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움직이는 삼성의 스타 CEO
홍하상 지음 | 비전코리아
그들의 노하우 - 삼성의 CEO들을 통해 본 7계명
신념을 가져야 한다삼성의 CEO들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처음부터 최고 경영자가 되겠다는 욕심이 없었다. 그것은 그들의 목표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자기 분야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무장되어 있었다. 흔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프로정신이, 월등한 자기 기량이나 철저한 직업정신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삼성의 사장단들을 통해 봤을 때, 그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바로 자기 분야에 대한 신념이었다. 그들에게서는 이 신념이 일차적으로 선행된 후에야 프로정신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자기 분야에 대한 신념은 궁극적으로 그들이 한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하도록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예를 들어, 배정충 삼성생명 총괄사장은 33년 동안 보험업 외길을 걸어왔고, 이기태 휴대폰 부문 사장도 줄곧 무선 사업 쪽의 일을 도맡아 왔다. 이것은 CEO가 되기 위해서는,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종사해야 할 필요가 있고, 아울러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필요도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넌지시 암시해 준다고 하겠다.
예를 들어 오늘날 삼성그룹의 2인자이며 이건희의 그림자라는 평가까지 받는 이학수 삼성구조조정본부장은 한때 숙직도, 일직도 모두 도맡아 하는 신입 말단 사원이었다. 허태학 사장 역시 호텔의 면세점 입주라든가, 각종 편의시설을 도입하는 데 맨발로 뛰어다녔던 사원 중 한 명이었다. 이들 외에도 대부분의 삼성 사장단들은, 어느날 갑자기 그들에게 벼락같은 진급 기회가 주어졌다거나, 낙하산식으로 높은 직책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삼성 그룹의 밑바닥에서부터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 올라온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자기 분야에 대한 신념이 없고서는 견디기 힘든 일이다.
대의명분을 가져야 한다그런데 그들의 신념은 개인적인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그들의 신념은 대의명분과 관련되거나 또는 그 이상의 개념으로 발전했는데, 삼성전자의 일명 '반도체 사장단'들이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진대제 전 사장은 '일본을 이겨보기 위해서' 백지수표까지 뿌리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윤우, 황창규, 임형규 사장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들에게는 반도체가 언젠가는 미래 기술을 선도하는 분야가 될 것이라는 확신 외에도, 한국을 최고의 반도체 기술 국가로 만들고 싶다는 또 다른 사명감이 있었는데, 이 사명감이 곧 대의명분이다.
훗날 삼성 CEO들이 CEO가 된 이후, '극일주의'를 표방한다거나, 자신들의 정책을 '국가 발전 정책의 한 일환'으로 표명하여 정진하는 것, 또 바쁜 와중에도 몸소 봉사활동에 나선다거나, 기업의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모두 이런 대의명분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이 CEO가 되기 이전부터 이런 사명감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이다. 즉, 'CEO가 된 이후에 사명감을 가진 것'이 아니라, 'CEO가 되기 위해 사명감을 가졌다' 라고도 볼 수 있는데, 대의명분에 입각한 사명감은 오늘날 CEO가 되려는 많은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조건이다.
위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삼성그룹에서 있었던 두 번의 화형식 일화는 매우 유명한데, 한번은 이기태 사장의 휴대폰 화형식이고, 또 한번은 제일모직 원대연 사장의 옷 화형식이었다. 이런 화형식에는 안일함과 나태함과는 타협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즉 휴대폰이든 옷이든 지금 당장 어렵더라도 덤핑처리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생각하겠다는 미래 지향적인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가장 강렬한 의미는 위기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미이다. 삼성의 CEO들은 CEO가 된 이후이든 혹은 그 전이든, 크고 작은 위기를 맞이했는데,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그들은 도피하거나 책임을 떠넘긴다거나 하지 않았다.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주도적으로 그 위기 상황을 정면 타개하려고 했다. 이러한 그들의 공통된 속성이 오늘날 삼성을 위기에 강한 그룹으로 남게 했다고 할 수 있다.
작은 것에서부터 리더십을 갖춰야 한다삼성의 CEO들은 대부분, 젊은 시절 작은 소모임을 주체적으로 이끌어간 경험을 갖고 있거나, 혹은 삼성에 입사한 후에 팀장이나 부장 등의 직책을 맡아서 작은 그룹을 이끌어 본 경험들을 갖고 있다. 이것은 그들이 CEO가 되기 전부터 암암리에 리더십을 익혀왔음을 뜻한다. 즉 어느 날 갑자기 CEO 자리에 오르고, 그 이후 리더십을 발휘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리더십은 하루아침에 갖출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또 직책이나 직위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강력한 리더십에는 그만큼의 훈련과 고난이 뒤따른다. 삼성의 CEO들 중에는 야전사령관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이상완 LCD 사장도, 또 배정충 사장도 야전 사령관으로 불리는데, 이때 야전 사령관이란 산전수전 다 겪어본 사령관을 뜻한다. 즉 그들의 현장에서의 강력한 통솔력은, CEO가 되기 전부터 작은 위기들을 주도적으로 헤쳐 나오면서 얻을 수 있었던 역량이었다고 할 수 있다.
건강에 신경 써야 한다삼성의 CEO들은 역동적인 CEO들로 평가받는다. 여기에는 단순히 젊다는 것 외에 또 다른 의미가 있다. 그것은 그들이 기동성과 빠른 상황 대처 능력, 그리고 창의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성실성이다. 창의성이 소프트웨어라면, 성실성은 하드웨어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이기태 사장은 한때 하루 서너 시간씩 자며, 나머지 시간들을 온통 휴대폰을 생각하는 데에만 보냈다고 한다. 이것은 창의성 문제이기 이전에 성실성의 문제이다. 그런데 성실성의 기반은 바로 체력이다. 체력이 좋지 않고서는, 스물네 시간도 부족한 삼성 CEO로서의 스케줄을 모두 소화해낼 수가 없다. 참고로 삼성의 CEO들은 모두 자기만의 건강 비결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건강관리'의 측면이 아닌 '자기관리'이다. 자기관리에 서툰 사람은, 한 기업의 CEO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삼성 사장단들이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자기만의 경영철학을 갖춰라삼성의 CEO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경영철학을 발전시켜 왔다. 관리 경영, 삼발이 경영, 불도저 경영, 내실 경영, 밀착 경영, 서비스 경영, 기획 경영 등 그들의 경영 방식은 다양하다. 이것은 마치 삼성 그룹 내에서의 경영의 포지셔닝화라고도 할 수 있다. 실제로 삼성은 공격형 경영의 CEO들과 수비형 경영의 CEO들, 그리고 이 둘을 통합시킨 CEO들이 긴밀한 협조 관계를 맺고 있다. 이러한 경영의 포지셔닝화는 CEO들 자신의 오랜 경험과 개인적인 기질과 성격, 그리고 각 분야가 필요로 하는 경영 스타일에 의해 좌우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삼성 사장단들이 삼성그룹이 제시한 경영 비전 외에 자신만의 독자적인 경영 방식을 구축해왔으며, 또 그렇게 해간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랜 조직생활과 소그룹의 경영을 통해 수없이 수정, 보완되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삼성 사장단들은 최고 경영자의 직위에 오르기 전에 삼성의 간부로서 여러 경영 방식을 전개했었고, 그것을 통해 자신만의 경영방식을 구축해 왔다. 삼성그룹의 사장단들이 이건희 회장이 제시하는 비전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도 동시에 그 개성을 잃지 않아 보이는 것도, 바로 이러한 자신들만의 경영철학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현장을 떠나지 마라삼성 사장단들의 경영 방식은 다양하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은 삼성그룹의 전체적인 경영 비전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보편적 경영 안에서의 개별적 경영을 추구하는 것이다. 또, 경영의 원칙을 저버리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현장 경영을 최우선시 한다. 그들이 현장 경영을 최우선시하는 것은 그들이 삼성에 입사하던 시절부터 오랫동안 견지해온 습성 중의 하나이다. 이것은 모든 기업 활동은 현장에서 비롯된다는 가치관에 기초한다.
따라서 그들은 신입사원 시절부터 현장의 상황을 파악하는 데 적극적이었고, 간부 시절에는 현장을 리드하려고 했으며, 최고 경영자가 된 후에는 가장 먼저 현장에 대한 혁신과 각종 편의 정책을 실시했다. 더 나아가 직접 현장의 민원을 챙기기도 하고, 제품의 품질 여부와 시장의 동태를 살피는 등 현장의 목소리에 민감함을 잃지 않고 있다. 오늘날 삼성그룹의 CEO들은 경영현장에서 닦은 자기만의 노하우로 삼성의 계열사들을 세계 초일류로 발돋움 시키고 있다. 삼성의 CEO경영, 그들이 지금까지 쌓아온 경영철학은 한국식 경영의 큰 자산이 될 것이다.
삼성의 CEO들
삼성그룹의 철벽 수비수 - 이학수 구조조정본부 부회장매주 수요일 오전 7시 30분, 서울 태평로 삼성 본관 28층에는 삼성그룹의 사장단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일명 삼성그룹 사장단 모임 때문이다. 그런데 이 모임에서는 딱딱한 업무보고가 없다. 대신 대한민국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삼성그룹의 사장단들을 상대로 강의를 한다. 그래서 사장단들이 모였음에도 '사장단 회의'가 아니라 '수요 간담회'이다. 그런데 이 '수요 간담회'에서 사회를 보는 두 사람이 있다. 한 명은 삼성전자의 맏형 역할을 하는 윤종용 부회장이고, 또 한 명은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이다. 그들은 어떤 의미에서 삼성의 좌청룡, 우백호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삼성의 상징적이고 대표적인 CEO는 누가 뭐래도 이건희 회장이다. 그래서 그는 삼성에게 있어 아버지와 같은 존재이다. 이에 반해 윤종용 부회장은 맏형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학수 구조조정 본부장은 어머니 역할을 하면서, 실제로 삼성의 안살림을 책임지고 있다. 그는 지금 사장단의 인사권까지 쥐고 있는데, 그래서 그를 삼성의 2인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학수 구조본부장의 삼성 내에서의 위상은 그가 삼성의 굵직굵직한 사업들을 맡아 처리하는 데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삼성 자동차 사업 정리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학수 본부장은 대우와의 빅딜 협상이 결렬되자, 삼성 자동차 법정관리 신청이라는 카드를 빼 들었다. 여기에는 완강한 반대가 뒤따랐다. 그러나 결국 이것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이건희 회장이 이학수 본부장의 조언을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이 이처럼 삼성 내에서 두각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은 이건희 회장의 전폭적인 지지 때문이다. 이학수가 이건희와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92년부터라고 할 수 있다. 당시 그는 부사장급인 비서실 차장에 오른다. 이때부터 비서실 재무팀을 총괄하는 것은 물론, 이건희 회장을 곁에서 보좌했는데, 당시 삼성의 골칫거리였던 그룹 계열분리 실무 작업을 담당한 사람도 그였다.
그가 이건희에게 얼마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는지는 외환위기 상황에서의 전폭적인 지지에서 살펴볼 수 있다. 당시 그는 삼성 내부의 현금이 유출되는 일을 막는 일뿐만 아니라, 윤종용 부회장과 손발을 맞춰 덩치만 큰 삼성을 슬림화시켜야 했다. 하지만 그룹의 대세를 결정하는 일인 만큼 매사에 경영진의 허가를 받아야 했는데, 이 때 이건희 회장은 '전자와 금융업 외에는 어떤 회사를 처분해도 좋다.'라는 단 한마디로 모든 사안에 대한 허가를 내어 주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학수 본부장은 삼성 이건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었을까? 여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 첫 출발점부터 살펴보면, 우선 그가 제일모직 대구공장 경리과 출신이라는 것이다. 제일모직 경리과 라인은 일명 '삼성 인재 사관학교'라 불리는 곳이다. 이것은 현재 삼성의 CEO 대부분이 제일모직의 재무통에서 시작되었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제일모직 경리과'와 '삼성 비서실'은 당시 최고의 엘리트 코스였는데, 현재 이 구도는 '삼성전자'와 '구조조정본부'라는 새로운 코스로 전환되고 있다.
이학수 본부장이 신뢰를 받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삼성가와의 오랜 인연을 들 수 있다. 1982년, 당시 삼성의 회장 비서실에는 경영관리를 담당하는 운영팀이 설치되었는데, 이학수 사장은 운영 1팀장으로 발탁되어, 20여 년 동안 이병철 전 회장과 이건희, 이건희와 이재용의 핵심 브레인 역할도 담당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는 계열사 사장단과 임원 인사까지도 주도하고 있다. 오랜 동안 한 분야에 종사하며 한 집안과 인연을 맺은 것이 두터운 신의를 쌓는 초석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단지 위와 같은 외적인 이유만으로 한 기업의 CEO가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늘날 이학수 본부장이 삼성 내에 최고의 CEO 중 한 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능동적인 자세에 있다. 이학수 본부장이 막 제일모직 대구공장 경리과에 발령을 받았을 때, 24시간 돌아가는 공장의 속사정을 속속들이 알기 위해 숙직과 일직, 심지어는 야간근무까지 도맡아 하겠다고 자청했다고 하는데, 그 때 관찰한 결과를 토대로 개발한 원가 분석 시스템은 국내 모방직업계의 최초의 기본 매뉴얼이 되었고, 이것은 최근까지도 업계의 기본 매뉴얼로 통한다고 한다.
이학수 본부장의 또 다른 비결은 그가 상사, 즉 이건희 회장의 의중을 꿰뚫어 본다는 데 있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의중을 꿰뚫는다는 것은 그 사람처럼 사고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이학수 본부장이 이건희의 의중을 꿰뚫어보고 있다는 것은 단순히 '그 사람을 잘 안다'라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이건희가 바라보는 방향을 똑같이 바라보고 있으며, 이건희가 이루고자 하는 비전을 똑같이 이루고자 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건희의 신뢰가 두터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늘날 삼성이 가장 큰 성장을 이룬 기업인 동시에 가장 안정적인 기업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삼성 이건희의 의중을 미리 꿰뚫고, 그에 따라 모든 것을 철저하게 준비하는 이학수 본부장 같은 CEO가 안살림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영의 전도사 -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윤종용 부회장이 삼성그룹에 입사한 것은 1966년 대학교 졸업과 동시였다. 이후 그는 1977년 삼성전자 도쿄 지점장으로 발령을 받으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1980년대 8개 사업 부문을 거치면서 명실공히 최고의 야전 사령관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천>이 2004년 8월 9일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비즈니스 리더 25인'을 선정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윤종용 회장은 5걸 중 한 명으로 꼽혔다.
그렇다면 그의 어떤 면들이 이처럼 대내외적으로 성공한 CEO로서 설 수 있게 한 것일까? 우선, 그의 꼼꼼한 기질을 들 수 있는데, 그의 사전에 '대충대충 또는 적당히'라는 낱말은 없다. 또 그는 메모광으로 통한다. 그의 또 다른 기질은 고집스럽다 할 정도로 지독한 성실함이다. 예를 들어, 그가 세계에서 네 번째, 국내에서 최초로 독자적인 VCR 개발을 성공시킨 것으로 유명하지만, 그의 이러한 성공 뒤에 가려진 고생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JVC의 표준 인증을 받기 위해 영하 20도의 혹한에서 실험에 몰두하는 직원들과 밤을 새웠고, 원가절감을 위해 밤낮없이 뛰어다녔으며, 심지어 경쟁사 담당자와 저녁식사를 하고 밤에는 전화로 국내 직원들에게 그 정보를 알려줄 정도였다.
삼성 사장단 내에서 그보다 해외 출장이 잦은 CEO는 그리 많지 않다. 특히 그는 1999년 부회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