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하지 않는다면 내가 한다
조운호 지음 | 책바치
프롤로그 -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은2004년 6월 18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의 회의장. "지금부터 일자리 창출을 위한 투자 전략 보고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사회자가 행사의 시작을 알린다. 연단에는 어느 새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 나와 환영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 이하 각 부처 장관들, 그리고 삼성, LG, SK, 현대 등 대한민국의 파워 엘리트들이 배석한 자리다. 오늘 나는 5명의 사례 발표자 중 한 사람으로 참석했다. "다음은 웅진식품 조운호 사장의 발표가 있겠습니다." '긴장할 것 없어, 조운호.' 대형 멀티비전에 내 얼굴이 뜨고, 화면 아래로 어쩌면 이 자리에서 가장 보잘것없을 지도 모를 약력이 흐른다. 부산상업고등학교-부산산업대학 회계학과 졸업, 웅진식품 대표이사..... 나는 준비한 자료를 읽어나갔다. "웅진식품의 성장동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성장동인이라... 나를, 그리고 웅진식품을 여기까지 오게 한 힘은 무엇일까? 언론에서 나를 다룰 때면 '위기 타개의 해결사', '마케팅의 귀재'와 같은 말을 쓰곤 했다. 그것인가? 하지만 위기를 해결하고 탁월한 마케팅 능력을 발휘한 사람들은 나말고도 많다. 그것뿐이라면 그들과 내가 특별히 다를 게 뭔가? 그러나 감히 생각하건대, 나는 분명 다르다. 위기를 극복하고 성공했다는 점에서가 아니라, 위기를 극복하는 방식이 다르고, 그로부터 만들어낸 비전이 다르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나는 갔고, 그 길로 다른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 세계가 있다.
'그래, 어디보자'로 시작하라봄바람이 제법 해실거리는 3월이다. 기획조정실장인 이기승 상무가 부르지 않았다면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조 과장, 웅진인삼 어려운 거 알지? 가서 그 회사 좀 살려봐. 재주껏 살려보란 말일세." "아, 알겠습니다." 머리가 멍했다. 나는 방금 인사이동 통보를 받은 셈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기획조정실의 재무 전문가였다. 서울대 출신이 즐비한 웅진그룹 기획조정실에서, 비록 야간대학을 나오긴 했지만 고졸출신 은행원 7년 경력의 나는 누가 봐도 튀는 존재였다. 다들 훌훌 떠나는 와중에도, 지난 5년 간 내가 곧 회사의 얼굴이라는 책임감과 자부심으로 일해 왔다. 그 결과 지금은 부장, 차장 없는 기획조정실에서 특별 승진한 과장 1년차로 팀장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제 내 나이 서른 넷, 그런 나에게 인사이동은 안심하고 앉아있던 의자 다리가 뚝 부러지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그래, 어디보자...' 선택은 두 가지뿐이었다. 사표를 내고 싶은가? 아니다. 오케이, 그럼 받아들인다. 지금 이 순간부터 나는 웅진인삼 직원이다. 다음 날 윤 회장에게서 호출이 왔다. "조 과장을 특별히 보내는 건 상품기획을 해보라는 뜻이야."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윤 회장이 나를 낙점했을 때에는 나에게서 그런 능력을 보았다는 뜻일 게다. 남이 인정한 능력을 , 낯선 분야라고 해서 내가 지레 포기할 이유는 없다. "신상품 개발 건에 대해서는 나한테 직접 보고하게. 지금은 자네가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줄 테니 걱정 마. 조 과장은 이제부터 차장이야." 역시 확실한 양반이다. 나는 1년 만에 특별 승진을 하게 되었다. 어깨는 두 배, 세 배로 무거워졌다. 그러나 이미 내 머릿속은 새로 뛰어든 마당을 한바탕 멋지게 휘저을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회장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1년 안에 히트상품을 들고 사진 찍게 해드리겠습니다."
가벼운 징후라도 놓치지 마라머뭇거릴수록 적자만 커진다. 웅진인삼으로 내려간 날, '경영기획실' 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두 진우 과장, 우선 직원들 설문조사부터 좀 해봐." "뭘로 말입니까?" "이 회사의 문제가 뭔지, 뭘 개선해야 하는지 그런거 말이야. 우선 조직개편부터 해야겠어." 며칠 후 두 과장이 설문조사 결과를 가져왔다. "직원들 반응이 어때?" "제품에 대한 불만도 많고, 무능한 임원 얘기도 있고 그렇습니다." "그래? 그럼 시작해 볼까?" 조직개편은 결국 열흘만에 내가 원하는 대로 진행되었다.
"실장님, 그 친구가 또 왔던데요?" "누구?" "왜 대보원인가 하는 대추 드링크 이름 좀 바꿔달라던 영업사원 말입니다. 벌써 세 번째인 거 같은데..." 대보원은 영업사원이 약국을 돌면서 '이거 한 박스만 들여 놓으십시오' 하고 사정하며 파는 드링크 제품이다. 의욕적으로 뛰고 있는 직원의 요구를 못 들은 척할 수 없어서 일단 조사나 해보자는 심산이었는데, 막상 두 과장이 조사해 온 자료를 보니 뭔가 심상치 않았다. "두 과장, 그 영업사원 좀 불러봐." 내 직관은 뭔가 특별한 냄새를 감지하고 있었다. "약국에서 이 상품이 인기인가?" "예. 대추로 만든 드링크가 조금씩 더 많이 팔리고 있습니다. 문제는 소비자들이 대보원이라는 이름에서 대추를 연상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자네는 이걸 대추원이라든지, 뭐 그런 이름으로 바꾸면 더 잘 팔릴 것 같단 말이지?" "예. 대추 음료니까 대추라는 표시가 있어야지요." 대추라..... 문득 고향마을의 대추나무가 생각난다. 왠지 푸근한 느낌이다. 빨갛게 익은 대추는 참 먹음직스럽기도 하다. 그런데 그 대추가 몸에도 좋단 말이지? 몸에도 좋고, 느낌도 좋은 대추를 맛도 있게 만들어서 소비자에게 준다면...? 야, 이거 괜찮은데. 이걸로 공장을 팽팽 돌릴 수도 있지 않을까? '흠. 한번 소비자 조사를 해볼 필요가 있겠는걸.' 생각할수록 대추에 뭔가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한번에 서너 마리 토끼도 잡을 수 있다 - 멀티로 일하는 법웅진인삼으로 옮겨와 '대추'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신제품 아이템으로 확정해 뛰어다닌 지 벌써 4개월. 일을 진행할수록 해야 할 일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브랜드 네이밍, 맛 결정하기, 제품 디자인, OEM 공장 섭외, 대추원료 구매, 대리점 영업정책 수립, 캔 납품업체 섭외, 광고 등등... 이 모든 일을 나와 두 과장이 거의 동시에 진행해야 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이 프로젝트를 가능하게 하려면 그 어느 때보다 집중력이 필요했다. 우선 대추 음료의 브랜드를 확정하는 것이 중요했다. A4 용지 한 가운데에 '대추'라고 크게 써놓고, 가지 뻗기 식으로 자유로운 연상에 들어갔다. 이런 식의 사고 과정은 직관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꽤 유용하다. 나는 '대추' 옆에다 '고향' 이라고 썼다. 그리고 다시 연상 시작!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가만, 대추가 빨갛게 익은 고향풍경은 가을에나 볼 수 있잖아? '가을'이라.... '대추' 옆에 '가을'이라고 썼다. 여기서 펜이 멈췄다. "가을대추. 좋아, 이거야!" 사실 '대추'로 시작해서 '가을대추'로 마침표를 찍기까지는 꼬박 며칠이 걸렸다. 그러나 투자한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주변사람들 의견도 긍정적이었다.
다음에 해결할 문제는 제품 디자인이다. 독창적인 감각을 요구하는 광고나 디자인에 돈을 아끼는 행위는 소탐대실의 좋은 본보기다. 확실한 투자 뒤에는 그만큼 좋은 품질이 보장된다. 디자인도 결정되었다. "그럼 이 제품을 어디서 생산하나?" "두 과장, 공장 좀 알아봐. 원료 구매처도 알아보고." 그런 다음 나는 다시 제품의 마케팅 타깃과 광고 컨셉트에 집중했다. 밥을 먹을 때에도, 샤워할 때에도, 잠잘 때에도 부지런히 머리를 굴렸다. 펜과 수첩이 손에서 떠나는 날이 없었다. '그래, 가을대추의 메인 타깃은 30대 직장 남성으로 간다.' 광고 컨셉트도 여기서부터 시작해보자. 광고, 가슴을 콕 찌르는 광고 카피가 필요하다! 대추음료는 청량감으로만 승부하는 음료가 아니다. 단순히 목을 적시는 음료가 아니다. 이렇게 적어놓고 생각을 거듭했다. 음료를 마시면서 고향집을 생각하고, 정겨운 풍경을 떠올리며 직장 생활의 스트레스를 잠시라도 풀어주는.....
가슴을 적시는 음료. 남자의 가슴을 적시는 음료 '가을대추'
나중에 톱스타 박중훈을 모델로 기용한 가을대추 광고는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다음날 두진우 과장이 달려왔다. "충청도에 캔 음료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이 하나 있습니다!" 톱니바퀴가 착착 물려 가는 느낌이었다. 이 모든 일이 멀티로 진행되었다. 동시에 여러 가지 과제를 설정하고, 우선순위를 정해서 명쾌하게 하나씩 매듭지어가다 보면 의외로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다. 그런데 막상 문제는 다 준비되어 가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맛'이 안 나오고 있었다. 아무리 재촉해도 연구소에서는 시제품을 내놓지 않았다. 아, 어쩌자고 맛이 안 나오는가?
관행을 버리면 역발상이 보인다식품회사에서 연구소는 부설기관이 아니라 제품 기획 및 개발을 하는 중요 부서이고, 소장은 전무급 이상이다. 그러니 서른 네 살짜리 초짜 마케터의 말발이 먹혀들지 않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우회적인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소비자 리서치를 의뢰한 업체로 하여금 윤 회장과 간부들 앞에서 직접 가을대추에 대한 브리핑을 하도록 주선한 것이다. 대추음료에 대한 기대감, 소비자의 호응도 등을 죽 브리핑하는 동안 간부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드디어 마지막 순서, 맛에 대한 소비자 평가를 보고할 차례다. "소비자들은 가을대추의 맛이 너무 진하고 달다는 평가를...." 바로 그 순간 회장이 연구소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봐요, 맛이 문제라잖소!" 회장이 언성을 높였다. "소비자들이 아니라잖아. 얼른 맛을 만들어줘요." "아, 알겠습니다." 내 말이 먹히지 않으니 회장을 통해 대신 압력을 행사하게 한 셈이었다.
연구소와의 갈등보다 더 심각한 것은 출시 시기의 문제였다. "아니 음료 시장을 알기나 아는 겁니까?" 가을대추의 출시 일자를 10월 1일로 발표한 것이 문제였다. "10월부터는 비수기에 접어듭니다. 성수기와 비수기의 판매량 차이는 두 배 이상이란 말입니다." 옆에 있던 다른 간부도 거들고 나왔다. "게다가 광고까지 하겠다니. 회사 말아먹을 일 있습니까? 박중훈 모델료가 2억이라면서요? 물론 오랫동안 굳어진 음료업계의 관행이 말 몇 마디로 설득될 리는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의지가 아니라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제품을 잘 팔아보겠다는 의지가 아니라, 잘 팔릴 수밖에 없다는 통찰이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비록 내가 중간 간부이긴 해도 신제품에 관한 한 전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출시 준비와 광고 작업은 일사천리로 밀어붙였다. 나는 제품을 내놓는 동시에 광고를 하기로 했다. 그것도 <조선일보>, <동아일보> 같은 일간지 맨 뒷면에 전면광고를! 이것 역시 남들이 보기에는 모험에 가까운 역발상이었다. 하지만 웅진은 워낙 출판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에 '웅진이 이제 음료도 합니다'라는 선전포고가 필요했다. 또한 대리점들에게 '우리 이만큼 제대로 합니다' 하고 알려줄 필요도 있었다. 전면광고라니, 무리한 시도 같지만 성수기에 몇 달간 꾸준히 하는 대기업들의 광고액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있었다.
성공은 언제나 눈부시다'만일 실패하면?' 실패... 여기까지 오는 동안 단 한 순간도 떠올린 적이 없었던 그 단어가 갑자기 온 몸을 옥죄어오기 시작했다. 6개월 동안 불도저처럼 거침없이 밀어붙이며 여기까지 왔다. 이제 내일이면 일간지에 가을대추 전면광고가 나온다. 그러나 이 마지막 순간에 처음으로 '실패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쑥 떠오른 것이다.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의심한 적도 없었는데, 그 철옹성 같던 확신이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머리를 거칠게 흔들었다. 그래, 할 수 있는 건 죄다 했다. 한계 상황까지 나를 몰아세우며 최선을 다했다. 후회도 없다. 뭐가 두려운가? 걱정 따위는 떨쳐버리자. 미리 걱정하는 것은 걱정을 두 번 하는 것이다. 얼마나 미련한 짓인가? '중요한 건, 내가 나의 삶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공이냐 실패냐? 어느 쪽이든 조운호답게, 멋지게 컨트롤할 것이다.' 1995년 10월 1일, 내 인생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마침내 10월 5일 아침, 가을대추를 세상에 내보내는 첫날이 밝았다. 가을대추는 그야말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다음 날 그 다음 날, 또 그 다음 날도... 첫 달 목표가 10만개 플러스알파 수준이었는데, 실제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거의 40만 캔 가까이 팔린 것이다. 나는 감격에 겨워 소리쳤다. "이건 대박이다!" "회장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1년 안에 히트 상품 들고 사진 찍게 해드리겠습니다." 그 약속을 지킨 것이다.
아무도 하지 않는다면 내가 한다회사가 커지자 새로운 대표이사가 영입되었고, 마케팅 팀은 영업본부 산하로 들어갔다. 나는 결국 2선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한바탕 꿈을 꾼 것 같았다. 그리고 2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룹 감사실 차장 조운호. "조 차장, 오늘 나하고 소주 한 잔 하지?" 기획조정실장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95년 10월에 출시된 가을대추는 이듬해 '올해의 히트 상품으로 선정될 만큼 큰 인기를 끌었고, 덕분에 96년 들어 웅진식품으로 상호를 바꾼 후 그 해 매출은 360억 원에 달했다. 그러나 생산설비 추가투자 부담에다 계속해서 신제품을 내놔도 히트 상품이 없다보니 적자폭이 점차 확대되었고 결국 감사실의 판정은 ... 회생불능! "조 차장이 좀 내려가 봐야겠어. 웅진식품이 더 이상 회생하기 어렵다는 건 알아. 그래도 자네가 또 한 번 살려야 하지 않겠어?" "알겠습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모든 것이 너무 늦었다. 하지만 정말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만큼 늦은 걸까? 아니 그래도 늦지 않았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런데 어떤 자리로 가게 됩니까?" "아마 직영 영업부장으로 가게 될 거 같네." 너무 늦은데다 자리도 맞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갈 것이다. 과거는 과거다. 나답게 깨끗이 잊어버리자. 나는 이렇게 되뇌었다.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라!' 일단 가서 보면 무슨 수가 나겠지. 아무도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고, 하려고도 하지 않는 상황이다. 누가 보더라도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일이다. 그렇다면.... '그래, 아무도 하지 않는다면 내가 하리라!'
킹핀을 찾아라"밀림에서 원목 베어서 어떻게 나르는지 알아?" "그야 뭐, 큰 트럭에 실어서 부둣가로 가져가겠지." 하루하루가 막막하게 지나던 어느 날, 친구들과 같이 '원목 나르기'에 관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큰 나무는 트럭 한 대에 겨우 실을 정돈데, 몇 십 그루도 아니고 그걸 언제 다 일일이 트럭에 실어서 날라, 인건비며 물류비가 너무 많이 들어가지 않겠어?" "그렇다고 밀림에 비행기를 띄울 수도 없고, 어쩔 거야?" "운하에 나무를 띄우는 거지. 강은 결국 바다로 흘러 들어가니까, 바다 막아놓고 거기서 배에 실으면 육상 운송비는 절약될 거 아니겠어? 문제는 나무들이 운하를 따라 흘러가다 가끔 엉켜버린다는 거야. 한 번 나무들이 엉키면 그 뒤로 띄워 보낸 나무들이 계속 쌓이면서 댐이 된다는 거지. 수압에다 뒤엉켜버린 원목 무게에다, 이거 폭파한다고 될 일도 아니거든, 근데 전문가가 찬찬히 살펴보면, 그렇게 엉키게 만든 주범이 딱 한 놈이 있대. 그것만 찾아내면 빼는 건 쉽다는 군. 그 놈만 빼내면 시원하게 쫙 빠지는 거지.
'회생'이라는 두 글자에 목매달고 있을 때 내 머릿속에 턱 걸린 것이 이 대화였다. 여기서부터 생각이 꼬리를 물며 이어졌다. 어릴 때, 우리 어머니나 누이들은 엉킨 실타래를 잘도 풀었더랬지. 급한 마음에 달려들면 더 엉킬 뿐, 아무리 복잡하게 엉킨 실타래도 그렇게 된 매듭은 딱 하나고, 그걸 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