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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워런 버핏

제임스 올러클린 지음 | 이콘
CEO 워런 버핏

제임스 올러클린 지음

이콘 / 2008년 9월 / 391쪽 / 15,000원



제1장 버핏, 신화를 벗다




워런 버핏이 37년 동안 회장 겸 최고경영자를 지내면서 버크셔 해서웨이의 시장가치는 연복리 기준으로 매년 25% 이상 성장했다. 37년간 25%의 복리 성장이 얼마나 대단한지 얼핏 이해가 힘들 수도 있다. 버핏의 실적을 사람의 키에 빗대어 그려본다면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내 아들이 태어났을 때 60센티미터였으니까. 버크셔 해서웨이의 성장률과 같은 속도로 이 아이가 자란다면? 37세가 되었을 때 아이의 키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보다 크다! 만일 버핏이 버크셔 해서웨이의 회장을 맡은 1965년에 누군가 선견지명을 가지고 이 회사에 1만 달러를 투자했다면 4,000만 달러가 넘는 돈을 벌어들였을 것이다. 버핏이 버크셔 해서웨이에 합류하기 9년 전인 1956년, 버핏 파트너십으로 투자조합을 시작했을 때 이 돈을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식에 재투자했다면, 이 주식의 가치는 거의 2억 7천만 달러에 육박한다. 그러나 이에 반해, 1965년에 미국 대기업의 시장가치를 폭넓게 반영하는 S&P 500지수에 1만 달러를 투자했다면 그 가치는 현재 14만 4천 달러에 그칠 것이다. 거대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비하면 9미터짜리 난쟁이에 불과하다.



버핏의 이런 엄청난 성과는 단지 주식투자자로 행동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CEO로 행동했기에 즉, 사람을 이끌고 자본을 운용했기에 이런 성공을 거두었다. 물론 그의 이런 능력은 타고난 것이 아니다. 그도 끊임없이 배워야 했다. 그의 젊은 시절은 실수의 연속이었고 지금도 실수를 한다. 그러나 1970년대와 80년대에 인지능력의 폭발을 경험하면서 그의 리더십과 자본운용 모델도 안정적인 틀을 갖추게 되었다. 그의 리더십과 자본운용 모델 덕분에 버크셔 해서웨이는 투자 중심의 회사에서 벗어나 운영회사로서 뛰어난 실적을 유지할 수 있었다. 버핏이 다른 CEO들보다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모델 덕분이며, 이 책에서 설명할 내용도 그의 리더십과 자본운용 모델이다. 현재 빌 게이츠에 이어 미국 2위의 부자이며 370억 달러의 개인 재산을 가지고 있는 워런 버핏도 고도의 능력을 발휘해 땀 흘려 싸워야 하는 전쟁터가 바로 자본시장이다. 자본시장에는 실수의 기회가 무수히 존재하며, 이런 실수의 기회를 발판 삼아 매년 높은 복리가치 성장을 이룰 수도 있고 성장이 저지될 수도 있다. 버핏은 과거나 지금이나 기회를 포착할 줄 아는 사람이다. 또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오류를 피할 줄 알고, 실수에서 배울 줄 아는 사람이다. 그는 이런 능력을 결합해서 독특한 리더십을 형성했고 이를 기반으로 재능을 한껏 발휘하고 있다. 그리고 버크셔 해서웨이에서 자본 배치를 담당하는 경영자들에게도 이러한 능력을 가르치고 있다.



제1부 사람들의 리더



버크셔 해서웨이와 조직의 관성


주식투자자로 성공가도를 달리던 워런 버핏은 1960년대 초반, 기업의 경영자로서 미래의 비전을 세웠다. 그의 비전은 당시나 지금이나 매우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기업을 경영할 때 '오너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오너처럼 행동하려면 단순한 경영자가 아니라 능력의 영역에 놓인 수많은 기회들 중에서 수익성이 가장 높은 투자를 골라내는 자본관리자로 거듭나야 한다. 그러면서도 위험은 최소한도로 줄여야 한다. 주주가 자기 돈을 직접 관리한다면 틀림없이 그렇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주주들이 다른 곳에 투자하는 것보다 낮은 수익률을 올린다면 맡긴 돈을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버핏은 자신의 역할을 단순한 최고경영자에 국한시키지 않았다. 또한 섬유나 캔디, 보험, 그 외 다른 여러 상품을 제조하는 회사에 대한 경영만으로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자본 배치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다른 길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 이후 그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자회사에 근무하는 경영자들에게도 자신과 똑같은 철학을 가질 것을 당부했다. 버크셔 해세웨이에는 워런 버핏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오너 겸 경영자로 있고, 버핏이 오너로서 가지는 관심사와 경영자로서 가지는 관심사가 완전히 부합한다는 점에서 볼 때는 단순하게 보일수도 있다. 그러나 버핏이 버크셔의 소액 주주들을 기업의 동등한 파트너로 인정하면서 회사 경영에 그들의 입장도 최대한 반영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또한 버핏이 버크셔의 자회사를 소유하고는 있지만 경영자들에게 최대한 전권을 일임한다는 점에서도 결코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다시 말해 그와 경영자들의 관계는 버크셔의 주주들과 버핏의 관계와 같다. 즉, 경영자들은 버핏을 대신해서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가장 고심해야 할 문제는 따로 있다.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주주는 기업을 소유하고 경영자는 기업을 경영한다는 체제가 확산된 이후에도 아직 풀리지 않은 문제가 한 가지 있다. 바로 '경영자들이 오너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이다. 애덤 스미스는 1776년에 이 주제에 대한 답변을 내놓았다. 그는 인간의 특성을 고려할 때 경영자와 오너의 이해관계는 결코 양립될 수 없으며, 경영자는 고용주인 오너들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더 많은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다고 확신했다. 그가 옳았다! 현대의 어떤 기업지배구조도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몇 가지 교훈을 얻기 전까지는 버핏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너처럼 행동한다는 버핏의 결심은 경영자로 거듭나자마자 난관에 부딪쳤다. 그는 소위 '매우 놀라운 발견'이라고 부르는 힘에 봉착한 것이다. 지금까지 알아차리지 못했던 힘이었다. 그는 이 힘을 '조직의 관성'이라 칭했다.

조직의 관성

버핏은 조직의 관성이 작용하는 방식을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 설명했다. (1) 기업은 뉴튼의 제1법칙인 관성의 법칙에 지배되기라도 하듯 현재의 방향을 고수하려고 합니다. (2) 일을 하다보면 자꾸만 기한이 연장되듯 기업의 프로젝트나 인수 활동도 계속해서 추가적인 자금을 필요로 합니다. (3) 그러나 기업의 리더가 탐욕과 어리석음으로 똘똘 뭉쳐있어도 부하직원들은 재빨리 수익률을 분석하고 전략을 연구해서 그를 도와줍니다. (4) 또한 이러한 리더는 경쟁사가 사업을 확장하고 인수 활동을 벌이고 임원들에 대한 보상체계를 마련하면 아무 생각 없이 그들의 행동을 그대로 모방합니다.



잭 윌치가 GE의 자회사들을 모두 업계 1,2위로 만든다는 독창적인 생각을 한 것과 마찬가지로, 버핏 역시 버크셔 해서웨이의 방향에 대해 획기적인 결론을 내렸다. 버핏은 이렇게 말했다. "기업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는 이유는 무절제함과 어리석음 때문이 아닙니다. 조직의 관성 때문입니다. 버핏은 조직의 관성에 허를 찔린 셈이었다. 그때는 성공적인 주식투자로 이름을 날리면서도 기업의 펀더멘털에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조직의 관성은 이 펀더멘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것을 알아채기에는 그의 주식 보유기간이 너무 짧은 편이었다. 버핏은 경쟁우위를 유지하고 종합주가지수나 경쟁사보다 뛰어난 실적을 발휘하려면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 역시 버크셔가 업계에서 우뚝 설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만큼이나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조직의 관성은 기업규모나 시장점유율에 상관없이 어디서든 발생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버핏은 경영자로 탈바꿈하기 오래 전부터 한발 앞서나가는 투자자였다. 그러나 조직의 관성에 대해 알게 된 순간, 미래에도 계속 한발 앞선다고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보다 지속적이고 영구적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그는 해냈다. 관성이 존재함을 깨달았다. 관성의 메커니즘이 인간 본성의 문제임을 인식했다. 그는 마침내 경영자와 오너 사이의 틈을 메워줄 가교를 건설하고, 오너들의 이상에 맞는 경영자가 되는 동시에 자본 배치가로서도 행동할 수 있게 되었다.



앞서나간 워런 버핏

버핏이 젊은 시절 투자의 세계에 뛰어들었을 때, 주식시장은 내부거래자들의 주 무대였다. 주가 조작이 흔했고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가치평가의 개념조차 자리 잡지 못했다. 그러나 벤저민 그레이엄이 1920년대 후반과 1930년대 초반에 수학적 바탕 위에서 가치평가와 종목 선택에 대한 이론을 세우면서 이런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이 시절에는 가치평가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기 때문에, 이 이론에 입각한 투자자들은 엄청난 황금기를 누렸다. 그레이엄의 투자 원칙을 교과서 삼아 버핏은 투자 대상 기업들의 모든 데이터를 탐욕스러울 정도로 철저히 검토하였다. 물론 버핏의 숫자 감각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사실도 한몫했다. 버핏의 어린 시절 친구들인 밥 러셀과 돈 댄리는 자주 버핏에게 두 자리 수를 곱하거나 도시별 인구수에 대한 문제를 냈으며, 버핏은 순식간에 답했다고 회상한다. 그레이엄 뉴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레이엄이 몸소 진두지휘하며 전설적인 능력을 발휘하던 이 회사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버핏의 숫자 감각에 동료들은 혀를 내둘렀다.



그레이엄의 가르침은 버핏의 천부적인 능력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었고 금세 그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버핏이 컬럼비아 대학을 졸업한 1951년에서 그레이엄의 파트너십에서 일하다가 고향인 오마하로 돌아온 1956년 사이에 그의 개인자산은 9,800달러에서 140,000달러로 늘어나 있었다. 수익증가율로 따지면 연복리 70%에 이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꺼리는 주식을 매수한 것이 비결이었다. 실제로 아버지의 주식중개회사인 버핏 포크에서 일하는 동안 젊은 버핏은 많은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종종 그가 선정한 회사들의 주가가 너무 낮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회사에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버핏조차도 평가 결과가 너무 좋게 나와서 정말인지 믿을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 하지 않고 소신대로 밀고 나갔다. 증권중개인으로서는 아이디어를 팔고, 투자자로서는 미래를 위해 아이디어를 축적하였다. 물론 의심의 눈길은 가시지 않았다. 그의 자신만만한 태도에 대한 주위의 거부감도 거셌다. 그러나 그는 상대적으로 새로운 주식 투자 방법을 신뢰했다. 버핏의 확고한 자신감과 비상한 계산 능력은 불가항력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버핏은 그레이엄의 책을 읽고 가르침을 받기 전에는 자타가 인정하듯 평균 정도에 불과한 성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를 보면 투자 능력을 타고난 사람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의 여동생 로버타가 "오빠는 천부적인 투자자인 것 같아요"라고 말할 정도였다. 자신에게 딱 맞는 일을 발견하자 버핏은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제2부 자본 배치가



전천후 인간


버핏의 능력이 너무 뛰어나서 그가 마이더스의 손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금세 공격적으로 돌변할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신의 후광을 입었다고 떠받들면서도 평범한 사람처럼 일격을 당해 피 흘리고 상처입기를 바란다. 1990년대 후반 '신경제' 진영에서 총탄이 날아들었다. 기술주의 가격이 급등하면서 버핏의 투자방식이 틀리다는 비난이 커졌다. 사람들은 그가 올바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잠시 버크셔 해서웨이의 실적이 S&P 지수를 밑돌며 회복이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기술주의 거품이 빠지자 재빨리 상처가 회복되었고, 주식시장의 침체 속에서도 버핏의 주식은 반등했다. 2001년 9 11테러로 버핏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들은 더욱 가공할 무기를 얻었다. 이번에 그 무기를 전달한 사람은 버핏 자신이었다. 테러 공격이후 제너럴 리로 인해 그의 커다란 허점이 드러났다. 그는 주주들에게 9 11 발생으로 제너럴 리의 보험 인수 기준이 심각한 결함을 드러냈다고 밝혔다. 그는 세계무역센터 테러로 인한 보험금 청구와 관련해서 버크셔의 분기별 '추정' 부채가 거의 230억 달러에 달한다고 보고했다. 이중 제너럴 리가 보상해야 할 금액은 170억 달러였다.



버핏은 잘못을 인정하고 모든 비난을 감수하면서 보험회사 경영에서 지키는 자신의 황금률이 제너럴 리에서 산산조각 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피를 흘리고 있었다. 워런 버핏의 삼위일체적인 힘이 제너럴 리에서는 집대성되지 못했던 것이다. 경이적인 인수라고 생각했던 제너럴 리가 버크셔 안에 들어온 후 다음과 같은 그의 능력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놓은 것이다. 이런 능력들이 어떻게 일격을 당했는지 면밀히 살펴보면 버핏이 저지른 실수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또한 버핏은 신이 아니라 인간일 뿐이며 그도 실수를 저지른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인간에 불과하기에 자본 배치 영역에서 발생하는 변화를 다룰 때 앞서가는 대신 변화에 후속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신속히 대응하기 때문에 실수로 인한 버크셔의 피해를 최소한도로 줄일 수 있다. 또한 버핏이 인간적 측면에서 과감한 변화가 필요할 때 두려움 없이 조치를 취하는 모습을 보면, 그가 앞서가는 리더임을 알 수 있다. 워런 버핏은 고정관념을 거부한다. 그는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는 전천후 인간이다.



때가 되었을 때

제너럴 리를 인수하여 인수 효과가 발생하도록 여러 노력을 행한 지 일 년 후에 워런 버핏은 주주들에게 이번 인수의 진짜 이유를 간접적으로 밝혔다. 주가가 전년도 최고가의 50%를 밑돌던 상황에서 1999년 버크셔 연차보고서를 작성하며 버핏은 자사주 매입 문제를 설명했다. "버크셔의 주가가 내재가치를 훨씬 밑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사주를 매입하는 것입니다. 물론 보수적인 방법으로 계산하였습니다." 이때에도 그는 과거에도 여러 번 사용했던 자본 배치의 요점을 다시 설명하였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최근 버크셔의 A주식이 45,000달러 이하로 떨어졌을 때 우리는 자사주 매입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주들이 이 보고서를 읽어볼 때까지 매입을 미뤄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주주들과 주식시장은 그의 메시지를 이해했다. 버핏이 버크셔 해서웨이에 몸담은 후 처음으로 내재가치를 훨씬 밑도는 가격으로 주식이 거래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일부 주식에 대한 자사주 매입을 고려했다. 워런 버핏이 버크셔의 가치를 분석한 내용을 사람들이 이해하기 시작하자 주가는 당연히 급등했고 거래가 활기를 되찾았다. 이제 계산을 해보자. 45,000달러가 내재가치 이하라면, 제너럴 리의 주식 전체를 매입했던 때의 81,000달러라는 가격은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식이 내재가치에 상당한 프리미엄을 더해서 거래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런 이유로 버핏은 이 거래를 추진했다. 제너럴 리는 1921년에 창업되었으며, 버크셔 해서웨이가 인수했을 때 이 회사는 세계 3대 재보험회사 중 하나였다. 31개국에 지사를 두었으며, 150개가 넘는 재보험상품을 제공하고 있었다. 이사회 의장 겸 최고경영자는 론 퍼거슨으로 버핏이 잘 아는 사람이었다. 버핏은 제너럴 리를 잘 알고 있었고, 이 회사의 여러 요소가 버크셔의 인수 기준에 딱 들어맞았다. (예를 들어 퍼거슨은 부동자금의 규모와 비용, 수익률을 토대로 가치 창출 공식을 만들었다.) 그러나 인수 전에 버핏은 제너럴 리와 버크셔의 주식 맞교환에는 반대의사를 보였다. 이 문제에 대해 그는 완강한 태도를 보이면서 일부 주식만 교환하고 나머지는 버크셔의 현금으로 지불하였다. 그는 주주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다른 조건이 동일할 경우, 경영자들이 오너들에게 불리한 조건으로 주식을 발행하지 않으려 하면, 그 회사의 주가는 내재가치를 최대한 반영합니다. 인수회사가 자사의 주식 일부를 매각해서 상대회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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