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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 에너지 제국의 미래

양수영, 최지웅 지음 | 비즈니스북스


2050 에너지 제국의 미래

양수영, 최지웅 지음

(주)비즈니스북스 / 2022년 4월 / 318쪽 / 17,500원





석유의 탄생, 현재, 미래



오늘의 에너지, 석유를 말하다


석유는 부의 원천이다: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한 노역과 인간의 기본 권리를 향한 투쟁의 역사에서 획기적 전기를 마련해 준 것은 석유였다. 석유가 사용되기 전 인간은 극심한 노동에도 불구하고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나, 석유가 우리 삶에 들어온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빈곤이 줄었고, 빈곤이 낳은 폭력과 질병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석유는 생산성 향상의 원천이었고, 생산성의 향상이 정치, 문화, 과학 발전의 선순환을 이루며 현대가 만들어졌고, 석유로 오늘의 문명과 문화가 생동한다.

애덤 스미스는 1776년에 발표한 『국부론』에서 국부의 원천은 노동이고, 부의 증진은 분업 등을 통한 노동 생산성 개선에서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는데, 만약 그가 오늘날 『국부론』을 쓴다면, 부의 원천은 석유 혹은 석탄과 같은 에너지이고, 부의 증진은 에너지원의 확보와 새로운 에너지원 개발에서 이루어진다고 쓸 것이다. 실제로 오늘날 에너지는 우리가 창출하는 부의 근원이자 경제 활동의 기반이다. 에너지를 통해 모든 재화가 생산되고, 보건과 여가 등 인류의 모든 활동이 에너지에 기대고 있다.

석유는 여전히 많은 것을 결정한다: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의 배경이 되는 장소는 ‘농장’이다. 인간은 농장의 생산물을 빼앗아 가는 약탈자로 그려지고, 동물들은 저항하며 혁명을 일으키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소설의 배경이 생산의 현장인 ‘농장’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모든 이해관계의 중심에 생산물이 있고, 소설이 풍자하고자 하는 정치의 모습도 생산물과 분리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지구라는 농장에서 가장 중요한 생산물은 석유였고, 그렇기에 국제 정치와 질서의 결정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탄소 중립과 에너지 전환이라는 말이 넘쳐나는 오늘의 시대도 다르지 않다. 지금도 석유는 국제 정치와 국제 관계의 많은 부분을 결정한다. 오늘날 미국의 패권도 미국이 중동 산유국을 장악하고, 석유의 주요 수송로 등을 포함하는 해상권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국제 관계에서 무력을 쓰지 않는 제재 중 가장 강력한 수단은 석유, 가스, 석탄 등 에너지 자원의 공급을 막거나 자원을 거래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만큼 한 나라의 생존을 위협하는 제재 수단은 없다. 식량과 관련한 제재도 가능하겠지만 인도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에서 식량은 어느 정도 생산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효력이 떨어진다. 그러나 석유는 그 편재성 때문에 거래를 막으면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 그래서 해군력으로 해상권을 장악한 국가가 패권을 쥐게 된다.

필자는 전작 『석유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가』에서 석유가 국제 질서와 세계 경제를 지배해 온 역사를 설명하면서 한국 현대사의 두 가지 키워드가 경제 발전과 민주화라면, 세계 현대사의 두 가지 키워드는 냉전과 석유라고 했다. 그 정도로 석유는 지난 수십 년간 세계 정치와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왔고, 오늘날에도 그 역할과 위력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균형 감각이다. 여전히 석유가 오늘날 많은 것을 결정하지만, 동시에 탄소를 줄이고 새로운 에너지를 찾으려는 노력도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석유는 당분간 오늘을 결정하는 현실적 요인이고, 에너지 전환과 탄소 감축의 노력도 이 시대의 사명이다. 따라서 누군가의 말처럼, 현실주의자를 지향하며 가슴 속으로 불가능한 꿈을 꾸는 양면적 노력이 필요하다.

석유가 오늘의 세상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경제적으로 체감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국제 유가다. 모든 재화는 에너지를 소비하며 생산되고 운송되기에 유가는 각국의 물가 수준을 결정하는 가장 기초적 요인이다. 그런데 유가는 수요와 공급 외에도 다양한 정치, 경제, 금융 요인들이 함께 작용해 결정된다. 국제 유가를 움직이는 다양한 요인들을 통해 석유가 오늘날 어떤 의미인지 더 자세히 살펴보자.

국제 유가를 움직이는 요인들


음모론과 예측 사이에 놓인 국제 유가:
코로나19가 세계를 휩쓸기 직전인 2020년 초 국제 유가는 배럴당 60~68달러 사이에서 움직였다. 이후 코로나19가 확산되자 그해 3월 유가는 30달러대 초반까지 하락했고, 당시 유가 급락은 일반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면서 원유 가격을 추종하는 파생 상품(ETN 등)에 대한 투자가 급증했는데, 이에는 당시 유가는 연초 대비 50% 이상 급하게 하락한 상태여서 곧 반등할 것이라는 심리가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유가는 재차 급락하면서 2020년 4월 WTI(서부 텍사스 원유) 선물 월평균 유가가 20달러 이하로 떨어졌다. 급기야 4월 20일에는 마이너스 37.63달러에 거래되며 판매자가 오히려 돈을 주고 팔아야 하는 초유의 상황까지 연출됐다.

[독점과 담합도 막지 못한 유가 변동] 유가는 다른 모든 상품을 만드는 원가의 중요한 일부로 물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따라서 유가 예측은 전반적인 거시 경제 동향을 파악하는 데 있어서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유가 예측은 주가, 금리, 환율 등 다른 경제 관련 수치를 예측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한편 석유 시장과 비슷한 변동성을 보이는 시장이 또 하나 있는데 농산물 시장이며, 두 시장의 공통점은 다수의 공급자와 다수의 수요자가 존재하는 소위 ‘완전 경쟁 시장’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석유 시장이 단 하나의 기업에 독점된다면 석유 가격은 안정될 수 있을까? 실제로 석유 시장에서는 독점을 통해 가격을 통제하려는 시도가 역사적으로 몇 차례 있었다. 하지만 결국 스탠다드 오일도, OPEC도 유가를 통제할 수 없었다. 독점은 공격받기 쉽고 담합은 깨지기 쉽기 때문이다.

[유가 예측이 어려운 세 가지 이유] 설령 독점과 담합이 제대로 유지된다고 해도 유가의 변동성을 낮추면서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는 쉽지 않은데, 그 이유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독점 생산자라도 장기 생산량을 예측할 수 없다. 둘째, 공급량 조절도 어렵지만 수요도 예측하기가 어렵다. 셋째, 석유 시장에는 실제 원유가 필요해서 거래하는 시장 참여자보다 거래를 중개하거나 차익을 얻기 위해 시장에 참여하는 거래자가 훨씬 많다.

[유가와 관련한 음모론적 이야기] 유가의 또 다른 특징은 유가 변동이 음모론으로 흐르기 쉽다는 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유가 급등 혹은 급락은 자주 큰 정치적, 경제적 이벤트를 동반해 왔다. 1980년대 후반 미국이 사우디를 이용해 유가 급락을 일으켰고, 이것이 소련 붕괴를 촉발했다는 것이 대표적 예다. 당시 소련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10년 가까이 고전하고 있었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1986년 사우디가 원유 시장 점유율 확대를 선언하며 대폭 증산을 선언했다. 그러자 유가는 1985년 배럴당 30달러 수준에서 이듬해 7달러까지 떨어진다. 이후로도 수년간 저유가 기조가 유지되면서 소련 경제에 치명적 영향을 주었다. 결국 소비에트 연방은 1991년 12월 붕괴했다. 유가 변동에 음모론적 시각이 있는 이유는 그만큼 유가 변동이 국가별 이익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석유는 언제까지 주요 에너지원일까?


석유 고갈, 지금부터 대응해야 한다:
석유와 가스는 한번 소비하면 재생이 불가능한 ‘비재생 에너지’다. 언젠가는 고갈된다. 그렇다면 남아 있는 석유의 양은 얼마나 되고 인류는 과연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랜 기간 석유를 쓸 수 있을까? 이 문제는 석유가 사용된 이래 줄곧 제기되어 온 질문이다. 1956년 미국의 지질학자 매리언 킹 허버트는 통계적 방법을 활용해 미국 원유 생산량이 1970년에 정점에 도달할 것이라는 허버트 피크 이론을 주장했다. 허버트가 피크 이론을 내놓은 직후 텍사스에서 대규모 유전이 발견되기 시작하여 많은 사람이 그의 이론을 비웃었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석유 생산은 허버트의 예측대로 1970년대 일 964만 배럴로 피크를 이룬 이후 점차 감소했다. 만약 셰일 혁명이 없었다면 허버트의 이론이 맞았을지 모른다. 셰일 혁명 덕분에 미국의 원유 생산량은 2010년 이후 1970년대의 생산량 정점을 넘어섰고, 2019년에는 역대 최대 생산량인 일 1,223만 배럴을 생산했다.

허버트의 피크 이론 외에도 석유 고갈론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1970년대에 서유럽의 과학자, 경제학자, 경영자 등이 지구의 자원, 환경에 대한 연구를 위해 설립한 로마클럽도 1972년 석유 고갈론을 제기했다. 로마클럽은 1972년 발간한 <성장의 한계>라는 지금은 고전이 된 보고서에서 석유가 40년 뒤인 2010년경에 완전히 고갈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2002년에는 제러미 리프킨이 2020년 이전에 석유 생산이 피크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외에도 다수의 에너지 관련 기관이 수십 년 후 석유가 고갈될 것이라는 예측을 반복했다. 그러나 2021년에 확인된 전 세계 확인 매장량은 여전히 약 1조 7,300억 배럴로 여전히 인류가 약 50년간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이젠 석유가 고갈될 것이라는 주장은 나타나지 않은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치는 양치기 소년의 외침이 되어 버린 듯하다.

[‘양치기 소년’이 된 석유 고갈론] 1950년대의 허버트, 1970년대의 로마클럽은 당시의 기술 수준에 근거하여 석유의 미래를 예측했고, 이후 급속도로 발전한 석유 개발 기술에 의해 매장량이 추가로 늘어날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참고로 석유 개발 기술과 IT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과거에는 경제성이 없어 개발되지 못했던 수많은 한계 유전들의 상업적 개발이 가능해졌고, 1980년대부터는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여 심해에서도 유전이 개발되고 있다. 과거에는 개발이 어려웠던 베네수엘라의 초중질유와 캐나다의 오일샌드도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개발이 시작됐다. 또 2010년 이후 시작된 미국의 셰일 혁명으로 셰일 가스와 더불어 생산되고 있는 셰일 오일도 매장량 증가의 중요한 계기였다.

[기술의 진보가 가져온 혁명은 끝났다] 사실 2000년 초반에 가까운 바다의 유전은 거의 개발이 완료된 상태였다. 이 때문에 2000년대 초반 석유 고갈론이 강하게 대두되었는데, 이것은 미국과 영국이 2003년 이라크전 등을 통해 중동 개입을 강화한 배경이기도 했다. 그러나 2010년 이후 갑자기 나타난 셰일 혁명은 다시 한번 석유 고갈론을 양치기 소년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앞으로도 계속 그럴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해 앞으로 석유 사업에서 더 이상의 혁명 가능성은 낮다.

석유 고갈론이 매번 빗나갔던 이유는 기술의 진보 때문이었다. 그러나 보다 근원적 이유를 꼽자면 시대의 욕망이 석유로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석유는 ‘검은 황금’이었다. 따라서 거대 자본은 석유 산업으로 몰렸고, 많은 사람이 석유에 천착하며 연구하고 도전했다. 자연스럽게 석유 탐사와 생산 기술은 진보와 혁신을 거듭했다. 요컨대 석유가 부와 권력의 원천이었기 때문에 인류는 석유의 고갈을 허용하지 않았다. 결국 변화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욕심과 돈의 방향이다. 따라서 특정 산업의 미래를 판단할 때 그 분야로 인재와 자본이 몰리고 있는지 봐야 한다. 그런데 오늘의 석유 산업은 과거와 다르다. 한때 세계 최대 규모의 기업이었던 엑손모빌은 2020년 다우 지수 산정 종목에서도 제외됐다. 투자자와 인재의 관심도 석유가 아닌 새로운 에너지원과 4차 산업 관련 분야로 집중되고 있다. 게다가 석유 기업이 예전처럼 극지와 오지에서 탐사하려면 쏟아지는 비난을 각오해야 한다. 이제 새로운 유전을 찾기 위해서는 여론과 환경 단체의 반대를 무릅쓰고 심해와 극지로 가서 시추를 해야 한다. 더 먼 곳에서 더 어렵게 시추하고 더 큰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탐사를 통해 새로운 유전을 찾아 매장량을 추가하는 것이 더욱 힘들어졌다. 그래서 이미 일부 메이저 석유 기업은 더 이상 신규 지역 탐사는 시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유럽의 주요 석유 기업 BP, 쉘, 토탈 등이 일제히 석유 사업을 축소하고 재생 에너지 사업을 확대하는 추세다. 이러한 변화의 중요한 원인은 그들이 접근할 수 있는 석유 잔존량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0년과 2021년 세계 석유 개발 상류 부문 투자 규모는 2014년 대비 절반 이하로 감소했다. 과거처럼 막대한 자본과 인력을 쏟아붓기도 힘들고, 또 그렇게 하려 해도 개발이 용이한 유전은 이미 개발이 끝난 상태다. 게다가 탄소 규제의 강화에 따른 리스크도 커지고 있다.

[새로운 에너지원 개발은 생존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원유 시장에서 공급이 감소하게 되면 산유국은 생산 원유를 자국 소비에 우선 충당한다. 그러므로 한국처럼 필요한 원유를 전량 수입하는 입장에서는 주요 산유국의 원유 생산 능력 감소가 심각한 에너지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따라서 새로운 에너지원에 대한 관심과 도전이 절실하다. 일반적으로 에너지 전환은 기후 변화 대응과 탄소 감축 필요 때문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남아 있는 석유의 양이 많지 않기 때문에도 에너지 전환은 필요하다. 새로운 에너지원에 대한 관심과 도전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다. 탈석유의 과정, 혹은 석유 피크 이후의 시간들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대안이 있어야 한다.

화석 연료에서 벗어나는 에너지 전환 과정도 거대한 인프라 구축 사업이다. 따라서 막대한 에너지 소비가 수반된다. 산업과 운송이 절대적으로 석유에 의존한 현실에서는 에너지 전환에서도 석유의 역할이 필요하다. 어쩌면 그것이 석유에게 남겨진 가장 중요한 임무일 것이다. 한마디로 장기적 에너지 전환과 지금 당장의 석유 수급 모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제 이러한 한국의 에너지 현실에서 재생 에너지와 수소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리고 한국은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살펴보자.



‘검은 황금’을 대체할 새로운 에너지



재생 에너지는 한국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한국의 재생 에너지 비중이 낮은 이유:
재생 에너지는 두 가지 결정적 장점이 있다. 첫째는 탄소 배출이 없다는 점인데, 이는 탄소 중립을 추구하는 시기에 설명이 필요 없는 장점이다. 두 번째 장점은 말 그대로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이라는 것이다. 땅속에 있는 석유, 가스, 석탄 등의 화석 연료는 한 번 사용하면 연소되어 없어지는데, 이때 그냥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탄소를 배출하면서 사라진다. 그러나 땅 위의 바람(풍력)과 태양(태양광)과 물(수력)은 한 번 사용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재생 에너지는 소모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리고 탄소 배출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사용 비중을 높여 가야 한다. 혹자는 원자력을 활용하면 재생 에너지 개발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맞지 않는다. 원자력 발전은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재생 에너지의 역할 부담을 조금 덜어 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참고로 현재 한국의 발전량에서 원자력 발전 비중은 약 27%로 탈원전을 하지 않고, 원전을 현 수준의 두 배(27%→54%)로 확대한다 해도 전력 생산의 약 절반 정도만 감당할 수 있을 뿐이다. 물론 원자력도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 그러나 지역의 수용성과 환경 영향을 고려할 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원전을 두 배로 늘린다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한국은 국토가 좁다는 점에서 재생 에너지만으로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원자력이 재생 에너지와 함께 저탄소 에너지의 한 축을 차지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비재생에서 재생 에너지원으로 가는 흐름 자체를 막을 수 없다. 참고로 국내 전력 생산에서 석탄, 가스 등 화석 연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70%에 이르는데, 이것을 어느 하나의 에너지원만으로 대체할 수 없다. 결국 한국은 재생 에너지, 수소, 암모니아, 원자력 등 다양한 에너지원을 그 효용의 최대치까지 모두 활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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