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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리바이

카트야 두벡 지음 | 모색
<프롤로그>

미국의 황량한 광산도시 네바다에서 색 바랜 작업복 바지가 발견된 것은 불과 몇 년 전이었다. 이 바지는 약 120년이나 되었지만 찢어진 부분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아직도 입을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양호했다. 결국 이 바지는 무려 4만 6,542달러의 낙찰가에 자회사인 리바이 스트라우스 회사로 매입되었다. 이로써 리바이스 사는 그 당시 모든 미국인들이 즐겨 입었던 ―허리띠 대신 리벳 장식과 멜빵이 달리고, 옆쪽에 주머니가 부착된― '원조 리바이스 바지'를 손에 넣게 되었다. 리바이스 바지의 기원은 19세기 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밤베르크 근처의 가난한 지역에서 태어난 한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은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리바이스 청바지를 만들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가 바로 리바이 스트라우스이다. 서부 해안에 위치한 샌프란시스코의 삶은 고되고 혼란스러웠으며, 무엇보다도 가난과 궁핍으로 가득 했다. 그러나 독일 출신의 젊은이 리바이 스트라우스는 이런 혼란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았다. 그는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범포(帆布) 소재의 바지를 팔기 위해 몇 년 동안 금광 채취자 캠프를 돌아다녔다. 결국 서부의 골드러시 시기에 괭이나 삽을 전혀 손에 쥐지 않고서도 리바이 스트라우스는 막대한 부를 거머쥐었고, 그의 명성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1. 한 여자에 대한 사랑 하나로

룁은 1829년 독일 부텐하임에서 히르쉬 슈트라우스의 칠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태어나자마자 유대교의 전통 할례를 받은 그의 대부는 가축상을 하는 부유한 큰 아버지였다. 행상을 하는 룁의 아버지는 수입이 변변치 않았다. 하지만 아홉 식구가 먹고살기에도 빠듯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집안은 언제나 화기애애했고, 아이들은 건강했다. 특히 막내아들 룁은 부지런하고 순종적이며 착한 아이였고, 학교에서는 1등을 도맡아 했다. 룁이 13살이 되던 해, 5월 어느 일요일이었다. 그는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밀가루를 빌리러 이웃집에 가고 있었다. 화창한 날씨에 기분이 좋아진 룁은 교회 창문으로 반사된 눈부신 햇살을 느끼면서 길을 내려가다가 앞에 있는 조약돌을 힘껏 발로 찼다. 그런데 그때 룁이 걷어찬 돌이 영주 슈나이더의 불룩 튀어나온 배에 달린 반짝이는 황금단추를 맞춘 모양이었다. 룁이 죄송하다고 사과를 하자, 그는 손으로 수염을 꼬면서 못마땅하다는 듯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더니 다시 가던 길을 갔다. 그렇지만 룁은 도저히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방금 자신이 스치고 지나간 천사 같은 소녀 때문이었다. 영주 슈나이더의 딸인 파울리네의 얼굴을 그렇게 가까이에서 본 건 처음이었다. 가난한 유대인의 아들 룁 슈트라우스가 머나먼 미국으로 건너가 오늘날 전 세계인이 즐겨 입는 청바지를 만들게 한 결정적 계기인 그의 애틋한 사랑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처음부터 이루어지기 어려운 사랑이었다.



이제 17살이 된 룁은 혼자 행상을 나가야 했다. 룁은 월요일 아침마다 행상을 나가며 금요일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살아 계시지 않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숨을 쉬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면서 영원히 눈을 감았다. 룁은 어머니(레베카)를 위로했다. 장남과 장녀인 야콥과 뢰슬라는 이미 결혼을 해서 집을 떠났고, 요나단과 립만 형은 미국에 이민 간지 오래였다. 이제 어머니와 두 누나를 부양해야 할 사람은 룁이었다. 룁은 어깨가 휘고 발에 피가 맺힐 정도로 행상 일을 했다. 하지만 주거 공간과 노동에 대한 특별세와 종교세를 추가로 내야 하는 유대인의 신분으로 가난에서 벗어나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다. 그는 언젠가 부자가 되어 파울리네와 결혼하려는 꿈을 버리지는 않았지만, 고향에서 행상을 해서는 그 꿈을 이루기 어렵다는 것을 나날이 절감할 뿐이었다. 그때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저 멀리 뉴욕 땅에서 부텐하임으로 한 통의 편지가 날아온 것이다. 요나단과 립만이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보낸 첫 편지였다. 편지에는 행상인으로 성공한 형들의 미국 생활과 어여쁜 아가씨들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특히 그들은 미국이라는 곳은 열심히 일하고 절약하면 누구나 돈을 모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룁은 어머니와 두 누나를 데리고 미국으로 가겠다는 굳은 결심을 했다. 고향에서 보내는 마지막 일요일이 되자 룁은 길가의 꽃을 꺾어 꽃다발을 만들었다. 파울리네에게 작별인사를 하러 가는 동안 마음이 내내 무거웠다. 한동안 둘은 말없이 나란히 앉아 있었고, 꽃다발을 계속 만지작거려 꽃이 거의 뭉개질 때쯤 룁이 먼저 말을 꺼냈다. "네 아버지보다 돈을 더 많이 벌어서 돌아와 너를 아내로 맞이할 거야. 약속할게." 파울리네는 마치 그를 다시 놓치지 않으려는 듯 팔로 룁의 목을 세게 감싸 안았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40일이 넘게 계속되던 배가 긴 항해를 마치고 뉴욕 항에 도착한 날, 룁은 누구보다 먼저 갑판으로 달려갔다. 제복을 입은 한 남자가 배에서 내리는 승객들의 이름을 점검하고 있었다. "리바이!" 남자는 명단에 표시를 하고 룁에게 새로운 이름을 불러주며 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룁은 약간 망설인 후 자신의 이름을 다시 명확하게 말했다. "룁 슈트라우스!"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찬가지로 큰 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리바이!" 그 다음은 마일라의 차례였다. 남자는 이번에는 명단에서 시선을 잠시 떼고 고개를 들어 친절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메리." 푀겔라의 이름은 페니가 되었고, 레베카만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게 되었다. 룁은 '리바이'라는 단어를 속삭여 보았다. '그래, 여기서 다시 시작하는 거야. 이름도 새로 얻었고…좋아!' 그때부터 룁은 '리바이'라는 이름으로 새 삶을 시작했다. 뉴욕의 거리는 행상인들로 가득 했다. 행상은 이주자들의 주요 직업이었고, 그들 대부분은 스칸디나비아인과 독일 출신의 유대인이었다. 지칠 줄 모르는 근면함 덕분에 리바이는 형들에게 빌린 초기 자본을 빨리 갚고서 자신의 돈을 벌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한 남자가 스트라우스 형제들과 같은 방을 썼다. 그들이 없는 사이에 욕심 많은 집주인이 손님을 더 받았기 때문이었다. 데이빗 스턴도 독일에서 온 이주자였고, 리바이보다 6살 많았다. 리바이와 데이빗은 서로 비슷한 성격이라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데이빗은 쾌활한 성격의 소유자였고, 리바이의 두 형들과도 잘 어울렸다. 스트라우스 형제들은 돌아오는 안식일에 새 친구를 데리고 친척집에 머물고 있는 어머니를 찾아가기로 했다. 리바이는 데이빗과 페니가 식탁에 마주보고 앉도록 자리를 배치했고, 둘이 시선을 주고받는 모습을 자세히 관찰했다. 레베카도 반듯하게 잘 자란 청년과 자신의 딸이 서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결국 그들은 메리가 재단사 윌리엄과 결혼하자, 그 뒤를 이어 부부가 되었다. 이들이 결혼하던 해에 축하할 만한 또 다른 일이 생겼다. 조나스(요나단의 미국식 이름)가 드디어 포목용품과 재봉용품을 파는 상점을 연 것이다.



리바이는 뉴욕 시내가 행상인이 너무 많아 장사를 하기엔 무리가 있어 켄터키의 루이스빌로 가기로 했다. 루이스빌은 루이 16세의 이름을 따서 약 70년 전에 세워진 도시였다. 그러나 이곳에서 프랑스의 자취를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리바이는 루이스빌의 주변 지역으로 갔다. 시내에서는 장사가 잘 안 된다는 친척의 말을 듣고, 시내를 떠나 외곽에서 물건을 팔기로 한 것이다. 리바이는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일했다. 어릴 적부터 행상을 한 그는 점차 전문가가 되어갔다. 리바이가 루이스빌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을 때 미국전역은 골드러시로 시끌벅적했다. 캘리포니아에서 황금이 무더기로 발견되었다는 소문은 배를 타고 태평양 남쪽 지역을 거쳐 리바이가 행상을 하고 있는 켄터키까지 퍼졌다. 리바이도 이제 행상을 그만두고 새로운 시장에 나가 상점을 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리바이는 샌프란시스코로 떠날 결심을 하고, 일단 미국 시민권부터 땄다. 그것은 앞으로 미국에 뿌리내리고 살면서 파울리네를 데려와 법적인 아내로 삼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길에 거쳐 지나가는 파나마 지역은 매우 습하고 무더웠다. 리바이가 셔츠마저 벗으려고 하자 일행 중에 나이 든 한 남자가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셔츠는 그냥 입고 있는 편이 나을 거요. 맨살을 드러내면 곧 벌레에 물리고 고열에 시달리게 될 테니깐…." 힘겨운 행군이 끝나고 리바이는 드디어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배에 올라 탈 수 있었다. 배에 탄 사람들은 대부분 리바이처럼 골드러시를 틈타 부자가 되겠다는 꿈을 지니고 있었다. "육지가 보인다!" 리바이는 잠결에 그 소리를 듣고 흥분한 나머지 바지를 거꾸로 입었다. 그런데 잠시 후 수많은 남자들이 작은 배를 타고 노를 저어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리바이는 돌아가는 상황을 재빨리 파악했다. 그동안 장사를 하면서 상대방에게 필요한 물건이 무엇인지 동물적인 감각으로 키워온 그였다. 리바이는 얼른 범포 한 두루마기를 꺼내 세로 방향으로 넓게 자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범포를 사려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리바이의 손에 엄청난 크기의 금덩이를 쥐어주었다.



1846년에 미국인 선장 몽고메리 오더가 맥시코의 작은 마을인 예르바 부에나를 습격하여 세운 도시가 샌프란시스코이다. 그로부터 6년이 흐른 뒤에 리바이가 샌프란시스코의 선착장에 발을 디뎠을 때, 그곳에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물건을 흥정하면서 사고팔고 있었다. 데이빗의 작은 가게는 캘리포니아 스트리트에 있었고, 그곳에서 데이빗은 페니와 새로 태어난 두 아이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 아이들은 바로 리바이에게 평생 사업의 동반자가 되어줄 야콥과 지그문트였다. 리바이는 벌써 다음 단계의 일을 머릿속으로 계획하고 있었다. "데이빗,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어. 범포나 그 비슷한 천을 팔아보는 게 어때? 금방 채취업자들은 범포 같은 질긴 옷감이 지속적으로 필요할 테니까, 값이 얼마이든 꼭 살 거야. 그리고 필요한 범포는 뉴욕에 있는 조나스 형과 루이스 형이 안정적으로 대줄 거고, 이거 돈벌이가 될 것 같지 않아?" 모든 일이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리바이의 사업 수완 덕분에 데이빗이 운영하는 가게의 매상은 몇 배 이상 뛰어올랐다. 리바이는 곧 이 가게의 동업자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뉴욕에서 커다란 소포가 하나 왔다. 지난 몇 년 동안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렸던 그녀의 편지가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 파울리네는 리바이의 편지를 받지 못한 지 오래였고,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해 딸까지 두고 있다고 쓰여 있었다. 파울리네가 떠난 걸 안 순간, 리바이는 숨가쁘게 달려왔던 레이스의 목표물이 갑자기 사라져버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항상 절망 너머의 희망을 찾으며 살아온 리바이였다. 그는 마음의 상처가 아물 때까지라도 다시 행상에 나서기로 했다. 광부들이 그의 가게를 찾아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광부들을 찾아 산으로 올라가기로 한 것이었다.



2. 세상에 블루진을 입힌 남자, 리바이

일 자체를 즐기는 사람

- 리바이 교훈 : 돈을 벌기 위해서만 일하지 말라


리바이의 마차는 금광채취자에게 팔 물건들로 가득했다. 그는 점심때쯤 30여명의 인디언 무리와 만났다. 그들은 백인들이 광산으로 가는 길에 버린 옷들을 걸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아주 독특하고 오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인디언들은 아주 친절했고, 리바이에게 환영한다는 말을 하면서 식사를 함께 하자고 청했다. 추가로 도토리 가루와 물로 만든 초콜릿 색깔의 묵이 나왔는데, 축축하고 쓴맛이 나 먹기 힘들었다. 리바이는 고맙다는 말을 하며 더 먹기를 거절했다. "달걀 먹는 사람?" 찢어진 외투를 입은 인디언 남자가 물었다. 리바이는 고개를 끄덕였고, 이 말을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달걀 먹는 사람'은 체로키 인디언들이 유대인 출신의 행상인에게 붙여준 별명이었다. 유대 행상인들은 인디언들의 낯선 음식을 먹으면서도 항상 달걀을 달라고 청했기 때문에 '달걀 먹는 사람'은 인디언들 상에서 유대 행상인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리바이는 인디언들이 식사를 마칠 때쯤 상자와 가방을 열어 자신이 팔 물건들을 보여주었다. 추장은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서라도 칼이 반드시 필요했다. 이를 눈치 챈 리바이는 보통 때보다 두 배정도 비싼 값을 불렀다. 리바이는 앞으로도 손님들이 비싼 값을 지불하더라도 망설이지 않고 살 수 있는 물건, 꼭 필요로 하는 물건을 팔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물건이라면 파는 사람에게는 큰 이익을, 사는 사람에게는 더 없이 큰 만족감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느새 리바이는 자신이 물건을 팔아서 돈을 버는 일에만 기쁨을 느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누군가가 필요로 하는 물건을 가져다 주고, 상대방이 그것을 들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일 그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사람

- 리바이 교훈 : 침착하고 지혜로우라


리바이는 금광 채취자들의 야영지로 출발했다. 그의 마차에는 처음 떠났을 때보다 더 많은 짐이 실려 있었다. 그는 이번에 새크라멘토를 거쳐 시에라네바다로 곧바로 가는 길을 택했다. 그가 목적지에 도착하자 고아부들은 다시 나타난 행상인을 반가워하면서 새로운 물건에 열광했다. 또 다른 광산으로 가는 어느 날 오후 리바이가 들판에 앉아서 간단하게 요기를 채우고 있을 때였다. 말을 탄 네 명의 남자가 리바이에게 다가왔고, 리바이는 아무 두려움 없이 그들을 바라보았다. 남자들이 점점 가까이 왔을 때 리바이는 맨 앞에 있는 사람이 데이빗 가게의 단골손님인 뚱뚱한 여자의 남편, 잭임을 알아차렸다. 잭은 악의에 찬 시선으로 리바이를 바라보며, 악수를 청한 그의 손을 뿌리쳤다. "이런 나쁜 놈! 세상에서 가장 형편없는 천을 팔다니! 마차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단 말이야. 그러니 내가 낸 돈은 되돌려줘야겠어!" 잭은 단단히 화가 나 이글거리는 눈으로 리바이를 바라보았다. 다른 남자들 셋은 잭 뒤에서 위협적인 표정으로 권총을 만지작거리며 미묘한 압력을 가했다.



그러나 천값을 모두 돌려줄 수 없다고 생각한 리바이는 시간을 좀 벌어보려고 했다. 그 순간 리바이의 눈에 찢어진 작업복 바지가 들어왔다. "그 대신 제가 한 가지 제안을 할게요. 제가 남은 천으로 바지를 만들어볼게요.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질긴 작업복 말이에요. 이 천이 물이 좀 샐지는 몰라도 다른 천보다 확실히 질기거든요." 남자들은 자신들의 찢어진 바지를 서로 바라보았다. 남자들은 말에서 훌쩍 뛰어내렸고, 리바이는 노끈을 가지고 남자들의 치수를 재면서 기록을 했다. "내일 저녁 어두워질 때쯤 여기서 다시 만나요. 그때 바지를 가지고 올게요." 잭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날 속이면……. 그때는……." 그는 다시 한번 위협적으로 권총에 손을 가져가며 협박을 한 후 말을 타고 사라졌다. 리바이는 손등으로 이마를 닦으며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겁을 먹어 온 몸이 땀에 젖은 그는 당나귀를 끌고 다음 마을로 향했다. 리바이는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니다가 간신히 어느 늙은 재단사를 찾아냈다. 재단사는 멀건 눈으로 리바이를 바라보면서 바지 1벌당 얼마를 뜯어낼 수 있을까 냉철하게 고민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바지를 내일까지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그들은 다시 만났고 재단사는 일을 시작했다. 그는 번쩍거리는 바늘로 바지 네 벌을 능숙하게 꿰맸고, 저녁 무렵 모두 완성되었다. 그러나 마차를 끌고 약속한 장소로 가기에는 이미 늦었다고 생각한 리바이는 말을 한 마리 빌려 전속력으로 달렸다. 잭과 그 패거리들은 이미 와서 리바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리바이가 그들에게 바지를 건네자 남자들은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바지를 이리저리 구석구석 훑어본 후 입었다. 바지는 그들이 입은 누더기 위로 걸칠 수 있도록 재단되었다. 잭은 바지를 입고 두어 번 움직여보았다. 잭의 얼굴에서는 감동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애써 감추려고 했다. 하지만 리바이는 자신의 승리를 벌써 읽었다.



리바이는 장사꾼으로서의 본능적인 감각으로 행운의 서광이 비쳐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예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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