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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식 전략적 사고

레나르트 위트베이 지음 | 예미


스웨덴식 전략적 사고



레나르트 위트베이 지음

예미 / 2021년 11월 / 260쪽 / 16,000원





전략적 사고란 무엇인가?


인생에서 그리고 조직 내에서 당면하는 모든 문제에 대해 답을 주는 마법의 공식은 없다. 문제에 대한 나만의 해법을 쉽게 찾을 수 있는지는 당신의 사고방식과 주변 세상과의 소통에 달려 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전략적 사고’라고 말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의 핵심은 이해하려는 태도이다. 그 기본 원칙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늘 열린 자세를 갖고, 사물과 현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 비판적으로 사고하되 동시에 나도 한계와 편견이 있다는 사실 앞에서 겸손해져야 한다.

전략적으로 생각하고, 이해하고, 변화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맥락을 파악하고 현상에서 드러나는 일정한 패턴을 관찰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 패턴이 어떤 모습으로 변화해 가는지 이해하는 일이다. 어떤 현상은 더 거대한 패턴의 한 부분을 이루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는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예외현상이거나 본질을 흐리는 이상 현상일 때도 있다. 이들을 구별해 내려면 시간과 공간에서 한 발 뒤로 물러서야 한다. 그리고 좀 더 시간을 두고 전체를 관조하면 경향성이 뚜렷하게 보인다.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일어나는 눈앞의 현상에만 집중하면, 장기적인 변화를 놓치기 쉽다. 일정한 패턴을 형성하고 개별 현상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근거 없는 가정과 추측을 쉽게 받아들이게 된다.

보통 우리의 가정과 추측은 세상이 단순하고 일차원적인 관계로 구성되어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복합적이고 애매모호한 것들을 아주 단순하고 이해 가능한 수준으로 바꾸어 생각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러다가는 길을 잃게 된다. 정말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면 이해하고자 하는 진정한 노력과 의지가 필요하다. 특히 복합적인 세상에서 변화를 만들어 내고, 그 일부가 되기도 하는 우리 인간을 이해해야 한다. 복합적인 존재인 인간이 모여 사는 인간 사회는 복합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 인간은 대개는 합리적이고 현명한 존재들이다. 반면, 우리는 종종 어리석은 짓도 쉽게 한다. 이성적이거나 비이성적인 감정을 동시에 갖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들, 아직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상황들도 상상하는 독특한 능력을 갖고 있다. 인간의 뇌는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우리의 뇌는 시냅스라고 불리는 신경 접합부를 통해 서로 교류하는 수많은 신경세포로 구성되어 있다. 신경세포와 신경 접합부는 흡사 전 세계 공항들이 항로들로 연결된 것처럼 거대한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이러한 뇌 구조로 인해 우리는 비로소 복합적인 개인이 되었다. 그리고 항상 새로운 것을 갈망하고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며 모방하고 응용하는 복합적인 인간들의 행위가 역동적인 관계와 복합적인 세계를 만들어낸다. 역동적인 관계들은 결코 일차원적이지 않으며, 꾸준한 변화와 흐름을 만들어 낸다. 세계는 복잡하기도 하고 복합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개는 복합적이다. 복합적인 것과 복잡한 것을 구분해 그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바로 전략적 사고를 위한 출발점이다.

복잡한 것은 어렵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는 정리가 가능하다. 교량을 생각해보자. 대규모의 교량을 건설하는 데는 상당한 기술이 요구된다. 교량은 안정적이고 견고하며 고정된 구조물로 복합적인 것이 아니라 복잡한 것이다. 반면 복합성은 상호작용을 통하여 어떠한 패턴을 형성하는 각기 다른 여러 부분으로 시스템을 구성하는 것을 말한다. 복합 시스템의 한 사례로 열대 우림을 생각할 수 있다. 날씨는 살아있는 유기체가 통제하는 것이 아니다. 전적으로 자연법칙을 따르기는 하지만 복합적이다. 이러한 복합성 때문에 아무리 합리적인 이론을 적용해도 몇 주 후의 날씨를 예측하기 어렵다.

교량과 같은 복잡한 사물은 수많은 기둥들의 고유한 기능과 하나하나에 가해지는 하중을 연구함으로써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날씨라는 복합시스템은 전체를 공기, 물, 열기와 냉기 등으로 분리해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그림과 내부에서 작용하는 역학관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복합성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선 사물의 복합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면 복합적인 대상이 비교적 단순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전략적 사고를 하는 목적은 활발하게 움직이는 관계들이 이루어 내는 복합적인 세상을 이해하고, 거기에 영향을 주기 위해서이다.

역동적 사고


역동적 사고란 습관적인 사고방식을 버리고, 과감히 질문을 던지고, 상황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면서 새로운 관점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반면 일차원적 사고는 세상이 항상 동일한 상태를 유지할 것이라는 단순함에 기반을 둔 사고로 인생은 정적이고 예측 가능하다고 믿는 것이다. 물론 이런 단순하고도 예측 가능한 경험 법칙도 때로는 필요하다. 문제는 이런 방식으로 생각하는 데 익숙해지면, 타성에 젖어 질문을 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사고의 한계에 갇히면 분명한 사실도 보이지 않는다. 통상적으로 그러하기 때문에, 모든 문제도 그러한 방식으로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왜 안 돼?”라는 질문을 해보지도 않고 “난 할 수 없어”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해 버린다. 따라서 우리는 무언가가 자기 생각과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신호에 항상 주의를 기울이고, 새로운 지식과 아이디어를 수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국세청에서 선임 매니저로 근무하던 시기에 나는 사소하지만 아주 귀중한 교훈을 얻었다. 당시 나는 특정 유형의 사건일지에 ‘05’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궁금해 동료들에게 물었지만 아무도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나는 그렇다면 앞으로는 그 표시를 하지 말자고 제안을 했다. 그러자 동료들이 거세게 반대했다. “아니야, 우리가 모르는 무슨 이유가 있을 거야”라고 말했다. 누가 보기에도 불필요해 보이는 일임에도 그만둘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누구도 여기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나는 곧 이런 관행이 이전에 사용하던 일지 시스템에서 특정 사건을 분류하기 위해 사용하던 특수 기호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런데 이제는 필요 없는 것이었다. 이 일을 통해 나는 어떤 상황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고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세상은 역동적이다:
경제학자들에게 공급과 수요, 그리고 가격 사이의 상호작용은 고려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다. 특정 상품의 수요가 공급보다 많으면 가격은 상승한다. 반대로 공급이 수요보다 많으면 가격은 하락한다. 워낙 합리적이고 간단한 연관 관계이기 때문에 어디에 적용해도 무리가 없다. 그러나 예외가 있다. 사치재와 같은 베블런재가 바로 그런 예이다. 사치재 상품은 가격이 올라가면 오히려 수요가 증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그 상품이 신분과 부를 과시하는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중들은 소수만이 그 상품을 소비할 수 있다고 생각해, 오히려 더 갖고 싶어 하고, 그것을 소유한 사람은 선망의 대상이 된다.

이와 반대의 개념으로는 기펜재가 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빵은 생존을 위한 필수 상품이기 때문에, 그들은 수입의 상당 부분을 빵 구매에 사용하는 반면, 육류 등의 구매를 위해서는 수입의 극히 일부만 지출한다. 그래서 빵 가격이 오르면, 가난한 사람은 육류 구매를 포기하고, 가진 돈을 빵을 사는 데만 사용하고, 예전보다 더 빵에 집중하기 때문에 빵의 소비도 늘어난다.

물론 이러한 예외적인 현상은 대개 너무 비정상적이거나 아주 사소한 일이기 때문에, 무시해도 잘못된 결론에 다다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사건이 엄청난 결과를 불러 올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까지 무시하는 것은 크나큰 실수다. 자연재해나 전쟁, 테러 공격 등은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한번 발생하면 우리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눈앞에 펼쳐지기 전까지는 상상도 해 본 적이 없던 발명이나 발견도 마찬가지이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의 『블랙 스완』은 바로 이러한 주제를 다룬다. 이 책의 영향으로 흔히 일어나지 않는 예상치 못한 현상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를 일컬어 ‘블랙 스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게 되었다. 유럽인들은 호주에 오기 전까지는 모든 백주는 희다고 생각했다. 유럽인들의 머릿속에는 검은 백조라는 것이 존재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호주에 와보니 검은 백조가 실제로 있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사건조차도 일어날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충분히 무시해도 좋을 만한 사건들이 매우 많다는 것은 그들 가운데 하나, 또는 그 이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장의 복권이 당첨될 확률은 매우 낮다. 그러나 매회 꾸준히 일정량의 복권을 구입한다면, 그중 하나가 당첨될 가능성은 그만큼 커진다.

멘탈모델


우리는 지도를 통해 세상을 보고 이해할 수 있다. 지도는 거대하고 한 눈에 파악하기 어려운 것을 축소하여 한 눈에 볼 수 있게 도와준다. 동시에 우리는 지도에서 보이는 것은 현실이 아니고, 현실을 단순화하여 설명해주는 이미지라는 것을 안다. 단순하고 축소된 이미지는 복합적인 세계를 이해하는 데 아주 유용하다.

마찬가지로 멘탈모델들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항해하는 데 사용하는 마음 속 지도와 같다. 멘탈모델이 필요한 이유는 그만큼 세계와 인생이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멘탈모델이 없으면, 우리의 머리는 주변의 수많은 정보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으로 인해 마비되어 버릴 것이다. 우리에게는 세상을 체계적으로 설명해 줄 간단한 그림들, 개념들, 가정들 그리고 이야기 등이 필요하다.

세상을 이해하고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의 멘탈모델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모델은 우리가 주변 세계에 대한 인식을 통해 얻어지는 새로운 통찰력을 토대로 계속해서 갱신되어야 한다. 우리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완전히 정확하고 객관적인 그림을 가질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불가피하게 주관적일 수밖에 없고, 우리의 지식에 결점도 많다. 새로운 통찰력을 갖기 위해서는 멘탈모델을 계속 갱신하고, 기존의 멘탈모델을 폐기할 각오도 되어 있어야 한다.

멘탈모델 속에 갇히지 말라:
물리적인 지도가 현실을 완벽하게 반영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의 멘탈모델 역시 완전한 그림을 제공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멘탈모델과 현실이 정확히 일치한다고 인식하고 어느새 멘탈모델의 포로가 되어버리곤 한다. 사실 멘탈모델은 세상을 설명하기 위해 일차원적 사고를 기초로 단순화한 것이기 때문에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인간은 멘탈모델 없이 사고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멘탈모델이 불안정하거나 부정확한 경우에도 그 모델에 근거하여 행동하려 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많은 사람의 마음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멘탈모델인 공장 모델에 주목했다. 이 모델은 기술 시스템과 1차원적 사고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원자재를 가지고 제품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만들어내는 공장은 산업주의의 전형이다. 헨리 포드는 자동차를 조립라인에서 생산해냈고, 프레데릭 테일러는 ‘과학적 관리법’을 소개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는 우리의 생각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었고 공장 모델은 모든 종류의 생산과 효율적인 작업 방식을 설명하는 멘탈모델이 되었다.

멘탈모델로서의 공장은 우리가 과정의 사고를 할 수 있도록 해준다. 과정의 사고는 조립생산 라인을 양식화한 이미지이다.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물건이 앞으로 전달되면, 다른 사람이나 기계가 그것을 처리한다. 우리는 적절한지 여부를 따지지 않고 그 과정의 모델을 설정하고 맵을 만든다. 이러한 생각은 우리에게 생산 지향의 마인드를 갖게 하여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생산’에 중점을 두는 사고를 하게 만든다. 이러한 공장형 사고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요즘에는 서비스업이라는 거대한 영역이 새로 생겨났는데, 여기에는 기존의 공장형 멘탈모델이 정확하게 들어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서비스 영역에 공장형 멘탈모델을 사용하고 있다. 의료 서비스를 받는 사람은 서비스가 제공되는 순간에는 서비스 활동의 적극적인 참여자가 된다. 연극은 배우와 관객 간에 내적인 상호 교감을 기반으로 관객들은 경험하게 된다. 서비스는 상호 작용이자 공동의 창조이다. 호텔의 객실은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투숙객이 머무는 순간부터 가치가 발휘되기 시작한다. 호텔은 우리의 경험을 창조하거나 생산할 수 없다. 경험은 호텔이 고객의 요구와 기대를 얼마나 충족시켜주는지에 따라 고객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자동차를 사면, 설령 자동차가 주차장에 세워져 있다 하더라도 그 자체로 가치를 갖는다. 자동차는 돈으로 환산될 수 있고 그 가치는 점차 감가상각된다. 공장은 상품 생산을 통해 가치를 창출하지만, 고객은 상품을 소비하고 가치는 파괴된다. 결국 상품 생산은 가치 창출의 일반적인 모델로, 상품의 생산행위는 구매와 소비의 과정을 통해 상품의 가치를 파괴하는 소비자들에게 상품을 공급하는 조직의 활동 모델이다. ‘우리는 우리 상품을 통해 가치를 창출한다’와 같은 명제는 모든 비즈니스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서비스의 관점에서 가치 창출을 바라보면 그림이 달라진다. 서비스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을 사용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경험이다. 가치는 사용에 있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다. 서비스 기반의 가치창출 방식을 처음 경험하고 접했을 때, 이해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서비스 기반의 가치창출 방식은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던 멘탈모델에 비해 매우 낯설기 때문이다.

내가 서비스 중심 논리를 처음 강의했을 때, 참석자들 일부는 이 논리를 매우 빨리 이해했다. 반면 어떤 참석자는 전혀 이해를 못 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왜 이 똑똑한 사람들이 이 단순한 것을 이해하지 못하지?’ 궁금했다. 마침내 나는 그 답을 찾았다. 그들은 서비스 중심 논리로 이해해야 할 아이디어를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상품 중심의 멘탈모델에 억지로 집어넣어 이해하려 했던 것이다.

내가 가진 멘탈모델에 맞지 않는 지식은 다루기가 어렵다. 사각형 블록을 둥근 블록에 밀어 넣으려 하면, 아무리 비틀고 돌려서 넣어보려고 해도 구멍에 맞지 않는다. 따라서 어떤 것이 잘 이해되지 않으면, 먼저 자신의 멘탈모델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멘탈모델을 잘 안다면 그것을 변경하거나 교체하는 것도 훨씬 더 수월할 것이다. 이것은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며, 이해하려고 어떤 의견에 억지로 동의할 필요도 없는 문제다.

복합 시스템


1960년 초 어느 날, 에드워드 로렌즈는 날씨를 예측하기 위해 늘 사용하던 예측모델에 여러 가지 변수들을 입력하고 있었다. 그 당시 컴퓨터는 지금보다 단순해서 그가 입력한 12개 변수들을 바탕으로 결과를 계산해 내려면 한참 걸렸고, 그 시간은 커피를 한잔 마시기에 적당했다. 그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작업하던 책상에서 일어났다. 잠시 후 에드워드는 책상으로 돌아와 컴퓨터의 작업 결과를 확인했다. 그런데 컴퓨터가 그려낸 곡선이 정상적인 모양에서 크게 벗어나 불규칙한 모양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원인을 살펴보다가 자신이 변수를 반올림해서 입력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0.506127을 입력하는 대신에 반올림 값인 0.506을 입력했고, 그 결과, 전혀 다른 기상예보가 나온 것이다.

에드워드 로렌즈는 이를 통해 역동적인 시스템에서는 작은 차이가 엄청나게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훗날 그는 브라질에서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 주에서 토네이도를 발생하게 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했고 여기서 카오스 이론과 함께 나비효과라는 개념이 세상에 등장했다. 나아가 수학과 물리학은 물론 인간의 사고체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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