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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오디세이

조지 슈피로 지음 | 비즈니스북스


경제학 오디세이

조지 슈피로 지음

비즈니스북스 / 2021년 11월 / 440쪽 / 23,000원



제1부 행복 그리고 부의 효용



다다익선: 돈은 많을수록 좋다


“우리는 이 같은 사실을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인다. 즉,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됐고 창조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으며 그중에는 생명권과 자유권, 행복 추구권이 있다.”

1776년 7월 4일에 제2차 대륙회의에서 서명이 이뤄진 미국 독립선언문에는 위의 내용이 적혀 있다. 여기에서는 생명과 자유라는 중요한 개념은 잠시 제쳐두고 이 책의 주제와 관련이 있는 ‘행복 추구’에 관해서 이야기해 보자. 정치학자들은 미국의 제3대 대통령이 된 토머스 제퍼슨이 영국 철학자 존 로크의 영향을 받아 이런 글을 쓴 것이다, 아니다 제퍼슨의 생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고대 그리스까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며 논쟁을 벌인다. 제퍼슨은 자신을 기원전 4세기의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추종자라고 밝힌 바 있다. 바로 여기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쾌락은 축복받은 삶의 시작이자 끝:
우선 에피쿠로스보다 앞서 쾌락을 강조했던 아리스티포스에 대해서 살펴보자.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던 아리스티포스는 소크라테스로부터 충분히 배웠다고 느낀 후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경악스럽게도 아리스티포스는 가르침을 주는 대가로 제자들로부터 돈을 받았다. 아리스티포스는 소크라테스는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추종자들이 모두 가져다주고 그의 요구를 모두 충족시켜주기 때문에 대가를 받지 않고 수업을 할 수 있었지만 아리스티포스 자신은 직접 돈을 내고 식료품을 구입하고 집안일을 해줄 노예를 사야만 하기 때문에 수업료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어느 날, 한 학생의 아버지가 아리스티포스가 요구한 돈이면 아들을 가르칠 노예를 살 수도 있다고 말하자 아리스티포스가 말했다. “그렇게 하세요. 그럼 두 명의 노예가 생길 겁니다.”

아리스티포스는 제자들에게 모든 사람이 추구해야 할 것은 바로 쾌락이며 쾌락이 바로 인생의 목표라고 설파했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목표는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회피해 순행복(쾌락의 합에서 고통의 합을 뺀 것)을 극대화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덕, 정의, 중용 같은 고결한 목표가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다른 철학자들에 비해 아리스티포스는 오로지 행복이 중요하다고 믿었다.

아리스티포스는 자신이 설파한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해 다양한 쾌락에 탐닉했다. 특히 그는 아름답고 변덕스러운 창녀 라이스의 품에서 행복을 좇았다. 그의 제자가 너무도 많은 남자들과 사랑을 나누었던 이 여인을 정부로 두는 것을 비난하자 아리스티포스는 자신은 많은 사람이 탄 적이 있는 배를 타고 여행하는 것을 거절하지도 않을 테고 많은 사람이 살았던 집에서 사는 것을 거부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어쨌든 그는 “가장 좋은 것은 쾌락을 자제하는 것이 아니라 쾌락에 패배당하는 일 없이 쾌락을 지배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아리스티포스의 후계자로 여겨지는 인물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약 20년 후인 기원전 341년에 태어난 에피쿠로스였다. 에피쿠로스 학파의 기본 교리는 “쾌락은 축복받은 삶의 시작이자 끝”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에피쿠로스는 즉각적인 탐닉을 추구하는 삶을 옹호한 아리스티포스보다 한층 품위 있는 세계관을 갖고 있었다. 에피쿠로스는 친구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쾌락이 목적과 목표라고 말할 때의 쾌락은 난봉꾼의 쾌락이나 호색의 쾌락을 의미하지 않는다네. 쾌락이란 끝없이 술을 마시고 흥청대거나 섹스에 빠져들거나 호화로운 식탁에서 산해진미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네.”

에피쿠로스는 육체적인 쾌락과 정신적인 쾌락이 “모든 선택과 모든 혐오의 출발점”이긴 하지만 “신중함과 명예, 정의를 동시에 추구하지 않고서는 쾌락의 삶을 영위할 수 없다”라고 경고했다. 예를 들어 폭음 후에 뒤따르는 숙취, 범죄를 저질렀을 때 따르는 처벌 등 나중에 해악이 뒤따르는 쾌락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사실 에피쿠로스는 매우 소박한 삶을 살았다. 대개는 식빵과 물을 주식으로 삼았으며 이따금 치즈를 곁들였을 뿐이다. 에피쿠로스의 추종자들 역시 검소했다.

에피쿠로스는 행복에는 두 종류가 있으며, 그중 하나는 “신이 향유하는 것 같이 가장 차원이 높아 더 이상 늘릴 수 없는 행복”이며, 나머지 하나는 “쾌락을 더하거나 뺄 수 있는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모두가 누리는 후자의 행복은 언제든지 더욱 늘어날 수 있다. 동시대인들에게 “이미 충분한 데도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에게는 그 무엇도 충분하지 않다”라며 검소하게 살라고 충고했던 에피쿠로스는 대부분의 사람이 좀 더 많은 부를 갈망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바로 이 같은 에피쿠로스의 철학에서 독립선언문에 명시되어 있는 개념, 즉 빈부를 떠나 모든 시민에게는 쾌락을 극대화하고 불편을 최소화해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개념이 생겨났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사실 쿠키를 하나 먹으면 대개는 쾌락이 늘어난다. 하지만 이미 10여 개를 먹은 후라면 쿠키를 하나 더 먹더라도 쾌락이 증가하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바람직한 전략은 새 쿠키를 곧장 먹는 것이 아니라 쿠키가 또다시 쾌락으로 이어질 때까지 쿠키를 먹지 않고 두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생선, 고기, 우유 등 쉽게 상하는 제품에는 이런 전략이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돈이 필요하다. 상하기 쉬운 물품을 소유한 사람은 해당 물품을 돈과 교환할 수 있으며 적당한 때에 쾌락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되는 물품과 돈을 다시 교환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돈은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는 없지만 추가적인 쾌락을 살 수는 있다. 돈이 많으면 더 많은 쾌락을 살 수 있다. 돈의 역할에 대해 숙고한 최초의 사상가 중 한 사람이 바로 존 로크였다.

존 로크: 재화는 많을수록 좋다:
1632년,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난 로크는 옥스퍼드에서 논리학, 형이상학 등을 공부했다. 로크는 평생 정치, 종교, 경제, 교육에 관한 글을 썼다. 나는 그의 글을 통해 로크가 사유 재산, 축재, 돈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살펴볼 것이다. 로크의 기본 교리는 각 개인은 적어도 자기 자신을 소유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 신체는 개개인의 것이며 개개인이 행하는 모든 노동 또한 본인의 것이라는 뜻이다. 반면, 땅에서 나는 농작물은 신이 인류에게 나눠준 것이며, 특정한 개인에게 귀속되지 않는다. 다만 누군가가 여기에 자신의 노동력을 추가하면 그제야 자신의 소유가 된다. 예를 들어, 한 여자가 나무에서 사과를 따면 그 사과는 그 여자의 것이 된다. 땅이 인류에게 준 천연 재료에 인간의 노동력이 더해져서 음식과 옷, 집 등 재산이 생겨난다. 로크는 아무런 제약 없이 재산을 취득하고 축재하는 것이 노동의 공정한 결실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천연자원은 대개 희귀하다. 또한 많은 천연자원이 쉽게 상한다. 그래서 로크는 이렇게 서술했다. “동물을 사냥하거나 식물을 채집한 사람은 상하기 전에 축적한 재산을 모두 사용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몫보다 더 많은 것을 취하고 다른 사람의 것을 훔친 셈이 된다. 따라서 사용할 수 있는 것보다 많은 양을 비축하는 것은 멍청하고 정직하지 못한 일이다.”

지만 가족 전체가 가진 시간의 일부만 사용해도 자신과 가족이 먹기에 충분한 양의 고기를 사냥하고, 충분한 농작물을 채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경우라면 좀 더 많은 노동력을 쏟아 부어 추가로 재산을 확보할 수 있는 능력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로크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제시한다. “바로 여기서 돈의 용도가 생겨난다. 돈은 상할 걱정 없이 영속적으로 보관할 수 있으며, 상호 동의하에 쉽게 상하는 생활용품을 주는 대가로 돈을 받을 수도 있다.” 이렇게 하여 축재를 가능케 하고 정당화시키는 돈이 생겨난 것이다. 로크는 근면성의 정도에 따라 인간이 갖는 부의 양이 달라지는 만큼 화폐의 발명은 사람들에게 부를 존속시키고 늘릴 기회를 주기 때문에 소득과 부의 차이는 완전히 정당화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로크도 재화가 적은 것보다는 많은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돈의 개념을 이용해 재화의 부패 문제에 대한 답을 찾은 로크는 이제 도둑, 협잡꾼, 사기꾼들로부터 돈과 재산을 보호할 방법을 찾아내고 그 방법이 타당함을 증명해 보여야 했다. 로크는 사회가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 것이 바람직한지 맨 처음부터 파헤쳤다. 로크는 《통치론》에서 정부가 존재하기 이전에는 인간이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방식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고, 자신이 소유한 재화를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완벽한 자유의 상태”에 놓여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고약한 사람과 관행 탓에 재산권을 위협받게 될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고 지적하고, 사람들은 “생명, 자유, 재산의 상호 보존을 위해서” 기꺼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회에 참여하게 된다고 결론 내렸다. “인간이 사회의 일원이 되고 정부의 통치를 받고자 하는 주된 목적은 자신의 생명과 자유를 보장 받고 나아가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제러미 벤담: 이기주의와 이타주의의 조화:
1748년에 태어난 벤담은 여든네 살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법률체계와 정치 체계의 모든 측면에 대해 방대한 글을 썼다. 벤담은 특히 고통과 쾌락이라는 두 가지 개념이 인간의 행동을 지배한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인간은 고통을 회피하려고 애쓰고 쾌락을 늘리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사회 개혁을 지지했던 벤담은 사익의 추구가 사회의 공익에 보탬이 되는 행동으로 바뀔 수 있도록 이기주의와 이타주의를 조화시킬 방법을 찾고자 했다. 쾌락의 총합에서 고통을 뺀 것이 행복이라고 정의했던 벤담은 《정부론 단편》의 서문에서 “옳고 그름의 척도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고 기술했다. 어떤 행동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때는 정의나 공정성, 평등 같은 의도의 적절성을 따지기보다 그 행동의 결과가 최대 다수의 사람들에게 어떤 효용을 주는가를 도덕의 잣대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공리주의가 탄생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은 정의나 개인의 자연권 개념과는 반대다. 벤담이 주장하는 공리주의에 의하면, 거짓말, 속임수, 도둑질 같은 행동도 공동체의 전체 행복을 증진하는 데 도움이 되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정당화된다. 벤담은 이렇게 기술했다. “인간이 태어나는 순간 자연적으로 갖게 되는 불가침의 권리라는 자연권은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허튼소리다.” 공리주의에서 정의가 만연하고 정의에 보상이 뒤따라야 하는 유일한 이유는 장기적으로 보면 정의가 공동체에 이롭기 때문이다. 벤담은 미국 독립선언문에 언급된 이른바 ‘자명하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에 반대했다.

벤담은 정부라는 기관이 ‘양도할 수 없는 자연권’이라는 개념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현대 미국인들은 이런 권리를 지키기 위해 정부가 도입돼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그들은 정부가 설립됐을 때 이런 권리 중 상당수가 사실상 양도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정부는 시민들에게 법을 따를 것을 강요한다. 어쨌든 법이 모든 시민의 이익을 위해 도입됐다는 점만은 사실이다. 설사 개인의 자유가 줄어들더라도 공공의 이익을 위해 정의가 승리해야 한다면, 법률 준수와 세금 납부에 대해서도 똑같이 이야기할 수 있다. 이런 제약은 시민의 생명권과 자유권을 저해하지 않으며 행복 추구권을 약화시키지도 않는다.

2,500년에 걸쳐 내려온 진리, 돈은 많을수록 좋다:
모든 사람에게는 끝없이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벤담의 주장은 인간 본성에 내재한 절실한 욕망에 응답하고 이런 욕망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독립선언문 초안을 작성할 당시, 토머스 제퍼슨은 재산에 대한 언급을 생략하고 재산을 ‘행복’으로 대체했다. 제퍼슨은 단순한 재산권을 좀 더 광범위한 개념으로 대체해 유형재산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까지 권리를 확대하려 했던 것이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재산이든 다른 것이든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행복’을 해석할 수 있게 됐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독립선언문에 따르면 모든 인간에게는 행복을 ‘얻을’ 권리가 아니라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이다. 전자는 도달해야 할 절대적인 수준이 있다는 의미지만 후자는 행복은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이며 도달하고자 하는 행복의 수준이 점차 높아질 수도 있다는 의미다. 즉, 얼마나 행복하거나 부유하건 모든 사람에게는 추가적인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얘기다.

돈과 부에 대해서 깊이 고민했던 과거와 현재의 철학자들은 아리스티포스와 에피쿠로스에서부터 로크, 벤담, 제퍼슨에 이르기까지 많은 학자들이 분명하게 언급한 자명한 결론에 도달했다. 그들이 내린 결론은 바로 ‘돈은 많을수록 좋다’는 것이다.

제2부 과학의 여왕이 된 수학



구불구불한 곡선


인간은 태곳적부터 도박을 해왔다. 인간이 운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게임을 좋아했음을 보여주는 선사시대 유적으로는 메소포타미아에서 발굴된 기원전 3000년에 사용된 주사위 등이 있다. 그리스 시인 소포클레스는 기원전 5세기에 작성된 문서에서 주사위를 언급했다. 중국에서도 기원전 3세기에 전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복권을 발행하고, 만리장성을 짓기 위해 복권을 발행했다는 기록도 있다. 고대 로마인들은 비잔티움 제국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서기 482~565년)가 도박을 금지하기 전까지 도박을 해왔다. 또한 많은 교회가 빙고같이 운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는 게임을 통해 자금을 조달했다. 오늘날도 여러 나라에서 공공사업과 서비스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목적으로 복권 사업을 진행한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위험에 대비해 보험을 가입하면서 그와 동시에 힘들게 번 돈으로 도박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위험을 피하려고 돈을 내면서 그와 동시에 보험 비용보다 더 많은 돈을 치르고 위험을 떠안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위험을 싫어하는 인간이 도박을 하는 이유:
이 난제에 대해 가장 먼저 의견을 제시한 사람들 중에는 밀턴 프리드먼과 통계학자인 레너드 새비지가 있었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온갖 위험에 대비해 보험에 가입할 정도로 위험을 싫어하면서 한편으로 도박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프리드먼과 새비지는 그 심오한 역설에 당혹감을 느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 같은 역설적인 현상이 결코 드물지 않다고 지적했다. 사실 이런 현상은 너무 만연해서 “많은 정부가 복권을 효과적인 재원 조달 수단으로 여길 정도다.” 두 사람은 인간의 위험 감수 성향을 보여주는 모든 종류의 행동을 검토한 다음 “돈의 총효용 곡선을 약간 특수한 모양으로 만들면 이와 같은 실증적인 관찰 내용이 폰 노이만과 모르겐슈타인이 제시한 기대효용가설과 완전히 일치한다”라고 결론 내렸다. 그렇다면 ‘약간 특수한 모양’이란 대체 무엇일까?

이미 언급했듯이 부가 늘어날수록 부의 총효용은 늘어나지만 부의 효용이 늘어나는 정도, 즉 한계효용은 점차 줄어든다. 두 번째 아이스크림이 주는 쾌락은 첫 번째 아이스크림이 주는 쾌락보다 적듯이, 추가로 1달러의 돈이 생겼을 때 백만장자가 느끼는 쾌락은 빈곤한 사람이 느끼는 쾌락보다 적다. 이것을 그래프로 그려보면 효용함수의 곡선 자체는 우상향하지만 기울기는 감소하는 모양을 띤다. 따라서 효용곡선의 모양은 밑에서 바라보면 오목한 모양이다. 하지만 부의 스펙트럼에 따라 계속해서 이런 모양을 띠는 것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1달러와 100만 달러 사이 어딘가에 ‘부의 한계효용이 증가하는 구간’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바로 프리드먼과 새비지가 주장했던 것이다. 두 사람은 가난한 노동자 계급 출신이 많은 돈을 추가로 얻어 중산층으로 발돋움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돈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을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추가로 생긴 1달러의 돈은 그 존재가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수도 있지만 추가로 얻은 1만 달러의 돈은 추가로 얻은 1달러보다 1만 배 이상의 효용을 제공할지도 모른다. 이는 곧 여기에 해당하는 부의 구간에서는 한계효용이 증가한다는 뜻이다. 이 예시를 보면 바로 이런 이유로 사람들이 자신에게 불리한데도 기꺼이 도박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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