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커, 업자, 변호사 그리고 스파이
이먼 제이버스 지음 | 더숲
이먼 제이버스 지음
더숲 / 2010년 7월 / 382쪽 / 16,900원
암호명 유카 2005년 어느 화창한 봄 날 KMPG 회계사 가이 엔라이트는 버뮤다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자신을 닉 해밀턴이라고 소개한 남자와 점심을 함께했다. 해밀턴은 엔라이트에게 자신이 영국 첩보부에 소속되어 있다는 인상을 내비쳤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해밀턴은 미국 CIA 베테랑, 영국의 전직 정보국 간부, 모험심 가득한 젊은 미국의 대학졸업생으로 구성된 기업 스파이 팀의 일원이었다.
이들 스파이들은 러시아 최대의 민간 복합 금융기업인 알파그룹을 위해 일하고 있었는데, 암호명 ‘유카 프로젝트’라는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당시 알파그룹은 IPOC 인터내셔널 그로스 펀드라는 버뮤다 소재 기업과 격렬한 분쟁을 벌이고 있었다. 싸움은 메가폰이라는 러시아 통신회사의 주식을 차지할 정당한 소유자가 누구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알파 그룹 지배자 미하일 프리드먼은 푸틴 정부 밑에서 통신부 장관을 맡고 있던 레오니드 레이먼과 대립하고 있었다. 프리드먼은 레이먼이 IPOC의 진짜 소유주이며 메가폰의 주식을 차지하려는 그 회사의 시도와 통신부 장관이라는 레이먼의 직책이 이해 상충된다고 믿고 있었다. 한편 IPOC는 덴마크 변호사 제프리 갈몬드가 IPOC를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공교롭게도 갈모드는 레이먼의 변호사였다. 러시아에서 막강한 힘을 가진 두 사람이 으르렁거리고 있으니 무슨 일이든 일어날 것처럼 보였다.
유카 프로젝트의 목적은 알파 그룹이 IPOC의 국제적이고 복잡한 법적 구조를 풀어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당시 회계법인 KPMG는 버뮤다 정부 요청으로 그 문제를 조사하고 있었다. 스파이들은 그 조사 자료를 절실히 원했다. 그래서 엔라이트를 목표로 삼았다. 그들은 엔라이트가 기밀문서인 그 조사의 핵심 자료를 넘겨주기를 원했다. 닉 해밀턴으로 가장하고 엔라이트를 만난 사람은 미국 민간 첩보회사인 딜리전스의 창업자 닉 데이였다. 영국군 특수부대 출신인 그는 유카 프로젝트 계획에 따라 다음과 같은 인물 유형을 찾고 있었다. “20대 중반 남성으로 회사 생활에 무료함을 느끼고 파티를 좋아하고 현금이 필요하며 리스크를 즐기고 스포츠를 좋아하고 여자를 좋아하고 경영자에 대해 불손한 태도를 가지고 있으며 경비를 유용하기는 하지만 애국심을 가진 사람” 영국 출신 회계사 엔라이트는 이 심리 프로파일에 가장 가까운 인물로 낙찰되었던 것이다.
레스토랑에서 엔라이트를 만난 닉은 영국 정부 직인이 찍힌 가짜 질문지를 꺼내 엔라이트의 부모, 경력, 전과, 정치 활동에 대해 물었다. 엔라이트는 성실하게 대답했다. 이것은 스파이들이 허위 모집이라고 부르는 과정이다. 스파이는 그 사람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돈? 섹스? 애국심? 거기서부터 스파이는 그 사람의 동기를 이용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엔라이트는 자신의 조국을 사랑했다. 닉은 그 심리를 이용하여 엔라이트를 속였다. 그는 자신들이 영국 왕실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면서 러시아 마피아의 좋지 않은 거래에 대해 언급했다.
닉은 자신이 영국 특수부대에서 일하던 당시의 전쟁담을 엔라이트에게 들려주며 유혹을 시작했다. “사무실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IPOC 조사에 대해 알고 계시는 점이 있습니까?” 닉이 질문을 끝냈을 즈음 엔라이트는 자신이 제임스 본드가 된 듯한 착각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엔라이트는 기밀문서인 회계감사 자료를 닉이 지정한 장소에 있는 플라스틱 용기에 넣었다. 그는 KMPG가 IPOC를 조사하면서 수행한 인터뷰 기록과 KMPG가 준비하고 있는 내부 보고서 초안을 넘겨주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엔라이트는 새로운 자료를 용기에 넣었고 그 후에 닉이 회수해 갔다. 그렇게 함으로써 두 사람은 서로 만나지 않았고, 다른 쪽을 위해 일하는 스파이들에 의해 사진을 찍히는 일도 피할 수 있었다.
엔라이트가 제공한 자료는 딜리전스(닉이 창업한 민간 기업 첩보회사)에게는 방대한 자료였고, 딜리전스는 이를 이용하여 IPOC에 문제들을 일으켰다. 딜리전스는 자료를 고객사인 로비회사와 공유했고, 전직 소련 군사 첩보원에게 자료를 보내 러시아 쪽에서 보는 관점을 이해하기도 했다. 보고서 초안을 전직 FBI요원에게 보내 혹시 FBI가 IPOC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타진하기도 했다. 딜리전스는 엔라이트가 간첩이나 기업 스파이가 아닌지도 철저하게 조사했다. 닉은 알파 그룹과 IPOC 사이의 전쟁에서 많은 스파이가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스파이 작전을 위험에 빠뜨리는 가장 큰 위협은 밖이 아니라 바로 내부에서 온다. 2005년 10월 뉴저지에 있는 KPMG 사무실에 익명의 소포가 배달되었다. 소포 안의 서류들은 KMPG 경영진에 딜리전스라는 회사가 KPMG의 내밀한 비밀에 접근했음을 보여주었다. 오늘날까지 누가 소포를 보냈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딜리전스에 불만을 품은 전직 딜리전스 직원으로 추정된다. 요즈음 엔라이트는 런던의 딜로이트 회계 법인에서 일하고 있다. 유카 프로젝트가 끝날 무렵 닉은 엔라이트에게 롤렉스 시계를 선물했다. 엔라이트는 그것이 영국 정부가 보낸 감사의 표시라고 믿었다. 하지만 물론 아니다.
1부 보거스 섬에서 딥 초콜릿까지 - 민간 스파이 산업의 역사
기업형 스파이의 선구자 앨런 핑커턴민간 첩보의 역사는 앨런 핑커턴으로부터 시작한다. 19세기 중엽 27세의 핑커턴은 스코틀랜드의 빈곤과 불안한 정치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핑커턴은 서부 개척 시대 일리노이주 던디에 정착했다. 그곳에서 통 만드는 사업을 하던 그는 보트를 타고 폭스 강에 있는 작은 섬에 가서 나무를 자르다가 수상한 사람들을 발견하고 보안관에게 이를 신고한다. 며칠 후 치안대를 대동한 핑커턴과 보안관은 밤에 그곳으로 가서 화폐 위조단을 체포하고 여러 가지 도구들과 위조 주화들이 든 자루를 회수했다. 그 이후 그 땅은 보거스(Bogus) 섬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화폐 위조범의 검거는 핑커턴에게 수사관의 자질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후 핑커턴은 1950년대 자신의 이름을 내건 핑커턴 전국탐정사무소를 세웠다. 그의 회사는 기업 고객과 부유한 개인들을 위해 일하는 첩보회사였다. 그는 철도, 광산, 전신 회사들에게 큰 손해를 입히는 범죄자들을 좇았다. 1971년 미국 법무부는 수사 업무의 많은 부분을 핑커턴의 회사에게 용역을 주었는데, 핑커턴 사무소의 임무, 전술, 조직은 이후 미국 비밀경호국과 FBI의 탄생에 영감을 주었다.
핑커턴의 탐정들은 당시 새로운 기술과 중앙 집중화된 정보 수집 기법을 적극 이용했다. 1840년 사진 기술이 발명되었고, 핑커턴은 범인 식별용 얼굴 사진을 개발했다. 또한 암호화된 정보를 주 경계선 너머로 보낼 수 있는 전신의 이점을 활용했고, 철도회사와의 네트워크를 통해 지역 경찰들이 감당하지 못하는 전 대륙에 걸치는 범죄를 담당했다. 핑커턴의 직원들은 그들이 만나는 모든 범죄에 대해 파일을 만들어 관련 인물의 신체적 특징이나 습관, 작업 방식 등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그들은 이 파일을 이용해서 범죄 유형을 맞추어보고 용의자 목록을 뽑아내었다.
핑커턴은 기업 도둑들과 싸웠고, 은행 도둑들을 추격했으며, 서부의 제시 제임스 일당들을 쫓았다. 남북전쟁 당시 링컨 대통령의 암살 시도를 저지했으며, 남부에 스파이들을 보내 군사력과 정치 상황을 감시하였다. 핑커턴처럼 오늘날까지도 전시에 민간 첩보 회사가 정부에 첩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수익성 좋은 사업이다. 오늘날 첩보 회사 중에 부즈 앨런 해밀턴이라는 회사는 1만 9천 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미국 첩보계에 컨설팅을 해주면서 연간 40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인다. 대조적으로 규모가 작은 회사로는 아브락삭스가 있다. 이 회사는 CIA의 전 세계적 비밀 활동을 돕기 위해 가짜 신분증과 유령회사를 만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모든 회사들 앞에 핑커턴이 있다.
정교하고 견고한 첩보 제국의 건설20세기에 기업 탐정들은 정교한 첩보 제국을 건설했다. 일부는 미국 정부 첩보기관과 협력했고, 국가적 위기가 닥쳤을 때는 국가에 서비스를 제공했으며, 외국 정부들을 돕기도 했고 애매한 도덕 기준을 적용하면서 엄청난 부를 쌓았다. 대표적인 회사가 은둔적인 억만장자 하워드 휴스의 개인 CIA로 알려졌던 인터내셔널 인텔리전스(이하 ‘인터텔’)였다.
인터텔의 창립자는 로버트 돌런 펠로퀸이다. 그는 한때 미국 국가안보국의 첩보원이었고 법무부의 마피아 사냥꾼이었다. 법무부에 있을 때 그는 마피아와의 싸움에 관련된 모든 기관들(국세청, 마약수사국, FBI)에서 일하는 고위 직원들을 모아 기동 타격대를 조직했다. 그는 기동 타격대를 이끌고 미식축구연맹(NFL)에 영향력을 행사해 경기를 조작하려는 마피아를 소탕했다. 이후 그는 법무부를 그만두고 NFL 총재 피트 로젤의 도움을 받아 워싱턴에 로펌을 세우고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처음 사업을 하면서 바하마 제도에 있는 섬을 구입하여 리조트 개발 사업을 하려는 제임스 크로스비를 만나게 되었다. 크로스비는 섬에서 도박 사업을 하려고 했는데 도박 사업에는 폭력배들이 들끓었기 때문에 겁을 먹고 있었다. 크로스비는 직원들을 뽑을 때 그들이 마피아와 연관되어 있는지 확인해주길 원했다. 펠로퀸은 정부기관의 인맥을 동원하여 리조트 직원들의 배경을 조사하여 그 부분을 알아냈다. 그때부터 이 기법은 펠로퀸 경력의 한 특징이 되었다. 즉 고객에게 배경 조사할 비용을 청구하고, 알고 있는 인맥을 이용하여 정부 파일을 뒤져 조사하는 것이다. 그것은 훌륭한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이후 펠로켄은 인터텔을 형성하고 법무부 마피아 기동타격대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들을 고용했다. 1970년 펠로퀸은 억만장자 하워드 휴스의 측근 체스터 데이비스의 전화를 받았다. 휴스의 충성스런 컨설턴트 로버트 마흐를 쫓아내는 데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였다. 마흐는 휴스를 위해 외국 정부 권력자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자료 작성, 휴스 자신의 중역에 대한 감시와 조사, 정치 헌금 분배 감독 같은 온갖 종류의 민감한 일들을 처리해 왔던 사람이다.
인터텔이 맡은 일은 마흐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라스베이거스에서 휴스를 빼내는 일이었다. 인터텔은 요원들을 라스베이거스로 보내 휴스를 바하마 제도의 은신처로 옮겼다. 이 일을 보고받은 마흐는 요원들을 바하마로 보냈지만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인터텔이 대비하고 미리 조치를 취해놓았기 때문이다. 이 사건 이후 유명 인사들이 인터텔을 찾았다. 포드 자동차 설립자의 손자 헨리 포드는 자신의 새 카지노에서 일한 모든 사람의 배경 조사를 부탁했고, 《워싱턴 포스트》의 발행인은 자신의 사무실에 도청 증거가 있는지를 조사해 달라고 부탁했다.
1970년대 초반 이후 휴스는 계속 인터텔에 의존했다. 클리퍼드 어빙이란 사람이 출판사 맥그로우힐에서 발행하는 휴스 자서전의 공저자라고 발표했을 때 인터텔이 그 사건을 맡아 어빙이 사기꾼임을 밝혀내기도 하였다. 휴스를 위해 많은 임무를 수행했던 인터텔은 1976년 4월 마지막 임무를 맡았다. 휴스가 멕시코의 한 호텔에서 욕창투성이의 나체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휴스의 보좌관에게 그의 죽음은 악몽이었다. 멕시코 당국이 그들을 체포한 것이다. 멕시코 의사들이 휴스의 상태를 보고 보좌관들이 휴스를 방치한 것으로 의심했기 때문이다. 펠로퀸은 멕시코로 급히 날아가 경찰에게 뇌물을 제공하여 수행원들을 모두 구해냈다. 그리고 수행원들이 마약 소지 혐의로 체포되지 않도록 휴스의 방에 있던 모든 약들을 트럭에 싣고 멕시코 사막으로 나가 약들을 사막에 버리고 불도저로 밀어버렸다.
인터텔은 1980~1990년대 초반 많은 기업 고객들을 유치했다. 대표적인 고객이 맥도날드, 크래프트 푸드, 클로락스 등이었다. 1994년 인터텔은 핑커턴 탐정 사무소에 인수되었다. 당시 핑커턴 사무소는 무장 경비원들을 보내 공장이나 창고를 감시하는 업무를 주로 했다. 하지만 핑커턴 경영진은 기업 수사 서비스 시장이 성장하는 것을 보고 본래 사업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이후 1970년대부터 시작한 다른 회사가 결국 핑커턴의 유산을 승계하는 상속자로 부상했는데, 이 회사가 바로 크롤이다. 1972년 맨해튼에서 지방검사보로 일했던 줄스 크롤이 세운 이 회사는 이후 FBI, CIA 베테랑들을 고용하며 약 4천 명의 직원을 거느린 거대기업 수사 및 첩보 기업이 된다. 그리고 현대 첩보 회사의 발전과 월스트리트의 점진적인 첩보 기법 수용에서 핵심 역할을 하게 된다.
악한 퇴치자, 크롤1960년대 조지타운 로스쿨을 졸업한 줄스 크롤은 맨해튼의 지방검사보로 일하다가 가업인 인쇄업을 물려받았다. 1971년 인쇄업을 접고 뉴욕 시의원 선거에 출마했던 그는 낙선을 하고 1972년 J 크롤 어소시에츠라는 컨설팅 회사를 세웠다. 이 회사에서 그는 인쇄업과 지방검사사무실에서 배운 교훈을 발전시켜 나간다. 당시 인쇄업은 부패로 가득했고 마피아가 장악하고 있었다. 크롤은 인쇄 회사들이 자사의 구매담당 부서를 우회하도록 돕는 사업을 했다. 당시 구매 부서들은 뇌물을 받아먹은 후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한 업체를 선택했다. 크롤이 중요시했던 것은 투명성을 높이고, 경쟁력 있는 입찰 과정을 창출하고, 직원들에게 사기는 용납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었다.
1978년 크롤은 기업을 운영하는 독자들을 위해 『기업 대상 범죄 예방 및 가이드』라는 책을 펴냈다. 크롤은 전문가들을 고용하여 상업 뇌물, 지적 재산권 절도, 반독점법 위반 등의 각 측면에 대해 기사를 쓰도록 했다. 이 일은 그가 키워갈 회사를 위한 지적인 기본 틀을 마련해 주었다. 이 크롤에게 큰 기회가 다가왔다. 유럽의 악명 높은 기업 매수자 골드스미스가 미국의 제지회사 다이아몬드 인터내셔널을 인수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다이아몬드 인터내셔널은 골드스미스에게 대항하기로 결정했고, 이 회사의 로펌은 크롤을 고용하여 골드스미스의 기업 보유 현황을 조사하도록 했다. 목표는 골드스미스가 인수 대가로 제공하려는 주식이 그 정도의 가치가 안 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결국 골드스미스가 승리했지만 크롤은 이기든 지든 기업 인수에서 돈을 벌 수 있음을 배웠다.
이후 크롤은 또 다른 인수전쟁에 불려갔다. 샤론 스틸사의 회장 빅터 포스너가 음식료업을 운영하는 대기업 포모스트 맥케슨을 인수하려 했던 것이다. 포모스트는 우위를 점하기 위해 크롤을 고용하고 포스너에 대해 모든 것을 알아내도록 위임권을 주었다. 이 조사에서 발견되는 나쁜 정보는 무엇이든 인수를 막는 데 충분히 이용될 수 있었다. 크롤은 포스너의 세금사기와 기업 수익의 의심스런 증거를 발견했고 포스너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 크롤은 최대의 기업 매수자 중 한 명을 패배시킴으로써 1980년대 기업 인수 붐이 막 시작된 시점에서 성공의 평판을 쌓을 수 있었다.
이후 큰 거래를 하려는 기업들은 크롤을 고용하여 협상 테이블 맞은편에 앉은 사람들의 뒷조사를 시켰다. 1980년대 후반은 줄스 크롤에게 호황의 시기였고, 그의 회사는 계속해서 서비스 영역을 넓혀나갔다. 1985년 3월 4일 뉴욕 타임스 기사는 월스트리트에서 점점 커가는 그의 인기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크롤 씨는 전직 FBI 요원, 경찰, 회사 중역, 변호사, 조사연구에 능숙한 박사, 기자를 포함한 50명의 전문가 팀을 거느리고 있다. 그의 회사는 사업가 성명록과 전자 데이터 뱅크를 갖춘 것 외에도 전 세계 300개가 넘는 탐정 사무소, 전문 컨설턴트, 회계사, 변호사를 이용할 수 있다.” 이 기사는 기업 수사관들이 변호사나 회계사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비즈니스 사회의 존경할 만한 플레이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후 크롤에게는 고객들이 쏟아져 들어왔고, 곧 크롤은 월스트리트 사람들에 대한 자세한 파일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 정보에 접근하기 위하여 기업들은 크롤을 고용했다.
이후 크롤은 또 다른 타깃에 초점을 맞추었다. 정부의 일에 본격 개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뉴욕주 하원의원 솔라즈의 부탁을 받고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가 세금을 유용하여 개인적으로 숨긴 자산을 추적했다. 그리고 마르코스가 미국에 비밀리에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들을 밝혀냈다. 이 일을 계기로 크롤은 이제 독재자와 맞서 이길 수 있는 글로벌한 세력으로 인식되었고, 다른 유명한 자산 찾기 사건에 관여하게 된다. 소련이 붕괴된 후 국외로 빠져나간 자산을 찾으려는 러시아를 위해 일했고, 아이티 독재자 뒤발리에의 재산을 찾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으며, 1차 걸프전 후 사담 후세인의 수십억을 찾아 전 세계적인 수색에 들어갔다. 당시 뉴스위크에서는 크롤의 활약상에 깊은 인상을 받아 그 회사를 “악한 퇴치자들”이라고 부를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