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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대폭발

손진석 지음 | 플랜비디자인


돈의 대폭발

손진석 지음

플랜비디자인 / 2025년 10월 / 344쪽 / 20,000원





돈이 폭발한다



2020년대 5년간 늘어난 통화량만 1230조 원


돈이 흔해지고 있다. 세상에 돈이 넘쳐나는 것 같다. 부자가 많다. 2020년대 들어서 더 그런 것 같다. 특히 40대 이상이라면 어린 시절과 비교해 돈이 무척 흔해졌다고 여길 것이다. 원래 거대한 부는 이병철, 정주영처럼 커다란 기업을 일으켜 수천, 수만 명을 고용해야 가능하다는 일종의 고정관념이 있었다. 산업화 시대 관념이었다. 요즘은 이게 깨졌다. 조용히 방 안에서 키보드나 스마트폰을 활용한 자본 거래로 수십억 원을 벌어들이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디지털 자본가’들이다.

돈이 얼마나 불어나고 있을까. 통화량은 쉽게 말해 화폐량의 총합이며, 집계할 때 가장 널리 쓰는 지표가 M2다. M1은 현금과 요구불예금 등 가장 유동성이 높은 자산을 말하며, M2는 현금에다 쉽게 현금화할 수 있는 단기 금융상품에 담긴 돈을 합친 개념이다.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2024년 연중 평균 M2는 4045.6조 원이다. 1986년에는 47.9조 원이었다. 단순 산술하면 38년 사이 84.5배 증가했다. 2025년 5월 평균 M2는 4279.8조 원이다. 2024년 평균치와 비교할 때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아 230조 원 넘게 늘었다는 뜻이다. 시중에 풀린 돈의 양은 줄어들기는 쉽지 않다. 1986년 이후로 M2는 한 번도 줄어든 적 없다. 1986년부터 2024년까지 M2는 연평균 12.4%씩 늘었다. 1986년에 가진 돈이 1억 원이었다면 이런저런 투자를 거쳐 38년이 지난 2024년에는 84억 원대로 불려 놓았어야 통화량 증가 속도만큼 자산을 불린 사람이라는 뜻이 된다.

21세기가 시작된 2000년 우리나라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675조 원이었다. 이 해에 M2는 691조 원이었다. M2가 GDP보다 불과 2.3% 많은 정도였다. 이때는 ‘GDP=통화량’에 근접한다고 볼 수 있었다. 2010년 GDP는 1379조 원, M2는 1639조 원으로 M2가 GDP보다 18.9% 더 많아졌다. 2020년에 M2는 3070조 원이 됐고, GDP는 2000조 원을 갓 넘은 2058조 원이었다. M2가 GDP 대비 49.2%나 많아졌다. 2024년 M2는 4045조 원으로 불과 4년 사이 975조 원이나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코로나 사태 극복을 위해 대출 금리를 낮춰 시중에 엄청난 돈이 돌게 하고, 정부가 지원금을 뿌리고 예산 집행을 크게 늘린 결과다. 2024년 GDP는 2549조 원으로서 M2보다 약 1496조 원이나 적었다. 경제가 성장하는 속도보다 돈이 불어나는 속도가 훨씬 가파르다는 게 너무나 분명하다. 그만큼 돈의 가치는 빠르게 하락한다.

돈이 흔해졌지만 경제성장은 더디고 부동산 가격만 많이 오르는 ‘유동성의 함정’에 빠져 한국 경제는 허우적거리고 있다. 그 와중에 영리한 개인들은 저렴한 비용에 돈을 끌어와 자산을 크게 늘렸다. 돈이 흔해진다는 느낌, 돈이 한쪽으로 쏠린다는 기분, 정부나 한국은행이 막대하게 풀려 있는 유동 자금을 쉽게 감당하지 못한다는 분위기는 모두 확실한 숫자상 근거가 있다. 21세기 ‘뉴 노멀’이다.

돈이 흔해진 이제는 ‘아껴야 잘 산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을 듣기가 쉽지 않다. 적금 통장으로 오랜 시간을 들여 거북이처럼 꾸준하게 돈을 버는 게 정석이었다면, 이제는 비트코인으로 목돈을 단시간에 버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거대한 양의 돈을 요령 있게 투자해 내 주머니에 주워 담을 수 있느냐가 중요하게 됐다. 돈의 폭발을 빼고 2010년대 이후 인간 사회를 이야기할 수 없다.

부자들이 ‘통화량 증가’에 관심 쏟는 이유


세상에 돈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지만 정부나 한국은행은 통화량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은 다르다. 강남에 부동산이 있는 사람, 미국 주식에 통 큰 투자를 한 사람들은 광의의 통화량인 M2 지표를 살핀다. 그들은 자신들의 자산 가치 상승 속도가 M2 증가 속도보다 높아지게 만들려고 부단히 애를 쓴다.

1990년대 이전까지는 한국은행이 총통화량을 관리했다. 그러나 한국은행은 1998년 통화량 목표제를 폐지해 전체 통화량을 조절하는 방식을 폐기했다. 이후 금리 중심의 통화 정책을 펴고 있다. 한국은행이 통화량을 직접 컨트롤하지 않게 된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좀 더 정확히는 통제하지 못하게 됐다고 봐야 한다. 일단 금융 환경이 변화해 2금융권이 급성장했다. 또 오래전에는 정부에서 사실상 시중은행의 금리를 쥐락펴락했지만 1990년대 초중반 금리 자유화를 시행했다. 자본시장 개방으로 해외에서 돈이 대거 흘러 들어오고 나가는 것도 직접 통화량을 조절하기 힘들어진 이유다. 결국 직접적인 통화량 조절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1세기 들어서는 중앙은행이 물가 목표치를 고려해 언제 얼마나 기준금리를 올리고 내리느냐가 사실상 통화 정책의 거의 전부가 됐다.

통화량 증가를 설명하는 대표 공식은 미국 경제학자 어빙 피셔가 주장한 교환 방정식이다. 화폐 수량설이라고도 한다. 피셔는 통화량(M)과 화폐유통속도(V)를 곱하면 물가 수준(P)과 상품 거래량(T)을 곱한 것과 같다고 했다. MV=PT라는 이 공식은 화폐의 흐름과 실물 경제 활동 간의 관계를 나타낸다. 상식적으로 돈의 양(M)이 시중에 늘어나면 물가(P)가 올라야 맞다. 그런데 실물 경기가 나빠 금전 거래가 위축돼 돈이 돌아다니는 속도(V)가 느려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럴 때는 통화량(M)이 확 늘어나더라도 물가가 별로 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정책 당국에서는 경기를 살리려고 할 때 물가가 확 튀어 오르지 않는 선에서 금리를 낮추거나 나랏돈을 퍼부어 통화량을 늘리는 처방을 쓰게 된다.

미국이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한창 돈의 양을 늘리던 2010년대 초반 상황을 가져와 설명을 해보자. 2008년에서 2013년까지 5년간 미국에서 통화량(M2)은 매년 7%의 속도로 증가했다. 반면 경제 활동 생산물, 즉 실질 GDP가 늘어나는 연평균 증가 속도는 2%에도 못 미쳤다. M2를 연평균 7% 속도로 늘렸다면 인플레이션도 7%쯤 돼야 맞다. 하지만 실제로는 5년간 물가 상승률이 꾸준히 2%를 밑돌았다. 화폐 유통 속도가 현저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통화량이 엄청나게 늘었는데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돈이 도는 유통 속도가 줄어든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경기 침체 현상이 오래 지속되며 실물 경기가 살아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불어난 통화량을 활용해 가상화폐, 주식 등 광범위한 개념의 금융 상품에 거액을 투자한 다음 그대로 두거나, 비싼 부동산을 팔아 벌게 된 큰돈을 금융계좌에 묵혀두는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건 전자보다는 후자다. 통화량이 지속적으로 불어나면 돈 가치를 떨어뜨린다. 그러면 흔해지는 현금을 갖고 있을 이유가 없다. 그래서 발 빠르고 돈 많은 사람들은 빚을 내서라도 부동산이나 주식 등 실물 자산을 늘려가게 된다. 돈이 흔해질 때 아파트값, 땅값이 오르고 주식시장에 돈이 쏠리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미국에서는 통화량과 증가 속도가 거의 같은 지표가 두 가지 나타난다. 첫째, 자산 규모 상위 0.1%가 보유한 순자산(전체 자산에서 빚을 뺀 것)의 합계가 늘어나는 속도가 M2 증가 속도와 장기간에 걸쳐 거의 비슷하다. 둘째, 집값이 상승하는 속도 역시 M2 증가 속도와 긴 시간에 걸쳐 비슷하며, 2010년 이후로는 놀랄 만큼 비슷한 속도로 증가한다.

결과적으로 돈의 양을 늘려도 경기가 나아지는 효과는 미미한 채 실물 자산이나 금융 자산은 값이 큰 폭으로 뛰게 된다. 구조적인 저성장 국면에서는 저금리로 돈을 돌게 해봤자 대부분 주식이나 부동산으로 가게 되므로 통화 정책이 성장을 끌어올리는 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경기는 나쁘지만 돈을 융통하기는 쉬우니 부자들의 주식과 부동산 가격은 빨리 뛰고 결국 빈부 격차가 커진다.

따라서 시중 금리가 낮아져 ‘이지 머니’가 늘어나면 이걸 활용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게 현명하다. 정부나 중앙은행이 돈을 풀겠다는 신호를 보내면 거대해지는 통화량의 파도를 잘 타고 넘기 위해 바다로 나가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투자 위험은 스스로 감수해야 한다. 너무 무리하게 파도를 타면 익사할 확률이 높아진다. 21세기에 전반적인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일하고 저축하는 것보다 금융 투자나 부동산 투자를 잘했을 때 과실이 커졌다. 미국도 그렇고 한국도 그렇고 이런 ‘경제의 금융화’가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다. 노동의 가치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지금은 2022년 글로벌 인플레이션으로 금리가 오르면서 ‘쉬운 돈’의 열기가 코로나 사태 무렵보다는 진정됐다. 하지만 한번 벌어진 자산 격차는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게다가 경기 하강으로 2024년부터 다시 주요국들이 금리를 낮추고 있다. 한국은행도 마찬가지다. 빠른 속도로 부풀어 오르는 ‘돈의 바다’에서 우리는 살아남아야 한다. 우리는 안다. 경제학자나 금융회사 종사자들이라고 해서 재테크에 반드시 능숙하지 않다는 것을. 화폐 교환 방정식을 만든 어빙 피셔는 주식 투자로 전 재산을 날렸다.



대한민국은 ‘대출 잔치’ 중



한국인은 어쩌다 ‘대출 공화국’에 살게 됐나


대한민국에서는 본격적인 저금리 시기에 접어든 이후 대출이 확 늘어났다. 대출이 늘어나 가계 빚이 불어났고, 이는 통화량 급증으로도 연결되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4년 말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494조 원이었다. 가계부채는 각 가정이 금융회사로부터 이끌어 낸 가계대출과 신용카드·할부금융으로 외상을 쓴 액수를 합친 개념을 말한다. 가계부채 총량은 꾸준히 늘어나 2024년 말에 1926조 원에 달했다. 20년 사이에 3.9배 늘었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다.

앞에서 우리는 경제성장 속도보다 통화량 증가 속도가 현저히 빠르다는 걸 확인했다. 한국은행 자료를 분석하면, 2002년에는 통화량이 813조 원이었고, 가계부채는 465조 원이었다. 통화량 대비 가계부채의 비율이 56.4%였다. 그런데 이 비율은 시간이 가더라도 큰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 2021년에도 54.3%였을 정도로 가계부채는 통화량과 비율을 맞춰가며 오랜 기간 55% 안팎에서만 움직였다. 통화량 증가, 부동산 가격 급등, 가계부채 급증이 한 궤를 타고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걸 증명한다. 그야말로 ‘부채의 축(Axis of Debt)’이 작동한다는 얘기다.

중요한 건 상대적인 속도다. 가계부채가 늘어나는 속도는 통화량이 불어나는 속도와 거의 엇비슷한 반면, 경제성장 속도는 훨씬 느리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이 대목을 잘 봐야 한다. 금리와 맞물린 통화량 변화는 비중 있게 고려하지 않으면서 ‘왜 경제성장 속도나 내 월급이 오르는 속도보다 집값이 더 빨리 오르냐’고 한탄하면 자산 불리기 대열에서 뒤처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렇다면 왜 한국인들은 대출을 많이 내서 돈의 양을 크게 늘리게 됐을까. 당연히 저성장시대로 가면서 금리가 뚝 떨어진 게 기본적인 토양을 마련했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대출을 대하는 심리적 태도가 2010년대부터 크게 바뀌었다. 이 이야기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전세 제도에서부터 풀어내야 한다. 원래 전세는 기회비용을 포기하면 되는 제도다. 그런데 2008년 무렵부터 무주택 서민들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정부 독려 아래 은행들이 전세대출 상품을 출시하면서 심상치 않은 변화가 생겼다. 모자라는 전세금을 대출로 융통하는 사람들이 대거 늘어나면서 전세대출 이자를 갚는 세입자들이 늘어났다.

그러자 세입자가 전세대출을 받아오면 더 높은 전세금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집주인들이 알게 됐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처음에 전세대출이 요긴하다 느꼈지만 이내 ‘매달 이렇게 전세대출 이자를 내느니 차라리 집을 사서 내 집을 갖고 주택담보대출 원리금을 갚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이런 원리로 ‘21세기 한국의 발명품’인 전세대출은 전세금을 높이고 집값을 밀어 올리는 요인이 됐다. 그뿐 아니다. 시나브로 월세 비중도 점점 늘어났다. 2025년 1~2월 기준 전국 세입자 가운데 61.4%가 월세를 산다.

매달 주거를 위해 쓰는 돈이 늘어난 건 세입자뿐만이 아니다. 집주인들도 그렇다. 국내에서는 2010년대 중반 이전에는 일시상환식 주택담보대출이 꽤 많았다. 원금은 갚지 않고 이자만 내다가 집을 팔 때 원금을 전액 상환하고 다른 집을 사는 방식이었다. 이런 일시상환식 주택담보대출이 가계부채를 키운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금융당국의 지침으로 2010년대 중반 이후로는 거의 다 원리금을 매달 갚는 식으로 바뀌었다. 결국 세입자든 집주인이든 주거를 위해 매달 지출하는 현금이 2010년대 이후로 갑자기 확 늘어났다.

이처럼 매달 거주를 위한 비용을 치르게 되면서 뒤늦게 ‘주거 지출의 세계 표준’에 가까워졌다. 4년간 특파원을 하면서 유럽에서 지내보니 다른 나라에서는 주거를 위해 매달 지불하는 현금이 엄청나다는 걸 실감했다. 즉, 월세냐 주택담보대출 원리금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 어느 나라나 평범한 월급 생활자 기준으로 소득의 3분의 1 정도는 주거비로 지출하고 살아간다. 한국인들만 특이하게 다른 시스템을 선택하다가 뒤늦게 비슷해졌다. 결국 2010년대에 들어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거주를 위해 매달 적지 않은 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인식이 완전히 자리 잡았고, 이는 빚을 많이 내는 걸 두려워하지 않게 된 심리적 기제가 됐다. 결론적으로 짧은 시간 사이에 금리는 내리고, 빚 내는 걸 당연시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현상이 동시에 진행됐다. 우리를 ‘대출 공화국’에 밀어넣은 핵심이다.

대출 열풍이 불면서 한국인들은 겁을 상실하고 있다. 영끌이라는 단어는 이제 식상하다. 가장 큰 원인은 부동산 양극화다. “빚을 최대한 당겨와서 더 비싼 물건을 샀으면 집값 상승 폭도 더 컸을 텐데 후회된다.” 서울에 사는 직장인 A씨를 가정해보자. 그의 세전 연봉은 1억 원이고 집을 구매할 수 있는 밑천이 7억 원 있다고 치자. A씨의 소득이라면 주택담보대출이 은행에서 5억 원 정도는 너끈하다. A씨는 5억 원씩이나 되는 대출을 가져오면 원리금을 갚는 게 너무 빡빡할 듯했다. 그래서 3억 원만 대출을 내서 10억 원짜리 아파트를 샀다. 통화량 대폭발의 시대를 맞아 A씨와 같은 선택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후회하고 있다. 3년 후 A씨가 산 10억 원짜리 아파트가 12억 원으로 2억 원 올랐다면, 그가 포기한 12억 원짜리 아파트는 15억 원으로 3억 원이 오르게 마련이다. 비쌀수록 오르는 폭이 더 커지는 현상이 2020년대 들어 분명하다. 그래서 다들 가능한 대로 비싼 걸 사려고 한다. 그 결과 우리는 천문학적인 가계부채를 짊어지고 신음하고 있다.



돈은 미국으로 향한다



세계 시가총액의 48.5% 차지하는 뉴욕 증시


21세기에 돈이 급격하게 많이 풀린 결정적인 이벤트는 뭐니 뭐니 해도 글로벌 금융위기다. 그로부터 15년 이상 지난 세계 정세의 흐름을 살펴보면 결과적으로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의 헤게모니를 오히려 강화시켜주는 기폭제였다. 이 과정에서 우연이 커다란 기여를 했다. 여기서 우연은 아이폰이 등장해 모바일 비즈니스 시대가 열린 2007년과 글로벌 금융위기가 폭발한 2008년이 시기적으로 거의 같았다는 걸 말한다. 이 무렵 금융회사들이 무너지고 전통 산업이 위기에 빠져 대거 정리해고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와 시기적으로 맞물려 탄생한 모바일 비즈니스 분야로 순식간에 인력들이 대거 이동했다. 썩은 살이 도려지는 시기와 새살이 돋아나는 시기가 의도치 않게 겹쳤다고 비유할 수 있다.

그래서 2010년대 이후 해일처럼 불어난 돈은 자연스레 미국을 향한다. 조금 더 정확하게는 뉴욕 자본시장에 전 세계 기관이며 개인의 돈이 쏠린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뉴욕증권거래소(NYSE)와 나스닥을 합쳐 미국에 상장된 기업들의 시가총액의 합계는 62조 2047억 달러에 달했다. 약 9경 원에 달하는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숫자다. 유럽의 27개국의 GDP를 모두 합쳐도 미국 기업 시가총액 합계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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