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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크라이시스

오세균 지음 | 파라북스


차이나 크라이시스

오세균 지음

파라북스 / 2024년 12월 / 400쪽 / 22,000원





서문: 대척점에 서다



‘흑묘백묘’를 버린 시진핑의 야망


중국 ‘개혁개방의 설계사’ 덩샤오핑의 고향은 쓰촨성 광안시 외곽에 있는 셰싱진 파이팡 촌이다. 중국의 4대 직할시 중 하나인 충칭에서 북쪽으로 150km 정도 떨어져 있다. 벽촌이었던 이곳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까닭은 순전히 덩샤오핑 생가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집에서 태어나고 15살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곳에서 만난 관람객들은 하나같이 덩샤오핑에 대한 존경심을 나타냈다. 한 관람객은 문화대혁명 이후 중국은 긴 시간 가난과 쇠잔함에 시달렸지만, 그가 주창한 개혁개방으로 중국은 점점 강해졌고 지금은 세계 강대국 중 하나가 되었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생가 부근에 세워진 박물관 격인 기념관은 덩샤오핑의 파란만장한 삶의 궤적을 담았다. 특히 덩샤오핑이 평소 가장 아끼던 ‘흑묘백묘 화’ <쌍묘도>는 그의 실용주의 사상을 잘 느낄 수 있다. 흑묘백묘론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라는 말로, 1970년대 말부터 덩샤오핑이 취한 중국의 실용주의 경제정책을 말한다.

덩샤오핑의 동상도 고향 생가에 세워진 것보다 선전 롄화산에 세워진 것이 훨씬 더 크고 웅장하다. 덩샤오핑이 1980년 경제특구 1호로 지정한 선전은 거대도시로 성장했다. 상주 인구 1,500만 명에 1인당 소득은 2만 3,000달러로 서울에 맞먹는 도시 규모이다. 선전 시민들은 “예전에 선전은 자그만 어촌에 불과했는데 현재처럼 발전한 것은 덩샤오핑의 지도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선전 중심 푸톈구에 있는 화창베이 전자상가는 선전의 고도성장을 이끈 IT 제조업의 메카이다. 특히 글로벌 기업을 배출할 정도로 IT 생태계가 잘 갖춰져 있다. 이런 창업 분위기 속에 글로벌 스마트폰 업체 화웨이와 샤오미, 중국 내 최대 전기차업체 비야디, 텐센트가 모두 선전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지금의 선전은 덩샤오핑의 개방정책이 가져다준 행운이라고 말한다.

덩샤오핑은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위해 웬만한 부작용을 감수하는 발전 제일주의를 채택했다. 하지만 덩샤오핑의 이런 정책은 결과적으로 부의 불평등을 초래했다. 또한 그는 1989년 천안문 시위를 유혈 진압할 정도로 공산당 지배에 대한 도전을 허락하지 않았다. 덩샤오핑은 생전 “공산당 타도, 사회주의 타도는 완전한 서방화, 소위 공화국을 세우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1997년 2월 19일, 덩샤오핑은 홍콩 반환을 불과 넉 달 앞두고 93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다. 온 중국인의 애도 속에 장례식을 치른 뒤 그의 유해는 인민해방군 수송기에 실려 홍콩 앞바다에 뿌려졌다.

덩샤오핑에 의해 강력히 추진된 개혁개방 정책 30여 년, 중국은 ‘아시아의 병자’에서 세계 제2위 경제대국으로 위상을 높이며 꽃을 피웠다. 중국은 이런 경제력을 바탕으로 외교, 안보 분야로까지 역할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하지만 몸집을 키운 중국이 덩샤오핑이 경계한 양극화와 패권주의로 회귀하는 건 아닌지 전 세계가 긴장하며 주목하고 있다. 실제로 지금 중국은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 재능을 감추고 인내하며 은밀하게 힘을 기른다)’의 길에서 벗어났다.

중국은 미국과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고, 일본과는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으로 긴장 상태에 있다. 2016년부터 우리나라와는 사드 배치로 갈등을 겪고 있다. 덩샤오핑 시대에도 댜오위다오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는 난제였다. 1978년 10월, 중국 최고 지도자로는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했을 때 덩샤오핑은 기자클럽에서 댜오위다오 분쟁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일본 기자는 직설적으로 센카쿠 열도에 대해 양국의 의견이 다른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덩샤오핑은 이렇게 대답했다. “이것을 우리는 댜오위다오라고 부르죠. 이름부터가 다르네요. 이 부분에 있어 양국의 입장이 확실히 다릅니다. 중일 국교 정상화를 이룰 당시, 양측은 이러한 문제를 다루지 않기로 합의했습니다. 중국인의 지혜로는 이렇게 문제를 미루는 방법밖에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문제에 발을 들이면 복잡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몇몇 사람들은 이런 문제에서 트집을 잡아, 중일 관계 발전을 방해하려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양국 정부가 이 문제를 피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문제는 잠시 미뤄둬도 괜찮습니다. 10년을 기다려도 상관없습니다. 우리 세대는 지혜가 부족해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지만, 다음 세대는 우리보다 더 똑똑할 것입니다. 분명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음 세대인 시진핑(習近平) 정부는 센카쿠 분쟁에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미국과는 무역전쟁을 넘어 패권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덩샤오핑의 도광양회 지침을 버리고 유소작위(有所作爲;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하고 싶은 대로 한다)의 길로 나섰다. 시진핑 주석은 평소 중국 고전을 자주 인용한다. 시진핑 주석은 지금 <손자병법>의 “불가승자수야, 가승자공야(不可勝者守也, 可勝者攻也)”를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이길 수 없을 때는 방어하고, 이길 수 있을 때는 공격한다”는 뜻이다. 시 주석은 지금이 미국을 공격할 때라고 보고 있는 듯하다.

중국은 말끝마다 ‘핵심이익’이란 말을 꺼낸다. 이 핵심이익은 합의나 양보가 불가능한 최상위급 국가이익으로 전쟁을 치르고서라도 지켜야 할 이익, 소위 마지노선이다. 그런데 이 핵심이익이 수시로 고무줄처럼 무한정 확장되고 있다. 원래 중국이 처음으로 꺼낸 ‘핵심이익’은 하나였다. 2003년 1월 미국 국무부장관 콜린파월과의 회담에서 탕자쉬안 외교부장이 타이완 문제를 중국의 핵심이익으로 규정했다. 그러다 중국은 티베트 분리 독립 움직임에 맞서 핵심이익을 국가 주권, 안보, 영토 보전, 정치체제, 사회 안정 등으로 규정했다. 그 뒤 남중국해와 같은 해양 영토 문제와 일대일로와 같은 경제적 전략, 사이버 주권과 기술 안보로 범위가 크게 확대됐다.

미중 신냉전에 들어서면서는 경제적 안정과 기술적 독립이 핵심이익에 포함됐다. 특히 반도체 산업과 AI 인공지능 등 첨단 기술과 관련된 분야가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핵심이익이 무한정 확장하면서 미국과의 충돌 접점이 더욱 많아지고 위험은 커지고 있다는 데 있다. 특히 트럼프가 재등장하면서 사소한 충돌이 큰 싸움으로 번질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을 ‘전략적 경쟁국가’이자 수정주의 세력으로 보고 있다. 중국이 자신의 핵심이익과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기존의 국제 규범과 질서를 바꾸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믿으며, 이는 미국의 이익과 민주적 규범에 대립되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전쟁에서 2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바로 패배를 의미할 뿐이다.



트럼프에 대한 기억: 패배의 징후



5G 스마트폰이 쏘아 올린 신냉전의 시작


미중 간 무역전쟁이 한창이던 2019년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 (MWC 2019)에서, 삼성과 화웨이는 자체 개발한 5G 폴더블 폰을 놓고 처음으로 격돌했다. 선진시장 선점을 노린 삼성은 MWC 2019 직전, ‘갤럭시폴드(Galaxy Fold)’를 전격 발표했다. 삼성은 5세대 5G 지원과 함께, 접을 수 있는 디스플레이를 장착한 최초의 상용폰을 내놓은 것이다. 이에 맞서 화웨이도 MWC 2019 개막 하루 전날 5G 통신 기능을 탑재한 폴더블 폰 ‘메이트X(Mate X)’를 공개하며 분위기를 잡아갔다.

언팩 행사 이후 행사장 밖으로 나온 위청둥 화웨이 소비자 사업부 CEO는 많은 중국인들에게 둘러싸여 환호를 받았다. “화웨이 대박!” “중국 파이팅!”을 외치는 중국인들 사이로 국가대표로서의 ‘화웨이’가 부상했다. 화웨이가 초대한 중국의 핵심 고객들과 파트너들은 위청둥 CEO와 엄지척을 하며 자긍심 가득한 표정으로 기념사진 찍기에 바빴다. 중국 매체들은 삼성의 갤럭시 폴드와 비교하며 메이트X가 더 크고 얇은 디스플레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메이트X는 일순간 중국 내에서 자부심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 행사를 끝으로 화웨이는 한동안 5G 스마트폰을 생산하지 못했다. 미국의 제재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2019년부터 화웨이를 블랙리스트에 올려 미국 기업들이 화웨이와 거래하는 것을 금지했다. 특히 5G 관련 기술의 핵심인 반도체와 소프트웨어 공급을 못 하도록 막았다. 또 화웨이는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와 플레이스토어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이로 인해 화웨이는 자체 운영체제인 ‘홍멍 하모니’ OS를 개발하고, 스마트폰과 다른 장치에서 이를 적용하고 있다. 2020년 이후 미국은 화웨이에 반도체를 공급하는 외국 기업들 예컨대 TSMC에게도 미국 기술이 포함된 반도체를 화웨이에 판매하지 못하도록 규제했다. 이는 화웨이의 스마트폰 및 네트워크 장비 생산에 큰 타격을 주었고, 화웨이는 이에 대응해 자체 칩셋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미국의 기술제재로 인한 어려움을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한 상태이다.

2012년 10월 9일 미국 하원 정보위원회는 화웨이가 중국 정부의 스파이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특히 기밀이든 기밀이 아닌 정보든 화웨이와 ZTE(중싱통신)가 중국 정부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마이크 로저스 미 하원 정보위원장은 이 회사들이 미국 주요 기간산업에 장비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과 관련해 미국의 핵심 국가 안보 이해관계를 저해한다고 결론지었다. 로저스 정보위원장은 또한 미국의 주요 통신회사들은 다른 네트워크 제조업체를 찾길 조언한다며, 정부 시스템과 계약업체들 역시 이 중국 회사의 제품을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화웨이가 미국에서 진행하던 네트워크 장비 회사인 3Com 기업 인수 합병이 무산됐다. 트럼프 정부는 2018년 화웨이 장비 사용금지를 명시한 미 국방수권법에 서명했고, 2019년 3월 뮌헨 안보회의에서 안보 동맹국들에게까지 화웨이 보이콧 동참을 요청했다. 마이크 펜스 당시 미국 부통령은 뮌헨안보회의 연설에서, 중국은 법을 통해 중국 정부의 거대 안보기구가 기업들의 네트워크나 장비와 관련된 모든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고 주장하며 2017년에 만들어진 중국의 사이버 보안법을 겨냥했다. 이 법은 중국 내 모든 기업은 정부의 정보 요구에 응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화웨이가 중국의 정보수집 통로가 되고 있을 거란 의혹이 생기는 이유이다.

중국 정부는 법의 취지를 왜곡하고 있다며 맞받아쳤다. 2019년 3월 리커창 총리는 전인대 기자회견에서 “중국 정부가 자국 기업에게 다른 나라에 스파이 활동을 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중국법에 맞지도 않고, 중국의 처리 방식도 아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결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반박했다. 이런 입장 표명에도 화웨이 ‘백도어(backdoor)’ 논란은 잦아들지 않았다. 화웨이의 통신장비가 불법적인 접근 백도어를 통해 민감한 데이터를 유출할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의혹은 여전했다. 미국 정부가 화웨이의 멍완저우 부회장을 체포한 일 역시 표면상으로는 이란 제재 위반을 이유로 들고 있지만 사실상 화웨이에 대한 견제라는 분석이 많다.

지금까지 화웨이 장비에서 백도어가 실제로 발견되었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없지만, 화웨이가 글로벌 네트워크 장악을 통해 앞으로 도래할지도 모르는 사이버 전쟁에서 ‘트로이 목마’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의심과 논란은 여전하다. 일부 보안전문가들은 화웨이의 기술에 대한 불투명성과 중국의 법적 요구사항인 사이버 보안법에서 화웨이가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 보안 논란은 정치적, 경제적 요인과 맞물리며 미중 무역전쟁과 연관되어 더 큰 국제적인 이슈로 발전했다. 이후 화웨이는 최근 몇 년간 미국 정부로부터 지속적인 제재를 받고 있다. 여러 유럽 국가들도 이에 동참해 화웨이 장비 사용을 제한하거나 배제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응해 화웨이는 자체 기술개발과 다른 대체 공급망을 찾는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제재는 미중 신냉전 시대와 맞물리면서 더욱 강력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중국의 동진



러시아 ‘후방’ 자처한 중국


신냉전 먹구름이 짙어지던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전격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러-우 전쟁이 발발했다. 이날 중국 외교부 정례 기자브리핑에 세계의 눈과 귀가 쏠렸다. 러시아의 동맹인 중국의 입장에 따라 확전 가능성도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흔히 ‘P2 동맹’이라 부른다. ‘P’는 중국(People’s Republic of China)과 러시아(Putin’s Russia)의 첫 글자를 따온 말이다. 주로 경제적, 군사적, 외교적 측면에서 서로를 지지하고 협력하는 관계다.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지자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역으로 자신이 질문을 하겠다며 이렇게 물었다. “만약 당신 주변에 두 사람이 다투고 싸우려 한다면, 당신은 그들에게 무기, 총, 칼을 건네겠습니까? 아니면 먼저 그들이 싸우지 않도록 말리고, 객관적으로 충돌의 원인을 파악하여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도와주시겠습니까? 이것은 매우 간단한 이치입니다. 무기로 결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 시점에서는 불에 기름을 부을 것이 아니라, 불을 함께 끄고 평화를 유지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또 “서방 매체에서 사용하는 용어는 ‘침략’인데, 이전에 미국이 유엔의 승인 없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불법적인 단독 군사행동을 취해 수많은 무고한 민간인이 피해를 당했을 때, 당신들은 그때 ‘침략’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까?”라고 되물었다. 러시아 편에 서지 않겠지만 신냉전으로 대립하는 미국의 시각에도 동의할 수 없다는 태도였다.

개전 초기인 2022년 2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전쟁’이 아닌 ‘특별군사작전’이라 명명했다. 러시아 내 전쟁으로 인한 부정적 여론을 완화하고, 국제적으로 덜 공격적인 행위로 묘사하려는 시도였다. 이에 보조를 맞춘 중국도 러시아의 표현을 존중해 ‘특별군사작전’이라고 불렀다. 이는 외교적 민감성을 고려한 균형외교 전략으로 보인다. 이처럼 중국은 러시아의 행위를 비판하지 않으면서도 전면적으로 지지하는 모습도 피하려고 했다. 러우전쟁 1주기인 2023년 2월 24일, 중국은 12개 항의 ‘우크라이나 사태의 정치적 해결에 관한 중국 입장’에서 중립 입장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주요 내용은 주권존중, 전쟁중단, 평화협상 개시이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는 중국의 이런 중립적 입장을 의심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중국이 러시아와의 전략적 관계를 유지하는 동시에 서방국가들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외교적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러시아 무기지원을 놓고 미국과 또 대립했다, 2024년 8월 30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미국 대표가 중국이 러시아에 전쟁도구를 수출하고 있다고 비난한 것에 대해, 겅솽 주유엔 중국대표부 부대표는 “중국은 우크라이나 위기의 조성자가 아니며, 당사국도 아니다. 중국은 충돌 당사국 어느 쪽에도 무기를 제공하지 않았으며, 군용과 민수용으로 모두 쓸 수 있는 이중 물품에 대해 엄격한 관리감독을 하고 있다.”라고 반박했다.

중국이 이처럼 러시아에 대한 공개적인 지지와 지원에 소극적인 이유는 국제 분쟁에 휘말리지 않는 것이 전략적 이익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국제사회에서 고립을 피할 수 있고 서방국가의 제재를 받지 않을 수 있다. 2024년 5월 시진핑 주석이 프랑스를 방문한 자리에서 우크라이나전쟁에 관해 “중국은 우크라이나 위기의 원인 제공자나 당사자가 아니며 협상 촉진을 위해 최선을 다해 왔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러시아를 전략적 파트너로 존중하고 싶지만 경제적인 측면에서 미국과 유럽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길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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