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투자의 원칙
우황제 지음 | 경이로움
반도체 투자의 원칙
우황제 지음
경이로움 / 2024년 4월 / 448쪽 / 25,000원
반도체 산업의 개요
반도체 산업의 국가별 구도반도체는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또한 반도체 제조 영역은 물론이고 각종 원재료와 부속품, 장비, 설비를 공급하는 영역까지 수많은 기업이 고유의 영역에서 강점을 가지며 성장했다. 국가 간 구도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반도체 산업은 국가별로 어떤 구도가 형성되어 있을까?
반도체 시장의 전통강자, 미국: 미국은 지금껏 반도체 산업을 주도해 왔으며 현재 반도체 산업 세계 시장에서 50% 내외의 점유율(매출 기준)을 유지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 중에서 미국은 새로운 반도체를 개발하는 영역, 특히 고사양 반도체 개발에 절대적인 경제적 해자를 쌓아왔다. 또한 컴퓨터, 인공지능 서버, 스마트폰 등에 사용되는 연산장치, 통신용 반도체, 전력 반도체를 비롯해 각종 저사양 반도체까지 고루 잘 만들어왔다. 이러한 이유로 새로운 산업이 등장해 반도체 산업의 성장을 이끌기 시작하면 미국의 반도체 기업들이 가장 먼저 수혜를 챙긴다. 새로운 산업이 등장하지 않아도 반도체 산업의 꾸준한 성장에 따라 미국의 기존 반도체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미국은 반도체를 만들 때 필요한 여러 반도체 장비도 독보적으로 잘 만들어왔다. 반도체 장비 분야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해왔는데, 그 결과 오늘날 반도체 산업은 미국산 장비 없이는 고사양 제품을 찍어낼 수 없는 형국이다. 이에 따라 세계 곳곳에 반도체 공장이 들어서면 미국의 반도체 장비 산업이 가장 큰 수혜를 입으며, 관련 기업들의 주가도 크게 상승하곤 한다. 그러나 미국은 칩 제조 부문과 소재 및 원재료 부문에서는 위상이 다소 약하지만 비교적 고성능인 반도체까지는 대만과 함께 가장 잘 만들어왔다.
21세기 주요 국가의 반도체 산업 양상: 반도체는 작고 미세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10nm(나노미터), 5nm, 3nm 등 더욱 작은 패턴을 그려내는 첨단 공정을 거칠수록 더욱 성능 좋은 고성능 반도체가 나온다. 미국은 10~28nm 내외 공정에서 꾸준히 두각을 나타내며, 이 공정을 거쳐야 하는 반도체의 45%가량을 직접 제조하며 높은 점유율을 차지해왔다. 그러나 그 이하의 공정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인텔이 제조 공정 확보에 연이어 실패하며 경쟁력을 내어준 탓이다.
그동안 미세한 공정이 필요한 반도체 제조는 대만이 주도해 왔다. 대만은 가장 미세한 공정으로 제조하는 최고 성능 반도체 생산의 90%가량을 싹쓸이하듯 주도했고 뒤이어 우리나라가 나머지 시장을 일부나마 차지해왔다. 2023년에 인텔이 7nm 공정에 진입했지만, 여전히 대만과 한국을 뒤따라오는 형국이다. 이에 따라 첨단 반도체가 개발되면 그 제조를 대만이 맡았고, 새로운 고사양 반도체가 등장하면 그 수혜를 대만이 함께 나누어 가졌다.
대만은 10nm 이하뿐 아니라 10nm 이상 공정에서도 미국에 이어 2위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으며, 28nm 이상급 반도체에서는 제조 점유율이 가장 높다. 또한 대만은 반도체 제조뿐 아니라 각종 신형 반도체 개발에도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반도체 제조를 잘한다는 강점을 설계기업 육성에 적극 활용했다. 미디어텍을 비롯해 리얼텍, 노바텍 등이 각종 첨단 반도체를 개발하는 대만의 대표 기업들이다. 세계 최상위 반도체 설계 기업 중 약 60%가 미국 기업이고 나머지는 대만 기업이 포진해 있다.
대만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은 전통산업에서 자립하는 데 성공한 뒤 반도체 등 첨단 산업의 자립도 달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혀왔다. 2014년에는 ‘반도체 굴기’를 표방하며, 반도체 산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육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실제로 중국은 많은 성과를 이루었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반도체 산업이 폭넓고 반도체 종류도 다양한 만큼 중국 입장에서는 여러 시장을 공략할 수 있다. 예컨대 미국이 지배하는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 대만이 주도해온 반도체 전공정·후공정 시장, 그리고 한국이 지배하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 등이다. 그러나 중국이 이들 시장을 모두 뺏을 수는 없다. 자본과 인적 자원의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이 아무리 반도체 굴기를 외쳐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주요 반도체 기업이 받는 영향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고사양 반도체를 집중적으로 찍어내는데, 현재 중국은 기술 수준이 높고 제조가 까다로우며 막대한 자본이 필요한 D램이나 CPU 같은 칩을 단기간에 찍어내기 어렵다. 그러나 비교적 기술 장벽이 낮은 제품을 만들어온 일부 국내 반도체 기업은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 또한 중국은 새로운 반도체 개발 외에도 대만이 제조한 첨단 반도체를 가져다 후공정을 통해 완성하는 데 집중해왔다. 그 결과 2020년대에 들어 중국은 후공정 부문에서 세계 1위로 올라섰다. 중국은 28nm 이상의 공정 반도체 제조에도 많은 공을 들이고 있으며 10nm 공정까지 진출하려고 한다. 중국의 매서운 확장 속도로 볼 때 판도가 빠르게 바뀔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산업의 부흥을 꿈꾸는 일본: 대만과 중국 못지않게 반도체 산업에서 주목받고 있는 국가는 일본이다. 일본은 메모리 반도체 산업에서 퇴출된 이래 반도체 산업의 부흥을 꿈꾸고 있다. 1980년대 후반 잠시나마 미국을 제치고 반도체 산업 1위를 기록했던 일본은 2023년 기준 반도체 산업 규모 3위를 자랑한다. 반도체 제조나 설계 부문에서는 주춤하는 모양새지만 장비와 소재 경쟁력이 뛰어나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일본은 반도체 장비 세계 시장의 약 1/3을 차지하고 있어 세계 곳곳에 반도체 공장이 늘어날수록 큰 수혜를 입는다. 미국과 일본은 반도체 장비 세계 시장에서 약 75%의 점유율을 차지하며, 여기에 우리나라와 네덜란드 장비 업체들의 점유율까지 합치면 90% 이상이다.
또한 일본은 반도체 소재와 부속품 부문에서 막강한 경쟁력을 자랑해왔다. 반도체 칩의 필수 원재료인 웨이퍼는 일본 업체들의 점유율이 55~60%에 달한다. 그 외 포토레지스트, 불화수소, 극동박 등의 첨단 소재도 일본의 점유율이 70~100%에 달한다.
그 외에 키옥시아, 소니, 르네사스 등 일부 일본 기업들이 낸드플래시, 카메라용 이미지 센서, 차량용 반도체 등 제한된 영역에서 칩 개발 경쟁력을 갖추어왔다. 그러나 일본의 칩 제조 부문에서는 아직 경쟁력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28nm 이상의 공정에서는 10% 남짓의 점유율을 보이며 반도체 자급을 이루어내고 있지만 그 이하에서는 신통치 못하다. 일본 기업들이 너무 잘게 쪼개지는 바람에 자본력을 갖추지 못한 탓이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의 지원 하에 소니, 키옥시아, NTT 등의 8개 대기업이 연합해 합작사를 출범시켜 제조 부흥을 노리고 있으나 경쟁력을 확보하기는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반도체 산업에서 우리나라의 위치는 어디쯤일까?: 우리나라는 반도체 산업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올라서 있을까? 필자는 국내 투자자에게 국내 반도체 산업이 평가 절하되는 모습을 수없이 봐왔다. 그중 하나는 국내 반도체 기업이 성숙기에 접어들어 성장이 어렵고 메모리 반도체에 의존하는 탓에 경쟁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은 전 세계 반도체 산업 내에서 비중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며 세계 2위 자리를 공고히 지켜왔다. 2010년대만 해도 국내 반도체 산업은 세계 반도체 산업 대비 비중이 15% 이하에 불과했으나 근래에는 17~20%를 차지하며 미국을 뒤잇고 있다.
대만의 TSMC를 크게 치켜세우는 투자자도 흔히 볼 수 있는데 반도체 산업 점유율만 따지면 대만의 점유율은 우리나라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메모리 반도체와 각종 칩의 제조 경쟁력에 있다. 이 세상에 메모리 반도체 없이 작동하는 비메모리 반도체는 없다. 즉 새로운 산업이 반도체 산업의 성장을 이끌 때 미국과 대만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메모리 반도체 산업도 이득을 본다. 고사양 칩이 발달할수록 메모리 반도체의 중요성이 커지는데 메모리 반도체도 새로운 형태의 칩이 꾸준히 등장하며 고사양화가 거듭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세메스를 비롯해 국내 반도체 제조 장비 업체의 위상이 높아지며 장비 부문의 영향력 확대도 큰 보탬이 되고 있다.
이렇듯 반도체 산업은 보기보다 복잡하며 국가 간 구도와 경쟁력이 나뉘어 있지만 그만큼 투자 기회가 다양하게 찾아온다. 이 때문에 반도체 산업의 성장 흐름, 경쟁 구도, 산업 사이클, 제품 특징 등을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다 과거 흐름까지 이해하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당연히 미래를 전망하려면 과거도 어느 정도 함께 공부할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는 이에 대해 집중적으로 분석하며, 가장 전통적인 산업인 컴퓨터 산업부터 살펴보도록 하겠다.
PC 산업과 반도체
인텔과 AMD, 누가 영원한 승기를 잡을까?AMD는 인텔이 설립된 지 1년 뒤인 1969년에 설립되었으며 2020년대에 들어 인텔이 어려움을 겪자 약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다면 두 기업 간 경쟁 구도는 언제부터 바뀌기 시작했을까?
AMD의 초기 성장: AMD(Advanced Micro Devices)의 사명에는 더욱 혁신적인 반도체 칩을 개발하겠다는 뜻이 담겼다. 그러나 사명과 달리 설립 직후엔 인텔을 모방하는 회사에 가까웠다. 그 배경은 인텔이 1978년에 출시한 마이크로프로세서인 인텔8086에 있다. 인텔은 이 제품부터 후속 제품에 이르기까지 마이크로프로세서의 동작 방식을 통일했다. 쉽게 말해 후속 제품도 인텔 8086과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러한 고유의 작동 방식을 ‘x86 아키텍처’라 통칭한다. 아키텍처란 칩이 작동하는 방식으로 대략 이해해도 무방하다.
당시 인텔은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에서 압도적인 1위였다. 따라서 컴퓨터 제조업체들은 인텔 프로세서 작동 방식에 따라 컴퓨터를 만들어야 했다. 이는 AMD에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새로운 방식으로 작동하는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개발해도 팔리지 않을 테니 일단 인텔의 x86 아키텍처 방식을 따라 만들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당시 마이크로프로세서 업체들은 인텔로부터 라이선스를 받은 뒤 인텔 프로세서와 흡사하게 작동하는 모방 제품을 찍어내는 데 집중해야 했다. AMD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AMD는 언젠가는 독자 개발한 마이크로프로세서가 인텔을 능가하기를 바라며 벌어들인 현금을 제품 개발에 쏟았다. AMD 외에도 인텔 마이크로프로세서를 따라 만드는 기업이 몇 있었다. 일본 반도체 기업들이 대표적이었다. 그러나 일본 기업들은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병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독자적 마이크로프로세서 개발이 어려웠다. 메모리 반도체 산업은 경쟁이 과열되어 경쟁력 확보에 큰돈이 들었고 호황과 불황이 심하게 반복되었다. 그리고 불황이 올 때마다 많은 기업이 휘청였다. 그러나 AMD는 일찍이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그만두었기 때문에 기술 개발에 몰두할 수 있었다.
AMD의 결실은 무려 10년 후인 1991년 독자 개발한 제품인 ‘AM386’ 출시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AM386은 당시 인텔의 주력 제품인 인텔80386보다 6년 후에 출시되었기에 완전한 구형 제품이었지만 의의가 컸다. 인텔 라이선스를 받지 않고 오직 AMD의 자체 기술로만 개발했기 때문이다. 성능이 똑같은 제품을 6년이나 지나 출시했으니 시장에서 소외될 법도 했지만 PC 시장은 환호했다. 그동안 인텔의 독점을 두려워했던 PC시장에서 적극적으로 AMD 제품을 구입했고, AMD는 자신감을 얻어 들어오는 현금을 연구 개발에 더욱 쏟아넣었다. 인텔은 이에 대응해 인텔80486 등 성능이 더욱 좋은 제품을 출시했다. 이러한 신제품에 모두 대응하기는 어려웠던 AMD는 인텔 신제품이 성능은 좋아도 비싸다는 점을 노려서 가격 경쟁력을 앞세웠다. 제품을 싸게 팔자 AMD의 시장 점유율은 한 자릿수 중반대까지 빠르게 늘어났다.
애슬론의 급격한 성장: 이에 인텔은 후속 프로세서인 인텔80586을 ‘펜티엄’으로 변경해 출시했다. 인텔이 펜티엄 마케팅을 본격화하자 의외로 소비자들은 새로운 CPU의 등장이라며 환호했고 386컴퓨터, 486컴퓨터는 구형으로 취급받기 시작했다. 펜티엄 브랜딩은 고작 비슷한 반도체 칩인데 제품 브랜딩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사례다. 이후 다른 많은 반도체 기업도 자사의 칩에 유별난 이름을 붙여가며 브랜드 강화에 많은 비용을 쏟게 된다.
AMD도 1999년에 후속 제품을 출시하며 ‘애슬론(Athlon)’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그런데 시장을 둘러보니 이미 소비자들에게 컴퓨터는 곧 펜티엄이라는 인식이 너무나 강했다. 이제 와서 새 브랜드를 내세워봤자 펜티엄을 뒤쫓는 모양새가 될 수 있기에 AMD는 강력한 한방을 노리며 인텔보다 클럭 스피드가 높은 CPU를 출시하기로 결정한다. 소비자들이 CPU를 살 때 실제 성능보다는 사양에 집중하는 경향을 공략한 것이다. 연구 개발에 매진해온 덕분에 AMD는 클럭 스피드를 높이는 전략을 실현하며 세계 최초의 1GHz CPU(1초에 10억 번 연산하는 CPU)인 애슬론을 시장에 화려하게 등장시켰다. 이 전략은 단숨에 PC 시장을 뒤흔들었고 이제 AMD는 인텔의 경쟁 상대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애슬론은 5% 남짓에 불과했던 AMD의 시장 점유율을 단번에 20%대로 끌어올렸고 이후 수년간 40%대까지 늘렸다. AMD 주가 또한 승승장구했다.
그러다 2000년대에 들어 컴퓨터 성능을 더욱 향상하기 위해 CPU의 동작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었다. AMD는 이를 노리고 AMD 고유의 아키텍처를 발표했다. 인텔도 새 아키텍처를 발표했지만 최종적으로 AMD가 개발한 ‘AMD64’라는 이름의 아키텍처가 PC 시장에서 주력 아키텍처로 채택되었다. 그러자 CPU 경쟁의 승기는 AMD로 더욱 기울었고 투자자들은 AMD 주식을 무더기로 주워 담았다.
AMD의 시장 점유율도 인텔을 바짝 따라붙었다. 비상이 걸린 인텔은 AMD를 저지하기 위해 적자까지 감수하는 초유의 전략을 내세웠지만 AMD의 시장 점유율은 꾸준히 증가했고 인텔은 꾸준히 감소했다. 인텔 주가는 불과 2년 만에 80% 이상 폭락했다. 실적이 꺾일수록 인텔의 종말이 언급되었고 시장은 AMD의 역전을 더욱 굳게 믿었다. 이제 모두가 AMD 주식 매수와 인텔 주식 매도를 외쳤다.
누가 이기리라 확신할 수 있을까?: 그러나 아쉽게도 AMD는 딱 거기까지였다. 이후 AMD는 40%대 점유율을 끝으로 급격히 기울기 시작한다. 당시 거의 모든 투자자가 인텔의 종말을 확언했지만 모두의 예측을 정확하게 빗겨나간 것이다. 반도체 산업을 살펴보면 기업들이 가장 치열하게 경쟁할 때 오히려 예측이 가장 무의미해진다. 실제로 기술 경쟁이 활발한 산업에서는 확신이 위험을 초래한다. 임상 시험 결과에 따라 기술 우위가 급변하는 바이오 산업에서는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기술 변화가 빠르게 일어나는 스마트폰 부품들은 연례행사처럼 이러한 현상을 겪는다. 따라서 기술 변화가 빠른 영역일수록 자신의 판단이 틀릴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하지만 많은 투자자는 오히려 과잉 확신을 갖는다. ‘기술’을 이해할수록 남들보다 ‘기업을 더욱 깊게 이해하고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당시 AMD의 몰락을 예측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인텔의 틱톡전략이 두 기업의 운명을 바꾸리라고 예측한 이도 없었다. AMD는 연구 개발을 무기 삼아 인텔 추격에 성공했지만 2000년대 중반에 들어 클럭 스피드 경쟁이 슬슬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 CPU의 클럭 스피드를 높일수록 칩이 너무 뜨거워져서 오히려 성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당대 일부 CPU는 너무 뜨거운 나머지 난방기구라 놀림받기도 했다. 그 결과 CPU 경쟁은 클럭 스피드 대신 코어 수를 늘리는 방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