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버스, 유쾌한 도전
박현우, 한희진 지음 | 라이온북스
박현우, 한희진 지음
라이온북스 / 2010년 10월 / 248쪽 / 12,000원
대한민국을 먹여 살릴 기업을 꿈꾸다스물여덟, 일찍 도전하다 : 나는 병역특례 기간 동안 쌓은 4년의 실무 경력과 1년간의 프리랜서 경력을 인정받아 대학 4학년 1학기 즈음에 SK커뮤니케이션즈에 대리로 입사했다. 내가 SK커뮤니케이션즈에 입사 한 이유는 큰 기업의 경영시스템이 어떻게 다른가를 직접 체험하고, 또 내 인생을 걸 만한 사업의 기회를 발견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처음 입사할 당시, 내심 3년 정도 회사를 다니며 경영수업을 받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더 잘 할 수 있고, 더 성과를 낼 수 있고, 더 즐겁게 몰입할 수 있는 길은 '비즈니스를 하는 것'이라는 확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때 내 머릿속에 있던 비즈니스 모델은 웹에이전시였다. 웹에이전시는 웹사이트를 기획, 제작하고 이를 운영 대행하는 대행사업자를 말하는데, 그다지 특별하거나 독창적인 모델은 아니었고, 구글과 같이 산업의 헤게모니를 갈아치울 만한 거대한 비즈니스 영역도 아니었으며, 진입장벽이 낮아 이미 경쟁자가 많은 레드오션이었다. 하지만 나는 웹에이전시야말로 내가 잘 알고 있고, 잘 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는 분야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새로운 비즈니스에 대한 아주 구체적인 방향들을 잡아나갔다.
당시 웹에이전시 대표들에게는 큰 골칫거리가 하나 있었다. 인터넷사업이 붐을 이루면서 웹에이전시 업계에 몰려 있던 우수한 인재들이 SK커뮤니케이션즈나 NHN과 같은 거대 인터넷서비스 회사 또는 대기업 광고 및 홍보부서, IT부서로 빠르게 이탈해 심각한 인재난을 겪고 있었다. 때문에 많은 웹에이전시들이 고객사로부터 품질에 대한 강도 높은 도전을 받고 있었다. 이런 업계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나는 업계의 체질을 바꿔야만 전세의 역전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기존 에이전시들이 뜻을 모아 협동과 단결을 해야 하는데, 이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체력이 많이 소모되는 일이었다. 반면 하나의 위대한 롤모델이 나타나 체질 개선의 선례를 보여주는 것이 더 빠른 방법이 될 수도 있었고, 나는 그 롤모델을 바로 내가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 생각으로 나는 입사 9개월 만에 주변 사람들의 만류를 무릅쓰고 회사의 회유에도 아랑곳없이 SK커뮤니케이션즈를 그만두었다. 그로부터 2주 후인 2007년 2월 1일, 2개월 전부터 준비한 회사 플랜힐의 문을 열었다. 플랜힐의 사업 모델은 웹 컨설팅 에이전시였다. 고객사가 만들어 준 전략을 그대고 받아들여 수행만 담당하는 웹에이전시가 아니라, 고객의 전략수립단계에서부터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웹 컨설팅 에이전시였다. 세계적인 디자인 이노베이션 회사로 명성이 높은 미국의 기업 IDEO가 주장하는 'Phase 0'의 개념을 사업화한 것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낸다는 비전과 열정의 뒤편에는 초라하고 배고픈 현실이 숨어 있었다. 창업멤버는 모두 네 명이었고 사무실 구할 돈을 아끼려고 구로디지털단지에 위치한 아버지 회사 한 켠에 자리를 잡았다. 월세 100만 원이라는 '아들특별우대조건'으로 입주해 겨우 책상 여섯 개가 들어갈 만한 자리를 만드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대한민국을 먹여 살릴 기업' 가슴 뛰는 비전을 품고 : 나는 사람들이 각자의 인생의 목적 즉, 비전을 발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창업을 준비하면서 창업에 동참하는 전 구성원들이 함께 바라봐야 할 하나의 명확한 비전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는데, 때마침 진대제 전 장관의『열정을 경영하라』라는 책을 읽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진대제 전 장관을 스카우트 한 사건을 알게 되었다. 책에서 진대제 삼성전자 사장은 2003년,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된다. 전화를 건 사람은 다름 아닌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당시 노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단 한마디로 진대제 장관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고 이내 그를 섭외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진 사장, IT산업을 일으켜 10년 뒤 대한민국을 먹여 살릴 거리를 만들어 봅시다."
이노버스의 비전을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책을 덮고 우리 회사가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 기업이 되는 10년 후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미 존재하는 무대에서 최고가 되는 방법을 고민해보았지만, 그 무대들은 이미 대단한 경쟁자들이 많았다. 또 1등을 해봤자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작은 무대들도 많았다. 그래서 좀 더 과감한 상상을 시작했다. '그래!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려면 적어도 비즈니스 무대 하나쯤은 직접 만들어야지!'
레드오션 속 블루스카이 '디지털 마케팅 대행업' : 웹에이전시로 통하는 디지털 마케팅 대행업은 시장의 크기만 봤을 때는 참 작은 산업이다. 전체 광고시장은 2009년 기준 8조 원 정도의 시장인 데 비해, 인터넷 키워드광고시장을 포함한 디지털 마케팅 대행업은 고작 1조 원을 조금 웃도는 수준이었다. 또한 종합광고대행시장에 비해 진입장벽이 낮은 편이었고, 소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는 사업이어서 수천 개의 업체들이 난립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왜 산업도 크지 않고 그렇다고 미래의 확연한 발전이 예상되지도 않는 이 산업에서 시작하려 하나요?" 당연한 수순처럼 질문이 되돌아온다.
이쯤에서 나의 대답은 확신에 차 있다. 디지털 마케팅 대행업은 너무나 작은 시장이라 일반인들이 인지할 만한 분야는 아니지만, 사업을 시작하는 젊은 사업가에게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너무나도 매력적인 분야라 할 수 있다. 첫째, 사업을 시작하는 비즈니스로서 '대행업'은 도약의 기회를 제공해주는 구름판과도 같다. 둘째, 비즈니스 성패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마케팅'을 대행하는 일은 고객사의 핵심정보를 공유하고 서로의 성공을 위해 함께 고민하는 중요한 역할이다.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나는 비즈니스 시발점을 디지털 마케팅 대행업으로 결정했다.
승리를 위한 유니폼 갈아입기 : 회사를 창업할 당시 우리에게는 절대로 물러서지 않겠다고 다짐한 두 가지 영업 원칙 - ① 각 분야 최고 대기업에게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② 단순 제작이 아닌 컨설팅 프로젝트를 만들어내는 것 - 이 있었다. 참고로 웹에이전시의 전통적인 영업방식은 고객사에서 발주하는 RFP(제안요청서)를 받아서 이에 따른 제안을 준비하여 경쟁 입찰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대기업으로부터도 RFP를 받지 못했다. 왜냐하면 아무도 플랜힐이라는 회사가 있는지 알지 못했고, 알았다고 하더라도 스물여덟 살의 대표가 이끄는 간판도 없는 스타트업 에이전시에게 선뜻 RFP를 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단순한 웹에이전시를 넘어서 컨설팅 서비스를 포함한 대행업을 하겠다는 우리의 확고한 원칙은 프로젝트 참여를 더욱 어렵게 했다.
그래서 초기영업부터 우리는 코너에 몰렸다. 상황이 이쯤 되자 영업 원칙을 고수하는 것에도 회의가 들기 시작했고, 내부적으로도 사업초기에는 좀 더 유연하게 영업을 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그래서 원칙을 조금 더 느슨하게 낮추는 부분에 대해서 심사숙고했으나, 결국 우리는 이 영업 원칙을 포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왜냐하면 이 원칙을 포기하느니 차라리 사업을 접는 게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전략은 유지하되 전술은 언제든 바꿀 수 있는 것처럼, 창의적이고 유연한 의사결정을 했다. 이미 명성이 있는 협력업체와 손을 잡는 OEM 방식을 채용해 영업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때마침 대학생 시절 프리랜서 신분으로 프로젝트를 함께 했던 미디어포스라는 웹에이전시의 최충헌 전무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당시 나는 미디어포스라는 기업을 좋은 아트 디렉터들을 보유한, 디자인 기획 능력이 뛰어난 회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회사는 고객사의 요구사항을 관통하는 해결책을 찾아내서 쉽고 매력적으로 컨셉화하는 강점이 있었고, 미디어포스에서 만들어낸 디자인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할 자신도 있었다.
최충헌 전무와 전화 통화를 하고 몇 주 후, 미디어포스에서 플랜힐에 첫 번째 프로젝트를 의뢰했다. KT에서 새롭게 도입하는 웹서비스에 대한 컨설팅 프로젝트였다. 플랜힐은 KT에 제출할 제안서를 미디어포스와 함께 작성하고, 수주가 결정되면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조건으로 공동제안을 하기로 결정했다. 예상대로 미디어포스와 플랜힐의 호흡은 찰떡궁합이었다. 인격적인 신뢰 속에서 협업이 잘 이루어진 덕분에 멋진 승리의 감격도 맛보았다. 그리고 미디어포스와 함께하는 컨설팅 프로젝트에 대한 포트폴리오가 쌓이면서 점차 자체 영업을 위한 기반이 다져져 가고 있었다.
이노버스 엔진에 시동을 걸다이노버스의 탄생 : 창업 초기 미디어포스와의 협업은 윈윈을 가져오는 확실한 무기였다. 하지만 우리는 영업 원칙을 지키면서 사업을 성장시키기 위한 좀 더 멋진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 즈음 미디어포스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형태의 새로운 협력방안(자회사 설립)을 제안해 왔다. 2개월의 고심 끝에 우리는 받아들이기로 결정하고, 2007년 8월 1일, 새로운 회사 '이노버스'를 창업했다. 이노버스라는 상호는 이노베이션(Innovation)의 'Inno'와 비즈니스(Business)의 'Bus'가 결합된 단어인데, 이 안에는 두 가지의 의미 - ① 우리의 서비스를 통해 고객사의 비즈니스를 혁신하겠다는 의지 ② 우리 자신의 비스니스를 끊임없이 혁신해나가겠다는 의지 - 가 내포되어 있다. 아무튼 이노버스는 곧바로 미디어포스와 협업하여 새로운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고, 마침내 2008년 1월, 한국존슨앤드존슨 컨슈머 온라인 마케팅 통합 대행사 선정 프로젝트의 RFP가 회사에 도착했다.
위대한 승리의 시작, 한국존슨앤드존슨 프로젝트 : 한국존슨앤드존슨의 온라인 마케팅 통합 대행사 선정 프로젝트는 연매출 20억 원을 확보할 수 있는 큰 건이어서, 이노버스의 전 인력이 이 프로젝트 제안을 한 달 가량 준비했다. 제안에 대한 평가는 총 3단계로 이루어졌는데, 1차 서류 평가는 모회사인 미디어포스의 인지도와 사세, 수행실적이 큰 힘을 실어주어 무난히 통과할 수 있었다. 2차 평가에서도 우리는 두 번의 추가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최종 선정되었다.
마침내 3차 평가를 위한 프레젠테이션 날, 나는 확신에 찬 열정적인 프레젠테이션을 아낌없이 쏟아냈는데, 이미 정교하게 준비된 곳곳의 킬링 포인트에서 냉랭했던 브랜드 매니저들의 마음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고, 중간 중간 곳곳에서 공감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특히 각 브랜드별 컨셉을 제시하는 장표에서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매니저들이 제법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우리가 제시한 컨셉 소개와 함께 디자인을 시연하는 순간, 많은 브랜드 매니저들이 밝은 미소로 환하게 웃기 시작했고, 마침내 의사결정권자로부터 "언제부터 인수인계를 시작할 수 있으신가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적합한 한 사람을 위한 13개월의 기다림 : 이노버스의 유쾌한 대들보. 그가 바로 윤태진 부장이다. 나와는 2006년 SK커뮤니케이션즈에서 첫인사를 나눴는데, 윤태진 부장이 가진 장점과 단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나는 윤태진 부장을 단지 '일하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이노버스를 함께 이끌어 갈 적합한 리더'라고 믿고 있었다. 창업을 하고 채 2개월이 되지 않았을 즈음, 나는 다섯 명의 직원과 함께 일하고 있던 상황에서 1,200명의 직원이 있는 대기업에 다니는 그를 찾아가 당당하게 "저와 함께 일하시죠"라고 말을 꺼냈다. 당시 윤태진 부장의 얼굴에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고, 초대해 주면 회사에 놀러오겠다고 했다. 몇 주 후, 윤 부장은 구로디지털단지에 위치한 사무실로 찾아왔다.
사무실에 들어선 윤태진 부장은 한동안 할 말을 잃은 듯 보였고, 노코멘트로 에둘러 거절의사를 밝히며 어떤 말도 하지 않은 채 자리를 떴다. 그때부터 나의 기다림은 시작되었고, 이후 한 달에 몇 번씩 윤태진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상당한 기간이 지나고 이노버스가 한창 성장의 발판을 다져, 이제 '선수'가 더욱 더 절실히 필요해 스카우트를 다시 제안하기로 맘먹은 어느 날, 윤태진 부장에게서 먼저 전화가 왔다. 그를 스카우트하려고 기다린 지 13개월이 지났을 때 무렵이었다.
"박 대표님, 접니다. 어떻게 지내세요?" "아! 저 지금 소녀시대 윤아란 클린앤드클리어 광고 촬영하고 있어요." "진짜요? 윤아랑요? 언제부터 시작했어요? 진작 말씀하셨어야죠. 저 언제부터 출근하면 될까요?" 탑승을 수락하는 과정에서도 윤태진 부장은 이처럼 본인 특유의 위트를 발휘했다. 통화를 마치고 정확히 2주 후에 윤부장은 이노버스의 일원이 되었다. 기업은 한 사람을 위해 얼마만큼의 시간을 기다려야 할까? 나는 '적합한 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몇 년도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조직의 성공을 위해서 꼭 여러 사람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적합한 한 사람이면 충분하다.
"Delightful Innovation" 이노버스를 정의하다 : 이노버스가 설립되고 18개월이 지난 2009년 2월, 현대캐피탈 정태영 대표의 <디자인 경영>이라는 세미나를 듣고 온 윤태진 부장이 대표실 문을 두드렸다. "이제 이노버스도 우리만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정립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윤태진 부장은 정태영 대표가 즐겨 쓰는 '티파니 파이낸스'라는 말을 인용하며, 단순히 디자인을 예쁘게 하는 경영이 아니라 본질과 철학을 디자인 안에 녹여낼 수 있는 기업 이미지를 갖춰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2009년 2월, 윤 부장은 3명의 직원과 IBID(INNOBUS IDENTITY) TF팀을 조직했다.
TF팀은 가장 먼저 '무엇이 이노버스다운 것인가'라는 쟁점을 놓고 고민했다. 그 출발점은 "이노버스의 강점이 무엇인가?"였다. 회의실 칠판 가득히 이노버스의 현재와 미래의 모습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뽑아 포스트잇으로 붙여나갔다. 그렇게 '이노버스다움'을 찾기 위한 IBID TF팀의 노력은 두 달 동안 계속되었고, 두 달이라는 시간이 지나 3차 미팅이 다가왔을 즈음, '유쾌함'과 '혁신'이라는 키워드로 모아졌다. 그렇게 하여 3차 미팅 때, TF팀은 'Delightful Innovation'이라는 슬로건을 들고 왔고, "이것도 좋은데, 다른 대안은 없나요?"라는 내 발언에 윤태진 부장은 당황해 했다.
이노버스가 추구하는 문화가 유쾌한 것도 혁신을 추구하는 것도 모두 맞는 말이다. 다만 이노버스를 창업하는 데 큰 동기부여가 되었던, 미국의 디자인 그룹 IDEO의 기업 문화와 비슷한 데서 나는 주춤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기업 문화는 CEO가 만들어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CEO가 큰 방향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기업 문화는 조직원들에 의해 구체화되고 현실화되는 것이다. 이노버스 직원들이 유쾌하고 혁신적인 모습의 회사를 그리고 있다면, 이것은 더 이상 내 몫이 아닌 직원들의 몫이다. 이렇게 하여 슬로건은 'Delightful Innovation'으로 결정되었고, 열정을 상징하는 빨강을 이노버스의 브랜드 컬러로 확정지었다. 따뜻한 마음이 오가는 가운데서 느껴지는 유쾌함과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마인드로 혁신을 추구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이노버스의 'Delightful Innovation'이다.
딜리노들을 행복하게 하는 7가지 캠페인 : 이노버스에서 진행한 내부혁신 프로그램들과 프로젝트 포트폴리오를 살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나같이 뾰족하고 선명한 컨셉이 있다는 것이다. 또 그것은 직관적이며 기억하기 쉽고 핵심을 관통하는 명료함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만드는 컨셉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기대하게 만들고 가슴을 뛰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이노버스가 하면 뭔가 다르게 만드는 우리만의 강점이다. 참고로 딜리노들을 행복하게 만들었던 대표적인 내부혁신 프로그램들과 슬로건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① Winnovaton(이기는 혁신) :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추구해서 보편적인 개념이 되어버린 '혁신'을 넘어서서, 반드시 이기는 혁신을 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이긴다는 의미는 산업현장에서 마케팅전쟁을 펼치고 있는 고객사들의 승리와 우리 회사의 승리를 의미한다. ② G모닝로그(Great Morning Log) : 이노버스의 매일 아침은 특별하다. 정규 출근시간인 오전 8시. CEO가 그날 하루를 이끌 수 있을 만한 1분 메시지를 전 직원에게 전달한 후, 그날의 컨셉을 정해 매일 사진을 찍는데, 이 프로그램을 우리 회사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한 달에 300만 원 이상 들어가던 홍보비용을 더 이상 쓰지 않아도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