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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에 나를 세워라

박형미 지음 | 맑은소리
도전과 성공의 트레이닝



대학교수도 대통령도 팔아야 산다




대체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일즈라는 직업 자체를 폄하한다. 세일즈란 산전수전 다 겪고 실패란 실패는 다 경험해 본 사람이 막바지에 할 것이 없어 택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아직도 강한 것이다. 심지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노는 사람까지도 아는 사람이 세일즈를 하면 오죽 할 일이 없어서 세일즈를 하느냐는 듯이 우습게 보는 어처구니없는 사회 풍조가 만연해 있다. "세일즈를 한다고? 거, 아는 사람한테 괜히 피해나 주지 마!"

이처럼 우리나라는 정도에서 벗어난 일부 다단계 회사와 피라미드 판매회사 때문에 세일즈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거나 잘못된 경우가 많다. 하지만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오래 전부터 세일즈가 최고의 직업으로 각광받아 왔으며 세일즈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세일즈맨이라는 직업 자체를 무척이나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사실 우리 주위를 봐도 세일즈가 아닌 것은 하나도 없다. 대통령도 재벌 총수도 외국에 나가면 스스로 세일즈맨임을 자처하면서 한국과 한국 상품을 판다. 국회의원도 유권자들에게 표를 달라며 자신의 능력을 세일하고 동네 햄버거, 치킨가게는 물론이고 요즘은 약국이나 병원도 자신들을 적극적으로 세일하지 않으면 환자들이 떨어져나가 문을 닫게 되는 형국이다. 변호사들이 남아도는 세상이라서 사법고시에 합격하고도 세일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일즈를 우습게 보는 이유가 무엇인지 나는 묻고 싶다.

세일즈, 판매는 곧 경영이고 경영은 판매이다. 판매 없는 경영은 결코 있을 수가 없다. 우리 나라 젊은이들은 아직도 기업의 가치를 자본금으로만 평가하고 대기업만 선호하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나는 이것이 참 안타깝다. 사실 크고 원대한 꿈과 목표를 가진 젊은이일수록 비교적 안정적인 대기업에서 일하기보다 중소기업에 들어가 세일즈를 하면서 세상과 부딪쳐서 경험을 쌓고 자신을 발전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기서 세일즈를 단순히 판매로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도 잘못된 생각이다. 세일즈는 판매임과 동시에 치밀한 조직의 관리이기도 하다. 판매에 자신이 붙고 실적이 오르게 되면 당연히 조직이 늘어나게 돼 있고, 능력 있는 세일즈맨은 이런 조직까지 관리하는 능력을 절로 갖추게 된다. 기업가가 되고 싶으면 세일즈부터 배워라. 주식회사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조직을 이끄는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야 국가 경제를 망치는 일이 없을 테니까 말이다.

할 수 없다는 정신적인 불구에서 벗어나라



내가 15년 동안 세일즈를 하고 교육을 하면서 가장 마음 아프게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우리나라에는 정신적인 불구자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신체적 장애보다 더 큰 문제가 바로 이 정신적인 장애인데, 이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변화와 도전을 즐기는 적극적인 삶의 자세보다는 부족한 대로 현실에 안주하려는 소극적 삶의 태도가 만연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21세기의 퇴보와 도태는 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제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이것이 내 평생직장이라면서 직장생활에 안주하고 있는 직장인들을 나는 증오한다!

오늘날과 같이 모든 것이 급변하는 시대에는 무엇보다 변화의 패러다임으로 자신을 무장해야 한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무섭게 변하고 있는데 시한이 만료된 옛 사고에 집착하면 눈 깜짝할 사이에 낙오되거나 도태되기 마련이다.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 내가 지금 갖고 있는 것만을 지키면서 살려고 했다가는 어느 순간 모든 것을 다 잃고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사람이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변화와 도전을 싫어한다는 것은 급여 체계만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한국인들은 기본급이 많은 것을 선호한다. 직장을 선택할 때도 대부분 기본급이 많고 적음에 따라 직장 자체의 좋고 나쁨을 평가한다. 기본급을 많이 받고 현실에 안주하겠다는 발상과 기본급을 적게 받는 대신 내가 열심히 일을 해서 성과급을 더 많이 가져가겠다는 인식의 차이는 자신은 물론이고 회사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지 자명한 일이 아니겠는가.

상류로 살 것인가 하류로 살 것인가



내 인생의 업그레이드는 내가 만들어 나가는 것




돈은 중요하다. 돈이 없으면 사회생활에서는 물론이고 부모 형제, 친척, 친구, 심지어 가정에서도 아내와 자녀들에게 무시당하는 세상이다. 심지어 돈이 없으면 결혼도 못하는 세상이다. 남자는 물론이지만 여자도 돈이 없으면 혼자 살 각오를 해야 한다. 미안하지만 사랑이 밥을 먹여주는 시대는 지나갔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누가 돈을 좀 벌었다고 하면 일단 색안경부터 끼고 본다. "저 사람, 어떻게 해서 그렇게 돈을 벌었지? 무슨 도둑질한 것 아냐? 정상적인 방법으로 돈 번 사람 있으면 어디 한번 나와 보라고 그래!"

물론 부정한 방법이나 비정상적으로 돈을 번 사람이 적지 않기 때문에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부자들이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을 부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경멸하고 미워할 필요는 없다. 특히 열심히 노력해서 많은 돈을 번 부자들의 경우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부자들이 존경을 받는다. 그들은 많은 돈을 벌어 고급 주택에 살고, 고급 자동차를 굴리고 다니면서 남들보다 휠씬 더 많은 세금을 내는 애국자들이다. 열심히 일해서 떳떳하게 번 돈이니 쓰고 싶은 대로 쓰고 또 자랑스럽게 각종 기부를 통해 사회에도 환원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나라 서민들은 비록 셋방에 살아도 적은 돈이나마 불우이웃 돕기 성금만큼은 부자들보다 더 열심히 낸다. 그러면서 만일 부유층으로 보이는 값비싼 모피 코트를 입은 여자가 구세군 자선냄비 곁을 그냥 지나치기라도 하면 속으로 비난을 한다. 그러나 그녀는 억울하다. 당장 눈에 보이는 천 원짜리 한두 장이 아니라 그녀는 자신이 잘사는 만큼 서민들보다 훨씬 더 많은 세금을 내고 있고, 자기가 낸 그 세금은 더 많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가치있게 쓰이고 있다. 그런데도 인정 없고 자비심 없는 사람이라고 도매금으로 취급받는다. 없는 사람들은 이런 부자들을 멸시할 것이 아니라 먼저 부자가 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닐까?

성공하려면 먼저 나를 바꿔라



사지가 멀쩡한 사람은 그것만으로도 축복이다




우리 주변을 보면 사지가 멀쩡한데도 일하지 않고, 놀고먹으려 하는 사람, 일하기가 힘들고 지겨워서 못해 먹겠다는 사람, 삶의 의욕을 상실한 사람 등 별의별 사람들이 많다. 나는 이런 사람들에게는 꼭 시간을 내서 가까운 종합병원을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이라고 하지 않는가. 병으로 고통을 받고 누워있거나 임종을 앞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살아 있다는 자체가 감사하고 사지가 멀쩡하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죽으면 금방 썩어 흙이 되고 물이 될 육신인데 무엇이 무섭고 아까워 일을 하지 못하는가? 역전에 나가 노숙만 하지 않았다 뿐이지 사지가 멀쩡하면서도 정신상태는 이런 노숙자나 다름없는 무기력한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는 너무 많다.

멀쩡한 육체를 가지고도 나는 불행하다거나 일하기가 싫어 죽겠다고 하는 말은 노인이나 장애인, 평생을 병상에서 누워 지내는 중환자들에게 뺨을 맞고도 남을 소리이다. 안 되면 고향에 내려가서 농사나 짓겠다고? 천만의 말씀! 농사는 아무나 짓나? 그런 정신상태를 갖고 할 수 있는 일은 이 세상에 한 가지도 없다. 당장 공사판에 나가 일을 해 보라. 그 나태해진 육체를 철저하게 한번 혹사시켜 보라. 틀림없이 희열과 환희를 느낄 것이다. 당신의 육체는 당신이 그렇게 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나는 월 1억짜리 여강사, 괜찮은 트레이너



유능한 트레이너 밑에 유능한 세일즈맨이 있다




돌이켜 보면 화진에서의 나의 인생은 교육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도 없다. 지난 15년 세월 가운데 판매가방을 둘러매고 현장을 뛰었던 1년2개월을 뺀 나머지 시간들은 자나깨나 오로지 교육뿐이었던 것 같다. 나는 심지어 밥 먹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도 아껴가며 사원들의 교육에 모든 것을 쏟았다.

지사장 시절부터 부회장이 되기 전까지 나는 매일같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침 7시 30분이면 관리자 미팅을 했고, 9시면 중간관리자 미팅, 그리고 10시면 사원 미팅, 11시면 그 주 신입사원들에 대한 차별화 교육을 실시했다. 이때는 아침, 점심을 먹는 시간이 따로 없었다. 교육이나 상담이 예정보다 조금이라도 길어지면 짬을 내서 빵과 우유로 간단히 때우는 게 다반사였다. 오후 6시까지 사원들과 개별 미팅을 끝내고 나면 관리자 석회가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퇴근하자마자 집에 가서는 언제나 밤이 깊도록 홈 미팅을 했다. 그야말로 내 지신은 간 데 없고 오직 교육에 미쳐 파묻히다시피 살아온 세월이었다.

내가 실시하는 교육을 통해 사원들의 능력이 개발되고 그로 인해 그들이 얻는 성취의 기쁨이 곧 나의 기쁨이 되어 고스란히 내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한 개인에게는 인생에서 어떤 트레이너를 만나느냐가 자신의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거스 히딩크 같은 명감독 아래에서 뛰어난 선수가 탄생되었듯이 세일즈맨들도 좋은 트레이너 밑에서 강한 훈련을 받아야만 뛰어난 프로 세일즈맨으로 태어난다. 내가 화진에서 훈련을 시킨 사람들 가운데는 여성의 몸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몸값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 정도면 나도 꽤 괜찮은 트레이너가 아닐까?

10, 20년 전 대학 졸업장은 휴지통에 버려라



IMF를 전후해서 나는 주 이틀, 두 시간씩 시간을 만들어 여러 대학교 경영대학원의 최고경영자 과정(AMP)을 다녔다. 사원들 교육에만도 몸이 열 개라도 부족했던 내가 시간을 쪼개서 악착같이 학교에 다닌 것은 내가 모르고서는 사원들을 가르칠 수가 없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우리 화진의 교육생과 신입사원 가운데는 갓 대학을 졸업한 젊은 남녀에서부터 전직 교수와 법조인, 기업가, 박사, 심지어 미국에서 MBA를 받은 사람까지 수두룩했기 때문에 하나라도 더 새로운 지식으로 내 자신을 무장하지 않으면 이들을 가르칠 수 없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하루에도 수백, 수천을 교육하는 명색이 강사인 내가 지식적으로든 사고방식에서든, 트렌드나 마인드든 뭐든 교육생들보다 더 많이 알고 앞서가지 않으면 그들의 인생을 리드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광속보다 더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10년 전, 20년 전에 대학 졸업한 것을 가지고 대학을 나왔다며 그때 배운 지식으로 남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처럼 어불성설인 것도 없다. 10,20년 전에 받은 대학 졸업장은 이미 졸업장이 아니다. 내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가운데서도 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을 다닌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요? 그거 인맥 만들려고 다니는 거 아닙니까?" 물론 그런 목적으로 다니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오직 사원들에게 새로운 지식을 하나라도 더 가르치려고 열심히 다녔다. 그렇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강의 시간에 강의 내용을 나처럼 꼼꼼하게 메모하는 사람도 솔직히 없었다. 이렇게 강의를 받고 나면 나는 늘 부자가 되어 돌아와 사원들을 교육했다.

또한 사원들에 대한 나의 교육은 평생을 해야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한 학교가 끝나면 다른 학교로 옮겨 다니면서 계속해서 새로운 지식을 습득했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학벌도 아니고 인맥도 아니었다. 내게는 무엇보다도 내가 배워서 시대를 앞서가야 하고, 우리 조직을 리드해야 한다는 분명한 목적과 사명감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공부했고, 앞으로 죽을 때까지도 공부는 계속될 것이다.

내 생각이 머무는 곳에 내 인생이 있다



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1989년 봄, 나는 인생의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그때 내 나이 스물아홉. 남편의 잇따른 사업 실패로 불어난 빚은 우리 부부가 평생을 갚아도 절대 갚을 수 없는 엄청난 금액이 되어 있었고, 여기 저기서 얼마나 빚을 끌어다 썼는지 더 이상 도와줄 사람은커녕 손 벌릴 데도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은 다 자란 내 딸아이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사실 난 그 애를 임신했을 때 낳아 키울 대책이 없어 유산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그 비용조차 없어 낳아야 했을 정도로 모든 게 막막했다. 게다가 마구잡이로 끌어다 쓴 사채를 갚지 않는다고 밤이면 사채업자들이 집을 찾아와 돈을 갚으라고 협박했다.

천길 낭떠러지 끝에 선 기분이 과연 이럴까? 너무나 막막했다. 아무리 둘러봐도 이 세상에는 나 외에 부모도 형제도 친척도,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자존심이 남달리 강했던 나는 몇 번이나 자살을 해 버릴까도 생각했지만 차마 그럴 용기는 없었다. 그렇다면 살아야 했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질식할 것 같은 현실에서 살아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궁리 끝에 나는 취직이라도 하려고 신문광고를 뒤적였다.

나는 결혼하기 전까지만 해도 별다른 고생이라고는 모르고 자란 평범한 직장여성이었다. 1981년부터 모 에어 카고 항공사에서 수출입 화물의 신용장과 선하증권을 취급하는 업무를 맡아 6년 동안 직장생활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결혼하고 나서 일을 쉬었다고 하더라도 직장생활쯤이야 언제 어디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그런데 결코 잊을 수가 없는 그해 3월16일. 신문 구인란에 관리직 직원을 채용한다는 조그만 광고가 눈에 띄었다.

〈관리직 사원 모집. 월급 25만원〉 나는 앞뒤를 재고 말고 할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이 짧은 몇 줄의 광고가 내 인생에서 엄청난 전환점이 되리라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 막상 회사를 찾아가려고 하자 차비가 문제였다. 기가 막히게도 그때 내 호주머니 속에는 시내버스 토큰 하나가 없었다. 나는 옆집 아줌마에게 토큰 세 개를 빌렸다. 그것이 그때 나의 전 재산이었다.

화진과의 운명적인 만남



이튿날 아침 일찍 이력서 한 장을 달랑 든 채 부푼 가슴으로 시청 뒤편에 있는 회사를 찾았다.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 어떤 회사인지도 모르고 오직 관리직 사원을 모집한다는 말만 믿고 찾아간 것이다. 낡고 오래된 건물의 비좁은 계단을 따라 2층에 있는 회사로 들어서니 사무실 안에 로션과 크림 같은 화장품들이 진열돼 있었다. 나는 그때 그곳에서 현재 우리 화진그룹의 강현송 회장님을 처음 만났다. 회장님과 나의 인연은 이렇게 해서 시작되었다. 이런 사실을 잘 모르는 사람 중에는 내가 그룹의 부회장으로 있으니까 회장님과 나 사이가 무슨 친척인 줄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때까지만 해도 회장님과 나는 그날 처음 만나 성도 이름도 모르는 생면부지의 사람이었다. 면접이 끝나고 함께 입사를 지원했던 몇 명의 여성들과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그 첫날 교육은 회장님이 직접 하셨는데 교육 내용이 뭔가 참 이상했다. 회사 소개나 자랑을 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업무에 대한 교육도 아니었다. 회장님은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지금 다들 어려우실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일을 해 돈을 벌려고 찾아오셨지요? 하루라도 빨리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고 가난한 내 자신이 무척이나 원망스러우시죠?" 우리는 회장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그런 얘기를 꺼내는지 몰라 궁금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회장님의 말씀을 듣고 나는 커다란 쇠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의 모습은 모두 여러분 각자가 만든 생각의 그림자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서 있는 자리, 살아가는 환경, 모두가 여러분이 원한 것들뿐입니다. 원했든 원치 않았든 여러분의 정신, 생각, 사고가 지금의 여러분을 만든 것이지요. 이 세상에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습니다!"

'모든 것은 내 탓'이라는 한마디에 깨어진 고정관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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