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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돈

천헌철 지음 | 책이있는마을


보이지 않는 돈

천헌철 지음

책이있는마을 / 2020년 10월 / 311쪽 / 18,000원



전쟁과 금융




전쟁과 금융


인류는 부를 쌓기 위해 금ㆍ은 등 금속 통화는 물론, 석유ㆍ철광석ㆍ면화 등과 같은 물자를 확보하기 위한 전쟁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 또는 전쟁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기술과 전략이 계속 개발되었다. 그런데 기술을 개발하거나 전쟁 전략을 실행하는 데에는 자본이 든다. 일반적으로 전쟁 수행에 필요한 돈은 세금으로 거둬들이고 화폐를 발행하고 국내외의 자금을 차입하여 마련한다. 하지만 국민에게 세금을 부과해 모든 전비를 충당한 전쟁은 거의 없다.

화폐의 발행이나 국내외 차입은 중앙은행이나 금융기관의 개입을 통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전쟁은 금융의 진화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작용된 구조가 금융시장의 형성과 제도의 발전에 크게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현대적인 개념의 이자를 주고 전쟁 비용을 조달하는 차입에 의한 방법이 개발ㆍ사용된 것은 르네상스 시기의 이탈리아에서였다. 14세기와 15세기 동안 이탈리아의 피렌체ㆍ베니스ㆍ밀라노ㆍ로마 등 도시국가들은 크고 작은 전쟁이 일상이었는데, 이 국가들은 현재와 같은 군대, 즉 상비군이 없었다. 따라서 전쟁을 치르려면 돈을 주고 용병을 고용해야 했다.

용병들에게 전쟁은 직업이었고 뛰어난 용병대장에게는 많은 돈이 필요했다. 용병부대는 전쟁에 져도 돈을 받아갔다. 처음에는 용병부대에 지급해야 할 돈을 시민이 낸 세금 수입으로 충당했지만, 전쟁이 길어짐에 따라 세금 수입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피렌체 도시국가는 용병비용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이자를 주는 조건으로 채권(prestanze)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했다. 미래에 발생할 세금 수입으로 원금과 이자를 갚는 구조였다. 전쟁 중인 국가의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은 원금을 받지 못할 리스크가 높다. 따라서 그에 상응하는 높은 이자율을 요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투자자는 채권을 발행한 국가가 전쟁에서 승리하면 패전국으로부터 받는 전쟁 배상금이나 점령한 지역에서 거둬들이는 세금으로 채권을 상환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전쟁에 질 경우 원금을 날리는 것도 각오해야 한다.

한편 이탈리아는 도시국가로 구성되어 있어 대부분의 금융은 국가 간에 이루어지는 국제금융이다. 더욱이 교황청을 대신해 유럽 각지로부터 헌금을 수납하는 과정에서 피렌체의 통화 플로린뿐만 아니라 영국의 스털링, 베니스의 두카트 등 다양한 통화가 개입되어 국제금융이 발전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국제금융의 기본 개념과 국가와 은행의 관계에 대해 잠깐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국제금융은 외국에 자금을 빌려주거나 외국으로부터 자금을 빌리는 행위다. 이때 자금을 빌리는 국가, 즉 차입 국가에 대한 위험이 고려된다. 이를 국가 신용 위험 또는 국가위험이라고 한다. 이것은 현지 통화를 달러와 같은 기축통화로 바꿀 수 없거나, 교환이 가능하더라도 기축통화를 외국으로 보내는데 금액 한도가 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아울러 자금을 빌려주는 자, 즉 대출을 해준 자나 채권에 대한 투자자를 보호해 주는 법률이 있는지, 그 현지 법률이 임의로 변경되어 원금과 이자를 돌려받는 데 제약이 있는지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차입 국가가 지불유예, 즉 모라토리엄을 선언해 외국으로 자금을 보내는 것을 전면적으로 금지할 수도 있고, 외국인이 투자한 자산이나 채권을 차입국 정부가 몰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전쟁 수행 국가는 자국에 있던 적국의 자산을 서로 몰수했다. 이런 행위는 국내금융에서는 있을 수 없는 위험이다.

국가(궁정)와 은행의 관계는 오늘날처럼 국가가 은행을 통제하는 관계가 아니었다. 국가는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리는 채무자 중 하나였다. 예를 들어 가정에서 아버지의 소득으로 경비를 지출했는데 지출이 많아지면 소득이 있는 자녀로부터 빌리는 것과 같다. 지출이 너무 많아지면 은행 역할을 했던 자녀를 포함해 친인척들이 참여하여 자금을 모아서 아버지에게 빌려준다. 여기서 자녀는 개인은행가이고 친인척으로부터 자금을 모은 사람은 주식회사 형태의 은행이나 중앙은행이라고 보면 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영국ㆍ프랑스ㆍ독일 정부는 모두 개인은행가나 중앙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렸다. 세금 수입으로 정부의 지출액을 충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금융이 활발히 일어났고 필요에 따라 개인은행, 주식회사 은행, 중앙은행이 만들어졌다. 이때 빌려주고 받는 돈은 실물과 동일하거나 실물과 교환이 가능한 증서였다. 돈은 금화ㆍ은화 등과 같은 직접 통화와 함께 금ㆍ은 교환권이 있는 증서 또는 토지ㆍ물품ㆍ수출환어음 등의 실물과 교환 가능한 증서로 이루어졌다.

한편 은행이 발행한 증서를 은행권이라고 하는데, 요즘과 달리 은행은 누구나 은행권을 발행할 수 있었다. 이런 은행권은 태환권이 부여된 지폐였다. 참고로 실물과의 교환권이 없는 은행권을 불태환 지폐라고 하는데, 정부(재무부)가 발행하는 채권은 화폐도 아니고 실물 교환권도 아니기 때문에 태환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중앙은행이 독일 재무부의 채권을 지폐로 인정해 줌으로써 통화량이 급증하는 계기가 되었다. 요즘의 화폐는 모두 태환권이 없는 불태환 지폐다.

제1차 세계대전


이 전쟁은 1914년 7월 28일부터 1918년 11월 11일까지 일어난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세계대전인데, 이는 전 세계의 경제를 두 편으로 나누는 거대한 강대국 동맹끼리의 충돌이었다. 한쪽 편은 영국ㆍ프랑스ㆍ러시아의 삼국 협상을 기반으로 한 협상국(연합국)이며, 다른 한편은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동맹국이었다. 이런 진영은 재조직화되어 협상국은 이탈리아ㆍ일본ㆍ미국이 합류하면서 28개국으로 확장되었고, 동맹국은 오스만 제국과 불가리아가 추가되면서 4개국으로 확대되었다.

이후 1917년 10월 혁명에 성공한 레닌이 바로 독일과 휴전하면서 동부전선에서 전투가 멈추었고, 동맹국은 러시아의 영토를 획득했다. 그러나 동맹국은 서부 전선의 전투에서는 계속 패배했다. 결국 1918년 9~11월에 불가리아, 오스만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등이 항복했다. 또한 독일도 11월 혁명 이후 휴전에 합의하면서 연합국의 승리로 전쟁은 끝이 났다(1918년 11월 11일).

이 전쟁에 사용된 전쟁 비용은 1913년 기준 약 824억 달러(2013년의 가치로 1조 9,466억 달러)에 달했다. 전비 조달에서 각국 정부는 자국의 은행에 직간접적으로 많이 의존했다. 독일과 프랑스는 전쟁에 승리하면 전쟁 배상금으로 전쟁 비용을 갚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세금 징수보다는 금융에 의존했다. 미국은 전쟁 참가 기간(1917~1918) 동안 일반회계로 전체 전비의 29% 수준을 사용했고, 영국은 전쟁 기간(1914~1918) 동안 전체 전비의 28%에 달하는 금액을 세금이나 공공 부문에서 확보했다. 반면 같은 기간 프랑스와 독일이 세금 등으로 전비를 충당한 비율은 각각 15.4%, 13.7%였다.

28개 연합국이 참전하면서 연합국 간에 자금 지원도 이루어졌다. 연합국 간 채권채무 관계를 보면, 미국 참전 전에는 영국과 프랑스가 연합국인 러시아ㆍ이탈리아 등에 자금을 지원했고, 미국 참전 후에는 미국이 영국ㆍ프랑스 등을 포함한 모든 연합국에 자금을 보냈다. 참고로 미국이 연합국에 지원한 금액은 총 103억 달러였다. 영국도 83억 달러를 연합국에 지원했고, 프랑스도 22억 달러를 연합국에 지원했지만, 프랑스가 갚아야 할 미국과 영국에 대한 채무가 50억 달러에 달했다.

이후 연합국 사이의 채권ㆍ채무 정리 문제는 독일이 부담할 배상금 처리 문제와 연계되어 각국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프랑스는 영국과 미국에게 빌린 차입금을 상환하려면 상당액의 전쟁 배상금을 독일에 요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미국은 연합국을 지원했지만 채무를 탕감하거나 깎아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더욱이 프랑스는 제정 러시아에 빌려준 대출 등 40억 달러를 모두 떼였다. 볼셰비키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혁명 정부가 제정 러시아의 빚은 갚지 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영국도 러시아와 오스만제국으로부터 6억 달러를 몰수당했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연합국은 연합국 간 채권ㆍ채무 해결 자금도 고려하여 독일에 전쟁 배상금을 요구했다. 1921년 4월 27일 연합국의 배상위원회가 결정한 독일의 배상 총액은 1,320억 금마르크(66억 파운드)로 42년간 상환하는 조건이었다. 독일 내부에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라는 반발이 심해 콘스탄틴 페렌바흐 내각이 총사퇴했고 카를 요제프 비르트 내각이 들어섰다. 이후 독일은 전쟁 배상금을 갚는 과정에서 끝없는 통화가치 하락과 경제 추락을 경험하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은 1939년 9월 1일부터 1945년 9월 2일까지 치러진,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를 남긴 파괴적인 전쟁이다. 전쟁은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 1939년 9월 1일에 시작되었다. 독일ㆍ이탈리아ㆍ일본을 추축국으로 하는 동맹이 결성되었고, 여기에 6개국이 더 가담했다. 이에 맞선 연합국은 미국, 영국, 중국, 소련 등을 중심으로 전쟁이 끝날 때까지 50개국에 이르렀다.

1942년 연합국은 아프리카 북부, 소련, 태평양 등지에서 추축국의 진격을 막아 내고, 1943년에 이탈리아, 1944년에 프랑스에 상륙한 후 1945년에는 독일로 진격했다. 결국 독일은 1945년 5월 7일에, 일본은 8월 15일에 항복했다. 전쟁으로 유럽과 아시아 지역이 거의 파괴되었다. 그리고 유럽 주도의 시대는 가고 미국과 소련이 강력한 국가로 떠올랐다.

영국은 전쟁 기간 중 국방비로 총 228억 파운드를 지출했는데, 미국과 캐나다로부터 빌린 돈을 전쟁이 끝난 지 61년 만인 2006년까지 갚았다. 미국은 전쟁 참여 기간 동안 총 3,370억 달러를 전비로 지출했다. 그 밖의 54개 국가의 전비를 합산하면 천문학적 수치가 나올 것이다. 따라서 전비에 대한 조달 분석은 큰 의미가 없으므로 전후 금융 체제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1944년 7월 미국 브레턴우즈에서 연합국들이 ‘국제 무역, 지불 및 투자에 관한 전후 시스템(이하 전후 통화시스템으로 약칭)’을 설계ㆍ고안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이 회의에서는 존 케인스가 제시한 케인스 플랜과 해리 화이트가 제시한 화이트 플랜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이후 오랜 협상 끝에 1947년 금 준비금을 토대로 국제안정화기금을 마련하자는 화이트 플랜을 채택하고, 국제통화기금(IMF) 창설에 합의했다. 또 신질서의 양대 기관의 하나인 국제재건개발은행(이후 설립된 International Development Association을 포함, ‘세계은행’)을 설립했다. 이른바 브레턴우즈 체제가 출범한 것이다. 더불어 이 시스템을 보완하는 기관으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 의한 기구{이후 세계무역기구(WTO)로 개편}를 1947년 제네바에 설립했다. 참고로 케인스 플랜은 국제수지 적자 국가의 금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국제적립통화를 새로 창설하는 국제청산연맹 형태의 통화 시스템이었으나, 실상은 금 보유량이 많고 막강한 경제력을 보유한 미국 달러를 기본으로 한 금환본위제의 도입에 회원국이 동의한 것이다. 아무튼 브레턴우즈는 금 1온스당 미국 달러 35달러를 고정시키고 다른 통화를 미국 달러에 고정시켰기 때문에 사실상 ‘달러본위제’라고도 불린다.

IMF는 환율을 통제하도록 설계되었으며 세계은행은 전쟁으로 파괴된 나라의 재건을 지원하도록 설립되었다. 실제로 이로 인해 25년 동안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무엇보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유럽의 경제 재건을 위해 시행된 미국의 마셜 플랜으로,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유럽과 미국은 함께 장기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부작용도 있었다. 소위 제3세계에서 마셜 플랜과 같은 정부 간 원조 프로그램이 시도되었지만, 다분히 정치적 동기에 연동되었기 때문에 당초 재건 목적을 이루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또한 미국의 마셜 플랜과 브레턴우즈 체제에 따른 금융과 지원을 전쟁의 가해자인 독일과 일본도 이용할 수 있게 한 데 대한 불만도 있었다.

독일과 일본의 절망적인 상황을 희망으로 바꾸게 된 계기도, 양국의 경제 기적이 가능하게 된 기회도 바로 브레턴우즈 체제를 활용할 수 있게 해 준 영국, 엄밀하게는 케인스의 허락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데 왜 케인스는 전쟁 가해국인 독일과 일본에 그런 기회를 제공해 주었을까? 아마도 케인스의 사회주의적 성향에 따른 관대함뿐만 아니라,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세력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미국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았으면 그런 결정을 할 수 없었으리라 생각된다.

또한 프랑스는 공공 부채 비율이 매우 높은 미국이 외환 보유 통화로서의 지위에 따라 달러를 마구 찍어 내어 세뇨리지(seigniorage, 2015년 현재 기축통화인 달러를 제작하는 데 드는 비용인 6센트와 실제 1달러 간의 차이 94센트가 미국에 이익이 된다는 ‘화폐 주조 차익 효과’를 세뇨리지 효과라고 함) 혜택을 누린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참고로 오늘날에도 미국 달러가 기축통화로서의 가치를 유지하고 있어 세뇨리지 효과는 그 어느 때보다 크다고 할 수 있다.

이후 1971년 닉슨 대통령이 금 보유고의 부족으로 달러화에 대한 금교환권을 제거했다. 이에 따라 브레턴우즈 체제가 없어진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변동환율제가 재도입되었고, 유로본드 같은 역외 시장이 발달했다. 자연히 무역도 자유화되었지만 그에 따른 자본의 이동도 자유롭게 바뀌었다. 브레턴우즈 체제를 도입할 당시에 목표로 했던 자본의 통제는 사실상 물 건너간 일이 되었다.

한편 IMF와 세계은행은 차관 지원의 전제 조건으로 ‘개혁이 없으면 돈도 없다’는 원칙 하에 소위 ‘워싱턴 컨센서스(재정 규율 정비, 세제 개혁, 이자율 자유화, 건강과 교육 지출 증대, 재산권 보호, 국영기업의 민영화, 시장 자유화, 환율 경쟁력 확보, 무역장벽 제거, 외국인 직접투자의 장벽 제거 등이 주요 내용임)’를 적용했다. 참고로 이러한 항목은 외국의 자본이 차관을 받고자 하는 국가의 주요 자산이나 자본을 손쉽게 확보할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전제 조건이기도 하다. ‘세뇨리지’와 더불어 외국의 자본이 자국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면 대상국의 각종 장벽을 없애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전쟁과 금융에 대해 기술했다. 20세기 후반부터 글로벌화가 진전되면서 전 세계는 경제활동에 적극적이다. 이는 또 다른 전쟁, 경제 전쟁을 예고하고 있다. 경제활동을 통해 이익을 얻는 방향으로 국제무대의 중심축이 움직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OECD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OECD는 1960년 12월 14일 파리에서 설립되었다. OECD의 금융 관련 공식 조직은 무역위원회 산하의 수출신용보증그룹이다. 하지만 실제 중요한 의사 결정은 회원국 간의 비공식 기구인 참가자그룹(Group of the Participants)에서 이루어진다. 앞으로 설명할 수출신용보증그룹에서의 활동을 살펴보면 국제 상거래에서 더욱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글로벌 경제와 금융




국가 수출금융 지원 체제의 탄생


제1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1919년 자유무역으로 대표되는 자유방임주의는 전환점을 맞았다. 참고로 전쟁 전 유럽의 강대국은 세계화와 자유무역으로 세계 경제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쟁 이전에 전 세계 생산량의 43%를 차지했던 유럽은 전쟁 후에는 그 비중이 34%로 떨어져 미국 수준에 못 미쳤다. 또 전쟁 후 유럽은 미국에 채무를 갚기에도 벅찼다. 그래서 유럽은 국가가 중심이 되어 산업 재건에 나섰고 자금 공급을 주도했다. 구체적으로 경제적 민족주의를 내세워 산업을 보호하고 수출을 장려하기 위한 조치들을 시행해 나갔다. 그래서 관세 전쟁이 시작되고, 산업을 국유화했고 전략 산업 보호를 위해 보조금을 지원했다. 그렇게 하여 보호무역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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