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없는 경제학
차현진 지음 | 메디치미디어
숫자 없는 경제학
차현진 지음
메디치미디어 / 2023년 10월 / 384쪽 / 20,000원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 ‘돈=금’이라는 고정관념의 역사
돈의 철학금융의 출발점을 어디로 볼 것인지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다. 그러나 근대적 의미의 금융업 또는 은행업의 출발은 15세기 초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찍이 1420년경 이탈리아 피렌체에서는 메디치(Medici)를 포함한 몇 개의 상인 가문이 근대 금융업의 모양새를 다듬었다. 그들은 유럽 대륙 곳곳에 지점을 설치하고 글로벌 비즈니스를 펼쳤다. 물론 오늘날의 금융업과는 달랐다. 오늘날에는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스(PF)를 통해 장기로 대출하기도 하지만, 그때는 1년 이하의 상업 어음을 할인하면서 찔끔찔끔 융자했다. 왜냐하면 대금업을 금지하는 교회법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배를 타고 멀리 나가서 물건을 팔기 위해 발행된 어음을 할인하는 것은 무역을 촉진하고 생산을 지원하는 것일 뿐, 대금업이 아니다”라면서 교황청을 설득해 자신들의 사업이 규제 대상에서 제외되도록 했다. 그리고 돈을 빌려줄 때는 이탈리아 돈인 플로린(Florin)을 지급하고, 돌려받을 때는 파운드(Pound) 같은 외국 돈으로 받았다. 그 기간에 발생하는 이자는 환율 속에 감춤으로써 마치 이자소득이 없는 것처럼 위장했다. 참고로 그들의 엄청난 영업 비밀, 즉 환율과 이자가 동전의 양면이라는 사실은 20세기 초에야 ‘이자율 재정 이론’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밝혀졌다. 이처럼 근대 은행업은, 메디치 가문이 대금업에 대한 종교적 규제를 회피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이 통설이다.
1420년대가 금융업의 육신을 다듬어 간 시기라면, 그로부터 400년 뒤인 1820년대는 금융업의 영혼이 다듬어진 시기다. 금융업의 육신과 영혼이 분리되어 발전한 것은 시대가 흐르면서 돈의 형태와 돈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한편 ‘은행이 발행하는 수표는 돈일까, 아닐까? 돈을 다루는 기술은 자연법칙을 따르는가, 도덕률을 따르는가?’ 이것은 오늘날에도 반복되는 질문으로, 비트코인 같은 암호 자산이 돈인지 아닌지를 두고 논쟁이 계속된다. 유럽과 일본의 마이너스 금리정책은 자연스럽지 않다는 이유에서 회의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다. 돈은 물질세계에서 힘을 발휘하지만, 돈의 속성에 관한 질문은 형이상학적이다. 그것은 금융업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돈을 쓰는 사람들이 함께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문제다. 이런 고민은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나폴레옹전쟁(1803~1815) 직후였다.
전쟁19세기를 목전에 둔 1790년대 후반, 유럽에는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대혁명 이후 한동안 ‘국민공회’라는 집단지도체제로 움직이던 프랑스는 나폴레옹이 권력을 잡은 뒤 일인 집권 시대로 전환되었다. 나폴레옹은 전 유럽을 상대로 강력한 팽창정책을 펼쳤다. 도버해협을 사이에 두고 숙적 관계에 있던 영국이 긴장했고, 나폴레옹은 영국과의 무역을 끊으면서 다른 나라에도 똑같은 조치를 요구했다. 이른바 대륙봉쇄령이다. 그러자 영국의 물가가 크게 올랐다. 오늘날 코로나19 위기 이후 벌어진 공급망 차질 사태와 똑같았다. 고통은 공포로 이어졌다. 잘못하면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을 두고 벌어지는 패권 전쟁에서 영국이 프랑스에 밀려 옛날 스페인처럼 몰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흘렀다.
풍자만화가 제임스 길레이가 그린〈신의 계시〉라는 작품은 당시 영국의 정서를 잘 보여준다. 엘리제궁에서 벌어진 파티에서 나폴레옹은 전 유럽을 전리품 삼아 식탐하는 조세핀과 함께 주지육림의 파티를 벌이고 있다. 그런데 그의 식탁 한가운데에는 영란은행(영국 중앙은행)이 있다. 이 그림은 영국이 나폴레옹에게 잡아먹힐 수도 있는 풍전등화 신세라는 것을 시사했다. 이제 이 그림의 왼쪽을 보자. 구름 속에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MENE MENE TEKEL UPHARSIN)’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그것을 본 나폴레옹은 잔을 엎지르면서 대경실색한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대목 그대로다.
구약성경(다니엘서 5장 25절)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이 나라를 잃고 헤매고 있을 때 이들을 탄압하던 갈대아(바빌로니아 지방)의 왕 벨사살에게 하나님이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당시 벨사살의 궁 안에서는 이 글자가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한바탕 소동 끝에 선지자 다니엘이 불려 왔다. 예지력이 있다고 소문난 다니엘은 그 자리에서 “갈대아가 곧 쪼개지고 벨사살은 권좌에서 쫓겨날 것”이라는 하나님의 무시무시한 메시지를 전했다.
바로 그것이 길레이가 그림을 통해 전하려던 메시지다. 성경에 기록된 난폭한 군주 벨사살처럼 나폴레옹도 곧 망할 것이라는 저주다. 그것은 영국인이 보고 싶어 하는 장면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영국의 기도가 이루어졌다. 트라팔가르해전(1805)에서 영국이 프랑스를 무찔렀고, 나폴레옹은 실각했다. 하지만 영국은 나폴레옹전쟁이 끝난 뒤 더 큰 골머리를 앓았다. 전쟁 직전에 내렸던 금태환 중단 조치(금본위제도 잠정 중단)의 폐지 여부가 골칫거리였다. 오늘날로 치면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내려진 각종 금융 규제 완화 조치를 끝내고 정상으로 복귀하느냐를 두고 국론이 분열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전쟁 전의 분위기프랑스와의 전쟁이 무르익던 1797년 영국 정부는 화폐를 발행하는 영란은행에 금태환(종이돈을 금으로 바꿔주는 것) 의무를 중단시켰다. 그런데 이것은 영국 시민에게 굉장히 불길한 일이었다. 영국에서 금태환은 민주주의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1688년 명예혁명을 계기로 인류 최초의 민주 정부가 수립되기 이전 영국의 화폐제도는 창피할 정도로 문란했다. 헨리 8세나 찰스 1세 같은 왕들이 앞장서서 불량 화폐를 제조하면서 화폐 질서를 무너뜨렸다. 그 바람에 영국 국민은 엄청 애를 먹었다.
영국의 재상 토머스 그레셤이 그런 현실을 통탄했다. 그는 엘리자베스 1세가 즉위하자마자 화폐 질서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간언했는데, 그 간언 끝에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Bad money drives out good)”라고 말했다. 이를 오늘날 ‘그레셤의 법칙’이라고 하는데, 그 속뜻은 “당신의 아버지 헨리 8세가 불량 화폐를 너무 많이 발행해서 영국의 화폐 질서가 엉망이다”라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엘리자베스 1세는 1560년 모든 악화를 회수하고 새 돈을 찍도록 했다. 하지만 악화의 액면가치와 실질 가치의 차이를 소유자가 부담하도록 했고, 이미 악화를 가진 사람들은 손해를 보면서 새 돈으로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함량 미달의 악화가 사라지지 않은 채 엘리자베스의 명령은 흐지부지되었다.
영국의 화폐제도가 어느 정도 신뢰를 회복한 것은 명예혁명 뒤인 1696년이다. 당시 영국의 민주 정부는 과학자 아이작 뉴턴을 조폐청장으로 임명한 뒤 영란은행과 함께 화폐개혁 작업을 추진토록 했다. 그러자 영국을 오랫동안 괴롭혔던 불량 화폐가 마침내 사라졌고, 파운드화에 대한 신뢰가 커지면서 금본위제도가 단단하게 자리 잡았다. 그런데 나폴레옹과의 전쟁을 앞둔 영국 정부가 금본위제도를 이탈하려고 했다. 영란은행에 금태환 의무라는 족쇄를 풀어준 뒤 무한정 돈을 찍어 정부에 대출하기를 요구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정부가 국회 동의 없이 교묘하게 세금을 더 걷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절대왕정 시대로 돌아가자는 말이었다. 당시 영국 시민은 정부에 불만을 품었다. 동시에 정부의 시녀가 된 영란은행에는 동정심을 느꼈다. 1797년 길레이가 그린 또 다른 풍자만화〈위기에 빠진 영란은행〉이 당시 여론을 말해준다. 이 그림에서 여자에게 구애하는 남자는 당시 영국 총리 윌리엄 피트다. 피트는 노처녀(Old Lady) ‘영란’ 씨에게 구애하는 척하면서 호주머니의 돈을 빼내고, 영란 씨는 질겁하면서 외친다(지금도 영란은행의 별명은 ‘Old Lady’다). “안 돼요, 안 돼! 지금까지 저한테 정조를 잘 지키라고 해놓고선 당신이 절 강간하다니 말이 되나요? 이러시면 우리 둘 다 패가망신해요!”
강간? 그렇다. 국민의 눈으로 볼 때 금태환 중단 조치는 재산권에 대한 강간이다. 국민이 가진 돈의 가치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명예혁명 이전에는 군주가 신민을 욕보였는데, 나폴레옹전쟁을 앞두고서는 민주 정부가 시민에게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다! 이것이 당시 영국 시민의 생각이었다. 나폴레옹전쟁 직전의 영국 사람은 이렇게 생각했다. “영란은행은 좋은 놈이고, 재무부는 나쁜 놈이다!”
전쟁 뒤의 분위기나폴레옹전쟁의 끝은 워털루전투였다. 여기서 대패한 나폴레옹은 실각하고 1815년 파리강화회의를 통해 유럽은 평화를 되찾았다. 영국은 해군력을 과시하면서 대영제국으로 우뚝 솟았다. 전쟁이 승리로 끝났으니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갔다. 국내적으로는 금태환을 재개할 필요가 있었지만, 영국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금태환을 재개하려면 전쟁 중에 늘어났던 종이돈을 거두어들여야 하고, 그러려면 정부가 영란은행에 빌린 대출금을 갚아야 한다. 결국 불황을 각오하고 세금을 더 거둬야 한다.
이런 고민 앞에서 영국의 정계는 두 파로 갈렸다. 데이비드 리카도와 존 휘틀리 등 지금주의자(bullionist)들은 당장 금태환을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로 잉글랜드 출신의 상인, 정치인, 학자였는데, 이들은 금만이 유일한 돈이고 종이돈이나 수표는 임시 또는 가짜 돈이라고 보았다. 반면 제임스 밀, 제임스 스튜어트 경 등 반지금주의자(anti-bullionist)들은 금태환 재개를 반대했다. 금태환이 다시 시작되면, 통화량이 줄고 세금 부담이 늘어 심각한 불경기가 찾아올 것이 명약관화했기 때문이다. 그들 주장의 출발점은 금화만 돈이 아니라 은행의 약속어음, 즉 종이돈도 돈이라는 데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주로 스코틀랜드 출신의 은행가, 즉 실무가들이었다.
이 두 집단이 20년 넘게 벌인 논쟁을 ‘지금논쟁’이라고 하는데, 이 논쟁의 승리는 지금주의자에게 돌아갔다. 리더였던 데이비드 리카도가 워낙 입심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리카도는 원래 은행가였는데, 1817년 경제학의 한 획을 긋는 명저 《정치경제학 원론》을 완성하고 1819년 하원의원에 당선되었다. 리카도의 의회 진출은 팽팽했던 논쟁의 물줄기를 지금주의자 쪽으로 돌려놓기에 충분했다.
리카도가 의회에 진출하던 1819년 금태환법이 제정되었고, 그 법에 따라 1821년부터 영란은행권의 금태환이 재개되었다. 영국 사람은 영란은행과 함께 승리를 기뻐했다. 그런데 금태환 직후 경기가 나빠지기 시작했다. 반지금주의자들이 예언한 그대로였다. 붐을 이루던 남미 투기의 열기가 식으면서 1825년에는 금융공황까지 닥쳤다. 그러자 사람들은 영란은행에 책임을 돌렸다. 정부에 대출이자를 받지 못하게 되니까 가계 대출을 늘렸고, 그것이 과도해지는 바람에 공황이 생겼다고 믿으면서 영란은행을 원망했다. 영란은행을 향한 시민들의 싸늘한 시선은 토머스 무어의 풍자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시에서도 영란은행은 여자다. 그러나 나폴레옹전쟁 전후로 느낌이 다르다. 29년 전 제임스 길레이는 ‘영란’ 씨를 정숙한 처녀로 보았던 반면 토머스 무어는 헤프고 사악한 유부녀로 보았다. 길레이는 처녀 영란은행을 치한인 재무부가 강간한다고 보았는데, 무어는 음탕녀 영란은행이 신사인 재무부를 유혹한다고 보았다. 영국인들은 이런 생각을 했다. “재무부는 좋은 놈이고 영란은행은 나쁜 놈이다!”
미운 오리 새끼금을 둘러싼 이 소동의 결론은 무엇인가? 경제사학자 피터 번스타인은 금본위제도와 영란은행을 중립적으로 평가한다. 고대부터 내려오던 금에 대한 환상이 이상한 놈이고, 그 환상이 바뀔 때마다 영란은행은 좋은 놈과 나쁜 놈 사이를 오갈 뿐이라고 설명한다. 풍자만화가 제임스 길레이는 영란은행을 동정했고, 시인 토머스 무어는 조롱했으며, 언론인 월터 배젓은 찬양했고, 영화배우 찰리 채플린은 비난했다. 그들 모두 어떤 면에서는 옳았고 어떤 면에서는 틀렸다. 그렇다. 문제는 금본위제도를 바라보는 인간의 변덕에 있다. 그런 변덕스러운 피조물을 또 다른 영국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는《걸리버 여행기》의 마지막에서 ‘야후(yahoo)’라고 불렀다. ‘인간 자신(you human)’이라는 뜻이다. 조물주가 땅속에 박아둔 황금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그대로 있건만,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의 마음은 자주 바뀌었다. 혼란스러운 금융의 역사 속에서 진짜 이상한 놈은 야후, 즉 인간 자신이었던 것이다.
건축학 개론 : 금융시장 맹신이 부른 버블
건축학 개론 / 볼셰비키 난민에서 뉴욕의 철학자로
아인 랜드가 1943년 출간한 소설 《파운틴헤드》는 한국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영화가 소설보다 먼저 소개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제목이 이상하게 번역된 탓도 있다. 원제목 ‘파운틴헤드’는 아이디어가 샘솟듯이 풍부한 주인공 하워드 로크를 의미한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이 소설을 수원(水源)이라고 번역했는데, 한국에서는 ‘마천루’라고 번역했다. 로크의 성공을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에서 거대한 마천루가 나오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마천루라는 번역은 작가의 의도에서 크게 벗어났다.
주인공 하워드 로크는 마천루가 즐비한 맨해튼보다 전원을 동경한다. 그런 점을 종합할 때 《마천루》보다는 《건축학개론》이 더 적절한 제목이었을 듯싶다. 한국 영화 《건축학개론》은 건축사의 풋풋한 첫사랑을 그려서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았다. 어떤 분야에서든 개론은 단순한 것 같지만, 진짜 중요한 원칙들을 다룬다. 또 개론은 모든 것의 시작이라서 쉽게 잊을 수 없다. 첫사랑처럼. 소설 《파운틴헤드》는 오늘날 미국 자본주의를 뒷받침하고 있는 개인주의와 시장중심주의를 변호하는 작품이다. 그래서 미국인, 특히 공화당 지지자들은 이 소설의 작가 아인 랜드를 엄청나게 중요하게 생각한다.
합리적 이기주의아인 랜드는 지지자들에게 자기 철학을 주입했다. 그중 하나는 합리적 이기주의인데, 이는 남에게 방해받지 않고, 내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최고의 윤리라는 생각이다. 《이기심의 미덕》이라는 책에서 그녀는 이기심이야말로 이성적이며, 어쭙잖은 이타심이나 동정심은 문명을 파괴한다고까지 주장했는데, 그 책은 화제를 일으키면서 100만 부 이상 팔렸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이 독창적인 것은 아니다. 일찍이 애덤 스미스가 주장했던 ‘보이지 않는 손’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다만 아인 랜드는 운이 좋았다. 시대를 잘 타고났다. 대공황을 거치면서 미국은 어느덧 큰 정부가 지배하는 사회가 되어 버려 소련과 다를 것이 없었는데, 미국이 체제 경쟁에서 소련을 이기려면, 자본주의의 원형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각성이 조금씩 확대되고 있었다. 그러한 때 아인 랜드는 자신이 경험했던 소련식 공산주의는 야수적 집단주의에 불과하다고 고발하고, 반드시 붕괴할 것이라고 대중에게 말했다. 미국식 자본주의 사상에 반공정신을 버무렸으니 당대의 미국인은 아인 랜드를 엄청난 사상가로 추앙했다. 철학에서 보자면, 아인 랜드가 주장한 합리적 이기주의는 공리주의와 이어져 있다. 공리주의의 뿌리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것을 구체적으로 발전시킨 사람은 제러미 벤담과 존 스튜어트 밀이다. 벤담과 밀은 개인이 추구하는 이익, 행복, 쾌락을 ‘효용’이라는 가치중립적인 말로 대체시켰다. 그럼으로써 행복이나 쾌락을 추구하는 것에 대한 죄의식을 낮췄다. 나아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선이요, 정의라고 옹호했다. 그런데 최대 행복을 추구하려면 우선 행복을 측정하고 비교해야 하는데, 이는 불가능하다.
한편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세상이 저절로 잘 굴러간다면, 정부가 할 일은 많지 않다. 그래서 아인 랜드는 소득과 재산에 대한 누진과세를 부도덕하다고 보았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거두면 투자가 감소해서 일자리가 줄고 경제성장이 둔화되므로, 정부 개입을 줄이는 것이 성장과 복지에 유리하다고 했는데, 아인 랜드의 이런 주장은 훗날 부자 감세로 대변되는 레이거노믹스의 모티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