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의사 안철수 네 꿈에 미쳐라
김상훈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
프롤로그 - 그리고 다시 시작
2005년의 어느 봄날, 서울 여의도 중심가의 한 빌딩 6층 엘리베이터 앞에 작달막한 키의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지하 1층까지 내려가는 30초 남짓한 시간, 그 시간은 생각보다 길었다. 엘리베이터의 목적지였던 지하 1층 식당에서는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지금 자신이 세운 회사의 창립 10주년 기념 기자 회견장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 세월 동안 회사는 큰 부침 없이 성장했다. 세계적인 기업들의 틈바구니에서 경쟁을 겪으며 살아남은 결과였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작은 번개라도 몰아치듯 셔터음과 카메라 플래시가 동시에 터졌고, 걸어가는 내내 그는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바닥만 내려다봤다. 마이크 앞에 앉은 안철수는 입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간신히 메모지를 다시 펼쳐 들고, 천천히, 한 자씩 한 자씩 읽어 내려갔다. "저는 오늘부터, 안철수연구소를, 떠나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조명이 꺼졌다. 카메라 플래시도 순간 잠잠해졌다. 소리가 사라졌다. 빛도 잦아들었다. 움직임이 멈췄다. 10년 전, 그가 의사를 그만두겠다는 말을 했을 때 그의 주변 사람들이 느꼈던 기분도 이런 것이었을까? 10년이 지난 이날, 그는 이렇게 또 한 번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10주년을 맞이하며 - 안철수가 사장직에서 물러나며 직원들에게 보낸 편지>
오랜 산고를 겪고 세상에 태어난 우리 안철수연구소가 이제 열 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기업의 5년 생존확률이 10% 정도이니 10년 생존확률은 1%일 테고, 벤처기업의 생존확률을 일반기업의 10분의 1 이하라고 본다면, 0.1%도 안 되는 확률을 뚫고 살아남은 셈입니다. 우리 회사가 이렇게 살아남고 자리 잡기까지는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하며,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지난 10년간 우리 회사를 경영하면서 세 가지를 이루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첫 번째로 한국에서도 소프트웨어 사업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는 '워킹 모델(working model)'을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지식정보의 가치가 인정받지 못하고 왜곡한 시장구조의 척박한 토양 하에서도 다음 세대를 위한 한 가닥 희망의 빛이라도 남겨놓고 싶었습니다. 두 번째로 현재 한국의 경제 구조 하에서 정직하게 사업을 하더라도 자리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투명경영, 윤리경영이 장기적으로 더 큰 힘이 되는 사례를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세 번째로 공익과 이윤추구가 서로 상반된 것이 아니라,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이 세 가지가 우리 안철수연구소 구성원 모두가 이 땅에서 숨 쉬고 살아가면서 스스로 인식하고 앞으로도 노력해야 할 '존재 의미'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CEO로서 지난 10년간을 절벽을 올라가는 등반가의 심정으로 살아왔습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매일 스스로에게 던졌던 두 가지 질문이 있었습니다. '우리 회사가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리고 '내가 이 조직에 적합한 사람인가?'가 그것입니다. 여기서 두 번째 질문은 다시 두 가지 질문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즉, '내게 지금의 회사를 더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와 '내 에너지를 120% 쏟을 수 있는가?'였습니다. 등반가의 심정으로 끊임없이 자기 검증을 하면서 10년을 보낸 셈입니다. 이제 창립 10주년을 맞이하면서 저는 CEO(chief executive officerㆍ최고 경영자) 자리에서 물러나고자 합니다. 지난 3년간 우리 회사에서 COO(Chief Operating Officerㆍ최고 운영 책임자)로서 능력을 검증받은 부사장에게 CEO를 넘겨주고, 저는 '이사회 의장'으로서 새롭게 역할을 다하고자 합니다. 저는 이사회 의장으로서의 임무에 충실하면서, 앞으로 2년 정도의 계획으로 다시 공부를 시작하고 싶습니다. CEO 자리를 넘기는 것도 아직까지 끝나지 않은, 공부에 대한 욕심 때문입니다.
공부를 끝낸 후의 계획은 세워 놓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의 의학, BT, IT, 경영 등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몇 년 동안 열심히 공부를 한다면, 공부를 마친 후에는 그때의 상황에 적합한 일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회사로 다시 복귀할 수도 있으며,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보람 있는 일일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새로운 분야의 도전에 나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안철수연구소가 앞으로도 계속 조직 구성원 모두가 건전한 가치관을 공유하는 '영혼이 있는 기업'으로서 함께 살아가는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 존재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05년 3월 18일, 안철수 드림.
1장 늘 혼자였던 소년
유난히 얼굴이 하얗던 안철수의 별명은 '흰둥이'였는데, 잘하는 운동도 전혀 없었던 데다 성적마저 별 볼일 없었던 안철수는 곧잘 놀림감이 되곤 했다. 남 앞에서 말을 잘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새로운 사람과 만나는 것도 두려워했다. 가끔은 학교에 가는 게 싫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길을 걸을 때에는 땅바닥만 내려다보고 걸었다. 짓궂지 않은 친구가 필요했던 그는 같은 반 아이들 대신 다른 친구를 찾기 시작했는데, 가장 먼저 만난 친구가 동물들이었다. 학교가 끝난 오후, 가끔 벙거지 모자를 눌러쓴 아저씨가 문방구 옆에 골판지 상자를 내어 놓고는 그 안에 병아리를 담아 팔곤 했는데, 어느 날 안철수와 친구들은 모두 병아리를 한 마리씩 사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참고로 조류의 체온이 높다는 걸 배운 건 얼마 전이었다. 삶은 메추리알이 저녁 반찬으로 올라왔는데 안철수는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 새들은 어떻게 태어나요?" "어미 새들이 밤새 알을 품고 따뜻하게 해주면 새끼 새가 알에서 자라서 껍질을 깨고 밖으로 나오는 거예요." 저녁을 먹은 안철수는 어머니 몰래 날 메추리알 세 알을 꺼내왔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 가슴에 알을 품었다. 그리고 이불도 덮었다. 땀이 나는 것 같았지만 참을 수 있었다. 잠시 졸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아침이었다. 잠을 깬 안철수는 잠옷 밑을 내려다보았다. 새끼 메추리 대신 축축한 노란 액체와 온통 깨어진 메추리알 껍질이 잠옷 앞섶을 지저분하게 만들었다.
소년은 눈물을 터뜨렸다. 울기 시작한 아들을 앞에 두고 어머니는 혼을 내기보다는 천천히 더럽혀진 잠옷을 벗기고 새 옷을 갈아입힌 채 머리를 쓰다듬으며 안아줬다. 그때 잠자코 이불과 안철수를 내려다보며 옆에서 계시던 아버지가 말을 걸었다. "철수야, 새들은 사람보다 훨씬 체온이 높아. 병아리 만져본 적 있지? 병아리가 따뜻했지? 그건 병아리가 사람보다 체온이 높아서야. 사람은 새들처럼 따뜻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리 알을 품어도 알이 깨어나도록 만들 수가 없는 거란다. 더욱이 너는 어미 새처럼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알을 품었던 게 아니라, 그냥 알 위에서 잠을 잤을 뿐이잖니. 동물도 새끼를 사람 못지않게 정성껏 기른단다."
하지만 어느 날 더 이상 병아리를 기를 수 없게 된 일이 생겼다. '삐약이'라고 이름 붙인 병아리 때문이었다. 안철수는 삐약이를 정성을 다해 보살폈고, 삐약이는 금세 병아리 티를 벗고 어른 닭의 깃털로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안철수는 가방을 내려놓고 손발을 씻은 뒤 부모님과 함께 식탁에 앉았는데, 어머니가 보글보글 끓는 냄비를 들고 오셨다. 뚜껑이 열렸다. 삼계탕이었다. 안철수가 얼어붙었다. 그건 일종의 본능이었다. 고개를 돌려봤다. 삐약이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평소의 안철수라면 밥을 한 숟가락도 뜨지 않고 식탁에서 일어선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도저히 식탁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신 시작한 취미가 식물을 기르고 플라스틱 모형을 조립하는 일이었다. 간단한 라디오를 만들거나 드라이버를 써서 기계를 분해하고, 조립하는 취미도 이때 생겨났다. 책도 열심히 읽기 시작했는데, 책은 소년에게 다른 방식의 위안을 줬다. 책 속에는 자신처럼 인기도 없고 공부도 잘하지 못하는 보통 주인공들이 꾸준히 노력해 결국 성공을 거두는 이야기가 잔뜩 들어 있었다. 소년은 이때 책 속에서 어린 에디슨을 만났는데, 자신처럼 달걀을 품고 잠이 들었다가 알을 다 깨뜨린 적이 있었던 사람, 안철수는 반가웠다.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 그는 그렇게 안철수의 마음속에 영웅으로 자리 잡았다. 책 속에는 유명한 과학자들도 여럿 있었는데, 그들이 자주 기계를 고장냈듯이 안철수도 친척 집을 돌아다니며 이런저런 기계들을 무조건 만지고 분해해 망가뜨리기 일쑤였다. 안철수는 책 속에서 만난 영웅들과 함께 꿈을 꾸고 있었다. 화려한 미래의 주인공이 될 꿈을.
<나의 청소년 시절>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청소년 시절 저는 지독히 내성적인 학생이라 남 앞에 서거나 남들에게 말을 하는 것이 그렇게 힘들었습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어요.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는데, 공부 대신 소설책을 읽다가 어머니께 가끔 야단도 맞았습니다. 만약 다시 청소년 시절로 돌아간다면 무엇보다 운동을 많이 하고 싶어요.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다 보니 혼자서 하는 것에 익숙했고 뭐든지 만들 수 있는 과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요. 과학자가 돼서 인류를 행복하게 해줄 훌륭한 발명품을 만들고 싶었죠.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지만 저에게 청소년 시절은 굉장히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해야만 하는 일이 있고, 그 시기에 결정해야 할 일들이 무척 많았지요. 전망이 좋은 학과나 유명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공부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그리고 어떤 일을 잘할 수 있는지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었던 때인데, 이 시기야말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그 일을 위해 노력하는 첫 걸음을 때는 바로 그 순간이었지요.
2장 대학, 꿈 그리고 부모님
3학년이 됐다. 진학할 대학을 선택해야 할 때였다. 담임선생님이 안철수를 교무실로 불렀다. 진학상담을 위해서였다. "서울대 의대에 시험을 보고 싶어요." 마치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다는 듯 주저하는 기색도 없이 안철수는 담임선생님에게 말했다. 사실은 가장 하고 싶지 않은 말이었는데도 말이다. 어릴 적부터 기계나 전자부품 만지는 것을 좋아했던 안철수의 꿈은 책 속에 있는 과학자들이었다. 하지만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었다. 안철수는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렸다. 늘 별말씀이 없으시던 어머니, 한 마디씩 말씀을 하실 때에는 자식에게조차 존대를 하며 말을 가리고 아껴 신중하게 하시던 어머니. 자신이 시계를 망가뜨리고, 축음기를 분해해 다시 조립하는 데 실수하고, 옥상을 온통 꽃밭으로 만들어 놓아도 그냥 웃어주시던 어머니가 생각났다. 아버지도 생각났다. 병원이 없던 가난한 동네에 병원을 짓고 환자들을 돌보고 계신 분이셨다. 그 삶을 잇는 건 자랑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안철수의 눈에 아버지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담임선생님도 흡족해 하는 눈치였다. 집에서도 가족들이 반색을 했다. "잘 생각했어요. 고마워요." 어머니는 감격했다. 안철수는 어머니가 그토록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며 에디슨보다는 의사가 되기로 한 자신의 생각이 옳았다고 생각했다. "잘 생각했구나." 말씀이 없으시던 아버지도 한마디를 하셨다. 하지만 안철수는 아버지가 속으로는 얼마나 기뻐하고 계신지를 느낄 수 있었다.
찬바람이 쌩쌩 불던 어느 겨울날, 그는 결국 바라던 서울대 의대에 합격했다. 주위의 축복 속에 시작한 대학생활은 정작 기대만큼 행복하고 즐거운 곳이 아니었다. 대학에 입학한 뒤에도 그는 늘 혼자였다. 어린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커피가 마시고 싶었던 그날 오후도 마찬가지였다. 자판기 앞에서 커피를 뽑아 마시는 다른 학생들은 친구끼리, 선후배끼리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커피향내 풀풀 나는 컵을 함께 꺼내 마시곤 했다. 하지만 안철수에게는 그럴 사람이 없었다. 늘 그랬다. 그에게는 취미라고 할 만한 것도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것 정도밖에는 없었다. 그는 동기생들 사이에서 때때로 '분위기 있고 멋지다'는 얘기도 들었지만 대부분은 '눈에 띄지 않는 사람'으로 기억했다. 대학이란 곳은 먼저 손을 내밀어 사람들과 대화를 시작하고 먼저 활달해져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 곳이었다. 안철수는 그런 생활에 자신이 없었다.
3학년이 되면 의대생들은 '본과'라는 곳에 진학한다. 의대생의 본과 공부는 힘들기로 유명하다. 안철수도 정신없이 바빠졌다. 전국에서 가장 똑똑한 학생들이 모였다는 서울대 의대에서 경쟁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밤낮 없이 공부해야 했다. 그러면서 방학을 맞았다. 본과 일 년을 허겁지겁 쫓기며 지내다 돌아간 부산 고향집은 따뜻했다. 문제는 다시 돌아온 서울이었다. 개강을 일주일 앞두고 하숙집에 돌아왔더니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숙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책상 위에 놓인 책꽂이에는 전공서적들만 가득했다. 전공서적 사이에는 에디슨도 없었고, 오펜하이머도 없었다. 좋아하는 소설을 꽂아 놓는다는 것은 사치에 가까웠다. 바다가 생각났다.
위로를 받고 싶었지만 전화할 친구도 없었다. 생각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었다. 안철수는 집으로 전화를 했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 수화기 너머로 아들의 울음소리를 들은 어머니는 "무슨 일이에요? 왜 그러세요?"를 반복했다. 아들은 말했다. "죄송합니다. 공부가 너무 힘들어요. 도저히 못 견디겠어요." 다음날, 동트기가 무섭게 어머니가 부산에서 비행기를 타고 올라오셨다. 그리고 부산으로 아들을 데리고 내려갔다. 다시 고향에 내려간 안철수는 낚시에 매달렸다. "그래, 힘들면 가끔 잠시 떠나보자. 다 잊고 떠나면 돌아가서 다시 도전할 용기가 생기겠지." 도망치듯 고향으로 되돌아온 안철수는 개강하기 전에 미리 서울에 올라가 적응하겠다는 마음을 버렸다. 그리고는 일주일을 꼬박 쉬었다. 힘이 들면 그저 잠시 도망치면 되는 것이었는데, 그러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안철수는 세상의 진실을 느끼게 된 기분이었고, 비로소 학교로 돌아갈 자신이 생겼다. 일주일간의 귀향을 뒤로 한 채 서울로 돌아온 안철수는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이제는 친구도 사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의대 학생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던 의료봉사활동 동아리에 가입해 사람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술도 배웠다. 그러자 친구들과 어울려 이런저런 수다를 떠는 것도 큰 즐거움이란 걸 느끼게 됐다. 술도 잘 취하지 않았다. 스스로가 흐트러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너무 강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일부러 긴장을 풀고 술에 취하려고 노력도 했다. 안철수는 긴장을 풀어야 마음이 열리고, 실수도 해야 친한 사람들도 생기는 법이라는 것을, 나이 스물이 한참 지난 뒤에야 깨닫기 시작했다.
봄날은 점점 따뜻해져 갔다. 가톨릭 학생회에 가입했던 안철수는 무의촌을 돌며 의료봉사활동을 펼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날도 봉사활동을 마치고 학교 도서관으로 돌아온 안철수는 봄바람과 함께 몰려온 졸음을 쫓을 겸 늘 앉는 그 벤치로 갔다. 그 앞에서 커피라도 한 잔 마시면서 책을 꺼내 읽자고 생각했는데, 이날은 늘 비어 있던 자리에 먼저 와 앉아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본과에 막 올라온 후배였다. 안철수는 자판기로 다가가 두 잔을 뽑아 들었다. 한 잔은 블랙, 한 잔은 밀크 커피, 그는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블랙으로 드시겠어요? 아니면 보통 커피를 드릴까요?"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가 웃었다. 일단은 성공이었다. 느낌이 괜찮았다. 공부하다 잠깐 나왔을 뿐이었는데, 안철수와 본과 신입생은 세 시간 동안 그대로 벤치에 앉아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잠시 후 신입생은 수업을 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