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얻어야 세상을 얻는다
허태학 지음 | 이지출판
마음을 얻어야 세상을 얻는다
허태학 지음
이지출판 / 2011년 9월 / 292쪽 / 14,500원
CHAPTER 1 풀숲 우거진 길을 뚜벅뚜벅 걷다삼성그룹 최장수 CEO의 비결
내가 처음 CEO가 된 것은 1993년 삼성에버랜드의 전신인 중앙개발 대표이사를 맡으면서부터다. 이후 호텔신라를 거쳐 삼성석유화학에 이르기까지 대표이사 직함을 가지고 일한 시간만도 16년에 달한다. 42년에 이르는 직장생활 가운데 절반 가까운 시간을 CEO로 살아온 셈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삼성의 최장수 CEO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CEO의 자리에 오르는 것도 어렵지만 그 자리를 유지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그렇게 오랫동안 CEO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특별한 비결이 있습니까?" 주변사람들로부터 자주 이런 질문을 받곤 했다. 물론 특별한 비결 같은 것이 있을 리 없다. 그래도 문득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선공후사先公後私'라는 말이다.
'선공후사'란 개인보다 조직을 우선하는 마음이다. 조직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잊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덕목이다. 조직생활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개인의 영예를 위해 조직을 이용하거나 회사의 이름으로 사사로운 욕심을 챙기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아무리 능력이 출중하고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투명하고 공명정대하지 못하면 결코 오래갈 수 없다. 그것은 어떤 분야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여러 조직을 옮겨 다니면서도 이 정신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공교롭게도 나는 삼성에 입사한 이후 줄곧 신규 프로젝트를 담당해 왔다. 장충동에 호텔신라를 짓는 일에서부터 태평로 삼성 본관 건설, 호텔신라 면세점 오픈, 제주신라호텔 오픈, 자연농원의 에버랜드 전환, 가평베네스트, 안성베네스트 골프장 건설 등이 대표적이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성시키고 나면 또 다른 프로젝트로 옮겨 가는 일의 반복이었다. 신규 프로젝트라고 하면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매끄럽게 일을 처리하지 못하면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부정이나 잡음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나는 그런 과정에서 사사로운 개인의 욕심을 앞세우기보다 항상 회사를 우선하는 마음으로 임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아마 그 많은 신규 프로젝트를 수행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선공후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직장 초년생 시절 이병철 선대회장을 가까이서 접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삼성 입사 후 처음 몸담았던 중앙개발 시절의 일이다. 당시 장충동 호텔신라 건설을 담당했다. 공사를 무사히 마치고 나자 바로 본사 감사팀에서 공사 전반에 걸친 감사를 시작했다. 대규모 공사가 있으면 공사비용이 제대로 집행되었는지 파악하기 위해 감사를 실시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나는 조달을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 입장에서도 감사는 무척 중요한 사안이었다.
하지만 감사팀이 내려온 지 이틀 만에 모든 감사가 중단되었다. 이병철 선대회장께서 감사팀에 철수 지시를 내리신 것이었다. "감사를 뭐 하러 하노. 건물을 싸게 잘 지었는데 표창을 줘야제." 리더들은 보지 않고 말하지 않아도 일이 돌아가는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선대회장께서도 특별히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 공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꿰뚫어 보고 계셨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 팀에서 공사를 정확하게 했다는 것도 이미 파악하고 계셨다. 물론 그때 나는 프로젝트를 책임지는 위치에 있지는 않았지만, 큰일을 할 때는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결코 사소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하며 언제나 공명정대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고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공公을 앞세우면 개인적인 이익들은 나중에 언제라도 돌아오게 되어 있다. 눈앞의 작은 이익을 탐하는 마음을 버리면 그에 대한 보답이 천천히 오랫동안 되돌아온다. 개인보다는 늘 조직을 먼저 생각했던 정신이 오랫동안 CEO로서 경영 일선에 머무를 수 있었던 요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라도 녹일 만큼 뜨거워 본 적이 있는가
제대 후 1969년에 삼성그룹에 입사한 나는 중앙개발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총무부 소속으로 건설 공사에 자재를 조달하고 관공서를 통해 각종 인허가 문제들을 해결하는 등 공사 전반을 지원하는 일이었다. 호텔신라 공사를 완전히 마무리하고 전관 개관을 한 것이 1979년 3월이었다. 어느덧 내 직책도 총무부장이 되어 있었다. 호텔 공사도 끝났으니 이제 다시 그룹으로 돌아가 새로운 일을 맡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경영진으로부터 뜻밖의 지시가 내려왔다. "허 부장, 그룹으로 돌아가지 말고 호텔 매니지먼트를 한번 해보게. 호텔을 처음 시작하는 것이니 지금부터 함께 하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 않겠나."
호텔을 짓는 일과 호텔을 운영하는 일은 조금도 관련이 없다는 것은 누구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호텔 영업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거나 한 번이라도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갑작스러운 제의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웬만하면 피하고 싶었지만 조직원으로서 회사의 지시를 거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총무부장에서 부총지배인으로 승진한 다음 호텔 매니지먼트로 유명한 미국 코넬대학으로 1년간 연수를 떠났다. 호텔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나 다름없었지만 나는 코넬대학 연수를 통해서 호텔 경영에 대한 이론적인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미국 연수에서 돌아온 후 본격적인 호텔리어로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호텔 경영에 대한 공부를 하고 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자신감도 생겼다. 영업도 순조로워서 경영이 흑자로 전환되어 국제적인 명문호텔로 도약하기 위한 기반을 다지고 있었다. 그런데 호텔신라가 어느 정도 안정궤도에 오를 즈음, 면세점 오픈이라는 새로운 임무가 내게 주어졌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외국 관광객들을 위해 면세점 사업에 새롭게 진출하게 되었고 이때 '초대' 사업부장을 맡은 것이다. 어쨌거나 호텔신라 면세점은 후발주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면세점 시장에 뛰어든 지 6개월 만에 기존 면세점의 간판 주자였던 동화 면세점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으로 급성장하며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할 수 있었다.
또한 호텔신라 초대 외식사업부장을 맡아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급식사업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당시 정부에서는 선수촌과 기자촌의 급식사업을 국내 기업이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외국 단체급식 전문 업체에게 용역을 주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호텔신라가 중심이 되어 롯데호텔과 프라자호텔이 연합하여 정부를 설득한 끝에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급식사업을 공동으로 수주하게 되었다. 또한 그 노하우를 살려 1988년 서울올림픽 급식사업도 거뜬히 수주할 수 있었다.
면세점 오픈과 급식사업 진출을 성공적으로 끝낸 후 잠시 숨 돌릴 틈도 없이 또다시 신규사업부로 발령이 났다. 이번에는 새로운 호텔이었다. 호텔신라는 국내 최고 호텔의 자리를 구축하고 있었지만 호텔 사업 특성상 하나의 호텔로는 지속적인 성장이 어렵기 때문에 체인 호텔 진출을 적극 추진하고 있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바로 제주였다. 1987년 후반 전담조직이 구성되어 본격적으로 사업이 추진되었고, 후대에 길이 남을 최고의 걸작을 만들자는 경영층의 확고한 의지와 최고급 체재형 리조트 호텔을 건설하겠다는 명확한 목표로 새로운 호텔 건설이 본격화되었다. 나는 제주신라호텔의 '초대' 사업부장을 맡아 호텔 공사 때부터 참여했으며, 호텔이 완공되고 난 후에는 '초대' 총지배인을 맡아 경영을 총괄하게 되었다.
'초대'라는 타이틀은 미지의 길을 가는 자에게 주어진 '훈장'과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이라는 것은 누구도 밟아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이기에 앞서 지나간 사람들의 발자국을 볼 수 없다. 모든 것을 스스로 헤쳐나가야 하는 운명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이루어 냈을 때 얻게 되는 결실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콤하다. 스스로 성취했기 때문에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다. 무수한 신규 프로젝트를 맡았던 경험이 직장생활 내내 나를 성장시켜 준 소중한 자양분 역할을 했음을 훗날 깨닫게 되었다.
맡은 신규 프로젝트마다 성공적으로 안착시킬 수 있었던 특별한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만약 비결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열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오너가 아니라 월급쟁이임에도 내 사업인 것처럼 온몸을 바쳐 일했다. 최선의 성과, 최고의 성과를 내는 주인공이 되자는 열정이 내 마음속에 가득했다. 열정이야말로 사람을 감동시키고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드는 힘이다. 뜨거워야 녹일 수 있다. 누구라도, 무엇이라도 녹여 버릴 수 있는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가슴에 손을 얹고 한번 생각해보라. 자신이 얼마나 뜨거운 존재인지, 또 얼마나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는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꿀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가슴속에서 솟구치는 뜨거운 열정에 있다.
CHAPTER 2 이노베이션 컨버전스, 혁신을 융복합하라혁신의 3대 필수 영양소
우리 몸이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영양소가 고루 필요하듯 혁신 활동도 골고루 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특히 고객만족경영, 6시그마, 지식경영은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혁신의 '필수영양소'라고 할 수 있다.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고객만족경영은 마음, 6시그마는 손과 발, 지식경영은 머리에 해당된다. 각각의 혁신 방법론을 따로따로 도입해 본 경험은 있지만, 삼성석유화학에서처럼 세 가지를 동시에 추진한 것은 내 개인적인 경험으로 볼 때도 새로운 도전이었다.
"한 가지 혁신도 제대로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세 가지 혁신을 동시에 추진한다면 직원들이 따라가기 힘들 겁니다." 세 가지 혁신을 한꺼번에 추진하는 것에 대해 회사 안팎에서 반대 의견도 많았다. 하지만 세 가지를 병행한다고 해서 세 배의 힘이 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혁신 기법의 상호 연관성으로 시너지효과가 나타나 힘은 덜 들고 효과는 더욱 커지게 된다. 나에게는 오랜 기간에 걸쳐 쌓아 온 혁신 경험이 있었다. 더욱이 삼성석유화학의 기업문화나 조직구조를 살펴보니 세 가지 혁신 활동을 동시에 추진하기 좋은 여건이었다. 우선 직원 수가 3백여 명 수준으로 많지 않고 대부분 전문 용역에서 고정적인 업무를 해오고 있었다. 또한 계절적 요인이나 상황에 따른 변수가 작은 조직이었으며, 현장에서 이미 다양한 개선 활동을 해 온 경험이 있다는 점도 큰 장점이었다.
단순히 세 가지 혁신을 동시에 추진했다고 해서 그것을 '이노베이션 컨버전스'라고 한 것은 아니다. 이노베이션 컨버전스의 가장 큰 특징은 혁신의 융복합, 즉 혁신을 추진하는 조직과 인력의 통합을 들 수 있다. 삼성석유화학에서는 6시그마, 지식경영, 고객만족경영을 각각 담당하는 별도의 사무국을 두지 않고 '3대 혁신 통합 사무국'이라는 하나의 조직에서 세 가지 혁신을 담당하고 이끌어 나가도록 했다. 실제로 3대 혁신은 서로 공유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았고, 그것이 시너지효과를 내면서 조직 전체에 상승효과를 가져왔다. 흔히 어떤 조직에서 혁신을 한다고 하면 관련 담당자들을 위한 혁신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세 가지 혁신을 동시에 추진하다 보니 조직 구성원 모두 빠짐없이 혁신 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고 또 서로 간의 연계 효과도 뛰어났다.
사실 한 가지 혁신 기법만으로는 기업 내 혁신을 완벽하게 이끌어 가기 어렵다. 이른바 약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6시그마는 계량 계측이 가능한 문제해결 방법론이지만, 지식경영의 뒷받침이 없을 경우 애써 도출한 방법론 자체가 일회성에 그치고 회사의 자산으로 남지 못할 위험이 있다. 지식경영의 경우 시스템 구축 수준에만 머무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6시그마의 추진 로드맵, 벨트 체계 등의 장점을 적극 차용해 조직문화에 흡수시켜 지식경영의 생활화를 이루어 낼 수 있었다. 결국 이 세 가지 혁신 기법은 상호보완을 통해 3대 혁신 사이클을 이루며 하나의 수레바퀴처럼 굴러갈 수 있게 되었다. 고객만족경영은 혁신의 출발점, 6시그마는 혁신의 엔진, 지식경영은 한계 돌파를 위한 가속기 역할을 하게 됨으로써 이노베이션 컨버전스의 효과를 발휘한 혁신적인 회사로 부상할 수 있었다.
삼성석유화학은 2004년부터 한국능률협회에서 주관하는 고객만족경영 대상 단골 수상 기업이다. 2008년까지 5년 연속 수상으로 고객만족경영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석유화학회사가 고객만족경영 대상을 수상한 것은 삼성석유화학이 처음이자, 지금까지도 유일하다. 서비스업이 아닌 제조 기업에서 고객만족경영 대상을 수상한 사례를 찾아봐도 삼성석유화학이 거의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고객만족경영이라고 하면 일반 소비자들과 많이 접촉하는 백화점이나 호텔 등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이 상을 받은 업체들을 보면 대부분 유통업체나 금융기관, 이동통신사 등이다.
삼성석유화학의 6시그마 성공 사례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많이 소개될 정도로 인정을 받았다. 여기에 21세기 모든 기업들의 필수적인 경영 혁신 요소로 손꼽히고 있는 '지식경영'까지 도입, 성공적으로 정착시켰다. 대부분의 기업은 하나의 혁신도 제대로 성공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삼성석유화학은 3개의 혁신을 한꺼번에 도입하여 진행하면서 모두 성공을 거두었다. 3대 혁신을 통합시켜 '이노베이션 컨버전스'를 구축하고 있는 삼성석유화학의 경영혁신 사례는 많은 경영전문가들 사이에서 연구 대상이 되었다.
CHAPTER 3 마음의 눈으로 본다, 오감경영오감으로 경영하라
서비스 업종에 오래 종사한 덕분에 운 좋게도 전 세계의 수많은 일류 호텔과 식당, 골프장, 와이너리 그리고 테마파크를 다녀 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수많은 여행 경험 가운데 특히 전 세계 와이너리 방문에 대한 기억이 오랫동안 남아 있다. 미국의 나파밸리에서부터 프랑스의 보르도, 부르고뉴 등 전 세계 무수한 와인 산지와 와이너리를 둘러보면서 나는 서비스의 본질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기도 했다.
서비스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순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숙성되는 와인과 같이 고객과 서비스 직원과의 지속적인 관계 향상 속에서 서비스 또한 한층 완성도가 높아진다. 그렇기 때문에 첫 만남에서부터 지속적인 서비스 유지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나가려면 서비스 직원은 다양한 요건을 구비해야 한다. 일단 서비스 직원이 고객과의 첫 대면에서 호감을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감성이다. 감성적으로 좋은 느낌feeling을 주어야 한다는 것인데, 즉 고객의 오감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각(눈), 후각(코), 미각(혀), 청각(귀), 촉각(피부)으로부터 어느 것 하나 거슬리거나 불쾌하게 느껴지는 것이 없도록 자기관리, 환경관리, TOP(Time, Occasion, Place) 관리에 소홀해서는 안 된다.
다음은 지성知性이다. 고객이 감성적으로 만족감을 느끼면 호감이 가는 직원과 대화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된다. 대화는 고객과 직원의 관계를 원만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로서, 대화 과정을 통해 상호 이해도와 호감을 높일 수 있다. 고객이 묻는 질문에 막힘없이 답변할 수 있도록 지적인 폭을 넓히고, 알고 있는 정보 또한 최신의 것을 유지해야 한다. 음식, 와인, 칵테일, 치즈 등 고객에게 제공되는 상품에 대한 정보는 물론이요, 회사의 역사, 경영진의 구성에서부터 최근 사회 이슈가 되고 있는 문화나 스포츠 분야의 보편적 내용에 이르기까지 대화의 소재가 될 수 있는 내용을 미리 파악해 두는 것이 좋다. 다만 자칫하면 감정을 상하게 하기 쉬운 정치, 경제, 사회, 종교와 관련된 이야기는 가급적 언급하지 않는 것이 좋고, 설혹 고객이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하더라도 자연스럽게 다른 주제로 전환하는 순발력이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여기에 언급한 것 이상의 지적 수준을 갖춘다면 금상첨화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