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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 이야기

트레이시 카바쇼 지음 | 라이온북스


나이키 이야기

트레이시 카바쇼 지음

라이온북스 / 2011년 9월 / 249쪽 / 13,000원



탁월한 영감을 불어넣다




미식 축구 선수 아드리안 피터슨은 어릴 적부터 나이키의 광고를 보며 스포츠 영웅이 되기를 꿈꾸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루었다. "나이키는 제게 정말 큰 영향을 미쳤어요. 나이키 광고에 나온 선수들 보 잭슨이나 마이클 조던처럼 되고 싶었거든요." 피터슨의 마음을 움직인 TV 광고는 오늘날 전설로 불리는 만남을 통해 태어난 한 회사에서 창조되었고, 이 기업은 스포츠 산업의 형태를 완전히 바꾸어버렸다. 피터슨이 태어난 1985년 전설적인 농구 스타 마이클 조던이 나이키와 손을 잡았다. 최초의 에어 조던 농구화는 바로 그 해에 탄생했으며 당시 신인선수에 불과하던 조던은 그 제품을 신고 광고모델로 나섰다. 빨강, 하양, 검정, 이 세 가지 색상과 함께 그 유명한 나이키의 스우시 로고가 박힌 에어 조단 1탄은 너무나 혁명적인 제품이었고, NBA 사무국은 경기 복장의 통일화 규정을 위반했다며 이 신발의 착용을 금지했다.

그때부터 조던의 이름은 나이키와 동일어가 되었다. 이는 그가 25년이란 세월 동안 이 회사의 제품을 지지한 덕분이다. 최초에 제작된 에어 조던 1탄에서 시작하여 2008년 초에 나온 에어 조던 23탄까지 각 신발에 차례로 번호가 매겨지면서 총 23가지 디자인이 탄생했다. 나이키의 사업부인 조던 브랜드는 2009년부터는 1탄~23탄까지 신발 뒤에 표시했던 연번을 버리고 에어 조던 2009라는 제품을 발표했고, 2010년에는 첨단 기술로 무장한 조던 2010을 공개했다. "새로운 신발이 나올 때마다 소비자들은 에어 조던의 차기작이 자신의 상상을 뛰어넘길 바라며 제게 압박을 가하죠." 조던은 설명한다. "에어 조던 2010은 조던 브랜드의 미래를 그리는 동시에 저희 브랜드의 창조 능력에 한계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널리 알려진 조던의 광고 중에 '실패(failure)’라는 제목의 광고가 있다. 실패를 말하는 장면에서 무슨 자극을 받겠느냐고 의심할지 모르지만 이 영상은 마음속에 어떤 열망이 솟구치게 한다. 조던은 이 광고에서 경기장 통로를 걸으며 농구 선수로서 자신이 겪은 좌절을 이야기한다. 특히 그는 선수 생활을 통틀어 9천개가 넘는 슈팅에 실패하고, 모든 이의 기대 속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공을 던졌지만 26번이나 실패를 경험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마지막 한 마디를 건넨다. "나는 살면서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고, 그래서 성공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마케팅 방식을 경험했지만 이 문장만큼 나에게 강렬한 자극을 준 것은 없었다. 마이클 조던의 마지막 한 마디는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전혀 의미 없는 소리로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 말 속에는 숱한 도전과 좌절 속에서도 날마다 새로운 목표를 좇고 꿈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한 사람이 있다.

승리의 여신이 이끈 미래



나이키는 꿈이 결단력, 끈기, 창의력, 풍부한 지략, 수많은 땀방울과 함께할 때 실제로 달성된다는 사실을 증명한 멋진 표본이다. 나이키의 창업자는 오리건 대학 육상부 감독이었던 빌 바워만과 같은 대학 육상선수 출신 필 나이트이다. 원래 바워만은 육상 선수들을 위하여 육상화를 개선하는 데 관심이 많아서 직접 신발을 개조해서 선수들에게 제공하곤 했다. 필 나이트는 일본 오니츠카 타이거가 생산하는 운동화의 미국 내 판매를 맡고 있었는데, 운동화 견본품 몇 켤레를 바워만에게 보낸 적이 있었다. 견본품을 본 바워만은 기뻐하며 나이트에게 자신이 직접 고안한 신발 디자인을 오니츠카 타이거에게 제공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이후 두 사람은 각자 50달러를 투자하여 1964년 나이키의 전신인 블루 리본 스포츠를 설립했다.

1965년 스탠퍼드 대학 육상 선수 출신인 제프 존슨이 합류하여 마케팅과 판매 업무를 담당했다. 존슨은 1971년 승리를 이끄는 그리스 여신 니케에 대한 꿈을 꾸었고, 회사에서 처음으로 제작한 축구화 이름으로 '더 나이키'를 선택했다. 이 신발에는 그 유명한 스우시 로고가 붙었다. 나이키의 상표인 스우시 로고는 그리스 여신의 날개를 상징한다. 이 로고를 만든 사람은 디자이너 캐롤린 데이비드슨으로 그녀는 1983년까지 나이키에서 근무했다. 그녀는 로고를 그린 대가로 35달러를 회사에 청구했다. 나이트는 처음에 그녀의 디자인을 보고 이렇게 반응했다. "별로 마음에 드는 건 아닌데, 그래도 차츰 좋아지지 않을까 싶네요." 그는 그녀가 은퇴할 무렵 스우시 로고가 새겨진 다이아몬드 반지와 함께 엄청난 양의 회사 주식을 선사했다.

창의력이 넘쳐났던 바워만이 1970년대 초에 디자인한 신발 중 하나는 그의 아내가 사용하던 와플 굽는 틀에서 탄생했다. 그는 신발과 땅바닥 사이의 마찰력을 높이기 위해 격자무늬 돌기가 달린 밑창을 개발했는데, 이와 같은 발상은 그가 와플을 굽는 금속 틀에 시험 삼아 액상 고무를 부어 넣으면서 생겨났다. 이 독특한 밑창은 이후 달리기용 운동화의 디자인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블루 리본 스포츠는 미국의 운동화 산업을 이끌며 빠른 발전을 이룩했고, 1978년 마침내 회사 이름을 나이키로 변경했다. 나이키는 전설적인 테니스 선수 존 매켄로와 계약을 맺고 각종 제품을 후원했다. 이후 주요 스포츠 종목에서 활약하는 전 세계의 운동선수들이 나이키의 신발을 신고 경쟁하기 시작했다.

JUST DO IT



작가이자 경영 컨설턴트인 딘 드비어스는 운동화 산업을 휘어잡은 나이키의 행보를 주시해왔고, 이 회사가 광고에 어떤 노력을 들였는지를 잘 알고 있다.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1982년 광고를 시작하기 전까지 나이키는 프로선수들과 대학생 운동부를 후원하는 데 모든 노력을 쏟아 부었다. 이러한 전략으로 이 브랜드는 열렬한 지지층을 획득했다. 그들의 신발이 운동선수에게 맞춰 제작된다는 말은 진정성을 얻었고, 이와 더불어 나이키는 선수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요인과 그들의 기질을 매우 잘 이해하게 되었다. 또한 이 회사는 인간의 심정적 동기를 그 특유의 시선을 통해 이해하고 있으며, 또 거기서 파생되는 보상을 알고 있었다. 'Just Do It’ 광고는 이런 내용을 압축해서 나타낸 것이다. 경쟁과 건강한 신체가 안겨주는 활기, 도전을 구체화한 광고이다."

1980년대의 시작과 함께 나이키는 기쁨의 폭죽을 터뜨렸다. 이 무렵 증권시장에 상장되었고, 테일윈드 운동화와 함께 나이키 에어 기술을 공개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나이키는 침체를 겪었다. 당시 나이키는 급격히 인기를 얻던 에어로빅 분야에 대해 큰 오판을 했고, 미개척지나 다름없었던 그 시장을 새로 등장한 경쟁자들에게 넘겨주면서 신발 업계의 리더라는 위치에서 떨어진 것이다. 하지만 나이키는 1987년 대대적인 마케팅을 통해 혁신적인 에어큐셔닝 시스템을 밖으로 드러낸 최초의 운동화, 즉 에어맥스를 세상에 알리며 신발업계의 왕좌를 재탈환하기 위한 움직임을 이어갔다. 그리고 이듬해 'Just Do It’이라는 광고 문구가 화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나이키의 기발한 광고는 이후 남은 1980년대 내내 이 회사가 줄곧 업계 수위를 차지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으며, 1989년에는 '보는 뭐든지 잘해요'라는 광고가 등장해 큰 인기를 끌었다. 미식축구와 야구에서 활약하던 보 잭슨을 주인공을 내세운 이 독특한 광고는 나이키가 크로스 트레이닝 분야로 점차 발을 넓히면서 탄생했다.

1980년대 이래로 미식축구, 야구, 농구, 테니스, 축구, 골프 경기에서 이름을 날린 수 많은 선수가 나이키 운동화를 착용했다. 마이클 조던과 보 잭슨에서 시작된 그 면면은 코비 브라이언트, 마이클 조던, 아드리안 피터슨 등 셀 수 없이 많은 운동선수로 변화했다. 광고를 빛낸 얼굴이 오늘날의 스포츠 스타로 바뀐 것과 마찬가지로, 거기에 담긴 메시지 역시 시대에 맞춰 진화했다. 나이키는 2000년과 2002년 각각 '다음 날 아침(Morning After)'과 '움직여(Move)'라는 TV광고로 에미상을 받았다. 드비어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이키는 브랜드 전체가 현재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에 대해 근원적인 수준에서 깊은 관심을 보이고 이것을 잘 반영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런 특성을 기반으로 이 브랜드는 특유의 독창성을 잘 살려나갔고, 광고계의 흐름을 서서히 바꾸면서 거기에 큰 추진력을 부여했지요." 그는 나이키가 늘 새로운 유행을 이끌면서도 꾸준히 브랜드 정체성을 유지하며, 한 브랜드를 움직이는 힘이 고객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전설이 되어라



천재적인 농구 선수 마이클 조던이 부와 명성을 막 손에 넣기 시작하였을 때 그의 재능을 알아본 나이키가 재빠르게 후원 계약을 맺으면서 1985년 첫 번째 에어 조던 농구화를 출시했다. 그 후로는 나이키에서 새로운 에어 조던을 발표하는 일은 일종의 연례행사가 되었다. 나이키에서 각 제품이 나름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시작하면서, 결국 나이키의 상징인 스우시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조던이 농구공을 들고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모습을 그려낸 '점프맨(Jumpman)' 로고가 들어섰다. 이 상표가 붙은 신발은 조던 브랜드 제품이라는 뜻이다.

에어 조던 2010은 170달러의 가격에 출시되었다. 마이애미 히트의 드웨인 웨이드는 이 혁신적인 신발을 신고 경기장에 나선 최초의 프로선수이다. 현재 그는 이른바 팀 조던(Team Jordan: 조던 브랜드의 후원을 받는 선수들)의 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린 상태이다. 웨이드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말했다. "저는 시카고 남쪽 지구에서 마이클 조던을 우상으로 여기며 자랐고, 그가 경기장에서 보여준 모습처럼 성공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어요. 저는 이 브랜드와 에어 조던에 담긴 모든 가치를 존중합니다." 에어 조던 2010은 나이키의 특별 기획과 디자인을 담당하는 팅커 햇필드 부사장과 조던 브랜드의 디자인 총괄 책임자인 마크 스미스의 합작품이다. 신발의 명인 두 사람이 창조한 결과는 측면에 투명한 열가소성 투명 우레탄 창을 달아 조던 브랜드 최초로 신발 내부가 보이게 만든 기능성 농구화였다. 이 농구화에는 발가락을 감싼 코싸개와 발등을 덮은 갑피가 독립된 층상구조를 보이며, 이런 구조 덕분에 에어 조던 2010은 아무 제한없이 실제 발의 유연성과 움직임을 재현한다. 이 혁신적인 디자인에는 선수의 민첩성을 향상시킨다는 독특한 발상이 담겨있다.

에어 조던 2009는 1에서 23으로 이어진 숫자의 흐름에서 탈피한 첫 번째 신발이다. 최초에 등장한 신발은 에어 조던 1탄으로 불렸고, 그 후로 이 제품의 계보는 2008년 출시된 23탄까지 이어졌다. 2009년에 출시된 신제품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과 함께 에어 조던 1탄에서 23탄으로 이어진 연번의 퇴장을 알리며 마이클 조던이 남긴 유산의 고유성을 보존하는 데 일조했다. 에어 조던 2009가 발표되고 얼마 되지 않아 조던 브랜드는 뉴올리언스 호네츠에서 활약 중인 크리스 폴의 전용 농구화가 출시된다고 알렸다. 이 제품의 이름은 조던 CP 3.Ⅱ로 조던 브랜드가 폴의 전광석화 같은 움직임을 떠올려 제작한 신발이다. 이 신발은 폴이라는 농구선수의 성공에 큰 영향을 미친 신념, 가족, 그리고 후원자들을 담아냈다. 유명 선수들을 위해 공들여 제작한 신발 외에도 조던 브랜드가 출시한 제품에서는 별다른 결함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지금까지 조던 브랜드는 주력 상품인 신발의 품질뿐 아니라 다른 면에서도 늘 그 명성에 걸맞는 모습을 보였다.

팀 조던은 조던이 선수 시절에 중요히 여긴 가치, 즉 헌신과 혁신, 탁월한 실력, 노력을 통한 목표 달성 등을 믿고 따르는 선수들로 구성되었다. 조던 브랜드는 학교 선생님들을 돕자는 취지로 1999년부터 조던 펀더멘털즈라는 교육 후원 사업을 시작하여 수익금 일부를 기부하고 있다. 마이클 조던은 웹사이트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사업은 선생님들을 지원하고 부수적인 재원을 공급해 학생들의 성공을 돕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후원금은 교육계의 창의성을 향상시키고 더 나은 교과 과정을 만드는 데 필요한 물자 지원에 쓰인다. 드웨인 웨이드는 조던 펀더멘털즈 후원 사업의 일환으로 마이애미 놀랜드 고등학교에서 기부 행사를 주최했다. 그는 깜짝 손님으로 등장해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는 그 자리에 모인 학생들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과 프로 농구 선수로서 겪을 일을 비롯해, 공익 활동을 위해 자발적으로 나서 일하는 것과 교육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팀 조던 소속 선수들은 조던 브랜드를 도와 지역 봉사 활동이나 교육과 관련된 높은 이상을 실천하는 데 긍지를 느낀다. "팀 조던의 일원이 된다는 건 정말 특별한 일이에요."

대학 스포츠에 전례를 남기다



2009년 짐 트레슬 감독이 이끄는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미식 축구팀은 빅 텐 컨퍼런스 결승전에서 5년 연속 우승을 거머쥐었다. 미시간 대학을 21 대 10으로 누른 이 경기는 나이키로 말미암아 더욱 특별한 의미를 띤 행사가 되었다. 오하이오 대학은 이 강력한 적수와의 맞대결에서 평상시 늘 입던 유니폼 대신 1954년 무패 행진을 거듭하며 우승한 선배들의 업적을 기리는 특별 경기복을 착용했다. 나이키의 프로 컴뱃 제품군에 속하는 이 유니폼은 나이키가 오하이오 대학의 선수 및 운동부 직원들과 함께 디자인한 것이다.

나이키 프로 컴뱃 의류는 일반적인 유니폼 무게보다 37% 정도 더 가볍고 땀과 수분 배출력이 뛰어난 신축성 소재로 제작되어 젖은 상태에서도 일반 의류보다 그 무게가 46% 정도 가볍다. 이 유니폼은 거친 충돌에서 오는 충격을 흡수 및 분산시키기 위한 2중 패드가 부착되어 있다. 격자형 셀 구조로 된 패드는 충격 흡수력과 유연성을 더욱 향상시키며, 대퇴부에 덧대어진 보호용 플라스틱판은 선수의 방어능력을 한층 높여준다. 오하이오 대학 운동부를 총괄하는 진 스미스는 이렇게 말했다. "나이키는 저희 학교에 최첨단 소재와 기술로 제작된 신형 경기복을 시험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선수들은 매년 미시간과 라이벌 전을 벌일 때마다 새로운 유니폼을 입는 것이 좋은 생각이라고 여기지만, 오하이오 대학에서 이것을 전통으로 굳히겠다고 발표한 적은 없다. 하지만 나이키가 오하이오 대학 선수들에게 프로 컴뱃 유니폼을 입히면서 대학 스포츠계에 큰 영향을 미칠 전례를 남긴 것은 사실이다.

나이키는 2009년 NCAA(미국대학농구) 컨퍼런스 토너먼트와 결승전에 진출한 5개 대학 팀에 프로 컴뱃 유니폼을 제공했다. "대학농구는 진행 속도가 매우 빠르고 몸싸움이 격렬하죠. 그래서 나이키는 전장에 나서는 선수들에게 최고의 장비를 선사하려고 노력합니다." 나이키의 스포츠 의류와 기술 혁신 부문을 맡은 토드밴 혼의 설명이다. 미국 대학 스포츠 최고 명장 중 하나인 듀크대 농구부의 슈셉스키 감독은 나이키의 선택을 받아 이 회사의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큰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나이키의 지원 덕분에 선수들이 컨퍼런스 토너먼트에서 더욱 자부심을 느끼며 경기를 치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옷이 지지력을 더해주고 몸을 보호하는 덕분에 선수들이 더 공격적으로 뛰고 몸싸움도 더 적극적으로 하는 것 같습니다." 슈셉스키 감독은 대학 스포츠와 프로 스포츠 세계에 나이키가 안겨준 의미를 생각할 때마다 어떤 단어가 떠오른다고 한다. "바로 탁월함과 성실함입니다. 나이키는 항상 운동선수들의 능력을 더 높이는 데 주력했습니다. 스포츠를 대하는 나이키의 태도에서 이런 사고방식이 늘 중심을 차지했기에, 앞으로도 이 특성은 계속 유지되리라 봅니다."

나이키의 선수들이 흔들리는 순간



나이키는 기업의 노력을 이야기로 풀어내고 제품의 매력을 강하게 드러내며 각종 매체를 확실하게 활용하는 각종 홍보 전략과 마케팅 전문가들의 보고이다. 하지만 때때로 이 회사에는 세간의 이목이 절로 모이는 경우가 있다. 바로 나이키의 후원을 받는 선수가 도를 지나친 행동을 저질렀을 때이다. 거기에는 반드시 답해야 하는 질문이 있다. "과연 그 선수와 계속 관계를 이어갈 것인가?" 나이키는 계약을 맺은 선수가 큰 물의를 일으킨 상황에서도 대부분 해당 선수를 꾸준히 후원한다. 이 점과 관련하여 타이거 우즈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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