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어떻게 부자의 무기가 되는가
천준범 지음 | 부키
법은 어떻게 부자의 무기가 되는가
천준범 지음
부키 / 2020년 9월 / 283쪽 / 16,000원
일단 치킨 가게부터 차려 봅시다
재벌이 돈 버는 방법 vs 재벌(을 규제하는) 법 이 책에서는 ‘재벌법’이라는 말을 쓸 예정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법의 분류에 재벌법이라는 분야는 없다. 참고로 법전의 분류에 따라 그 경계를 구분해 보면, 상법의 ‘회사 편’ 중에서 재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여러 규정, 재벌의 경영권 승계를 둘러싸고 나온 회사법 관련 판례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중 합병을 포함한 자본거래를 규율하는 부분,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중 대규모 기업 집단과 내부 거래 규제에 관한 부분, ‘세법’ 중 상속과 일감 몰아주기 등 재벌 거래를 규제하기 위해 도입된 부분이 이제부터 설명할 ‘재벌법’에 속한다.
재벌법은 대부분 재벌이 사업을 잘해서 돈을 버는 것 이외에 개인적으로 돈을 더 벌 수 있는 방법 또는 세금이나 책임을 피해서 돈을 아끼는 방법을 고안해 냈을 때, 그 방법을 금지 혹은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니 재벌이 돈 버는 방법과 재벌을 규제하는 법은 사실 동전의 양면과 같다. 다음 장부터는 본격적으로 재벌이 돈을 벌어 왔고, 현재도 돈을 벌고 있는 방법, 그대로 따라 하면 누구나 재벌처럼 부를 증식할 수 있는 비법에 대해 설명할 것이다. 앞으로는 ‘재벌이 돈 버는 방법’을 줄여서 재벌법이라 할 것이다. 물론 ‘이런 방법을 규제하기 위해 만든 법’도 재벌법이라고 부를 것이다. 두 가지가 사실 같다는 점은 이야기한 바 있으니, 이렇게 줄여 쓰더라도 이해해주면 좋겠다.
재벌법 기초 편 - 법을 알면 돈은 스스로 증식한다
기초 1단계 - 회장님 직접 밀어주기 가장 기초적인 재벌(이 돈 버는 방)법은 쉽다. 회장이든 다른 사람에게든 회사가 돈을 주면 된다. 받은 사람이 증여세만 정확히 내면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회사는 그냥 증여할 수 없다. 아무 대가도 받지 않고 회삿돈을 다른 사람에게 증여할 경우, 그런 결정을 한 임원이 자신의 돈으로 해당 액수를 회사에 채워 넣어야 하고(손해배상), 심각한 경우 철창신세를 질 수도 있다(업무상 배임죄).
합법적으로 회사가 회장에게 돈을 밀어주는 기본적인 방법은 연봉으로 주거나 배당금으로 주는 것이다. 그런데 회장에게 배당금으로 돈을 밀어줄 경우 회사 밖으로 흘러나가는 돈이 너무 많아진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재벌 대기업들은 배당금보다 경영진으로 참여하고 있는 회장 또는 그 가족들의 급여나 보너스(상여) 등을 포함한 연봉을 높게 책정하는 방법을 주로 이용해 왔다. 그러나 이 방법에는 한계가 있다. 우선 사람들은 대부분 근로 소득을 ‘일한 것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연봉을 너무 많이 받으면 그것이 적당한지 의문을 제기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연봉을 과도하게 높여 놔도 회사가 성장할수록 회장이 돈을 더 많이 잃게 되는 상황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시가총액이 1000억 원, 연 매출액이 1000억 원인 회사에서 회장이 연봉으로 10억 원을 받는다고 생각해 보자. 일단 이렇게 받으면 과도하게 챙긴다고 사람들의 눈총을 받을 것이다. 이런 부담 속에서 회장이 세금을 제외하고 자신의 연봉 전부를 회사 주식을 사는 데 쓴다고 해도, 늘릴 수 있는 회사 자본은 극히 적다. 일단 소득에 대한 세금으로 약 4억 원을 납부한 뒤 나머지 6억 원 정도로 1000억 원의 가치가 있는 회사의 주식을 시가로 산다면, 회장의 지분율은 겨우 0.6% 정도만 늘어날 뿐이다. 이렇듯 회장이 연봉을 아무리 많이 받아 봤자 계속 성장하는 회사의 지분을 크게 늘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회장은 ‘내 회사인데, 늘어나는 성장의 열매를 조금이라도 더 누리고 싶다’라고 생각한다. 또 지분율이 낮아지면 경영권을 지키는 것도 어려워진다. 그래서 회장에게는 마법이 필요했다.
1996년 10월 30일, 한국의 대표적인 재벌 대기업이 입장권 1장 값으로 입장권 10장을 바꿀 수 있는 마법 쿠폰을 주주들에게 팔겠다고 했는데, 무언가에 홀린 듯 모든 주주가 그 좋은 쿠폰을 사지 않겠다고 했다. 그 바람에 외부의 제3자가 마법 쿠폰을 독차지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후 제3자는 쿠폰을 모두 입장권으로 바꿔서 20년이 지난 후 1000배가 넘는 이익을 거두었고, 이 대기업의 경영권을 거머쥐게 되었다. 참고로 앞에서 말한 ‘마법 쿠폰’은 현실에서 전환사채(CB)라고 불리는 증권이다.
재벌(이 돈 버는 방)법의 첫 단추는 이렇게 끼워졌다. 회장에게 ‘비싼 것을 싸게 파는’ 단순한 밀어주기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엄연히 가격표가 붙어 있는데도 그것을 싸게 판다면 곧바로 눈에 띈다. 특히 회사가 가지고 있는 비싼 것을 특정한 사람에게 싸게 팔면 그런 결정을 한 임원은 심각할 경우 은팔찌를 찰 수도 있다(업무상 배임죄). 그래서 언뜻 보기에는 가격표가 없어 보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권리’를 회장에게 주거나 싸게 파는 방법을 고안해 낸 것이다.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권리, 전환사채나 신주인수권부사채를 싸게 팔아서 회장에게 회사의 성장에 따라 크게 돈을 벌 기회를 주는 것이 기초 1단계 재벌(이 돈 버는 방)법이다. 이 밖에도 싼 이자로 돈 빌려주기, 회사 직원 파견해 주기, 회장 건물에 사무실 두기와 같은 다양한 방법이 있었지만, 아쉽게도 이 방법들은 25년이 지난 지금 ‘무작정 따라 하기’를 할 수 없다. 단순한 방법이기도 하고 너무 오래되어서 그동안 이를 막는 법이 지뢰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세금도 정확히 내야하고, 적발될 경우 과징금이나 형사 처벌도 무겁다. 무엇보다 마법 쿠폰은 널리 알려진 방법이기에 함부로 따라 하기가 부담스럽다. 물론 곳곳의 지뢰밭을 피해 위의 고전적인 방법을 이용하는 경우가 있긴 하다.
이제 ‘숨바꼭질’ 이야기를 해보자. 이런 ‘직접 밀어주기’ 식의 재벌(이 돈 버는 방)법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본격적인 재벌 ‘법’을 탄생시켰다. 가장 먼저 사람들은 직접 밀어주기 사례를 보고 ‘불공정한 거래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졌다. 회사가 회장에게 싼 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것은 정가에 비해 싸고, 회사가 회장 건물에 사무실을 두고 비싼 임대료를 지불하는 것은 정가에 비해 비싸니 공정하지 않아 보였던 것이다. 또는 ‘불공평’하다고도 생각했다. 그래서 1996년 ‘공정거래법’의 ‘불공정 거래 행위’를 규제하는 제23조 제1항에 새로운 조항이 하나 생겼다. 제7호가 신설된 것이다.
‘제23조 (불공정거래행위의 금지) ① 사업자는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행위로서 공정한 거래를 저해할 우려가 있는 행위(이하 “불공정거래행위”라 한다)를 하거나, 계열회사 또는 다른 사업자로 하여금 이를 행하도록 하여서는 아니 된다. ~중략~ 제7호-부당하게 특수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에 대하여 가지급금ㆍ대여금ㆍ인력ㆍ부동산ㆍ유가증권ㆍ무체재산권등을 제공하거나 현저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여 특수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를 지원하는 행위’ 1998년에는 세법에도 비슷한 의미의 새로운 규정이 추가됐다. 사실 이렇게 누군가를 ‘직접 밀어주는’ 거래는 그것 자체가 불공정하다기보다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 이용되었기에 부당한 방법이었다. 즉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을 매긴다’는 세법의 큰 원칙에 어긋나는 문제였다. 참고로 1998년 세법에 새로 도입된 규정은 아래와 같다. ‘법인세법 제52조(부당행위계산의 부인) ① 납세지 관할세무서장 또는 관할지방국세청장은 내국법인의 행위 또는 소득금액의 계산이 대통령령이 정하는 특수관계에 있는 자(이하 “특수관계자”라 한다)와의 거래로 인하여 그 법인의 소득에 대한 조세의 부담을 부당히 감소시킨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 법인의 행위 또는 소득금액의 계산(이하 “부당행위계산”이라 한다)에 관계없이 그 법인의 각 사업연도의 소득금액을 계산할 수 있다. ② 제1항의 규정을 적용함에 있어서는 건전한 사회통념 및 상관행과 특수관계자가 아닌 자간의 정상적인 거래에서 적용되거나 적용될 것으로 판단되는 가격(요율ㆍ이자율ㆍ임대료 및 교환비율 기타 이에 준하는 것을 포함하며, 이하 이 조에서 “시가”라 한다)을 기준으로 한다.’
기초 2단계 - 회장님 회사에 몰아주기 1996년에 벌어진 마법 쿠폰 사건은 설계자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정도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20세기의 마지막 해인 2000년에는 회장이 고발되기까지 했다. 게다가 ‘부당거래법’이라는 커다란 장벽 두 개가 재벌(이 돈 버는 방)법의 앞을 막아서자, 21세기에는 이 장벽을 피해 가는 방법이 연구되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그리 어렵고 복잡한 방법은 아니었다. ‘부당한’ 거래를 금지하는 법이 생기자, ‘부당하지 않은’ 거래를 통해 밀어주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회장님 회사와 거래할 때 너무 싸게 팔거나 너무 비싸게 사 주면 부당하고 불법이라고 하니, 너무 싸지 않게 팔고 너무 비싸게 사지 않는 거래를 시작한 것이다. ‘회장님 회사에 (매출) 몰아주기’를 하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므로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여러분이 운영하고 있는 회사에서 꼭 필요한 일을 떼어 내어 새로운 회사를 차리고, 여러분의 회사는 예전과 똑같이 일하면 된다. 단,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이때 새로운 회사의 주주는 ‘회사’가 아닌 ‘여러분’이 되어야 한다.
2001년 2월 22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재벌 대기업 그룹에 계열회사 하나가 조용히 추가되었다. 이 회사를 설립할 때 회장과 가족은 자본금 50억 원을 내고 100% 주주가 되었다. 그리고 이 회사는 설립된 첫해에 거의 20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듬해인 2002년에는 3700억 원을, 5년 차인 2005년에는 무려 1조 5000억 원을 벌어들였다. 어떻게 이런 마법과 같은 일이 또 일어났던 걸까?
이 마법의 회사는 같은 그룹 내 계열회사들이 꼭 필요로 하는 일을 하는 곳이었다. 이 그룹은 자동차를 한 해에 500만 대도 넘게 만드는데, 자동차는 여러 공장에서 생산된 2만 개가 넘는 부품을 조립해 완성하고, 이 완성차는 국내 판매는 물론 전 세계로 수출된다. 수많은 기계 부품과 그 부품이 조립된 모듈, 또 그 모듈을 조립해서 완성한 차를 소비자에게 전달하기까지 공장에서 공장으로, 창고에서 창고로, 공장과 창고에서 소비자에게로 어마어마한 기계들을 운송하려면 거대한 물류 체인이 필요하다. 이런 막대한 운송과 물류 업무가 모두 새로 설립된 이 회사, ‘회장님 회사’로 집중되었던 것이다.
21세기 마법의 회사는 ‘일감 몰아주기’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20세기의 재벌법은 ‘너무’ 싸게 팔거나 ‘너무’ 비싸게 사 주는 것을 불법이라고 규정했기 때문에, ‘같은 값으로 사고판다면’ 그 양이 많아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허를 찔린 것이다. 이때부터 일종의 박리다매식 재벌(이 돈 버는 방)법이 시작됐다. 회장님의 회사는 이제 다른 회사들보다 더 싸게 사 와서 더 비싸게 파는 방법으로 한 번의 거래에서 높은 이익을 남기지 않는다. 그 대신 누가 뭐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적당히 이익을 남기면서 덩치를 키우고, 이를 통해 전체 규모와 이익의 양을 늘렸다. 이런 방식의 거래는 괜찮다는 소문이 나자 이 방법은 유행처럼 빠르게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새로운 마법의 회사들이 부당거래법을 피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정부는 당황했다. 법을 개정하려면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일이었다. 부랴부랴 ‘비슷한 값이어도 너무 많이 거래하는 것은 부당한 것’이라는 새로운 논리를 개발했고, 이런 논리로 공정거래위원회는 회장님 회사에 과징금 수백억 원을 내라고 밀어붙였다. 이에 회장님 회사는 그 과징금을 취소해 달라고 소송을 했지만, 고등법원도 정부의 손을 들어 주어 모두가 대법원의 판결만 기다리고 있던 때였다. 이렇게 5년 만에 2조 원 이상의 가치로 평가받는 ‘잭팟’을 터뜨린 회장님 회사를 보면서 화가 난 사람들이 있었다. 누구였을까?
바로 회장님 회사에 물류와 운송을 맡긴 자동차 회사의 주주들이었다. 물류와 운송은 자동차 회사에 꼭 필요한 사업인데 회사가 직접 하거나 자회사를 설립해서 하지 않고, 왜 회장님 회사와 거래를 하느냐고 자동차 회사의 주주들이 따졌다. 아무리 같은 값으로 거래하더라도 돈이 자동차 회사로 들어오지 않고 회장님에게 흘러 들어가는 것은 불공평하며, 무엇보다 ‘자동차 회사의 경영진이 회사를 배신한 것’이라고 항의했다. 경영진이 회사를 배신하는 것을 법률 용어로 ‘배임’이라 한다. 자동차 회사의 주주들은 자동차 회사가 밀어준 덕분에 회장님 회사가 벌어들인 1조 원을 회장이 갚아 내야 한다는 소송을 시작했다. 그 돈은 원래 회장이 아니라 자동차 회사의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3년 동안의 긴 소송 후, 2011년 회장이 자동차 회사에 배상해야 하는 손해액은 고작 800억 원 정도라는 판결이 나왔다. 그것은 ‘같은 값이어도 너무 많이 거래하면 부당한 것이고 경영진이 회사를 배신한 것’이라는 주장이 인정되어 나온 손해액은 아니었다. 워낙 많은 거래를 하다 보니 그중 ‘현저히 유리한’ 조건으로 한 거래가 일부분 있었다고 봤을 뿐이었다. 그리고 다음 해, 자동차 회사는 정부가 부과한 과징금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취하한다. 대법원 판결은 나오지도 못했다. ‘일감 몰아주기’라는 새로운 재벌(이 돈 버는 방)법이 불법의 딱지를 떼고 ‘절세 전략’의 하나로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부당거래법은 20세기 재벌(이 돈 버는 방)법을 막기 위해서 생긴 것이었다. 그런데 21세기라고 이런 숨바꼭질이 없었을까? 물론 있었다. 이런 새로운 재벌(이 돈 버는 방)법을 막기 위한 새로운 재벌(을 규제하는) 법이 곧 생겨났다. 우선 2010년에는 ‘너무 싸거나 비싸게 거래하는 것’에 이어 ‘너무 많이’ 거래하는 것도 부당하다는 내용이 부당거래법에 새로 추가됐다. 그리고 2011년에는 상법에 ‘회사 기회 유용’을 금지하는 제397조의2가 신설되어서 2012년에 시행되었다. 같은 해 회장과 가족이 상당한 지분을 가진 회사와 거래를 많이 한 결과로 그 회사에 이익이 날 경우, 그 이익을 회장과 가족에게 ‘증여’한 것으로 보는 세법 조항도 신설되어 시행되었다. 과연 새로운 법들은 재벌(이 돈 버는 방)법을 완벽히 틀어막는 데 성공했을까? 궁금하다면 다음 문을 열고 세 번째 방으로 들어갈 차례다.
기초 3단계 - 회장님 회사 끼워 넣기 장사는 첫째도 목, 둘째도 목, 셋째도 목이라는 말이 있는데, 목 장사의 원칙은 재벌(이 돈 버는 방)법에도 응용되었다. 회장님 회사를 목으로 이용한 것이다. 가장 최근에 알려진 사건은 ‘치즈 통행세’라고 불리는 한 피자 프랜차이즈 회사의 거래다. 이는 작은 중견 프랜차이즈 회사의 사례로 이 방법이 유명세를 치르긴 했지만, 사실 이는 재벌 대기업들이 오래전부터 흔히 쓰던 방법이었다.
‘통행세 거래’는 앞에서 보았던 몰아주기와 기본적으로 비슷하다. 회사에 꼭 필요한 물건이나 서비스를 공급받을 때, 회장님 회사를 세워서 원래 공급하던 회사와 공급받는 회사 사이에 끼워 넣는 것이다. 즉 ‘치즈 회사 → 피자 회사’ 2단계로 이루어지던 거래를 회장님이 치즈 유통회사를 하나 세워서 ‘치즈 회사 → 회장님 회사 → 피자 회사’ 3단계로 바꾸면 된다. 그러면 회장님 회사는 기존 치즈 회사가 피자 회사와 거래하면서 남겼던 이익 중 일부를 가져가게 된다. 이런 새로운 재벌(이 돈 버는 방)법이 정당한지 부당한지에 대한 논란은 한참 계속되었다. 어떤 문제가 결론이 잘 나지 않는 건 어려워서가 아니라 문제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도 핵심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중간에 끼어 들어간 회장님 회사가 ‘실제 수수료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을 하고 있느냐’를 판단해야 했다. 하지만 유통의 본질은 ‘연결’이다. 좋은 물건을 생산하는 사람과 이 물건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연결해 주기만 하면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이것도 부당거래법에 들어가게 되었다. 2013년 개정된 공정거래법 제23조 제1항에는 아래와 같이 새로운 내용이 몇 줄 추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