칩워, 누가 반도체 전쟁의 최후 승자가 될 것인가
크리스 밀러 지음 | 부키
칩워 - 누가 반도체 전쟁의 최후 승자가 될 것인가
크리스 밀러 지음
부키 / 2023년 5월 / 656쪽 / 28,000원
들어가는 말2020년 8월 18일, 미군 구축함 머스틴호가 대만해협 북쪽 끝으로 진입했다. 포를 남쪽으로 겨냥한 채 대만해협을 항행함으로써 그 공해(公海)가 중국의 지배 영역이 아님을 보여 주는 것이 머스틴호의 단독 수행 임무 내용이었다. 머스틴호로 들어가 보자. 여러 색 스크린이 눈부신 빛을 뿜어내는 어두운 방 안에 선원들이 한 줄로 앉아서 화면을 보고 있다. 화면은 인도-태평양 일대의 비행기, 드론, 배, 인공위성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데이터로 가득하다. 갑판에는 수십, 아니 수백 킬로미터 밖에 있는 비행기, 배, 잠수함을 정밀 타격할 수 있는 96기의 수직 발사 장치가 준비되어 있다.
머스틴호가 대만해협으로 들어옴에 따라, 중국 인민해방군은 보복 조치로 대만 주변에서 실탄을 이용한 사격 훈련을 개시했다. 한 중국 신문의 표현을 빌리면 “무력에 의한 통일 작전”의 연습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날 중국 지도자들의 가장 골치 아픈 근심거리는 미 해군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이른바 ‘수출 통제 명단’이 더 급했다. 미국 기술의 해외 이전을 규제하는 수출 통제 명단은 지금까지 일차적으로 미사일 부품이나 핵물질 같은 군사 시스템의 판매를 방지하는 데 활용되어 왔다. 하지만 이제 미국은 군사 시스템뿐만 아니라, 소비재에도 두루 사용되어 온 컴퓨터 칩에 대해 극적으로 바싹 조이기 시작한 것이다. 규제 대상은 스마트폰, 통신 설비,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 그 외에도 다양한 고급 기술을 다루는 중국의 IT 대기업 화웨이였다.
미국이 볼 때 화웨이의 제품이 너무나 매력적인 가격을 달고 나오고 있는 것은 중국 정부의 보조금에 어느 정도 힘입은 덕분이며, 그리하여 화웨이가 차세대 통신 네트워크의 근간을 차지하게 될 수도 있었다. 세계의 기술 인프라에 대한 미국의 지배가 흔들릴 수 있는 것이다. 이 위협에 맞서기 위해 미국은 화웨이가 미국 기술을 이용한 고성능 컴퓨터 칩을 구입하지 못하도록 막아 버렸다. 화웨이의 글로벌 확장은 곧 발이 묶이고 말았다. 제품 라인 전체가 생산이 불가능해졌던 것이다. 매출이 곤두박질쳤다.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기업은 모두 현실을 깨달았다. 모든 현대 전자 기기가 의존하고 있는 반도체는 외국인이 만들고 있고, 중국의 목숨이 반도체에 달려 있다는 것을.
미국은 여전히 실리콘 반도체를 꽉 틀어쥐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중국은 반도체 수입에 석유보다 많은 돈을 쓴다. 그 반도체는 스마트폰에서 냉장고까지, 중국 국내에서 소비되거나 해외로 수출되는 그야말로 모든 기기에 꽂혀 있다. 그래서 중국은 최고의 지적 자원과 수십억 달러의 예산을 투입해 자체 반도체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칩으로 자신들의 목을 조르는 미국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다. 이제 미국과 중국의 대결은 컴퓨터의 힘(computing power)에 의해 판가름 날 것이다.
우리는 칩에 대해 별로 고민하지 않는다. 하지만 반도체는 현대 세계를 만들어 왔다. 여러 나라의 운명은 컴퓨터의 힘에 따라 좌우되어왔다. 우리가 아는 세계화는 반도체 및 반도체로 만들어내는 전자 제품의 교역이 아니었다면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미국의 군사 우위는 칩을 군사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에 크게 빚지고 있다. 아시아는 실리콘을 발판 삼아 지난 20세기의 절반 동안 무섭게 부상할 수 있었다. 아시아 국가는 경제가 성장하면서 칩을 찍어내고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조립하는 일에 특화되었는데, 이 모든 것은 집적회로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머스틴호가 남쪽으로 항해하는 와중에도 대만해협 양쪽의 공장과 조립 시설은 아이폰 12의 부품을 찍어내고 만들어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2020년 10월 신제품 발표까지 고작 두 달 남은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그 지역 반도체 산업의 매출 중 4분의 1이 스마트폰에서 나왔는데, 새 핸드폰을 살 때 소비자가 내는 돈 중 큰 부분이 핸드폰 안에 있는 반도체 값으로 들어간다. 지난 십수 년 동안 아이폰은 매 세대마다 세계에서 가장 진전된 기술의 프로세서를 탑재하고 출시되었는데, 아이폰 한 대가 작동하려면 종합적으로 12개도 넘는 반도체가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 애플은 그 칩들 중 단 하나도 스스로 만들지 않는다. 아이폰의 칩 중 대부분은 기성품이다.
메모리 칩은 일본의 키오시아에서, 무선 주파수 인식 칩은 캘리포니아의 스카이웍스에서, 오디오 칩은 텍사스주에 소재한 시러스로직에서 구입한다. 아이폰의 운영 체제를 작동시키는 프로세서는 애플이 디자인하는데, 그럼에도 애플 본사는 그 칩을 제조할 능력이 없다. 심지어 미국, 유럽, 일본, 중국의 그 어떤 회사도 그런 걸 만들어 낼 수 없다. 오늘날 애플이 사용하는 가장 수준 높은 프로세서, 다시 말해 세계에서 가장 발전한 반도체일 수 있는 무언가는, 어떤 건물 안에 있는 어떤 한 회사, 인류 역사상 가장 값비싼 공장에서만 만들어 낼 수 있는 물건이며, 2020년 8월 18일 아침 현재, 머스틴호의 좌현에서 불과 수십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그런 건물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오늘날 ‘대만 반도체 제조 회사’, 대개 TSMC라는 약칭으로 더 알려진 그 기업보다 그런 일을 잘 해내는 회사는 없다.
오늘날 우리는 실리콘밸리라는 지명을 들으면 소셜 네트워크와 소프트웨어 기업을 떠올리지, 그 계곡의 이름이 왜 ‘실리콘’ 밸리인지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터넷이건 클라우드건 소셜 미디어건 모든 디지털 세계는 엔지니어들이 실리콘에서 질주하는 전자의 가장 미세한 흐름을 통제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에 가능하다. 지난 반세기 동안 1과 0을 기억하고 처리하는 비용이 10억분의 1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다면 “빅 테크(Big tech)”는 존재할 수도 없었다. 이 경이로운 도약은 명민한 과학자들과 노벨상에 빛나는 물리학자들에게 일부 빚지고 있다. 하지만 모든 발명이 성공적인 창업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모든 스타트업이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는 것 또한 아니다.
반도체를 수백만 개 이상 생산해 낼 수 있는 기술을 고안한 기업 덕분에, 비용을 낮추기 위해 불굴의 의지로 밀어붙인 관리자들 때문에, 반도체를 사용할 새 방법을 상상해 낸 창조적 기업가 덕분에 반도체는 오늘날 사회의 모든 영역으로 퍼져나갈 수 있었다. 무어의 법칙 탄생에는 물리학자와 전기공학자들만큼이나 반도체 제조 전문가, 공급망 전문가, 마케팅 관리자들의 이야기까지 담겨 있는 것이다.
한편 반도체 산업은 일단 형태를 갖추고 난 후로 실리콘밸리를 빼놓고는 성립할 수 없게 되었다. 오늘날 반도체 공급망은 여러 도시와 국가가 제공하는 부품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현재 생산되는 거의 모든 칩은 실리콘밸리와 접점을 지니고 있거나, 캘리포니아에서 설계되고 만들어진 도구로 제작된다. 미국의 과학 분야 전문가 풀은 굉장히 넓다. 미국의 과학계는 정부 연구 자금을 먹고 자라며, 다른 나라의 최고 과학자들을 낚아채오는 식으로 힘을 기른다. 이것이 기술 우위를 지킬 수 있는 핵심 지식을 제공하고 있다. 또 미국의 벤처 캐피털사와 주식 시장은 새로운 회사의 성장에 필요한 스타트업 자금을 제공하며, 실패한 회사는 무자비하게 솎아내 버린다.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큰 미국의 소비 시장은 수십 년간 새로운 유형의 칩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개발 자금을 대며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다른 나라들은 스스로의 힘만으로 이 모든 것을 이겨 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중 실리콘밸리의 공급망에 깊숙이 파고드는 쪽을 택한 나라는 성공을 거두었다. 유럽은 칩을 만드는 데 필요한 반도체 장비를 생산하고 칩 아키텍처를 설계하는 데에서 넘볼 수 없는 영역을 만들었다. 대만, 한국, 일본 정부는 기업에 보조금을 제공하고, 훈련 프로그램에 자금을 댔으며, 환율을 낮게 유지하고, 외국산 반도체에 수입 관세를 매기는 등의 방식으로 자국의 반도체 산업에 길을 터 주었다. 이들 나라는 이런 전략으로 다른 나라가 따라잡을 수 없는 생산력을 갖출 수 있었으나, 동아시아 국가의 성취는 실리콘밸리와의 파트너십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근본적으로는 미국의 장비, 소프트웨어, 거래처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미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반도체 회사들은 전 세계로 공급망을 펼쳐 나가 비용을 절감하고 생산 전문성을 길러 나갔다. 무어의 법칙은 이를 통해 가능했다.
미국, 중국, 대만의 반도체 산업은 복잡하게 서로 얽혀 있다. 이 복잡한 관계를 가장 잘 이해하는 방법은, 2020년까지 미국의 애플과 중국의 화웨이 양쪽을 최대 고객으로 삼고 있던 그 회사를 만들어 낸 어떤 사람에 대해 고찰해 보는 것이다. 모리스 창은 중국 본토에서 태어나 2차 세계대전 당시 홍콩에서 성장했다. 하버드, MIT, 스탠포드에서 수학한 그는 댈러스의 텍사스인스트루먼트에서 일하며 미국 반도체 산업의 초기부터 힘을 보탰다. 모리스 창은 미군의 전자 장치 개발을 위한 극비의 기밀 정보 취급 허가를 마친 인물로, 대만을 세계 반도체 제조의 핵심지로 만들어냈다. 베이징과 워싱턴의 몇몇 국제 전략가는 두 나라의 기술 영역을 완전히 떼어 내는 미래를 꿈꾼다. 하지만 칩 디자이너, 화학 물질 공급, 제조 설비 생산자 등으로 이루어진 촘촘하고 효율적인 국제 분업 체계는 그렇게 손쉽게 떼어낼 수 없는 것이며, 모리스 창 같은 사람들이 바로 그런 시스템을 만들었다.
물론 그건 뭔가 폭발하기 전까지의 일이다. 중국이 대만을 “재통일”하기 위해 침략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자 베이징은 단호하게 부정했다. 하지만 중국이 상륙작전을 개시한다면 세계 경제는 반도체발 충격에 크게 휘청댈 것이고, 이는 중국이 벌일 수 있는 일 중 이보다 더 극적인 일은 떠올리기 어렵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정치적 갈등 상황에 글로벌 경제 전체가 인질로 잡혀 있는 이 상황은 역사가 낳은 오류처럼 보일 지경이다. 하지만 대만, 한국, 그 외 동아시아가 최신 반도체 생산 거점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정부 관료와 기업 경영자들이 내린 일련의 의도적 결정이 이토록 길게 늘어진 공급망을 만들었으며 오늘날 우리는 그것에 의존하고 있다.
저임금 공장 노동자를 찾던 칩 생산자들은 아시아의 저임금 노동력에 매력을 느꼈고, 동아시아 정부와 기업은 더 발전된 기술을 배우고 국산화하기 위해 해외 생산 기지 역할을 자임했다. 자본주의는 경제적 효율을 끝없이 요구하며, 그로 인해 기업은 생산비 절감 및 합병의 요구에 시달려야 했다. 기술 발전은 무어의 법칙에 따라 꾸준히 이루어졌으며, 그에 따라 점점 더 고도의 복합 소재, 복잡한 장비, 까다로운 공정이 요구되었다. 이런 것은 오직 글로벌 마켓에서만 공급과 투자가 가능한 것이었다. 게다가 소비자들은 더 많은 연산력을 가진 제품과 서비스를 걸신들린 듯이 소비해 댔다. 오늘날 이렇게 된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실리콘 시대의 기원으로 돌아가 보아야 한다.
냉전의 칩
강철에서 실리콘까지1945년, 전쟁의 끝을 알리는 라디오 방송이 온 세상에 울려 퍼졌다. 도쿄 교외에서 근무 중이던 젊은 엔지니어 모리타 아키오는 히로히토 천황의 항복 선언을 듣기 위해 제복을 갖춰 입었다. 동중국해 건너편의 모리스 창은 전쟁이 끝났고 일본이 패배했다는 소식에 환호하며 잠깐이나마 친구들과 테니스, 영화, 카드 게임 등 십 대 소년다운 활동을 즐겼다. 전쟁 그 자체보다 소련 점령 기간 동안 훨씬 더 큰 고통을 겪었던 헝가리의 앤디 그로브와 그의 어머니는 방공호 바깥으로 천천히 기어 나왔다.
2차 세계대전의 결과는 산업 생산력에 의해 결정되었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이 군사력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강대국은 비행기와 탱크를 수천 대씩 생산해 내고 있었으나, 동시에 로켓이나 레이더 같은 새로운 장치를 개발하는 연구소도 세웠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파괴한 원자폭탄 두 개는 석탄과 강철로 규정되던 시대가 원자력 시대로 바뀔 것임을 예감하게 해 주었다.
1945년, 모리스 창과 앤디 그로브는 학생이었고, 기술과 정치를 고민하기에는 어린 나이였다. 모리타 아키오는 달랐다. 그는 20대 초반이었고 전쟁의 마지막 몇 달 동안 열추적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었다. 일본은 실용화할 수 있는 유도 미사일 시제품을 내놓는 수준에도 도달하지 못했지만, 이 프로젝트를 통해 모리타는 미래를 엿볼 수 있었다. 조립 라인의 리벳공이 아니라 목표물을 식별하고 자동으로 조종하는 무기로 전쟁에서 승리하는 모습을 떠올려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치 공상과학 소설에나 나올 법한 발상이었지만 전자식 계산기의 새로운 발전을 통해 기계가 덧셈, 곱셈, 제곱근을 구하는 등의 수학 문제를 풀며 계산하는 것도 가능해지는 미래를 모리타는 어렴풋이나마 느끼고 있었다.
스위치(switch)더 나은 “스위치”가 나온다면 그것은 반도체라고 하는 물질의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이는 윌리엄 쇼클리가 오래도록 품고 있던 생각이었다. 캘리포니아공과대학에 진학한 그는 MIT에서 물리학으로 박사후과정을 마친 후 당시 과학과 공학을 선도하던 곳, 뉴저지의 벨연구소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쇼클리의 전문 분야인 반도체는 특별한 물질이었다. 대부분의 물질은 (마치 구리선처럼) 전류가 자유롭게 흐르거나, (마치 유리처럼) 전류를 차단한다. 하지만 반도체는 다르다. 실리콘이나 게르마늄 같은 반도체는 제3의 유형으로 유리처럼 그 어떤 전류도 흐르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어떤 물질이 추가되면 전기장을 띠고 전류가 흐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실리콘이나 게르마늄 같은 반도체에 인이나 안티몬을 추가하면 음전류가 흐른다. 어떤 물질에 다른 물질을 마치 약물을 투입하듯 “도핑(dopping)”하면 반도체가 된다는 사실은 새로운 유형의 장치를 만들 수 있는 기회로 보였다. 전기 흐름을 발생시키고 통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하지만 실리콘이나 게르마늄 같은 반도체성 물질에서 전자의 흐름을 제어하는 것은 여전히 머나먼 꿈이었다. 반도체의 전기적 성질이 규명되지 않은 신비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1945년, 쇼클리는 반도체 현상을 최초로 이론화하면서 “고체 상태 밸브(solid state valve)”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의 연구 노트에는 실리콘 조각에 90볼트 배터리가 연결된 모습이 스케치로 남아 있다. 쇼클리의 가설에 따르면, 실리콘 같은 반도체성 물질을 전기장 속에서 배치함으로써, 반도체의 경계선 인근에 저장되어 있는 “자유 전자”를 끌어들일 수 있었다. 전기장에 의해 충분히 많은 전자가 유도되면 반도체의 경계선은 마치 언제나 다수의 자유 전자를 지니고 있는 금속처럼 작용한다. 도체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전에는 전혀 전류를 띠고 있지 않은 물질에 전기가 통하도록 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쇼클리는 곧 실리콘 조각에 전기장을 적용하고 제거하는 장치를 만들어 보았다. 그럼으로써 마치 밸브를 열고 닫듯이 실리콘에 전자가 흐르거나 멈추게 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실험을 통해 가시적 성과를 얻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실제로는 1940년대 장비 수준이 너무도 투박한 나머지 실리콘 위 전류 흐름을 감지하지 못했을 뿐이다. 2년 후, 벨연구소에서 일하는 쇼클리의 동료 두 사람이 다른 유형의 소자를 대상으로 유사한 실험에 착수했다. 명민한 실험 물리학자 월터 브래튼과 과학자로 훗날 노벨물리학상 2회 수상이라는 업적을 세운 존 바딘은 쇼클리의 이론에 영감을 받아 금으로 된 두 개의 필라멘트를 준비하고, 그 각각에 전선을 이어 하나는 전력원에, 다른 하나는 어떤 금속 조각에 붙여서 그 필라멘트를 게르마늄 블록과 1밀리미터도 안 되는 거리만큼 떨어져 있도록 설치했다. 1947년 12월 16일 그 장치에 전원을 올린 바딘과 브래튼은 게르마늄에 전류가 흐르도록 통제할 수 있었다. 반도체 물질에 대한 쇼클리의 이론이 올바른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