다. 창조사업가는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함으로써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박진영의 경우 본업은 가수지만 작곡가이자 프로듀서, 회사 대표로도 활동하면서 자신의 수입원을 다각화하는 한편 사회적 명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넷째, 네트워크를 중시한다는 것입니다. 창조사업가는 독립적으로 일하는 동시에 여러 사람과 더불어 일합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능력 밖의 일들을 보완하지요. 다섯째, 자신을 브랜드화한다는 것입니다. 창조사업가는 대부분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공병호 경영연구소, 영철버거 등이 그것입니다. 자기 이름을 브랜드화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아이템이나 기술에 자신감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기타 창조사업가의 특성으로는 자기 의지대로 일한다는 '자율성', 자신의 취미를 살려 사업한다는 '취미의 사업화', 은퇴 없는 직장이라는 '평생직장', 공해가 없는 일이라는 '친환경산업'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창조사업가의 대상 분야는 아티스트, 엔터테이너, 아이디어 사업가, IT 개발자, 서비스업 종사자, 대중교육자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를 다시 최종 생산물 형태로 분류하면 지식(콘텐츠) 분야, 기술(제품) 분야, 대중 교육자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설명을 마친 정 교수는 창조사업가에 대한 정부정책과 지원제도를 알려주기 위해 중소기업청에서 나온 직원 한 명을 소개했다. 그 직원은 간단한 자기소개를 마치고 곧바로 강연을 시작했다. "저는 찾아가는 1인 창조기업 서비스인 '드림버스'의 운영을 맡고 있는 박 실장입니다. 요즘 고용 없는 성장 시대가 되면서 창업이 일자리 창출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외식업 위주 창업을 하면서 관련 시장의 경쟁만 심화시키고 많은 창업자들에게 실패의 쓴맛을 보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정부는 국민 개개인이 가진 아이디어와 지식을 활용하여 혼자서도 사업할 길을 열어주려 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1인 창조기업 지원 사업입니다. 우리나라 1인 창조기업의 숫자는 2009년 말 기준 20만 명으로 전체 경제활동 대비 약 1%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업종별로는 전문 과학기술 서비스(30.9%), 창작 예술 여가(14%), 출판영상(5%) 등의 순이며 미등록사업자 형태로 많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현재 정부의 1인 창조기업 관련 사업은 한국콘텐츠진흥원과 중소기업청에서 각각 진행하고 있습니다. 콘텐츠진흥원은 '콘텐츠 1인 창조기업 지원센터'를 설치해서 문화와 관련된 분야에 대한 아이디어 접수 및 심사, 상품제작과 상업화 등을 원스톱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육 과정을 개설하여 콘텐츠 분야의 우수한 창업인력을 육성코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청에서는 좀 더 확대된 영역에서 '아이디어 비즈뱅크'라는 인프라를 활용하여 지원 사업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이 사이트에 방문하여 등록신청을 하면 자신이 참여하고자 하는 분야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밖에도 중소기업청은 1인 창조기업에 대해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1인 창조기업에 프로젝트를 발주한 중소기업에게 지원하는 '지식서비스 구매 바우처', 우수한 1인 창조기업에 1인당 교육비의 50%까지 지원하는 자기계발 골드카드, 전국 18개 센터의 1인 창조기업에 공동 사무실과 회의실 등 사무공간을 지원하거나 법률 및 회계 서비스를 지원하는 1인 창조기업 비즈니스 센터, 1인 창조기업의 아이디어나 기술 등을 활용하는 중소기업에 기술개발비를 지원하는 제도 등이 그것입니다. 또한 앱 창작터란 사업을 시행하여 모바일 기반의 어플리케이션에 대한 교육 및 개발 지원을 하고, 1인 창조기업 드림버스를 운영하여 1인 창조기업의 아이디어 발굴 및 우수제품의 전시, 홍보, 상담 등 찾아가는 현장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3장 아티스트다음 날 정 교수가 강의를 시작했다. "오늘부터는 각 분야별 창조사업가에 대한 성공사례를 분석하여 벤치마킹하도록 하겠습니다. 창조사업가가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례 분석이 중요합니다. 이를 통해 위험부담을 줄이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사업을 위한 아이디어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창조사업가 분야는 아티스트, 엔터테이너, 아이디어 사업가, IT 개발자, 서비스업 종사자, 대중교육자 등이 있는데 먼저 아티스트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티스트의 종류로는 작가, 만화가, 화가, 음악가, 디자이너 등이 있는데 이들 중 창조사업가는 주로 소설가, 만화가, 영화나 드라마 작가 등 작가 층에서 많이 나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작품은 이야기성이 강하여 이후 다양한 활용에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아티스트 사례: 시인 원태연>
원태연은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한영고를 졸업하고 경희대 체육학과에 입학했습니다. 그가 처음 시를 쓴 것은 중학교 때였습니다. 그의 짝이 학교에서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가장 많았는데, 짝은 별로 관심없는 여학생으로부터 온 편지를 원태연에게 대신 읽도록 했습니다. 원태연은 팬레터 중에 조병화 시인의 '고독하다는 것은'이라는 작품을 보고 영감을 얻어 처음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대학에 입학한 후 원태연은 기존 문단으로의 진출을 시도했지만 신춘문예에 등단하지 못했습니다. 기존 문단에선 그의 시에 대해 낯설고 유치하다는 반응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시에 대한 열정이 강한 그는 대학 졸업 후에 작은 출판사를 찾아가 몇 개월 동안 허드렛일을 해 주었습니다. 시집 출판에 필요한 100만 원이 없어 직접 몸으로 때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1992년 마침내 그의 첫 시집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를 출간합니다. 이 시집은 밀리언셀러가 되어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의 시가 이렇게 큰 인기를 끈 이유는 '공감'이었습니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기에 사랑에 목말라하는 청소년들의 호응을 얻어 500만 부 이상의 시집이 팔려나간 것입니다. 2003년 이후 원태연은 대중가요 작사가로 왕성한 활동을 펼쳐 40곡이 넘는 대중가요를 작사했습니다. 그가 작사한 수많은 노래는 가수들에게 희망이 되었고, 또 대중들에게 많은 호응을 받았습니다. 2009년 원태연은 영화감독으로 변신하여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란 영화를 선보였습니다. 이처럼 원태연은 계속해서 여러 가지 문화콘텐츠 장르에 도전하며 자신을 변화시켜왔습니다. 그는 늘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도전 정신과 열정으로 사람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었던 것입니다.
4장 엔터테이너 "오늘은 엔터테이너, 곧 연예인 분야의 창조사업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이들은 그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로서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행동을 해서 인기를 얻고, 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유명세를 타면 자신만의 회사를 차려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하거나 혹은 다른 사업 분야로 진출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박진영은 수많은 히트곡을 낸 가수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로 내세운 JYP 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를 차린 후, 비, 원더걸스, 2PM 등 국내 정상급 가수들을 키워낸 프로듀서이자 'Tell Me', '태양을 피하는 방법' 등을 만든 작곡가로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엔터테이너 사례: 노홍철>
노홍철은 1979년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신사중, 현대고를 거쳐 홍익대 기계정보공학과를 졸업했습니다. 그는 방송인이 되기 전에 이미 유명한 사업가였습니다. 그는 예능과 장사에 관심이 많아 군대 제대 후 스스로 뭔가를 해보자고 결심했습니다. 그가 처음 시작한 것은 '닥터 노의 성격 클리닉'이었습니다. 닥터 노는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었고, '성격 클리닉'은 일종의 전화 상담사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버니까 이보다 더 이상적인 것은 없다고 생각하면서 사업에 재미를 붙였습니다. 그는 2002년 월드컵 당시 응원용품을 싼값에 떼다가 압구정동 길거리에서 팔았고, 꼴찌를 상대로 한 과외도 했다. 월드컵이 지나자 전철역에서 철 지난 CD를 팔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노점을 하다 보니 쇼핑몰이 그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는 2003년 '꿈과 모험의 홍철 동산'이란 인터넷 쇼핑몰을 열어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주로 파티용품과 폭죽놀이 세트를 팔았고, 직접 배송을 다니기도 하였습니다. 이 쇼핑몰이 홍철닷컴의 시초가 되었고, 지금은 노홍철닷컴으로 성장했습니다. 이 쇼핑몰의 성공은 명랑소년 성공기라는 이름으로 여러 잡지에 소개되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그는 홍철투어라는 중국 여행사를 만들었습니다. 중국에 물건을 사러갔던 경험을 바탕으로 개발한 이 투어상품은 당시 대학생들 사이에서 대인기였습니다. 이런 복잡한 인생경로를 거쳐 그에게 찾아온 기회가 바로 방송이었습니다. 노홍철은 2004년 7월 케이블 TV의 길거리 VJ로 방송에 데뷔를 했습니다. 그는 방송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보여주었고, 사람들은 반응은 경악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산만하고 정신없는 모습,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에 사람들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공중파 방송 '놀러와', '무한도전', '위기탈출 넘버원' 등에 출연하면서 본격적인 방송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노홍철은 마이너리그에서 인기몰이를 해서 당당히 공중파에 안착한 케이스입니다. 특히 독특한 매너, 과감한 말투, 가식 없는 행동과 웃음, 화려한 경력까지 갖추고 있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는 방송 외에 여러 사업도 병행했는데, 노홍철 닷컴을 통해 자신이 고르거나 디자인한 옷을 주로 판매했습니다. 당시 많은 연예인들이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했지만, 그의 쇼핑몰이 가장 독특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의 성공비결은 '즐김'에 있습니다. 그는 'If it's not fun, Why do It?(재미없는데 왜 해?)'라는 좌우명처럼 모든 일을 즐겼으며, 그가 만든 상품들도 그런 즐거움이 그대로 묻어난 것입니다. 그를 보면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5장 아이디어 사업자"오늘은 아이디어 사업가 분야의 창조사업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아이디어 사업가란 주부, 직장인, 학생 등 일반 국민이 평소 생활 속에서 터득한 아이디어를 토대로 각종 상품을 생산하는 것으로, 전문성과 창의성을 발휘하여 경제적 부가가치를 추구하는 창조사업가의 개념에 가장 부합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주로 가정주부의 참여가 많은 편인데 그들은 요리, 리폼, 살림정리법, 천연화장품 제조법 같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사업으로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그들은 대개 인터넷 블로그나 홈페이지, 쇼핑몰을 활용하여 창조사업을 펼친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아이디어 사업자 사례: 천기저귀 개발자 최영>
주부들이 아이들을 키우면서 일회용 기저귀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합니다. 자주 사러 가야 하므로 돈이 많이 들고, 쓰레기 배출량이 많아 치우는 것도 문제이고, 통풍이 잘 안 되어 기저귀 발진이 쉽게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막상 천기저귀를 쓰려 하면 눈앞이 캄캄해집니다. 천은 흡수력이 떨어져 커다란 천을 여러 번 겹쳐서 사용해야 하는데, 바쁜 주부들에게는 부담스런 일이거든요. 그래서 최영은 자신만의 신념과 아이디어를 토대로 천기저귀를 만들어냈습니다. 기존의 천기저귀에 일회용 기저귀의 장점인 흡수력을 더한 것입니다. 천기저귀는 겉으로는 한 장으로 되어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네 겹으로 되어 있어 천기저귀의 단점인 흡수력을 크게 보완했습니다. 또한 천을 사용하여 아기 체형에 맞게 주부들이 쓰기에 적당한 크기의 땅콩 기저귀를 개발했습니다. 2006년 천기저귀를 개발한 최영은 '베이비앙(아기천사)'이라는 이름으로 상표를 등록하고, 인터넷 쇼핑몰을 오픈하고, 오프라인의 신세계몰, 홈쇼핑 등에 입점했습니다. 많은 주부들이 원한 것이기에 천기저귀는 그야말로 대박상품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천기저귀로 현재 매년 약 20억 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개인 기업이었지만 지금은 대기업 못지않은 중소기업이 되었고, 중국에까지 지사를 두고 있습니다. 그녀의 성공 비결은 크게 세 가지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 열정과 의지입니다. 천기저귀를 개발할 당시 그녀는 흡수력과 착용감 등을 경험하기 위해 직접 천기저귀를 착용할 정도로 열심이었습니다. 둘째, 섬세함이었습니다. 그녀는 전직 주부에서 얻은 꼼꼼함을 바탕으로 회사를 키워나갔습니다. 기저귀 박음질만 해도 그저 한두 번 하는 것이 아니라 서너 번씩 박음질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제품을 만들었으니 깐깐한 주부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소비자의 목소리에 항상 귀를 기울였습니다. 소비자의 집을 직접 방문하거나 온라인을 통해 반응을 계속 확인했습니다. 이렇게 소비자의 의견을 적극 수용하려는 자세가 요즘 시대의 진정한 CEO가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