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제2국면
우석훈 지음 | 문예출판사
팬데믹 제2국면
우석훈 지음
문예출판사 / 2021년 5월 / 236쪽 / 16,000원
1장 우리는 선진국으로 간다
코로나 경제의 네 가지 국면 경제학이 정밀한 학문 같지만, 사실 예측은 어렵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확실성이 매우 높은 시기에는 변화의 부호가 플러스인지 마이너스인지 예상할 수만 있어도 다행이다. 백신을 무력화할 정도로 강력한 변이 바이러스가 등장해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려놓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전체 팬데믹 기간을 네 가지 국면으로 구분해볼 수 있다.
제1국면: 제1국면은 코로나 백신이 등장하기 이전까지다. 2009년에 팬데믹으로 번진 신종플루는 항바이러스제인 타미플루에 의해 기세가 꺾였다. 타미플루는 원래 있던 약이었는데, 신종플루에서 그야말로 ‘게임 체인저’ 역할을 했다. 코로나에 대해서는 아직 타미플루급 치료제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 기간에는 마스크 착용과 거리두기 그리고 격리 같은 물리적인 방법으로 대처했다. 제1국면은 2020년에 이미 지났다.
제2국면: 제2국면은 선진국에 백신이 보급되기 시작한 기간이다. 2021년이 이에 해당한다. 우리나라는 2021년 11월까지 접종을 끝내 집단면역을 계획하고 있지만, 백신을 확보한 나라와 확보하지 못한 나라 사이의 국제적 갈등이 매우 높아질 것이다. 물론 백신 접종이 시작된다고 해서 방역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 많은 독감 백신이 그렇듯이 코로나 백신도 100퍼센트 예방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백신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며, 백신을 맞았다고 해서 어디든 갈 수 있는 프리 패스를 받는 것도 아니다. 몸에서 형성되는 항체가 영구적인 것도 아니다. 일단 인구의 60~70퍼센트 정도가 백신을 맞아서 집단면역을 형성해 바이러스의 재생산을 낮추어야 한다. 백신이 유효하지 않은 변이가 생겨나는 것도 큰일이지만,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경우는 먼저 백신을 맞은 사람들의 항체가 사라지기 전에 후순위 사람들이 백신을 맞지 못한 경우다. 그럴 경우 코로나바이러스의 도돌이표가 시작된다.
제3국면: 제3국면은 개도국과 저개발국가에도 백신 접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시기다. 2022년이 대체로 이에 해당할 것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국가들을 어떻게 지원할지에 대한 논의가 중요해지고, 돈 많은 나라들만 백신을 확보해도 되는지, ‘백신 민족주의’에 대한 반발이 커질 것 것이다. 한국인, 특히 젊은 사람들이 휴양지로 선호하는 동남아에도 백신이 보급될 테지만, 이 기간에 관광이 전면 개방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국경을 봉쇄하다시피 걸어 잠그고 있는 베트남이 언제 관광을 재개할지 정도가 변수일 것이다. 반면 선진국들 사이의 여행은 2022년이 되면 부분적으로 가능할 것이고, 미뤄두었던 방문이나 여행이 일시에 몰려 한동안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제4국면: 제4국면은 아프리카를 비롯한 저개발국가에도 백신이 어느 정도 보급되는 시기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당장 아프리카로 관광을 갈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2023년의 가장 큰 관심은 WHO가 코로나 팬데믹 종료 선언을 할 수 있느냐일 것이다. 선진국들 일부는 자국 내에서 종료 선언을 할 수도 있지만, 세계적인 팬데믹의 종료는 조금 다른 문제로 2023년은 넘어가게 될 것 같다. 이 시점에 팬데믹의 아주 긴 꼬리를 보게 될 것이다.팬데믹 제4국면 어디에선가 한국 경제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코로나 균형’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미 대부분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갔을 테지만, 그 일상은 처음 코로나바이러스를 만난 2019년 겨울과 같은 일상이라는 보장은 없다. 많은 사람의 직장이 바뀌었을 것이고, 많은 식당이 문을 닫았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열리지 않는 곳이 많을 것이다. 그렇게 도달한 한국 경제는 더 이상 선진국 초입 혹은 선진국 평균 정도가 아니라 선진국 중에서도 최상위 그룹에 속해 있을 것이다. 1인당 국민소득 기준으로 일본과 프랑스보다 앞설 확률이 높다. 코로나가 경제위기를 초래해 고통스러운 것도 맞지만, 한국에는 매우 특별한 의미가 될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코로나 균형 속에서 한국은 국제적으로 더 잘사는 나라가 되어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이 모두에게 행복한 미래를 보장한다는 것은 아니다.
회복의 네 가지 패턴: U자형, V자형, L자형, K자형 국민경제나 산업이 위기에서 회복되는 패턴을 흔히 U자형과 V자형으로 구분한다. 고점에서 저점, 저점에서 고점이 완만하게 이어지는 U자형은 경제가 몇 년에 걸쳐서 회복되고 천천히 올라가는 경우를 말하며 저점이 좀 길다. V자형은 급하게 내려갔다가 급하게 올라가는 형태다. 1980년 공황, 1997년 IMF 경제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모두 우리나라에서는 V자형으로 회복되었다. 이에 반해 L자형은 일본의 1990년대 경제위기 이후처럼 장기 침체가 계속되는 것으로, ‘잃어버린 10년’, 그리고 다시 ‘잃어버린 20년’ 같은 표현이 나왔다. K자형은 코로나와 함께 등장한 새로운 용어다.
K자형은 코로나로 인해 격차가 급격히 심해지며 윗부분과 아랫부분이 정반대 형태로 가는 경우다. 이런 패턴이 생기면 단기적으로는 경제성장률이 떨어지지도 않고, 문제가 급격하게 드러나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장기적으로는 국민경제가 상당히 위험해진다. 경제 체질이 약해지고, 내부 경쟁이 지나치게 높아지고, 사회적 합의에 도달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국가를 이끌어가는 집단은 사회통합을 형식적으로라도 이루기 위해 간편한 방법으로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강화하려는 경향이 생긴다.
국민경제 차원에서 논의되던 U자형 혹은 V자형 패턴이 최근 각 산업은 물론이고 하부 업종 단위에서도 이야기되기 시작했다. 코로나로 인해 경제지표가 하락세를 유지하다가 U자형이 됐든 V자형이 됐든 다시 상승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예측이다. 예컨대 “코로나만 끝나면 물밀듯이 해외여행을 갈 거다”, 이런 추론이다. 진짜로 그럴까? 흔히 ‘보복소비’라고 불리는 팬데믹 직후의 소비 증가는 일시적일 가능성이 높아, 이를 장기간에 걸친 추세로 보기는 어렵다.
국제 수지에 영향을 미치는 해외여행은 지불 여력과 레저 패턴, 두 가지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여행업을 비롯한 많은 서비스산업의 특징이 소멸성이다. 즉 한 번 사용되지 못한 서비스는 사라진다. 영화나 연극이 그렇고 스포츠가 그렇다. 그렇다면 해외여행은 소멸성 서비스인가, 아니면 금융상품처럼 저축성 서비스인가? 기본은 소멸성이다.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전제하면, 많은 경우 소비자는 단위 기간의 예산 제약 하에서 서비스 구매를 결정한다. 그런데 한국의 많은 중산층은 코로나 국면의 비상 상황을 버티면서 가처분소득에 타격을 받게 되었다. 의식주의 많은 요소 중에서 여행 특히 해외여행은 순위가 뒤로 밀린다. 비즈니스 여행 역시 마찬가지다. 해외 콘퍼런스 등 공무나 비즈니스 출장도 기본적으로는 소멸성으로 그해에 하지 못한 비즈니스 여행은 사라진다.
V자형을 희망하는 많은 산업에서 살펴봐야 할 것은 단기 반등이 아니라 패턴 분석이다. 세계화가 첨단이던 시대는 코로나와 함께 종료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세계적인 차원의 글로벌 밸류체인이 갑자기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방역이 조금 더 안전한 곳으로 그리고 운송거리가 조금 더 가까운 곳으로 재배치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구매력과 소비성향 분석뿐만이 아니라 좀 더 장기적인 측면에서 패턴 분석이 필요하다.
2장 경비회사에서 방역회사로: 돌아온 국가 그리고 부작용
국가의 귀환 팬데믹과 함께 생겨난 가장 큰 변화는 국가가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일 것이다. 국가와 함께 국경이 돌아왔고, 국경 넘어가는 게 이렇게 큰일인지 새삼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국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국가란 무엇인가? 사회 시간에 배웠듯이 공식적인 국가의 기원은 시민들끼리 맺은 일종의 사회계약이다. 홉스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인 야만 시대는 너무 힘드니, 서로가 가진 권리의 일부를 양보해 국가가 탄생하게 된다고 보았다. 가장 표준적인 국가관이다. 국가를 인정하는 시각 중에서 국가를 가장 작게 보는 것이 로버트 노직의 최소국가론일 것이다. 깡패들 중에서 가장 센 깡패가 국가이고, 그래서 국민이 거기에 돈을 주고 경비를 맡긴다는 것이다. 경비가 국가 역할의 전부라는 것인데, 세콤 같은 경비 회사 중에서 가장 센 회사가 국가라고 보면 노직의 국가론에 유사해진다.
1990년대 이후의 세계를 ‘워싱턴 컨센서스’라는 말로 표현했다. 작은 정부, 세금 감면, 자본 중심의 정치 운용을 이렇게 불렀는데, 금융의 상징인 뉴욕 월가와 정치의 상징인 워싱턴 사이에 어떤 ‘합의’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름 붙이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일련의 흐름을 ‘신자유주의’라고 불렀다. 커질 대로 커진 국가를 좀 작게 만들자는 반대 흐름이기도 하고, 소련의 몰락으로 더 이상 냉전을 끌고 갈 필요가 없어진 자본주의가 이제는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는 선언 같은 거라고 볼 수도 있다.
세계화가 클라이맥스로 가면서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로부터 시작된 ‘노마디즘’, 즉 유목민적 삶과 사유가 마케팅 세계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한곳에 정주해서 살아가는 것은 농업 문명의 오래된 잔재나 공업 시대의 집착 같은 것으로 간주되었다. 국제기구에 취직하는 것을 선호하는 문화적 흐름이 생겼고, 교환학생이 되는 것이 필수처럼 여겨졌다.
워싱턴 컨센서스 이후 30년, 국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여권만 제대로 갖고 있으면 국경도 큰 의미가 없는 듯 보이는 시대가 왔다. 유럽연합(EU)이 강화되면서 유럽 안에서는 정말로 국경이 의미가 없어졌다. 오죽하면 트럼프가 “미국을 다시 한 번 위대하게”라는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국가’를 전면에 내세워 대통령에 당선되었겠나. 트럼프는 국가주의를 강화하고, 국경을 강화했다.
국가가 별것 아니고 진짜 중요한 것은 돈이고 자본이라고 생각하던 노마디즘의 흐름이 코로나로 인해 30년 만에 정지했다. 갑자기 농경문화로 돌아간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정착형 삶으로 문명사적인 전환을 했다. 정착 정도가 아니라 재택과 격리가 이어진다. 전 세계 TV에서 각국이 느끼는 민감도와 생활상이 고스란히 보도된다. 모두 실내에, 자기 방에 갇혀 있고, 온라인 가동이 가능한 장치들만이 전기와 전파를 통해 이 고립 사이에서 사람들을 이어준다.
그리고 명령은 국가로부터 나온다. 집에 있어야 할지 혹은 식당을 열어야 될지, 국가가 전권을 가지고 결정한다. 문득 어느 나라에 살고 있느냐가 개인의 일상성을 결정하는 순간이 왔다. 영업이 중단된 뉴욕에 살고 있으면 매우 힘들고, 봉쇄된 런던이나 파리에 있으면 더욱 힘들다. 우리의 경우 개인들이 자유를 많이 포기한 대가라고 외국에서는 놀리지만, 어쨌든 한국에 있으면 그들보다는 일상생활이 덜 힘들다.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최고 단계로 격상돼도 외국 주요 도시들의 자가격리보다는 그 강도가 약하다. 가장 높은 단계에서는 미용실이 문을 닫고, 백화점이 문을 닫는 정도다. 5인 이상 집합 금지가 가장 강도 높은 제한이다.
그 동안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서 자본에 밀려 무대 뒤 조연으로 멀찌감치 물러섰던 국가가 다시 전면에 나섰다. 돌연 권능을 회복한 팬데믹 시대의 국가는 냉전 시대의 국가만큼 많은 것을 명령한다. 규칙과 제도를 만드는 국가의 권한은 팬데믹 상황에서 냉전 시대를 방불케 할 정도로 강화되었다. 아마 로버트 노직이 새로 책을 썼으면 국가는 경비회사가 아니라 가장 유능한 방역회사라고 했을 것 같다. 팬데믹 국면에서 그래도 가장 믿을 만한 방역회사는 동원력 있는 국가가 아니겠는가? 자본주의 초기에 모두가 국가의 눈치만 봤던 것처럼, 팬데믹 국면에서 다시 한 번 모두가 국가의 눈치만 보는 시기가 왔다.
팬데믹, 다른 유형의 재난과 무엇이 다른가? 태풍이나 허리케인 등 굵고 짧게 발생하는 재난과 달리, 팬데믹은 그 지속성에서 다른 재난과 비교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기후변화나 오존층 파괴와 같이 지구 환경의 변화 자체가 원인인 재난을 제외하면, 충격이 가장 오래가는 재난이 팬데믹이다. 중세를 완전히 붕괴시킨 흑사병은 400년 가까이 유럽 전역을 떠돌았다. 가깝게는 1918년의 스페인독감이 2년간 지속되었고, 1968년에 WHO에 의해 1호 팬데믹으로 선언된 홍콩동감도 2년간 지속되었다. 2호 팬데믹인 신종플루는 2009년에 발생한 1년쯤 후에 어느 정도 잡혔다.
바이러스가 일단 팬데믹 수준이 되면, 좋든 싫든 사회 구조 변화를 동반한 큰 변화를 남긴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코로나바이러스는 중세를 무너뜨리고 자본주의라는 전혀 새로운 세상을 촉발한 흑사병에 비견할 정도는 아니다. 또한 자본주의 등장 이후 가장 큰 경제적 충격인 대공황을 촉발한 1916년 마이애미 허리케인과 비견될 정도도 아니다.
1926년 플로리다에는 집 투기 붐이 일었는데, 특히 마이애미 해변 등 플로리다의 해안가에 별장을 지어 파는 것이 유행이었다. 물론 정상적인 투자였으면 피해가 덜했겠지만, 수익성이 워낙 좋다고 하니 대개 공사는 대출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불어닥친 허리케인이 공사 중이거나 아직 분양이 안 된 바닷가의 별장들을 휩쓸고 갔다. 이에 따른 충격이 누적되어 3년 후 1929년 10월 월가의 붕괴를 초래했다. 공식적으로는 이 시점이 세계적 파시즘과 2차 세계대전을 유발한 대공황의 시작이다. 대공황은 시작은 있지만, 1939년에 터진 2차 세계대전과 그 기간이 겹치기 때문에 종료 시점이 없다. 길게 놓고 보면 마이애미 허리케인의 충격이 그렇게까지 클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는 한국에서 일어난 그 어떤 재난보다도 길고 두꺼운 꼬리를 남기게 될 것이다. IMF 경제위기는 짧은 시간에 충격이 집중되어 한국 경제사에 강렬한 흔적을 남긴 바 있다. 한국 경제가 처음으로 경험한 전격적인 충격이었던 IMF 경제위기보다는 코로나의 충격이 덜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정권이 바뀌고 여당과 야당이 교체되는 수준의 변화보다는 코로나의 충격이 더 클 것이다.
3장 팬데믹 그리고 학교와 교육의 변화
돌봄과 대학, 두 개의 포컬 포인트 팬데믹은 일시적으로 학교를 정지시켰고, 우리가 평소 경험하지 못한 특수한 상황을 만들었다. 한국 교육을 위에서 들여다보면 두 개의 점이 나온다. 하나는 돌봄이고, 다른 하나는 고등교육으로 분류되는 대학이다. 영유아부터 시작되는 돌봄은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교육의 중요한 축으로 작동하고, 그 후로는 최종 단계인 대학에 맞춰서 교육이 설계된다. 교육부나 교육청 등 교육 당국이 각각의 단계에서 교육 목표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와 상관없이, 한국 교육은 그렇게 두 개의 점을 일종의 포컬 포인트, 즉 초점으로 삼아서 작동한다.
법적으로는 학원으로 분류되는 영어유치원에 자녀를 보내는 선택은, 두 번째 포컬 포인트인 대학에 맞춰 5세 때부터 자녀의 삶을 디자인하는 경우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어린이집에 보내는 선택은, 첫 번째 포컬 포인트인 돌봄에 집중하는 경우다. 유치원은 두 선택의 절충안이다. 이 두 개의 포컬 포인트가 교차하는 지점이 대략 중학교 2학년 정도다. 두 번째 포컬 포인트인 대학에 맞춰서 특수목적고등학교(특목고)를 선택하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이 같은 반에서 수업하는 거의 마지막 기간이 중학교 2~3학년이다. 그 분리를 아예 초등학교 때 하자는 것이 국제중학교 논의였다. 이건 사회적으로 과도하다는 선택이 이미 내려진 상태다.
한국에서 팬데믹은 교육에서 이 두 개의 포컬 포인트를 더욱 극명하게 드러내며 강화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팬데믹 국면에서 첫 번째 포컬 포인트인 돌봄은 멈추지 않지만, 두 번째 포컬 포인트인 대학은 멈춘다. 다만 대학 입시는 멈추지 않는다. 팬데믹 기간에 어린이집과 초등학교가 문을 닫은 일은 학교나 인근에서 확진자가 발생해 긴급 폐쇄하게 된 경우 아니면 없다. 어린이집이나 초등학교는 ‘긴급 돌봄’ 형태로 줄곧 운영되었다. 우리나라는 공장 문을 닫은 적이 없고, 국경을 닫은 적도 없다.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 공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려면 노동자의 자녀들에 대한 돌봄을 중단할 수도 없다. 돌봄은 한국 자본주의가 양보할 수 없는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