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닉 라일리, 열정
닉 라일리 지음 | 한스미디어
01 출발
GM의 대우차 인수 협상은 월드컵 열기가 뜨거웠던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나는 협상 팀의 일원으로 한국을 찾았는데 월드컵 기간 중에는 한국과 한국 사람들을 좀더 이해하기 위해 아내와 함께 거리로 나가 수많은 사람들과 섞이기도 했다. 우리는 수많은 한국인들과 며칠 밤을 함께 하면서 한국팀이 승리할 때도, 비길 때도, 질 때도 뜨거운 응원의 현장을 지켰다. 당시 나는 한국인들이 보여준 행동에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 그것은 유럽에서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경험이었다. 유럽에서는 축구 경기를 치르는 밤이면 술주정이나 폭력, 기물 파손 등 반사회적 행동들이 종종 뒤따랐으며, 그럴 때마다 사람들의 크고 작은 부상과 경찰에 의한 체포 등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축구 경기가 끝난 뒤 저마다 일어나 주위를 청소했고, 자신의 물건을 챙긴 다음 유쾌한 기분 속에서 경기장을 떠났다. 심지어 그들이 자리를 떠나고 두 시간 후에는 수만 명의 관중들 속에서 국가대표팀의 경기가 이루어졌다고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이곳에서 월드컵이라는 아주 특별한 행사가 있었는지 알려줄 아무런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기 일쑤였다.
한국에서는 모든 젊은 남자들이 2년간의 의무적인 군복무를 거친다. 그들은 아무런 보상 없이 스파르타식으로 운영되는 고된 군 생활을 경험한다. 젊은이들의 이러한 군복무 경험은 개인적으로 사회와 가족, 친구, 일과 삶으로부터 격리되기에 고통스런 시간일 수도 있지만, 추후 그들 자신에게나 사회에 긍정적인 효과로 되돌아오기에 부족함이 없다. 군에 간 젊은이들은 모든 규율과 질서, 권위에 대한 존중심 등을 집중적으로 훈련 받는데, 이것은 군을 떠난 뒤에도 그들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 잡는다. 그래서 제대한 뒤에도 자신의 명예와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훈련 기간에 체득한 정신력을 드러내는 일에 주저하지 않는다. 그들의 이런 행동은 전염성이 있어서 타인의 행동 양식에 영향을 미치고, 결과적으로 국민 전체의 이익으로 돌아가는 풍부한 경험과 희생정신으로 전환되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서구인들이 한국을 볼 때마다 선망의 대상으로 삼는 중요한 행동적 특성 요인 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관찰과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들은 GM대우에서 보낸 내 생활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다. 실제로 다른 곳에서는 부정적 결과로 이어질 만한 여건들이 GM대우에서는 오히려 커다란 충성심과 생산성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어찌 보면 내가 GM대우에서 수행해야 할 임무도 제조업이란 환경에서 이러한 여건들이 충분히 조성되도록 도와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때로 그것은 극복하기 힘든 난관으로 느껴지거나 운이 좋아야만 가능한 일이란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그럴수록 이러한 여건이 조성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내 임무라 생각했다.
02 첫 경험
GM대우와 함께 일하면서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했던 일을 한국의 기업들과 이곳의 근로자들이 서로를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내가 기꺼이 받아들이려던 의무이기도 했지만, 제대로 배울 만한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때문에 독서나 대화 그리고 주의 깊은 관찰 등으로 충족시킬 수밖에 없었다.
가족의 의미
한국의 중요한 사회적 자산 가운데 하나는 가족 간의 유대이다. 비록 예전보다는 갈등의 측면이 두드러져 보이긴 해도 가족 간의 유대는 여전히 강하다. 한국에서 가족은 언제나 서로의 안부를 궁금히 여기고 필요할 때 도움이 되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이런 풍습이 없다. 그곳에서는 설령 형제지간이라 하더라도 상대방의 비즈니스나 금전 문제, 사회활동에 관해 자세히 묻는 것을 금기시한다. 세대를 뛰어넘는 가족 간의 긴밀성은 한국 가정에 감정적·재정적 안전망이 되기도 하는데 이 역시 서양 가정에는 부족한 부분이다. 가족의 구성원이 자식이나 형제를 돕기 위해 개인적인 불편이나 어려움을 감수하는 일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이처럼 서양에서는 보기 힘든 독특한 개념의 가족 관계 덕분에 한국 회사에서 구성원 간의 관계는 가족의 그것처럼 끈끈하다. 가령 어느 직원이 결혼을 하거나 그의 배우자, 자식 또는 부모나 처갓집 식구가 사망할 때 회사는 어떤 형태로든 경조사에 참여한다. 회사가 이러한 의무를 등한시한다면 해당 직원에게는 사적으로나 공적으로나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CEO나 다른 상사들 역시 결혼식에 참여할 때마다 자신의 지갑을 열어 기부를 해야 한다. 이 밖에도 이런저런 접촉들이 직원과 회사 또는 상사와의 유대 의식을 강화시켜 주기도 하는데, 이러한 사적인 관계는 서구적 가치 기준에서 비즈니스와 맞지 않다고 간주되기에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풍경일 뿐이다.
실제로 회사의 경조사 챙기기에 따른 직원과의 유대관계는 한국의 노사관계 중 특이하고도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이다. 한국에서 피고용인의 충성심은 그들 중 누구도 직장에 대한 의무감을 특별히 강요받지 않더라도 될 정도의 수준이다. 한국에서 회사와 종업원들의 목숨은 별개의 것이 아닌 하나의 것이다. 이러한 인간관계는 회사가 경제적 이유만으로 근로자의 작업의욕을 강화하려 할 때에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국 근로자의 특성
수년 동안 수많은 한국인 근로자들을 만나면서 한국인 근로자들에게는 외형적인 모순이 여러 차례 드러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진정한 모습인지 확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그런 성향이 상당히 널리 퍼져 있음은 분명한 듯했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자신의 일에 대해 자신감을 내보인다. 그들에게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면 언제나 자신의 능력 내에 있는 듯이 대답한다. '할 수 있다'는 정신이 끝없이 샘솟기라도 하는 듯 항상 좋은 성과를 거둘 자신감에 차 있다. 하지만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온갖 근심이 가득 차 있는 모순 또한 발견되는데, 이는 만일 자신이 그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면 평가절하의 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강박관념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인다.
03 인수 협상
GM과 대우는 대우차 인수를 논의하기 위해 1998년 2월 처음 만났다. 대우는 악화일로를 걷다가 1999년 후반 결국 파산에 이르고 말았다. 언제 협상이 합의에 이르게 될지는 끝나 봐야 알 일이었다. 분명한 사실 하나는 당시의 협상이 협상 당사자였던 대우차, GM 그리고 대우차의 채권단을 대표하는 산업은행 3자만의 협상을 아니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다양한 유형의 이해집단들을 만족시켜야만 했다는 것인데 그중에는 노조, 정부, 부품공급업체, 채권자들은 물론 심지어 일반 국민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협상 자체에 대한 일반 대중의 관심도 워낙 큰 터라 협상에 참여하는 당사자들 중에는 매우 예민하게 여론을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었다. 대중의 여론 역시 또 다른 협상의 참가자였으며, 그것도 대단히 상대하기 까다로운 협상 당사자였던 셈이다.
마침내 2002년 10월 17일에 GM과 대우는 새로운 형태의 합작사업체를 출범시키기에 이르렀다. 합작회사란 그 자체만으로도 어려운 것이지만, 한국과 미국의 문화적 차이만큼 서로 다른 두 개의 큰 회사가 관련될 때는 실패의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지게 마련이다. 특히 당시 대우차 내 직원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져 있었다. 게다가 직원들은 외국 회사가 자신들의 회사를 인수하는 것을 호의적으로 여기지 않고 있었다. 좋은 장비와 아이디어, 우수한 직원들은 모두 골라 가고 남은 것들은 그대로 팽개쳐져 회사 상황이 인수 전보다 훨씬 더 나빠질 것이라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당시에는 그 누구도 GM의 진정한 의도를 알 수 없었기에 이러한 생각도 무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러한 고민은 GM 역시 마찬가지였다. 혼란을 수습하고 재건하기까지 최소한 몇 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회사의 인수도 만만찮은 일인데 혹 노조로 인해 제품 생산에 영향을 받지는 않을는지, 경영진의 의사결정에 저항하는 일들이 발생하지 않을는지 걱정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사실 GM에게 대우의 알짜배기만 빼내 가겠다는 의도 따위는 애초부터 없었다. GM의 걱정도 결국은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지금에서야 분명히 밝힐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대우차에 관해 몰랐거나 무시했던 부분들은 나중에 알고 보니 대우만의 뛰어난 장점들이었고, 당시 GM 간부들의 고민과 걱정은 터무니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어쨌든 어려운 협상 과정이 끝나고 그 성과로 GM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GM Daewoo Auto & Technology)가 탄생했다. 우리는 곧 바로 미래를 향한 준비에 착수했다. GM으로서는 일찍부터 아시아에 대규모의 제품 개발과 생산에 쓰일 거점 기업을 확보함으로써 자사의 제품이 한국과 세계 시장에 쉽게 진출하도록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협상의 성공은 결국 그것을 가능케 했는데, 그에 그치지 않고 GM대우가 성장하면서 경쟁사들에 비해 능력의 배양이나 기회의 창출 측면에서 더욱 유리한 입장에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하겠다.
초기에 GM이 대우차 인수 협상에 들어설 때는 파산한 기업이라고 판단된 회사를 인수하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언론에서 흔히 묘사되듯이 한국에는 완고한 전투적 노조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들은 임금이나 근무시간, 근무조건과 같은 현안들을 뛰어넘어 국가 정치적 이슈나 회사 운영 방식에까지 관여한다. GM은 사망 직전의 회사를 재건함과 동시에 그러한 노조의 요구와 전술에 적절히 대처하는 방법도 찾아야만 했다. 마침내 GM이 대우차를 인수하고 보니 대우차는 재정적으로 밑 빠진 독과 같은 곳이었다. 국내외 여러 곳에 공장을 건설하겠다는 명목 하에 각종 금융기관들로부터 높은 이자의 대출을 받아놓고 있었는데 상한 기일이 다가와도 갚을 능력이 되지 않아 연체가 반복되었다.
하지만 합의서에 서명을 마친 뒤 마련한 밑그림은 그렇게 절망적이지 않았다. 비록 회사의 재정은 기대 이하의 취약성을 보였으나 운영 상황은 그다지 나쁜 것이 아니었다. 유동성이 나쁘다는 점을 제외하면 공장은 여전히 잘 돌아가고 있었고, 직원들은 성실하게 출근해서 일했으며, 앞으로 출시될 신제품 계획 역시 차질 없이 진행 중이었다. 비록 다소 침체기에 접어들었다고 해도 자동차는 계속 만들어지고 팔려나가고 있었다.
부평공장 문제
협상이 진행될 동안 GM 경영진을 지속적으로 괴롭힌 것은 노조의 투쟁성과 완고함이었다. 그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는 인천의 부평공장은 GM에게 하나의 교훈을 안겨주었다. 부평공장은 원래 대우차의 주력 공장이면서 대우 노조의 본거지와 같은 곳이다. 미국의 경우 기업 및 직장 단위 노조는 바람직한 노동운동에 역행할 여지가 있다는 이유로 설립이 금지되어 있다. 따라서 디트로이트에서 부평공장은 과도한 인력 충원, 비효율적 생산, 잦은 조업 중단, 경영 간섭의 근원지로 여겨졌고, 전반적으로 회사의 자원을 낭비시키는 곳으로 간주되었다. 결국 GM의 고위층으로부터 협상 과정에서 GM이 책임질 설비 목록 중 부평공장을 제외시키라는 지시가 한국에 있던 인수팀에게 떨어졌다.
부평공장은 대우차 전체 조직의 머리나 심장과 같은 곳으로 그곳을 제외한다는 것은 목이 잘린 회사를 운영하는 것과 진배없었다. 한국 현지의 우리 인수팀이 피부로 깨닫고 있었던 이러한 사실을 디트로이트의 GM 본사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우리의 입장을 조율해 가는 동안에도 본사의 지시를 만족시키면서 동시에 부평공장을 구제할 방안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우리는 부평공장에 GM 공장으로서 생존능력을 확보할 때까지 시간을 주기로 하고 디트로이트 본사와는 향후 부평공장이 적정한 기준을 충족할 경우 추가 인수 대상으로 삼겠다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우리가 마련한 기준은, 첫째 품질 수준이 전반적인 GM 수준과 동일할 것, 둘째 생산성과 비용절감이 적정한 수준을 충족시킬 것, 셋째 노사평화를 붕괴시키지 말 것. 마지막으로 생산 수요가 공장 2교대 가동(주야 가동)에 다다를 것 등 네 가지로 정해졌다.
부평공장의 인수 시기는 6년으로 목표를 잡았다. 이 기간 동안 GM대우는 부평공장에 생산을 위탁하고 공장 가동을 유지하지만 회사 전체를 위협할 수 있는 문제가 발생했다면 인수를 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GM의 부평공장 조건부 인수라는 합의와는 별도로 GM은 일찍이 협상 초창기에 대우차의 인력 상황을 점검해 보았는데, 과잉이었다. 그렇게 해서 4,000명의 과잉 인원 중 2,272명이 조기 퇴직이나 희망퇴직 등을 통해 자발적으로 회사를 떠났다. 남은 1,725명의 인원들은 강제적으로 밀려나야 했는데 이는 그들이 원하지도 않고 수용하기도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했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렇게 마무리된 인원 조정 작업은 GM이 대우차를 인수하기 전에 치러지긴 했어도 새로 생긴 회사 역시 그 책임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추후 노사 협상에서도 1,725명의 해고 노동자들은 항상 중요 현안 내지 모든 사람들의 핵심적 해결과제로 간주되었다. 그 뒤 수년 동안 우리들은 노조와 노사 현상에 대한 무수한 협상을 벌였다. 그때마다 가장 먼저 해고 노동자들의 안위와 관심 사항부터 해결하고자 하는 그들의 목적의식에는 적잖은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GM대우 설립 후 생산, 품질, 비용의 효율성이 극대화되고 이는 곧 기업의 성공으로 이어져 부평공장은 채 3년이 지나기 전 GM대우에 다시 통합되기에 이르렀다. 2005년 11월부터 부평공장은 완전히 GM대우의 일부로 통합되었고 옛 대우차 몰락 이전의 지위를 회복할 수 있었다.
04 GM대우의 미래를 향한 비전
새로운 GM대우의 CEO에 취임하면서 나는 한국인과 외국인 간부들을 불러 회사가 처리해야 할 현안들과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바에 관해 함께 논의하고자 했다. 그런데 비록 내가 직접 들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내 방식이 전형적인 한국 CEO들이 회사의 비전을 세우거나 임무를 부여할 때 취하는 방식과는 다르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실제로도 외부 방문객은 대기업이나 미래가 촉망되는 한국의 중소기업 본사 현관에 들어설 때면 늘 회사 창립자의 비전을 새겨 넣은 명판과 마주치게 된다. 불행한 것은 실제로 그런 비전에 맞춰 운영되는 기업이 드물다는 점이다.
나는 GM대우에 그러한 추상적인 목표보다 실질적인 비전을 심어주고 싶었다. 따라서 회사 간부들로 하여금 그들의 목표 혹은 무엇을 위해 일하고 싶은지에 대해 적은 임무 선언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나는 회사 동료나 직원들의 마음속에 공허하게 울려 퍼지는 캐치프레이즈와 같은 글귀만은 나오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회의를 마친 뒤 간부들로부터 임무 선언서를 받았다. 그들은 회사의 비전으로 '최고의 고객가치를 추구하는 글로벌 기업이자 가장 신뢰받는 한국 자동차회사'로 정했다고 했다. 나는 그들의 임무 선언서에 만족했다. 내용만 본다면 상당히 어려운 임무 선언서 같지만 '최고'라는 표현 없이 회사 목표를 정한다면 직원들에게 부여되는 기대치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낮은 기대치는 곧바로 낮은 성과로 이어진다.
우리는 이 비전이 보다 실질적이고 의미 있는 내용이 되도록 보다 많은 시간을 토론에 할애했다. 먼저 이러한 비전이 다른 사람들에게 보다 쉽게 적절하게 이해되고 전달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현실적인 사업 환경과 우리에게 가능한 자원이 무엇이며, 그것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면밀히 검토하던 중 머릿속에 전통적인 한옥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 지붕의 모습은 우리가 비전으로 삼은 '최고의 고객가치를 추구하는 글로벌 기업이자 가장 신뢰받는 한국 자동차회사'를 상징했다. 지붕은 세 개의 기둥이 지탱하고 있는데, 이는 곧 회사의 세 가지 주요 전략을 의미했다. 첫 번째 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