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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세계 시민인가

마크 게이어존 지음 | 에이지21
당신은 세계 시민인가

마크 게이어존 지음

에이지21 / 2010년 12월 / 302쪽 / 16,000원



1장. 목격하기




눈을 뜨는 것

미국항공우주국 나사NASA는 1958년 10월, 머큐리 프로젝트를 발표하면서 미국 국민들에게 지구 주변 궤도에 사람을 띄워 보내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런데 곧 나사 관리들은 우주비행사들과 힘겨루기를 해야 했다. 로켓을 타고 우주 공간에 나갈 사람들이 그들의 작은 캡슐에 창문을 달아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나사 엔지니어들은 지구로 귀환할 때 위험한 온도 변화를 겪기 때문에 쓸데없이 안전상의 위험을 가중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주비행사들은 말했다. "창문 없이는 우주에 나가지 않겠어요."나사 관리들은 응수했다. "당신들의 안전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위험 요소를 새로 만들게 둘 수는 없어요."결국 우주비행사들이 이겼지만 곧 또 다른 논쟁거리가 생겼다. 바로 카메라다.

이후의 모든 인류에게 정말 다행스럽게도 우주비행사들이 또 이겼다. 우주비행사 러스티 슈바이카르트가 '인류의 감지 기관'이라고 부른 바 있는, 수십 개국에서 온 남녀 우주비행사들 덕분에 우리는 모두 지구라는 행성을 보게 된 목격자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우주비행사들의 대답을 듣기 전에 먼저 창문과 카메라를 요구했던 이들의 선견지명에 감사하자. 이것이 바로 목격하기의 핵심이다. 최선을 다해 주변 세상을 명확히 보려 노력하고 이런 경험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것이다. 여기서 보는 것은 단순히 쳐다보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을 투과시키는 렌즈를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세계관을 바꾸려면 우선 이 렌즈의 존재를 인식해야 한다.

1962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달에 사람을 보내겠다고 발표했을 때 '지구는 하나'라는 개념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었다. 7월 4일, 필라델피아의 독립기념관에서 케네디 대통령은 '상호 의존 선언'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발표했다. 그는 모든 미국인에게, 그리고 모든 국가의 시민들을 향해 우리 삶을 지구 차원에서 보기 시작하고 보다 넓은 의미의 책임감을 깨달을 때라고 역설했다. 또한 그의 조국이 생겨나기 전의 시대를 언급하면서 그 당시 지도자가 풀어야 했던 숙제는 '대륙적 사고'를 통해 13개의 분리된 식민지를 하나의 국가로 만드는 것이었는데, 이제는 '대륙을 연결하여 생각할 때'라고 그는 말했다.

이제 정말 눈을 뜨면 이 세상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제 모두 우주비행사다. 구글 어스Google Earth에 이미지를 제공하는 두 회사 디지털 글로벌Digital Global과 지오아이GeoEye 덕분에 이제 우리는 지구의 어디든 단 몇 초 만에 볼 수 있다. 컴퓨터 키보드만 몇 번 클릭하면 말 그대로 지구의 거의 모든 구석구석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인류의 대다수는 지구의 모습이 처음으로 우주 공간에서 찍혔을 때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그러나 지구 전체를 볼 수 있게 된 자체만으로는 우리가 전 인류의 안녕을 위해 생각하고 행동할 것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사이버 공간이라는 것이 없었을 때 세계는 그 전체를 목격하기에 너무 거대한 것이었다. 정부, 특히 독재 정부일수록 외부 세계에 알려지는 정보를 통제하려는 시도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통신기술로 인해 거의 불가능하다. 그 후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졌다. 전 세계 휴대폰 판매량이 처음으로 10억 대를 달성하는 데 20년이 걸렸고, 두 번째로 10억 대를 판매하는 데는 4년이 걸렸으며, 세 번째로 10억 대 판매량을 달성하는 데는 2년이 걸렸다. 월드와이드웹(www)은 단 6년 만에 1억 명의 사용자를 기록했다. 인류를 하나의 의사소통 매트릭스로 엮는 이 현상의 속도는 상당히 빠르다. 심지어 이제 이러한 첨단 기술의 글로벌 매체로 인해 지역 사회, 즉 커뮤니티의 의미가 바뀌었다.

지금도 우리를 위해 많은 감시 기구가 24시간 지구상에 일어나는 일들을 주시하며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휴먼 라이츠 워치는 방어할 기회도 못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을 보호하도록 우리의 관심을 일깨워주는 한편, 아마존 워치를 비롯한 전 세계의 많은 강 보호 감시 네트워크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여러 수로를 단체로 함께 감시하고 보호하고 있다. 불공정하고 비위생적인 작업 환경을 고발하는 베트남의 노동 감시 기구 베트남 레이버 워치와 산림 개간 문제를 다루는 호주의 오스트레일리안 페이퍼 워치를 포함한 수많은 다른 단체도 마찬가지다. 보이지 않던 것이 이제 보이기 시작하면서 지구가 우리 눈앞에서 활기를 띠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지구의 눈'은 우리가 지구 밖 궤도에 나가지 않고도 지구 행성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이 지구라는 보금자리 전체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전례 없는 상당한 특별한 기회인 동시에 우리각자에게 풀기 힘든 숙제이기도 하다. 극지방 빙원의 온도 변화나 아마존 열대 우림에서 벌어지는 삼림 벌채의 심각성부터 소비에트 연방 죄수 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학 졸업자의 숫자까지 컴퓨터 마우스만 클릭하면 이 세상의 거의 모든 것에 대해 알아낼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압도적으로 방대한 양의 데이터가 쉬지 않고 쏟아져 나와 우리의 머리와 마음을 흔드는 것이 과연 우리로 하여금 더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멍해지게 만드는 것일까.

2장. 배우기



지성을 깨우는 것

세계는 실제 영토다. 우리의 세계관은 이런 영토에 대한 우리의 지도다. 세계관을 갖는 것은 합리적일 뿐만 아니라 불가피한 것이다. 세계는 너무 복잡하고 방대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머리로는 완전히 파악할 수가 없다. 따라서 이런 복잡성을 줄여 우리의 이해력으로 감당할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세계관을 만들게 된 것이다. 이슬람교인, 기독교인, 유대인 등과 같이 종교를 기준으로 구분하든지, 러시아인, 이라크인, 일본인 등 국가별로 나누든지, 우리는 세계를 그 자체에 비해 훨씬 간소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그들이 누구고, 무엇을 믿으며, 어디에 사는지를 미리 판단해버리는데 이런 행동은 사실을 왜곡한다.

아쉽게도 현대 세계에서 학습이라는 것은 대부분 배우는 사람들이 속한 특정 문화의 방식에 맞춘 것이다. 고유문화의 역사, 종교적 전통, 정치 또는 경제적 이념을 다른 문화에 비해 더 많이 가르치는 것이 비록 당연하다 할지라도 이런 종류의 부분적 교육을 포괄적인 것으로 착각하는 우를 범할 경우에는 문제가 생긴다. 그런 교육은 절대 포괄적인 것이 아니다. 전체에서 자신들이 속한 부분에 대해 배우는 것은 어린이 교육을 시작하는 데 있어 훌륭한 방법이지만 세계 시민을 위한 교육은 거기서 멈추면 안 된다. 만약 그럴 경우 우리 인간이라는 종은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자기 것 이외의 부분을 배우지 못하는 체계에서 교육받은 시민들은 지구 전체를 꾸려나갈 수 없다. 이러한 부분적 세계관은 악마와 정신을 거래하는 것과 같다. 모르는 사이 우리는 세상을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규모로 축소하게 된다. 우리의 세계관에 맞춘 세계는 이제 설명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보다 간단한 설명으로 구성할 수 있고, 극단적으로는 우리가 옳고 그들은 틀리며, 우리는 좋은 사람이고 그들은 나쁜 사람으로 규정지을 수도 있다. 우리 부족이나 우리나라 또는 기타 편의상 나눈 '우리/그들' 형태의 범주 주변에 경계선을 표시함으로써 더 이상 세계를 완전히 인식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만든 세계관의 우물 속에서 '다른 사람들'은 그저 어떠한 고정관념으로 싸잡아두는 것이다.

평생을 자신이 속한 문화와 국가의 경계 안에서'배우며' 살다보면 식민화된 정신을 키우게 된다. 이런 경계 안에서 배우는 것이 많을수록 세계를 우리 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는 확신은 강해진다. 이렇게 우물 안에서 배우는 것은 기본적으로 '더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쉽다. 즉 지금까지 배운 것에 의문을 갖거나 '버려야' 할 필요가 절대 없는 것이다. 이런 방식의 학습은 새로운 기술, 지식, 학위 등을 취득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간단히 말해 '더 많이'가 목표인 것이다. 기존의 믿음이나 지금의 정체성을 수정하지 않으면서 그냥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세계 시민이 된다고 해서 이전에 가졌던 이런 편협한 정체성을 모두 버리고 떠나는 것은 아니다. 이런 것들은 여전히 우리의 일부로 남아 있지만, 계속해서 넓어지는 정체성에 통합된다. 우리가 우리 몸 안에 머무는 한 자기 중심적인 세계관은 우리 일부로 남아 있게 된다. 마찬가지로 역사적 자아의 다른 측면들, 즉 이념이나 종교, 국적 등도 우리와 함께 한다. 세계를 설명하고 구성하기 위해 사실상 이러한 경계가 필요하다. 기업체가 여러 부서로 나뉘고 직원들에게 특정 직무를 할당하는 것처럼, 이 세상의 많은 국가와 인류가 다양한 하위 그룹으로 나뉘어 있는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기업체가 하나의 회사로 운영되어야 효과를 발휘하는 것과 같이 우리와 이 지구는 하나임을 인식해야만 한다.

경계를 초월하여 배우는 것은 이상으로만 존재했던 글로벌 사고방식을 현실화시킨다. 또한 글로벌 의사 결정을 가능하게 해주는 토대이기도 하다.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단일문화'의 맥락 속에서 성장한다는 정확한 가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들 대부분은 우리와 같은 사람들과 함께 성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세계화된 세상에서는 우리와 같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고 일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많은 기업에서 세계 시민 의식과 리더십이란 개념이 그렇게 거부할 수 없는 강제력을 띠고 등장한 것이다.

오늘날과 같이 첨단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글로벌 지식경제 속에서 다국적 기업은 이전에 상상도 하지 못했을 정도로 경계를 초월하여 배워야 하는 압박을 받고 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 많은 곳에서 지식을 발견하고 접근하여 결집하고 활용함으로써 새로운 종류의 경쟁력을 키워야만 한다. 프랑스와 싱가포르에서 주로 활동하는 글로벌 기술 및 혁신 분야의 저명한 교수인 이브 도즈는 기존의 다국적 기업은 "점점 심해지는 사회적 불안과 정치적 싸움에 직면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이와 달리 보다 분산되고 기민한 초국적 기업metanationals은 본사 핵심기지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이들은 대신 '전 세계에서 배움으로써 혁신'한다.

이코노미스트에서 일하는 프랜시스 케언크로스는 세상이 수축되는 현상을 목격했다. 프랜시스는 '거리(물리적)의 소멸'이라고도 불렀다. "대다수 사람들이 자유로운 정보의 흐름을 누리는 세상에서 그것을 제한한다는 데 따르는 대가는 가난과 소외일 것이다"라고 프랜시스는 단정한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경계를 뛰어넘어 배우는 사람들이다. 자기 지역이나 국가 안에서 '똑똑한 척하는 사람들'은 지금의 세상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군인 장교를 비롯해서 기업 임원, 교사, 농부, 교수, 학생 또는 그 누구든 경계를 초월하여 배울 때에만 상호 연결된 이 세상을 헤쳐 나가는 데 필요한 내면적인 여권을 가질 수 있다.

3장. 통하기



관계를 형성하는 것

2008년 중반,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대서양 상공을 지나면서 한 기자가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조지 W. 부시에게 중동에서의 군사 작전과 관련하여 그가 저지른 실수에 대해 후회하는지 물었다. 부시는 이렇게 대답했다. "돌이켜보면 말투와 표현을 달리 할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는 호기롭게 '한 번 붙어보자'며 알 카에다에 도전한 것과 서부 영화처럼 오사마 빈 라덴을 '산 채로든 죽여서든'잡아 오겠다고 약속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런 표현들에 대해 후회했다. "제가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인상을 주었으니까요." 이라크에서 끔찍한 전쟁을 벌인 지 5년이 지나서야 부시 대통령은 통하지 않는 의사소통은 쓸모없는 것임을 깨달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6월 4일, 카이로에서 역사적인 연설을 하면서 이슬람 세계와 미국 간에 다리를 놓으려는 시도를 했는데 이는 그의 명예로 길이 남을 일이다. 최악의 이슬람교도를 들어 악마에 비유하고 유대교도와 기독교도를 무고한 사람들인 양 말하는 대신, 그는 아브라함 계통의 모든 신자들에게 고유의 유산을 최대한 살릴 것을 요구했다. "우리는 우리가 추구하는 세계를 만들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새로 시작할 용기가 있을 때에만 그렇습니다……." 갈채를 보내는 이집트인 청중들의 박수 소리가 잦아들기를 기다린 후 그는 말을 끝맺었다. "세계 사람들은 함께 평화롭게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하느님이 꿈꾸던 모습이란 것을 우리는 압니다. 이제 그것은 여기 지구상의 우리 일이 되어야 합니다."

세계 시민인 우리는 지지를 호소하며 우리를 설득시키려는 후보들의 말을 들을 때 속에 숨은 뜻을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 전국 그리고 전 세계 사람들이 '위대하다'거나 '역사적인' 연설이라고 한다면 왜 그런지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 그 지도자의 말하는 방식에 도대체 무엇이 있었기에 극단적으로 양분된 분위기의 현대 선거판을 관통하여 정치 판도를 뛰어넘어 그토록 다양한 유권자들의 마음에 와 닿을 수 있었던 것일까? 통하게 한 그것은 무엇일까? 내가 보기에 공통분모는 이들 연사들이 자신의 내면을 깊숙이 파고든 결과 인간 경험의 보편적인 근원에 대한 어떤 일면을 건드린 것이다. 이들은 우리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결합시키는 것에 호소한 것이다.

마하트마 간디가 영국인들의 정의감에 호소하고, 넬슨 만델라가 남아프리카 공화국 백인들의 공정심에 호소한 것처럼, 오바마도 미국인들의 평등 정신에 호소했다. 다리를 연결한 앞선 세대의 다른 위대한 지도자와 마찬가지로, 오바마는 모든 미국인들이 공유한다고 공언하는 보편적인 핵심 가치들부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연설 제목을 '보다 완전한 결합'이라 부르고 청중들에게 자신과 함께 그런 결합을 만들자고 호소했다.

말하는 방식에서 오바마는 열린 마음을 구체화했다. 인종 차별, 경찰의 만행, 폭력적인 사적 제재, 인권 박탈 등을 겪으며 분노를 품은 미국 흑인들에 관해 오바마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 분노가 항상 생산적인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분노는 실제 존재하는 것이고 강력한 것입니다. 단순히 없어지길 바라거나 그 근원을 이해하지 않은 채 비난한다면 인종 간에 존재하는 오해의 틈만 더 벌어질 뿐입니다." 변화로 인해 뒤처진다는 느낌이 들고, 미래가 걱정스러우며, 소수 민족에 대한 특별 대우가 의심스러워 분노를 품은 미국 백인들에 관해서는 똑같은 연민의 감정을 가지고 이렇게 말했다. "이들이 겪은 것은 이주자들의 경험입니다. 이들에 관한 한 그 누구도 무엇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이웃 도심지역에서 일어나는 범죄를 두려워하는 것이 어떤 면에서 편견에서 비롯된다는 얘기를 들으면 분노가 계속 쌓여가는 것입니다."

그런 연설을 통해 양쪽 인종 모두에게 공감한 후 그는 흑인과 백인, 그리고 라틴 사람과 아시아인 모두 과거를 뛰어넘어 '이 국가가 지닌 진정으로 뛰어난 자질'을 기반으로 발전하자는 과제를 던졌다. 다음날 어떤 기자가 그가 말한 애국심이 어떤 의미였는지 물었을 때 오바마가 말한 것은 국가나 적과 싸우기, 또는 보수가 아닌 진보 쪽으로 나가기 등에 관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였다. 그는 서로에게 '관심을 갖는 것'부터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관심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오바마는 흑인과 백인, 우파와 좌파, 노인층과 젊은 층 모두에게 통한 것이다.

우리를 나누는 모든 경제, 즉 지리적, 경제적, 언어적, 종교적, 문화적 기타 모든 경계는 우리를 '통'하게 하는 경계이기도 하다. 그러나 먼저 우리는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각자는 이러한 차이를 다루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안다. 우리가 이런 능력을 신규 시장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데 활용하든,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에 평화를 가져오는 데 사용하든, 이것은 인간이 가진 모든 자원 중에서 가장 귀한 것이다. 세계 시민으로서 이제는 우리가 금이나 석유를 채취할 때처럼 열심히 이 자원을 캐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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