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추 CEO
류근모 지음 | 지식공간
상추 CEO
류근모 지음
지식공간 / 2009년 12월 / 240쪽 / 12,000원
유기농계의 삼성전자를 향해 - 세계 최고를 향한 도전농업은 가장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직종
보통 유기농 농가에서는 쌈 채소를 재배할 때 종류별로 묶어서 - 상추는 상추대로, 케일은 케일대로 - 심는다. 이렇게 따로 심는 이유는 관리가 편하고 수확이 수월하기 때문인데, 나 역시 종류별로 묶어서 재배하고 있었다. 그러다 오징어를 운반하는 사람들이 오징어 폐사율을 줄이기 위해 천적 물고기 1~2마리를 함께 넣는다는 인터뷰 기사를 읽고, 우리 농장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선 든 생각은, 식물의 천적인 벌레를 풀어놓는 방법이다. 사람들이 들으면 미쳤다고 하겠지만 일단 생각이라도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물론 이 방법은 쓰지 않았다. 상추가 오징어처럼 도망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벌레에 노출된 상추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독성을 내뿜기 때문이다.
그렇게 며칠을 고민한 끝에 떠올린 방법이 경쟁이었다. '천적'이 키워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노력'이 핵심이 아닌가? 채소끼리 경쟁을 시키면 똑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2~3가지 쌈 채소를 한 곳에 심는 방안을 착안하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가장자리에 상추를 심고, 중앙에는 케일을 심었다. 한 밭에 서로 다른 채소를 함께 심으면 채소끼리 좋은 영양분을 섭취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고, 그 결과 채소는 건강해지고 병충해에 강해진다. 반면 종류별로 채소를 나눠 심으면 긴장할 일이 없으니 병충해에 약해진다. 실험은 대성공이었다.
농업이라고 하면 이미 한물 간 산업이라고 여겨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여기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반대이다. 농업이 구시대 유물이라서 희망이 없는 게 아니라, 희망이 없다는 그 생각이 농업의 발전을 가로막는다. 그렇다면 농업을 부흥시킬 수 있는 힘은 무엇인가? 바로 에디슨과 같은 엉뚱한 아이디어이다. 끊임없이 호기심을 갖고,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찾아야 농업을 미래의 각광받는 산업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농부도 공부하고, 스스로 변신을 꾀해야 숨 가쁘게 변모하는 이 세상에서 생존할 수 있다. 책을 읽고 공부를 해보면 시장이 어떻게 변하는지, 우리 농업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경쟁력을 어떻게 높일 수 있는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빈털터리로 시작한 장안농장
황폐한 밭을 일궈 오늘의 장안농장을 가꾼 지 벌써 13년이 흘렀다. 처음 귀농했을 때는 원대한 뜻을 품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비빌 언덕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서울에서의 사업 실패 때문에 갈 곳을 잃고 쫓기듯이 충주로 내려와 입에 풀칠이라도 해야겠다 싶어 감자 농사와 땅콩 농사에 도전했으나, 아무 계획 없이 무작정 뛰어들었던 것이 실수였다. 두 차례 농사가 모두 실패로 돌아가자 이제 더는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때 아내의 조언으로 다시 힘을 내서 제대로 농사를 지어보자고 한 것이 장안농장의 첫 걸음이었다. 그때가 1997년도였다. 새로 농업에 뛰어들기 위해 당시 내가 생각했던 것은 다음의 세 가지이다. 첫째, 초기 자본이 적어야 한다. 둘째, 수확 기간이 짧아야 한다. 셋째, 자금 회전이 빨라야 한다. 그런 농사가 뭘까? 답은 의외로 빨리 찾았다. 이 세 가지 요건을 모두 채울 수 있는 것은 채소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어떤 채소를 재배할 것인가? 채소는 종류만 수십 가지다. 어떤 채소를 재배하면 좋을지 몇날 며칠을 고민했으나 스스로 찾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전국에서 채소 꽤나 키운다는 고수들을 찾아다녔다. 그런데 어디를 가도 속 시원한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그들은 과거의 성공 신화에 파묻혀 있을 뿐 내가 원하는 답변을 주지 않았다. 그때 문득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이 떠올랐다. 사람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채소는 무엇이고, 어느 정도까지 품질을 올려야 인정을 받는지 그곳만큼 정확히 알 수 있는 곳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곳에서 1년 동안 채소는 과연 어떻게 유통되는지, 어떻게 이 자리를 비집고 들어갈 것인지 틈틈이 관찰하고 고민한 결과, 유기농 쌈 채소를 재배하기로 결정했다.
유기농 첫 걸음을 떼다
친환경 채소를 키운다는 고수를 찾아다녔다. 그러나 제대로 농사짓는 사람은 없었다. 책이라도 있다면 보고 따라하겠는데, 친환경 농법을 다룬 책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던가. 고수는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고향 선배이자 큰 형님의 가까운 후배로 '이해극'이라는 형님이 계셨다. 전까지는 그저 농부로만 알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신선초, 치커리, 상추, 비트 등 쌈 채소를 기르면서 서울 쌈밥집에 공급도 하는 유기농 분야의 권위자였다. 몇 차례 형님을 찾아다니며 일손을 도왔다. 그렇게 다섯 차례 방문했을 때 용기를 냈다. "형님, 농약 안 뿌리고 키우는 방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저를 도와주십시오. 정말 잘할 자신이 있습니다." 형님은 눈을 빠끔히 뜨고 나를 넘겨보더니, "가만 보니 허투루 할 사람 같지는 않고, 좋네. 한번 해보세"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형님과의 인연이 시작되었고, 2~3일에 한 번씩 찾아가 친환경 쌈 채소 재배법을 익혔다.
하지만 농사 초보인 나는 모든 게 서툴렀다. 어제까지 잘 자라던 상추가 다음 날 아침이면 시들기 일쑤였고, 어떨 때는 벌레가 갉은 것인지 상추 잎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기도 했다. 이유가 뭔지 혼자 끙끙 앓다가 형님을 찾아가 물어보기를 밥 먹듯이 했는데, 어느 날은 하루에 3번을 찾아가서 형님을 귀찮게 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점차 쌈 채소 재배에 재미가 붙었다. 낮에는 쌈 채소가 자라는 비닐하우스와 감자, 고추 밭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가락동 시장을 다니는 것을 계속하였다.
하루는 형님이 채소를 어떻게 파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형님, 서울 쌈밥집은 어떻게 개척하셨어요?" "고급 쌈밥집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샘플 보여주면서 설득했지. 농사만 잘 짓는다고 다가 아니더라고. 키우는 거라면 자신이 있는데 서울까지 매일 배달하기가 너무 힘들어. 이걸 계속해야 할지 요즘도 고민이라네. 말 나온 김에 자네가 나 좀 도와줄 수 없겠나?" 형님은 제천 토박이였다. 반면 나는 서울에서 15년을 살아서 서울 지리는 훤했고, 운전을 즐겼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농사꾼으로는 안 된다'는 형님의 말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이번 기회에 장사도 익혀두자는 생각도 있었다. 그날 이후 본격적으로 쌈 채소 배달이 시작되었다.
충주에서 저녁을 먹은 뒤 채소를 싣고 8시쯤 차를 몰아 상경하면 먼저 가락동 경매시장에서 유통되는 품목을 살피다가 자정쯤 본격적인 배달이 시작되었다. 쌈밥집은 한곳에 몰려 있는 게 아니었다. 지역적으로 흩어져 있어서 5곳에 배달하고 충주로 돌아오면 새벽 4~5시였다. 그러던 차에 기회가 왔다. 이해극 형님이 사정이 생겨 당분간 쌈밥집 공급이 어렵게 되었다. 형님이 여의치 않다면 나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마침 당장 그만두시는 게 아니라 시간적인 여유가 있으므로 그 안에 준비를 마치면 충분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웃집 형님의 주선으로 인근 땅 4,000평을 빌리고, 동시에 화훼농장 시절에 쓰던 시설을 옮겨 비닐하우스를 지었다. 그렇게 비닐하우스 4,000평에 쌈 채소 20가지를 심고 본격적으로 쌈 채소 재배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막상 혼자 힘으로 채소를 키우려니 여간 일손이 모자란 게 아니었다. 제일 골치 아픈 것이 잡초였다. 아내와 함께 하루 종일 잡초를 매도 3일 후에는 시퍼렇게 잡초가 올라왔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렇게 뽑고 또 뽑아도 줄지 않는 잡초를 보며 농약 생각이 간절했다. "그래, 이번 딱 한 번만, 딱 한 번만 치자"라고 생각하고, 6천 원짜리 제초제 '근사미'를 사왔다. 서둘러 분무기에 담아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갔다. 순간 스치는 생각, 이걸 지금 뿌리면 어떻게 될까? 아마 한 달은 잡초 걱정 없이 살 수 있겠지만, 농약 없이 농사짓는다고 더 이상은 자랑하고 다닐 수는 없으리라. 나아가 서울 쌈밥집 공급도 중단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아내가 내 생각을 읽었는지 농약 통을 붙들었고, 나는 농약 통을 내려놓고 마음을 다스렸다. 친환경 농사를 지으면서 농약의 유혹에 흔들린 것은 이때가 마지막이었다.
벌레도 큰 골칫거리였다. 화학비료와 농약 대신 목초액, 현미식초, 막걸리, 담뱃잎을 섞어 뿌렸지만 벌레들의 공격을 막기가 어려웠다. 하는 수 없었다. 낮에 자고 밤에 깨어 벌레를 잡으러 다녔다. 그렇게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쌈 채소 친환경 농법의 노하우를 익혀갔고, 서서히 형님이 수확하던 수준으로 품질을 끌어올렸다. 그렇게 공급할 준비를 마치고 형님에게 바통을 넘겨받았다. 1997년 말 장안농장이라는 이름으로 정식으로 사업자 등록을 마치고 본격적인 쌈밥집 공급에 나섰다.
한편 그 무렵 정부에서는 친환경인증 제도가 정비되고 평가 기준이 마련되었고, 나는 제도가 발표되자마자 농산물 품질관리원에 친환경인증신청을 접수했고, 장안농장은 '친환경무농약 품질인증'을 통과했다. 물론 품질을 높이기 위한 시도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 후에도 친환경 농산물을 재배하는 곳이라면 전국 어디든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찾아다니면서 새로운 농법을 익혔다. 그때로부터 2년 뒤인 2000년에는 친환경 농산물 가운데 최고 등급인 유기농산물 인증을 획득했다.
보약으로 쌈 채소를 기르다
내가 친환경 농법을 시행한 이래 가장 심혈을 기울인 일이 '땅심 높이기'인데, 이는 땅의 힘을 끌어올리자는 것이다. 유기농 재배는 농약이나 비료 없이 농산물을 키워야 한다. 그렇다면 농약이나 비료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땅이다. 사람도 기초체력이 튼튼하면 잔병치레가 없는 것처럼 채소도 토양이 기름져야 해충이 꼬이지 않고, 설사 해충의 공격을 받더라도 일반 작물보다 더 빨리 성장한다. 나는 토양의 상태를 최적으로 만들기 위해 맥반석과 옥돌 각 10톤씩과, 참숯 5톤을 규칙적으로 뿌렸다. 맥반석은 흙에 산소를 공급하고, 옥돌은 기와 음이온을 불어 넣으며, 숯은 불순물을 빨아들이는 작용을 한다. 또한 매년 채소를 재배하면 '땅심'이 쇠약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전체 농장을 세 구역으로 나누어서 두 곳은 농사를 짓고, 한 곳은 휴식기를 준다.
한편 1997년 4천 평으로 시작한 장안농장은 점차 규모가 커져 현재 1농장부터 5농장까지 재배면적이 10만여 평에 달한다. 또 재배하는 품목도 초기에는 10가지 품목에 그쳤지만, 지금은 100여 가지를 웃돈다. 이렇게 농장 규모가 비약적으로 확대되면서 애로사항 역시 많아졌다. 그중 가장 힘든 것이 퇴비였다. 친환경 인증을 획득한 축사를 엄선하여 축분을 공급받아야 하는데, 그러자니 소 똥(축분)이 귀했다. 15톤 트럭 한 차에 30만 원으로 1년이면 200차, 즉 6천만 원이 든다. 그래서 유기농 소를 한번 키워보기로 하고, 전국 유기축산 농가를 찾아다녔다. 다행히 적합한 곳을 찾을 수 있었다. 옥천농산이라는 곳이었다. 이야기를 술술 잘 풀렸다. 그렇게 맺어진 옥산농산과의 인연으로 유기농 한우를 키우는 방법과 여러 절차 등을 연구했고, 몇 개월 후 새끼를 밴 유기농 소를 보내준다고 약속받았다. 유기농 순환농법이라고 해서 복잡한 것은 아니다. 쌈 채소를 길러서 좋은 건 사람이 먹고 품질이 떨어지는 것은 소가 먹는다. 그리고 소의 배설물과 여러 부산물을 섞어 퇴비로 만든 다음 토양에 뿌린다. 즉 유기농으로 기른 채소를 소에게 먹이고, 그 소에게서 얻은 퇴비를 다시 유기농 채소밭에 뿌리는 순환 방식인데, 이는 우리 조상이 예전부터 고수했던 전통 방식이다.
농산물의 반도체 공장을 세우다
친환경농산물 인증으로 안정성을 입증했지만 이것으로는 부족했다. 내 관심은 국제적인 안전제도로 쏠렸다. 그중 하나가 ISO9001 인증제도였다. ISO 인증에 도전하는 일은 비용이 드는 일이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더 큰 이익을 주리라고 확신했다. 그 길로 외부 컨설팅 업체에 자문을 구해 준비에 돌입했고, 4개월 뒤 마침내 ISO 당국은 장안농장의 쌈 채소가 생산관리, 포장, 유통부문에서 ISO9001 표준에 적합하다는 결과를 보내왔다. 인증을 통과하자 장안농장 쌈 채소를 보는 소비자들의 시선이 당장 달라졌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과거에는 재배 과정에서 농약을 치는 것이 문제가 되었는데, 요즘은 가공하고 유통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우수농산물관리제도, 즉 GAP(Good Agricultural Practices) 인증 제도를 받는 것이었다.
이 제도는 농산물 생산 단계를 비롯하여 수확, 건조, 보관, 가공, 포장, 유통을 거쳐 소비자의 식탁에 오르기까지 전 과정을 철저하게 관리하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토양이나 수질 같은 재배 환경 관리는 물론, 농산물에 잔류할 수 있는 농약, 중금속 또는 유해생물 등 110개에 이르는 방대한 항목을 조사하여 안전성을 강화하는 제도였다. 그런데 GAP 인증을 받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특히 인증기준에 맞는 유통시설(물류센터)을 필수적으로 구비해야 하고, GAP 인증을 받은 이후에도 생산단계부터 수확 후 출하까지 모든 정보를 관리하여 언제든지 그 과정을 추적할 수 있는 시스템을 완비해야 했다. 장안농장은 2007년 대한민국 최초로 쌈 채소 분야에서 GAP 인증 제도를 통과했고, 현재 장안농장의 GAP 물류센터 내의 모든 시설은 농업 분야의 반도체 공장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2008년 일본에서 푸덱스2008(food dex 2008) 식품가공전시회가 열려서 협력농가들과 함께 참가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이제 국내가 아니라 해외로 진출해서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과제로 선택한 것이 해외 수출을 위한 기준 통과였는데, 바로 HACCP 인증이었다. HACCP(Hazard Analysis Critical Control Point) 인증은 식품을 취급하는 작업장에서 작업 과정 중에 발생되어 공중위생에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해 요인을 중점 관리하는 위생관리 기법인데, 대개의 경우 김치공장이나 도축업체, 식품업체 같은 곳에 적용된다.
장안농장은 국내 최초로 농산물 분야에서 유기농 HACCP 인증에 도전했고, 1년이 넘는 노력 끝에 HACCP 인증을 유기농업계 최초로 통과했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은 아니었다. 2009년에는 해외 수출을 위한 마지막 단계인 국제 유기농 인증에 도전하여 미국 USDA / NOP(Control Union) 인증과, IFOAM 국제인증(글로벌유기농)을 동시에 획득했다. 이로서 해외 수출을 위한 모든 준비를 끝마쳤다. 앞으로도 더 큰 시장이 있고 시장이 계속 변하는 한, 장안농장 역시 또 다른 변화를 준비할 것이다.
상추에 감동을 담아라농업에 문화를 접목하라
한번은 강원도의 젊은 농업 리더들을 위한 특강에 초대되어 강단에 선 적이 있는데, 다음과 같은 질문이 쏟아졌다. "류 사장님, 어떻게 해야 마케팅에서 성공할 수 있습니까?" 아마 이 책을 읽는 독자께서도 마케팅 비법이 궁금하시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질문은 마치 복권에 당첨되는 비결을 묻는 것만큼 나로서는 답변하기 힘들다. 그런데 내 대답은 매우 원론적이다. "농산물에 감동을 담으세요. 그러면 소비자는 분명 그 가치를 인정해줄 것입니다." "감동이요? 그런 추상적인 이야기 말고 귀에 쏙쏙 들어오는 마케팅 방법을 좀 알려주세요."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 여름이면 서울 사람들이 마을로 피서 오지요? 놀러온 사람들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같이 어울려 보신 적 있으세요?" "어울리기는요. 그 사람들 때문에 아주 열 받아서 미칠 지경입니다." 농부 입장에서 땀 뻘뻘 흘려가며 일하는데 휴가랍시고 놀러 다니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썩 좋을 리 없다. 하지만 물가에 와서 고기 잡아간다고 화를 내고, 고추 하나 따간 걸 가지고 도둑놈 취급한다면 나는 그 농촌에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