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 나를 세워라
박형미 지음 | 맑은소리
"그렇게 날마다 목숨을 걸면 불안해서 어떻게 살아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목숨을 걸면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 그리고 목숨을 거는 것이 안전하다. 사람들은 욕심 없이 안일하게 사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큰 착각이다. 언제 생각지도 않았던 불행이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목숨을 걸지 않으면 이런 예측하기 힘든 불행에 대비할 수가 없이 고통스럽더라도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다.
내가 처음 화진에 입사했을 때 이른 아침이면 나는 18개월이었던 갓난아기를 업고 나가서 남에게 맡겨놓고 출근했는데, 그때 내 신조가 그날 아침에 들고 나간 화장품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그날 중에 다 판다는 것이었다. 저녁 퇴근길에 아기를 받아 업고 그날 팔다 남은 무거운 화장품 가방까지 들고 집에 올 때는 가방의 무게로 인해 나의 심신은 짓눌리고 더욱 피폐해진다는 생각에서 그날 가방은 반드시 비우기로 작정한 것이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다 팔아라! 그 어린 핏덩이에게 통통 불은 젖 한번도 못 주면서 물건을 팔러 나와 다 못 팔고 돌아가다니! 그런 나를 절대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내가 어떻게 목숨을 걸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열심히 일하라! 운명이 도와준다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인생의 덤이 있다세일즈를 하게 되면 세 번의 고비가 찾아오는데 시작한 지 한 달째와 석 달째, 그리고 6개월째에 마지막 고비가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나는 사람들에게 얘기한다. "여러분, 궤도는 진입하기까지가 어렵습니다. 만약 궤도에 진입한 후로도 계속 지금처럼 고생할 거라면 전 여러분한테 이 일 절대 안 시킵니다. 노력하세요! 노력하는 사람에게 인생의 덤이 붙습니다! 좌절하지 말고 뛰세요!"
어느 정도 일정 궤도에 오르면 하루에 고객을 30명이나 40명까지 만날 필요가 전혀 없다. 고객의 눈빛만 봐도 정확한 평가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단 세 명만 만나도 세 개의 오더가 나오고 다섯 명을 만나도 다섯 개의 오더가 나온다. 이것이 바로 인생을 앞당기는 비결인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그 궤도에 오르기까지는 누구에게나 몇 번의 위기가 있는데 이것이 힘들거나 두렵다고 포기하면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어려움에 부딪치면 오히려 그것을 철저하게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어려움이 주는 좌절과 고통을 딛고 일어서야만 사람은 질적으로 한 단계 상승한다. 어렵게 극복하고 보란듯이 궤도에 올랐을 때라야만 기다리고 있던 운명이 내 손을 잡아준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궤도에 오를 수 있는데 포기하는 바람에 실패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 많다. 누구에게나 주어지고, 누구나 맛볼 수 있는 이 인생의 덤을 혹시 당신은 통째로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성공 세일즈로 내 팔자를 바꾸자
1인 기업가의 자부심을 가져라상류로 살 것인가 하류로 살 것인가
내 인생의 업그레이드는 내가 만들어 나가는 것회장님과의 만남과 회장님의 교육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내 생애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교육은 사흘 동안 계속 됐고 그 다음 날부터는 상품 교육과 기본적인 세일즈 기법, 그리고 제도 교육을 받았다. 교육을 받으면서 나는 점차 내가 관리직 내근이 아닌 세일즈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첫날 회장님의 교육으로 사고방식이 완전히 바뀐 나는 앞으로 내가 할 일이 관리직이든 영업직이든 전혀 상관이 없었다. 지금도 물론 그렇지만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도 더 남들 앞에 나서기를 싫어하는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이런 성격 때문에 내가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 세일즈를 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도 못했고, 나를 아는 사람들 중에서도 내가 감히 이런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천지개벽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순식간에 변해 있었다.첫 오더에 흘린 눈물그러나 막상 생애 처음으로 나선 세일즈의 길은 내 각오만큼이나 쉽지 않았다. 회사에 출근하기 시작한지 보름 만이었다. '이제 결론을 내리자 박형미, 이건 네 적성이 아니야. 네가 갈 길이 아니야! 맞아! 더 이상 시간낭비 하지 말고 다른 길을 찾아봐.' 세일즈는 애초부터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마침내 포기하기로 작정했다. 그래도 회장님께 그만 두겠다는 인사를 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하고 그 이튿날 사표를 내기 위해 회사로 향했다. 그런데 회사에 들아가니 이게 어찌된 일일까.
"박형미 씨, 축하해요! 주문이 왔어요. 첫 주문이에요!" 경리 직원이 마치 자기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신바람이 나서 호들갑을 떨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 나는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주문할 고객이라곤 없었기 때문이었다. 주문? 무슨 주문..? "어제 오후에 만난 고객이요. 여의도에서 왔어요! 화장품 한 세트요!" 세상에 이럴 수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만난 고객이 뜻밖에 주문 전화를 해 온 것이었다. 세일즈에 나선 지 16일 만의 첫 주문이었다. 순간 나는 콧등이 시큰거리면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그때 내가 맛본 기분은 세일즈를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나는 온 천하를 얻은 듯 눈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세일즈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다 그렇겠지만 첫 오더를 따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첫 오더를 이렇게 극적으로 따냈으니 두려울 것이 뭐가 있겠는가. 이 세상의 어떤 것도 무섭지 않고 미래가 조금도 걱정되지 않았다. 그날 이후 나는 한달 동안 129개나 되는 상품을 팔았다. 이 판매량은 나와 함께 입사한 신입사원들이 한 달 판매하는 양에 비해 무려 두세 배 이상이나 많은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자신감과 영업력을 바탕으로 나는 입사 6개월이 되던 때부터 지사장에 도전을 해서 8개월 만에 그 자리에 올랐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작정하고 집을 나서던 날, 여의도에서 그 고객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내 인생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지금 와서 생각해 봐도 아찔하기만 하다. 성공과 실패, 천당과 지옥은 불과 백지 한 장 차이라는 것을 나는 그때 뼈저리게 느꼈다. 이렇듯 희망은 더 이상 오갈 곳이 없는 벼랑 끝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내가 그 벼랑 끝까지 가지 않고 중도에서 주저앉아 버렸더라면 희망을 결코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위기를 기회로세일즈에 완전히 자신감이 붙은 데다가 지사장까지 되어 사기충천해서 열심히 뛰고 있던 어느 날 회사에 뜻하지 않은 위기가 찾아왔다. 철저히 방문판매만 한다며 대리점과 영업조직을 독려해 왔던 본사가 자금난 때문에 대리점들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저버리고 화장품을 대거 할인판매 코너에 풀었던 것이다. 일선 영업조직에서는 난리가 났다. 방문판매 영업조직을 거느린 회사가 물건을 시중에 직판하는 것, 특히 할인코너에 공급하는 것은 그 영업조직에 대한 절대적인 배신이다.
판매사원의 피땀어린 노력으로 회사와 브랜드의 인지도가 높아지자 시원들은 안중에도 없이 본사의 이익만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은 너무나 무책임하고 몰염치하며 부도덕한 일이기 때문이다. 또 제품을 할인코너에 싼값으로 덤핑 처리해 버리면 판매사원들에게 비싼 값을 주고 산 고객들은 뭐라고 하겠는가? 속았다고 생각하고 계약해지가 줄을 잇게 된다. 전국의 대리점 사장들이 본사로 몰려가 거세게 항의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우리는 정말 황당하고 난감했다. 그때 회장님이 경영하던 우리 대리점은 그동안의 어려움을 딛고 점점 탄탄한 영업조직을 갖춰가고 있었다.
"본사에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미련을 버립시다. 대신 이 기회에 우리 자체 브랜드 화장품을 OEM방식으로 개발해서 판매할 겁니다." 회장님은 위기를 기회로 삼자며 오랫동안 생각해왔던 자체 브랜드 안을 발표했다. 자체 브랜드의 화장품 개발과 판매… 그것은 한마디로 창업이었다. 그러나 영업 일선에서 뛰고 있는 우리는 경쟁이 치열한 화장품 업계에서 신규 브랜드가 시장에 발을 붙이고 뿌리를 내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충분한 자금력을 가진 대기업도 아니기 때문에 회사의 사활은 오로지 영업조직의 활동 여하에 달려 있었다. 사원들은 정말 어려운 선택을 해야만 하는 기로에 서게 되었다.
"물론 어려운 길인 줄은 압니다. 회사를 옮기고 싶은 분은 떠나십시오. 붙잡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저와 함께 하시는 분들에게는 회사의 이익을 모두 여러분께 나눠 드리겠습니다." 회장님의 말씀은 진심이었다. 그때까지 내가 곁에서 지켜본 회장님은 능히 그러고도 남으실 분이었다. 회장님은 무엇보다 신의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분이었다. 일부 직원들은 망설이거나 떠나가기도 했지만 나는 회장님과는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조금도 주저없이 말씀드렸다. "깃발을 꽂으세요. 저는 사장님 뒤를 따르겠습니다."새로운 브랜드의 탄생오늘날 우리 화진이라는 화장품 브랜드는 이렇게 해서 세상에 태어났다. 이제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일은 열심히 뛰어서 고객들에게 우리 브랜드를 알리고 많은 판매고를 올려 회사를 살리는 일이었다. "자 여러분! 우리 목숨을 걸고 한번 뛰어 봅시다! 사람은 한 번 죽지 두 번 죽지 않습니다. 죽을 각오로 뛰면 이 세상에 못 할 게 뭐가 있겠어요?" 우리의 각오는 정말 비장했다. 그 어느 업종보다도 경쟁이 치열한 화장품 업계에서 이름 없는 회사의 신생 브랜드가 살아남으려면 그야말로 목숨을 걸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나는 내가 곧 회사이고 회사가 곧 나라는 생각으로 일 하기 시작했다. 회사가 성공하지 못하면 나의 성공도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나는 새로운 시장의 개척을 위해 내게 첫 오더의 기쁨을 안겨준 여의도에 지사를 설립하겠다는 사업계획서를 회장님에게 제출했다. 회장님은 내 주장을 받아들여 여의도 경도상가 4층 한 구석에 조그만 사무실을 마련해 주었다. 그런데 말이 사무실이지 엘리베이터도 없는데다 쥐벼룩이 얼마나 득실거리는지 조금만 앉아있어도 다리가 가려워서 어쩔 줄을 몰랐다. "참자! 이 정도만 해도 우리에겐 감사한 거야! 열심히 노력해서 1년 후에, 아니 여섯 달 후에 우린 큰 사무실로 이사갈 거야!" 나는 불평하는 사원들을 독려하며 페인트를 사다가 내 손으로 직접 사무실 벽을 칠했다. 이튿날부터 나는 3명의 판매사원 함께 시장 개척에 나섰다. 사람들에게 인지도가 전혀 없는 신규 브랜드의 화장품을 갖고 영업 활동을 하는 대단한 도박을 시작한 것이었다.IMF의 위기를 극복하라판매사원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화진화장품이라는 자체 브랜드는 어느 정도 입지를 구축했고 회사는 빠르게 성장했다. 그러나 1997년 말에 찾아온 IMF 구제금융 위기는 그간 우리가 쌓아온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하루아침에 매출이 곤두박질을 치면서 이듬해 2월 회사는 부도가 났고 공장의 생산라인은 멈춰 섰으며 그 많던 영업조직은 순식간에 붕괴되고 말았다. 특히 당시 회사는 강원도 횡성에 매머드급 공장을 완공하고 중국진출을 시도하는 등 제2의 도약기를 맞고 있었기 때문에 안타까움은 더욱 컸다.
부도로 인해 공장은 경매에 넘어가고 은행들은 회사의 자산을 압류했다. 채권자들은 빚을 갚으라고 아우성을 치는데 재고는 산더미처럼 쌓이고, 우리에게 닥친 난관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영업조직의 붕괴였다. 3천 명이나 됐던 전국의 영업사원들은 내가 대표로 있는 여의도의 서부 화진 백여 명을 제외하고 모두 떠나버렸다. 회사는 풍전등화의 상황이었고 서부 화진이 회사에 남은 최후의 보루였다. 회장님과 나는 이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끝이라는 각오로 재기를 다짐했다. 본사도 아예 서부 화진으로 옮겼다.
"우리는 여기서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만든 회사입니까? 우리의 피와 땀으로 만든 회사이고 우리 삶의 터전입니다. 우리 힘으로 회사를 살립시다! 지금까지 우리 서부 화진은 회사를 선도해 왔습니다. 이제야말로 진짜 숨은 저력을 보여줍시다. 저부터 제 목숨을 여러분 앞에 담보로 내놓겠습니다." 나는 남아있던 사원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비장의 연설을 했다. 그 말은 내 진심이었다. 진심은 언제나 진심끼리 통하는 법이다. 사원들은 자신의 개인 통장까지 털어 안간힘을 써가며 회사의 부도를 막았고, 나는 매일매일 판매사원의 증원과 교육에 나섰다.빨간 그랜저의 주인공이 되라목숨을 담보로 한 우리의 노력은 결실을 거두어 마침내 우리 화진은 재기에 성공했다. 2002년 온 국토가 월드컵의 열기와 대~한민국!의 뜨거운 함성 속에 파묻혀 있을 때 월드컵 경기가 열리는 대전의 거리축제 현장에서는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색다른 이벤트가 열려 국민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빨간 그랜저 20여 대가 카 퍼레이드를 벌이며 시민들의 축제 행렬 속에 그 멋진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온 국민이 Be The Red!, 붉은 악마가 되자며 붉은 색 티셔츠를 입고 열광하고 있을 때라서 그 축제에 난데없이 등장한 빨간색 그랜저 차량에 시선이 집중되었고 그 차에는 모두 우리 화진화장품의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우리 화진에서 지난 1997년부터 해마다 특정 목표치를 달성한 지점장들에게 운전기사가 딸린 빨간색 그랜저를 제공하고 있다. 이른바 빨간 그랜저로 상징되는 이 포상제도는 화진이 주는 최고의 영예이다. '빨간 그랜저의 주인이 되라!' 빨간색 그랜저는 우리 사원들에게는 꿈이요, 선망의 대상이다. 이것은 판매사원들에게 성취 의욕을 북돋아 주고 동기 부여를 위해 만든 상징적인 제도이기도 하지만 빨간 그랜저를 탄다는 것 자체가 많은 수입과 지위를 인정받고 성공의 길로 들어섰음을 입증해 주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이 빨간 그랜저를 타는 성공 신화의 주인공들이 20여 명으로 늘어났다. 나는 사원들에게 말한다. 누구나 언제든지 빨간 그랜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신화는 누가 만들어 주거나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고. 우리 화진이 그 어려운 시기를 헤쳐 나오면서 재기에 성공할 있었던 큰 원동력은 나 혼자 많이 벌고 성공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성공하자는 경영철학 때문이었다. 사람을 움직이는 가장 강한 힘은 진실과 감동이다. 진실과 감동처럼 사람에게 기대 이상의 에너지를 분출시키게 하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벼랑 끝에 나를 세워라
당신의 목숨을 담보로 잡혀라아니, 그렇지 않아도 벼랑 끝에 와 있는데 나를 벼랑 끝에 세우라니? 떨어져 죽으라는 말이야?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다. 어쩔 수 없는 환경에 의해서 떠밀리듯 벼랑 끝에 선 것과 죽기 살기를 각오하고 내 스스로를 벼랑 끝에 세우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세상의 거칠고 고된 파도에 떠밀려 벼랑 끝까지 온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그 낭떠러지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나무뿌리 하나라도 잡고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친다. 내 손을 잡아 줘! 나 떨어져 죽을 것 같단 말이야! 사람 살려! 세상은 냉혹해서 아무도 손을 잡아 주지 않는다. 그 손을 잡아 주었다가는 자기도 같이 추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도와 달라고 손을 내밀면 부모나 형제도 도와 주지 않는다. "미안하다. 나를 원망해도 어쩔 수 없어! 살 사람이나 살자!"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더 이상 갈 곳 없는 막다른 상황에서 오히려 자신을 벼랑 끝에 세우고 운명에 정면 승부를 거는 사람은 그 마음가짐이 다르고 눈빛에서부터 비장함이 넘친다. '운명아 비켜라! 아무리 네가 나의 길을 가로막더라도 나는 너를 밟고 지나가야겠다! 나에게 더 이상 퇴로는 없다! 너에게 결코 굴복할 수 없다!' 이러한 각오 앞에서는 운명도 길을 비켜줄 수밖에 없다.지금 내가 누리는 것은 내 목숨을 담보한 대가세일즈맨은 아무도 간섭할 사람이 없는 1인 자유기업가이다. 나는 1년 2개월 동안 판매가방을 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