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섹시한 직업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김진호 지음 | 북카라반
가장 섹시한 직업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김진호 지음
북카라반 / 2019년 3월 / 260쪽 / 15,000원
맨땅의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데이터의 매력에 빠지다_ 유서현(Green Climate Fund)
나는 아버지의 직장으로 인해 해외 이사를 많이 다녔다(중학교 졸업까지 7번이나 학교를 옮겼다). 그래서인지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고, 적응력도 빠르고, 필요할 때는 잔머리도 굴리고, 처한 상황에 집중하는 성향이 몸에 배었다. 공부도 점수는 잘 나오는 편이었으나 꾸준히 공부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요령껏 벼락치기하는 스타일이었다. 한마디로 ‘꾸준히 안 해도 나는 똑똑하니까 요령 피우면 괜찮아’라는 망상에 빠진 아이였다. 우즈베키스탄의 국제학교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을 때 해외 대학을 가기로 결정했다. 국내 대학에 가기 위한 특례 공부(특히 수학)가 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대학과 전공은 미래를 생각해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유럽 여행 갔던 것에 대한 좋은 기억으로 유럽 대학을 알아보았다. 그러던 중 학교 건물 외관도 멋있고 학생들이 멋지게 정장을 차려 입고 다니고 명성도 좋은 스위스 로잔호텔경영학교에 망설임 없이 진학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도 후회되는 대학 생활이지만, 당시에는 재미있는 대학 생활을 했다. 이때도 역시 공부는 요령껏 했고 수업도 곧잘 빠지곤 했다. 친구들은 “걔는 그룹프로젝트 하러 학교 다녀”라고 장난스럽게 이야기할 정도였다. 4학년이 되어 전공을 선택할 때도 제일 요령을 많이 피울 수 있을 것 같아서 마케팅을 택했다. 돌이켜 보면 친구들과 어울리고 여행 다니고,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하는 것에 더 집중했던 대학 생활이었다.
대학 졸업 후 일을 시작하기 전에 가족과 시간을 보내려고 한국에 입국했다. 그런데 우연히 링크드인(linkedIn)을 통해 연락이 온 레이시온(Raytheon)이라는 미국 회사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일은 어렵지 않았으나 좋게 말하자면 순수함과 정의감으로 (세상물정 몰라서) 불의를 참지 못하고 8개월 만에 그만두었다. 2개월 정도 영어학원에서 강사를 하며 지내다가 우연한 기회로 쉰들러엘리베이터에 면접을 보게 되었고 합격해서 2016년 10월부터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출퇴근이 힘들어서 회사 앞으로 혼자 이사를 왔고, 월세와 생활비를 혼자 감당하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아주 조금은 철이 들기 시작했다. 쉰들러엘리베이터에서는 유지보수사업본부에서 원시 상태의 데이터인 로 데이터(raw data)를 가공해 리포팅, 실적 보고, 영업활동 관리, 인센티브 추출, 시뮬레이션(엑셀 사용) 등의 업무를 했다. 업무를 하면서 이것을 빠르고 효과적으로 하는 방법이 있을 텐데 하면서 엑셀의 한계를 많이 느꼈다.
조금씩 철이 들면서 드디어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스스로 미래에 대한 대비를 너무 하지 않고 망상에 빠진 채로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학교 때부터 취업에 대비해서 많은 자격증을 따고 스펙을 준비한 또래 한국 사회 초년생에 비해 내가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영어, 학교에서 배우고 프로젝트를 하면서 얻은 엑셀, 리포팅과 경영 과목 상식들로는 내가 원하는 미래의 모습에 도달하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2017년 후반부터 스펙이란 것을 다시 쌓아 보려고 MBA 진학을 진지하게 준비하기 시작했다. MBA를 고민하면서 이왕 시작하는 거 이제는 정말 신중하게 선택을 해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에 통계학과 데이터 관련 학과에 관심이 생겼다. 그리고 빅데이터 전공에 대해서 좀더 관심을 갖고 알아보기 시작했다. 여러 학교를 알아보던 중 커리큘럼이 제일 좋으면서 학교 위치나 직장과 병행 가능한 서울과학종합대학원(aSSIST) 빅데이터MBA학과의 매력에 깊이 빠지게 되었다.
아직 학교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았고, 나는 통계나 IT의 배경지식이 전혀 없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을 거라는 이유로 주변에서 만류하기도 했다. 하지만 컴퓨터와 수학, 심지어는 사회 경험도 없는 사회 초년생도 정말 열심히 하니까 되더라, 성공적으로 많은 것을 얻어 가더라 하고 이야기가 나오게끔 아주 많은 노력을 쏟을 각오로 진학을 결정했다.
학기가 시작되고 실제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한국어가 서툰 상태로 한국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을 때와는 다른 어려움이었다. ‘빅데이터를 위한 수학 리뷰’ 과목에서도 용어가 어려웠고, 중간 중간 수업을 따라가기가 어려웠으나 그런대로 번역하면서 따라갔다. 통계 과목에 들어갔을 때는 더 어려운 전문용어들이 나와서 책을 보면 덜컥 겁이 났을 때도 있었다. 수학 실력도 많이 부족했기 때문에 초반에는 가족과 친구들을 보는 시간을 반 이상 줄이면서 공부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계속 의심을 갖고 계셨던 부모님도 내가 아주 많이 노력하는 것을 보고 격려해주셨다. 이제 겨우 전공 한 학기를 마쳤고 바로 전공심화가 시작된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너무나 깊은 망상에 빠졌던 바보 사회 초년 생이라는 것을 항상 느끼고 있다.
회사 대표, 임원, 수학 박사님, 잘나가는 IT 회사의 전무님, 회계법인 컨설턴트 등 다양하고 많은 경력을 가진 분들 사이에서 고작 패기 하나밖에 없는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지만 조금씩 자신감을 쌓아가는 중이다. 빅데이터는 문과 출신이 배우긴 어렵다. 하지만 안 되는 건 없다. 한국어도 서툴지만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라 결국에는 한국어 수업도 생각보다 금방 익숙해졌다. 수학, 통계, 코딩 쪽에서 어려운 부분이나 이해 안 되는 부분은 의지만 있으면 시간을 투자해서 복습(가능하면 예습)하고, 한없이 깊게 파고들어야 하는 부분은 달달 외워서 전략적으로 공부하면 결국에는 다 된다. 이제는 안 되는 건 없다, 일단 하는 데까진 해보자는 마음가짐으로 부닥치면 아주 값진 지식이나 스킬을 얻어갈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물론 지속적으로 열심히 해야겠지만! 졸업 후에는 학교에서 배우고 얻은 역량을 사회에서 최대한으로 발휘해 많은 경험을 쌓으면서 멋진 사람이 될 계획이다. 이 분야에서 내가 어느 정도 경지에 올라와서 한 번 더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때쯤에는 박사학위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회사 내 빅데이터팀으로 옮긴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은행 영업점 직원에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_ 이영란(KEB하나은행 미래금융전략부)
수년 전 어느 날, 우연히 TV에서 빅데이터 사례 특강을 보게 되었다. 심야 통화기록 분석을 통해 서울시 심야버스 노선을 확정했는데, 그 결과가 아주 정확했다는 내용이다. 또 사람들이 트위터에서 어 떤 키워드가 많이 들어간 대화를 하고 있는지 워드 클라우드(word cloud)로 보여주기도 했다. 데이터 분석을 통해 이런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나도 언젠가는 빅데이터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그때부터 키워왔다. 하지만 당시 나는 3세와 6세 아이를 키우며 회사를 다니고 있던 워킹맘이었다. 회사와 집 이외에는 그 어느 것도 생각할 여유가 없었기에 내 공부를 시작한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아이들도 조금씩 성장해서 나에게도 조금씩 시간의 여유가 생길 무렵, 공부를 더 늦출 수 없다는 생각에 무작정 빅데이터 공부를 시작해보자고 결심했다. 은행 영업점에서 경력만 13년차에 접어들면서 영업점 업무에 대한 피로감이 쌓였고, 핀테크 등의 발달로 인해 은행 업무에도 많은 변화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내 결심을 재촉했다. 주말에도 학교에 나와 공부하는 것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는 큰 부담이었지만, 남편과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응원해줘서 용기를 갖고 시작하게 되었다.
커리큘럼을 보고 다양한 과목을 실무 중심으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해 어시스트 빅데이터MBA학과를 선택했다. 대학원에 입학해 공부를 시작하면서 ‘내가 그동안 은행 영업점 업무만 하면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구나!’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다양한 분야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 같이 공부하면서 견문을 크게 넓히는 소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경영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경영 과목은 그다지 부담되지 않았지만, 코딩을 하고 데이터를 다루는 부분에서는 사실 백그라운드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다. 본격적으로 빅데이터 전공과목이 시작되면서부터는 우려한 대로 애를 많이 먹었다. 컴퓨터라는 건 윈도시스템만 있는 줄 알았던 내가 R이나 파이선과 같은 코딩을 공부할 때는 너무 막막하기도 하고, 과연 이것을 배운다 한들 내가 써먹을 수나 있을까 하는 두려움까지 들기도 했다. 하지만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이제는 코딩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도 높아졌고,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어떻게 적용시킬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한다.
은행 영업점 업무를 하면서 빅데이터를 어떻게 접목시킬까? 사실, 빅데이터공부를 하는 동안 내 커리어에 큰 변화가 생겼다. 바로 13년간 했던 영업점 업무에서 벗어나 KEB하나은행 미래금융전략부로 옮긴 것이다. 미래금융전략부는 신기술을 활용해 다양한 서비스를 만드는 부서다. 영업점에서 근무하던 어느 날, 사내에서 미래형 인재를 공모한다는 공문을 보고, 빅데이터MBA학과 공부를 실무에서 적용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과감히 지원서를 냈다. 현재 어시스트 빅데이터MBA학과에 재학 중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렇게 해서 미래형 인재에 최종 선발이 되었고, 그로부터 1개월 후에 인사발령이 났다.
현재는 인공지능 뱅킹 시스템인 하이(HAI)뱅킹을 개발ㆍ운영하고 있다. 하이뱅킹은 챗봇 인공지능과의 대화를 통해 각종 은행 거래를 할 수 있는 최첨단 금융 서비스다. 향후에는 빅데이터를 분석해 개인 맞춤형 서비스도 제공할 계획이다. 그동안 학교에서 배웠던 내용을 실무에서 활용할 수 있다는 기대가 아주 크고 그만큼 자신도 있다. 내가 빅데이터 공부를 시작하면서도 이렇게 빨리 커리어 전환이 이루어질 거라고는 사실 기대하지 않았다. 장기적인 관점으로 시작했던 것인데, 예상과는 달리 너무 빨리 기회가 찾아 와서 놀랍기도 하다. 그리고 기업에서 빅데이터 전문가가 생각보다 그 역할이 크다는 사실을 몸소 깨닫게 되었다. 내 포부는 완전한 커리어 전환이다. 아직은 그 과정에 있지만, 그동안의 영업점 근무 경험과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새로운 인사이트를 찾아 고객들에게 새롭고 혁신적인 금융거래 경험을 제공해보려고 한다.
벤처 창업에 뛰어든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지하 매설물에서 사업 아이템을 찾다_ 민상기(애즈밸즈 대표)
내가 고등학교 때 아버지는 미래에는 컴퓨터가 대세라면서 286컴퓨터를 사다주셨다. 그 당시는 컴퓨터가 미래의 나의 직업이 될지는 몰랐다. 하지만 집안 환경은 이미 나를 그런 방향으로 유도하고 있었다. 바로 위에 형이 전산학과 대학생이었고, 『MSDOS3.1』, 『로터스1231』, 『한글1.3버전』 등 컴퓨터 관련 서적이 거실 소파에 뒹굴고 있었으며, 정기 구독하는 컴퓨터 잡지를 통해서는 다양한 최신 동향을 접할 수 있었다. 당연히 친구들 사이에서도 나는 컴퓨터를 잘하는 친구로 통했고, 자연스럽게 대학 전공도 컴퓨터공학을 하게 되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개인적으로 프로그램 언어보다는 운영제제가 더 흥미로워서 시스템 엔지니어로 진로를 빨리 선택했다. 같은 일을 하는 형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취업도 하게 되어 이 분야의 지식과 기술을 빨리 습득할 수 있었다. 물론 윈도, 유닉스, 데이터베이스, 보안과 관련된 자격증을 모두 취득했으며, 자연스럽게 연봉도 따라서 올랐다. 돌이켜 생각하면 배우는 게 재미있어 이리저리 부딪치며 훌쩍 컸던 시절이다.
빅데이터와는 여러 사업을 통해서 점차 가까워졌다. 항상 기술적인 트렌드에 맞춰서 미리 공부를 한 덕분으로 초창기에 클라우드 시스템을 다루게 되었고, 2011년에는 LGU+에서 개인 추천화 모델 구축사업을 하게 되었다. 이후에도 몇 차례나 빅데이터 시스템 구축사업을 하다 보니, 기술적인 것을 넘어서서 빅데이터로 서비스하는 비즈니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를 체계적으로 공부하고자 어시스트 빅데이터MBA학과에 진학을 결심했다. 어시스트 빅데이터MBA학과에서는 현장 실무 경험이 풍부한 교수님들이 실제 진행했던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사업 현장에서 궁금했던 부분을 많이 해소할 수 있었다.
창업은 이전에 회사에서 수행했던 프로젝트, 즉 지하 매설물에 대한 다양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인공지능으로 분석해서 다양한 정보를 서비스로 제공하는 것을 사업화한 것이다. 이 프로젝트의 경험이 나에게 창업의 원동력이 되었다. 지하 매설물은 토목 영역이었고 빅데이터를 이용한 자동화 서비스 제공은 IT 영역이었지만, 나에게는 전혀 다른 영역의 언어와 로직을 함께 묶을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 있었다.
애즈밸즈는 지하 매설물에서 빅데이터를 수집해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영상 분석과 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다. 지하에는 상수도, 하수도, 열수송관, 통신선 등 수많은 매설물이 있다. 이런 지하 매설물에 이상이 생기면 많은 사람이 엄청난 불편을 겪게 된다. 최근에 있었던 경기도 일산 백석역 열수송관 파열이나 서울 마포구 아현동 KT 통신선 전소 사건이 좋은 사례다. 애즈밸즈는 행정정보(주소, 인구, 전출입, 민원 등), 계측정보(유량계, 구압계, 수질계 등), 기관정보(상ㆍ하수도 시설/블럭/관망 자료, 건물 자료 등) 등을 수집한 뒤, 평소에는 실시간 모니터링을 통해 사고 발생을 예방하고, 장애가 발생하면 장애 지점 도출과 위치 시각화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특히 빅데이터 수업에서 배운 내용과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회사 솔루션으로 개발하고 특허와 지적재산권을 획득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처음에 어시스트에 입학했을 때는 창업한 상태였다. 빅데이터MBA학과 수업은 금요일 저녁과 토요일에만 하기 때문에 창업과 학업은 병행이 가능했다. 첫 학기에는 매출이 전무한 상태였고 직원도 나 혼자였다. 하지만 2016년 말에는 16억 원의 매출을 올렸고 직원도 5명으로 늘었다, 2018년에는 20억 원 정도의 매출에 직원 수는 급격히 늘어서 30명 정도다. 추진 중인 프로젝트가 많기 때문에 인원이 늘어났고, 이런 노력은 곧 매출 증가로 이어지리라 예상하고 있다. 현재는 어시스트 경영학 박사과정(빅데이터 전공)을 다니고 있다. 처음부터 박사과정까지 생각했기에, 사업도 한창 키워야 하는 단계라 무척 바쁘고 어렵지만 용기를 내서 도전했고 지금은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수업을 들을 때마다 오늘은 어떤 것을 배우고 내가 하는 업무에 어떻게 접목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한다. 창업과 학업을 병행한다는 것은 당연히 쉽지 않지만, 같이 노력하는 동기들과 경험을 공유하는 선후배가 있어서 즐기면서 할 수 있었다.
다양한 배경의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데이터 속에서 멋짐이란 것이 폭발한다_ 최경선(바이팅핑거스)
어릴 적에도 나는 참 멋진 걸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내복을 입고 유치원에 등원하는 불상사도 발생했다. 아마도 내가 최애하던 캐릭터가 그려진 내복을 입고 있어, 엄마의 시선을 피해 집에서 나와 겉옷을 벗었지 싶다. 엄마는 지금도 가끔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며 말씀하신다. 못 말리는 어린이 한 명이 우리 집에 있었다고. 나의 멋진 것을 향한 내 인생에서 최고 열정은 아마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넘어가는 시절 발휘되지 않았나 싶다. 국어와 사회보다는 수학과 과학을 좋아했던 나는 너무나 당연히 이과를 선택했고, 대학에 갈 무렵에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이 세상 우리 일상의 대부분은 화학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없으니, 화학과에 가지 않겠느냐”고 나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지만 사실 나를 화학과에 진학하게 만든 건 순전히 다른 이유였다. 그것은 고등학교 때 서울 여의도 불꽃축제에 갔는데, 친구와 그것을 본 그날 밤에 나는 다짐했다. 저 물리적인 먼 거리에서 자로 잰 듯 하늘을 수놓으며 감동을 주는 저 멋진 것을 업으로 삼아야겠다고…….