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하라
우경선 지음 | 지상사
부지런하라
우경선 지음
지상사 / 2011년 01월 / 193쪽 / 11,000원
제1장 일이란 무엇인가일의 의미
신안군 자은도가 내가 태어난 고향이다. 지금은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나 한적한 섬마을이 되었지만 내가 자랄 때만 해도 마을마다 몇 백 호가 넘었다. 배를 가지고 계셨던 아버님은 목포와 신안을 잇는 운송업과 농업을 겸하셨다. 아버님은 마흔 넷에 얻은 늦둥이인 나를 많이 아끼셨다. 남들보다 더 유복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다지 큰 불편함 없이 자랐다. 남들과 별다를 바 없는 어린 시절이었다. 마음속에는 언젠가 뭍으로 건너가 성공을 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는데, 그 당시 섬에 사는 내 또래 모두가 같은 희망을 품고 살았다. 인생의 전환점은 갑자기 다가왔다.
14살 무렵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2년 뒤 어머님마저 세상을 떠나셨다. 지금은 16살이라면 청소년으로 학업에 열중할 시기이지만, 그때만 해도 농사일에서 한 사람 몫은 할 수 있는 나이였다. 마침 아버님과 알고 지내시던 어른께서 초등학교에서 일을 보며 공부할 수 있도록 주선해주었다. 흔히 말하는 소사였다. 한 2년 정도 소사로 일하던 중 교장선생님이 인근의 다른 초등학교로 옮겨가며 나를 데려갔다. 그곳으로 따라가서 다시 2년 정도 소사 일을 더 하면서 독학으로 공부를 했다. 남들이 공부를 하는 시기에 일을 하며 지냈지만 꿈은 잃지 않았다. 마음속에는 항상 도시로 나가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살았다. 20살이 되었을 때 세상에 나가기로 결심했다. 학교에 임시직으로 와있던 젊은 여선생님이 있었는데 집이 서울이었다. 여선생님이 근무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갈 때 묵을 곳을 부탁하여 함께 올라왔다. 스무 살의 젊은 혈기에 서울에만 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쳤다.
서울에 올라와 일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일이 없었다. 매일 같이 서울 구석구석을 다니며 취직할 곳을 찾았지만 오라는 곳도 갈 곳도 없었다. 당시 사회는 4 19와 5 16을 거치며 뒤숭숭했다. 신발이 닳도록 돌아다니며 일거리를 찾아봤지만 특별한 기술도 남다른 학벌도 없는데다 나이마저 어리니 마땅한 자리가 있을 리 없었다. 고향에서 농번기가 시작되었으니 와서 일을 도우라고 연락이 왔다. 완행열차를 타고 목포로 내려가는데 마음이 참담했다. 나름대로 큰 뜻을 품고 서울로 올라왔지만 뭐 하나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낙향한다는 게 정말 죽기보다 싫었다. 일의 소중함을 그때 절실히 깨달았다. 나중에 사업을 하면서 어려움이 닥쳐도 할 일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하고 이겨나갈 수 있었다. 일 그 자체가 신이 났다. 새벽에 눈을 떴을 때 오늘 할 일을 생각하면 절로 힘이 솟았다.
지금은 사회가 풍요로워지고 복잡해지면서 직업도 다양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업난은 심각하다. 많은 젊은이들이 일자리가 없다고 아우성이다. 사실 일이 없기 때문은 아니다. 모두가 자기가 원하는 일, 하고 싶은 일, 번듯한 일을 찾다 보니 이런 현상이 벌어진다. 일거리가 있다는 자체만으로 감사하던 때를 생각하면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 사람들은 일을 생각할 때 높은 연봉과 안정된 생활, 그리고 사회적 지위 등과 연관을 짓는다. 그리고 이를 충족시킬 만한 일을 가지면 행복할 것이라 기대한다. 정말 그럴까? 높은 연봉과 안정된 직장이 삶을 가치 있고 행복하게 해줄까? 안정된 수입이 삶을 행복하게 하는 데 도움은 되겠지만, 그건 생각만큼 크고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가치 있고 행복한 삶은 살아가는 태도와 가치관에 더 좌우된다. 그렇다면 일의 의미는 무엇일까?
사람은 부모의 품을 떠나 세상에 나오면 스스로 먹고 입고 잘 곳을 마련하고, 더 나아가 배우자를 만나 자녀를 낳고 길러 다시 세상에 내보낸다.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가져다주는 것이 바로 일이다. 부모 세대가 열심히 일해 쌓아놓은 경제력에 기대어 의식주와 학업을 해결하고 심지어 결혼까지 부모 돈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건 부모의 덕이지 자신이 스스로 생존할 능력은 없다고 봐야 한다. 일을 통해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을 때 비로소 일의 또 다른 의미-자아실현이나 사회적 가치실현-도 실현할 수 있다. 여기에는 또 다른 요소가 필요하다. 바로 꿈과 희망과 목표를 세우고 이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면서 우리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삶의 가치들을 일에 반영해야 한다. 그럴 때 자신의 가치가 높아지고 자연스럽게 그에 걸맞은 일을 하게 된다.
어려서 서울에 올라왔을 때 나는 과일도매에 손을 대보기도 하고 양복재단과 이용(이발)기술을 배우기도 했다. 자금이 좀 모였을 때는 이발소를 사고팔고 기타 부동산 매매와 집을 지어 파는 일도 했다. 일을 통해 먹고 입고 잘 곳을 마련하고 결혼도 했으며,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진심으로 열심히 일했다. 그렇게 하는 일에 충실하고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 보니 저절로 길이 열렸고 지금 이 자리까지 온 것이다. 그러나 내가 단순히 생존을 위해서만 일을 했다면 아직도 과일도매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이용원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면 일을 통해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살았기에 지금과 같은 결과를 이뤘다. 일보다 일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그러면 좀 더 나은 일은 반드시 다가온다. 주위에서 자수성가하신 분들을 보면 대부분 같은 이야기를 한다. 이십대 태반이 백수라는 요즘, 일의 의미를 한번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일에서 배워라
이발소를 사고팔면서 돈이 조금씩 모였다. 스물여섯 살이 되던 66년도에 결혼을 해 화곡동 전셋집에 신혼살림을 꾸렸다. 결혼을 하고 나서 새로운 마음으로 더욱 열심히 일을 했다. 발품을 팔아가며 새로운 이발소 자리를 알아보았지만 마땅한 곳이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발소 자리를 찾기 위해 서울 곳곳을 내 집 마당처럼 돌아다녀야 했다. 그날도 이곳저곳 다니다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택지로 조성된 땅들이 눈에 들어왔다. 당시 화곡동은 한창 택지개발을 할 때였다. 한창 집을 짓는 곳도 있고 빈 땅도 널려 있었다. 문득 생각이 스쳐갔다. '가게가 없다면 직접 건물을 짓고 가게를 만들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지만 이 생각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건설에 눈을 뜨고 지금까지 사업을 해온 첫걸음이 바로 이 순간이었다.
건설이라는 분야는 모르는 분야였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발소 매매를 할 생각은 없었다. 종자돈이 모이면 새로운 사업을 할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이발소를 하면서 새로운 사업거리가 있으면 관심 있게 들여다보았는데 마땅한 게 없었다. 처음 시작은 건설이라기보다는 내 집을 짓는 차원이었다. 이발소 매매를 하다 보니 어디가 목이 좋고 어떤 곳이 잘되는지는 눈감고도 알 수 있었다. 택지개발지구를 다니면서 자리를 찾아보니 마침 좋은 자리에 상가로 나온 땅이 있어 85평을 구입하였다. 85평 가운데 절반은 다시 팔고 매각대금으로 나머지 땅에 집을 지었다. 집을 두 채로 나누었는데 앞쪽은 가게로 만들어 이발소를 차려 세를 주었다. 안쪽은 살림집으로 꾸몄는데 14평에 방 3개와 거실을 만들었으니 정말 촘촘하게 지은 셈이다.
집을 지으면서 쌓은 경험이 새로운 분야에 눈을 뜨게 했다. 산업화에 따라 농촌 인력들이 도시로 속속 몰려들 때였다. 부동산이 앞으로 한동안 호황일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마침 이웃 개봉동도 한창 택지개발을 할 때였다. 개봉동 뚝방 가건물에서 부동산 매매업과 건설업을 시작했다. 이후로 개봉동과 화곡동 등 주로 강서 지역에서 택지개발을 할 때 좋은 자리의 땅을 잡아 건물을 지어 팔았다. 집을 직접 지어본 것이 나에게 소중한 경험이 됐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현장을 쏘다니며 하나하나 배웠다. 건설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일은 내게 그 이상을 가르쳐 주었다. 자재는 어떻게 해야 싸게 구입할 수 있고, 어떻게 지어야 집이 잘 팔리는지, 공사현장에서 사람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등등, 일을 통해서 나는 많은 걸 알게 되었다. 이렇게 쌓은 배움으로 주택사업에 뛰어들면서 본격적으로 건설업에 눈을 떴다. 처음에는 단독 2채를 지어 팔았는데 점차 5채, 20채 늘려가며 사업 단위를 키워갔다. 공부는 학교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일에서 더욱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일을 성실하게 대하다 보면 자연히 지식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1978년 신안건설산업을 창립하고 본격적으로 경영자로서 활동하다 보니 건설과 경영에 관한 지식이 너무나 필요했다. 그래서 20여 년간 꾸준히 건설관련 최고경영자 수업을 듣고 지식과 경험을 쌓았다. 사람들은 "무얼 그렇게까지 하십니까? 전문가들에게 맡기시죠" 하고 말한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일을 맡길 때는 자신 역시 그만큼은 알아야 제대로 맡길 수 있다.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남에게 일을 맡긴다는 건 운전을 하면서 남에게 핸들을 잡아달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모르면 전문가를 찾아서 묻고 알 때까지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그럴 때 일 또한 스승이 되어 길을 열어준다. 일을 하며 현장에서 하나하나 다시 배워간다는 마음가짐으로 일을 대할 때 일은 가장 큰 스승으로 삶을 이끌어 줄 것이다.
일이 사람을 만든다
어려서 학교 소사로 일할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평생 일과 함께 살아왔다. 젊었을 때는 끊임없이 다음 일을 생각하고 일을 찾아다녔다. 비록 작고 힘든 일일지라도 그 일을 발판으로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꺼운 마음으로 부지런히 일했다. 꾸준히 일거리를 찾고, 아끼고 또 아끼다 보니 종자돈이 모여 그 종자돈으로 새로운 일을 벌일 수 있었다. 그렇게 몇 년을 살다 보니 이제는 일이 나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어도 새로운 사업거리를 들고 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새로운 일거리가 눈에 쏙 들어오기도 했다. 그때부터는 내가 일을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 들어오는 일 가운데에서 선택하는 게 중요했다. 사업제안이라는 것은 마치 잘 포장한 선물상자와 같다. 화려하게 포장한 큰 상자와 소박하게 포장한 작은 상자가 있다면 사람들은 누구나 큰 상자를 집으려 할 것이다. 그런데 큰 상자 안에 든 것이 자잘한 목욕용품이고 작은 상자 안에는 다이아몬드가 들어있다는 걸 안다면 누가 큰 상자를 집으려 하겠는가.
화려한 포장의 속을 들여다볼 줄 아는 혜안이 필요하다. 그걸 가르쳐 준 것은 다름 아닌 일이었다. 시시때때로 들어오는 사업제안을 꼼꼼히 검토하고 결과를 예상하다 보니 나중에는 대략 개요만 들어도 되는 사업이다 아니다를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부터 그런 능력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일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이다. 일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은 정말 많다. 하고 있는 일도 점점 더 커져 많은 직원들이 필요했고, 사람이 모이면 모인 만큼 내게는 새로운 일이 자꾸만 늘어났다.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부서가 늘어나고 사람이 늘어나니 '인사가 만사'라는 걸 실감하게 되었고, 중요한 일로 삼아야 했다. 이렇게 들어오는 일을 한정 없이 받아들이다 보면 끝이 없다. 그때부터는 적임자를 찾아 권한을 이양하고 관리 감독하는 업무가 더욱 중요해졌다.
임직원들에게 책임과 권한을 주고 모두가 조화를 이뤄 결과를 이끌어내는 사람이 경영자다. 그러면서도 회사의 밑바닥부터 나 자신까지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흐름이 이상하면 즉각 시정할 수 있어야 하는 사람도 경영자다. 이런 일들은 주먹구구식으로 되는 게 아니었다. 경영자인 나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어야 했다. 그래서 필요한 지식을 얻기 위해 최고경영자 과정을 몇 군데나 다니며 배웠고, 배운 것을 경영에 적용하여 내 나름의 경영관을 갖춰나갔다. 처음부터 내가 경영자로서 지금과 같은 능력을 지닌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일을 하다 보니 일이 나를 필요로 했고, 나는 부지런히 따르다 보니 능력이 개발된 것이다.
그렇게 지나온 삶을 돌아볼 때 일이 사람을 만든다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한다. 일은 사람을 알아본다. 재벌가에서 2세, 3세들은 처음부터 상당한 위치에서 일을 시작한다. 그러나 그 능력이 일에 미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 주변 기업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답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재벌가에서는 2세, 3세들을 혹독하게 가르친다. 그들의 부모들은 자녀들이 맡을 일의 의미를 알기 때문에 그에 걸맞은 능력과 심력을 키우기 위해 엄격하게 가르치고 현장에 내보내서 실무를 익히게 한다. 처음부터 능력이 뛰어나 높은 위치의 일을 맡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차근차근 일을 하다 보면 일이 가르쳐주고, 그렇게 해서 올라간 사람만이 큰 결실을 거두는 사례를 많이 보아왔다.
2장 삶이 가르쳐 준 것들부지런하라
사람들을 만나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화제가 자주 올라온다. 개인이나 기업가나 모두 앞날에 대해 걱정한다. "이제 뭘 해서 돈을 벌고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앞으로 어느 분야 어느 산업이 전망이 있을까?" 답을 알기 위해 전문가에게 묻고 귀를 기울인다. 어린 학생들도 "앞으로 유망한 직업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학교를 선택한다. 이제 우리 사회도 많이 바뀌었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가 늘어나는가 하면 중산층이 몰락하고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사람들이 "이제 뭘 해야 하는가?" 하고 묻고 다닌다는 것은 그만큼 앞날이 불투명하다는 이야기다. 세계금융위기 이후 경제학자들도 낙관론자와 비관론자로 나뉘어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고 팽팽히 맞서고 있다.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 예측은 할 수 있지만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지금껏 내가 살며 느낀 바로는 앞날은 항상 불투명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열심히 부지런히 하는 것뿐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단 하나뿐이다. "부지런하라!"
이는 내가 자식들에게도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말이다. 나는 아침 5시에 일어나서 간단히 요가를 하고 7시면 식탁에 앉는다. 식사를 마치고 출근하면 8시에 사무실에 도착한다. 오전에 회사 안에서 할 일을 마치고 점심 무렵이면 사람들을 만나거나 현장으로 나간다. 저녁 약속까지 마치고 들어오는 시간은 대중이 없지만 12시 전에는 귀가를 하여 휴식을 취한다. 일요일을 빼면 온종일 활동을 하는 셈이다. 젊은 사람들도 나를 쫓아다니다 보면 힘들다며 그 나이에 어떻게 그렇게 활동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수십 년간 몸에 밴 습관이기에 나는 힘든 줄 모른다.
습관의 힘이란 무서운 것이다. 내가 아는 성공한 최고경영자들은 모두 부지런함이 몸에 밴 사람들이다. 아무리 늦게까지 저녁모임을 해도 다음날이면 새벽에 일어나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수시로 경영 현장이나 공장을 다니고 끊임없이 뭔가를 하고 있다. 부지런한 사람은 시간을 아껴가며 쫓아다니는데도 해야 할 일이 항상 눈앞에 쌓여있다. 하면 할수록 일은 늘어나고 그래서 늘 부지런하게 살 수밖에 없다.
앞날에 대한 걱정을 하는 시간에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어떻게 더 잘할 수 있을까 생각하고 실천에 옮기는 게 훨씬 도움이 된다. 앞날은 지금 하는 일이 저절로 열어준다. 생각만으로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50년 전 무일푼으로 무작정 올라와서 서울역에 내렸을 때도 다음 날을 몰랐다. 남대문시장에서 과일도매상을 하는 선배를 무작정 찾아가서 가게 한쪽에 짐을 풀고 가게 일을 도왔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저녁까지 쉴 틈이 없었다. 몇날 며칠을 그렇게 하며 밑천을 모아 부천 인근의 과수원에서 직접 과일을 받아 팔 수 있었다. 처음부터 과일도매를 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하루하루 부지런하게 움직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회가 왔다. 부지런하게 다니다 보면 기회는 늘 찾아온다. 부지런한 자는 앞날을 걱정하지 않는다. 항상 할 일이 있고, 길은 자연스럽게 열리기 때문이다.
방법은 반드시 있다
주택사업을 시작할 무렵이었다. 일이 있으면 일단 달려들다 보니 겨울에 공사를 하게 되었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워서 2월에도 영하 10도를 맴돌았다. 약속한 준공일은 다가오고 빨리 작업을 해야 하는데, 가장 기초가 되는 콘크리트 기반공사를 할 수가 없었다. 다른 작업은 추위에도 할 수 있다지만 콘크리트 기반작업은 영하로 내려가면 대책이 없었다. 콘크리트가 굳지도 않을뿐더러 물이 얼었다 녹으면 균열이 생겨 부실공사가 되고 만다. 그렇다고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방법이 없을까 고민을 하던 끝에 생각난 아이디어가 더운 물로 콘크리트믹싱을 하는 것이었다. 목욕탕에서 물을 데우고 그 물로 콘크리트와 모래를 비볐다. 동결을 막기 위해 염화칼슘을 약간 섞고, 타설하자마자 가마니로 덮은 다음 불을 피웠다. 막상 작업을 하고 나니 불안했다. 밤에 잠도 자지 못하고 수시로 현장에 가서 어떻게 돼가나 가마니를 들춰보곤 했다. 다행히 콘크리트는 잘 굳었고 공사를 기한 내에 마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