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던
강창훈 지음 | 일조각
딜던
강창훈 지음
(주)일조각 / 2020년 9월 / 287쪽 / 18,000원
국제금융 시장의 약자들1997년 가을, 홍콩 ? 어느 호텔 행사장. 매우 품위 있어 보이는 노신사가 필자에게 다가와 “혹시 Mr. Kang이십니까?” 라고 물었다. ‘고위급 인사 같은데 왜 나를 아는 척하는 것일까?’ 얼떨결에 내민 필자의 손을 노신사는 두 손으로 덥석 잡으며 말했다. “저는 스리랑카 중앙은행 총재입니다.” ‘중앙은행 총재? 이렇게 대단한 양반이 왜 나 같은 젊은 딜러를 찾아와서 인사를 할까?’ 필자는 계속 의아해하며 노신사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지난번 우리나라의 국채 발행 때 귀하의 은행에서 참여하셔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채권 매입을 Mr. Kang께서 수행하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 필자의 머릿속에는 몇 달 전에 있었던 채권 거래가 떠올랐다.
스리랑카 정부는 외환보유액 확충을 위해 달러 자금 조달에 나섰고 1997년 3월 달러 표시 채권을 국제금융시장에서 발행했다. 필자가 근무했던 외환은행은 그 채권을 매입함으로써 스리랑카 정부 앞으로 신용을 공여한 것이다. 사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1997년 2월 한보철강 부도 이후 한국계 은행의 자금 조달은 예전 같지 않았다. 은행 현지법인에서 채권 투자를 담당하고 있던 필자는 어려워진 투자환경에서 최대한 신중하게 투자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은행 본부에서 지시가 내려왔다. “스리랑카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을 매입하시오.” 사실 스리랑카는 당시 동남아 투자붐을 이끌었던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의 국가와 달리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국가였다. 따라서 필자의 마음에는 본부의 지시가 별로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본부의 지시에는 이유가 있었다.
1995년 외환은행은 스리랑카 콜롬보에 지점을 개설했는데, 그 지점의 자산으로 편입하기 위해 스리랑카 정부 채권을 매입하기로 본부가 결정한 것이다. 참고로 외환은행의 설립 배경이 국책은행이다보니 해외 네트워크의 설립이 순수하게 상업적인 목적에 의한 것만은 아닌 경우도 있었다. 즉 외교관계 등 국가적인 목적에 의해 해외 점포가 설립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고, 콜롬보 지점도 그러한 케이스였다.
콜롬보에 지점을 개설하면 현지에서 장사를 해야 하는데 현지의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당시 대부분의 한국계 은행 해외 점포가 현지 교민 또는 대기업 현지법인을 거래선으로 영업을 하고 있었는데, 콜롬보는 그러한 거래선이 매우 취약했다. 따라서 콜롬보 지점이 통상적인 영업을 통해 일정 규모의 자산을 쌓기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한편 1997년에 스리랑카는 외환보유액 확충을 위해 달러 표시 채권의 발행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당시 총 외환보유액이 20억 불에 불과한 스리랑카가 국제금융시장에 진출하여 5천만 불 규모의 채권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였다.
이러한 스리랑카 정부의 절실한 과제를 해결하는 데 협조를 한다면 콜롬보 지점의 부족한 자산을 쌓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외환은행에서는 스리랑카 정부채에 대한 투자를 검토하였다. 정부채를 성공적으로 판매해야 하는 스리랑카 정부와 자산을 쌓아야 하는 한국의 외환은행 콜롬보 지점의 니즈가 들어맞은 것이다. 결국 콜롬보 지점으로 스리랑카 정부채를 부킹(자산을 매입하여 대차대조표에 올리는 것)하고, 매입 실행은 필자가 파견 근무하던 투자법인(외환은행 홍콩현지법인-KEB Asia Finance Limited)이 하기로 결정되었다. 스리랑카 정부채권에 대한 투자는 콜롬보 지점의 필요에 의해서 실행된 것으로, 국제금융시장에서 서로의 이익을 위해 이루어진 일종의 딜(deal)이었다. 그리고 필자가 직접 거래를 수행했지만 처음에는 내키지 않아 불만스러웠던 거래였다. 그래서 필자에게 너무나 고마워하는 스리랑카 중앙은행 총재를 보니 미안한 마음까지도 들었다. ‘얼마나 절박했으면 일국의 중앙은행 총재가 상업은행의 젊은 채권 딜러에게 이렇듯 간곡하게 감사를 표할까?’
필자는 해당 채권의 발행이 순탄치 않았던 과정을 생각하며 그 노신사가 채권 발행을 위해 가슴을 졸였을 상황이 머리에 그려지자 함께 숙연해졌다. 그리고 과거 한국의 경제성장기에 우리나라도 외자를 유치하기 위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비록 처음에는 내키지 않은 투자였지만 국제금융시장의 같은 약자로서 도움을 줄 수 있었다는 생각에 뿌듯한 보람까지 느꼈다.
왜 국제금융시장에서 우리는 약자일까? 국제금융시장을 지배하는 명확한 질서 때문이다. 그 질서는 미국 달러가 정한다. 보다 정확히 표현하면 달러를 기반으로 하는 미국 중심의 국제금융질서이다. 이 질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한국인인 필자를 열등감에 빠지게 했다. 국제금융시장에서 장사를 하려면 달러가 있어야 하는데, 어떤 자는 이 달러를 마음껏 찍어 낼 수 있고, 어떤 자는 달러를 벌어서 들고 있거나 빌려야 한다. 그리고 달러가 부족하게 되면 유동성 위기라는 절박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금융인들이 듣기 거북한 말이 있다. “왜 한국 금융회사 중에는 삼성전자와 같은 글로벌 기업이 나오지 않느냐? 한국의 금융인들은 삼성전자처럼 글로벌 시장에서 당당히 경쟁하지 못하고 규제가 만든 환경에 안주하면서 혁신을 거부하고 있는 것 아니냐?” 금융인들은 이 질문에 명쾌한 대답을 하지 않는다. 다만 고객에게 서비스할 수 있는 더 많은 달러를 확보하고 때로는 더 높은 수익률을 위해 달러를 운용하는 일에 몰두할 뿐이다. 국제금융 시장에서의 구조적 열등감을 말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 열등감의 본질은 무엇일까? 그것은 역사가 만들어 낸 시스템이다. 참고로 한때 베어링(Baring)과 홍콩상하이은행(HSBC)은 중국에 1억2천5백만 달러를, 로스차일드는 브라질에 5천만 달러를 제공하였다. 그러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 영국, 프랑스 등에 전비와 군수물자를 지원했던 미국의 금 보유량이 급증하면서 국제금융시장의 주도권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넘어가는 계기가 된다. 이렇게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만들어진 시스템을 단시간에 극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금융인들이 이 본질적 열등감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일단 열등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즉 국제금융시장의 질서를 이해하고, 그것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관찰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장에 도전하며 지금부터 역사를 쌓아가야 한다. 아픈 경험일수록 정확히 기억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역사를 쓰고, 반복하다 보면 국제금융시장의 열등감은 극복될 것이다.
가진 것 없었던 대한민국은 맨몸으로 달러를 벌어들이며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국제금융시장에서 달러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해 가는 과정에 있다. 몇 번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천만다행으로 이를 극복하고 외화자금을 빌리는 규모보다 운용하는 규모가 더 큰 대외채권국가로 변모하였고, 그에 따라 국제금융시장에서의 지위는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게 격상되었다. 그러한 변화의 과정을 경험한 필자는 대한민국의 현재 지위에 대해 감사하면서도 우리가 어려웠던 시간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극복하라2017년 8월 ? 타이베이 캐세이유나이티드 은행 본점 회의실. 필자 일행은 대만 투자자들과 마주 앉아 있었다. 투자자 미팅은 통상 해 온 것이지만 할 때마다 긴장하게 된다. 시험에 어떤 문제가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아주 어려운 시험이다. 미사일이 날아다니는 한반도에 투자를 하라고 설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재수도 없지, 우리가 추진하려는 순간에 미사일이 날아오다니!’ 연초부터 구상했던 대만 투자자 유치를 구체화하려는 시점에 북한이 미사일을 쏘기 시작했다. 같이 일하는 직원들이 관망한 후 상황이 좋아지면 다시 추진하자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제시했다. 그러나 필자는 달리 생각했다. “상황은 좋지 않지만, 이번 기회에 한반도의 숙명을 극복해 봅시다.”
이렇게 필자의 고집으로 투자자 미팅을 강행했으나 막상 투자자 앞에 앉으니 막막했다. 동행한 담당 직원이 필자 은행의 재무상태에 대한 브리핑을 끝내자 대만 투자자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브리핑 잘 들었습니다. 귀하 은행의 재무상태는 매우 양호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반도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귀하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필자는 대만으로 오기 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수도 없이 생각했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이건 은행원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순간 필자가 있는 곳이 중화권 은행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한반도의 문제는 한국과 북한만의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이것은 결국 미국과 중국의 입장에 의해서 해결될 것입니다. 한반도에서 무력 충돌이 일어난다면 가장 곤란한 것은 미국과 중국일 것입니다.”
투자자들의 눈빛에서 거부 반응이 보이지 않았다. 필자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 갔다. “사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상황이 김정은의 권력을 유지하는 과정의 일부라는 것입니다. 즉 전쟁이 일어난다면 김정은은 권력을 잃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본인이 그러한 선택을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투자자들의 표정이 좀 더 부드러워지는 것이 느껴지자 필자는 기세를 올렸다. “채권시장에서는 정치적 이벤트가 발생하여 일시적으로 가격이 하락한 바로 그때가 매입 기회일 것을 여러분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필자는 투자자들에게 딜러로서의 승부욕을 자극했다. 미팅이 끝나자 투자자들의 얼굴은 훨씬 밝아져 있었다. ‘딜이 잘 될 수도 있겠다.’
필자는 2016년부터 3년간 은행에서 자금그룹을 담당했는데, 자금그룹의 역할은 은행자금의 조달과 운용이다. 그런데 원화자금은 국내에서 조달 운용이 가능하지만, 외화자금은 해외 시장에 참여할 수밖에 없고 대부분을 미국, 유럽, 홍콩 등 지역의 투자자를 모아 조달을 한다. 하지만 보다 안정적이고 많은 규모의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유사시에 대비해서 차입의 다변화는 필수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노력 중에 접근한 시장이 대만 시장이다.
일국에 외국 통화자금(특히 달러 자금)이 많이 축적되어 있는 대표적인 경우가 대만이다. 대만의 경우 이처럼 막대한 달러 자금이 조성된 것은 긴 시간 동안 축적된 무역수지 흑자, 안정적인 자산보유를 원하는(대만의 지정학적 위치를 감안한) 시장 참여자들의 수요 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만에 축적된 달러는 시장을 통해 운용되어야 하고 따라서 달러를 필요로 하는 해외 기관에게 대만은 매력적인 시장이다. 참고로 대만에서 대만달러가 아닌 외국통화를 차입하기 위해 발행하는 채권을 포모사 본드라 한다. 한국에서 원화가 아닌 외화로 발행되는 채권을 김치 본드라 하는 것과 유사하다. 한편 대만의 달러 시장이 국제적 조달 시장으로 부상했음에도 2017년까지 한국 상업은행들의 대만시장 참여는 활발하지 않았다. 필자가 대만 시장을 주목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심리적 안정감이다. 대만 투자자들은 한국에 대해 투자대상으로서 편안하게 느낀다. 이것은 지리적으로 가깝고 한국의 사정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둘째, 한류 붐에 따른 대만의 한국에 대한 우호적 환경이다. 2000년대 이후 상승한 한류 붐으로 대만에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상당히 개선되었다. 셋째, 대만 내의 규제사항이다. 대만에 축적된 달러가 많다 보니 기관별로 역외투자 수요가 많아 대만 정부는 역외투자 금액을 기관별 총자산의 일정 비율로 규제하고 있었다. 그러나 포모사 본드는 달러 표시 자산이어도 역외자산으로 분류되지 않아 규제비율에 의한 제약이 없어 기관들이 부담 없이 투자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필자가 2017년 초부터 대만에서의 자금 조달을 준비하는 중 사건이 터진 것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말이 있다. 한국의 기업이 외국 기업과 비교할 때 유사한 성장성과 수익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상대적으로 낮은 주가 수익률을 보이는 원인을 한국 특유의 상황에서 찾는 용어이다. 즉 지정학적 리스크, 대기업의 불투명한 지배구조, 노사관계 등이 해외 투자자로 하여금 한국의 자본시장을 저평가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해외 투자자에게는 물건값을 깎을 수 있는 좋은 명분이지만 한국인에게는 참으로 천형(天刑) 같은 말이다. ‘단지 한국산(産)이라는 이유로 물건을 싸게 팔아야 한다는 말인가? 이 족쇄를 계속해서 차고 가야 한다는 말인가?’
모처럼 새로운 차입원을 개발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던 필자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상황이었다. 연일 보도되는 한반도의 상황을 체크하면서 채권 발행을 계속 진행할지를 담당 직원들과 계속해서 논의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채권 발행은 불가능하다는 의견과 한번 해 보자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었다. 그때 필자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어차피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우리의 운명이라면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 시장의 평가를 받아 보리라!’ 필자는 갈 수 있는 데까지 가 보자는 각오로 직원들을 독려하여 대만에서의 채권 발행을 계속 추진했고, 발행의 사전단계인 로드쇼 일정을 잡게 되었다.
출발일은 2017년 8월 16일, 출장지는 대만 타이베이였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도 로드쇼를 강행한 필자는 매우 복잡한 심정으로 타이베이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토록 어둡던 한반도 상황에서 필자가 로드쇼를 출발하기 직전에 약간의 위안을 줄 수 있는 소식이 들렸다. 괌 공격까지 거론하던 북한이 8월 15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미국의 행태를 좀 더 지켜보겠다는 김정은의 메시지를 보도하였다. 극도의 긴장으로 치닫던 한반도의 숨을 돌리게 하는 소식이었지만, 구체적인 내용이 없는 메시지였다.
로드쇼에서 투자자 미팅은 발행사 담당자 입장에서는 매우 스트레스가 쌓이는 일이다. 각 지역의 유명 투자기관에서 날고 기는 펀드 매니저, 또는 리스크 관리자들이 자신의 잠재적 투자대상 기관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쏟아 내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은 대상 기관의 재무상태를 이 잡듯 뒤져서 세세한 숫자의 변화에 대해 질문을 하거나 일개 기관이 답변하기 어려운 한국의 경제정책, 정치적 상황, 정부의 입장 등 매크로한 질문도 쏟아낸다. 투자자 미팅의 핵심은 투자자들에게 신뢰와 확신을 심어 주는 것이다. 따라서 투자자가 어떠한 질문을 해도 발행사는 어떻게든 대응을 해야 하기 때문에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나 답변하기 곤란한 질문을 받으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렇듯 일반적인 상황에서도 로드쇼의 투자자 미팅은 매우 긴장되는 과정인데, 한반도의 정세가 안개 속으로 빠져 버린 상황이니 필자는 극심한 긴장과 처절한 각오를 하고 임해야만 했다.
지금 생각해도 당시의 답변은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매우 다행스럽게도 필자의 답변에 대만 투자자들은 상당히 공감하는 표정을 지었으며, 어떤 투자자는 단기적으로 지금이 한국 채권에 투자할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맞장구를 쳐 주었다. 이런 생각보다 호의적인 반응이 눈물 날 정도로 고마웠다. 첫날 네 곳의 투자자들과 미팅을 마치니 불안했던 마음이 자신감으로 조금씩 채워지는 것 같았다. 타이베이에서의 로드쇼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지만 한반도의 상황은 특별히 달라지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포모사 본드 발행 작업은 계속되었다. 2017년 8월 30일, 드디어 발행채권에 대한 투자자의 주문을 받는 날이 되었다. 초조한 마음을 진정시키며 필자와 담당 직원들은 주간사로부터 주문 결과를 기다렸다. 오후 늦게 주문 상황을 집계하니 놀랍게도 발행 목표 금액의 2배가 넘는 주문이 들어왔다. 당초 발행목표가 3억 불인데 6억 7천만 불의 주문이 들어왔고, 투자자들의 반응에 호응하여 최종 발행금액을 3억 5천만 불로 증액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무모한 시도라고 할 수도 있다. 한반도에서 미사일이 지속적으로 발사되는 상황에서 해외 투자자금 모집 작업을 강행했고,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극복해 보자는 일념 하에서 나름의 논리와 성실한 답변으로 투자자들을 설득하여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필자는 미사일이 날아오는 상황에서도 필자의 은행과 대한민국을 믿어 준 대만의 투자자들에게 지금도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시간이 흘러 2018년 6월 미국의 트럼프와 북한의 김정은은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극적으로 성사시킨다. 2017년 한반도의 긴장이 최고조에 이를 때 이러한 회담이 있을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앞으로도 남북통일이 되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 국민들에게 한반도의 지정학적 상황은 굴레이자 운명이고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단어는 존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