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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심 탈레브 스킨 인 더 게임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음 | 비즈니스북스
나심 탈레브 스킨 인 더 게임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음

비즈니스북스 / 2019년 4월 / 444쪽 / 19,800원



서론 1 - 안타이오스의 죽음



그리스신화 속 안타이오스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와 바다의 신 포세이돈 사이에서 태어나 리비아 지역에 살았다. 그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레슬링을 하자고 청했고, 상대가 응하면 막강한 힘으로 상대방을 땅에 내리꽂아 죽였다. 안타이오스가 절대 지지 않는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비밀은 바로 그의 어머니에게 있었다. 어머니인 대지에 발을 딛고 있으면 대지로부터 무한한 힘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 대신 대지에서 발이 떨어지면 그는 완전히 무력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안타이오스는 열두 개의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리비아 지역을 지나가던 헤라클레스와 레슬링을 하게 됐다. 서로 몸을 맞대고 치열하게 부딪히던 중 안타이오스의 비밀을 눈치 챈 헤라클레스는 안타이오스를 공중으로 들어 올려 그의 힘의 원천을 차단하고 그대로 안타이오스의 생명을 끊었다.

이 책의 서두에서 안타이오스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우리가 가진 지식도 탄탄한 토대에서 떨어지면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나는 전작인 『안티프래질』에서 사실 대학에서 탄생한 것으로 여겨지는 지식은 대부분 과거에 수많은 사람이 경험적으로 발견한 것이며, 대학에서 이뤄진 일은 그 발견을 형식화하고 정리한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여기서 과거의 사람들이 경험적으로 발견했다는 말은 실제로 두 발을 땅에 딛고, 즉 몸으로 직접 부딪쳐서 배웠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런 식의 배움은 논리나 고찰을 통한 배움보다 훨씬 더 우월하다.

지금의 리비아에 투영된 현실 세계: 안타이오스의 전설 이후, 수천 년이 지난 지금의 리비아에서는 독재자를 축출하고 정권을 바꾸기 위한 시도가 어설프게 행해지면서 정국이 큰 혼란에 빠져, 그 결과 노예시장이 생겨났다. 한편 2003년에는 이라크 침공을, 2011년에는 리비아의 독재자 축출을 주창했던, 소위 간섭주의자(interventionista)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의 대표적인 예로 빌 크리스톨, 토머스 프리드먼 등을 들 수 있다. 간섭주의자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세계 몇몇 나라의 체제 교체에 외부 세력이 개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아주 오래전 이런 간섭주의자들과 미국 국무부에 있는 그들의 친구들은 이슬람 지역에서 온건주의 반체제 세력이 조직화되고 훈련하고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그런데 이 세력은 후에 알카에다가 됐고, 알카에다는 2001년 미국 뉴욕에서 발생한 9ㆍ11 테러 사건을 일으켰다. 미국 국무부가 당시 이슬람 온건주의 반체제 세력을 지원한 데는 구소련에 대항한다는 명분이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오늘날 간섭주의자들은 온건주의 반체제 세력이 결국 알카에다가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이 사실이 책상에서 공부만 하는 사람들의 한계라고 생각한다.

간섭주의자들의 주장에서 발견할 수 있는 심각한 결함을 세 가지만 지적하겠다. 첫째, 이들은 동역학이 아니라 정역학 방식으로 생각한다. 둘째, 생각이 단편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셋째, 행동의 상호작용을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 나는 이 책의 전반에 걸쳐 공부를 많이 했다고 하는(자신이 지식인이라 자부하지만 제대로 된 지식을 쌓았다고는 보기 어려운) 바보들이 범하는 오류들을 다루려고 한다.

부적합한 부분을 소거하는 시스템 학습: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꼽으라면 지금부터 시작할 이야기다. 이 책의 주제는 ‘자신의 핵심 이익이 걸려 있는 사람이 직접 (그 일에) 관여해야 한다. 즉 책임지는 사람이 판단해야 한다’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간섭주의자들의 사례는 자신의 핵심 이익이 걸려 있지 않은 사람들, 혹은 책임지지 않는 사람들이 어떤 일에 관여하고 의사결정을 내렸을 때 어떤 문제들이 나타날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 준다. 게다가 간섭주의자들은 자기의 실수에서 무언가를 배우지도 못한다. 그 자신이 자기 실수의 희생자가 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서론 2 - 행동과 책임의 균형



조직화된 사회를 구성하고 같은 사회 안에서 다른 존재들과 교류하면서 살아야 하는 생명체들에게 있어서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존재 방식이자 법칙이다. 행동에 대한 책임을 다른 존재에게 전가하는 사회는 존속될 수 없다. 행동과 책임이 함께해야 한다는 것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균형’이다. 신법이든 사회법이든 인간이 만든 법이든 모든 법은 이런 균형을 지키면서 발전해 왔다. 함무라비에서 칸트에 이르기까지 문명화를 거치면서 표면적인 내용이 정제되기는 했지만, 자신의 행동에 책임져야 한다는 기본 원리에는 변함이 없다.

함무라비법을 다시 생각한다: 함무라비법을 관통하는 중심 원칙은 바로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라’는 것이다. 함무라비법에 따르면 그 누구도 숨겨진 테일 리스크(tail risk)나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면서 과실만 취할 수 없다. 여기서 말하는 테일 리스크란 발생률이 극히 낮지만 위험도는 매우 높은 리스크를 지칭하는데, 정규분포 그래프를 그렸을 때 맨 끝 좌우 꼬리 쪽에 나타날 정도로 낮은 확률을 지녔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보편율은 잊어라: 나는 칸트의 정언명령을 ‘어떤 곳,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의 행동과 비교하더라도 보편적이라고 판단될 만한 행동을 취하라’라고 해석한다. 칸트는 정언명령의 첫 번째 규정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자신의 격률과 의지가 보편율에 합당할 때만 그에 따른 행동을 취해야 한다.” 이어지는 두 번째 규정은 다음과 같다. “자신의 인격과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을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인식하지 말고, 언제나 목적 그 자체로 인식하고 행동해야 한다.”

칸트는 규정이라고 했지만, 사실 그가 제시한 관념은 너무 복잡하다. 나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칸트가 말하는 복잡한 접근법은 건너뛰자고 제안한다. ‘보편적인 행동은 논문으로 읽을 때는 멋있게 느껴지지만, 실제로 행하려면 끔찍하기만 하다.’ 왜 그럴까? 우리 인간은 환경의 동물이자 현실적인 존재로, 범위나 규모에 민감하다. 작은 것은 큰 것과 분명히 다르다. 실체적인 것은 추상적인 것과 분명히 다르다. 감정적인 것은 논리적인 것과 분명히 다르다. 거시적인 해법은 미시적인 해법보다 언제나 정확도가 떨어진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 처해 있는 환경에 적합한 행동을 취해야 하며, 지금 상황에 맞는 실질적인 규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게다가 보편적이면서 모호한 행동은 독선적인 사이코패스를 끌어들이는 경우가 많다. 앞서 언급한 간섭주의자 같은 사람들 말이다. 이 책이 전하려는 핵심 메시지 가운데 하나는 보편율을 무분별하게 적용할 때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이다.

언제나 균형을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판단과 책임의 균형을 추구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이런 관념에 매몰되어 세상의 모든 일에 이런 균형을 적용할 필요는 없다. 특히 결과의 영향력이 사소한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간섭주의자들의 경우, 그들의 결정이 자신의 국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말하자면 자신의 삶과 무관한) 다른 나라에 사는 수많은 사람의 죽음을 야기하기도 하므로 판단과 책임의 균형이 반드시 필요하다. 반면 의사결정에 조언하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 위로 차원에서 건네지는 친구의 의견이라든지, 점쟁이들의 점괘에 관해서까지 판단과 책임의 균형을 요구할 필요는 없다. 판단과 책임의 균형이라는 문제의 초점은 직업적으로 혹은 구조적으로 중대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 판단에 관여하면서 그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는 사람들에게 맞춰져야 한다.

서론 3 - 『인세르토』 시리즈



내 책들은 전작의 내용과 연결되어 있다. 『블랙 스완』은 그 전작인 『행운에 속지 마라』의 일부 내용을 심층적으로 다룬 것이고, 『안티프래질』에서 다룬 상황의 예측 불가능성은 그 전작인 『블랙 스완』에서 다뤄진 주제다. 그리고 이 책은 바로 전작인 『안티프래질』에서 가볍게 다뤘던 내용을 확장한 것이다. 나는 전작인 『안티프래질』에서 ‘자신의 손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부 떠넘겨서는 안 된다’라고 역설한 바 있다. 개인들 사이에서 형성된 리스크와 수익의 불균형은 사회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이런 불균형은 거대 시스템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시장에서 시장 참여자들이 밥 루빈 트레이드 방식을 추구하고 있다. 즉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손실이나 책임은 다른 사람들에게 떠넘기려 한다. 문제는 이런 불균형이 축적되다 보면 어느 순간 ‘검은 백조’가 출현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불균형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내 책에서 공통적으로 다루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기업 경영자들의 보너스는 연간 단위로 지급되지만 불균형이 폭발하는 상황은 이보다 주기가 훨씬 더 길다. 대략 10년마다 한 번씩 일어나기 때문에 기업 경영자들은 밥 루빈 트레이드 방식을 추구하려는 유혹을 받기 쉽다. 이 같은 불균형의 추구로 ‘검은 백조’가 출현할 가능성은 더욱 커지고, 시장 시스템이나 사회 시스템은 더욱 취약해진다.



대리인 문제



거북이를 잡은 사람이 거북이를 먹어라



어떤 마을의 어부들이 거북이 여러 마리를 잡아 요리했는데, 막상 먹으려니 거북이 고기가 너무 맛이 없었다. 때마침 헤르메스(그리스신화에서 상업과 풍요, 전령, 행운을 관장하는 신)가 어부들 옆을 지나갔다. 헤르메스를 본 어부들은 그에게 거북이 고기를 권했다. 어부들이 버리려고 했던 고기를 자신에게 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헤르메스는 그들 모두에게 거북이 고기를 먹으라고 명령했다. 여기서 다른 사람에게 주려는 음식은 자기 자신도 먹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원칙이 제시된 것이다. 한때 순진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던 나는 앞의 이야기로부터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었다. ‘당신에게 좋은 일이면 그에게도 좋은 일이지만, 당신에게는 손실이 되는데도 그에게는 아무런 손실도 생기지 않는 그런 행동을 취하라고 조언하는 사람의 말은 항상 경계하라.’

로도스의 옥수수 가격: 무언가를 팔기 위해 조언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윤리적인 행위가 아니다. 본질적으로 판매자의 이익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에게 조언하거나 무언가를 판매할 수도 있는데, 이 두 가지 행위는 서로 분리되어야 하는 개념이다. 사실 판매를 위한 조언은 ‘광고’라고 봐야 한다. 이때 판매자는 구매자에게 자신이 팔려는 상품에 관해 얼마나 많은 정보를 공개해야 할까? 분명히 가격이 떨어질 것을 알고 있는데도 현재 가격으로 판매하는 것이 윤리적인 행위일까? 이러한 의문은 고대에도 존재했다.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와 그의 제자인 안티파트로스의 대화록에도 이에 관한 논쟁이 실려 있는데, 정보의 비대칭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안티파트로스는 파격적으로 여겨지는 수준의 정보 공개를 주장했다. 일례로 키케로가 남긴 『의무론』에는 디오게네스와 안티파트로스가 남긴 정보의 비대칭 문제에 관한 질문이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제시되어 있다.

어떤 상인이 알렉산드리아에서 옥수수를 배에 싣고 로도스에 입항했는데, 마침 로도스에 기근이 들어 옥수수 값이 폭등하고 있었다. 그 상인은 알렉산드리아의 많은 상인이 자신의 뒤를 이어 옥수수를 싣고 로도스를 향해 출항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 상인은 이런 정보를 로도스 사람들에게 알려야 할까? 이런 질문을 던지면 금융 트레이더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답변을 내놓을 것이다. 자기가 팔아야 할 상품의 보유분이 얼마나 되는지 공개하지 않고 고객에게 매입을 권유할 거라고 말이다. 물론 동종업계의 다른 트레이더들에게는 그런 식의 판매를 시도하지 않는다. 그런 시도를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업계 동료들에게 배척당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수자가 누구인지 특정할 수 없는 시장에서의 거래라면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것이 기본적인 태도다.

금융투자업계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이 팔려는 상품을 원하는 가격에 사 주는, 시장 어딘가에 있는 익명의 매수자를 ‘스위스인(The Swiss)’이라고 부른다. 흔히 자신과 모종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사람들과 단편적인 거래 외에는 아무런 접점도 없는 사람들에게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사람들의 일반적인 태도다. 그리스 시대 디오게네스는 판매자라면 법에서 요구하는 것만큼의 상품 정보를 구매자들에게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안티파트로스는 법에서 요구하는 수준을 넘어서 상품에 관한 정보를 구매자들에게 모두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상품에 관해 판매자가 알고 있는 것은 구매자도 전부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시대, 장소, 상황, 시장 참여자들의 국적 등 다양한 요소가 변하더라도 계속 유지될 입장은 아마도 안티파트로스의 주장일 것이다. 다음을 생각해 보라.

‘도덕률의 입장은 언제나 법률의 입장보다 확고하다. 법률이 발전을 거듭해서 궁극적으로 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도덕률이다.’ 쉽게 말하면 다음과 같다. ‘법률은 바뀔 수 있지만, 도덕률은 바뀌는 것이 아니다.’ 상당수의 법 규정이 모호하고 해석의 여지가 있다. 그래서 법은 시대나 장소, 상황에 따라 다른 의미로 풀이되기도 한다. 미국의 경우 소비자 보호가 중시되면서 상품에 관한 정보를 최대한 공개하는 법규가 시행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나라도 많다.

의료계가 가진 불균형: 이 책의 서론에서 안타이오스 이야기를 하면서 지식은 탄탄한 토대에서 떨어지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의사들은 이런 문제를 거의 겪지 않는다. 의술이나 의약은 철저히 경험을 위주로, 즉 임상을 기반으로 시행되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들의 경우 ‘~라고 가정한다면’이라는 말로 얼토당토않은 이론들을 내놓기도 하지만, 의사들은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리고 의사들은 자신의 판단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도 없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은 역효과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책임을 전가하는 일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의사들이 자신의 불확실성을 환자들에게 전가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법체계와 의료 규정이 의사들의 판단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 의료 기관이나 의사를 평가하는 제도가 의사들의 판단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 수도 있다. 현실적인 사례로 ‘암 환자 5년 생존율’에 대해 생각해 보자. 암 치료를 담당하는 병원이나 의사를 평가할 때, 대표적으로 사용되는 기준은 암 환자 5년 생존율이다. 이 기준에 따라 좋게 평가받기 위해 의사들은 어떤 판단을 내릴까? 암 치료를 위한 절제술과 방사선 치료를 떠올려 보라. 통계적으로 절제술을 받은 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은 방사선 치료를 받은 환자의 경우보다 낮다. 하지만 방사선 치료는 암세포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건강을 전반적으로 악화시키는 부작용을 수반한다. 하지만 암 치료에 대한 평가가 20년 생존율이 아닌 5년 생존율을 기준으로 판단되는 상황에서 의사들은 암 환자에게 방사선 치료를 우선적으로 제안할 수밖에 없다. 즉 의료 규정 때문에 의사들은 차선의 대안을 제시하는 식으로 자신의 불확실성을 환자들에게 전가하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이렇듯 자신의 불확실성을 환자들에게 전가하는 의사들의 선택으로 환자들은 치명적인 결과를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의료 소비자가 이 불균형 문제를 완화시킬 수 있을까? 직접적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 없다. 다만 아픈 경우에만 병원을 찾고 가급적 병원을 찾지 않는 식으로 불균형 문제와 엮이는 것을 최소화할 수는 있다. 한편 심각하게 아픈 사람의 숫자는 매우 적고, 굳이 약을 먹지 않아도 되는 사람의 숫자는 훨씬 많기 때문에 제약 회사들은 후자의 사람들이 더 많은 약을 먹게 만들기 위해 갖은 수단을 강구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의사들은 환자에게 책임 의식을 가지고 있고, 환자들은 의사가 합리적인 치료를 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문제는 행정 시스템이다. 나는 의료계에서 나타나는 책임 불균형의 원인이 행정 시스템에 있다고 생각한다.



삶 자체가 리스크와 함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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