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노미 제2의 이동 혁명
로렌스 번스, 크리스토퍼 슐건 지음 | 비즈니스북스
오토노미 제2의 이동 혁명
로렌스 번스, 크리스토퍼 슐건 지음
비즈니스북스 / 2019년 3월 / 536쪽 / 22,000원
터닝 포인트
다르파 그랜드 챌린지: 다르파(DARPA)가 주최한 로봇 자동차 경주대회에 세 번이나 참여한 카네기 멜론대학교 팀의 기술책임자였던 엄슨은 구글의 자율주행차 프로젝트 쇼퍼의 창시자인 세바스찬 스런이 직접 뽑은 인물이기도 하다. 2003년, 27살이었던 엄슨에게는 나름의 계획이 있었다. 그는 당시 미 항공우주국(NASA) 연구 팀에서 화성 탐사 로봇을 테스트하던 로봇 전문가였는데, 그는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에서 한 달 지낼 계획이었다. 그런 후에 카네기멜론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딴 뒤, 모교의 로봇 공학 연구소에서 일하거나, 가끔 카네기멜론대학교에서 분사되는 스타트업에서 일할 계획이었다.
한편 엄슨이 머물렀던 사막의 야영지에는 하이페리온(윌리엄 휘태커가 만들어낸 65번째쯤 되는 로봇)도 있었는데, 그것은 화성 표면을 돌아다니며 냄새를 맡고 토양을 긁어내 생명체의 징후가 있는지 테스트하도록 설계된 로봇이었다. 그런 엄슨의 삶을 통째로 바꿔놓을 것은 ‘레드(Red)’라고 불리는 윌리엄 휘태커와의 만남이었다. 9ㆍ11 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도로 밑에 깔린 사제폭발물로 인한 미 보병 사상자가 늘어나자, 당시 다르파의 총책임자였던 토니 테더는 자율주행차 개발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로봇 경주대회를 개최하고, 휘태커는 여기에 참가할 계획이었다.
[엔지니어, 로봇 혁명에 뛰어들다 / 역사의 시작은 늘 보잘것없었다] 아타카마 사막에서 돌아온 엄슨은 박사 공부는 잠깐 미뤄두고 휘태커와 함께 다르파 대회에 참가하고 싶다며 아내를 설득하고, 레드 팀에 합류했다. 다르파 그랜드 챌린지 본선은 2004년 3월 13일 열렸다. 샌드스톰(레드 팀으로 출전한 로봇자동차)은 예선에서 가장 뛰어난 성능을 보였기 때문에 가장 먼저 출발하는 영광을 차지했다. 샌드스톰은 곡선 구간을 완벽하게 통과한 다음 직선 구간에 접어들자 속도를 높였다.
머지않아 다른 팀 로봇들도 출발점을 떠났다. 혼다 ATV를 개조한 엔스코 팀 로봇은 곡선 구간을 돌자마자 옆으로 넘어졌고 결국 탈락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몇 분이 흐른 후, 레드 팀은 대회 조직위원회 직원으로부터 샌드스톰에 문제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센서가 제대로 측정을 하지 못한 탓인지, 샌드스톰은 계속해서 자신의 실제 위치보다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1~2피트 정도 떨어져 있다고 인식했다. 결국 왼쪽에 있던 타이어가 둔덕을 타고 올라가 경사 아래로 떨어졌다. 본선에 2등으로 출전한 사이오토닉스Ⅱ도 야트막한 언덕에 걸리고 말았다. 토니 테더는 곤란한 상황을 탈피하기 위해 1년 안에 두 번째 대회를 열고 상금은 지난 대회의 두 배에 이르는 200만 달러로 올리겠다고 공표했다.
두 번째 기회: [두 번째 개척자들의 등장] 그로부터 몇 달이 흘러 2004년 여름이 되었을 때, 세바스찬 스런이라는 컴퓨터 과학자가 스탠퍼드대학교 세미나실에서 열린 제1회 다르파 챌린지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듣게 되었고, 두 번째 대회에 참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뒤 카네기멜론대학교의 몬테멜로와 스런은 스탠퍼드대학교로 옮겼고, 스탠퍼드 팀에 합류했다. 한편 엄슨은 박사학위를 끝낸 후 샌드스톰을 후원했던 미국의 방위산업체 과학응용국제협회(SAIC)에 취직했는데, SAIC에서 엄슨이 맡은 업무는 제2회 다르파 그랜드 챌린지에서 레드 휘태커 및 레드 팀에 협력하는 것이었다.
[토끼와 거북이 전략] 대회가 열리는 날인 2005년 10월 8일 새벽 4시 30분, 다르파 관계자가 레드 팀의 한 팀원에게 2,935개의 웨이포인트, 즉 제2회 그랜드 챌린지 코스가 저장된 컴퓨터 파일이 담긴 USB를 건넸다. 휘태커와 엄슨 등이 전략을 논의했고, 결국 그들은 차량 두 대를 이용해 토끼와 거북이 접근 방법을 쓰는 게 좋겠다고 결론지었다. 하이랜더(레드 팀으로 출전한 첫 번째 로봇자동차)가 먼저 출발대를 빠져나왔다. 초반에는 하이랜더가 무리 중 가장 선두에 있었다. 그러다가 거의 17마일쯤 됐을 무렵, 하이랜더가 불안정해졌다. 고장 난 하이랜더의 속도가 너무 느려져 두 번째로 출발대를 떠난 스탠퍼드대학교의 스탠리가 73.5마일 지점에서 하이랜더를 따라잡고 말았다. 그리고 경기가 시작된 지 6시간 53분 58초가 되었을 때, 스탠리는 자율주행으로 완주한 첫 번째 로봇이 되었다.
샌드스톰(레드 팀으로 출전한 두 번째 로봇자동차)은 오전 6시 50분에 출발점을 떠났다. 샌드스톰은 경기 시작 후 6시간 30분까지는 아무런 문제도 없이 작동했다. 하지만 경로에서 가장 좁은 구간을 지날 때 협곡 벽면을 긁으면서 지나갔다. 샌드스톰은 출발대를 떠난 지 7시간 4분 만에 결승점에 도달했다. 샌드스톰은 주어진 임무를 훌륭하게 완수해 2등을 차지했다. 3등은 레드 팀이 설정해놓은 시간보다 55분이나 뒤처져서 느릿느릿 결승점을 통과한 하이랜더였다.
역사는 빅터빌에서: [타르탄의 탄생] 2006년 4월, 토니 테더는 2007년 11월 3일에 도심에서 자율주행차 경주대회를 개최하겠다고 발표했다. 카네기멜론 팀은 대학 측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새로운 시도라는 점을 반영해서 ‘타르탄 레이싱(Tartan Racing)’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선택했다. 그런데 세 번째 대회에 출전하려면 100만 달러가 훨씬 넘는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2006년 휘태커가 GM 기술센터로 나를 찾아왔고, 나는 GM이 타르탄 레이싱 팀을 다각적인 방법으로 후원하도록 주선했다. 한편 타르탄 레이싱 팀에 새로 합류한 인물 중 한 사람은 소프트웨어 팀 책임자 브라이언 살레스키였다.
[어번 챌린지의 능력자들] 2006년 미국 전역에서 많은 팀들이 챌린지 출전을 준비하는 동안 이동성 파괴의 역사에서 주인공이 된 또 다른 인물들이 우연히 마주치기 시작했다. 그중 데이브 홀과 앤서니 레반도브스키를 살펴보자. 홀은 1970년대에 스테레오 시스템에서 초저음을 좀 더 선명하게 재생하는 장치인 서브우퍼를 발명했고, 제조회사를 차렸다. 그리고 홀은 첫 번째 대회가 끝난 후 두 번째 대회가 열리기까지, 라이다의 잠재력에 매료되었는데, 그는 하나의 기기에 64개의 레이저를 넣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정말 놀라운 혁신은 그의 라이다가 회전한다는 것이었다. 이전에 나온 것들은 고정된 상태에서 레이저를 쏘았기 때문에 시야가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차량 윗부분에 라이다가 탑재된 기기를 올려 1초에 10회씩 360도 회전하게 만들자, 차량 주위를 빠짐없이 살필 수 있었다.
홀은 자신이 운영하는 서브우퍼 회사 벨로다인 내에 별도의 생산 부서를 꾸린 후, 두 번의 다르파 그랜드 챌린지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낸 인물 중 하나였던 앤서니 레반도브스키를 영업사원으로 고용했다. 그리고 타르탄 레이싱 팀이 하나에 7만 5,000달러라는 거금을 주고 벨로다인의 라이다 중 하나를 구입하자, 레반도브스키는 엄슨과 카네기멜론 팀이 라이다를 설치할 수 있도록 펜실베이니아로 날아갔다. 그 무렵 레반도브스키는 벨로다인 라이다의 핵심 기술을 많은 팀에 판매했을 뿐 아니라, 어번(Urban) 챌린지에 참가하는 스탠퍼드 팀에게 자문도 제공했다.
[엔지니어들, 구글과 손을 잡다] 2006년 스런은 스타트업을 하고 싶어 몸이 근질거렸다. 마침 그해에 스런은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컴퓨터 비전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그는 수강생 중 명석했던 요아킴 아프비드슨에게 카메라가 촬영한 장면들을 연결해 모든 곳을 볼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과제를 부여했고, 아프비드슨이 만들어낸 컴퓨터 프로그램은 실제로 현장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한편 2006년 여름 스런은 스탠퍼드대학교 어번 챌린지 팀을 감독하는 동시에 제2의 팀에게 휴대폰용 거리 시각화 소프트웨어 개발이라는 과제를 부여했는데, 헨드리크 달감프와 앤드루 루킹빌, 요아킴 아프비드슨도 이 팀에 속해 있었다. 레반도브스키도 2007년이 된 후 이 팀에서 활약했다.
2007년 3월 스런은 자금 조달을 위해 벤처캐피털 회사에 접근했는데, 세쿼이어캐피털과 벤치마크가 관심을 보였다. 스런은 2007년 4월 8일에 경매를 시작했고 초기 펀딩 규모가 500만 달러에서 1,000만 달러로, 다시 1,500만 달러로 올라갔다. 그날 저녁 어떤 벤처캐피털 회사를 선택할지 고민하던 스런은 불쑥 래리 페이지의 자택을 찾아가 저녁 식사를 제의했다. 곧이어 세르게이 브린도 모습을 드러냈다. 세 사람은 스런이 ‘뷰툴’(VueTool)이라고 이름 붙인 신기술에 대해 논의했다. 당시 페이지는 이미 유사한 프로젝트를 후원하고 있었다. 이후 페이지와 브린은 구글에서 유사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저녁 식사 후 스런은 페이지와 브린을 스탠퍼드대학교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로 데려가 샌프란시스코 거리를 촬영한 화면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크게 감명 받았고, 스런 팀이 구글 프로젝트 팀보다 훨씬 짧은 시간 안에 훨씬 적은 돈으로 훨씬 많은 것을 이뤄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음 날 구글의 M&A 책임자는 스런에게 전화를 걸었고, 스런은 구글에게 뷰툴 기술을 매각하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합의 내용에 따라 스런과 레반도브스키를 비롯한 팀원들은 구글에 합류했다.
[인간만큼 똑똑하고 안전한 로봇 자동차] 스런이 스트리트 뷰와 관련된 목표를 달성하는 데 몰두하느라, 다르파 어번 챌린지에 참여하는 스탠퍼드 팀의 일은 모두 마이크 몬테멜로의 몫이 되었다. 미국 반대편에서는 크리스 엄슨이 카네기멜론 팀의 로봇 자동차와 관련된 일상적인 업무를 지휘하고 있었다. 이 무렵 자율주행 로봇을 만드는 일은 거의 일상이 되었다. 쉐보레 타호를 자율주행차 보스로 변신시키는 일은 어떤 측면에서는 인간이 성숙해가는 과정과 유사했다. 보스는 처음에는 듣지도 못하고 앞을 보지도 못했으며, 감각도 없었고, 방향을 읽지도 못했고, 알아서 움직이지도 못했다. 엄슨과 팀원들이 라이다, 레이더 같은 센서들과 컴퓨터 프로세서를 설치한 후에야 보고 읽고 움직일 수 있었다.
2007년에 접어들 무렵, 나는 로봇 시티에서 작업 중이던 휘태커, 엄슨, 살레스키를 비롯한 타르탄 레이싱 팀원들과 GM 엔지니어들을 만나 불과 몇 주 전에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해 설계한 상황에서 보스를 테스트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2007년 10월 25일 빅터빌에서 예선전이 열렸다. 다르파는 맨 처음 참가 신청을 한 89개 팀 가운데 35개 팀이 예선전에 참여해도 좋을 정도로 훌륭한 로봇을 만들었다고 판단했다. 나는 보스가 어떤 활약을 펼치는지 지켜보기 위해 다음 날 어번 챌린지를 찾았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회사 임원들과 빅터빌로 날아왔다. 구글과 달리, GM의 CEO는 어번 챌린지를 찾지 않았다.
출발 예정 시간인 8시까지 몇 분 남지 않았기 때문에 살레스키와 엄슨은 보스의 모든 부분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체크 리스트를 살폈다. 그러던 중 보스와 연결된 노트북 화면에 GPS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 이런 문제가 발생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엄슨은 나머지 팀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여섯 명의 팀원이 달려와 모든 부분을 다시 살펴봐야 했다. 보스가 출발할 수 없게 된 탓에 다르파 관계자들은 버지니아텍 팀에게 다가가 경기를 시작하라고 얘기했다. 몇 분이 흘렀지만 타르탄 레이싱 팀의 GPS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다르파는 스탠퍼드 팀이 만든 주니어까지 출발시켰다. 엄슨은 각 분야를 이끄는 책임자들과 다르파 관계자들을 한데 모았다. “뭐가 바뀌었을까? 이전과 다른 게 뭘까?” 예선전에서 1등을 한 덕에 전광판은 그 어떤 로봇보다도 보스에 가까이 위치해 있었다. 테더는 전광판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거야. 저거 끄라고 해!” 전광판이 꺼진 지 몇 초 만에 보스의 GPS 신호가 돌아왔다. 8시 30분 보스가 출발대를 빠져나가자 관중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차량은 스탠퍼드 팀 주니어였다. 주니어는 4시간 29분 28초 만에 경기를 끝냈다. 보스가 두 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하지만 보스가 결승선을 통과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주니어보다 약 20분이나 짧았다. 보스의 기록은 4시간 10분 20초였다.
다음 날 아침, 테더가 폐회식 무대에 올라 처음으로 한 얘기는 전광판에서 나온 전자파 때문에 보스의 출발이 늦어졌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테더는 보스가 스탠퍼드 팀 주니어보다 늦게 들어오긴 했지만, 다른 팀들보다 20~30분 정도 단축된 기록으로 결승점을 통과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테더가 버지니아텍을 3등으로 호명했다. 2등은 “주니어!”라고 호명했다. 주니어가 2등이라면 우승 팀은 보스였다. 테더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진정한 우승자는 바로 기술입니다.” 테더의 말이 옳았다. 그 대회는 터닝 포인트였다. 공유형 자율주행 커넥티드 카라는 미래가 열릴 가능성을 확인한 터닝 포인트.
진화한 자동차의 새로운 DNA
오토노미의 탄생: 9ㆍ11 테러가 발생한 지 넉 달이 지난 후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우리가 새롭게 발명한 자동차를 처음 소개했다. 릭 왜거너가 무대로 올라가 말을 했다. “지금 여러분께 획기적인 콘셉트 카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너무도 혁신적이어서 이 콘셉트 카가 말 그대로 자동차를 새롭게 태어나게 했다고 하더라도 전혀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관중들이 느끼는 감정은 호기심이었다. 우리는 낯설기 짝이 없는 자동차 크기의 스케이트보드를 내놓았다. 바로 그 순간 내가 무대 위로 올라갔다. “이 콘셉트 카의 이름은 오토노미(Autonomy)입니다!” 나는 설명을 이어나갔다.
“우리는 스케이트보드처럼 생긴 6인치 두께의 차대로 이뤄진 자동차 구조를 생각해냈습니다. 네 개의 바퀴에는 모두 전기 모터가 들어 있습니다. 그 속에는 연료전지 스택과 수소 저장 시스템, 제어 장치, 열 교환기가 들어 있습니다. 오토노미에는 내연기관이 없습니다. 변속기도, 동력 전달 장치도, 차축도, 배기 장치도 없습니다. 냉각 장치도 없고, 조향 장치도 없고, 제동 장치나 가속 장치도 없습니다. 사실 전자와 양자, 물과 공기 외에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바퀴와 서스펜션뿐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 콘셉트 카가 갖고 있는 놀라운 점이었다. 오토노미는 수소 연료전지를 중심으로 설계됐고, 오토노미는 대체 추진 시스템이 제공하는 잠재력을 충분히 활용한 최초의 자동차 디자인 중 하나였다.
잠시 후 또 다른 형태의 오토노미 콘셉트 카가 공개되었다. 두 번째로 공개된 콘셉트 카는 좀 더 일반적인 자동차의 모양이었다. 차대 위에는 포뮬러 원 경기용 자동차와 비슷한 모양의 회색 차체가 올라가 있었고, 차량 전면에는 움푹 들어간 공기 흡입구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우리는 차대에서 가벼운 차체를 들어 올려 순식간에 다른 차체로 교체하는 일이 얼마나 간단한지 직접 시연해 보였다. 이렇게 하면, 차대 주인은 저녁 데이트를 나갈 때는 2인용 스포츠카 차체를 달고 나갔다가 다음 날 아이들을 축구 연습장에 태워 갈 때는 좀 더 많은 사람을 태울 수 있는 SUV 차체로 바꿔 달 수 있다.
나는 디트로이트 모터쇼 무대 위에서 연료전지의 장점을 소개했다. 오토노미를 운행하면 순수한 물과 열이 발생할 뿐, 이산화탄소나 산화질소는 전혀 생성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스케이트보드 형태로 자동차를 설계했기 때문에 제조 공정을 간소화할 수 있었다. 몇 가지 형태의 오토노미 스케이트보드를 만들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2인용 자동차용 스케이트보드 하나, 4~6인용 승용차용 스케이트보드 하나, 픽업트럭이나 덩치가 아주 큰 SUV에 사용할 수 있는 스케이트보드 하나면 문제가 없을 듯했다. 스케이트보드 위에 올려놓을 탑승 공간은 수없이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낼 수 있었다. 나는 말했다. “자동차가 처음 발명된 지 100년이 된 지금, 전 세계에서 개인 이동 수단이라는 자유를 누리는 사람은 12퍼센트에 불과합니다. 오토노미는 이런 자유를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제공할 것을 약속합니다.” 관중들은 오토노미가 제시하는 자유와 자율성이라는 개념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