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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머치머니

권오상 지음 | 인물과사상사


투머치머니

권오상 지음

인물과사상사 / 2022년 9월 / 259쪽 / 16,000원





방향성 거래 (Directional Trading)



값이 오를 것을 사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 황소와 레버리지


역사상 가장 큰 이문을 남긴 거래는 무엇일까? 검색해보면 유력한 후보가 하나 나온다. 페터 미노이트가 행한 거래다. 그는 60길더(당시 60길더는 네덜란드의 장인급 목수의 한 달 반 치 월급과 맞먹었다)에 해당하는 값을 치르고 레나페 혹은 델라웨어 부족이라고 불리는 아메리카 원주민들로부터 뉴암스테르담(오늘날 뉴욕의 맨해튼섬)을 산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맨해튼섬의 땅값은 2013년에 추산된 금액으로 대략 3,600조에 달한다. 100만 원가량의 돈이 36억 배로 불어났으니 그저 전율할 따름이다.

미노이트의 사례가 증명하는 돈을 불리는 기법은 가격이 오를 만한 무언가를 사는 것이다. 이 기법은 자명한 나머지 기술적으로 풀이할 구석이 많지 않다. 핵심은 여러 거래 대상 중 가격이 오를 것을 잘 찍는 데에 있는데, 이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차고 넘친다. 그중 어느 방법이 나와 잘 맞는지를 알아내는 것은 각자에게 달렸다. 이런 쪽으로 언급할 만한 사람이 하나 있다.

미국 웹 사이트 인베스토피아의 ‘역사상 가장 유명한 10명의 거래자’에 뽑힌 윌리엄 갠이다. 1878년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난 갠은 주식과 원자재를 주로 거래했는데, 그는 여러 거래 대상 중 무엇을 언제 거래해야 할지를 결정할 때 자기만의 비법을 동원했다. 바로 고대로부터 비밀리에 전해져 내려오는 기하학과 점성술이었다. 아무튼 많은 제자와 추종자를 거느렸던 갠은 1955년에 죽었는데, 그가 남긴 재산은 당시 돈으로 600억 원 정도라고 알려졌다. 참고로 당시의 600억 원은 소비자 물가 지수를 바탕으로 추정했을 때 지금의 돈으로 약 5,800억 원에 해당한다.

어느 방법에 의존하든 간에 변하지 않는 사실이 한 가지 있다. 시장에서 팔겠다는 사람보다 사겠다는 사람이 많아지면 가격이 올라간다는 점이다. 반대로 사려는 사람이 팔려는 사람보다 적어지면 가격은 떨어진다. 한편 금융 시장에는 가격이 오를 것이라 믿고 거래 대상을 매입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 있는데, 바로 ‘황소’다. 즉 황소는 거래 대상을 사들이는 사람이다. 그리고 여기서 여러 가지 금융 용어들이 탄생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사는 사람, 즉 황소가 많아지면 해당 거래 대상의 가격은 오른다. 그래서 이 같은 경제적 상황을 ‘황소 시장’이라고 부른다.

미노이트의 맨해튼섬 매입은 돈을 크게 불린 사례기는 하지만 옛날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니 최근의 사례들을 좀 더 살펴보자. 1952년 남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쿠스 베커는 1984년에 컬럼비아대학에서 MBA를 취득했다. 이후 남아프리카의 한 방송 미디어 회사에 들어갔고 1997년에는 최고 경영자 자리에 올랐다. 이후 베커는 2001년 ‘중국의 실리콘 밸리’라고 불리는 선전에 있는 한 회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회삿돈으로 이 회사의 주식 46.5퍼센트를 사들였다. 이때 든 돈이 384억 원이었다.

이제 2022년 2월로 가보자. 베커가 산 중국 회사의 시가 총액은 그사이 702조 원으로 뛰어올랐다. 중간에 일부 내다 팔기는 했지만 여전히 30.86퍼센트의 주식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즉 남아프리카 방송 미디어 회사는 베커 덕분에 약 217조 원에 달하는 주식을 갖게 되었다. 중간에 판 주식과 배당은 차치하더라도 남아 있는 주식의 가치만 따졌을 때 5,642배로 돈을 불린 셈이었다. 그렇다면 베커가 이끈 남아프리카 회사의 이름은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낯설 내스퍼스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내스퍼스가 산 중국 회사의 이름이 무엇이냐는 것인데, 바로 텐센트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이 베커와 같은 수익을 올리기에는 현실성이 떨어진다. 몇백억 원어치 주식을 매입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다. 그러니 다른 사례를 하나 더 살펴보자. 1962년 한 미국인이 오래된 회사 주식에 관심을 가졌다. 사양 산업인 면직물을 생산하는 회사였다. 그는 학부 졸업 후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 지원했지만 입학을 거절당했고, 결국 컬럼비아대학에서 경제학 석사를 받는 데에 만족해야 했다. 그가 면직물 회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회사의 전망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그가 관심을 가진 이유는 회사가 가진 자산에 비해 주가가 너무 낮아서였다. 참고로 그는 지도를 만드는 회사의 주식을 비슷한 이유 때문에 사서 2년 만에 50퍼센트의 이익을 보고 되팔기도 했다.

그는 컬럼비아대학원에서 이른바 ‘안전 마진’을 배웠다. 안전 마진이란 회사를 청산할 때 받을 수 있는 돈이 주가보다 큰 경우 그 차이를 말하는데, 그에게 이를 가르친 사람은 가치 투자의 시조인 벤저민 그레이엄이었다. 참고로 그레이엄은 주가는 완전히 제멋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주식을 거래할 때 유일한 마음의 위안은 충분히 큰 안전 마진을 갖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이제 금융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그가 누구인지를 알아챘을 터다. 전 세계에서 돈 많은 것으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오마하의 오라클’ 워런 버핏이다. 아무튼 1962년 12월 12일, 버핏은 면직물 회사의 주식을 처음으로 샀다. 매입 가격은 1주당 9,120원이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버핏은 장기간 보유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면직물 회사의 최대 주주이자 최고 경영자인 시버리 스탠턴에게 자기가 사 모은 주식을 경영권 안정을 위해 사 가라고 제안했다.

그러자 1964년 스탠턴은 1주당 13,800원에 사겠다고 답했다. 이 정도면 이익이 충분하다고 만족한 버핏은 구두로 합의했다. 몇 주 후 버핏이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스탠턴이 구두 합의한 금액에서 150원 낮은 1주당 13,650원에 사겠다는 서면을 보내온 것이었다. 원래 받기로 한 돈보다 1퍼센트 적을 뿐이었지만 속았다는 감정이 앞선 버핏은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밀었고, 결국에는 주식을 팔지 않기로 하고 거꾸로 면직물 회사의 주식을 더 사 모았다. 그리고 면직물 회사의 최대 주주로 올라서 1965년 5월 스탠턴을 잘라버렸는데, 이 면직물 회사가 바로 버크셔 해서웨이였다.

나중에 버핏은 버크셔를 산 것은 자신이 범한 최악의 실수라고 인정했다. 결과적으로 망해가는 산업에 속한 회사를 떠안은 꼴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 금융 관점에서도 버핏의 후속 주식 매입은 손실이 많았다. 스탠턴에게 팔았더라면 1주당 13,650원을 받았을 텐데, 주식을 추가로 사면서 1주당 평균 17,830원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처음 주식을 매입했을 때와 비교하면 2배가량 비싼 금액이었다.

버핏은 1985년 버크셔의 면직물 생산을 중단했다. 이후 버핏은 버크셔를 통해 여러 회사의 주식을 사들였다. 아예 보험 회사로 업종을 바꾼 버크셔를 지주 회사로 탈바꿈시켰던 것이다. 2022년 2월 28일, 버크셔 A 주식의 종가는 5억 7,145만 원이었다. A 주식은 정상적인 의결권이 있는 보통주를 가리킨다. 참고로 버크셔는 버핏이 최대 주주가 된 이래로 A 주식을 쪼개거나 합친 적이 없다. 쉽게 말해 1960년대에 버핏이 산 버크셔 1주와 2022년의 버크셔 1주는 같다. 즉 버핏은 해당 기간 동안 자신의 돈을 32,046배로 불렸다. 버핏이 보유한 248,734주의 버크셔 A 주식은 돈으로 환산하면 142조 원을 넘어선다. 버크셔의 주가가 30,000배 이상 오른 것은 버핏이 버크셔를 통해 사들인 주식들이 그만큼 올랐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리가 버핏만큼의 혜안을 가지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 같다.

그렇다고 해서 지레 포기할 필요는 없다. 버핏과 같은 성과를 낼 수 있는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기 때문이다. 버핏이 버크셔 주식을 처음 사들이던 시점에 누군가가 버크셔 주식을 샀다고 가정해보자. 당시 버크셔는 돈만 있으면 누구나 주식을 살 수 있는 상장 회사였다. 그러니 중간에 팔아버리고 싶은 유혹만 이겨냈다면 버핏과 마찬가지로 30,000배 넘게 돈을 불리는 것이 가능했다.

실제로 데이비드 고츠만은 1962년에 버크셔 주식을 19,000주에 매입했다. 당시 돈으로 약 1억 7,000만 원이 들었다. 2021년 3월 기준, 그는 버크셔 A 주식 17,202주를 여전히 갖고 있다. 이를 환산하면 약 9.8조 원이다. 아, 한 가지 사실을 빠뜨릴 뻔했다. 사실 고츠만은 버핏의 친구였다. 버핏의 귀띔이 없었더라도 고츠만이 버크셔 주식을 샀을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가 우연히 버크셔 주식을 버핏과 동시에 샀으리란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우리는 늘 이러한 우연을 꿈꾼다.

한편 우리는 돈이 더 빠르게 불어나길 원한다. 방법이 없을까? 아르키메데스는 지렛대만 있으면 지구도 들어 올릴 수 있다고 했다. 부를 끌어올리는 데에도 지렛대가 있다. 일명 ‘레버리지’이다. 그러면 금융의 지렛대 또는 변속기인 레버리지란 얼마나 대단한 것일까? 별것 없다. 쉽게 말해 빚을 지고 돈을 빌리는 것이다. 마진 거래, 신용 거래, 미수 거래 등이 그 예다. 부동산 담보 대출로 받은 돈으로 주식을 거래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방식과 용어가 조금씩 다를 수는 있지만 본질은 같다.

레버리지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보자. 내가 가진 돈의 전부가 1억 원이어서 1억 원짜리 거래물 하나를 샀다고 하자. 그리고 그 거래물의 가격이 20퍼센트 올랐다고 치자. 이 경우 내가 불린 돈은 2,000만 원이 전부다. 하지만 내가 원금의 4배에 해당하는 4억 원을 빌려 거래물을 5개 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거래물의 가격이 20퍼센트 올랐으니 내 거래물 5개는 5억 원에서 6억 원이 되었다. 여기서 갚아야 하는 4억 원과 약간의 이자를 빼더라도 2억 원에 가까운 돈이 남는다. 결과적으로 원래 내 돈이었던 1억 원을 제외하면 이번에는 1억 원 가까이 돈을 불린 셈이다. 불린 돈이 빚을 지지 않았을 때와 비교해 5배에 달한다. 이것이 바로 레버리지의 힘이다. 이처럼 레버리지는 황소의 베프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덧붙이자면, 황소가 제대로 돈을 불리기 위해서는 최소한 어느 정도의 자기 돈이 필요하다. 빌린 돈이 아닌 순수한 자기의 돈 말이다. 금융 시장에 의미 있게 진입하기 위한 입장료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사람들은 보통 수익률 숫자에 목을 맨다. 50퍼센트의 수익률이라면 높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가진 돈이 100만 원뿐이라면 고작 50만 원 불어났을 뿐이다. 가진 돈이 10억 원이었다면 5억 원을 불렸다. 둘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이런 생각을 분명하게 밝힌 사람이 있다. 버핏의 평생 파트너 찰스 멍거다. 버핏의 회사와 별개로 운영된 멍거의 금융 회사는 1962년부터 멍거가 청산한 1975년까지 연 19.8퍼센트의 복리 상승률로 돈을 불렸다. ‘담배꽁초 주식(약간의 이익을 목표로 사들이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헐값의 주식)’이나 주워 단기간에 푼돈을 챙기던 버핏이 오늘날 오마하의 오라클이 된 데에는 멍거의 역할이 컸다. 멍거는 1990년대의 주주 총회에서 다음의 말을 남겼다. “첫 번째 10만 불은 썅X이다. 하지만 여러분은 그걸 얻어야 한다.” 미국의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1990년대의 10만 불은 오늘날의 20만 불, 즉 2억 4,000만 원에 가깝다. 버크셔 A 주식을 4,458주 가진 멍거의 재산은 2.5조 원이 넘는다.



차익 거래 (Arbitrage)



동시에 사고팔면 꿩도 먹고 알도 먹는다 - 롱숏과 통계적 차익 거래


여기서의 주제는 차익 거래다. 차익 거래란 같은 거래 대상이 다른 가격에 팔릴 때 싼값에 사서 비싼 값에 팔아 돈을 버는 일이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 주식을 80,000원에 사서 100퍼센트의 확실성으로 그 즉시 80,100원에 되팔 수 있다면, 이런 것이 진정한 차익 거래다. 물론 이런 기회가 아무한테나 열리지는 않는다. 차익 거래는 영어 ‘arbitrage’를 번역한 말로서 재정 거래라고도 불린다. 재정 거래의 재정은 ‘다른 의견이 있을 때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결정한다’는 뜻이다. 아비트라지라는 단어는 재판에 가기 전에 제삼자가 나서서 중재하고 조정하는 행위에서 유래되었다. 싼값에 사서 비싼 값에 팔다 보면 싼값은 올라가고 비싼 값은 내려가서 결국 중간의 한 가격으로 ‘중재’될 것이라는 의미다.

이번 장의 거래 방식은 앞에 나왔던 방향성 거래들과 사뭇 다르다. 알다시피 방향성 거래는 단순하다. 먼저 관심 대상 하나의 현재 가격을 확인한다. 그런 후 미래 가격이 바뀔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거래를 한다. 가격 변화량은 무조건 크면 클수록 좋다. 그런데 가격이 전부는 아니다. 시간도 고려해야 한다. 같은 조건이라면 최대한 빨리 바뀌는 편이 최고다. 이런 기회를 찾아내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다. 바로 나만 가진 실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 반면에 차익 거래 방식은 최소한 두 개의 거래 대상이 필요하다. 방향성 거래가 1차원이라면 이번 거래는 2차원 혹은 그 이상의 다차원인 셈이다. 그만큼 복합도가 높아지고 알아야 할 것이 많아진다. 거래 대상 하나 고르는 것만으로도 골치 아픈데 두 개 이상이 필요하다니 수고롭다. 하지만 재산이 불어나는데 그 정도 수고가 대수겠는가.

먼저 롱숏을 알아보자. 롱은 거래 대상을 사는 행위이고, 숏은 거래 대상을 파는 행위다. 부연하면 롱 포지션은 거래 대상의 가격이 오르면 이익을 보는 상태요, 숏 포지션은 거래 대상의 가격이 내리면 이익을 보는 상태다. 즉 롱 매각이 소유한 거래물을 파는 것이라면 숏 매각은 소유하지 않은 거래물을 파는 것이다. 그렇기에 현물 시장에서 숏은 공매도를 의미한다. 롱숏은 말 그대로 롱과 숏을 동시에 하는 것을 가리킨다. 여기까지 한 이야기로 보자면 롱숏은 그 자체로 차익 거래 아닌가 하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지는 않다. 같은 거래 대상을 사고파는 것을 두고 롱숏이라고 부르지 않기 때문이다.

롱숏은 서로 다른 두 개의 거래 대상을 필요로 한다. 롱숏을 거칠게 설명하는 한 가지 방법은 황소와 곰의 결합이다. 가격이 오를 것으로 예측되는 거래 대상을 사거나 혹은 가격이 내릴 것으로 예측되는 거래 대상을 팔아야 이익을 기대할 수 있음은 당연하다. 롱숏은 개별 거래 대상의 가격 전망에 따라 오를 것 같으면 롱하고 내릴 것 같으면 숏하기를 동시에 수행하는 거래 방식이다.

롱숏을 최초로 한 사람은 누굴까? 1900년 9월 9일,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에서 태어난 앨프리드 윈즐로 존스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인이다. 존스는 1949년 1월, 자기 돈 4,800만 원과 친구 4명이 출자한 7,200만 원을 합친 1억 2,000만 원의 돈으로 에이더블유존스앤드코(A. W. Jones & Co.)라는 회사를 세웠다. 주식을 직접 거래하는 금융사를 만든 것이다. 존스의 회사는 다른 금융사와 구별되는 몇 가지 특징이 있었는데, 그 첫 번째가 바로 롱숏의 구사였다. 존스는 롱과 결합된 숏의 적절한 사용이 전체 포트폴리오의 리스크를 줄인다고 생각했다.

그의 논리를 간단한 숫자로 이해해보자. 롱할 대상을 하늘 높이 오른다는 의미에서 풍선이라고 부르고 숏할 대상을 하염없이 가라앉는다는 의미에서 맥주병이라고 부르자. 추가로 가정하기를 시장 전체에 비해 수익률이 풍선은 5퍼센트 포인트 높고, 맥주병은 5퍼센트 포인트 낮다고 하자. 다시 말해 존스가 고른 풍선은 시장 전체보다 더 오르고 존스가 고른 맥주병은 시장 전체보다 덜 오른다. 즉 존스는 풍선과 맥주병을 감별할 이른바 ‘체리 피킹’(좋은 체리 몇 개만을 따 가는 것처럼, 저평가된 기업의 주식을 골라 사거나 특정 펀드에 우량 자산만 골라서 편입하는 행위) 능력이 있다.

두 가지 시나리오를 살펴볼 텐데, 시장 전체가 15퍼센트 오르는 경우와 15퍼센트 내리는 경우다. 이는 전반적인 상승장과 하락장 두 가지를 검토한다는 의미다. 우선 상승장을 검토하자. 1억 원의 돈이 있다고 할 때, 존스가 모든 돈으로 풍선만 산다면 어떨까? 상승장에서 풍선의 가격은 15퍼센트에 5퍼센트를 더한 20퍼센트가 올랐다. 따라서 이때의 이익은 1억 원의 20퍼센트인 2,000만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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