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세계경제
김상조 지음 | 생각의힘
21세기 세계경제
김상조 지음
생각의힘 / 2023년 8월 / 352쪽 / 22,000원
프롤로그 : 21세기 세계경제와 한국경제 개관 - 뉴노멀의 충격인가, 올드노멀의 귀환인가
한국경제의 성과를 결정하는 세 차원의 요인한국경제나 세계경제를 주제로 강의·강연을 할 때 도입 부분에서 당부하는 이야기가 있다. 한국경제의 성과를 좌우하는 세 차원의 요인을 구별하고 그 상호 관계를 고민해 보라는 취지의 말이다. 여기서 핵심은 수평적으로 열거된 ‘세 개의 독립된 요인’이 아니라, 추상 수준을 달리하는 ‘세 차원의 요인’이라는 데 있다. 글로벌 차원의 요인, 아시아 차원의 요인, 그리고 한국의 특수한 요인이 그것이다.
‘글로벌 차원의 요인’은 전 세계 모든 나라를 관통하는 시대적 흐름을 말한다. 20세기 말에는 세계화라는 용어가 그 흐름을 대변해 왔다면, 작금의 시점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 4차 산업혁명, 기후변화, G2 패권경쟁 등이 과거의 세계화 흐름을 비트는 새로운 글로벌 차원의 요인들로 부상했다. 이러한 새로운 요인들이 21세기 세계경제의 향배를 좌우할 가장 중요한 동인이라는 점, 그 결과가 20세기 말 ‘미국 중심의 단극 체제’ 또는 ‘신자유주의 질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리라는 점은 대부분 동의하리라고 믿는다. 이 요인들을 이 책의 1장에서부터 4장까지 차례대로 살펴볼 예정이다.
‘아시아 차원의 요인’은 일본→아시아의 네 마리 용(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중국→아세안 등으로 이어지는 아시아 지역의 분업구조를 말한다. 이들은 정부주도·수출중심 경제체제라는 특성을 공유하면서도 경제발전 단계에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밀접한 분업구조를 형성하면서 빠른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성장의 결과로써 점차 이들 국가 사이에도 경쟁 관계가 두드러졌고, 최근에는 글로벌 가치사슬(GVC) 내지 공급망이라 불리는 국제 분업구조의 재편이 다이내믹하게 전개되는 지역으로 떠올랐다. 특히 이를 경제안보 차원에서 접근하는 강대국의 전략적 선택이 해당 국가는 물론 아시아 지역을 넘어 세계경제의 향배를 좌우하는 요인이 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책의 5장과 6장에서는 GVC 확산 및 공급망 단절이 가져온 충격, 이에 대한 주요국의 대응 전략을 차례로 살펴볼 예정이다.
‘한국의 특수한 요인’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또는 정책적 관심도가 그리 높지 않은 요인을 말한다. 세계 유일의 분단 상황에 따른 남북한의 긴장 관계가 전형적인 예이며, 그 외에도 1960년대 이래의 놀라운 성장 과정에서 누적된 구조적 요인들, 즉 재벌의 경제력 집중 및 지배구조 문제, 하도급 구조 등에서의 불공정 거래 관행, 이중적 노동시장 및 대립적 노사 관계 등이 한국경제를 묘사할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한국적 특수성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관찰되지만 정도가 유독 심각한 문제, 가령 저출생·고령화 문제나 부동산 문제, 교육 문제 등도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특수성이 한국인 개개인의 인식과 한국 사회 전체의 행동을 지배하는 현실적 요인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한국경제의 현실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마땅히 상기 세 차원의 요인들을 총체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당연한 것이 언제나 더 어렵기에, 일반적으로는 ‘다른 조건은 동일’하다는 가정하에 특정 요인에만 관심을 집중하는 분석 방법을 택한다. 그래야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많은 요인 중 어떤 특정 요인에 집중할 것이냐는 연구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문제는 경제학을 비롯한 사회과학 영역에서, 연구자의 선택은 이미 가치판단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즉, 한국경제의 성과를 좌우하는 세 차원 중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 접근할 것이냐의 선택 자체가 이미 진단과 처방의 방향을 어느 정도 결정하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이다. 한국경제를 주제로 한 토론에 참여하다 보면 이러한 문제를 자주 접할 수 있다. ‘같은 한국말을 쓰는 사람들이 맞나?’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토론 패널 간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 건전한 토론 문화가 정착되지 않아서 그렇다는 분석이 일반적이지만, 한편으로 상이한 차원에서 출발하여 상이한 결론을 예정한 ‘토론을 위한 토론’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진영 간 전쟁’이나 ‘진영 내 투쟁’에서는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강의실에서 학생들을 대할 때까지도 그래선 안 될 것이다. 각 차원의 분석이 가지는 장점과 한계를 균형이 되게 보여주면서 학생들이 스스로 판단할 능력을 키워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세 차원의 요인에 대한 개관
글로벌 차원 - 급락한 세계 무역탄력성: 글로벌 차원의 지표로서 1950년대 중반 이후 최근까지의 ‘세계 무역탄력성(세계 수출 증가율÷세계 경상GDP 증가율)’ 추이를 살펴보고자 한다. 참고로 무역탄력성이 2라면, 전 세계의 수출이 소득보다 두 배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식 통계는 없지만 20세기 전반부의 세계 무역탄력성은 1보다 낮았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20세기 전반부는 보호무역과 지역블록화로 특징지어지는 만큼 무역탄력성이 낮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새로운 패권국가로 등장한 미국의 주도하에 세계경제질서의 재편이 이루어졌는데, 그 핵심축 중의 하나가 1947년에 출범한 GATT 체제이다. 이후 1970년대까지 여러 차례에 걸친 다자간 관세 인하 협정이 성공리에 진행되었고, 이러한 자유무역질서의 확산 속에 무역탄력성은 드디어 1을 넘어 1.5 수준에서 안정적인 모습을 이어갔다. 이후 1995년에 WTO 체제가 출범하였고, 2001년에는 중국이 WTO에 가입함으로써 세계화로 가는 길의 정점을 찍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1970년대 두 차례의 석유파동과 1990년대 말 아시아 경제위기 등의 충격에 따라 부침을 겪었지만, 세계 무역탄력성이 2를 넘어 3에 육박할 정도로 국제무역이 급팽창하였다. 원자재-소재-부품-반제품-최종재로 이어지는 가치사슬이 전 세계로 분산 배치되는 GVC가 형성되었고, 특히 중국과 아세안 등 아시아의 신흥국들이 적극적으로 GVC에 참여하는 전략을 통해 고도성장을 이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세상이 달라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1년 남유럽 재정위기로 인해 자본주의의 핵심 국가들이 큰 충격을 받았고, 장기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반면 중국은 공산당의 강력한 지배하에 경제적 어려움을 넘어섰을 뿐만 아니라 대국굴기의 꿈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이른바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시작되었다. 특히 미국 트럼프 행정부 시절의 거친 무역전쟁을 거친 이후로 그 전선은 첨단기술 개발과 보호, 외국인투자 규제, 산업정책의 부활, 공급망 재편 등으로 확대되었다.
한편 EU와 일본도 경제안보를 최우선 순위에 올려놓고 각자의 전략적 위상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들을 추진하였다. 이에 따라 세계 무역탄력성에도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다. 장기침체로 세계 경제성장률이 낮아졌지만, 수출 증가율은 그보다 더 빠르게 하락하면서 2010년대 중반 이후 무역탄력성이 1 근처로 곤두박질친 것이다. 그러면 미래는 어떨까?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지만, 무역탄력성이 2 수준으로 재차 상승하여 무역이 성장을 선도하는 호시절이 다시 오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다면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인 한국은 이러한 세계경제 환경의 변화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자유무역과 세계화의 시대는 끝났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지만, 세계경제의 상호의존성이 깊어진 오늘날의 상황에서 한 세기 전의 보호무역과 지역블록화로 회귀하기는 어렵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다만 세계경제질서 재편의 방향과 속도를 조망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 4차 산업혁명의 흐름, 기후변화 대응, G2 패권경쟁 등 글로벌 차원의 공통 요인들에 대한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이 책의 1장에서 4장까지는 그러한 내용을 다루었다.
아시아 차원 - 보완 관계에서 경쟁 관계로 바뀐 아시아의 분업구조: 글로벌 차원의 요인이 단선적으로 각국의 경제적 성과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주요 교역상대국 간의 비교우위구조, 분업구조, 무역구조에 따라 글로벌 차원의 공통 요인도 각국에 차별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아시아 지역의 분업구조는 협력 못지않게 경쟁의 양상을 띤다. 따라서 고정된 것이 아니라 동태적으로 변화한다. 한국 입장에서는 일본의 소재·부품·장비의 기술경쟁력에 짓눌리고, 중국과 아세안의 가격경쟁력에 치받힌다는 샌드위치 신세의 위기감이 대두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작금의 상황에서는 이런 정도의 위기감마저도 한가하게 보인다. 다른 나라들도 기존의 분업구조에 안주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은 한국의 추격에 대해 불편한 심경을 감추지 않았는데, 2019년 일본의 수출규제는 양국 간 긴장 관계가 언제든지 경제적 현실로 폭발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중국은 방대한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중간재의 수입대체와 첨단기술 개발을 추진함으로써 조립강국을 넘어 제조강국으로 발돋움하였다. 그 결과 한·중 간 경제 관계의 성격이 수직적 분업구조에서 수평적 경쟁구조로 바뀐 지 오래고, 미래 첨단분야에서도 한국을 크게 앞질렀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한편 아세안은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완화(차이나+1)하거나 대체(포스트 차이나)하는 유력한 생산기지 후보지로 부상하였지만,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교차하는 이 지역에서 한국의 입지는 매우 불확실하다.
그렇다면 한국이 아시아 지역의 분업구조에서 경쟁우위 요소를 유지·강화하면서 새로운 협력 질서를 창출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전략을 택해야 하는가? 간단치 않다. 누군들 정답을 알겠는가? 이 책의 5장에서부터 에필로그까지는 이러한 난제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국내 차원 - 옛말이 된 ‘다이내믹 코리아’: 앞서 글로벌 차원이나 아시아 차원에서 한국을 둘러싼 대외 환경이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이에 대응하는 한국의 내부 상황은 어떠한가? 우리나라는 눈부신 성장의 기록을 갖고 있다. 해방 당시 세계 최빈국으로 출발했으나 신흥국 단계를 거쳐 2021년에는 유엔무역개발협의회가 공식적으로 한국을 선진국 그룹으로 편재했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신생국 중 유일무이한 기록이다. 그야말로 ‘다이내믹 코리아’다.
그런데 2010년대 이후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를 살펴보면, 그 밋밋한 모습이 한국경제 특유의 역동성이 소진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자아내게 한다. 한번 생각해보자.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충격과 그 이후 인플레이션·전쟁·경기침체로 이어지는 국내외의 불안정한 상황이 위기를 현실화하는 방아쇠가 될 것인가? 아니면 한국의 역동성을 되살리는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인가? 나 역시 답을 알지 못한다. 다만, 예정되어 있지 않은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선택 가능한 영역과 그 선택의 비용을 대략적으로나마 확인해 보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목적이다. 이를 위해 한국의 특수한 요인에 대한 분석은 차후의 과제로 넘기고 글로벌 차원의 요인과 아시아 차원의 요인에 우선 집중하고자 한다.
G2 패권경쟁 - 안보 논리가 지배하는 21세기 세계경제질서
팍스 아메리카나의 동요
21세기의 투키디데스 함정 - 린이푸 교수와 퍼거슨 교수의 내기: 기원전 5세기 말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은 각각 스파르타와 아테네를 맹주로 하는 두 동맹으로 나누어졌고, 결국 30년에 걸친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치달았다. 한편 그리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급부상하는 신흥 세력 아테네와 이에 위협을 느낀 기존 강자 스파르타 사이의 갈등 관계가 전쟁 발발의 근본 배경이었다고 지적했는데, 후대의 학자들은 이와 같은 패권을 둘러싼 신구 세력의 충돌을 ‘투키디데스 함정’이라고 부른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스파르타의 승리로 끝났지만, 국력을 소진한 두 도시국가 모두 쇠퇴하였고, 그리스의 패권은 마케도니아로 넘어갔다. 한편 19세기 말 영국의 패권에 독일이 도전했지만, 20세기 전반기 세계대전을 거치며 중심은 대서양 건너 미국으로 넘어갔다. 21세기는 또 다른 투키디데스 함정을 목도하고 있다.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 이후 영원할 것 같았던 미국 중심의 단극 체제가 중국의 급부상으로 흔들리고 있다. 바야흐로 G2의 시대다. 21세기 패권경쟁의 결과는 어찌 될 것인가?
참고로 패권국가에는 특권과 함께 비용이 수반된다. 패권국가는 자신의 가치체계를 보편적 정당성을 가진 것으로 전 세계에 확산하고, 자신의 경제적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세계경제질서를 형성하는 등의 특권을 누린다. 하지만 동시에 패권국가는 다른 나라들이 이러한 질서를 받아들이도록 물리적으로 강제하거나 경제적으로 유인하는 데 필요한 막대한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그러므로 결국 패권국가의 지배는 다른 나라를 압도할 수 있는 경제력을 필수 전제조건으로 한다. 이에 대해 살펴보자.
1970년대 이후 미국은 전 세계 실질GDP에서 27~28%의 점유 비중을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그리고 1990년대에는 동구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일본 경제도 장기 침체에 빠지면서 미국 중심의 단극 체제가 더 강화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경제적 힘의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중국은 고도성장을 지속한 데 비해 다른 나라들은 금융위기와 재정위기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1970년에 미국 대비 5%에도 미치지 못하던 중국의 실질GDP가 1988년에 10%, 2006년에 30%, 2012년에 50%, 2019년에 70%를 넘었고, 2021년에는 77%에 이르러, 미국과 경쟁할 잠재력을 갖추게 되었다. 21세기에 투키디데스 함정이 다시 언급되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
역사를 보면 투키디데스 함정은 두 강대국 간의 물리적 충돌, 즉 전쟁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21세기의 투키디데스 함정은 지금까지는 경제전쟁의 양상을 띤다. 이 경제전쟁이 물리적 충돌을 대체하는 예방 전쟁에 그칠 것인지, 본격적인 물리적 충돌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단계에 불과한 것인지는 현재로서는 알 길이 없다. 어떠하든 간에, 이 전략 게임은 수십 년에 걸친 장기전이 될 공산이 크다.
아마 정치·외교·안보·군사 등 비경제 영역의 흐름이 G2 패권경쟁의 향배를 결정할 더 근본적인 요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에서 자세히 다루기에는 그 범위가 너무 넓다. 따라서 다음에서는 국제통상체제 및 국제통화체제에 초점을 맞추어 세계경제질서의 변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패권국가로 등장한 미국이 GATT와 IMF 체제의 출범을 통해 새로운 세계경제질서를 만들었다면, 그 질서가 동요하고 재편되는 과정이야말로 21세기 G2 패권경쟁을 이해하는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WTO 체제의 위기와 통상질서의 변화
WTO의 위기 - 미국이 WTO를 비난하고, 중국이 옹호하는 역설: 국제기구가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조직과 규범이라는 2가지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 그런데 GATT 체제는 2가지 모두에서 결함을 안고 출범했다. 애초의 조약 초안에는 ITO(International Trade Organization)라는 국제기구의 설립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미국이 의회 비준에 실패하면서 ITO 설립은 무산되었다. 그 결과 GATT 체제는 의제 설정과 결정 그리고 집행을 주도할 조직 없이 규범으로만 출범했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GATT 체제는 미국의 힘을 바탕으로 관세 인하 측면에서 혁혁한 성과를 만들어냈다.
그 이후 무역협상의 초점은 비관세장벽의 철폐와 함께 농산물·서비스·지식재산권 등 기존 GATT 체제에서 자유무역 원칙의 예외로 인정되던 분야에까지 확대하는 것으로 이동하였는데, 1986년에 시작된 우루과이라운드가 그것이고, 10년 가까운 논의 끝에 타결되어 1995년 WTO 체제로 출범하였다. WTO 체제는 기존 GATT 체제와 대비된다. 우선, WTO는 무역규범 창설, 무역규범 이행·감시, 무역분쟁 해결 등의 세 가지 기능을 모두 갖추었다. 또한 각각의 기능을 담당하는 일반이사회, 무역정책검토위원회, 분쟁해결위원회가 자율적 권한을 갖고 활동하는 3권분립의 트로이카 조직 체계를 구축하였다. 또한 기존 GATT 체제의 조부 조항(Grandfather clause)을 폐지함으로써 규범의 실효성도 높였다. 그러나 WTO 체제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 실망으로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