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X의 비밀
브래드 버건 지음 | 미디어숲
스페이스X의 비밀
브래드 버건 지음
미디어숲 / 2024년 4월 / 320쪽 / 22,000원
갈수록 진화하는 우주여행2005년에 발효된 NASA 승인법에 따라 NASA는 ‘달에 지속 가능한 인간 거주지를 개척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구축’하라는 지침을 받아 ‘미래의 화성 탐사를 위한 디딤돌로서 우주 공간에서 탐사, 과학, 상업 활동을 수행하고 미국의 우위를 점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했는데, 새로운 유인 화성 계획에는 컨스털레이션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NASA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에 의거해 우주왕복선 사업을 2010년에 폐지하고, 늦어도 2014년까지는 유인 탐사 우주선인 오리온호를 개발하기로 했다.
만약 순조롭게 진행됐더라면 유인 달 착륙 시기는 2020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몇 가지 임무를 살펴보면, 유인 탐사의 범위를 태양계 전체와 그 너머까지 확장해서 설정했으며, 새로운 로봇 프로그램까지 추가한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임무의 구상대로라면 달은 보다 먼 우주로의 여행과 탐사를 위한 물류 중심으로 거듭났을 것이며, 여기에는 아폴로 임무에 사용된 유인 캡슐을 5미터 크기로 축소한 형태를 바탕으로 설계된 ‘뭉툭한 형상의 캡슐’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참고로 오리온 우주선의 디자인은 오늘날까지도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규모의 컨스털레이션 계획 자체는 2010년 오바마 정부 때 취소되었다. 오바마 정부는 민간 업체를 통해 국제우주정거장에 이르는 편이 더 전망이 있다고 판단했다. 스페이스X 같은 기업들이라면 훨씬 더 비용을 낮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분명한 점은 서구가 우주 탐사의 주도권을 유지하려면 새로운 목표를 수립하는 한편 더 개선되고 더 신뢰할 만한, 그리고 아마도 덜 복잡한 방식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화성에 가는 또 다른 방안이 있었다. 이는 수십 년 전에 제시되었는데, 현재 스페이스X에서 이 아이디어의 한 형태가 결실을 맺는 중이다. 1990년대 초반, 마틴 마리에타의 데이비드 베이커와 로버트 주브린은 마스 다이렉트라는 이름의 유인 화성 탐사 계획을 제안했는데, 이 계획의 핵심 요소는 실제로 화성 탐사를 가능케 하는 견고함과 단순함, 두 가지였다. 즉, 서로 다른 임무들 간의 상호 의존성을 최소화하고, 달(또는 어느 곳이든)의 궤도 위에 중간 기점으로 우주정거장을 설치해야 한다는 기존의 생각을 버리고, 현재 존재하는 기술로 화성에 도달하는 방안을 찾겠다는 의미다.
로버트 주브린의 묘안요컨대 이 계획 아래 화성 탐사 임무는 10년 안에 실현해야 했다. 정치적 요인(예를 들어 4년 혹은 8년마다 교체되는 미 행정부)으로 중단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화성으로의 유인 탐사는 원자력 구동 방식이나 원자력 추진과 같은 이색적인 기술보다는 기존의 화학 추진 방식(즉, 로켓) 같은 더 흔한 기술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뜻했다. 이런 조건들이 설정되면서 화성 탐사에 드는 비용이 크게 줄어들었으며, 엔지니어들은 달이나 화성 또는 그 너머까지도 유인 탐사를 할 수 있도록 다목적용 발사 시스템 개발과 더불어 행성의 중력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경로를 활용한 발사 계획을 요구받았다.
마지막으로 지구 궤도를 벗어난 임무에 따른 효과를 고려해야 한다. 이는 우주 비행사들이 화성에 머무는 기간을 가장 많이 확보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려면 장기간 사용할 장비 및 탐사 기기를 가동할 에너지 자원을 충분히 공급하는 것이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주브린과 베이커는 최종 탐사 계획을 생각해 냈다. 즉, 화성 탐사를 위해서는 한 번이 아닌 두 번의 발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첫 번째 발사로는, 자체적으로 추진제 생산 설비를 갖춘 지구 귀환 우주선(ERV)을 화성으로 보내게 된다. 그리고 ERV가 화성에 착륙한 후 연료를 바로 그 자리에서 생산할 수 있다면, 이후에 도착하는 우주 비행사들은 화성에 이르기도 전에 지구로 돌아오는 왕복 티켓을 얻는 것이다.
이어지는 지구에서의 두 번째 발사로 우주 비행사들이 화성으로 떠난다. 그런데 여기서 두 번의 발사는 약 26개월의 간격을 두고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지구에서 화성으로 갈 때 중력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최적의 여행 경로에 적합한 기간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비록 NASA는 주브린과 베이커의 마스 다이렉트 계획을 승인해 주지는 못했지만, 이전에 고려되던 화성 정착 아이디어를 단순화한 이 프로그램은 구체적인 실행 계획 및 과학적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이를 제대로 파악한다면 앞으로 스페이스X의 성공이 얼마나 중대한 일인지를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생각해 보면, 그간 미국 대통령들이 대를 이어가며 의회에서 우주를 향한 야망의 불씨를 피우려고 노력했지만, 지구 저궤도를 넘어서는 유인 우주 탐사 계획은 그 어느 것도 순조롭게 추진된 적이 없다. 비용 절감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계획을 주도하는 기관이나 단체가 화성에 인류를 보내는 프로젝트에 오롯이 집중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런데 2002년이 되자 마치 그러한 부름에 답하기라도 하듯, 한 기업가가 페이팔이라는 자신의 회사를 매각하면서 받은 배당금을 재투자해 오늘날 가장 성공적인 민간 항공우주 업체가 될 기업을 설립했는데, 바로 스페이스X의 CEO이자 창립자인 일론 머스크다. 그때부터 머스크의 스페이스X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우주로의 운송 경로를 구축했다.
스페이스X의 등장1996년 로버트 주브린은 《애드아스트라》 5/6월호에 인류가 화성에 도달하는 방법에 관한 글을 기고했다. 주브린은 “화성은 달보다 지구로부터 수백 배 멀리 떨어져 있으나 그곳에서 우리는 달에서보다 더 귀중한 것을 얻을 수 있다. 상대적으로 사막 같은 달의 환경과 달리, 화성에는 물이 영구 동토층의 형태로 땅속에 얼어붙은 바다가 존재한다. 뿐만 아니라 탄소, 질소, 수소, 산소 같은 자원이 풍부해 이 자원을 이용할 만큼 유능하기만 하다면 즉시 활용할 수 있는 형태로 존재한다. 따라서 인류는 화성에 정착할 수 있으며 화성은 우리 세대와 미래의 많은 세대에게 신세계가 될 것이다.”라고 썼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주브린이 내놓은 마스 다이렉트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다. 우선 아폴로 계획에서 사용된 새턴 5호와 동급의 중량급 부스터 로켓에 탑승자 없이 약 44톤에 달하는 대규모 화물을 탑재해서 기지에서 화성으로 발사한다. 8개월 후면 화성 가까이 접근하게 되고, 보호 장치를 사용해 화성의 대기권을 통과하면서 속도를 늦추어 궤도에 진입한 후 낙하산을 타고 화성 표면에 착륙한다.
주브린은 이 과정을 지구 귀환 우주선(ERV)이라고 명명했다. 인간이 화성에 도달하기 전에 미리 보내질 이 우주선에는 연료가 주입되지 않은 메탄/산소 로켓 추진제를 비롯해, 액화수소 상당량, 메탄/산소를 연료로 사용하는 경량 트럭과 트럭 뒤에 설치된 100킬로와트 용량의 핵 원자로 한 대, 과학 탐사 로버 몇 대, 그리고 화학 물질을 자동으로 처리할 수 있는 여러 대의 컴프레서가 실린다. 핵 원자로를 실은 트럭은 드론처럼 조종을 받아 착륙 지점으로부터 몇백 미터 떨어진 지점으로 이동해 컴프레서 및 화학 처리 장비의 가동에 필요한 전력을 생산하게 된다. 이렇게 하면 10개월간 약 120톤가량의 이원 추진제(로켓 엔진에 사용되는 연료와 산화제를 분리 저장했다가 혼합해서 반응을 일으키는 방식)를 생산할 수 있다. 여기서 독자가 궁금해할지도 모르겠다. 아폴로호의 달 탐사에서처럼 우주선의 자체 추진력으로 귀환하면 될 텐데 왜 굳이 화성에서는 로켓 추진제를 생산해야 할까? 사실 화성 표면에서의 중력은 달보다 훨씬 크고, 천체 위치상으로도 지구로부터 훨씬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므로 화성의 중력을 벗어나 지구로 귀환하려면 지구에서 싣고 간 연료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또한 지구로 귀환할 때 최적의 경로를 따라 충분한 속도를 내려면 더욱 연료가 넉넉히 있어야 한다.
그런데 화성에서 주브린의 설계에 따라 추진제를 생산한다면, 지구에서 가져간 수소만을 이용해서 생산하는 것보다 18배 이상 많은 추진제를 생산하게 된다. 또 이 방식이라면 화성 표면에서 운행하는 로버나 트럭에 연료를 공급할 수도 있고, 이 과정에서 생성된 산소와 물은 비행사들이 화성에서 생활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주브린이 제시한 이 프로그램의 본질은, 화성에 인간이 첫발을 내딛기 전에 화학적 도구를 미리 생산해서 화성에 도착한 이들이 지구에서처럼 화성에서 생활하고 이동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한편 미 의회의 일각에서는 주브린의 제안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였지만, 결국 이 프로그램은 결실을 맺지 못했다. 다만 그가 도출해 낸 핵심 개념은 이미 NASA에서 초기 시험 단계를 거치며 추진 중이었다. 즉, 향후 먼 우주에서의 임무에 드는 비용을 줄이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우주여행의 기틀을 마련한 ‘재사용 가능성’이 문제의 해결책은 개념상으로 이미 나와 있었다. 바로 재사용 가능한 우주선이다. 우주왕복선은 대체로 재사용이 가능했다. 그러나 우주를 배경으로 한 일종의 테세우스의 배 역설처럼 각 왕복선은 발사, 대기권 재진입, 착륙 단계에서 혹독한 조건을 충분히 견디는 데 적합하도록 임무가 종료될 때마다 대대적인 점검을 거쳐야 했다. 왕복선이 발사된 후 2분 만에 폭발했던 전력이 있는 만큼 우주선이 과도하게 복잡한 설계라고 보는 일부의 시각이 있었다. 어쨌든 더욱 복잡한 공학 기술이 적용될수록 끔찍한 사고가 발생할 확률도 높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인 제약 조건은 익히 알려진 대로, NASA로서는 어떻게든 지구를 벗어나 우주로 날아갔다가 무사히 귀환하는 우주선이 필요했다.
1960년대에 닐 암스트롱은 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로켓을 테스트했는데, 결과적으로 달에 최초의 인간을 올려놓은 달 착륙선이 그러한 종류였다. 그러나 중력이 달에 비해 훨씬 크게 작용하는 지구상에서 한 테스트는 설정에 따라 수동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테스트 중 추력기 하나에 연료가 고갈되는 바람에 우주선이 폭발하기 단 몇 초 전에 탈출해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우주에 도달할 역량이 되는 로켓을 지구로 재착륙시킬 필요가 없었다. 아폴로 계획에는 자금이 풍족하게(적어도 초기 몇 년간은) 지원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 유인 우주 탐사를 위한 자금 지원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해지면서 NASA는 재착륙 임무를 성공시킬 수 있는 로켓을 처음으로 테스트하기 시작했다. NASA의 첫 번째 수직 이착륙 로켓은 DC-X라 불렸는데, 저비용 단식 궤도 비행체였다. 1993년에 시작된 이 계획은 자금이 고갈될 때까지 세 차례 시험 비행이 진행되었다.
이후 NASA는 이 프로젝트에 더 많은 자금을 투입하면서 시험을 지속했다. 그 가운데 한 시험 비행 중에는 DC-X 선체 측면이 손상되면서 작은 규모의 폭발이 일어나기도 했다. 손상이 심각했음에도 이 우주선은 그대로 자동 착륙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손상 지점이 수리된 후 1995년까지 테스트가 이어졌다. 하지만 한 테스트에서 착륙 중 강한 충격을 받아 선체 표면에 금이 갔는데, 보수에 필요한 추가 자금을 충당할 수 없었다. 이후 1995년에 NASA는 더 많은 자금을 지출하며 해당 프로젝트를 DC-XA라고 새롭게 이름 붙여 1996년에 실험을 재개했지만, 한편으론 당시 X-33 벤처스타라는 이름의 록히드 마틴사의 경쟁 모델이 순조롭게 개발되고 있었다(NASA는 이 모델을 이미 대안으로 선정해 둔 상황이었다). 결국 NASA는 5천만 달러라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에도 불구하고 DC-XA 사업을 폐기하고, 그 대신 수년에 걸쳐 X-33 모델의 개발에 9억 2천만 달러를 쏟아부었다. 그러나 X-33마저 연료 탱크의 복합적인 문제로 인해 미처 이륙해 보기도 전에 취소되고 말았다. 비용 면에서 더욱 효율적으로 우주를 개척하는 유인 우주 임무에 자금을 더 많이 집중한 덕분에 인류가 새천년의 길목에서 매우 다른 길로 나아가게 된 것인지, 아니면 그저 인간의 우주 탐험에서 공공-민간 항공우주 기업이라는 단계를 피할 수 없었던 것인지 따져 봤자 소용없는 일이다. 결국 후자가 현재의 상황이 되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 혁신을 주도하는 세력이 바뀌는 정점에서 일론 머스크가 등장한다.
머스크는 훗날 NASA의 국장을 역임한 항공우주공학자이자 물리학자 마이클 그리핀과 함께 일하면서,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손에 넣을 생각으로 러시아로 날아갔다. 아쉽게도 러시아는 아무에게나 미사일을 팔지 않았기에 머스크는 직접 로켓을 제작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무기라든지 우주 탐사가 가능한 기존의 로켓 복제품을 간단히 재사용할 수는 없었다. 우선 무기는 일반적으로 기밀 사항에 해당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우주선 개발에 관한 항공우주공학의 근본적인 철학을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기존의 우주선 개발 사업은 지나치게 비용이 많이 들거나 과도하게 설계되었음이 드러난 탓에 공공 자금을 지원하는 관료 사회의 압박이나 대중의 냉정한 시선을 버텨 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시점에서 머스크가 Zip2(1999년, 3억 달러 이상)와 페이팔(2002년, 15억 달러)을 매각하면서 얻은 자금으로 2002년 3월 14일에 설립한 스페이스X가 등장한다.
스페이스X의 서막 - 초창기 팰컨새로운 민간 항공우주 기업 스페이스X는 화성에 도달할 우주선을 설계?제작?시험?발사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NASA나 구소련과 달리, 스페이스X는 빈손으로 시작했다. 처음부터 각각 크기, 규모, 목적이 다른 세 가지 형태의 로켓 부대를 제작하려고 계획했다. 첫 주자는 보다 저렴하면서도 궤도 발사 능력이 효과적인 형태를 입증하려는 목적으로 설계된 팰컨1 로켓이었다. 이어서 제작된 팰컨5와 팰컨9는 둘 다 우주로 화물을 수송할 수 있는 모델이었다. (팰컨 로켓에 부여된 숫자는 임무의 순서가 아니라 단순히 해당 로켓에 장착된 1단 엔진 개수를 의미한다.)
팰컨샛 2호를 탑재한 팰컨1의 첫 발사 시도는 2005년 11월 27일로 예정되었다. 그러나 연료 탱크에서 산화제가 누출되었고 이를 해결할 지상 지원 장비에 문제가 발생한 탓에 발사를 진행할 수 없었다. 덧붙이면, 당일 중에 연료 탱크를 다시 채울 시간도 부족했고, 그 직후 날씨마저 발사에 적합하지 않게 바뀌었다. 이후 12월에 다시 발사를 시도했는데, 이번에는 발사 전에 날씨로 인해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서 연료가 고갈되는 바람에 1단 로켓이 찌그러져 계획이 종료되었다.
2006년 3월 24일, 네 번째 시도에서 팰컨1 로켓이 현지시각 오후 5시 30분에 처음으로 발사되었다. 하지만 발사 후 겨우 34초 만에 추진에 실패하면서 로켓은 태평양의 검은 심연 속으로 추락해 버렸다. 연료 펌프 주입구의 1단에 위치한 나사가 부식되어 연료가 새어 나왔고 그 결과 로켓의 하단부에 불이 붙은 것이 원인이었다. 이후 통제된 폭발로 이어지며 연료가 모두 쏟아져 나왔다. 다행히 뒤이어 발생한 통제되지 않은 폭발과 충돌로 팰컨샛 2호는 잔해로부터 멀리 날아가, 오멜렉섬의 저장시설 지붕을 뚫고 나갔는데도 온전한 상태로 회수되었다. 이후 팰컨1은 설계상 결함을 보완한 후 2007년 3월에 다시 한번 발사에 도전했다. 이번에는 NASA에서 보낸 두 종류의 실험적 탑재물도 실렸는데, 스페이스X 역사상 최초로 우주에 도달했다. 하지만 2단 로켓으로부터 1단이 분리되던 중에 충돌하면서 2단 로켓이 경로를 이탈했고 2단의 연료에 내부 운동량까지 더해졌다. 그에 따른 관성이 반복되면서 선체의 자세 제어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려 통제가 불가능해졌고 끝내 궤도에 도달하지 못했다.
2008년 8월, 팰컨1 로켓의 세 번째 발사가 진행되었다. 이 발사에는 미 국방부 산하 작전대응 우주사무소의 트레일블레이저 위성을 비롯해 NASA의 큐브샛 2기와 셀레스티스 우주장례식 화물이 탑재되었다. 이 로켓은 설계상 여러 부분이 수정되면서 2단 로켓이 개선되었고 재생 냉각 시스템을 갖춘 멀린 1C 엔진을 장착했는데, 이 엔진은 내열 냉각 방식의 멀린 1A를 대체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단을 분리하는 과정에서 연결부에 문제가 발생했다. 원인은 재생 방식의 엔진 냉각 시스템이 초과 추력을 일으킨 것으로 밝혀졌다. 그 결과, 1단과 2단 로켓이 분리되면서 공중 충돌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