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제 30년사
얀베 유키오 지음 | 에이지21
일본 경제 30년사
얀베 유키오 지음
에이지이십일 / 2020년 5월 / 323쪽 / 16,800원
1990년대 이후의 일본 경제
30년간 일본 경제와 생활은 어떻게 바뀌었나 경기는 어떻게 움직여왔는가: 먼저 이 책이 대상으로 하는 기간의 경기 변동을 보자. 대상 기간은 1990년 이후의 30년간이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1980년대 후반(버블 시기)부터 보기로 한다.
[경기 하강 국면으로 시작된 1980년대 후반] 1980년대 후반 일본 경제는 경기 하강 국면(1985년 7월~1986년 11월)으로 시작했다. 경기 하강을 야기한 주요 원인은 1985년 9월의 플라자 합의(미국의 무역 적자 확대를 시정하기 위해 미국, 영국, 프랑스, 서독, 일본의 5개국 회의에서 맺어진 결정)와 그 결과로써 달러 대비 엔 환율이 대폭 상승한 것, 일본 수출의 성장 둔화였다.
[버블 경기의 시작(1986년)] 일본이 엔고 불황에서 탈출한 것은 1986년 12월이다. 일본은행의 금융완화 정책 실시(1986년 1월~1987년 2월), 정부의 종합 경제 대책 실시(1986년 9월) 등이 배경이었다. 금융 완화 정책의 내용을 보면 1986년 1월(정책금리 5% → 4.5%)을 기점으로, 1987년 2월까지(정책금리를 사상 최저인 2.5%까지) 수차례 금리 인하가 실시되었다. 이런 정책으로 경기는 상향 국면으로 접어들어 이후 1991년 2월까지 상승했다. 흔히 말하는 ‘버블 경기’이다.
[버블 붕괴가 장기 불황으로(1991년)] 1990년대 들어서 주가와 지가가 폭락하는 등의 버블 붕괴로 경기도 1991년 3월부터 하강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버블 붕괴를 초래한 것은 금융 정책과 금융 행정의 변경이었다. 먼저, 일본은행은 1989년 5월 정책금리를 0.75%(2.5% → 3.25) 인상한 것을 시작으로 1990년 8월 6%가 되기까지 총 5회, 3.5%p 인상했다. 다음, 대장성은 1990년 3월 ‘부동산 융자의 총량 규제’를 실시했다. 부동산용 융자 증가율을 총대출 증가율 이하로 억제하려는 시도였다. 이 충격으로 경기는 1991년 3월부터 하강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버블의 반동 불황). 이 하강 국면은 1993년 10월까지 지속되었다. 이후 짧은 회복 기간을 거친 다음 1997년 6월부터 다시 하락하기 시작했다.
[개혁 정책으로 불황 도래(1997년), 짧은 회복 뒤 재하락(2000년)] 1997년 6월부터의 경기 하강은 하시모토 내각의 ‘재정 구조개혁’에 따른 소비세 증세와 공공사업 삭감으로 수요가 감소한 것이 발단이었다. 게다가 아시아 통화위기 발생에 의한 수출 부진과 금융위기 발생이 이어졌다. 이런 경기 침체는 정부의 재정 지출로 1999년 1월 바닥을 찍었지만, 이후의 경기 회복은 2000년 11월에 끝나고 12월부터 다시 하강 국면으로 돌아섰다. 그 배경에는 미국 IT 버블 붕괴가 있었다. 2000년 12월에 시작된 경기 하강은 2002년 1월까지 계속되었다. 버블의 붕괴에서 이 시기까지 약 10년간 일본의 경제 활동은 버블 최전성기의 수준을 다시는 넘지 못했는데, 이것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장기 경기 상승(2002~2008년)] 2002년 2월 다시 회복세로 돌아선 경기는 2008년 2월까지 73개월간 호황이 이어졌다. 이 경기 상승기는 상승 기간 동안의 GDP 성장률이 연평균 2% 이하로 낮고 단순히 장기간 경기가 하강 국면에 빠지지 않고 시간만 경과했을 뿐이라는 ‘실체 없는 경기 확대’였다.
[리먼 쇼크에 의한 경기 침체(2009년)] 이 장기간 지속된 경기 상승 국면을 끝낸 것은 2007년경의 미국 서브 프라임 위기 발생과 2008년 9월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의 경영 파탄에 따른 세계 경제위기의 발생(리먼 쇼크)이었다. 이에 따라 일본의 경기는 하강 국면으로 진입하여 경제 활동 수준 역시 빠르게 하락했다. 이런 큰 하락에서 회복하기 시작한 것은 2009년 4월이었다. 회복세로 돌아서고 난 이후의 경기동행지수 추이를 보면, 눈에 띄는 하락은 세 번 있었다. 동일본 대지진 발생과 이어진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 폭발 사고가 있었던 2011년, 그리스 위기가 발단이 된 유럽 경제의 불안정화와 이에 따른 엔고가 발생한 2012년, 소비세율의 인상에 따른 침체가 있었던 2014년이었다.
[아베노믹스의 등장(2013년)] 2012년 12월 26일 제2차 아베 내각이 탄생하기 직전인 11월에 경기 하강 국면은 끝났었다. 제2차 아베 내각은 경기가 상승 국면에 들어갔을 때, 동시에 리먼 쇼크의 대폭락에서 다시 회복하기 시작했을 때 내각이 조직됨으로써 행운의 출발을 했다. 경기동행지수의 2013년부터의 추이는 제2차 이후의 아베 내각 정책으로, 말하자면 아베노믹스에 속한다.
일본 경제는 어떻게 변화해왔는가: 1990년 이후의 30년간 있었던 일본 경제의 변화를 알아보자. 먼저 일본 경제의 규모(명목 GDP)와 실질성장률(GDP 실질성장률)이 어떻게 변화해왔는가를 보자.
[1998년 이후 증가하지 않은 GDP] 1990년의 명목 GDP는 453조 엔이었고, 1994년에는 500조 엔을 넘었으며, 1997년에는 534조 엔에 달했다. 그러나 증가 추세는 1997년까지였다. 1998년과 1999년의 명목 GDP는 전년 대비 감소로 돌아섰고, 이후 1997년 수준으로 복귀하지 못했다.
[실질성장률은 일시적으로 회복했지만] 1990년의 실질성장률은 4.9%로 꽤나 높았다. 그러던 것이 1991년 3.4%, 1992년 0.8%, 1993년에는 -0.5%로 내려앉았다. 이 시기가 앞에서 본 ‘버블의 반동 불황(1991년 3월~1993년 10월)’이다. 그러나 실질성장률의 하락은 1993년에 끝나고, 1994년 1.0%, 1995년 2.7%, 1996년 3.1%로 1994년 이후 성장률이 서서히 올라갔다. 경기 회복이 시작된 것이다.
[2년에 걸친 마이너스 성장(1998-1999)] 그러나 회복은 짧게 끝났다. 1997년의 실질성장률은 1.1%로 소폭 성장에 그쳤고, 1998년과 1999년은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에 빠져들었다. 하시모토 내각의 ‘재정 구조 개혁’의 영향을 받은 하락이었다. 두 번째 분수령이었던 1997년 이후의 일본 경제의 실질성장률은 1996년에 기록한 3.1%를 단 한 번의 예외(2010년의 실질성장률 4.2%, 리먼 쇼크에 의한 2009년의 -5.4%의 하락 반동으로 성장률이 높았다)를 제외하고 다시는 넘지 못했다.
기업 실적은 어떻게 변화해왔는가 : 기업 실적 변화에서 매출과 경상이익 등의 수치를 보자. [기업의 매출 증가는 30년간 8%에 그쳤다] 1990년 전 산업의 연간 매출액은 1,428조 엔이었다. 이후 1997년까지는 대체로 보합세였다. 그러던 것이 일본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에 빠져든 1998년의 기업 매출은 크게 하락했다. 이후 매출액은 거의 늘지 않았고, 2005년에 이르러서야 간신히 1997년의 수준을 웃돌았다(1,508조 엔). 이후 2007년(1,580조 엔)을 정점으로 리먼 쇼크로 다시 크게 하락하여 최근(2017년 1,544조 엔)에도 아직 리먼 쇼크 이전의 수준으로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기업 수익은 급성장] 전체 기업의 연간 경상이익은 1990년 38.1조 엔을 정점으로 버블이 붕괴한 영향도 있지만 1993년(20.5조 엔)까지 크게 감소했다. 이후 경기 회복과 함께 1997년(27.8조 엔)까지 회복되었으나 마이너스 성장을 한 1998년에 다시 감소했다(21.2조 엔). 그렇지만 이후에는 증가 경향이 나타났다. 특히 리먼 쇼크에 의한 하락(2009년 32.1조 엔) 이후부터는 매년 눈에 띄게 증가세를 보였다. 2017년 전체 기업의 연간 경상이익은 83.6조 엔(역대 최고치)으로 1990년의 2.2배가 되었다. 매출이 그다지 늘지 않았는데도 경상이익률이 상승하고 있다. 왜일까?
[부가가치율의 상승과 노동분배율의 저하] 매출과 경상이익률을 결정하는 데는 두 가지 큰 요소가 있다. 하나는 부가가치율(부가가치/매출액)이다. 다른 하나는 노동분배율(인건비/부가가치)이다. 30년간 추이를 보면, 부가가치율은 경기 변동을 반영해 기복이 있지만(경기 하강 국면에서는 하락, 상승 국면에서는 상승), 그래도 1990년대 초 18%대에서 최근의 20%대로 완만한 상승세다. 노동분배율은 부가가치율 이상으로 경기 변동의 영향을 크게 받는데(경기 하강 국면에서는 상승, 상승 국면에서는 하락) 30년간을 통틀어서 보면 1990년대 초의 70%대에서 최근의 60%대로 하락 추세에 있다. 부가가치율의 상승, 다시 말하면 기업의 매출 차익 증가 추세와 노동분배율의 저하, 즉 인건비 감축이 매출은 그다지 늘지 않았음에도 기업의 경상이익이 증가하고 있는 배경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생활은 어떻게 변화해왔는가: 원래 생활 변화는 다방면에 걸친 것으로 여기서는 ① 급여의 추이와 ② 격차의 추이를 이 30년간의 큰 변화를 대표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살펴본다.
[1997년을 정점으로 급여 감소] 1990년의 평균 급여는 425만 엔이었다. 이것이 1997년에는 467만 엔으로 매년 조금씩 증가 추세였다. 이 흐름이 바뀐 것은 1998년이었다. 1998년은 465만 엔으로 전년 대비 2만 엔 감소했다. 이후 2008년의 430만 엔까지 몇몇 예외가 된 해를 제외하고 꾸준히 감소세였다. 그리고 리먼 쇼크 다음 해인 2009년은 406만 엔으로 급락했다. 2010년 이후 평균 급여는 조금씩 회복세로 들어섰으나, 2017년 현재 432만 엔으로 1997년보다 여전히 35만 엔(7.5%)이나 낮다.
[정규직은 감소, 비정규직은 증가 / 소득 불평등도 확대 경향] 1998년 이래 급여 소득자의 1인당 평균 급여가 감소한 큰 요인은 정규직의 감소와 이를 대체한 급여 수준이 낮은 비정규직의 증가에 있다. 한편 소득 불평등은 일반적으로 지니 계수로 측정되는데, 일본의 순소득 지니 계수는 1990년의 0.43에서 2017년의 0.56으로 확연하게 증가하고 있어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0년간의 변화를 좇아서
버블 발생부터 팽창, 붕괴까지 (1985-1990)주가와 지가의 상승과 버블화: 먼저 이 시기의 주가와 지가의 움직임을 살펴보자. 주가의 상승은 1989년 말까지, 지가의 상승은 1990년 초까지 계속되었지만, 각각의 정점이었던 시기의 수준을 1985년의 수준과 비교하면 주가와 지가 모두 거의 3배로 뛰어 있었다. 이 사이 실질 GDP 증가분이 1.2~1.3배였다는 것과 비교하면 이 상승 폭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무엇이 버블을 발생시켰고 팽창시켰는가: 이 점에 관해 참고가 되는 것이 전 일본은행 총재 시라카와 마사아키의 책 『중앙은행』이다. 이 책에서 그는 ① 버블을 발생시킨 초기 요인과 ② 발생한 버블을 가속시킨 요인으로 나눠서 고찰하고 있는데 ①의 요인으로 ‘가격 상승 기대 심리’와 ‘신용대출 폭증’ 두 가지를, ②의 요인으로 ‘장기화된 금융완화 정책’, ‘금융과 경제 활동 사이에서 만들어진 경기 증폭적인 작용’, ‘지가 상승을 가속하기 쉬운 세제’ 세 가지를 꼽고 있다.
금융 정책, 금융 행정의 전환-버블 붕괴로: 주가 버블을 붕괴시킨 것은 일본은행의 정책금리의 인상이었다. 반면 지가 버블은 대장성의 금융 행정 전환, 즉 부동산 금융 규제의 발동이 결정적이었다.
[금융 정책의 전환과 주가 버블 붕괴] 일본은행은 소비세가 도입된 다음 달인 1989년 5월에 정책금리를 3.25%로 인상한 것을 시작으로 10월에 3.75%, 12월에 4.25%로 인상했다. 게다가 해를 넘긴 1990년 3월에는 5.25%, 8월에 6%까지 인상했다. 1년 남짓한 기간에 총 5번 모두 3.5%p의 정책금리 인상이 있었다. 동시에 예금금리도 인상되었기 때문에(금리조정심의회의 심의를 거쳐서 대장대신이 고시한다) 금융기관의 자금 조달 비용은 대폭 상승했고 이를 반영하여 대출금리도 상승했다. 이러한 금융 정책의 전환 속에서 주가는 1989년 말을 정점으로 1990년 큰 폭으로 떨어졌다.
[부동산 융자 규제 발동과 지가 버블 붕괴] 한편 지가 버블은 금융 정책의 긴축 전환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국토 교통성의 공시지가(매년 초의 가격, 전국 평균)를 보면 1989년 초부터 1990년 초까지 더욱 상승했고 1991년에 들어서야 하락세로 변했다. 이 하락(지가 버블의 붕괴)을 초래한 것은 1990년 3월에 대장성 은행국장이 전국의 금융기관에 보낸 ‘토지 관련 융자의 억제에 대하여’라는 통지였다. 이는 ‘부동산 대상의 융자 증가율을 총대출 증가율 이하로 억제한다’, ‘부동산업, 건설업, 비은행계 금융기관의 융자 실태 보고를 요청한다’는 내용을 담은 ‘행정지도’였다.
지가 버블의 배경에는 부동산업, 비은행계 금융기관(은행 이외의 금융기관으로 소비자 금융회사, 신용카드사, 주택금융전문회사 등) 대상의 융자 증가에 있었던 만큼 이들에 대한 융자가 규제됨에 따라 부동산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컸다. 이 대장성의 행정지도는 1991년 12월에는 해제되었는데 버블을 꺼뜨리는 데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후 지가 하락은 2010년 초반까지 이어졌다.
버블 붕괴 이후 7년 (1990-1997)장기간에 걸친 경기 하강 국면: 1990년 초에 주가 버블이 꺼져 주가가 대폭 하락했어도 1990년 전반의 경제 활동 수준은 되려 높았고 1990년의 GDP 실질성장률도 4.9%를 기록했다. 경기가 하강 국면으로 진입한 것은 1991년 3월이었다. 하지만 하락세로 전환한 뒤의 낙폭은 컸고 기간 역시 32개월로 길었다. 하강 기간이 32개월이었다는 것은 전후 일본 경제에 있어서 실질적으로 최장 기록이었다.
[대형 경기 대책 실시-정책금리는 역사상 최저 수준으로] 물론 정부가 이 시기 손을 놓고 마냥 경기 상황을 관망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격변하는 정국에서 내각은 미야자와 기이치 내각(1991년 11월~1993년 8월)과 호소카와 내각(1993년 8월~1994년 4월), 하타 쓰토무 내각(1994년 4월~6월), 무라야마 도미이치 내각(1994년 6월~1996년 1월)으로 바뀌었고, 각 내각의 손에서 7번의 대형 경기 대책이 나왔다.
그것 중에는 이미 경기가 회복 국면에 들어서고 난 다음의 것도 있고, 사업 규모가 사회심리적인 영향을 고려하여 과대 포장된 경우도 많다. 하지만 경기 회복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정부 주도의 재정 대책과 함께 금융 정책 면에서도 수차례 대책이 나왔다. 일본은행은 정책금리를 1991년 7월에 6%에서 5.5%로 인하한 것을 시작으로, 이후 8번에 걸쳐서 인하를 단행했다. 1995년 9월 이후에는 0.5%라는 역사상 최저치로 당시 외국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수준으로 인하되었다. 그럼에도 경기 하강 국면은 한없이 장기화되었다.
하시모토 ‘구조개혁’ 정책의 실시와 파탄 (1997-2000)하시모토 내각의 6개 개혁: 하시모토 수상이 1997년 1월의 국회 시정 방침 연설에서 호언장담한 것이 바로 ‘6개 개혁’이었다. ‘재정 구조개혁’, ‘교육 개혁’, ‘사회보장 구조개혁’, ‘경제 구조개혁’, ‘금융시스템 개혁’, ‘행정 개혁’의 6개 개혁으로, 전년 11월의 제2차 하시모토 내각 발족 당시 ‘5개 개혁’이라고 발표한 것에 ‘교육 개혁’을 추가한 것이었다.
개혁이 불러온 경기 침체: 이러한 ‘6개 개혁’ 속에서 일본 경제는 어떻게 되었을까. 먼저 경기 동향을 보자. 1993년 11월부터 상승하기 시작한 경기는 아직 충분히 회복하지 못한 채로 1997년 5월을 정점으로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다. GDP 실질성장률을 보면 1996년에는 3.1%까지 상승했지만 1997년 1.1%로 하락했다.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