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다시, 사우디아라비아
박인식 지음 | 동아시아
지금 다시, 사우디아라비아
박인식 지음
동아시아 / 2024년 3월 / 336쪽 / 18,000원
1부 어제의 사우디
대단한 부자 사우디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은 사우디를 대단한 부자로 여긴다. 2017년 가을 사우디 리야드에서 열린 ‘미래투자이니셔티브’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MBS) 왕세자가 네옴시티라는 전대미문의 거대사업을 발표하자 이러한 사우디에 대한 오해가 더 크게 증폭되었다. 사우디가 대단한 부자라는 오해 말이다.
사우디라면 애쓰지 않아도 땅에서 솟아나는 석유만으로 돈을 산처럼 쌓아놓고 사는 줄 아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2021년 우리나라의 1인당 GDP가 3만 4,757달러인데 사우디는 2만 3,585달러로 우리의 3분의 2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사실로 보아 그동안 우리가 사우디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이 오해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이렇게 반문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끝없이 뿜어져 나오는 석유를 팔아서 번 돈은 다 어디로 갔느냐고 말이다.
사우디의 석유 매장량이 세계 선두를 다투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매장량이 아무리 많아도 원하는 만큼 생산할 수는 없다. 사우디의 원유 생산량은 석유수출기구(OPEC)에서 정한 쿼터에 제한을 받고 있어 하루 최대 1,200만 배럴을 넘지 못한다. 실제로 잠깐 1,200만 배럴을 생산한 2020년 초를 제외하고는 900만~1,100만 배럴을 넘은 경우가 없다. 이 중에서 30퍼센트 정도가 내수로 소비되고 있어 원유 수출량은 하루 720만 배럴을 맴돈다.
유가도 생각만큼 높지 않다. 2022년에 평균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선 경우가 있었지만 2014년 이래 유가는 60달러에서 맴돌았다. 실제로 사우디가 한 해 동안 원유를 수출해 올린 수입은 유가가 100달러를 찍은 2022년에는 2,590억 달러(336조 7,000억 원) 정도로 추정된다. 물론 어마어마한 금액이지만 같은 해 삼성전자 매출은 301조 8,000억 원이었다. 결국 사우디가 누리고 있는 부의 원천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어마어마한 규모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사우디의 여름은 얼마나 더운지 옥외작업이 금지되는 섭씨 45도가 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도 실내에서는 긴팔 옷을 입어야 할 정도로 냉방을 세게 한다. 차도 기름을 많이 먹는 SUV나 대형차가 주종을 이룬다. 그렇다 보니 석유 내수소비량이 하루가 다르게 늘었다. 2010년 이후로 수년 동안 전체 석유생산량에서 내수소비량이 매년 1퍼센트씩 늘었다. 석유를 수출한 돈으로 국가 재정을 꾸려가는 나라가 그렇지 않아도 저유가 때문에 고생스러운데 수출할 물량마저 매년 큰 폭으로 줄어드니 이중고를 겪는 상황이 되었다. 마침내 사우디 정부에서는 에너지 효율 개선이라는 칼을 빼 들었다.
그것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2017년 외환보유고 4,000억 달러 선이 붕괴되기 직전에 감소세가 그쳤고 지금까지 4,000억 달러 초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후 2020년 7월부터 부가가치세를 5퍼센트에서 15퍼센트로 올리고 아울러 관세도 최고 25퍼센트까지 올렸다. 전기요금과 수도요금도 적게는 두 배에서 많게는 열 배까지 올렸다. 부자들에게는 상관없는 일이겠지만 서민들은 죽을 맛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왕세자가 ‘사막의 다보스’라고 불리는 미래투자이니셔티브 행사에 각국의 투자자들을 불러 모으고 사업비 5,000억 달러, 물경 650조 원이라는 전대미문의 사업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물론 왕세자로서는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는 절박함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물가를 견뎌야 하는 국민들은 과연 그런 거대사업의 열매가 자신들에게 돌아오리라고 기대했을까?
이슬람 종주국의 조건사우디는 스스로를 이슬람 종주국으로 여긴다. 그래서 사우디 국왕을 ‘이슬람 두 성지의 수호자’라고 부른다. 두 성지란 알라의 신전이 있는 메카와 선지자 무함마드의 묘가 있는 메디나이다. 선지자 무함마드의 고향이기도 한 메카에는 알라의 신전이 있는 ‘그랜드모스크’가 있고, 메디나에는 그가 묻힌 묘 옆에 ‘선지자의 모스크’가 있다.
선지자 무함마드는 ‘알라Allah(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선지자일 뿐이고 이슬람은 알라를 섬긴다. 모든 무슬림은 평생 한 번은 알라의 신전이 있는 메카를 순례해야 한다. 적대 관계에 있는 이란의 무슬림들도 예외가 없다. 그러다 보니 메카를 품고 있는 사우디가 스스로를 이슬람 종주국이라고 여기고, 그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이슬람 국가들도 그것에 대해 딱히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물론 튀르키예같이 이슬람의 종주국은 사우디가 아니라 바로 자신이라고 주장하는 국가도 있기는 하다. 사우디는 메카와 메디나 말고도 튀르키예의 그런 주장을 물리칠 만한 구체적인 힘을 하나 더 갖고 있는데, 바로 19억 명에 이르는 무슬림 인구에 그 열쇠가 있다.
이슬람 5대 의무 중 하나인 순례, 즉 ‘핫지(Hajj)’는 아무 때나 한다고 다 순례로 인정받는 것이 아니다. 헤지라력으로 12월 8일부터 13일까지 엿새에 해당하는 핫지(순례절) 기간에 정해진 순서를 모두 마칠 경우에만 순례를 마친 것으로 인정한다. 그 기간이 아니라고 해서 순례를 할 수 없는 건 아니다. 그래서 순례절 동안에 정해진 순서를 모두 마치는 것을 대순례(핫지), 순례절이 아닌 동안에 약식으로 순례를 마치는 것을 소순례(Umrah, 움라)라고 구분한다. ‘움라’를 행했다고 해서 무슬림의 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핫지 기간인 엿새 동안에 순례할 수 있는 인원은 얼마나 될까? 사우디는 최근 몇 년간 코로나19 때문에 순례객을 극도로 억제했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2020년에는 오직 1,000명만 순례를 허용했고, 2021년에 5만 8,000명으로 늘어났다가, 코로나19가 끝난 2023년에는 예전 수준인 200만 명을 회복했다. 사실한 도시에서 엿새 동안 200만 명을 수용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사우디 정부에서는 시설을 확장해 2030년까지 500만 명 수준으로 수용 규모를 늘릴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19억 명에 이르는 무슬림의 순례를 수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생겨난 것이 순례비자(Hajj Visa)이다. 핫지 때는 정해진 인원에게만 순례를 허용하는데, 외국에 사는 무슬림들은 사우디 순례부에서 발급하는 순례비자를 받아야 핫지에 참여할 수 있다. 사우디에 사는 무슬림이라고 해서 핫지에 마음대로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 역시 순례부에서 발급하는 순례허가를 얻어야 한다. 사우디에 거주하는 무슬림들에게는 내외국인을 가리지 않고 5년에 한 번씩 순례허가를 내준다.
이처럼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탓에 이슬람 국가들은 매년 사우디 순례부에 대표단을 보내 비자 할당량을 확보하기 위한 협상에 들어간다. 사우디 순례부에서는 국가별로 무슬림 1,000명당 1장꼴로 순례비자를 할당한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매년 300만 명이 넘는 무슬림들이 순례비자를 신청하기 때문에 평균 대기 기간이 37년에 이른다고 한다. 순례가 평생의 의무이니 순례비자야말로 사우디가 이슬람 국가들에게 자신이 종주국이라고 주장할 근거가 되고도 남는 것이다.
2부 빈 살만의 등장과 오늘의 사우디
세계 유일의 전제왕정국가오늘날 전 세계에 있는 왕국들 대부분은 국왕이 존재하지만 통치는 하지 않는 입헌군주국이다. 국왕이 통치한다고 해도 이를 견제할 최소한의 제도나 기구가 존재한다. 그러나 사우디에는 국왕의 권한을 견제할 제도도 없고 기구도 없다. 따라서 사우디는 국왕이 원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동화책에서나 볼 수 있는 진짜 왕국인 것이다. 사우디를 제외한 중동 국가들은 모두 헌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우디에서는 최상위법이 헌법이 아닌 통치기본법이다. 여기서 통치체제는 군주제이고 통치권은 왕국을 세운 압둘아지즈 국왕의 아들들에게 계승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최상위법에서 국가의 정체성을 이렇게 규정한 나라는 사우디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사우디에서는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오랜 숙제였다. 늘어나는 국가 예산을 들쭉날쭉한 유가에 좌우되는 석유에만 의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형태를 바꿔가며 소득세를 부과하려 했지만 번번이 사회적 반발에 막혀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사우디에는 아직도 소득세라는 이름의 세금이 없다. 그러던 중에 2018년 1월부터 부가가치세 5퍼센트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코로나19로 도시 전체가 봉쇄되었던 2020년 6월 어느 날, 적용을 불과 보름 남짓 남겨놓고 부가가치세를 5퍼센트에서 15퍼센트로 한꺼번에 세 배로 올리겠다는 보도가 나왔다. 더불어 관세도 많게는 25퍼센트까지 올렸다. 생필품을 비롯한 원자재와 완성품 상당 부분을 수입으로 꾸려가는 나라에서 관세를 올린다는 건 사회적 반발을 불러일으킬 일이었다.
부가가치세를 10퍼센트 더 올리고 관세를 무려 25퍼센트까지 올린다는 것을 예고도 없이 하루 아침에 전격적으로 실행하다니. 정상적인 국가였으면 인상 계획을 세우고 나서도 의견을 수렴하고, 수없이 세부 사항을 조율했을 것이다. 아마도 당시 계속되는 저유가와 코로나19 봉쇄로 인한 재정적 어려움을 모면하기 위해 왕세자 단독으로 내린 결정이라고 의심할 만하다.
사우디의 실질 통치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MBS) 왕세자가 추진하는 거대사업도 그렇다. 석유화학 일변도의 산업구조를 다각화해서 위험을 분산하겠다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결정이다. 하지만 그 대안이 왜 실현 가능성이 의심되는 사업이나 관광사업 일변도인지 의아하다. 그 과정에서 사회적인 합의는커녕 내부에서라도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졌다는 흔적은 어느 보도에도 보이지 않는다. 왕세자가 결정하고 외국 컨설턴트들이 이를 구체화해 나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2015년 압둘라 국왕이 갑작스럽게 서거하고 현재 사우디 국왕인 살만 빈 압둘아지즈가 즉위했다. 얼마 후 살만 국왕은 이복동생인 무끄린 왕세제를 폐위하고 2012년 사망한 동복형 나예프 왕세제의 아들인 무함마드 빈나예프(MBN) 왕자를 왕세자로 책봉했다. 사우디는 그동안 왕위가 형제 상속으로 이어져 왔지만 왕자들이 모두 연로해 더 이상 형제 상속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자 MBN이 왕세자가 됨으로써 3세 경영의 문이 열린 것이다. 신망 높은 그가 왕세자로 책봉되자 많은 사람들이 기뻐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자 여기저기서 “결국은 MBS가 MBN을 내치고 왕세자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관측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얼마 후 압둘라 국왕 일가의 국가방위부 장관이 부정 축재 혐의로 구속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 예상했던 대로 MBN이 스스로 왕세자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MBS가 새로운 왕세자가 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물론 MBN이 스스로 물러났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MBN이 자의로 물러난 것이 아니라 국왕의 명령을 빙자한 MBS에 의해 축출당했고 정작 국왕은 그 사태를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미스터 에브리싱서울로 돌아오고 나서 한 해쯤 지난 2022년 9월, 난데없이 무함마드 빈 살만(MBS) 왕세자가 총리가 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동안 총리는 국왕이 겸직하는 것이 관례였다. 얼마 후 어느 중동 전문가는 국가수반으로서 면책 특권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추측했다. 2018년 10월 사우디 언론인인 자말 카슈끄지가 튀르키예 이스탄불에 있는 자국 영사관에서 잔인하게 살해된 사건과 관련해 혹시 모를 제재를 피하기 위한 방편일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권력에 의한 살해라 할 수 있는 이 사건을 명령한 사람이 바로 왕세자라는 사실이 밝혀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왕세자는 2019년 9월 미국 CBS <60 Minutes>와 가진 인터뷰에서 카슈끄지 살해를 지시했느냐는 거듭된 질문에 대해 “사우디의 지도자로서 책임은 통감하지만 사우디 정부에 속한 공무원들이 하는 일을 일일이 알 수는 없다”라고 답변했다.
트럼프가 물러나고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면서 카슈끄지 사건을 두고 MBS에게 가해지는 압박이 점점 강도를 더해갔다. MBS는 오히려 바이든과 맞서는 모양새를 취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휘어잡을 수 있어서 미스터 에브리싱이라는 별명을 가진 그도 미국의 제재는 두려웠던 모양이다. 체포나 재산 동결과 같은 국제 제재를 피할 수 있는 총리 자리를 자신이 이어받는 것을 보면 말이다.
MBS는 살만 국왕이 즉위하는 날 국방부 장관에 올라 정규군을 장악했고, 자신이 왕세자에 오른 날 경찰력도 손에 넣었다. 당장은 반대파가 쓸 수 있는 카드가 없어진 셈이었다. 그럼에도 확실하게 반대파를 압도하기 위해 민심을 등에 업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MBS는 여성운전 허용으로 대표되는 여권 신장과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인 청년 취업을 정책 목표로 삼았다. 사우디 사회로서도 시의적절한 정책이었을 뿐만 아니라 자국민의 8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여성과 청년의 마음을 살 수 있는 정책이었다. 당시 여론조사에 나타난 지지율이 90퍼센트에 육박할 만큼 MBS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MBS는 이 지지율을 등에 업고 2017년 11월 반부패위원회를 설치한 그날 밤에 전격적으로 반대파의 핵심이라고 할 만한 인사들을 리츠칼튼 호텔에 감금하고 부패 혐의로 재산을 압수했다. 재산만 압수한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무자비한 폭력이 가해졌다. 그 사건으로 반대파의 기세는 터무니없다고 할 정도로 완전히 꺾였다.
이렇게 권력과 민심을 얻은 미스터 에브리싱은 거칠 것이 없었다. 자동차 경주인 포뮬러 원을 유치하고, 프로골프 리그인 LIV를 창설하고, 호날두를 사우디프로축구 리그로 불러왔다. 모두 MBS가 한 일이라고 하는데 정작 자금은 사우디 공공투자기금에서 끌어 썼다.
MBS가 권력의 정점에 올라선 것은 길게 잡아도 10년이 되지 않는다. 그가 권력을 얻기 전에 살만 일가가 갖고 있던 재산은 여느 왕자들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살만 국왕의 강직한 성품 때문이었다. 따라서 2조 달러에 달한다는 MBS의 천문학적인 재산은 권력을 얻고 나서 10년도 되지 않는 동안에 쌓은 것이다. 정상적인 정부였다면 과연 그게 가능한 일이었을까? 국왕의 결정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도 기구도 없는 전제왕정국가인 사우디에서나 가능한 일인 것이다. 그래서 미스터 에브리싱이고. 그렇기에 MBS의 재산이 얼마인지 따지는 건 의미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3부 빈 살만 개혁의 실체와 내일의 사우디
개혁의 깃발 마침내 지존의 자리에 오른 살만 국왕 앞에 놓인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2015년 1월, 권력투쟁의 고비를 넘기고 국왕에 오르기는 했지만 즉위하기 몇 달 전까지 100달러를 넘겼던 유가는 그해 말 40달러 선이 무너지고 몇 달 후에는 30달러 선마저 무너졌다. 즉위하고 불과 1년 사이에 유가가 3분의 1 아래로 곤두박질친 것이다. 하지만 왕실이건 정부건 씀씀이는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2014년까지 국가 재정의 90퍼센트를 석유 수출에 의존하고 있던 사우디로서는 끝없이 떨어지는 유가의 직격탄을 피할 수 없었다. 재정수입은 석유 부분 1,190억 달러와 비석유 부분 430억 달러를 합해 1,620억 달러였지만 재정지출은 이보다 무려 980억 달러가 많은 2,600억 달러였다. 재정적자 규모가 그해 재정수입의 60퍼센트나 되는 셈이니 국왕이 즉위한 첫해에 받아 든 성적표치고는 참담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었다. 결국 극단적인 석유 의존도를 개선하지 않는 한 유가 변동에 목을 매고 사는 상황을 피할 수 없고, 이런 상황에서 주도적으로 국가 재정을 운영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MBS는 아버지 살만 국왕이 즉위한 날부터 자신이 사우디의 주인이라는 생각으로 밤새워 일하며 국가정책을 수립하는 데 몰두했다고 한다. 살만 국왕이 즉위하자마자 국방부 장관에 임명되었고 불과 몇 달 만에 부왕세자 자리를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국가의 돈줄인 경제발전위원회를 관장하면서 동시에 정치안보위원회의 일원이기도 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