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프로페셔널이다
황진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1부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이 프로페셔널이다
'끝까지 살아남는다'는 것
평균 수명 90세! 의학이 발달함에 따라 하루하루가 다르게 우리의 수명은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기간은 오히려 짧아지고 있는 추세다. 그야말로 하는 일 없이 아주 긴 노년기를 보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길게 잡아 60세까지 일한다고 해도 무려 30년이나 되는 세월을 벌어놓은 돈에 의지해 살아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60세까지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 까. 45세가 정년이라고 '사오정', 56세까지 직장을 다니면 도둑놈이라고 '오륙도'라는 말은 이미 샐러리맨들 사이에 고전이 되었다. 최근 경제지표를 보면 집에서 그냥 쉬는 사람이 1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나왔다. 물론 이들은 실업자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지금 직장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이들보다 훨씬 더 나은 위치에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샐러리맨들 역시 일을 하면서도 퇴직 걱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이처럼 슬픈 현실에 처한 우리에게도 비상구는 있다. 남들보다 더 능력을 인정받아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길, 다시 말해 스스로 자기의 일터를 만들어 당당하게 일할 수 있는 길이 반드시 존재한다. 바로 '영업 마인드'를 갖추는 것이다. 실제로 처음부터 영업 마인드를 갖추는 것은 힘들다. 그러나 일단 갖추기만 하면 어디에서든 살아남을 수 있다. 영업 마인드야말로 인간을 끝까지 살아남게 하는 강인한 힘이기 때문이다.
'진심'이 모든 것을 이긴다
술 잘 먹고, 놀기도 잘하고, 말도 잘하는 사람…… 친화력도 뛰어나 누구라도 한 번만 만나면 친구가 되고, 형님 아우 하는 사이로 발전하는 사람……. 영업인 하면 흔히 떠오르는 이미지이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 하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니, 내성적인 사람보다는 활달하고 외향적인 사람들이 영업을 많이 선호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만들어낸 영업인들의 이미지는 고정관념에 불과하다. 거래처마다 스타일이 제각기 다를 수밖에 없는데 하나의 고정된 영업 스타일로 모든 거래처를 설득시킨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스타일이 아니라 상대방을 대하는 마음, 즉 진심이다. 따라서 말솜씨가 좋지 않아도, 술을 잘 마시지 못해도 얼마든지 영업을 잘할 수 있다. 영업을 성사시키고 지속시키는 힘은 진실을 바탕으로 한 '신뢰'에 있으므로.
영업과 마케팅, 이렇게 다르다
"영업과 마케팅! 그게 그거 아니에요?" 영업과 마케팅을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마케팅이 좀 더 큰 개념이고 그 안에 영업이 포함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는 영업을 영어로 표현한 것이 마케팅일 뿐, 똑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국내 기업들 중 영업과 마케팅을 분명하게 구분하는 곳들은 그리 많지 않다. 영업부에서 마케팅 역할까지 함께 하거나 마케팅부에서 영업 역할까지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영업이 마케팅'이라고 이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영업과 마케팅은 '고객'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서로 긴밀한 협조체제를 이루며 함께 달려간다. 그러나 하는 일은 분명히 다르다. 고객을 위해 하는 일도, 고객에게 접근하는 방법도 다르다. 따라서 영업전문가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영업과 마케팅의 차이를 확실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2인 1조의 파트너십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마케팅부가 아무리 좋은 제품을 기획하고 만들었다고 해도 영업부가 신통치 않아 고객의 손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허사다. 영업부는 그 좋은 제품이 고객들의 손에 들어갈 수 있도록 길을 닦아놓는 작업을 해야 한다. 반대로 영업부가 아무리 좋은 제품을 팔 만반의 준비를 했다 해도 정작 고객들에게 전달할 좋은 제품이 없다면 그 또한 무의미하다. 이처럼 마케팅은 2인 1조로 함께 달려야 하는 파트너이다. 서로가 하는 일은 다르지만 서로의 역할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넘어지지 않고 함께 달릴 수 있다. 즉 영업의 흐름을 알아야 마케팅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고, 마케팅을 이해해야 영업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단방향 커뮤니케이션 vs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왜 마케팅은 단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영업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할까? 마케팅과 영업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의 성격상 마케팅은 단방향 커뮤니케이션을, 영업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브랜드를 널리 알려야 하는 마케팅이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일 대 일이든, 일 대 다든 고객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브랜드 홍보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미지를 강하게 심어줄 수는 있겠지만 얼마나 많은 고객들에게 브랜드를 알릴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다. 시간 또한 만만치 않게 소요될 것이다. 따라서 마케팅에서는 제품을 필요로 하는 목표 고객에게 빠른 시간 안에 브랜드를 알릴 수 있는 단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밖에 없다.
반면 영업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직접 써보기 전에 제품이 좋다는 이야기만 믿고 선뜻 지갑을 여는 사람도 드물다. 대다수 소비자는 필요한 제품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이것저것 궁금한 사항들을 물은 뒤 구매한다. 그런데 소비자들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은 채 제품이 좋으니 무조건 사라고 떠들어댄다면 단방향 커뮤니케이션으로 얼마나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브랜드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갖고 제품에 접근했던 고객조차 마음이 상해 자리를 뜰 것이다. 그래서 단방향 커뮤니케이션보다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훨씬 힘들다. 상대방이 어떤 반응을 보이고,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커뮤니케이션을 이끌어 가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고로 단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
디자인하는 능력 vs 판매하는 능력
여기 멋진 샹들리에가 있다. 어느 장인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이 샹들리에는 지금까지 보았던 샹들리에와는 달리 정말 새롭고 매혹적이다. 이 샹들리에를 디자인하는 역할은 마케팅의 몫이지만 고객에게 샹들리에를 파는 역할은 영업의 몫이다. 굳이 샹들리에를 디자인하고 파는 일을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 가끔은 샹들리에를 디자인한 마케팅부가 파는 역할까지 맡고 싶어 하는 경우가 있다. 애써 디자인한 샹들리에를 고객이 보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이다. 나는 그럴 경우 믿고 샹들리에를 팔아볼 기회를 준다. 대부분 처음에는 자신감이 넘친다. 자기가 직접 만든 제품이니 자기만큼 제품을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는 것과 아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능력은 다르다. 아무리 머리가 좋고 아는 것이 많아도 배우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전달하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남을 가르치기 힘들다. 마찬가지로 멋진 상품을 디자인하는 능력과 그 상품을 팔 수 있는 능력은 분명히 다르다. 따라서 마케팅과 영업은 함께 가야 하는 운명을 가졌지만 결코 하나가 될 수는 없다.
맨몸으로도 정글에서 살아남는 '영업형 인간'
수요가 공급보다 많은 경우에는 마케팅만 잘해도 제품이 불티나게 팔린다. 제품을 찾는 사람들은 많은데, 제품이 부족해서 제때 공급이 안 되면 소비자들은 제품이 있는 곳을 찾아다니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기획하고, 잘 만들어내고, 제품이 나왔다는 것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제품이 잘 팔리기 때문에 영업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작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공급이 수요보다 많으면 상황이 달라진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필요한 제품을 구입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영업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지금은 수요보다 공급이 훨씬 많아져 예전보다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낮아졌다. 평소 애용하는 브랜드가 있더라도 비슷한 품질을 갖춘 제품이 널려 있어 매장에 그 브랜드가 없을 경우 바로 다른 제품으로 대체한다.
소비자들에게 브랜드에 대한 충성심을 기대할 수 없는 지금, 영업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소비자들이 언제 어디서든 불편 없이 제품을 찾을 수 있도록 늘 길을 잘 닦아놓아야 한다. 울퉁불퉁한 길을 마다하지 않고 제품 찾아 삼만 리를 나설 소비자는 이제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2부 단기 생존형 인간과 장기 승부형 인간을 가르는 기준
1등의 조건, 부지런히 움직여라
어느 분야에 몸담고 있든 누구나 최고가 되기를 꿈꾼다. 영업도 마찬가지다. 영업을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영업을 잘할 수 있는지 늘 고민한다. 영업을 잘해서 남들보다 두 배, 세 배 매출을 올리는 영업인을 보면 우리는 그 사람만의 영업 비법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몸살을 앓는다. 그러나 '판매왕(영업왕)'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말하는 비법은 오히려 간단하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이다. 영업은 가장 결과가 잘 나타나는 일 중의 하나이다. 마치 열심히 땅을 일군 농부가 가을에 수확을 많이 거두는 것처럼 영업 역시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만큼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을 기억하라.
진실은 통한다, 정정당당한 비즈니스의 힘
북극에서 에어컨을 팔고 사막에서 밍크코트를 판 이야기를 잘못 이해하면 영업은 고객에게 필요가 없거나 나쁜 제품까지 화려한 언변으로 설득해 팔아치워야 하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 실제로 나쁜 제품이라도 많이 팔아먹으면 그것이 영업을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영업인들도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영업은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고객에게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좋은 제품을 적정한 가격과 조건에 파는 것이 중요하다. 옳은 일을 옳게 해야 신뢰를 얻고 영업을 계속할 수 있다.
북극에서 에어컨 팔기?
북극에서 에어컨을 파는 것이 가능할까? 영업자의 그럴 듯한 언변에 속아 어쩌다 한 번은 에어컨을 살 수도 있다. 하지만 고객은 곧 북극에서는 에어컨이 필요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쓸데없는 제품을 판 영업자를 비난할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주변 사람들에게 에어컨을 사면 절대 안 된다고 말할 것이 분명하다. 국내에서도 옳은 일을 옳게 하지 않아 고객의 신뢰를 순식간에 잃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는 마트에 갈 시간이 없어 주로 홈쇼핑을 이용한다. 어느 날이었다. 평소 자주 보는 홈쇼핑 채널을 틀어보니, 먹음직스러운 조기를 눈이 휘둥그래질 정도로 싼 가격에 팔고 있었다. 그동안 몇 번 그 홈쇼핑을 이용해 농수산물을 사보고 만족했던 경험이 있었던 터라 나는 주저하지 않고 조기를 주문했다. 하지만 받아보니 중국산 조기였다. 중국산 조기를 국산 조기로 둔갑시켜 팔아먹은 것이다. 워낙 저렴한 가격에 국산 조기를 판다고 광고했으므로 꽤 많은 사람들이 조기를 샀고, 가짜 국산 조기에 대한 여파도 상당히 컸다. 당시 상품 판매 기획을 총괄했던 홈쇼핑 MD는 자기는 전혀 몰랐다고 발뺌을 했다. 업체에서 MD에게는 진짜 국산 조기를 보여주고, 고객들에게는 중국산 조기를 배송했다는 것이다. 홈쇼핑 MD는 상품을 기획하고 생산, 개발, 재고 조절 등의 전 과정을 총괄적으로 관리하고 책임지는 사람이다. 그런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이 국산 조기가 중국산 조기로 둔갑하는 과정을 몰랐다니, 기가 막혔다. 상품을 제대로 기획하여 고객들의 손에 전달되게 하는 것까지 모두 MD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연히 알아야 할 것을 몰랐다면 직무유기를 한 것이다.
비즈니스는 마라톤, 옳은 길이 곧 지름길이다
커리어 우먼이자 주부인 H씨, 시장에 갈 시간이 별로 없는 그녀는 필요한 물건이나 음식 재료들을 한꺼번에 구입하는 주말 쇼핑족이다. 미리 살 품목들을 적고 쇼핑하기 때문에 충동구매를 하는 일은 거의 없지만 그녀가 유독 약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1+1행사이다. 한 개 가격에 두 개를 준다니 제품을 사고도 돈을 번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성적인 그녀도 1+1행사 품목만큼은 꼭 필요하지 않아도 샀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1+1행사 품목 옆에 진열되어 있는 같은 계열의 다른 낱개 제품 가격을 보고 깜짝 놀랐다. 비록 제품 이름은 달랐지만 1+1행사를 하고 있는 제품과 같은 계열이고 내용도 거의 비슷한데, 가격 차이가 별반 없었기 때문이다.
1+1행사가 정말 실속 있는 행사인지를 알아보는 방법은 간단하다. 1+1행사 품목 가격을 2로 나누어 같은 계열의 다른 낱개 제품 가격과 비교해보면 된다. H씨의 경우처럼 행사 품목의 낱개 가격과 비슷한 수준의 낱개 제품 가격이 비슷하다면 1+1행사는 모양만 1+1행사일 뿐이다. 1+1행사의 탈을 쓴 반쪽짜리 1+1행사라고 할 수 있다. 업체 입장에서 보면 1+1행사는 수익을 기대하기 힘든 프로모션이다. 1+1행사는 수익적인 면보다는 제품을 소비자들에게 널리 알리고, 향후 낱개 제품을 사도록 유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런데 업체가 1+1행사 효과도 노리고, 수익적인 면에서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할 때 위의 경우처럼 편법을 쓴다. 또는 가격은 한 개 가격에 맞추지만 소비자들이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양을 줄이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두 가지 경우 모두 정당하지 않은 영업 방식이다. 사막에서 밍크코트를 파는 영업이 오래갈 수 없듯이 흉내만 낸 1+1행사의 효과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소비자들은 현명하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정도를 걷는 것이 중요하다. 편법을 쓰지 않고 옳은 길을 가는 것이 결국은 결승점에 빨리 도달할 수 있는 방법임을 잊지 말자.
위기, 더 강한 나로 거듭나는 결정적인 기회
누구나 위기를 맞는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일을 하면서 서너 차례 위기를 겪지 않고 탄탄대로만을 달리는 사람들은 없다. 모두가 똑같이 위기를 겪지만 어떤 사람들은 위기 앞에 무릎을 꿇고, 또 다른 사람들은 위기를 이겨내고 이전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어떤 차이일까? 위기를 극복한 사람들에게는 남들이 갖지 못한 어떤 특별한 능력이 있을까? 사실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은 누구에게나 있다. 단지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위기에 대응하느냐, 아니면 자신의 능력을 인정하지 못하고 위기를 두려워만 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위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달려드는 사람 앞에서 위기는 더 이상 위기가 아니다. 비 온 뒤에 땅이 더욱 단단하게 굳듯 위기는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위기는 기회의 반대쪽 날개이다
내 인생의 든든한 후원자인 남편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오랜 공부를 마치고 1998년 드디어 박사학위를 받았을 때의 일이다. 박사학위를 받자 남편을 아끼고 배려했던 교수님은 어렵게 지방대에 교수 자리를 주선해 주셨다. 요즘에는 박사학위를 받고도 대학 강단에 서지 못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그런데 남편은 박사학위를 받자마자 교수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니 상당히 운이 좋은 경우였다. 당시 나는 호주로 발령이 나서 아이들과 함께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호주에서 근무해야 하는 기간은 2년. 남편이 문제였다. 남편이 전공한 법학 분야는 대학에서 쉽게 자리가 나지 않는 분야였다. 따라서 그 자리를 포기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지방대로 갈 기회를 뒤로하고 나를 따라 호주로 가겠다고 나섰다.
주변에서는 난리가 났다. 그래도 남편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가장으로서 책임질 생각은 안 하고 마누라 치마폭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는 평가는 한국사회에서 발붙이고 살기 위해서는 절대 듣지 말아야 할 소리 중의 하나였다. 내가 외부적 요인에 의해 위기를 겪어야 했다면, 남편은 겪지 않아도 될 위기를 스스로 자초하는 것이어서 더 위험이 컸다. 고심 끝에 남편이 마련한 대안은 영미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