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을 넘어 창조로 전진하라
손욱 지음 | 리더스북
1장 꿈이 이뤄지는 비밀, 지식경영산업화 시대까지만 해도 목표가 없어도 먹고 사는 데 큰 지장이 없었다. 변화는 급속하지 않고 배워야 할 것은 정해져 있었다. 일단 회사에 들어가면 그때까지 축적한 지식만 가지고도 무난히 사회생활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보화 사회는 다르다.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된다. 1등 기업은 규모의 경제와 방대한 네트워크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얻어, 생산을 하면 할수록 더 큰 효율성을 누리게 된다. 반면 2등은 가격과 품질 경쟁에서 밀려 발붙일 곳을 찾기 어렵다. 이는 디지털 기술이 중심이 된 현대의 새로운 법칙이다. 이런 세상에서 꿈도 목표도 없이 세파에 휩쓸리다가는 형편없는 낙오자가 되기 쉽다. 그렇다면 급변하는 정보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지식경영이다. 지식경영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학습하는 자세, 이를 위해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마음을 열고 지식을 나누는 자세가 지식경영의 본질이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은 지식경영의 출발점이자 지렛대이다. 내가 타인을 배려하면 타인도 나를 배려한다. 마음을 열면 서로 도와주기 때문에 지식경영이 저절로 이루어진다. 제주도 여행의 예를 한 번 들어보자. 처음 여행을 떠난 사람은 유쾌하지 못한 기억만 갖고 돌아올 수 있다. 지리도 모르는 상황에서 안내책자만 믿고 나섰다가 관광지며 맛집 찾아다니느라 길에서 시간 다 보내고, 막상 찾아가도 기대에 못 미쳐 실망만 안은 채 돌아올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소 허물없이 지내던 친구 중에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이가 여럿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디가 좋은 관광지인지, 숨은 맛 집이 어디인지, 관광지들을 효율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동선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조언을 미리 들을 수 있다. 그 결과 시간낭비를 줄이면서 알차고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다. 이는 여행에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서로를 배려하며 도와주는 열린 문화는 어떤 조직에서든 시행착오를 줄여 생산성을 높이는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 그것이 바로 지식경영의 문화다. 방법론만 도입하고 시스템만 갖춘다고 지식경영이 되는 것이 아니다.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옛날 청기와를 만들어 파는 상인이 살았다. 청기와는 보통 기와보다 단단한 데다 빛깔도 고와서 요즘 말로 하면 고부가가치 제품이었기 때문에 청기와 장수는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 그러다 보니 돈줄을 차지해야 하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는 독특한 제조기술을 아무에게도 전수해주지 않았다. 심지어 자식에게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결국 청기와의 맥은 당대에서 끊기고 말았다. 우리 문화사는 고려백자, 조선백자, 거북선 등 계승되지 못한 고부가가치 기술이 너무나 많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지식경영을 몰랐거나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식경영은 구성원들 간에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통해 조직의 혈관 구석구석까지 순환하도록 돕는 것이다. 지식경영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부가가치 높은 제품이 살아남게 되고 저절로 발전적으로 계승하게 된다.
1969년 필자가 입사한 첫 직장은 한국비료였다. 비료공장은 정비보수에 필요한 설비, 부품, 재료 등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때문에 관리가 조금만 소홀해지면 창고에 재고가 산더미처럼 쌓여서 물품 하나를 찾는 데도 한 나절을 소모하곤 한다. 그런데 이곳 창고에서는 5만 종에 이르는 방대한 부품과 재료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척척 관리되고 있었다. 도서관처럼 각 부품에 일일이 코드를 매겨 카드를 적어 관리하는 카드목록 시스템 덕분이었다. 부품이 필요한 직원은 창고 입구에서 코드 번호만 알면 해당 부품이 어느 창고 어느 선반에 있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그 넓은 곳을 고작 여사원 몇 명이 관리하고 있었지만 업무 차질이 빚어지는 일은 거의 없었다. 체계적으로 정리된 목록에 숙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완벽에 가까운 재고관리 시스템 덕분에 생산라인에서 업무차질이 빚어지지 않았고 이는 생산성 향상으로 바로 연결되었다. 그때 나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어렴풋이 지식을 체계화하는 일의 중요성을 깨우치게 된 것이다.
1990년 GE의 잭 웰치 회장이 도입한 '바운더리스 조직'이란 그룹 내 시너지 효과 극대화를 위해 계층, 부서, 사업간 벽을 없애는 것을 말한다. 벽이 없어지면 조직이 유연해지고 구성원들 사이에는 의사소통이 활발하게 일어난다. 지식이 모든 구성원들에게 빠르게 전파되어 공유되고 문제해결 능력도 높아진다. 실제로 바운더리스 캠페인을 추진한 뒤 GE는 새로운 조직으로 탈바꿈했다. 벽이 낮아지고 대화의 네트워크가 열리자 조직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GE는 신속한 의사결정과 정보와 노하우의 빠른 공유를 위해 아홉 단계에 이르던 계층구조를 네 단계로 줄여버렸다. 중간결재라인이 대폭 줄어들자 직원들은 더 큰 권한과 자율성을 부여받았다는 생각에 사기가 충천했다. 자연히 생산성도 향상되었다. 바운더리스는 모든 구성원이 계층과 분야에 상관없이 지식을 나누고 공유할 수 있는 열린 조직문화가 성과향상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지식경영의 성공 사례다.
경쟁자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순진하게 내 지식만 톡톡 털어 보여주었다가 경쟁력을 상실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 삼성전기에 근무하던 1990년대 필자는 미네베아라는 일본 기업을 견학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관계자들이 공장에 들어서는 우리를 가로막는 일이 벌어졌다. 삼성전기와 경쟁하는 품목이 많으니 우리를 경계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다행히 동사 오기노 사장이 공장을 개방하라는 지시를 내려 순조롭게 일이 해결되었다. 당시 그는 "능력이 있으면 보여주지 않아도 따라할 것이고 능력이 없으면 천 번을 보여주어도 못 따라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지식을 눈으로 봐서 아는 것과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지식의 문을 활짝 열어도 못 할 사람은 못하고 지식의 문을 꽁꽁 닫아걸어도 능력 있는 사람은 금세 따라 할 수 있다. 하룻밤 사이에 신지식이 구닥다리가 되는 인터넷 세상에선 더욱 그렇다. 그러니 동료끼리 문을 활짝 열고 가진 것을 나누며 덩달아 조직의 생산성도 높이는 시너지 효과를 누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2장 고객의 마음을 읽어야 창조가 가능하다.1999년 삼성 종합기술원 원장으로 부임하기 전 삼성 SDI 사장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삼성 SDI는 기술원에 연간 100억 원의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었다. 그런데 기술원에서 나오는 기술은 이렇다 할 게 없었다. 나는 담당 직원을 불러 왜 이렇게 성과물이 없는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직원의 설명이 가관이었다. 기술원의 기술은 실용적인 것이 없어 어차피 도움이 안 되고, 기술원에 이것저것 요구해봤자 들은 체도 하지 않기 때문에 연구비만 보내주고 잊어버리는 게 좋다는 것이었다. 그룹의 장기적 기술 전략을 책임지라고 세운 기술원이 계열사의 자원만 낭비하고 있던 것이었다.
사업부 입장에서 기술원을 상대해 보았던 내가 기술원으로 가자마자 한 일은 사업부의 불만을 조사해 연구원들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사업부에서 기술원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야 기술원도 위기의식을 느끼고 변화노력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계열사의 기술원에 대한 감정은 예상보다 더 나빴다. 기술원에서 개발해낸 기술 가운에 사업부에 도움이 된 것이 18%뿐이라니 말 다한 셈이다. 기술을 전수받아도 부실하다 보니 오히려 기회를 상실했다는 불평도 많았다. 그룹의 사활이 걸린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거나 커뮤니케이션이 안 된다는 지적은 점잖은 편에 속했다. 목표가 변경되어도 통보하지 않는 조직, 관계사의 어려움은 상관없이 그저 공부만 하는 상아탑, 원가 개념도 없이 돈만 펑펑 쓰는 곳… 관계사들의 눈에 비친 기술원은 구제불능의 왕자병 환자였다.
기업의 욕구에 귀 기울이지 않은 기업 연구소가 어떻게 되는지는 제록스의 팰러앨토 연구소가 잘 보여준다. 1980년대만 해도 이 연구소는 첨단 기술의 산실이었다. 이곳에서 PC의 개념이 확립되었고 PC에서 사용되는 온갖 혁신기술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이 연구소는 골칫덩이로 변해갔다. 연구소의 기술수준은 세계 시장을 선도했지만 정작 모기업인 제록스는 성과의 결실을 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상품을 위한 기술"이 아니라 "기술을 위한 기술"을 지향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 연구원들 사이에 연구소의 명성은 드높았지만 모기업의 재정은 궁핍해졌고 결국 망해서 매각당할 위기에까지 몰렸다. 그들의 마음속에 고객이 없던 것이 원인이었다.
그렇다면 고객을 위한 기술개발은 어떤 것일까? 미국 화학약품 제조업체인 버크만 연구소는 이런 질문에 모범답안을 제시한다. 이곳은 직원구성부터 특이하다. 세일즈 마케팅 담당이 50%, 연구개발과 생산담당이 50%를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마케팅에 사활을 건 전략이 동 연구소를 일류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곳의 중요한 생산 제품 중 하나는 가죽 처리 약품인데 가죽과 약품을 모두 잘 아는 유능한 직원들이 고객을 직접 만난다. 그리고 그들의 주문사항을 꼼꼼히 챙겨 연구원들에게 바로 전달했기 때문에 시행착오가 있을 수 없었다. 이렇게 영업하다 보니 버크만 연구소는 가죽 제품 하나로 전 세계 시장을 누비는 마켓 리더의 지위를 굳건히 다질 수 있었다. 아날로그 시대와는 달리 요즘 고객의 욕구는 하루가 다르게 진화한다. 디지털, 정보화 사회에서 고객은 끝없이 더 좋은 물건을 요구하는 변덕쟁이다. 고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연구개발이건 마케팅이건 디자인이건 할 것 없이 스피드가 중요한 시대다. 버크만 연구소는 이를 꿰뚫고 있었던 셈이다. 팰러앨토가 될 것인가? 버크만이 될 것인가? 그들의 행보를 보면 해답은 자명하다. 다만 쉽지 않은 것은 "해답을 어떻게 실천하는가" 이다. 실천을 위해서는 뼈를 깎는 노력과 열정이 필요하다.
연구소는 고객인 사업부와 꾸준히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지만 머리만 맞댄다고 성과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연구원과 사업부의 효과적인 협업을 위해서는 방법론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그래서 도입한 것이 '테크놀로지 로드맵'이다. 이것은 향후 기술 동향을 미리 예측해 그려보는 기술개발 전략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 제 아무리 첨단기술을 내놓더라도 이를 상품화 할 요건을 갖추지 않았다면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기술의 미래를 예측하기에 앞서 상품의 미래를 예측해야 하는 것이다. 이른바 프로덕트 스케줄이 먼저 나와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품화를 좌우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바로 시장의 요구다. 기술 수준과 상용화를 위한 기반이 다 갖춰져도 소비자가 매력을 느껴야 상품화로 이어질 수 있다. 상품을 개발하기 전에 시장의 트렌드와 소비자의 욕구를 미리 파악해야 한다. 마켓 로드맵이 먼저 나와야 하는 것이다. 테크놀로지 로드맵은 과학기술자 단독으로 그릴 수 있다. 그러나 마켓 로드맵이나 프로덕트 로드맵을 만들려면 사업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기술원에서의 지식경영은 사업부와 함께 로드맵을 그리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먼저 반도체 연구소와 로드맵을 같이 만들어보기로 하였다. 1999년 3개월간의 작업 끝에 로드맵이 완성되고 보니 두 곳이 맡아야 할 영역이 뚜렷해졌다. 반도체 연구소는 목전에 닥친 과제를 소화하기도 벅찬 판이라 D램 이후의 미래를 대비하는 데 손을 놓고 있었다. 그래서 F램, M램 등 차세대 메모리 소재를 연구해 시장을 선점하라는 중책이 기술원의 어깨 위에 떨어졌다. 한때 말도 섞지 않던 두 기관이 공동 로드맵 작성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누리게 된 것이다. 기술원의 지원사격으로 반도체는 짐을 하나 덜었고 미래의 기술 동향에 대한 연구 성과를 공유하게 되었다. 기술원 또한 기업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프로젝트를 책임지게 되었다.
3장 강물처럼 흐르는 지식, 돌처럼 확고한 규칙삼성의 신 경영 선언이 나온 1993년 초 나는 이건희 회장을 수행하여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비행기에 동승하게 되었다. 비행기 안에서 이 회장이 서류 하나를 건네주었다. 삼성전자에 근무하고 있는 일본인 고문이 작성한 문건이었다. "직원들에게 공구를 쓰고 나면 제자리에 갖다 놓으라고 10년 넘게 잔소리를 했지만 고쳐지지 않는다. 측정기가 고장나도 고치려 하지 않고, 실험이 끝나면 데이터를 정리해 두라고 그렇게 일러도 도무지 먹히지 않는다." 이 문서를 놓고 비행기 안에서 난상토론이 벌어졌지만, 이 회장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정리정돈에 필요한 것은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아니라 작은 배려이다. 남을 배려함으로써 이득을 보는 사람은 나 자신이다. 정리정돈이 돌고 돌아 내 업무환경을 두 배 세 배 쾌적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숨은 단계를 알아채지 못하고 정리정돈을 하지 않고 자리를 떠난다. 다들 잘못된 자기애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남에 대한 배려가 나를 이롭게 하고 조직을 살찌운다는 점을 일찌감치 실천한 기업이 있다. 일본의 카메라 제조회사 캐논이다. 동사는 5S(청결, 청소, 정리, 정돈, 바른 몸가짐)운동을 통해 생산성을 30~40%나 끌어올렸다. 그래서 나는 이 운동을 기술원에 도입했다. "Oh-Yes" 캠페인을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정리정돈과 청결을 습관화하여 스스로 즐겁고 능력을 강화할 수 있는 직장을 만들자는 운동이다. 캠페인을 한다니까 그런 것이 왜 필요하냐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실험도구 빨리 찾아오기 테스트를 실시했다. 테스트 결과 두 시간이 지나도록 실험도구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제자리에 놓여있지 않은 물건들이 눈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험을 통해 그간 물건을 찾느라 얼마나 많은 자원을 낭비해왔는지 깨달은 직원들이 캠페인에 적극 참여했음은 물론이다. Oh-Yes 캠페인의 본질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자는 것이었다. 배려는 사소한 노력만 기울이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속에는 큰 뜻이 담겨 있다. 배려하는 마음은 결국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게 가장 큰 선물이 되어 돌아온다. 남을 배려하는 행위는 결국 자신에 대한 사랑인 셈이다. 배려는 지식경영을 꽃피우는, 작지만 강력한 불씨다.
기술원에는 이해할 수 없는 풍경이 있었다. 연구원마다 PC 하나씩 붙잡고 하루 종일 모니터와 눈싸움을 벌이느라 옆 사람과 업무얘기를 하지 않는 이들이 많았다. 대부분 자기 일을 처리하느라 바빴고 업무자료나 결과 보고서는 개인 PC에만 쌓아두고 있었다. 문제를 인식한 나는 KMS(지식관리시스템)를 만들어 모든 기술과제를 등록하게 하고 지식을 공유하도록 했지만 잘못된 문화는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여러 문제가 발생했지만 특히 심각한 것은 연계되는 작업에 에러가 난다는 것이었다. 일을 하다 데이터가 바뀌어도 알려주지 않은 채 가버리니 뒷사람은 아무 것도 모른 채 과거의 데이터를 붙들고 씨름하다가 프로젝트 자체를 펑크내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방치할 수 없었던 나는 연구실 벽에 커다란 벽보를 붙이고 여기에 프로젝트의 상세한 공정도를 그렸다. 그리고는 PC속에 감춰두었던 각자의 데이터를 모두 끄집어내 그 위에 하나도 빠짐없이 옮겨 적도록 하였다. 그리고 데이터나 상황이 바뀔 때마다 모두 벽보에 기록하게 하였다. 벽보가 연구개발 프로젝트의 종합상황판이 되면서 오로지 정확한 데이터만으로 의사 결정하는 훈련이 계속되었다.
이런 노력은 1년도 안되어 성과를 나타냈다. 실패를 거듭하던 바이오 랩에서 2002년 6월 연구용 당뇨칩을 출시한 것이다. 지식을 공유하면서 어느덧 한 마음이 되어 있던 랩원들은 모두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떡 잔치를 했다. 바이오칩 개발 사업이 성과를 나타내자 삼성전자에서 공동연구제의가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