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두 스토리
류스잉, 펑정 지음 | 미래의창
바이두 스토리
류스잉, 펑정 지음
미래의창 / 2011년 6월 / 304쪽 / 14,000원
1장 지식이 운명을 바꾼다모든 것이 최첨단인 시대에도 약육강식의 법칙은 유효하다. 치열한 경쟁에서 누가 살아남고, 누가 도태할 것인가? 냉혹한 현실은 그 주인공이 바로 '인재'라고 주저 없이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인재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지식이야말로 평범한 인간을 위대한 인재로 만드는 가장 중요한 밑거름이다. 배낭 하나 덜렁 매고 샨시성 양취안현에서 꿈에 그리던 베이징 대학교의 문을 두드린 소년, 태평양을 건너 미국 뉴욕 주립대학교 버펄로 캠퍼스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한 스물세 살의 청년, 중국 최대의 검색 사이트를 세운 서른한 살의 전도유망한 사업가……. 누구나 부러워하는 리옌홍의 인생 여정을 따라가다보면 '지식'이야말로 운명을 바꾸는 열쇠임을 알 수 있다.
학교, 성공을 향한 발판: 1987년 여름, 베이징 대학교의 문턱을 넘은 시골뜨기 리옌홍에게 베이징은 동경의 대상이자 성공을 위한 성지였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부푼 꿈으로 가득 찬 리옌홍은 캠퍼스의 낭만을 채 맛보기도 전에 마음 속에서 기대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가 선택한 정보경영학이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적성에 맞지 않는 전공을 선택한 리옌홍은 학업에 흥미를 잃은 채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힘겨운 나날 속에서도 그는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 다독이며, 새로운 미래를 향한 로드맵을 그려나갔다.
베이징 대학교 100주년 기념관 옆에는 학생들이 '삼각지'라도 부르는 T자형 도로가 있는데, 이곳으로 학교 내 모든 정보가 모여든다. 흔히 베이징 대학교라고 하면 중국 최고의 인재가 모이는 엘리트 집단으로 권위적이고 딱딱한 분위기를 떠올리지만, 예상과 달리 그곳은 뜨거운 배움의 장이다. 구태의연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권위를 의식하지 않고, 누구나 자유롭게 연단에 올라 의견을 나누며 치열한 공방전을 펼치는 모습은 베이징 대학교에서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광경인데, 이곳에서는 심오한 철학에서부터 물가나 문화 현상에 이르기까지 세상살이와 관련한 모든 것들이 토론의 대상이 된다.
리옌홍은 이 삼각지의 '단골손님'이었다. 전공 공부에서 성취감을 얻지 못한 그는 삼각지에서 온갖 지식을 쌓으며 배움에 대한 갈증을 풀었다. 참고로 그는 기공, 철학, 종교, 예술 등 전공과 아무런 관계가 없어 보이는 수업도 자주 들었는데, 얼핏 보면 시간 낭비 같겠지만, 리옌홍은 이때의 경험이 자신의 인생에 소중한 기회를 가져다주었다고 고백했다. 왜냐하면 다양한 과목을 청강하면서 폭넓은 지식을 쌓았을 뿐 아니라, 다양한 견해를 주고받으며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부는 '수도승'처럼: 리옌홍은 대학교에서 컴퓨터에 깊은 흥미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중국의 컴퓨터 관련 학문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단계였기 때문에 제대로 된 교육을 받으려면 컴퓨터 분야 선진국인 미국으로 건너가야 했다. 마침 베이징 대학교를 졸업한 셋째 누나가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리옌홍은 자연스레 미국에서 컴퓨터를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대학에서 다른 과목을 전공한 사람이 미국의 컴퓨터 관련 대학원으로 곧장 진학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게다가 영어도 문제였다. 하지만 컴퓨터 학과의 수많은 커리큘럼을 선택 과목으로 이수한 리옌홍은 날로 커지는 학업 스트레스 속에서도 영어 공부에 열을 올렸다. 당시 그의 생활은 단순하기 그지없었다. 기숙사와 강의실, 도서관만을 오가는 무료하고 무미건조한 나날이 반복되었다. 그러나 리옌홍은 페이스를 조절해가며 꾸준히 책장을 넘겼다. 마침내 1991년 리옌홍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미국으로 날아가 뉴욕 주립대학교 버펄로 캠퍼스 컴퓨터공학 석사 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미국 유학 생활은 이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좌절과 시련의 연속이었다. 실험실에서 아파트까지 거리가 너무 멀어 주로 버스를 이용했는데, 공부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막차를 놓치기 일쑤였다. 또 밤늦게까지 공부와 씨름하느라 걸핏하면 실험실에서 밤을 새우기도 했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는 법. 특유의 성실함과 인내심, 그리고 고집스러움으로 학업에 매진한 리옌홍은 전공 분야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보이며 우등생으로 변신했다. 그리고 1년 뒤에는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으로는 이례적으로 IT 분야에서 상당한 권위를 자랑하는 학술지인 《미국 전기전자 프로그래머 협회 회보》에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누구보다 강한 의지로 무장한 채 외로움을 견뎌내는 사람이다. 죽기 살기로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던 리옌홍은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능력을 마음껏 선보일 그만의 인생 무대를 세우기 시작했다.
2장 선택의 지혜사람의 일생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하지만 올바른 선택을 하기란 여간해서 쉽지 않다. 그런데 선택은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으며 인생의 주인공인 나 자신만이 결정할 수 있다.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도 있는 선택의 기로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길을 택해야 하는가? 선택의 갈림길에 선 리옌홍에게서 그 비결을 알아보자.
선택의 기로에 서다: 대학교에서 학사 과정을 마치고 유학길에 오른 대부분의 유학생들은 석사, 박사 취득이라는 이른바 '엘리트 코스'를 밟게 마련이다. 미국 땅을 처음 밟을 당시 리옌홍의 목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규정에 따라 전액 장학금을 받으려면 반드시 박사 자격을 따야 했기 때문에 그 역시 다른 유학생과 마찬가지로 박사 취득을 위한 논문 준비에 들어갔다. 하지만 전도양양할 것 같던 엘리트 코스는 여름방학에 잠깐 하게 된 인턴 경험 때문에 궤도를 이탈하고 말았다.
리옌홍은 1993년 프린스턴 대학교 파나소닉 정보기술연구소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며 처음으로 직접 돈을 벌었는데, 파나소닉 인턴 활동에서 얻은 유쾌한 경험을 통해 리옌홍은 재계와 학계에서 말하는 '연구'가 서로 다른 개념임을 깨닫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재계가 실용적인 것을 연구한다면, 학계는 거시적이며 현실의 기반이 되는 이론을 연구한다. 학술 연구보다는 실용적인 상품 개발에 더 관심이 많았던 리옌홍은 자신에게 맞는 길이 무엇인지, 어떻게 미래를 찾아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고민 끝에 리옌홍은 코앞의 '박사모'를 내던지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1994년 어느 여름, 학생 신분을 벗어던진 리옌홍은 일자리 찾기에 나섰고, 월스트리트의 다우존스에서 둥지를 틀기로 했다. 리옌홍은 이곳에서 3년간 근무하며 금융정보 시스템을 다루었고, 매일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는 금융정보와 씨름했다. 그리고 IT 개발자를 꿈꿨던 리옌홍은 틈틈이 여가를 쪼개 하이퍼링크 분석을 통해 검색엔진의 단점을 개선할 수 있는 묘안을 구상했고, 자신의 아이디어가 상업적으로 활용된다면 어마어마한 경제적 효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고 확신한 리옌홍은 기세등등하게 상사에게 달려간다. 그러나 호평과 격려를 받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상사는 리옌홍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1년 동안 묵묵히 견디다 끝내 견고한 벽에 부딪힌 뒤에야 리옌홍은 월스트리트는 IT 개발자가 아니라 금융 인재를 원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라: 시간은 흘러 어느덧 1997년 한가운데에 다가가 있었다. 이때 리옌홍은 우연한 기회에 한 학술단체로부터 세미나에 참석해 달라는 초청장을 받았다. 캐나다에서 열리는 회의였지만, 마이크로소프트, 인포시크 등에서 온 IT 전문가가 모두 모인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갔다. 월스트리트에서는 별반 주목을 받지 못했던 리옌홍의 하이퍼링크 분석에 회의 참석자와 업체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여러 기업에서 러브콜을 보냈지만 리옌홍은 인포시크를 선택했다.
인포시크에 둥지를 튼 지 얼마 되지 않아 리옌홍은 여전히 갈증이 해소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야,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당시 인포시크의 내부 사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마침 1998년 4월, 디즈니가 인포시크의 주식 40퍼센트를 매입함으로써 최대 주주로 등극했다는 소식이 미국 경제계를 뒤흔들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디즈니사에는 대기업 특유의 기업 문화가 존재했는데, 지위에 따른 자리 배치, 경력 중심의 인사고과 제도 등은 실리콘밸리의 자유로운 분위기에 익숙한 젊은 개발자의 손발을 묶는 것과 다름없었다. 숨막히는 수직형 지배구조, 딱딱한 사내 분위기,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직원들은 성취감은 물론이고 창의력과 역량 계발에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리옌홍 역시 같은 문제로 고민에 빠졌다.
고민에 빠진 리옌홍과 달리, 주변의 평가는 긍정적인 편이었다. 참고로 그는 회사로부터 약 50만 달러에 달하는 옵션을 받았는데, 인포시크를 떠나면 당장 수백만 위안에 달하는 자산이 하룻밤 새에 사라질 수도 있었다. 그 때문에 주변 친구들은 리옌홍에게 당분간 사태를 지켜보라고 권유했다. 그러나 리옌홍은 이미 결정을 굳힌 터였다. 후일 그 때를 리옌홍은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당시 먹고사는 데는 크게 지장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옵션 수십만 주도 제 마음을 돌릴 수 없었죠. 타인의 판단과 지휘에 따라 제 운명이 결정되는 것을 더 참기 어려웠습니다. 그건 제가 원하는 게 아니었어요. '가장 좋아하고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에 확신을 갖고 있는 내가 왜 스스로 운명을 결정짓지 못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고 싶다는 마음은 그를 창업의 길로 이끌었다.
젊은 시절 그는 이처럼 끝없는 고민과 선택의 기로에서 방황했다. 보수적인 관점에서 보면 잦은 이직은 무서운 줄 모르는 철부지의 치기 어린 행동이라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꿈에 대한 확신, 자신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지금의 바이두와 리옌홍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지혜는 사유의 힘에서 나온다: 1999년 창업을 결심한 리옌홍은 미국과 중국, 둘 중 어느 곳에서 사업을 시작할지를 놓고 고민에 빠졌고, 마침내 중국에서 사업가로서의 꿈을 실현해 보기로 결심했는데, 그는 그 이유를 "기업의 성공이든 한 개인의 성공이든, 어느 순간에는 주변 환경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저 같은 기술 개발자도 기업을 경영할 줄 알고 전체적인 사업 방향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시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제가 가진 경쟁력이 그곳에서 인정을 받으리라고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훨씬 쉽게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중국은 거대한 잠재력과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는 매력적인 시장입니다." 라고 설명했다. 시대는 영웅을 만든다. 그러나 영웅도 시대를 선택할 줄 아는 지혜를 배워야 하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리옌홍 역시 시대를 두루 살필 줄 아는 혜안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3장 시작한 것은 끝장을 봐라리옌홍은 무려 20여 년간 오직 '검색 서비스'라는 한 우물만을 열심히 팠는데, 리옌홍의 성공 노하우는 바로 이 '집중'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보다 자세히 살펴보자.
한 가지에 미치다: 10년 전 리옌홍은 '검색 기술'이라는 무기를 들고 첫발을 내디뎠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현재, 그가 세운 바이두는 최고의 자리에 올랐음에도 여전히 한 우물만 파고 있다. 참고로 검색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리옌홍은 이른바 '721 투자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즉, 전체 투자금 중 70퍼센트는 웹페이지에 검색 서비스 개발에 투자하고, 음악이나 블로그 검색과 관련된 서비스와 바이두 유아(바이두의 온라인 쇼핑 사이트)와 같은 신규 서비스 개발에 각각 20퍼센트, 10퍼센트를 투자한다는 뜻이다. 대부분 기업들이 몸집을 키운 뒤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는 것과 달리, 오직 검색만을 향한 바이두의 순정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도 적지 않은데, 이에 대한 그의 생각은 다음과 같이 확고하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그저 제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이 검색이고, 바이두를 가장 바이두답게 만드는 것도 바로 검색 서비스이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집중하라: 중국어 검색에 집중한 덕분에 리옌홍은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지만, 한 가지 일에 집중하기 위해 그가 보여준 뚝심은 세상살이를 외면하거나 주변 충고를 무시한 채 제 갈 길만 가는 어리석은 이의 고집에서 비롯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시장의 변화와 기술 혁신의 흐름에 발맞춰 재빨리 변신할 줄 아는 순발력과 자신감의 결과였다.
4장 아는 만큼 보인다전자상거래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바이두가 검색 서비스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그 답은 바로 멀리 볼 줄 알고, 깊이 꿰뚫어 볼 줄 아는 그의 안목에 있다.
2년 뒤의 가치를 생각하라: 리옌홍과 창업 파트너인 쉬용이 중국에서 사업을 벌이기로 결심을 굳힌 뒤 직면한 최초의 문제는 '어떤 사업을 할 것인가?'였다. 리옌홍의 생각은 분명했다. "중국으로 돌아가서 검색과 관련된 사업을 시작하자." 하지만 쉬용은 조금 불안한 심정이었다. 당시 업계에서 가장 낙관적으로 평가받던 분야는 B2B를 활용한 전자상거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쉬용은 과거 전자상거래 사이트를 운영해 상당한 수익을 거둔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리옌홍은 다음과 같이 쉬용을 설득했다. "B2B가 지금은 인기를 끌고 있지만 이미 많은 업체가 이 시장에 매달리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뛰어든다고 해도 성공을 보장할 수 없어. 하지만 중국 검색엔진 시장은 그야말로 백지 상태나 다름없잖아? 앞으로 2년만 더 지켜보면 검색 시장이 잠재력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될 거야."
그런데 리옌홍의 판단은 철저히 객관적인 예측에 근거한 것이었다. 인터넷 분야에서 웹페이지에 들어갈 콘텐츠가 풍부하지 않던 시절, 검색엔진은 사실상 무의미한 존재였다. 그저 몇몇 대형 포털사이트가 사용자의 기본적인 수요를 만족시킬 정도의 수준 낮은 서비스를 제공할 뿐이었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시에는 업계 전반에서 통용되던 방식이었다. 하지만 리옌홍이 예상한 미래는 전혀 달랐다. 인터넷을 통해 접할 수 있는 콘텐츠가 풍부해질수록 검색엔진에 대한 사용자 니즈는 점점 확대될 것이며, 그만큼 검색 시장에 무한한 잠재력이 숨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었다.
5장 좌절에 감사하다해외 유학 생활의 외로움과 고단함은 말할 것도 없고, 전공을 바꾸며 치러야 했던 학업 스트레스, 자신만만하게 돌아온 고국에서 바이두를 설립하자마자 닥쳐온 IT 불황, 2003년 꿈을 키우기도 전에 사스에 빼앗긴 기회, 2008년 CCTV의 폭로전에 휘말리기까지 리옌홍은 수많은 좌절을 겪었다. 그런 어려움을 이기고 오늘의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승리 요인은 무엇일까? 강인함으로 도전에 당당히 맞서고 진지한 성찰을 통해 문제를 극복하는 것, 그것이 바로 리옌홍이 좌절을 견디는 비결이었다.
어려움이 클수록 투지는 더욱 불타오른다: 리옌홍에게 실패에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순수한 용기가 없었다면, 아마도 우리는 지금의 리옌홍과 바이두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경쟁을 두려워하기는커녕 진심으로 즐길 줄 알았던 리옌홍은 위기 속에서 교훈을 얻기도 했고, 때로는 위기가 가져다주는 절호의 기회를 잡으며, 성공으로 가는 계단을 착실히 올랐다.
성공이라는 사전에 '대충'은 없다: 흔히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표현을 자주 쓰지만, 리옌홍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실패는 실패일 뿐이라고 단호히 말한다. 실패의 경험보다는, 실패 이후의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떤 일에서 실패나 좌절을 겪은 뒤 냉정한 반성과 성찰을 통해 교훈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그 실패를 자양분 삼아 다시 성공을 향한 힘찬 한걸음을 내딛을 수 있게 된다.
6장 성공과 개성의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