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iCon 스티브 잡스

제프리 영·윌리엄 사이먼 지음 | 민음사
1부 환희와 좌절



1. 뿌리


스티브 잡스는 1955년 2월 24일 캘리포니아의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10년 동안 아기를 낳지 못한 폴과 클래라 잡스 부부에 입양되었다. 잡스는 새벽 4시부터 깨어나 부모를 괴롭히는 "과잉활동아"였고, 또래 아이들과는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주 별난" 아이, 악명 높은 말썽꾸러기였다. 그러나 스티브는 열 살이 되면서 각종 전자기기에 매료되었고 상상력을 동원해 거기서 무한한 가능성을 보았다.



1967년 중학생이 된 스티브는 자신과 같이 전자기기에 남다른 관심을 보인 빌 페르난데스를 만났다. 당시 페르난데스의 집 길 건너 맞은 편에는 스티븐 워즈니악(워즈)이 살고 있었는데 그 역시 전자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하루는 페르난데스가 스티브 잡스를 자기 집 차고로 초대해 워즈와 함께 만든 컴퓨터를 보여 주었다. 이 때가 워즈와 스티브 잡스의 첫 만남이었다. 당시 열여덟 살이었던 워즈는 이미 진정한 전자공학도였지만, 다섯 살 아래인 페르난네스와 스티브는 아직 전자공학에 관한 실제 지식이 부족한 풋내기에 불과했다. 그날을 계기로 스티브는 컴퓨터에 깊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스티브 잡스와 워즈니악 사이에 우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둘 다 짓궂은 장난을 좋아한다는 점도 서로가 가까워지는데 한 몫을 했다. 위즈가 계약을 세우면 말썽꾼이 되고 싶어 안달이 난 스티브가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 실제로 잡스는 열여섯 살 때 워즈니악과 함께 공짜로 장거리 전화를 걸 수 있는 '블루박스'를 만들어 팔다 AT&T에서 나온 사람이 들이대는 총에 죽을 뻔한 일도 겪곤 했다.

2. 애플의 탄생

스티브 잡스의 독특한 특성은 이중적인 지향성(사업가로서, 그리고 한편으로 독실한 선불교 신자로서)이라고 할 수 있다. 생각이 자유롭고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으며, 세상의 부조리함을 이해할 방도와 마음 깊이 담아 둔 의문점의 해답을 찾고 있었던 스티브에게 선불교의 매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1975년 워즈가 자신이 만든 인쇄회로기판(PCB)을 스티브에게 보여 주자 스티브는 그것을 기반으로 사업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회로기판은 이미 다른 사람들도 판매하고 있어 마케팅에 조예가 깊었던 스티브는 자신들의 제품을 차별화 할 수 있는 독특한 이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팝송을 좋아했던 스티브는 오리건 주의 사과 농장에서 선(禪) 애호가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던 중 '애플(Apple)'이라는 이름을 생각해냈다. 그리고 마침내 1976년 '애플 컴퓨터'라는 이름으로 합자사업 개시를 발표했다.



이 때만 아무도, 심지어는 스티브마저도 이것이 거대한 사업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들은 앞으로의 가능성을 생각했고 그래서 첫 제품을 '애플Ⅰ'으로 명명했다. 그리고 애플은 그 해말 갓 태어난 어설픈 상태였음에도 약 150대를 납품해 무려 10만 달러에 육박하는 매출을 올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애플Ⅰ의 판매가 정체 상태를 보이자 워즈와 스티브는 운영체제(OS)에 관해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당시 경쟁상품인 앨테어 컴퓨터는 하버드를 중퇴한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이 만든 베이직(BASIC)을 운영체제로 사용하고 있었고 게이츠와 앨런은 BASIC을 설치하는 컴퓨터마다 500달러를 받기로 하고 이 프로그램을 컴퓨터 제조업체에 팔고 있었다. 스티브와 워즈는 무료로 사용할 수 있고, 회로기판의 칩에 저장할 수 있는 프로그램 언어를 제공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리하여 컴퓨터를 켤 때마다 매번 먼저 운영체제를 가동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없애고 자동적으로 운영체제를 가동함으로써 기술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도 쉽게 사용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애플Ⅱ가 구상되었다.



1976년 후반 스티브 잡스는 애플Ⅱ의 설계를 반드시 완성하여 회사를 키워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자 잡스는 자신의 한계를 정확히 인식하고, 뛰어난 인재를 찾아내 끌어들이는 비상한 수완을 발휘했다. 그는 제품에 대한 세일즈맨적인 열성, 전도사의 신념, 한 가지 목표에 매진하는 열성당원의 결의, 사업에 성공하겠다는 가난한 청년의 결심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의 이러한 특성들은 훗날 애플의 성공을 이끌어 낸 씨앗이 됨과 동시에 사람들을 자신의 적으로 만든 독소도 되었다.

1977년 1월, 그 동안 애플의 사업 계획을 수립해주고, 초기에 가장 많은 투자를 했던 벤처자본가 마이크 마쿨라의 집 수영장에서 스티브와 워즈 그리고 마쿨라, 세 사람이 만나 마침내 애플을 주식회사로 전환하는데 합의했다. 그리고 당시 내셔널 세미콘덕터의 이사 마이크 스콧을 사장으로 영입했다. 스콧은 세상 물정에 밝고 배짱과 결단력이 강한 인물로 스티브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오랫동안 경영권 다툼을 벌이게 된다.



1977년, 웨스트코스트 컴퓨터 박람회장 문이 열리자, 안으로 몰려든 관람객들은 난생 처음 보는 멋진 퍼스널 컴퓨터를 보게 되었다. 애플 Ⅱ는 전문가용 컴퓨터처럼 보이면서도 미끈한 외모를 자랑했다. 부스 안에서 직원들이 애플 Ⅱ를 가동하자 대형 화면에 역동적인 이미지가 선명한 색채로 나타났다. 관람객들은 이 작은 케이스 안의 전자공학 시스템으로 이런 게 가능한지 믿을 수 없었고 잡스는 뒤에 대형 컴퓨터가 숨어 있지 않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장막을 계속 걷어 올려야 했다.



3. 해적이 되자!

1979년 후반 애플은 퍼스널 컴퓨터 시장을 거의 장악했다. 1980년에는 판매고가 다시 두 배로 늘어났고 애플 컴퓨터는 사실상 경쟁자가 없었다. 회사가 이처럼 승승장구하는데도 스티브 잡스는 행복하지 않았다. 애플Ⅱ는 사실상 워즈가 만든 것이었기 때문이다. 스티브는 모든 사람들이 '스티브의 컴퓨터'라고 인정하는 그런 제품을 내놓고 싶었다. 그는 지금까지 나온 것을 훨씬 능가하고 자기 외에는 누구도 꿈꾸지 못할 컴퓨터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자기 딸의 이름을 따 그 컴퓨터의 이름을 '리사(LISA)'라고 지었다.



머지 않아 스티브의 강력한 지원을 받은 리사 개발 팀이 구성되었고 이들은 엘리트 의식이 강해 다른 직원들의 반감을 샀다. 스티브는 리사에 대해 굉장한 자부심을 가졌고 '우주에 영향을 미칠 만큼 중요한 컴퓨터를 만들겠다'고 호언하곤 했다. 그런데 리사를 컴퓨터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컴퓨터로 개발하려고 하다보니 처음 2.000달러로 책정했던 가격이 출시할 때는 10,000달러가 되었다.



1980년 첨단 컴퓨터 연구의 요람인 제록스 팰러앨토 연구센터(PARC)를 찾은 스티브 잡스는 엄청난 광경을 목격하고 이렇게 외쳤다. "이 좋은 걸로 왜 가만있냔 말이야! 이건 대단한 거야. 혁명이란 말이야, 혁명!" 이것이 바로 지금처럼 마우스로 스크린에 있는 포인터를 움직여 원하는 프로그램을 여는 방식인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였다. PARC 사람들은 지금까지 PARC를 방문한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자기네들의 연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본 사람은 스티브 잡스 뿐이라고 말했다.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애플은 1980년 직원이 200명으로 늘어났고 계속해서 600명, 1,000명 이상으로 불어났다.

1980년 12월 애플의 주식 공모가 시작됐다. 애플 컴퓨터의 공개 주식 460만 주가 한 시간 만에 팔렸다. 당시로서는 사상 초유의 주식 공개였으며, 1950년대 중반 포드 사의 주식 공개 이래 모집 신청률 이 가장 높았다. 학벌도 돈도 경험도 없는 두 젊은이가 5년도 안 걸려서 <포춘> 선정 500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스티브는 하룻밤 사이에 2억 1,750만 달러의 자산을 보유함으로써 전설적인 부호의 대열에 합류했다. 물질적인 면에서 스티브 잡스는 이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질 수 있었다. 게다가 돈은 권력을 수반했다. 그러나 탐욕에 사로잡힌 스티브는 창업초기에 회사를 위해 혼신을 다해 열정을 바쳤던 직원들에게 스톡 옵션을 주지 않았고 많은 직원들이 배신감을 느낀 채 회사를 떠났다.

그 무렵 애플에서 일하고 있던 캘리포니아 대학 교수 출신 컴퓨터 과학자 제프 래스킨이 일반 대중을 위한 작고 저렴한 컴퓨터를 개발하고 있었다. 래스킨은 이 컴퓨터를 '애플'의 정신에 부합하도록 그가 제일 좋아하는 사과 품종의 이름을 따 '매킨토시(Macintosh)'라 이름지었다. 래스킨은 추가 장치가 필요 없이 그것 자체로 완벽한 솔루션이 될 수 있는 컴퓨터를 개발하고자 했다. 그러나 스티브는 리사의 개발만을 강조했고 매킨토시는 오히려 애플에 장애가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래스킨의 아이디어는 취소와 추진되기를 반복했다.



1981년 초반 스티브는 넘치는 에너지를 쏟아 부을 신제품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가운데 자신이 초기에 거부했던 매킨토시로 다시 관심을 돌렸다. 매킨토시는 당시 공식 프로젝트로 진행되고 있던 리사보다 처리 속도가 두 배나 빠른데도 가격이 리사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스티브는 회사의 비대해진 관료 체제가 애플Ⅲ의 개발을 망쳤고 리사까지 잘못 처리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모든 것을 제대로 해 보이고 싶었다. 스티브는 마침내 래스킨에게 매킨토시를 차세대의 획기적인 컴퓨터로 만들 것을 제안했고 자신이 직접 그 프로젝트에 더욱 깊이 관여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스티브가 래스킨의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이자 마쿨라와 스콧은 말썽꾼 스티브를 회사의 다른 부분과 분리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여 래스킨의 프로젝트에 전념하도록 유도했다. 마침내 스티브는 매킨토시 프로젝트의 총괄 임원이 되었다. 스티브가 래스킨을 밀어내고 매킨토시 팀에 합류하자 그 프로젝트는 각광을 받게 되었다. 그는 애플 내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들을 막무가내로 자기 팀에 끌어들였다. 또한 리사 팀으로부터 가치가 있을 만한 것은 모두 빼냈다. 이제 매킨토시 팀은 다른 사람들의 간섭을 받지 않은 외인부대였으며 사상 최고의 컴퓨터를 프로젝트 개시 2년 만에 시판한다는 목표 하에 사내 다른 팀이나 업계의 다른 회사들이 얼이 빠질 정도로 신속하게 움직였다.



1982년 9월 말 매킨토시 팀은 파하로듄스에서 두 번째 워크샵을 가졌다. 그 때 팀원은 거의 100명에 이르렀다. 스티브는 칠판에 슬로건을 적었다. "해적이 되자!(Let's Be Pirates.)" 매킨토시 팀의 정신을 정확히 짚은 표현이었다. 우레와 같은 환호성이 터졌다. 그 슬로건 밑에 그는 또 다른 글을 적었다. "주 90시간 작업, 즐기면서 일하자!" 팀원들의 분투를 촉구하는 말이었다. 아마도 스티브라면 로마 전함의 노를 젓는 노예들도 고매한 일에 동참한다고 생각하고 채찍도 기쁘게 맞아가며 일할 수 있게 만들 인물이었다.



1982년 <타임> 신년 특집호는 PC를 "올해의 기계"로 선정했고, 스티브 잡스의 얼굴이 표지에 실렸다. 잡지를 넘기던 스티브는 충격을 받았다. 거기에는 워즈니악이 "스티브는 회로판 하나, 디자인 하나, 코드 하나도 직접 만들지 않았다."고 말한 것으로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밖의 다른 내용들을 종합하면 독자들은 결국 스티브는 창의력도, 기술도 없으면서 결국 남의 뒤에서 재산이나 모으려고 음모를 꾸미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기에 충분했다. 생각이 깊고 지성적인 사람이었다면 그런 비난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그 중 어떤 것이 정당한지 판단한 뒤 고쳐보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그러나 스티브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그들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리고 매킨토시를 출시하면 그들이 앞서 한 말을 취소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1983년 5월 16일 스티브와 그의 팀원들이 목표로 했던 매킨토시 출시일은 리사의 출시 지연과 함께 뒤로 밀리고 말았다.



1983년 스콧의 퇴임 후 잡스의 경영 방식에 불만을 품은 이사회가 잡스에게 경영권을 주지 않으려 하자, 잡스는 차선책으로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경영의 귀재 존 스컬리를 사장으로 영입했다. 이미 펩시콜라와 훌륭한 조건의 계약을 맺은 스컬리에게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정말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도 설탕물이나 팔며 남은 인생을 허비하실 생각인가요?" 이것은 미국 비즈니스 역사에 전설이 된 일화이다.



마침내 1984년 1월 16일 매킨토시 개발 팀은 모든 버그를 수정하고 출시 준비를 마쳤다. 곧이어 미국 전역에 곧 출시될 매킨토시에 관한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스티브와 존 스컬리는 매킨토시에 "회사의 운명을 걸었다"고 이야기했다. 잡스는 다음과 같은 텔레비전 광고를 냈다.



"1월 24일은 애플 컴퓨터가 매킨토시를 소개하는 날입니다. 그 때 당신은 왜 우리의 '1984년'이 조지 오웰의『1984년』과 다른지 알게 됩니다."



독창적이며 스펙터클한 이 광고는 단숨에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작고 세련된 디자인의 매킨토시는 아이콘 클릭으로 프로그램을 여는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를 사용함으로써 컴퓨터 역사에 일대 혁명을 가져왔다. 잡스는 "비현실적인 목표를 세우는데 일가견"이 있었지만, 그는 결국 꿈을 이루었다.



4. 실패의 쓴맛

사람들은 스티브 잡스가 내뿜는 독특한 분위기에 사로잡혀 그의 단점을 잘 보지 못했다. 스컬리는 여전히 스티브가 구름 위를 걷고 있으며 새로 출시된 매킨토시 판매 수치를 터무니없이 높게 예상했다고 생각했다. 스티브가 예상한 1984년 첫 해 판매 목표는 75만대였다. 세상은 애플을 주목했고 미래의 회사가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모델로 여겼지만, 회사 내부에서는 파워 게임이 벌어지고 있었다. 분열은 불가피했다.



매킨토시가 출시된 후 스컬리는 매킨토시 팀과 리사 팀을 합치기로 결정을 내렸고 여기서부터 모든 불운이 시작되었다. 조직을 새로 정비한 날 두 팀이 중앙홀에 모두 모이자 스티브는 리사 팀을 향해 다짜고짜 "당신들은 정말 형편없어!"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 때 리사 사람들의 눈에는 적의가 번득였다. 결국 스티브의 고집스럽고 자기중심적인 태도는 자신의 몰락을 재촉했다. 그 날 그가 보인 모습은 앞날을 예고한 전조였다. 이것은 스티브가 애플의 미래에 대한 비전에 인간적인 면을 빠뜨리고 지금까지 회사를 지탱해 준 인간적 가치를 외면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자신이 모든 회사 운영을 도맡아 할 것이고 이제는 그럴 때가 왔다는 속마음을 드러낸 것이다. 사장은 존이었다. 하지만 파워는 스티브에게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매킨토시의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매킨토시는 내세울 만한 소프트웨어가 거의 없었다. 매킨토시는 응용 프로그램이 수천 개도 넘는 IBM 컴퓨터와 경쟁하고 있었다. 그것은 좋아할 수는 있어도 구입하기는 싫은 장난감, 약간 색다른 기계로만 보였다. 매출은 계속 하락했다. 낙관적인 판매 예측에 따라 구축한 1,000개에 육박하는 판매조직이 수익을 얻지 못해 휘청거렸다. 스티브는 사람들이 컴퓨터에 수천 달러를 쓸 때는 모양이나 색깔 그리고 마우스의 유무 따위에는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컴퓨터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마침내 불만과 분노가 애플 건물 내에 팽배해지기 시작했다. 애플Ⅱ 조직은 회사에서 언제나 천민 취급을 받고 있었다. 그 와중에 스티브를 비롯한 회사의 귀족들은 급격한 매출 부진과 더불어 실패를 향해 곤두박질하고 있었다. 게다가 존 스컬리는 그들을 통제하지 못했다. 보스의 별난 행동으로 회사의 리더십이 급속히 흔들렸다.



마침내 1985년 4월 11일 이사진은 스컬리에게 더이상 스티브 잡스의 아첨꾼 노릇은 하지말고 자기 역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