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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M, 모든 것의 마이크로칩

제임스 애슈턴 지음 | 생각의힘


ARM, 모든 것의 마이크로칩

제임스 애슈턴 지음

생각의힘 / 2024년 2월 / 488쪽 / 27,000원





들어가며



마이크로칩은 어떻게 모든 것과 모든 곳을 장악하게 되었나


21세기 편자 못:
지난 10년간 제품에 들어가는 칩의 수가 늘었고, 동시에 전자기기 수요도 꾸준히 증가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집에서 지내게 된 소비자들이 업무와 여가를 위해 전자기기 신제품을 찾으면서 수요가 급증했다. 그런 가운데 공급에 차질이 빚어졌다. 팬데믹 기간에 칩 공장에 조업 중단 조치가 내려졌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확산되었고 이런 대란은 반도체 공급이 전략적으로 중요함을 일깨워줬다. 또 이 산업이 몇몇 기업에 크게 의존하고 이 시스템이 여유가 별로 없이 빠듯하게 작동하며, 신규 진입에 막대한 비용이 요구됨을 깨닫게 했다.

영역 좁히기:
1960년대에 기업들마다 여러 작업을 수행하면서 탄생했던 산업이 더 나은 공정의 추구와 막대한 비용이라는 현실로 인해 설계, 제조, 제조 장비, 패키징 등으로 분야가 나누어졌고, 분야마다 한두 개의 업체가 시장을 지배하게 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그리고 더 뛰어난 성능의 칩에 대한 수요가 커지면서 점점 소수의 기업만이 그 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게 되었는데, 소수의 기업이 수십 년에 걸쳐 한 가지 측면만을 완벽히 구현하는 데 집중했기 때문이다. 대만의 TSMC와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생산하는 유일한 회사 ASML이 그렇다.

그리고 지식재산 분야 기업으로 이 책의 핵심 스토리를 제공한 회사 ARM이 있다. 미국의 마이크로칩 거인들과 아시아의 제조 강자들 사이의 중간지점, 그러니까 이 산업의 가장 중요한 받침점에 그 업체가 있다. 시작한 곳은 영국의 대학 도시인 케임브리지이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이 회사는 아무것도 만들지 않는다. 레이저 장비도 널찍한 공간도 없다. 그러나 매년 조용히 시장 점유율을 키워왔다. 이 업체는 자기네 아이디어가 모든 것을 공급한다고 여긴다.

값진 지침서:
ARM(Advanced RISC Machines)의 칩 설계는 1990년 설립된 이후 전 세계 가정과 직장, 차량에 스며들었다. 칩이 복잡해지면서 칩 업체들은 생산을 외부 업체들에게 넘겼고, 마찬가지로 설계 과정에서도 외부로부터 아이디어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비용과 복잡성이 계단식으로 올라감에 따라 외부의 지식재산 보유자들은 미리 준비된 솔루션을 제공함으로써 또 다른 지름길을 제시했다.

ARM은 칩 설계를 위한 ‘명령어 세트 아키텍처(ISA)’라는 귀중한 지침서를 보유하고 있다. ISA는 마이크로프로세서가 실행할 수 있는 기계어 명령어의 집합으로 칩의 두뇌에 해당하는 중앙처리장치(CPU)가 어떻게 소프트웨어에 의해 제어되는지와 관련이 있다. ISA는 오늘날 휴대전화와 자동차, 컴퓨터, 데이터센터, 산업용 센서 등에 쓰이는 마이크로프로세서 모두에 들어간다. ISA는 디지털 시대의 십계명으로, 컴퓨터 개발자들이 더 효율적으로 코드를 짤 수 있도록 하는 예측가능성을 제공한다. ISA는 해당 기계가 무엇을 할지를 정의하고, 어떻게 그 일을 수행할지는 정의하지 않는데, ARM 기반 프로세서는 소프트웨어가 쓰이는 곳이면 어디든지 동일한 방식으로 명령을 수행한다.

한편 ARM의 사용은 늘어났지만 ARM의 ISA는 늘어나지 않았다. ARM의 ISA는 수천 개 명령 또는 규칙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40억 개 인코딩을 지원할 수 있다. 디지털 라이프를 그렇게나 근저에서 구현하는 것인데도, ISA 관련 자료는 놀랍게도 여전히 종이 책자로 이용할 수 있다. ARM(아키텍처 매뉴얼, Architecture Reference Manual)은 1만 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걸쳐 ISA를 어떻게 활용할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를 안내한다. ISA의 업데이트는 분기마다 케임브리지의 40명으로 구성된 팀이 맡는데, 이들은 새로운 기능, 예컨대 머신 러닝에서 요구되는 더 주요한 곱셈을 가능하게 하는 기능을 추가하고, 보안 기능을 더 부가하며, 고객의 문제를 해소하고 결함을 해결한다. 그리고 대대적인 개편은 대개 10년에 한 번 수행된다.

ARM의 성공 요인 중 하나는 용량이 가장 큰 칩이 언제나 해당 작업에 최상의 칩은 아니라는 사실을 바탕으로 한다. 성능은 실리콘 투입량은 물론이고 소비 전력 대비 성능으로도 평가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실리콘이나 전력이나 모두 비용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아무튼 마이크로칩 산업은 이러한 변수에 맞춰 발전해왔고, ARM의 저전력 저비용 설계가 인기를 끈 이유도 이들 변수와 관련이 있다.

한편 ARM은 거인들과 나란히 걸으면서 성공했다. 애플과 구글, 아마존을 포함한 거대 기술회사들은 지난 10년간 자신들의 칩을 설계함으로써 인텔 같은 중간 업체가 반도체산업 매출의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탈출해왔다. 참고로 중간 업체가 챙긴 매출은 실리콘 평방 센티미터당 450달러였다. 그에 비해 TSMC 같은 파운드리가 받는 단가는 4달러에 불과했다. 그런데 ARM 같은 지식재산 제공자가 받는 단가는 고작 10센트에 그친다.

ARM의 설계는 이렇게 싸지만 자주 쓰인다. ARM의 설계는 2021년에는 무려 292억 차례 쓰였고, 이는 오랫동안 마이크로칩 산업의 리더로 여겨진 인텔의 약 60배에 이른다. 그리고 ARM의 설계를 채용한 컴퓨터 하드웨어는 지난 6년간 두 배로 증가했고, 이는 어떤 PC 타입이나 어떤 스마트폰보다 더 많이, 지구상에서 가장 널리 채용된 것이다. ARM 설계의 쓰임은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약 1,300만 명이 ARM 호환 코드를 만든다. 모바일 혁명의 주역인 ARM은 5G와 인공지능이 확산되며 더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다. 칩이 더 똑똑해져 우리 삶의 더 큰 부분을 안내하고 가끔은 지배하면서 더 많은 소프트웨어를 실행할수록 ARM의 기술이 내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커진다.



ARM (1985~2000년)



작은 도토리로부터 미래의 디자인까지


희극적인 대치:
1984년 크리스마스를 앞둔 마지막 금요일. 연구 및 대학 도시인 케임브리지의 직장인과 대학 교수들은 흥청거리는 연휴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클라이브 싱클레어 경은 중심가에 위치한 펍 배런오브비프에서 신문을 말아쥐고 사람들 사이를 헤쳐 걸어갔다. 전자업계 사업가 싱클레어는 펍 안 반대편의 상대를 노려보았다. 그의 직원이었다가 맞수가 된 크리스 커리였다.

두 사람은 함께 일하며 계산기, 휴대용 라디오, 소형 TV, 시계 등을 만들었지만, 이제는 성장하는 가정용 컴퓨터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었다. 클라이브 경의 분노를 촉발한 것은 커리가 일간지에 실은 광고였다. 그 광고는 싱클레어 리서치의 ZX스펙트럼 컴퓨터가 신뢰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크리스마스 이후 반품하는 상황을 원하지 않는다면 에이콘 일렉트론이나 BBC마이크로를 고려하라고 조언했다. 대안으로 제시된 두 컴퓨터 모두 커리가 클라이브 경을 떠나 창업한 벤처회사인 에이콘 컴퓨터 제품이었다. 클라이브 경은 욕설을 내뱉으며 말아쥔 신문으로 커리를 마구 때렸다. 코믹한 대치였지만 그 이면에는 매우 심각한 경쟁이 있었다. 커리는 인근 와인바로 피했지만 클라이브 경이 쫓아왔다.

컴퓨터 프로그램:
1979년 11월, BBC는 ‘손에 잡히는 마이크로’라는 가제로 새 컴퓨터 시리즈의 제작에 들어갔다. 프로듀서들은 어떻게 하면 이 프로젝트가 최대 효과를 거둘지에 초점을 맞췄다. 말하자면 프로그램이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 이를 현실로도 연결하고 싶었다. 당시 시장에는 약 100종의 컴퓨터가 있었지만, BBC는 방송에서 컴퓨터 활용 시범을 자체 컴퓨터인 BBC마이크로(BBC Micro)로 보여준다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컴퓨터 프로그램’ 시리즈 중 첫 회에서 진행자 설이 카세트 테이프에 담긴 간단한 게임을 BBC마이크로로 실행해보였다. 많은 영국 어린이들이 이 시리즈를 보게 되었고, BBC마이크로를 공급한 에이콘에게는 황금 같은 기회였다.

케임브리지의 두뇌들:
크리스 커리는 마이크로프로세서 쪽에서 새 사업을 하기로 결심한 평소 알고 지내던 헤르만 하우저를 파트너로 끌어들였다. 커리는 회사의 판매를 담당했고 하우저는 주로 기술적인 측면을 맡았다. 하우저는 회사가 성공을 이어가려면 케임브리지 대학의 우수한 인재를 영입해야 한다고 판단했고 그 수단으로 뜻밖의 비밀병기를 찾아냈다. 바로 케임브리지에서 제일 유명한 빵집 피츠빌리스였다. 하우저는 거의 매일 오후 4시 회사 앞을 지나가는 누구에게나 피츠빌리스의 케이크와 차를 대접했고, 이 소문이 퍼지게 했다.

두 사람은 1978년 컨설팅회사 케임브리지 프로세서 유니트(CPU)를 설립했다(이후 CPU사는 에이콘 컴퓨터라는 회사를 별도로 만들었다). CPU사는 인재가 필요했다. 그래서 하우저는 비슷한 생각을 가진 컴퓨터 애호가들이 모인 케임브리지대학 프로세서그룹(CUPG)에서 스티브 퍼버를 발견하고 그를 영입하고자 했다. 퍼버는 “하우저는 나한테 관심이 있었지만, 나는 땜질에 관심이 있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돈은 오가지 않는 상태로, 퍼버는 하우저가 필요한 전자제품을 설계하고, 하우저는 퍼버의 취미생활에 필요한 부품들을 공급했다.

또 다른 멤버인 로저 윌슨도 CUPG에 합류했다. 하우저가 윌슨의 졸업식 날 윌슨의 부모를 모시고 강변의 그랜트체스터에서 크림티를 대접하며 윌슨을 채용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그 자리에서 그들은 연봉 1,200파운드 등 윌슨의 근무 조건에 합의했다. 아무튼 ARM의 탄생과 발전에는 여러 전환점이 있었으나, 커리가 BBC마이크 프레젠테이션을 완벽하게 해내지 않았다면, 하우저가 윌슨과 퍼버를 부추겨 며칠간 강행군하도록 하지 않았다면, 에이콘이 공급한 BBC마이크로는 없었을 것이다. BBC마이크로의 성공이 없었다면 오늘날 ARM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헛간에 자리 잡은 13인


시골의 어떤 곳:
이스트케임브리지셔의 조용한 마을 스와프햄 불벡은 길버트와 설리번의 작품을 1982년에 처음으로 무대에 올렸다. 공연은 ‘롱반’이라는 이름의 건물에서 6월에 열렸는데, 이때는 주로 칠면조 사육장으로 쓰였다. 새로운 규제로 인해 칠면조 사육을 접게 된 건물주 데이비드 레이너는 농장의 롱반과 하비스반을 비롯해 헛간 4개 동이 거의 놀게 되자 새로운 수익을 만들어내기 위해 1980년대 말 무렵 헛간들을 사무용 건물로 개조했다.

모든 회사는 어딘가에서 시작한다. 아이디어가 제품이 되고 투자자의 자금과 인력이 투입되어 전략이 구체화되는 순간이 바로 그 시작이다. 커리와 하우저를 비롯한 13인은 하비스반에 입주하기로 결정했고, 1991년 3월 마침내 스와프햄 불벡의 거주자 명단에 새 이름이 추가되었다. 어드밴스드 리스크 머신즈(Advanced RISC Machines Ltd, ARM)였다.

새로운 후원자와 사업계획:
원래 노동자의 생산성을 높임으로써 영국의 전쟁 수행 능력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회사인 PA컨설팅에서 컴퓨터를 활용한 디자인과 제조 기법을 자문했던 말콤 버드가 1989년 말 에이콘 컴퓨터의 테크니컬 디렉터로 입사했다. 그는 초기에 다양한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그중 하나는 ARM을 활용한 제품 개발이었고, 다른 프로젝트는 ARM에 투자할 누군가를 찾는 일이었다. 1990년 5월 이후 그는 애플과의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애플 본사를 정기적으로 방문했다. 한번은 남자 한 명이 회의실로 느긋하게 들어오더니 구석에 자리 잡고 몇 분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회의를 경청했다. 나중에 버드는 그 사람이 애플 CEO 존 스컬리임을 알게 되었다.

애플은 곧바로 ARM을 인수할 수 있었지만, 양쪽 모두 상대가 더 많은 통제권을 갖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인트벤처를 만드는 방안이 빠르게 유력해졌다. 애플은 신설 법인에 150만 파운드를 출자해 43% 지분을 갖기로 합의했다. 에이콘도 동일한 지분을 취득했는데, 대가는 자금이 아니라 지식재산권과 조인트벤처에 투입할 인력이었다. 그리고 VLSI 테크놀로지가 25만 파운드와 자신들의 소프트웨어 툴 활용의 대가로 나머지 지분을 받았다. 애플은 ‘에이콘 RISC 머신즈’의 ‘에이콘’을 ‘Advanced‘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쟁사로 여겨지는 업체와 너무 긴밀하게 거래한다고 비쳐지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11월에 이 투자 안건이 애플 이사회에서 통과되었다.

제이미 어카트가 새 벤처의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그는 에이콘으로부터 ARM의 지식재산을 떼어내고, 팀을 12명으로 추렸다. 어카트는 이 숫자를 이 벤처를 성공으로 이끄는 데 필요한 최소 인원이라고 판단했다. 애플, 에이콘, VLSI가 합작 투자한 회사는 1990년 10월 16일 설립되었고, 11월 22일에 사명을 ‘어드밴스드 RISC 머신즈 홀딩스 유한회사’로 변경했다. 11월 27일, 보도자료를 통해 회사 설립을 알리고 애플과 에이콘을 넘어 사업을 확장하겠다고 밝혔다. 목표는 ‘성장하는 저비용·저전력·고성능 32비트 RISC 컴퓨터 칩 시장 공략’으로 잡았다. 전략 중에는 “개인용·휴대용 컴퓨터와 전화기, 소비자가전 및 자동화 전자기기에 내장된 제어장치에 공급”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노키아의 미친 휴대전화가 표준을 정하다


최악의 거래:
휴대전화를 구동하는 세 가지 주요 요소는 두뇌에 해당하는 마이크로프로세서와 ASIC(주문형 반도체), DSP(Digital Signal Processor)였다. 텍사스인스투루먼트(TI)는 노키아의 1세대 디지털 휴대전화에 이 셋 중 하나도 공급하지 못했다. 그러나 2세대 때에는 AT&T를 제치고 DSP를 납품하는 성과를 일궈냈다. 노키아의 3세대 휴대전화 개발에 앞서 TI와 노키아 두 회사의 최고 기술인력 10명이 함께 숲속으로 들어가 사흘 동안 일하고 식사하고 술 마시고 사우나도 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동전화의 미래를 향한 로드맵을 그려서 들고 나왔다.

그들은 디지털 휴대전화 기술이 세상을 장악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음을 감지했다. 그러려면 단말기가 훨씬 작아야 했고 배터리는 한번 충전되면 며칠은 가야 했다. 저전력 소비가 필수적이었다. 노키아는 모토롤라로부터 시장 1위 자리를 되찾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모색했다.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잠재적인 한 가지 해법은 세 부품의 통합이었다. 마이크로콘트롤러와 ASIC, DSP를 이른바 ‘베이스밴드 칩’ 하나에 통합해 이 칩이 모든 무선통신 기능을 수행하도록 하는 방안이었다. 이 프로젝트에 양사 개발 인력이 도합 수백 명 투입되었는데, 그들은 프로젝트 명이 공교롭게도 ‘미친 전화(the MAD phone)’라는 데에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MAD는 마이크로콘트롤러와 ASIC, DSP의 약어였다.

마침내 1997년 12월에 노키아의 6110 모델이 공개되었다. 통화시간 5시간과 원터치 음성메일 버튼, 35개 연결음을 자랑했다. ARM으로서는 자신들의 설계를 기반으로 한 프로세서가 내장된 첫 휴대전화였다. 그리고 ARM 덕분에 노키아는 자체 칩셋의 새로운 기원을 열 수 있었다. 신제품에 들어간 부품 수가 반으로 줄었고, 전력 소비량은 경쟁 제품을 크게 앞질렀다. 그 결과 배터리 크기가 줄고 무게가 137그램으로 가벼워져, 과거의 벽돌폰이 진정한 포켓 크기로 줄어들 수 있었다. TI도 수혜자였다. 2000년까지 TI의 매출 중 85%가 DSP 및 이와 함께 작동하는 정보를 변환하고 압축하는 아날로그 칩들에서 나왔다. 그리고 ARM의 미래도 바뀌었다. ARM7TDMI 설계는 이후 20년이 지나도록 매년 수억 회 이상 판매되었고, 휴대전화와 거리가 먼 기기에도 활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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