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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효재의 K-조선 대전환

권효재 지음 | 동아시아


권효재의 K-조선 대전환

권효재 지음

동아시아 / 2026년 1월 / 288쪽 / 18,000원





Ⅰ. 한국 조선업, 불가능을 현실로 만든 50년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전 세계 배의 절반 이상을 생산하던 압도적인 조선업 세계 최강국 미국은 종전 이후 점차 쇠퇴하여 1980년대 이후 군함을 제외한 선박 생산을 사실상 중단했습니다. 반면 한국은 1970년대 현대식 대형 조선소 건설을 시작해 1980년대에 급성장했고 1990년대에는 일본과 세계 1위를 다퉜습니다. 2000년대 중반에는 인도한 배의 숫자와 기술 수준 등을 아우르는 종합 지표에서 한국이 1위를 달성했고 2015년부터 2016년까지 이를 유지했습니다. 이후 양적 지표에서는 설비 규모가 한국의 약 3배인 중국이 1위가 되었지만 단위 설비당 생산성은 한국이 여전히 1위입니다. 한국은 기술 수준이 높은 선박을 주로 생산하며 난이도와 설비 활용도를 종합하면 여전히 압도적 1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메뉴팩처링이 아닌 빌딩 ~ 빨리, 더 빨리! 차별화를 만드는 공정 선행화의 비결


배를 만드는 일은 전통적인 십 빌딩에서 벗어나 이제 레고 블록처럼 각 파트를 쪼개어 만든 뒤 조립하는 블록 공법으로 진화했습니다. 한국 조선업은 이 기법을 고도화하여 높은 생산성을 달성했습니다. 이 공법의 핵심은 철판, 내부 격판, 배관 등 수십 수백 개의 접점이 밀리미터 단위의 오차 내로 들어맞게 하는 데 있습니다. 과거 전통적 방식이 기능공의 감과 숙련도에 의존했다면, 현대 조선업은 만드는 방법 자체를 도면에 내장한 생산도를 활용합니다. 일반 설계도가 무엇을 만들 것인가를 보여준다면, 생산도는 자재 번호부터 조립 순서까지 요리책처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상세한 지식이 담겨 있습니다. 한국은 수백 명의 엔지니어와 컴퓨터 지원 설계 시스템을 동원해 오직 한 척의 배를 위한 수천수만 장의 생산도를 빠르게 양질로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도면이 현실과 완벽히 일치할 수는 없으므로 현장의 제약조건을 반영한 95퍼센트 완성도의 생산도를 빠르게 그려내고, 남은 5퍼센트의 오차나 누락은 현장 숙련 기능공들의 상황에 맞춰 해결합니다. 반면 외국 조선소는 생산도가 있어도 현장 문제가 터지면 공정이 멈추는 경우가 잦아 블록을 병렬로 조립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손실을 보기도 합니다.

한국 조선업의 또 다른 경쟁력은 거대한 설비 규모와 강력한 공급망에서 나옵니다. 배는 철판을 잘라 용접하는 구조물이므로 자재와 설비가 클수록 작업 횟수가 줄어 생산성이 높아집니다. 예를 들어 길이가 100미터인 바지선을 20미터 길이의 블록 10개로 만든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설비가 좋고 제철소가 가까워 폭 5미터짜리 철판을 쓰는 조선소는 20미터 외판을 만들기 위해 철판 4장을 3번만 용접하면 됩니다. 반면 폭 2미터 철판을 쓰는 조선소는 10장을 9번이나 용접해야 합니다. 작업을 할 때마다 위치를 이동하고 장비를 세팅하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철판 폭의 차이만으로도 조립 단계에서 50퍼센트 이상의 생산성 격차가 발생합니다.

한국은 바닷가에 위치한 제철소와 조선소의 지리적 이점을 살려 전용 선박으로 폭 5미터 이상의 넓은 철판을 원활하게 공급받았습니다. 또한 1970년대 100만 톤급 유조선을 겨냥해 파놓은 초대형 도크를 활용해 블록의 크기를 메가, 기가 단위로 키웠습니다. 블록을 더 크게 만들어 쌓아 올려야 할 블록 개수를 획기적으로 줄인 것입니다. 이를 통해 허공에서 진행되는 아슬아슬한 탑재 횟수를 줄임으로써 압도적인 건조 속도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비결은 공정 선행화에 대한 지독한 집착입니다. 선행화란 나중 공정에서 할 일을 앞 공정에서 미리 처리하는 방식입니다. 배의 외형을 다 만든 후 좁은 배 안으로 무거운 배관이나 전선을 들고 가 설치하는 대신, 선체 블록을 만드는 단계에서 미리 부착하는 것입니다. 배의 배관과 전선은 주로 천장에 설치되기 때문에 위를 올려다보며 작업해야 하는데 이러면 허리와 목이 아프고 위험합니다. 그래서 한국 조선소들은 블록을 거꾸로 바닥에 내려 아래를 바라보는 편안한 자세로 배관과 전선 의장품을 깐 뒤, 블록을 다시 뒤집어 결합하는 혁신을 이루어냈습니다. 또한 배가 진수되어 안벽에 계류된 상태에서 작업하면 생산성이 크게 급감하기 때문에, 한국은 설계, 자재, 생산 등 모든 부서가 협력해 도크 단계에서 건조 공정의 90퍼센트 이상을 끝냅니다. 때로는 무리라고 생각될 만큼 선행화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이러한 지독한 선행화 노력이 누적되어, 최초 철판 절단 이후 1년 이내에 배를 완성하여 인도하는 현재의 압도적 실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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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조선업의 성공 비결을 대형 설비에 기반한 블록 공법과 공정 선행화라고 정리하면, 자본과 시스템을 투입해 금방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렵습니다. 블록을 만드는 단계에서 배관 설치 설계가 미리 끝나 있어야 하고, 그 설계대로 가공한 배관 피스가 제때 현장에 도착해 A 블록과 B 블록의 끝이 정확히 맞아야 합니다. 만약 어긋나면 이미 설치한 배관을 뜯어내거나 블록 옆면을 절개해야 하며, 작업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배가 완성되지 못하는 사태도 벌어집니다. 결국 95%의 생산도를 100%로 완성하는 것은 현장 숙련 기능공들의 몫입니다. 1970년대 이후 여러 국가가 조선업에 뛰어들었으나 성공한 사례는 한국과 중국뿐이며, 중국조차 초기 20년간 고전했습니다.

한국이 초기의 어려움을 빠르게 극복하고 비약적으로 발전한 배경에는 고유의 조직 문화가 녹아 있습니다. 거제도와 울산 등 조선소가 있는 도시는 삶과 일이 하나로 엮인 혼연일체의 공동체였습니다. 공정 기한을 못 맞추면 퇴근길이나 사원아파트에서 동료들과 얼굴을 맞대고 대책을 논했습니다. 일정 목표는 반드시 지킨다는 강한 공감대 속에서 조선소의 모든 부서가 현장의 문제를 내 일처럼 처리했습니다.

제가 겪은 사례가 있습니다. 7월 말 여름 휴가 시작 하루 전에 엔진 메이커의 설계 실수로 선박 엔진이 잘못 설치된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인도 일정을 맞추려면 당장 엔진을 다시 들어 올려 각 마운트에 보강 플레이트를 새로 끼워야 했습니다. 휴가 기간 전기 설비 공사로 일주일 내내 조선소 전체 정전이라는 전사 공지가 내려왔지만 상관없었습니다. 여름 휴가 여행을 떠나려던 관리자와 작업반원들이 차를 돌려 복귀했고, 비상 발전기를 동원하여 해당 구역만 전기를 살리고 돌관 작업을 했습니다. 20여 명의 작업자들이 동원돼서 한여름 찌는 듯이 더운 날, 좁디좁은 배 엔진룸에서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휴가를 날려버린 아쉬움과 불평보다 이건 우리 모두의 일이라는 인식이 앞섰습니다.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부산 사투리로 ‘우짜겠노’라는 말처럼 벌어진 일은 같이 해결하며 나아갔습니다. 개인주의가 강한 유럽이나 이해타산이 강한 중국과는 결이 다른, 매일 얼굴을 맞대며 일하는 공동체였기에 가능한 방식이었습니다.

이러한 주인의식과 공동체 문화를 바탕으로 한국은 유조선, 컨테이너선, LNG선, 군함 등을 한 조선소에서 병행 생산하는 다품종 대량생산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고정비가 큰 상황에서 도크를 비우지 않기 위해 안 해본 배나 어려운 배도 가리지 않고 수주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엔지니어와 현장 기능공들은 온갖 종류의 배를 다루며 웬만한 요구 사항은 무리 없이 소화해내는 독보적인 역량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일감이 없을 때도 우리는 공구를 놓지 않았습니다. 스크랩 철판을 자르고 다시 붙여 나무와 꽃, 책상과 캐비닛을 만들며 기술을 연마했고, 주문도 받지 못한 종이배를 상정해 도면을 그리며 쉬지 않고 실력을 쌓아 올렸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숙련 기능공들이 은퇴하고 핵심 인력이 줄어들며 이 선순환 구조가 조금씩 무너지고 있습니다. MZ세대에게 과거식 희생을 요구할 수 없고, 중국과의 가격 경쟁도 치열합니다. 최근 미국이 한국 조선업의 실력을 눈여겨보고 시스템 부흥을 도와달라 요청하고 있으나, 한국 시스템을 그대로 이식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한국 조선업의 독보적 생산성은 특정한 경로와 고유의 문화적, 경제적 맥락 위에서 발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단순히 특정 요소를 복사하여 붙이는 수준을 넘어, 한국 조선업에서 무엇을 어떻게 뽑아내어 이식할 수 있을지 깊이 고민하고 해법을 찾아야 하는 기로에 서 있습니다.



Ⅱ. 네 번의 혁신, LNG선 시장을 장악한 한국 조선업의 비밀




1980년대와 1990년대 한국 조선업은 사원 아파트에 모여 살며 새벽에도 기꺼이 현장으로 뛰어나가던 한국인 특유의 헌신과 공동체 의식, 그리고 우짜겠노 하는 특성이 성공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열심히 일했다는 것만으로 우리가 세계 1위의 기술력과 생산성을 달성하고 계속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핵심 비결은 바로 지속적인 제품 혁신에 있습니다. 우리는 주도적으로 제품 혁신을 추진하여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냈고, 경쟁자들을 멀리 뒤로 떨어뜨리며 높은 매출과 이익을 창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LNG는 천연가스를 섭씨 영하 163도로 냉각한 극저온 액체로, 기체 상태일 때보다 부피가 600분의 1로 줄어들어 대량 운송에 매우 유리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연간 4억 톤이 거래되는 이 극히 온도가 낮은 특수 화물을 운송하는 선박이 바로 LNG선입니다. 2025년 현재 운항 중이거나 건조 중인 LNG선의 4분의 3 이상을 우리 손으로 만들었을 정도로 우리 조선업은 전 세계 LNG선 건조 시장의 절대 강자입니다. 한국 조선업이 현재 양적 규모에서는 중국에 밀려 2위지만, 위기를 선제적으로 파악하고 혁신을 거듭한 결과 기술력과 생산성에서는 여전히 1위이며, 특히 LNG선 분야에서는 20년 이상 독보적인 1위 지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LNG선, K-조선의 활로를 연 혁신의 시작 ~ 일본이 구축한 생태계에 도전장을 내밀다


영하 163도라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온도의 극저온 화물인 LNG는 구조물의 강도를 급격히 떨어뜨려 다루기가 매우 까다롭습니다. 1960년대 말부터 대규모 장기 계약을 통해 LNG를 수입하기 시작한 일본은 노르웨이의 모스 로젠버그 회사의 둥근 구형 탱크 기술(모스형)을 표준으로 채택하여 1980년대 중반 전 세계 LNG선 시장과 거대한 산업 생태계를 완전히 독점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오일쇼크 이후 에너지 안보를 위해 1981년 LNG 도입을 결정했고 초기에는 LNG 관련 기술이 없고 경험이 부족해 모든 것을 일본 기준에 전적으로 의존했습니다. 1983년에 한국가스공사가 설립되었고, 1986년 10월에 첫 물량이 수입되었습니다. 수송은 노르웨이에서 건조된 모스 LNG선을 이용했습니다. 1990년 상공부는 한국 조선업의 미래를 위해 당장은 준비가 안 되어 있더라도 무조건 한국 회사에 LNG선을 발주한다는 국적선 건조 계획을 확정하는 용단을 내렸습니다. 이때 정부가 조를 짜서 물량을 배분하며 철저한 공개 경쟁 체제를 도입하여 국내 조선소 간의 사활을 건 수주전을 유도했습니다.

1990년에 진행된 1차 발주 두 척 입찰에서는 알루미늄 판재를 가공해 압력에 강한 모스 방식의 라이선스를 노르웨이에서 확보한 현대중공업이 두 척을 모두 수주했습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대우조선과 한진중공업은 연합하여 1992년 2차 입찰에 도전했습니다. 재정이 어렵고 건조 공간이 협소했던 두 회사는 힘을 합치는 한편, LNG 탱크 내부 자재가 운항 중 뜯어지는 치명적 사고로 시장의 신뢰를 잃어 1984년 이후 수주가 전무했던 프랑스의 멤브레인 기술을 과감하게 도입했습니다. 각진 철 구조물에 얇은 특수 철판을 붙이는 이 방식은 둥근 모스형에 비해 공간 손실이 적어 같은 가격에 LNG를 약 7% 더 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두 회사는 이 경제성을 내세워 가스공사를 설득했고, 기왕이면 다양한 기술을 확보하여 일본의 독점을 깨려 했던 가스공사의 결단이 더해져 결국 수주에 성공했습니다.

그 결과 1994년 현대중공업이 12만 5천 세제곱미터 용량의 한국 최초 LNG선 현대 유토피아호를 건조했고, 1997년 대우와 한진 연합이 13만 5천 세제곱미터 용량의 멤브레인형 한진평택호를 건조했습니다. 단 7%의 화물 적재량 차이는 훗날 전 세계 750척의 LNG선 중 84%를 멤브레인형으로 바꾸는 엄청난 역전을 만들어냈습니다. 무모해 보였던 이 도전은 후발주자였던 한국 조선업이 1천억 달러 규모의 세계 LNG선 시장을 장악하게 만든 위대한 혁신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천재일우의 기회, 원가 파괴로 움켜쥐다 ~ 혁신, 또 혁신으로! 경쟁에서 태어난 DFDE와 초대형선


1990년대 후반 전 세계 LNG 시장은 미국과 유럽 에너지 회사들이 주도하는 대서양 연안 프로젝트로 중심이 이동했습니다. 당시 시장을 장악했던 일본 조선소들은 척당 2억 5,000만 달러에 달하는 고가의 모스 방식 LNG선만을 고집했고, 길어진 항로에 맞춘 사양 변경 요구에도 부정적이었습니다. 이에 우리나라 조선업계는 크기를 유연하게 키울 수 있고 가성비가 좋은 멤브레인 방식을 채택하며 천재일우의 기회를 잡았습니다.

첫 번째 혁신은 대우조선이 주도한 압도적인 원가 파괴였습니다. 일본이 2억 2,000만 달러까지 가격을 낮출 것으로 예상하고, 과감하게 척당 1억 7,000만 달러라는 파격적인 목표를 세웠습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대량 건조를 염두에 둔 배짱 장사가 주효했습니다. 당시 한국에서 건조한 멤브레인 LNG선은 단 한 척뿐이었음에도, 원재료 업체들을 찾아가 특수 자재를 독점 공급받는 대신 50척 분량을 사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고정 가격과 독점 공급 계약을 맺고 핀란드산 자작나무와 펄라이트 소재 등 수입산 원재료를 싸게 들여왔고, 아예 조선소 인근에 가공 공장을 새로 지어 직접 반제품을 만들며 재료비를 대폭 낮췄습니다. 또한 일본 가와사키와 장기 계약을 맺어 스팀터빈을 저렴하게 공급받았습니다. 그 결과 배 값을 40% 이상 낮추면서도 높은 영업이익을 냈고, 낮아진 선가 덕분에 전 세계 LNG 프로젝트가 활성화되는 선순환이 일어났습니다.

이후 카타르 가스전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대서양을 횡단해야 할 만큼 항로가 길어져 더 낮아진 기화율과 대형화가 요구되었습니다. 이에 삼성중공업이 두 번째 혁신을 주도했습니다. 40년간 쓰던 스팀터빈을 과감히 버리고, 크루즈선에 쓰이던 디젤 엔진과 전기 추진이 결합된 DFDE(Dual Fuel Diesel Electric) 기술을 도입했습니다. 발전기를 여러 대 두고 전기를 만들어 모터로 배를 추진하는 이 방식은 에너지 효율을 40% 중반으로 끌어올렸고, 하루 BOG(Boil off Gas; 증발 가스) 소모량을 150톤에서 110톤으로 줄였습니다. 배의 크기를 13만 5,000세제곱미터에서 15만 세제곱미터로 키우면서도 운항 경비는 오히려 20~30% 절감하여 선사와 에너지 회사에 큰 이익을 안겨주었습니다.

이어 카타르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21만~27만 세제곱미터 규모의 초대형 LNG선을 요구하자 이번에는 현대중공업이 세 번째 혁신을 이끌었습니다. 이렇게 큰 배는 발전기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워 일반 상선에 쓰는 대형 저속 디젤 엔진을 장착했습니다. 관건은 거대한 화물창에서 발생하는 BOG의 처리였는데, 배 위에 초소형 재액화장치를 설치해 BOG를 다시 LNG로 만들어 화물창에 넣는 기발한 방식을 성공시켰습니다.

일본의 조선 3사가 서로 경쟁을 피하고 기존 모스 기술과 스팀터빈에 안주하며 시장을 나눠 가질 때, 한국의 조선 3사는 이처럼 치열한 내부 경쟁을 벌였습니다. 과거의 유산을 과감히 버리고 끝없이 고객의 요구에 부응한 결과, 한국은 일본을 압도하고 세계 LNG선 시장의 절대 강자로 군림하게 되었습니다.

셰일가스 혁명과 LNG 시장 급변 ~ K-조선의 성공 비결과 미래, 다시 혁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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